2019-07-27

[세상읽기] 일본처럼 되지 않으려면 / 이원재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세상읽기] 일본처럼 되지 않으려면 / 이원재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일본처럼 되지 않으려면 / 이원재

등록 :2019-07-23 16:38수정 :2019-07-24 09:25

이원재
LAB2050 대표


일본 아베 신조 정부가 최근 보여주고 있는 한국 수출규제는 여러모로 무리수다. 어찌 됐든 물건을 파는 쪽에서 수출규제를 하면 자기 스스로를 먼저 해치게 된다. 게다가 한국 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구매자들에 속하고, 한국은 일본에 대해 늘 무역 적자를 보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의 핵심 규범인 자유무역주의를, 그 규범의 가장 큰 수혜자인 일본 스스로가 흔드는 꼴이 됐다.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둘까? 2014년 가을 내가 일본 현장에서 목격한 것들에 힌트가 있을 수도 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3년이 지난 그때 나는 후쿠시마와 센다이 지역을 방사능 측정기를 들고 돌아다녔다. 무너져가는 일본을 되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사람들을 만나고 변화를 관찰했다.

일본의 복구 전략은 침착하고 이성적이었다. 금융 완화로 돈을 풀었고 국가재정 투입으로 재건에 나섰다. 그리고 구조개혁의 화살을 쏘아 올렸다. 이른바 ‘세개의 화살’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미래는 위험해 보였다. 전국에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을 뿐, 이 모든 것이 만들어낼 새로운 질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정부가 뿌린 돈은 땅을 파거나 건물을 세우는 데 모두 사용됐다.

사실 근본적인 전환을 위한 꿈틀거림은 있었지만 모두 좌절됐다. 일본 현대사 최초로 시민 수십만명이 도쿄에 모여 반원전 탈핵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정치권의 변심으로 헛일이 되고 말았다. 원전세력은 사회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국제사회에서 ‘경제동물’ 오명을 벗으려 유엔이 내세우는 지속가능발전 목표와 기업 사회책임경영 원칙들을 도입해 알렸다. 그러나 시민사회 전체에 체화되지 못했고, 일부 리버럴 원로 지식인끼리의 대화로 끝나고 말았다. 지역에서는 자치와 마을만들기로 돌파구를 찾았다. 그러나 결과는 고령자 지배사회의 도래였다. 정부 예산을 받아올 수 있는 원로들이 지역사회 리더이자 비즈니스 리더로 변신했고, 지역정치에까지 진출했다. 끼어들 틈조차 사라진 청년들은 떠났다. 활력은 오히려 사라졌다. 한마디로 세대 전환에 실패했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결국 세개의 화살은 갈 곳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목적지를 말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중앙은행은 지속적인 양적완화로 돈을 찍어낸 결과, 보유한 자산이 연간 국민소득 규모에 맞먹는 상황이 됐다. 일본 정부는 국민소득의 2.4배에 이르는 국가부채를 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0.8%에 지나지 않는다. 민간소비는 0.4%만 늘어났다. 그렇다고 그 사이 세계를 뒤흔든 일본 기업이 등장한 일도 없었다. 그토록 돈을 풀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은 생겨나지 않았다. 국제규범을 이끄는 국가로 떠오르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화살은 엉뚱하게 한국을 향해 날아가고 말았다. 아베 정부의 무역 몽니와 그 세력에 대한 일본 유권자의 압도적 지지는, 목적을 찾지 못한 사회가 결국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여준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안간힘을 쓰다 결국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상황을 모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남을 탓하는 것이다. 약하고 어리석은 상대가 있다면 더 좋다. 어쩌면 일본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이 초조한 나머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무너뜨리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을 지켜보며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일본의 10분의 1이었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일본의 10분의 8이었고, 5~10년 뒤면 일본과 비슷하거나 더 커질 것이다. 그때 우리는 지금의 일본과 똑같은 모습을 보일 것인가?

어쩌면 한국은 아직 건국 중인 나라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부쩍 몸이 커졌고 눈이 맑아졌지만, 그에 걸맞은 새로운 말투를 배우지 못했고 꼭 맞는 옷을 찾지 못했다. 일본이 겪은 ‘경제동물’이라는 국제사회 오명과 ‘고령자 지배사회’라는 국내 문제는 우리가 똑같이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일본보다 고령화 속도는 오히려 더 빠르다. 그러면서도 생존에만 목을 매고 품격과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는 정도가 더 심해지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새로운 가치를 지향해야 할까? 일본처럼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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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2993.html?fbclid=IwAR3UJfAczr1yUjo9nvBU0cCYr_8x82BiL2Nl8lYRzUCPIRq0XUPpQ3oWkuo#csidxc68f9b364237938a94e14addaf02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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