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8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작품, <지혜의 발견>
(4) 이찬수
이찬수
5 September 2018 ·
저녁에 집에 들어와보니 딸(이서현)이 단독으로 번역 출판한 책이 집으로 배달되어 있었다. '야마모토학'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작품, <지혜의 발견>(이서현 옮김, 모시는사람들, 2018.09)... 내가 야마모토를 소개하는 글을 서문으로 쓰기도 했던 터라, 더 반가운 마음에 공유한다.^^
"야마모토 시치헤이라는 사람, 그의 일본론"
일본에 ‘야마모토학’(山本學)이라는 학문 영역이 있다. 문화평론가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 1921-1991)가 정리하며 소개한 광범위한 비교문화론에 붙여진 이름이다. 야마모토는 평생 자신의 조국 일본이라는 나라, 일본인의 문화적 특징을 쉬우면서도 통찰적인 문장으로, 게다가 비판적 안목으로 정리하며 두루 소개했다. 방대한 저술로 일본인에게 독창적 일본문화론을 각인시켰고, 일본 문화평론의 대가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의 책 『공기의 연구』는 일본인 독자의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일본이 이런 나라구나’, ‘우리가 이런 사람이구나’ 하며... 그 핵심인즉 일본인은 ‘공기’(空氣, ‘분위기’보다 강도가 세고 농도가 짙은 말)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일본의 일상어인 '공기를 읽는다’(空気を読む)는 말도 아먀모토 시치헤이의 문화론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 만화를 보면 종종 ‘분위기 파악해 행동하라’는 의미로 ‘KY’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곤 하는데, KY는 ‘공기를 읽어라’는 말의 일본어 발음인 ‘쿠키오 요무(kukio yomu)’의 영어식 약어이다. 공기를 파악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고 그렇지 못하면 영 어색하거나 심지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 들어있다. 남이야 뭐라 하든 스스로 주체적으로 행동하기 보다는 다분히 분위기에 따라 행동하는 태도는, 다소 과장하면, 일본인은 자신의 행동을 판단하는 주체가 자기 내면에 있다기보다는 밖에, 즉 외부의 분위기나 상황 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이다....
야마모토는 일본인의 이런 행동 방식들을 분석하면서, 분위기에 따라 종종 과장된 발언을 하기도 하는 사례에서 일본 문화의 특징을 찾아낸다. 야마모토의 문화 이야기는 끝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이어지지만, 대부분 쉽고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한국인으로서는 이러한 일본인론을 일단 있는 그대로 보는 데서부터 일본에 대한 이해가 비로소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야마모토는 저술의 문학적, 문화론적 가치를 인정받아 기쿠치 칸(菊池寬) 문학상과 같은 권위 있는 수상을 여러 차례 했을 뿐더러, 사후에는 PHP연구소에서 그의 유지를 받들어 만든 ‘야마모토 시치헤이 상’이 제정되었다. PHP연구소는 일본 전자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설립한 연구소로서, 현재 출판업을 주로 하면서도 일본의 ‘씽크탱크’ 상위 10위 안에 드는 영향력 있는 종합연구소이다. 이 연구소에서 야마모토 시치헤이 상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사회·정치·경제·역사·철학 등의 분야의 출중한 학술서 및 논문을 대상으로 상을 수여하고 있다...
사람 이름에 ‘학’이라는 이름이 붙다니, 아무나 아무 것이나 그렇게 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은 그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지 싶다...
『지혜의 발견』은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남긴 글 중에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독자의 수요가 끊이지 않자 재구성을 거쳐 다시 출판된 책이다. 때로는 오늘의 상황이나 용어에 어울리지 않는 옛 사례들이 소개되기도 하지만, 일본문화를 분석하는 그의 통찰력은 여전히 빛난다. 이 책을 술술 한 장씩 읽어나가노라면 어느 틈에 문화라는 것, 일본인이라는 것, 사고방식의 한계와 같은 것이 통찰적으로 와 닿는다. (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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