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7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1, 2, 3권’ - 불교신문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1, 2, 3권’ - 불교신문
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1, 2, 3권’
승인 2003.07.19 02:00
“흰 그늘은 내 삶이자 죽음”‘흰 그늘의 길 1, 2, 3권’
김지하 회고록 / 학고재
사진설명: "흰 그늘은 나의 미학과 시학의 총괄테마가 되었다"고 말하는 김지하 시인.“나의 생애가 모로 누운 돌부처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실패한 부처 벌판에 버려져 잊혀진 돌부처라고 해서 조성할 때의 깊고 큰 원(願)이 모심(侍)이어서는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성공이냐 실패냐는 이제 거의 내 심중에도 안중에도 없다. 오직 내가 ‘모시느냐’ ‘안모시느냐’만 있을 뿐이다.”
김지하. 그는 분단시대의 거인일 뿐만 아니라 우리시대의 새로운 ‘빛’을 끊임없이 세상에 내놓고 있는 시인이자 사상가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아직 ‘명상’과 ‘변혁’을 꿈꾸는 그가 가열한 삶의 이력을 담아낸 회고록 〈흰 그늘의 길 1, 2, 3〉을 펴냈다.
“십년전 동아일보에 게재된 제1부에서는 엄밀히 말해서 가족사와 내 개인사의 진실은커녕 최소한도의 사실 마저 정면에서 온전하게 부딛치지 못한채 금기의 장벽과 타협하고 말았다. 그래서 6·25전쟁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가서 나의 회상은 마침내 큰 장애에 부딛혀 중단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아버지는 공산주의자였다’라고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이 명백한 한마디가 없이는 나의 회상은 전체적으로 그 회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지하의 회고록은 한편의 기이한 장편서사시다. 시인의 굴곡진 성장사에 짙게 드리워진 음영이 있다. 그 음영은 다름 아닌 상상이요 꿈이요 환상이요 때로는 기이한 이문(異聞)들로 채워져 있다. 아득한 새로운 세계와의 감응과 교통 그리고 갖가지 초절한 이미지의 충돌은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온갖 모순과 착종을 뚫고 나가는 예지에 찬 시선이 번뜩이고 있다. 회고록 전체를 수놓고 있는 신명 넘치는 서술, 희한한 비유와 은유도 흥미롭다.
신명나는 필치로 엮은 회고록
단순 일기 아닌 문학적 탐색
“4·19직후 서울농대에서 겪은 스무살 때의 아득한 흰 밤길의 한 환상, 민청학련 무렵인 서른 세살때의 우주에의 흰 길의 한 환상, 재 구속되어 옥중에서 백일참선에 돌입했던 서른 여덟 살때의 흰빛과 검은 그늘의 교차투시, 해남에서 두 계열의 연작시 검은 산 하얀방의 분열구술, 목동시절의 컴컴하고 침침한 쉰 그늘과 일산 이사직후의 그 눈이 멀듯한 일산시첩의 흰빛들이 서로 넘나들 수 없는 날카로운 모순대립. 흰 그늘은 나의 미학과 시학의 총괄테마가 되었다. 흰 그늘은 생명문화운동의 새 구호다. 그리고 내 삶이요 죽음 즉 나의 시다.”
시인으로 산 저자의 주옥같은 시편들도 볼거리. ‘오적’ ‘애린’ 등 우리의 삶과 마음을 울렸던 시편들의 탄생배경을 알게 해주는 문학도로서의 단련과정도 흥미롭다. 그리고 한편으로 지선스님 이종찬 등 저자가 맺어온 숱한 사연을 가진 인연들이 도탑게 그려진다.
“나는 나의 회고록을 나 자신과 사실을 중심으로 고백하는 살벌한 자서전을 쓰고 싶지 않다. 어떤 의미가 생성되는 문학적 탐색으로 밀고 가고자 한다. 그것만이 온갖 형태의 억압과 자기검열로 인해 봉인된 내 삶의 깊은 시간의 비밀이 변화속에서 참으로 스스로 개봉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시대의 거인 김지하 시인의 문학적 순도높은 회고록은 갈수록 엄혹해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또 다른 메시지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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