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교토에서 본 韓日通史
교토에서 본 韓日通史
정재정 (지은이)효형출판2007-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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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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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00자평(0)리뷰(2)
380쪽
152*223mm (A5신)
532g
책소개
매년 많은 한국인들이 교토에 방문하지만 대체적으로 이름난 절이나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여 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학생과 일반인을 위한 ‘역사기행’을 인솔해 온 정재정 씨는 그러한 실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가 역사의 현장 교토를 중심으로 두 나라의 관계를 재구성한다.
지은이는 1592년 3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20만 대군을 출병시킨 곳이 바로 교토라고 이야기한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근대화 혁명 메이지 유신이 진행됐던 20년간, 쇼군(將軍)과 덴노(天皇)의 지지자들이 서로 죽고 죽였던 도시의 뒷골목이었으며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 그 수로 부하장수의 전공을 가늠했고, 뒤를 이은 도쿠가와 바쿠후의 쇼군들이 만들어놓은 조선인의 귀와 코를 묻은 무덤이 있는 곳 등 역사의 눈으로 한일관계 속의 교토를 바라보고 있다.
목차
책을 내면서
창신의 역사, 교토 2000년
옛스러우면서도 새로운 교토
도래인과 한반도의 영향, 교토의 문명
누가 교토를 개척했는가?
일본의 지성이 흠모한 신라의 걸물(傑物)
무사의 세상, 교토의 변신
무사의 등장과 바쿠후의 성립
전국동란과 선종사원의 융성
임진왜란과 교토의 조일 갈등
풍운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교토 개조
교토에 떠도는 조선인의 원혼
교린교역과 교토의 활력
지략과 간계가 뒤엉킨 임진왜란의 강화회담
갈등을 평화로 포장한 사절외교
비단·인삼·은화의 교역과 교토의 번영
메이지 유신과 교토의 재생
유신의 활극, 무너지는 교토
교토의 재생, 근대도시로의 변신
한국강점, 교토의 충혼과 애련
제국일본의 한국침략
충혼과 애련을 증언하는 유적
한국지배, 교토 한국인의 생활
일본에 온 한국인, 그들의 삶
한국인 노동자의 생활과 저항
한국인 유학생의 애환과 민족운동
상생공영, 한일연대의 교토
제국일본의 붕괴와 민국일본의 전개
상생공생을 촉구하는 한일연대의 사적
마치며
참고문헌
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교토에 들어서면 시내에 지금도 1600여 개의 사원과 400여 개의 신사가 성업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가 질린다. 한국인은 절집이나 성황당을 마을사람의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진 심산유곡 또는 동네 어귀에 숨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때문에 대도시의 번화가나 고즈넉한 주택가에 사원과 신사가 당당히 손님을 맞고 있는 풍경이 왠지 낯설다.-p51 중에서
통신사 마쓰리는 일본과 한국의 우호친선을 증진하는 것도 그 목적의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친선을 바라는 우리로서도 이런 행사를 마다할 까닭이 없다. 2007년은 '통신사 400주년'이다. 이를 계기로 통신사 기념 행사는 더욱 성대하게 치러질 것이다.-p190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정재정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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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사, 한일관계사, 역사교육의 전문가이다. 서울대학교와 동경대학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치고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박물관장, 시민대학장, 인문대학장, 대학원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역사문제연구소, 역사교육연구회, 한국사연구회, 경제사학회, 한일관계사학회 등에서 활약하고, 국사편찬위원회, 서울시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서울역사박물관, 한성백제박물관 등의 위원, 한일미래포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의 운영자문위원장을 맡았다. 한국과 일본, 중국, 북한, 독일, 미국 등의 역사공동연구에 참가하고, 한일 양국정부가 지원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1,2기)의 총간사를 겸임했다. 북해도대학, 동경대학 등의 특임교수,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동북대학, 에커트국제교과서연구소 등의 외국인 연구원으로서 교육과 연구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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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토인가?
1592년 3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20만 대군을 끌어모았다. 침략군은 어디서 출발했을까?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근대화 혁명 메이지 유신이 진행됐던 20년간, 쇼군(將軍)과 덴노(天皇)의 지지자들이 서로 죽고 죽였던 도시의 뒷골목은 또 어디일까? 답은 모두 교토(京都)다.
교토는 흔히 천년고도(千年古都)라고 불린다. 794년 간무덴노가 수도를 정한 뒤 메이지덴노가 1869년에 도쿄로 옮겨갈 때까지 1000년 넘게 수도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역사문화도시로 존재했다. 그래서 교토는 한국과 일본이 역사·문화·경제 등 여러 면에서 가까운 관계를 맺어온 이웃나라라는 사실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도시다.
교토를 방문하는 한국인은 한 해 수십만 명에 달하지만, 몇몇 이름난 절이나 관광지를 찾아가 둘러볼 뿐, 정작 온 도시에 가득한 한일관계의 현장을 찾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사실, 교토를 방문하면 반드시 들러보는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역시 백제계 도래인(渡來人)이 지은 절로서 한국과 일본의 오랜 관계사를 증언하고 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돌아오기 일쑤다.
16세기 최악의 국제약탈전쟁 : 임진왜란
역사란 기억의 묶음이다. 과거의 사실보다 그 기억으로서 존재한다. 1592년부터 7년간 한반도에서 벌어진 하나의 전쟁을 한국은 ‘임진왜란’, 일본은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중국은 ‘원조선(援朝鮮, 조선을 구해주었다는 뜻)’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기억되는가에 따라 이름마저 달라지는 역사인식은 오늘날 역사분쟁이 끊이지 않는 근본 원인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의 예는 역설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뗄 수 없는 역사적 공동체 운명으로 얽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14만 명의 조선인이 끌려간 노예사냥전쟁이자, 조선의 책·그림·도자기 등 문화예술품은 물론 가축과 나무까지 가져간 국제약탈전쟁이었다. 일본은 조선에서 빼앗은 인적?물적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근세문화를 발전시킨 반면, 조선은 그 손실을 치유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아야만 했다. 어쩌면 이후의 역사에서 두 나라가 서로 다른 운명을 걷게 된 것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전쟁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오늘날 교토의 도시경관을 만든 사람이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정권을 잡자, 강력한 권력을 휘둘러 자신의 화려한 거처를 만들고, 성벽을 쌓고, 곳곳에 산재하던 사원을
한 데 옮기는 등의 대규모 토목공사를 끊임없이 벌였다. 급히 공사하느라 멀쩡한 건물의 담벼락과 지붕을 뜯어다 썼다니! 잘 닦인 길로 구획된 계획도시이자 ‘꽃비단’ 같다고 찬양되던 우아한 고도(古都) 교토를 단 6년 동안 완전히 지워버린 셈이다. 그 기간은 히데요시가 최고권력자인 쇼군으로 교토에 군림했던 기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렇듯 철저히 난폭한 방식으로 교토를 개조한 것만 봐도 당시 무장들의 일처리가 어떠했나 잘 알 수 있다. 히데요시는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 그 수로 부하장수의 전공을 가늠했고, 뒤를 이은 도쿠가와 바쿠후의 쇼군들은 그때 벤 조선인의 귀와 코를 묻은 무덤〔耳塚〕을 참배하도록 통신사를 압박했다. 조선침략이 시작된 곳도 무고한 민중의 잘린 귀가 묻힌 곳도 모두 교토다.
한국과 일본, 운명의 갈림길 : 메이지 유신
바쿠후를 무너뜨리고 덴노에게 정권을 돌려주려는 정치혁명, 메이지 유신이 전개된 1850년대 중반부터 1870년대 중반까지 혁명의 현장, 교토에서는 보수와 개혁, 폭력과 탄압, 배반과 타협, 혁명과 전쟁의 드라마가 숨 가쁘게 전개되었다. 지금도 거리 곳곳에서 유신지사 아무개가 은거했던 곳, 아무개가 죽은 곳 등을 알리는 표석을 발견할 수 있다.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고 덴노가 권력을 되찾아 황도(皇都)의 자존심을 세웠지만, 메이지덴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쿄로 천도하면서 교토는 정치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비록 정치의 중심지는 도쿄에 양보했지만, 역사와 문화, 그리고 경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을 벌이며 다시 한번 활기찬 대도시를 건설했다. 특히 산을 뚫어 터널을 내고 바로 오사카 등 항구와 연결되는 교역로를 개척한 비와코 소수(疏水)공사로 오늘날 오랜 역사에 기반한 거대한 관광산업을 일궈냈다.
메이지 유신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근대화운동이다.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해 부국강병을 추구하면서 서구 열강과 함께 제국주의의 길을 갔다. 반면 조선은 그런 일본의 확장정책에 희생되어 국권을 빼앗겼으니 우리에게도 메이지 유신은 의미심장한 역사의 분수령이다.
정재정 교수와 함께 가는 한일통사기행
저자는 10여 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학생과 일반인을 위한 ‘역사기행’을 인솔해오고 있다. 또한 광화문에서 주한 일본인에게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일본어로 강의한다. 한국사람이 일본인들을 이끌고 일본을 여행하는 일이 일견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현장에서 생생히 역사를 되짚어보는 만큼 더욱 열린 마음으로 두 나라의 역사를 대하게 된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여행객은 한 해에 각각 2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이 그저 여행안내서에 실린 대로 외국의 거리를 걷는 게 아니라 현장을 방문하여 두 나라의 관계를 기억한다면, 역사 대화는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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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가 그렇구나
교토 여행을 앞두고 읽었다.
이제는 여러 곳을 두루두루 살피는 것 보다 한두 곳에서 짱 박혀있고 싶다. 복작거리는 유명 관광지보다 동네 슈퍼 같은 곳에서 진열 상품을 꼼꼼히 살피거나 동네 아줌마들 장보러 나온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서 일본 여행을 앞두고 고른 여행지는 교토와 오사카.
지은이의 자부심이 얼핏 보이는 책 이름. 제목이 좀 거창하지만 책 내용으로 보건데 그만한 값을 하는 것 같다, 가 아니라 한다.
지금까지 은근히 한 편으로 제쳐놓았던 나라(여행지로서), 뭐 특별히 공부하지 않아도 좀 알 것 같은 나라, 궁금한 것도 아쉬울 것도 별로 없을 것 같은 나라, 그러면서도 늘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나라, 일본. 우리에게 과연 일본은 무엇인가, 같은 거창한, 감당 불가한 물음을 그래도 묻지 않을 수 없는 나라, 일본.
이 책은 이렇게 복잡하고 착잡한 심정으로 일본 여행을 결정한 사람들에게 알찬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일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 짐작했던 나의 무지를 여지없이 드러내주었다. 나 같이 일본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들이 읽으면 무지무지 재미있을 것이다.
교토에 가면 발걸음이 더 더뎌질 것 같다. 신사를 구경하더라도 먼 옛날 신라나 백제와의 관계를 더듬을테고 케이블카를 타더라도 그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데 들어간 한국인의 피와 땀을 떠올릴테니 말이다. 한편, 늘 한국임을 자각하며 여행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궁금 반 걱정 반임을, 답사 여행이 될 것이 뻔한 이런 여행이 결코 내가 바라는 여행이 아니라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벌써 이런 책을 접한 자체가 편하고 쉬운 여행을 포기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ㅋㅋ
아, 일본!!!
- 접기
nama 2008-07-2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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