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7

생태영성이 전인건강(全人健康)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고찰 * 박선식



育士道육사도




생태영성이 전인건강(全人健康)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고찰 * 박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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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영성이 전인건강(全人健康)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고찰

박 선 식

목 차

논문 개요

서 론1

제1장. 환경성 질환

1. 환경성 질환의 정의

2. 서양의학의 발전과 문제점

(1) 기계론적 서양의학의 발달

(2) 서양의학의 문제점

3. 서양의 대체의학과 동양의학의 조우

(1) 서양의 대체의학

① 동종요법(Homeopathy)

② 라이크 요법(Reichian therapy)

③ 시몬톤 요법(Simonton therapy)

(2) 동양 의학

① 동양의학에 나타난 음양 역동성

② 동양의학의 생태지역성



제2장. 전인건강을 위한 생태요법

1. 생태요법의 특징

(1) 자연과 접촉하는 인간의 세가지 측면

(2) 생태 중심적 시각

2. 자연환경과 생태요법

(1) 풍수사상

(2) 생태적 생활공간

(3) 자연환경과 생태요법

① 공기와 인간 건강

② 물과 인간 건강

③ 음식물과 인간 건강

3. 생태요법과 심리치료

(1) 개성화와 야생성의 회복

① 개성화와 자아 정체성

② 개성화를 촉진시키는 야생성의 회복

③ 자연체험의 심리적 치유

(2) 생태요법의 심리치료

① 게슈탈트 심리치료법(Gestalt Therapy)

② 죽음의 슬픔이 주는 자연 치유적 기능

③ 서식처와 심리적 건강

④ 식물·동물에 의한 심리치료

제3장. 생태영성과 전인건강

1. 종교와 동양사상에 나타난 생태영성

(1) 그리스도교 생태영성

(2) 토착종교에 나타난 생태영성

① 신화에 나타난 생태영성

② 북미 토착종교의 생태영성

③ 한국의 무속에 나타난 생태영성

(3) 동양사상에 나타난 생태영성

2. 생태영성이 전인건강에 미치는 영향

(1) 생태영성이란 무엇인가

(2) 생태영성과 전인건강

결 론

참고문헌

ABSTRACT


논 문 개 요

진정한 건강은 몸(body)의 건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몸과 유기적으로 연결을 가지는 마음(mind), 그리고 삶의 의미와 생활의 활력소를 공급하는 영혼(spirit)의 건강도 함께 고려해야 진정한 건강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에서의 통합적ㆍ전인적 건강은 결코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와 같은 전인적 건강은 인간이 그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환경 및 자연 환경과 유기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형성된다. 본 논문은 인간과 환경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인간과 세계를 만드신 창조주의 영이 맺는 그러한 상호작용의 치유적 메카니즘을 고찰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크게 세가지 하부 주제를 다룬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주제는 건강과 질병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고찰로서 주로 1장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이제까지 서양의학은 질병을 세균의 감염에 의한 개인적인 문제로만 다루어 왔다. 그러나 실제로 질병은 인간이 환경과 생명적으로 교류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볼 수 있다. 즉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고 생태계의 질서를 교란하게 되면, 그 대가로 인간은 피할 수 없는 각종 질병과 신체적 장애를 겪게 되는데, 이처럼 인간이 환경을 해치고 또 환경이 인간을 해치는 관계는 결코 생명적 교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1장에서는 질병의 진정한 원인이 환경과 잘못된 관계를 맺는 데서 비롯되고 있음을 보이고, 아울러 육체와 정신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이고 분석적인 서양의학의 잘못된 인간관과 건강관이 이러한 문제에 대응함에 있어 갖는 제한을 최근의 대체의학 및 전통적 동양의학(東洋醫學)의 통합적인 관점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고찰하여 보았다.

두 번째 주제는 전인건강을 위한 방법론으로 클라인벨 등에 의해 주창된 생태요법의 내용과 특징을 살펴보는 것으로서, 주로 2장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생태요법은 생태계의 전체성(全體性)을 전제하고 그로부터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태계의 성장과 치유를 논하고 있다. 여기서, 정신-영혼의 뿌리는 바로 지구임이 강조된다. 즉 생태요법의 관점을 따를 때, 땅이 인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해 있으며, 사람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주체가 아니라, 단지 생명의 그물의 한 가닥일 뿐이다. 생태요법은 전인건강의 시작이 이러한 생태계 순환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그래서 생태요법은 인간이 자연과의 심리적 내면 접촉(inreach), 자연 속에서의 초월적 접촉(upreach), 그리고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외면적 접촉(outreach)을 유지할 때, 그 안에서 치유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생태계 순환의 원리를 전인건강의 방법론으로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 주제는 생태영성의 의미에 대한 고찰로서, 주로 3장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생태요법은 자연과 만남의 영성적 가치를 부각시켜 전인건강에 있어서 생태영성의 중심성을 논하고 있다. 필자는 생태요법이 주목하고 있는 생태영성의 의미를 그리스도교, 신화(神話), 고대 부족국가의 전통, 우리 나라 무속, 동양사상 등에 나타난 다양한 측면들을 통해 고찰하여 보았다. 그리하여 생태계 전체의 건강과 온전성 실현이 절박하게 요구되는 현싯점에서 그리스도교적 영성의 의미를 생태영성으로 새롭게 해석해야, 우리가 신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함께 이해할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하였다. 또 북미 인디안의 자연관이나 우리 민족의 경천사상(敬天思想), 그리고 동양의 음양사상에 나타난 자연과의 친화를 강조하는 요소들 역시 생태영성으로 재해석하여 발전시킬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하였다.




서 론

오늘날 우리는 질병의 원인을 세포(細胞)나 장기(臟器)의 물리적 변화와 특정 세균(細菌)의 감염에 의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인체를 기계적 원리로 접근하는 서양의학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을 기계론적(機械論的)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건강을 위한 현대의학의 노력은 인간의 생물학적 기능을 자연과학적으로 규명하고 그에 따른 자연과학적 처방을 내리는 것에 한정된다. 인간의 질병은 생화학검사(혈액검사, 소변검사, 세균검사 등)나 방사선 검사(X-Ray, MRI, CT촬영 진단법) 등의 진단결과에 따른 약물 투여, 또는 외과적 수술이라는 치료 방법을 통해서만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질병과 건강은 단지 의학적인 문제로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심층생태심리학(深層生態心理學 Deep Ecopsychology)이나 구스타브 칼 융(G. Carl Jung)의 성격이론(性格理論)을 비롯한 현대 심리학의 인간 이해는 인간을 신체적(biological), 심리적(psychological), 영적(spiritual)인 측면이 통합된 복합적 존재로 보고 있다. 이러한 영적, 심리적, 신체적 통합체로서의 인간에게 있어서, 건강이란 세 차원 모두에서의 건강(이를 '全人健康'이라 하겠다), 즉 전인건강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인건강은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라는 소극적 차원을 넘어선다. 빛은 다만 어둠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일정한 파장으로 움직이는 에너지요, 간단(間斷)없이 퍼져 지구촌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을 하나의 우주 정신으로 통합하는 맥동(脈動)이다. 마찬가지로 전인건강은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인 생기와 내적 능력과 창조성을 창출하는 사랑과 건강한 영성의 생동적인 에너지들이 존재하는 상태라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전인건강은 인간이 그 삶의 터전인 환경과 신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깊이 교류하는 가운데 얻어지고 증진된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건강의 문제를 환경의 맥락과 연관지어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

물론 건강의 문제를 환경 문제의 맥락과 연관지어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삶의 터전인 환경 질서가 파괴되면 인간은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소극적 의미에서의 건강마저도 누릴 수 없다. 이두호 박석순의 {지구촌의 환경재난}에 소개된 아메리카 대륙 나이아가라 폭포의 러브커넬(Love Canel)사건, 구(舊) 소련의 체르노빌 사건, 일본의 미나마타 사건 등은 환경파괴가 불러일으키는 끔찍한 재앙들을 우리에게 환기시켜 준다. 또 세기말에 새로이 생겨난 각종 질병들은 인간에 의한 생태 질서 파괴의 무서운 결과를 짐작케 한다. 1970년대의 레조넬라, 80년대의 에이즈, 90년대의 변종 콜레라, O-157 식중독 등 30여종의 신종 전염병이 출현하여 높은 치사율(致死率)로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질병극복의 문제가 생태계의 건강회복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건강을 여전히 개인적인 문제로만 취급하고 있다. 그래서 질병에 대한 오늘날의 대책은 생태계의 안녕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개인 건강에 한정된 의학적 대책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이것은 마치 상류(上流)에서부터 흙탕물이 된 강물을 하류(下流)에서만 맑게 하려는 노력과 같다.

그 단적인 예가 우리 나라 남해와 서해에서 거의 매년 나타나는 비브리오 패혈증이다. 패혈증(敗血症)은 비브리오(Vibrio)균에 감염된 어패류 섭취에 의하여 나타난다. 이 비브리오균은 질소(N2)와 인(P)이 풍부한 조류(藻類)의 이상 증식(적조현상)시 잘 번성한다. 문제가 되는 질소와 인의 농도 증가는 매일 버려지는 산업 및 생활 하수와 쓰레기, 살충제, 농약, 비료 등이 주범(主犯)이다. 이러한 조건 아래서 잘 자라는 조류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아지면 적조현상(赤潮現狀)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조류의 이상 증가현상 이면에는 우리 인간들의 부정의(不正義)가 숨어 있다. 즉, 이들 조류를 먹어 치우는 어패류가 인간들의 남획(濫獲)에 의해 줄어들고, 인체의 신장(腎臟)에 비유될 수 있는, 질소(N2)와 인(P) 등을 정화시키는 갯벌이 간척사업에 의해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비브리오균은 해마다 자신의 위용을 패혈증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환경위기(environmental crisis)는 우리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주된 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위기는 일차적으로는 현대사회의 산업화(産業化)에 그 원인이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산업화의 배후에 자리잡은 우리의 생태적 영성 빈곤에 그 뿌리가 있다. 앞서 언급한 러브커널 사건의 경우를 보더라도, 문제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든 땅에 묻어 버리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환경정책 당국과 일반 시민들의 무지였다. 또 체르노빌 사건도 경제성과 편이성만을 따지고 환경적 위협을 무시하는 무관심에서 비롯된 문제였다. 일본의 미나마타 사건 역시 해양오염이 인간 건강에 직결됨을 망각한 결과였다. 환경 문제는 결국 현대사회를 이끄는 '발전'이라는 깃발 아래 점점 희미해져 가는 우리의 생태적 감수성이 초래한 문제이다.

그래서 환경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표명하는 미 부통령 엘 고어도 {조화 안에서의 지구(Earth in the Balance)}에서 환경위기 극복에 있어서 영적(靈的)·윤리적(倫理的) 문제의 중심성(中心性)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이 문제들은 그 중심에서의 공허와 더 큰 영적 목적의 결핍 때문에 발생한 현대문명의 영적 위기(靈的危機)"이며, "인생의 목적과 현재 당면한 위기와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들은 인간의 정신이나 육체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靈魂)에 대한 질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상을 종합하면, 오늘날 인간의 건강한 삶은 이중의 위기 앞에 놓여 있다고볼 수 있다. 즉 우리는 한편으로 환경파괴의 결과로 나타나는 각종 질병의 직접적 위협을 받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환경과의 영적, 정신적, 신체적 교류를 상실하여 전인건강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건강한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두 가지 방향의 노력이 요구된다. 우선 환경파괴의 근본 원인인 우리의 생태적 감수성을 되찾아야 할 것이고, 다음으로 지금까지의 편협한 건강 개념을 전인건강 개념으로 대체하고, 더 나아가 전인건강을 위해 환경과 생명적으로 교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와 같은 이중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열쇠가 바로 생태요법에서 찾아질 수 있다고 본다.

생태요법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착취나 자연에 대한 그릇된 태도가 인간 자신의 영적, 정신적 심성을 황폐화시키고, 결과적으로 가치관의 혼란, 자아정체성(自我正體性) 결여 등 영적 장애와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정신적, 육체적 질병을 낳게 된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질병은 생의학적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및 자연 환경적 문제들이 서로 결합된 상호작용의 결과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태요법은 인간과 생태계의 내재적(內在的), 유전적(遺傳的) 관계성에 기반하여, 자연이 가지는 치유적 에너지를 인간의 성장과 치유에 공조(共助)하여 적용하고자 한다.

이러한 생태요법은 인간의 영적, 심리적, 육체적 건강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생태적 시각을 바탕에 깔고, 인간 의식을 모든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포함한 생태계로 확장시킨다. 그러므로 생태요법으로부터 우리는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는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思考)를 대체할 새로운 생태적(生態的) 시각(視覺)을 얻을 수 있다. 또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을 치유하고, 생태계 뿌리인 지구로 인간의식(人間意識)을 확장(擴張)하여 결과적으로 생태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본 연구에서 생태요법의 내용과 특징을 하워드 클라인벨(H. Clinebell)의 견해를 중심으로 정리하면서 그 의의를 음미하여 보고자 한다. 아울러 필자는 생태요법의 궁극적 목표가 생태영성의 회복에 있음을 밝히고, 그리스도교, 고대 사회의 신화(神話), 민속적(民俗的) 전통 및 동양사상에 함축된 다양한 생태영성의 측면들을 고찰함으로써 과연 생태영성이 전인건강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파악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고는 다음의 순서를 따를 것이다. 우선 1장에서는 환경과 인간 건강의 일차적인 관련성을 고찰하면서 우리의 건강이 환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다 자세히 확인해 볼 것이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서 건강을 다만 기계론적 신체의 생리적 기능 문제로만 취급하는 서양의학의 관점을 살펴보고 그 문제점을 생각해 볼 것이다. 2장에서는 전인건강을 추구하는 생태요법의 특징을 살펴보고, 생태요법이 강조하는 자연과의 접촉이 우리의 전인건강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생각해 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3장에서는 생태요법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가 생태영성의 회복임을 밝히고, 그러한 생태영성의 의미를 그리스도교와 그 밖의 다양한 관점들을 비교하며 고찰하여 볼 것이다.

제1장. 환경성 질환

1. 환경성 질환의 정의

의학의 목표는 인간의 질병퇴치와 건강증진을 통한 수명연장에 있다. 의학은 구체적으로 이것을 달성하기 위한 학문이며 기술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이란 생명체와 그것의 환경과의 관계에 의해서 좌우된다. 즉 건강이란 완전한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 상태를 의미하며, 단순히 질병이나 쇠약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정의하였다. 이는 건강의 전일적(全一的)인 본질을 잘 지적하고 있다. 인간이 건강하다는 것은 인간의 신체적 신진대사(新陳代謝)와 정신적 안정을 포함한 모든 것이 균형을 유지하며, 주변의 사회적 환경과 자연적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적응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환경적 요소들은 수많은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환경적 요소들에 의해 나타나는 질환을 환경성 질환(Envionmental Illnesses), 또는 생태학적 질병 (Ecological Illnesses)이라 부른다. 미국 국립직업병 안전 건강 연구소의 Diane Porter는 여러 가지 환경적 장애들이 사람들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환경성 질환의 원인은 갖가지 인공 식품, 꽃가루, 방부제, 담배 연기, 농약, 화장품뿐만 아니라 사무실 인조 책상 등에서 나오는 포름알데하이드, 복사기에서 뿜어 대는 오존, 에어컨에 기생하는 곰팡이나 박테리아, 살충제, 청소할 때 사용하는 솔벤트, 접착제, 탈취제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현대 산업사회의 이러한 오염물질들은 인체에 알러지 현상이나 생화학적 부적응 등을 유발한다. 이러한 오염물질에 대한 인체의 부적응은 만성적 피로 증후군, 현기증, 우울증, 정서적 심리적 혼란, 적개심의 표출, 만성적 감기 증상, 기억상실증, 원인을 알 수 없는 괴로움 등의 징후로 나타난다.

환경성 질환의 발병은 유독 화학물질에 강하게 노출되었을 때 흔히 일어난다. 이러한 화학물질은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호흡으로 사람의 몸 속에 흡입되기도 하고, 오염된 식수나 음식물에 의해서 농축되어 흡수되기도 하며, 피부접촉에 의해서도 질병을 일으킨다. 또한, 이러한 환경성 질환은 호르몬 교란물질에 의해 인간의 유전학적 취약성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환경성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대기오염을 줄이고, 우리가 일하는 작업장, 학교, 주택과 같은 실내의 공기에 오염의 주범인 벤젠(benzene), 포름알데히드(Formaldehyde), 트리클로로에틸렌(TCE) 등 화학용품 사용을 자제해야 하며 이들을 정화할 수 있는 식물들을 생활주변에 심고, 생태적 녹지공간을 보다 많이 확보해야 한다. 또한, 집이나 직장의 건물 구조나 건축 자재에서 유해한 물질이 없는지 확인해 보고, 생활주변의 병든 건물(sick building)을 생태적으로 개선하는 등 모든 삶의 공간을 자연 친화적 공간으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현대사회의 도시화는 환경성 질환에 매우 취약하다. 도시의 과도한 소음, 첨단 전자장비에서 나오는 전자파, 대량으로 배포되는 메스미디어 정보에 사로잡힌 도시인들은 신체적, 정신적 피로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

환경성 질환은 이러한 물리적 환경 외에도 사회 환경적 문제에 의해서도 유발된다. 환경적 인종주의와 생태빈곤 계층주의는 사회적, 경제적 부정의와 서로 얽혀 있다. 부유한 나라에서 빈곤층과 저개발국가의 산업지역 사람들은 오염된 지역에서 살도록 강요되고 있다. 그 실례로, 도시 빈민가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동들은 반 이상이 납중독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으나 미국 중류 백인가정 아동들은 불과 7%정도만이 그런 고통을 당하고 있다. 또한, 풍요한 나라에 적을 둔 다국적 기업들은 환경기준이 없거나 그런 기준을 요구하지 않으며, 값싼 노동력을 구할 수 있는 나라에 그들의 공장을 건설한다. 그 결과 저개발 국가는 풍요한 나라를 위해 오염되기 시작하여 점차 환경성 질환에 취약해 진다.

이러한 환경과 관련한 건강문제의 일차적 요인은 우리의 소비 중심적 생활 방식-산업사회의 대량생산-과도한 마케팅-과도한 쓰레기의 양산에 의하여 나타나며, 환경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무수한 화학 물질이 너무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된다.



2. 서양의학의 발전과 문제점

인간의 건강은 질병의 부재 상태만이 아닌 전인건강이다. 그러나 서양의학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여 보는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혀 인간의 건강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왔다. 뿐만 아니라 질병의 원인과 관련해서도 세균이라는 편협한 요인만을 고집하여 왔다. 그 결과 작금의 서양의학은 첨단 의료기술과 새로운 연구에도 불구하고 건강관리의 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해 보면, 현대의학이 비용과 효율 면에서 얼마나 현저한 불균형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불균형은 서양의학이 정서적, 영적인 면을 포함한 전인적(全人的)인 생명을 담기에 한계가 있는 기계론(機械論)적 인간 이해에 바탕을 두고 인간 생명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절에서는 그와 같은 서양의학의 한계와 문제점을 카프라의 견해를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그러한 서양의학의 문제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그 기원을 역사적으로 추적하여 보도록 하겠다.

(1) 기계론적 서양의학의 발달

서양의학에서 인간 생명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극히 최근까지도 신비의 대상이었다. 생명이 초자연적인 힘, 즉 생기(生氣 vital force)에 의하여 창조되고 유지되는 것이라 믿었던 생기론(生氣論)은 중세(中世)에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였으며 창조주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특별했었다. 생기론에 대항하여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분석적(分析的)으로 연구해 온 초기의 의학자와 생물학자들은 그들의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드러나는 인체의 합목적성(合目的性)에 탄복하면서 오히려 생명의 신비에 더욱 더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기계론적 세계관에 힘입은 자연과학의 발달은 각종 병균(病菌)을 발견하였고, 인체의 대사(代謝)와 병리(病理)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계속 밝혀 내었다. 19세기에 이르러 생물학 분야에도 물리, 화학적 분석방법인 기계론이 도입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생명기계론](生命機械論)이 대두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세포의 미세구조와 세포내의 물질대사 경로를 규명하는 등 생체의 기계적 구조와 기능분석이 생물학의 주요 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멘델(G. Mendel)의 유전법칙은 생명의 가장 큰 신비인 유전현상(遺傳現狀)을 분석적 방법으로 풀어헤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940년대 기계론은 분자생물학(分子生物學 molecular biology)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생물학을 탄생시켰다. 이제 유전현상은 DNA와 단백질이라는 물질로 파악되었으며, 생명의 인위적 개조와 합성이 가능하게 되어 [생명기계론(生命機械論)]과 [생명물질론(生命物質論)]이 보편적 생명관으로 전인류 앞에 등장하였다.그후 발전을 거듭한 유전공학은 1973년, 미국 스텐포드 대학의 코헨(S. Cohen)과 보이어가 조작적 특징의 DNA(Recombinant DNA)를 가진 대장균(大腸菌)을 증식시키면서 생명체 조작은 막을 올리게 되었으며, 생명기계론은 극에 달하게 되었다.

한편, 질병 원인에 대한 연구는 버쵸(R. Virchow)의 [세포 생물학(細胞生物學)]과 파스퇴르(L. Pasteur)의 [미생물학(微生物學)]에 의하여 발전되었다. 이러한 두 관점은 계속적으로 연구 진척을 거듭해 오다가, 박테리아와 질병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밝힌 파스퇴르에 의하여 질병발생에 있어서 세균의 역할에 대한 연구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연구는 파스퇴르의 뒤를 이은 코흐(R. Koch)에 의해 병원학(病原學 Etiology) 개념이 정립되어 [하나의 세균은 하나의 질병과 관련됨]이 의과대학에서 [코흐 가설]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질병치료에 대한 접근에 있어 코흐의 병원학(病原學)과 파스퇴르의 미생물학이 도입된 이래, [미생물이 질병 발생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은 외과적(外科的) 상처의 감염을 우려한 무균법(無菌法)과 항생제(抗生劑)를 발달시켜 인체를 고도의 기술로 해부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1950년대 항생제 발달에 힘입은 항(抗) 박테리아제가 대량으로 발견되어 사용되면서, 수술(手術)과 약물(藥物) 치료는 이제 인체의 질병에 대한 절대적 대처 수단이 되었다. 약물효과에 의한 장애가 나타나면, 서양의학의 치료체계 속에서 그것은 약물의 [부작용(副作用)]으로 간단히 간주하고, 사회환경이나 정신성을 포함한 인간의 전인적 특성은 의학 밖의 일로 간과되었다. 이제 약물은 정신적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기계론적 약리작용(藥理作用)에 의존하여 처방되어 정신의학에서조차 각성제(覺醒劑)와 호르몬제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우(愚)를 범하게 되었다.

(2) 서양의학의 문제점

모든 자연현상을 사고(思考)하는 주체(主體)와 그 대상이 되는 객체(客體)로 이원화(二元化)시켜 수학적 원리로 정확히 설명하고자 시도했던 데카르트(Rene Descartes)의 세계관은 지난 300여년 동안 서구의 과학사상을 장악하였다. 이에 기초한 서양의학은 기계론적 생명관 위에 발전하였다. 이러한 기계론적 생명관의 관점에서 조지 엔젤(George Engel)은 "인체는 기계이며, 질병은 이 기계가 고장난 결과이고, 의사의 역할은 이 기계를 수리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인체의 모든 질병은 세포 및 분자생물학적 관점에서 연구될 수 있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의 기능장애이며, 의사의 역할은 이러한 메커니즘의 기능장애를 물리적 또는 화학적 요법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정신과 육체를 분리시키는 이분법적 사고는 정신의학을 신체와 동떨어진 분야로 구분함으로써 많은 문제를 유발시켰다. 의사(醫師)는 육체의 치료에, 심리학자와 정신의학자는 정신의 치료에 열중하는 서양의학의 방법론은 인간이 정신과 육체의 통합체라는 점을 간과(看過)하였다. 이러한 정신과 육체 사이의 회복하기 어려운 갭은 대부분의 질병을 이해함에 있어서 심각한 장애를 야기한다. 예컨대, 생의학자(生醫學者)들은 육체와 심리를 통합하지 못하여 고통(苦痛)현상에 대한 정신적 문제를 간과하였고, 정신의학자들은 생의학적 모델에 집착하여 정신질환을 뇌(腦)의 메카니즘적 착란현상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하여 다양한 약물이 투약되기 시작하였다. 결과적으로, 정신적 문제를 포함한 육체적 질환에 대해 육체와 정신을 분리시키는 서양의학의 이분법적 사고는 환자의 심적 상황과 신앙체계, 가족과 친구 등 영적, 정신적 요인들을 광범위하게 받아들여 해석하지 못하였으며, 자연환경의 인간 건강과의 전인적 관계는 도외시되었다. 이러한 기계론적 생명관에 대해 카프라는 "의학은 좁은 건강관과 질병관을 초월해야 하며, 건강이란 생명체와 그것의 환경과의 관계에 대한 견해에 의하여 좌우된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여러 가지 기계론적 생명관에 입각한 진찰(診察)을 한 결과 아무런 이상 증상이 없는데도 계속 아프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괴로운 정상인"이라 부른다.

실제로 서양의학은 국소적 문제에 고착(固着)되어 제한점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즉 탐지하기 어려운 인체의 미세한 부분이나, 인체공학(人體工學)적 여러 요소들의 조화와 부적응 문제, 오장육부의 부조화로부터 나타나는 질병, 더 나아가 심인적(心因的)인 문제에 대한 언급은 서양 의학적 진단으로는 통합적 치료를 위한 정보를 얻기에는 사실상 미흡하다. 어떤 경우, 전인적 인간의 문제는 직관(直觀)이나 감정(感情)에 의해서만 포착된다. 예컨대 고통 때문에 흘리는 눈물과 참회의 눈물, 어머니의 자녀를 사랑하는 모성애로부터 흘러나오는 눈물들을 실험실에서 분석하면 소량의 소금(NaCl)과 물(H2O), 그리고 몇몇 미량(微量) 원소들로 나타난다. 이처럼 직관을 배제한 분석적인 방법은 전혀 다른 눈물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기 위한 어떠한 자료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서양의학의 진단상 한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계론적 생명관에 입각한 서양의학의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질병의 원인을 특정 세균의 감염으로, 또한 인체를 기계로 규정하는 한, 의학의 핵심문제는 자연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에 한정된다. 예컨대 인간의 질병은 생화학검사(혈액검사, 소변검사, 세균검사 등)나 방사선 검사(X-Ray, MRI, CT촬영 진단법) 등의 진단결과에 따른 약물 투여, 또는 외과적 수술이라는 치료로서만 접근된다.

둘째, 서양의학의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통합적(統合的)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 질병은 정신적, 영적(靈的)인 면뿐만 아니라 사회 병리적 면이나 생태문제에 의해서도 발병된다. 서양의학은 이러한 질병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없으며, 치료에 있어서도 오직 환자 개인의 질병만을 대상으로 한정하여 접근할 뿐이다.

셋째, 우리 나라의 경우, 서양의학이 점차 제도권의학(制度圈醫學)의 위치를 점하게 됨에 따라, 전통적 민간요법(民間療法)이나 동양의학을 위축시켜 균형된 의학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넷째, 서양의학에서 치료주체(治療主體)는 의사와 의료기술이며, 환자와 질병은 대상(對象)으로 전락되었다. 결과적으로 어떤 질병이 나타나면 의사와 의료 기술은 최선을 다하여 치료함으로써 질병은 정복하지만, 환자는 죽어 가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되기도 한다.

다섯째, 서양의학에 의존할 때 지불해야 하는 과다한 비용과 진단과정에서 나타나는 신체적 부담이다. 서양의학은 의사의 직관이나 통찰력보다는 객관화된 진단 자료를 요구하기 때문에, 질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여러 가지 검사를 별도로 행한다. 결과적으로 비용이 증가되고 환자의 신체에 큰 부담을 준다. 예로써, 간암(肝癌)을 진단하기 위해서 혈액검사, 초음파 검사 외에도 간 조직을 직접 채취(採取)하는 생체검사(生體檢査)를 해야 한다. 이것은 동양의학적 관점에서는 대단히 우려되는 것이다. 또한 각종 장기의 질병상태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 수술하여 직접 관찰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 또한 대단히 큰 신체적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방사선 검사시 X선이 인체를 투과하는 과정에서 인체 내에 주는 영향이나 인체 내에 잔존하는 X선의 부작용 등이 간과되고 있다. 또한, 자기공명촬영(磁氣共鳴撮影 MRI)시 특정 부분이 필름에 잘 나타나도록 투여하는 조영제(助影劑)의 후유증이 간과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검사가 인체에 주는 충격이 오히려 질병으로부터 오는 불편보다 훨씬 큰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검사 후유증으로 인하여 반(反)치료적 상황이 발생하는 의료사고까지 간혹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질병의 발생과 치료에 있어서 기계론적 서양의학의 방법론과 질병에 대한 개인적 접근이나 인간중심주의적 건강추구는 한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은 대자연의 일부이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은 지구 생태계의 일원이기 때문에, 모든 생태계를 포함한 전인건강이 이루어져야 참된 건강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된 의학은 분석적이고 계량화(計量化)된 서양의학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통합적이며 우주적(宇宙的) 통찰을 중시하는 동양의학과 그 지역의 특성과 문화 환경이 반영된 전통의학(傳統醫學)이 서로 조화(調和)를 이루어야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서양의학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근래 미국에서 대체의학(代替醫學)이 붐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3. 서양의 대체의학과 동양의학의 조우

미국 국립 보건원(NIH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대체의학 연구실(OAM Office of Alternative Medicine)은 대체의학을 "의과 대학에서 광범위하게 가르치지 않고 병원에서 통상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며 의료보험 회사들이 일반적으로 보상하지 않는 치료 및 건강 관리술"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는 침술, 아유르베다(고대 힌두교도의 의학 및 장수서), 척추교정요법, 지압요법, 약초, 동종요법, 마사지, 명상, 자연요법, 기도, 샤먼요법, 접촉요법, 요가 등이 포함된다.

의료 보험회사들이 취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동안 미국에서 대체의학은 일종의 사이비 요법 정도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와 같은 상황이 바뀌어 대체의학이 점점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자연요법 의사협회]는 현대 의료가 응급처치, 감염, 수술 기법은 뛰어나지만 질병 예방과 수많은 만성질환에 대한 대처에 실패한 반면, 대체의학은 이러한 분야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제도권 의학을 대표하는 미국 국립 보건원도 침술이 수술과 항암제 투여, 임신, 치통으로 인한 구토 예방은 물론이고, 근육통, 요통, 두통과 마약 중독증, 관절염, 천식 등 모두 47종의 증상에 효과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대체의학이 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기존 서양의학의 기계론적 건강관에 대한 반성이 깔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기존의 서양의학이 인간의 신체와 영혼을 엄격히 분리된 것으로 보고 건강을 다만 신체에 한정된 문제로 취급하였던 반면, 대체의학은 인간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바탕으로 정신과 육체를 연결하는 전체성에 입각한 새로운 치료 개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의학의 전체론적 건강관에 따르면 질병은 육체적 기능장애 만이 아니라 감정적 문제나 사회적 고립까지도 포함한다. 카프라는 그와 같은 전체론적 의미에서의 건강을 "우주 질서에 따라 다양한 복잡성이 자신 안에 통합되고, 유기체 자체의 안정성에 기인한 자기조직(self organizing)과 역동적 평형(dynamic balance)에 의하여 자기 외부로부터의 변형에 대하여 전체성을 가지고 적응하는 것"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절에서 몇가지 대체요법의 예들을 고찰하면서 거기에 드러난 전체론적 건강관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서양 대체요법이 결국은 동양의학의 전통과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확인해 볼 것이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우리는 서양의학의 분석적 관점이 결코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요, 오히려 동양의학 내지 대체의학의 전체론적 관점에 의해 보완되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1) 서양의 대체의학(Alternative Medicine)

서양의 대체의학인 동종요법(Homeopathy), 라이크요법(Reichian therapy), 시몬톤요법(Simonton therapy) 등은 전체성에 입각한 치료로서, 이들은 동양의학의 통합적 방법론과 유사성이 많음을 엿볼 수 있다.

① 동종요법

서양의 동종요법(Homeopathy)은 처음에는 제도권 의학계에서 비난을 받았지만, 19세기 이후 꾸준히 전파되었다. 특히 미국에서 인기가 높아 1900년경, 미국 의사의 15%가 동종요법을 인정하여 사용하였었다. 동종요법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다소 주춤하였으나 최근 대체의학의 붐을 타고 다시 살아나고 있다.

동종요법은 모든 신체적·정신적 심리현상의 기반이 되는 에너지 형태(生命力)가 변화되어 질병이 발생된다고 본다. 동종요법은 동양의 침술과 같이 개인의 에너지 수준을 자극하며, 동식물 및 광물에서 치료약을 추출하여 환자의 에너지 패턴과 공명(共鳴) 시킨다. 예로써, 화상(火傷)을 치료하기 위하여 뜨거운 찜질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치료법은 '같은 것은 같은 것을 치료한다(Like cures like)'라는 원리에 기초한다. 이와 같은 방법은 민간요법이나 동양의학에서도 자주 이용된다. 즉 간(肝) 질환에 동물의 간이나 간 추출물을 이용하는 것 등이다.

한편, 동양의 침술에 나타나는 원격치료(遠隔治療) 체계는 인체를 전체적 관점(全息療法)에서 바라보는 일종의 동종요법이라 할 수 있고, 섭생(攝生)에 따른 광범위한 약물요법들도 일종의 동종요법과 견주어진다. 그런데 서양의 동종요법은 서양적 논리라는 개념에서 생각하는 것이어서 도식적인 면이 많다. 자연의 이치란 항상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르는 사차원적(四次元的), 전체론적 관념에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체성에 입각한 대체의학이란 인류건강을 위한 자연 이치와 생태계 이치에서 그 방법을 찾아 응용하려는 의학이다. 따라서 천지인(天地人)의 관계성과 사계물후(四季物候)에 대한 동양철학적 사색 없이는 제한된 양상을 벗어날 수 없다. 때문에 서양의 동종요법은 동양의 것들에 비하여 단순한 형태에 한정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② 라이크 요법

동양의학의 기(氣)의 흐름과 같은 생체 에너지 장애를 다루는 라이크 요법(Reichian therapy)에서는 유기체 흐름 과정의 순환적 특성을 강조한다. 이들은 신체 내 에너지 흐름을 우주 안에 흐르는 우주 에너지 순환 과정의 반영으로 보는 것은 동양의학의 경락이론(經絡理論)과 동일하다. 라이크는 생체 에너지를 우주 에너지의 한 형태인 [오르곤 에너지](Orgone Energy)라 부른다. 라이크에 의하면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무생물도 복잡한 분화과정을 통해 오르곤 에너지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라이크는 불쾌한 감정적 경험과 태도가 에너지의 자유로운 흐름을 방해하는 특정한 형태를 발생시킨다고 보았다. 이것을 그는 성격 갑옷(charactor aramor)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근육운동 장애가 있는 모든 성인에게서 나타난다. 라이크 요법은 성격 갑옷을 파괴하기 위하여 호흡을 이용하거나 환자 스스로 육체적 표현으로서 성격 갑옷의 형태가 표출되도록 돕는 각종 물리적 기법을 사용한다. 이 과정에서 상처받은 경험은 의식적(意識的) 각성(覺醒)으로 표출되고, 이와 대응하는 근육장애 해소와 함께 치료되는 것이다. 이때 이상적인 결과는 [오르가즘 반응]이라 부르는 현상의 출현이다. 이것은 성적 의미를 훨씬 초월한 생명 유기체의 역동성이다. 이렇게 시도된 근육과 감정 장애의 치료는 여러 가지 운동요법(運動療法)과 체조(體操) 및 무용요법(舞踊療法)으로 발전하였다.

③ 시몬톤 요법

악성종양(암)에 대한 전일적 치료법 중 시몬톤(Simonton) 요법이라는 것이 있다. 초기암(初期癌) 환자들은 그들의 암을 국부적인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암을 신체 외의 것으로 간주하고 가급적 빨리 수술로 제거하여 그 사건을 잊으려고만 하지만, 시몬톤 치료가들은 그들의 병을 정신과 육체의 상호 의존성에 입각하여 보다 더 광범위한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렌스 르샹(Lawrence Leshan)은 암 환자 5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연구하였다. 르샹은 젊은 시절의 소외, 무시, 절망감, 성년 초기의 한사람과의 집착된 관계, 절망을 가져온 어떤 관계나 역할의 상실, 감정을 상했거나 분노를 느꼈을 때 이를 표출하지 못하고 절망을 내면화시킨 정신적 억압(抑壓)이 대부분 암 환자들의 유형임을 확인하였다. 또 다른 연구결과를 보면, 암은 계속되는 스트레스에 의해 불평형 상태가 발생하고, 어떤 결정적 스트레스는 개인의 특성의 중심이 되는 자아 역할이나 관계를 위협하거나,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체 피드백이 마비되어 시작된다고 한다. 이러한 위험한 스트레스는 대체로 암이 발현되기 6-8개월 전에 경험하였던 것이 암을 진행시키는 전형적인 경우라고 주장한다.

시몬톤들은 암은 생체를 공격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과다 생산되는 것이며, 무엇이 암 세포(癌細胞)를 발생시켰는가, 그리고 무엇이 체내의 면역력(免疫力)을 약화시켰는가에 치료의 역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병을 유도하는 사건의 순서(順序)를 역전(逆轉)시켜 유기체를 건강한 상태로 회복할 수 있음을 환자에게 확신시키고, 환자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병의 맥락을 올바르게 인식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치료법은 현대의학의 고정된 질병관이나 생의학적 치료법과는 달리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기법이다. 즉, 긴장해소와 심상(心像)요법을 상호 신뢰하고 격려하는 집단적 모임 형태로 접근한다. 특히 일반인들이 암을 전연 희망이 없는 악성종양으로 보는 것에 반해 암을 시스템적 장애로 간주한다. 즉 암은 잘못된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하나의 세포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예컨대 정상세포는 그들의 환경과 효과적으로 통신하여 그들의 최적 크기와 재생산의 속도를 결정하지만, 암세포는 통신과 자기 조직의 장애로 갑자기 비대해지고 함부로 재생산된다. 뿐만 아니라, 세포간의 정상적인 관계를 약화시키고, 신체의 다른 조직으로 전이하면서 또 다른 악성세포(metastasis)를 만들어 낸다.

시몬톤 요법에서 사용하는 심상법이나 상징적 언어 요법은 임상적 생체 피이드백으로 여러 가지 육체적, 심리적 치료법과 결합하여 환자의 휴식과 스트레스 관리를 지도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예컨대, 시몬톤 기술은 규칙적으로 긴장해소와 문제점을 양성화시키는 시각화(視覺化)를 실시한다. 시각화 중에는 암과 면역체계의 활동이 환자 자신의 상징적 상상으로 그려지게 하는데, 이 기법으로 면역 기능은 대단히 향상된다고 한다. 또한, 심상기법은 환자가 자신의 무의식과 교류하는 탁월한 기법이기도 한데 시몬톤들은 환자의 개별적 상상과 밀접하게 작업하면서 어떤 이성적 설명보다도 감정적 부분에서 보다 많은 치료를 위한 힌트를 얻는다고 한다. 여기에 추가하여 시몬톤들은 스트레스 감소, 우울증 해소를 위해 환자 자신의 육체를 더 많이 접촉할 수 있도록 규칙적 운동을 실시한다. 그들의 이러한 접근방법은 정신과 육체의 통일과 상호 의존성을 이해시킬 수 있으며, 면역을 강화하게 된다.

이러한 임상적 피이드백은 맥락을 같이한 동양의 호흡법이나 명상과 같이 서양인의 스트레스 해소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임상적 피이드백의 치료적 기여는 건강과 질병의 책임을 치료자로부터 환자에게 이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여 환자 자신이 치료에 있어 주체적(主體的) 자세를 견지하게 한다. 즉 개인이 피이드백을 통해 특정 증상을 스스로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음으로써 환자 자신의 무력감을 극적으로 감소시키고, 적극적인 정신자세를 유발시켜 준다. 그리고 죽음에 임해서는 치료자는 그를 지원하고 돌봐줄 것을 약속한다. 죽음을 다룰 때 중요한 일은 환자 가족이 환자에게 죽을 것을 허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과정 속에서 환자들은 자신의 삶이나 죽음의 질(質)을 개선하게 된다. 실제로 시몬톤 치료를 받은 환자의 평균 생존기간은 최상의 암 치료기관의 환자 수명에 비해 두배가 되었고, 미국의 전국 평균 암 환자의 수명에 비해서는 3배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환자의 생의 질과 활동수준은 놀라울 만큼 양호하였다고 한다.



(2) 동양의학

전체적 통합성과 관련된 치료법으로 우리는 동양의학을 들 수 있다. 동양의학 체계는 우주만물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체는 하늘과 땅을 본받아 구조와 기능이 이루어졌다는 천인상응이론(天人相應理論)과 자연계의 생성·변화가 1일 또는 1년마다 규칙적으로 순환되는 관계를 인체에 적용하고 있다. 즉 인간과 자연(四季物候)이 음양(陰陽)의 본질과 상생(相生)·상극(相剋)의 오행적(五行的) 속성에 따른 변화론(變化論)에 따라 음양조화를 탐색한다. 따라서, 동양의학은 궁극적으로 음양조화(陰陽調和)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방법적인 면에서는 경락(經絡) 체계를 이용한 경락요법, 섭생법(攝生法), 오장육부의 기능과 자연순환의 변증적 순응법(五運六氣論), 지역적 특성에 따른 양생법, 호흡을 통한 천기(天氣)의 축적 등을 포함한다.

동양의학의 장부학설(臟腑學說)은 오장육부는 가슴과 복부에 위치해 있지만, 그 영향력은 신체와 사지(四肢)에 두루 퍼져 12경맥(十二經脈)을 형성하고, 두부(頭部)에 있는 오관(五官-耳, 目, 口, 鼻, 舌)에 각각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간(肝)은 눈(目)과 관련되어 있어서 간(肝) 기능이 떨어지거나 피곤하여 간에 무리가 되면 눈이 침침해 진다. 이밖에도, 심(心, 心臟)은 혀(舌)와 관련되고, 위(胃, 胃腸)은 입(口)이나 입술과 관련되며, 폐(肺)는 코(鼻)와 관련되고, 신(腎, 腎臟)은 귀(耳)와 관련되어 질병 현상이 나타난다.

① 동양의학에 나타난 음양 역동성

동양철학의 음양사상에서는 음이 성(盛)하면 양이 쇠(衰)하게 되고(陰實陽虛), 양이 성하면 음이 쇠(陽實陰虛)하게 되어 부조화가 나타나기 때문에, 음양이 조화된 상태(陰陽調和)를 가장 이상적(理想的)인 경우로 본다. 음양사상(陰陽思想)의 본질은 상대(相對)와 통일(統一)의 협조관계로 인체의 건강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즉 음양(陰陽)이 평형을 이루면 정신이 다스려지고(陰平陽秘, 精神乃治), 음양의 평형관계가 파괴되면 정기(精氣)가 끊어진다(陰陽離決, 精氣乃絶)고 하여, 상대적 대립(對立)과 통일관계가 끊어지면 생명활동에 이상이 생겨 질병이 발생된다고 본다. 여기서 음양의 대립관계는 절대적(絶對的)이기 보다는 상대적(相對的)이며, 변증법(辨證法)적으로 질병의 원인과 치료를 다룬다. 음양의 변증적(辨證的) 상대성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예컨대, "음(陰)중에 양(陽)이 있고, 양(陽)중에 음(陰)이 있다"(陰陽應象大論)는 전체성·통합성에 대한 힌트를 포함하고 있는 음양 역동성으로 생명현상 시스템의 피드백의 원리와 견줄 수 있다.

이러한 동양의학의 음양 역동성은 오장과 육부를 음(陰)과 양(陽)으로 구분하여 음양평형을 이루는 일차적인 목표를 갖는다. 오장과 육부를 음과 양으로 대극(對極)시킬 때, 음양관계는 같은 오행적 속성에 따라 대극된다. 예컨대 음(陰)에 해당된 간(肝)은 오행에서 목(木)이요 간과 음양으로 관련된 장기는 같은 오행의 담(膽)이 된다.

즉, '간이 실(實)하면, 담은 허(虛)다'고 하여 간실담허(肝實膽虛)의 증(症)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간의 질병을 간(肝)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담의 기능조절도 함께 다루는 것이다. 또한, 오장육부를 오행으로 구분하여 장기들간의 오행적 음양조화를 중시한다. 이러한 오행적 음양조화의 대표적 치료원칙은 수승화강(水昇火降)에서 볼 수 있다. 수승화강은 오행 수(水)의 기를 간직한 신(腎)의 기능은 증대시켜 상승시키고, 반대로 화(火)의 기를 간직한 심(心)의 기능은 억제하여 아래로 하강시켜 수극화강의 태극운동을 원활히 하여 기혈순환을 순조롭게 한다는 것이다. 이 치료원칙은 약물치료나 침(針) 치료에 일반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이를 생태학적 관점에서 풀어본다면, 수(水)는 음(陰)이며 땅을 의미하고, 화(火)은 양(陽)이며 하늘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늘(태양)의 열기가 하강(下降)하여 땅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같이 심화(心火)를 하강시키고, 땅의 자양분이 하늘의 열기를 받아 생명을 충만하게 싹터내는 것과 같이 신수(腎水)를 부양시킨다는 것이 음양 순환의 생태적 치료원칙이라 할 수 있다.

동양의학은 질병 발생에 있어서 음양의 부조화와 외부환경과의 관련성을 중시한다. 동양의학은 하나의 장기(臟器) 이상은 그 장기에만 머물지 않고, 오장육부간에 상생·상극의 변화와 외부 환경의 변화를 통하여 전병(傳病)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인체 생리(生理)와 양생(養生)의 기본 원리는 {황제내경}(皇帝內經)이라는 책에 잘 기술되어 있다.

동양의학에서는 질병 발생 요인을 셋으로 구분한다. 즉, 내인(內因), 외인(外因), 그리고 불내불외인(不內不外因)이다. 첫째, 내인(內因)은 칠정(七情)이라 부르는 희, 노, 우, 사, 비, 경, 공(喜, 怒, 優, 思, 悲, 驚, 恐)과 같은 정신적 작용은 오장육부의 상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본다. 둘째, 외인(外因)은 자연계의 일년 사계(一年四季)의 기후 변화 요인인 풍, 한, 서, 습, 조, 화(風, 寒, 署, 濕, 燥, 火)라는 육기(六氣)가 태과(太過)하거나 불급(不及)하거나, 혹은 제철이 아닌 때에 나타나면 질병을 발병하게 하는 사기(邪氣)로 작용하는 것으로 본다. 이것을 육음(六淫 : 風邪, 寒邪, 署邪, 濕邪, 燥邪, 火邪)이라 한다. 이 육음이 외부로부터 몸으로 들어와 발병되는 외감(外感)성 병인(病因)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칠정과 육기는 천지자연의 원리와 기후변화에 대한 오행적 해석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서 자연환경이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을 극명하게 말해 준다. 셋째, 불내불외인(不內不外因)은 음식, 피로(過勞), 과도한 정사(情事) 등은 무절제한 인간의 생활태도에 따른 병인(病因)을 포함한다.

따라서 동양의학의 음양 역동성은 본질적인 음양의 조화와 이로부터 기후와 관련하여 파생되는 오행적 의미의 음양조화가 전체적으로 어우러져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인간의 건강을 전체적인 통일성 안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② 동양의학의 생태지역성

동양의학은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의 질병과 기후 변화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질병 치료는 그 지역과 그 계절의 육기(六氣)의 각각 다른 변화에 근거를 두고 치료해야함을 주장한다. {황제내경} 사기조신대론(四氣調神大論)에는 사계(四季)에 심신(心身)을 조화시키는 방법이 서술되어 있다. 예로써 봄의 양생법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봄의 3개월은 발진(發陳)이라 한다. 겨울에 숨어 있던 모든 것이 싹을 트고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기로서 양기(陽氣)가 많아지는 시기이다. 인체도 양기가 많아지는 시기이므로 해가 짐과 동시에 자고, 해가 뜸과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심신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활동적인 기분(氣分)이고, 또한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봄철에 맞는 건강법이다. 이러한 봄기운과는 반대로 침울한 상태에 있으면 병이 생긴다. 나무의 발아기(發芽期)가 되면 신경통이나 피부병이 생긴다고 하는 사람이나 몸이 나른하고 흥분되어 잠이 안 온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 적당하게 운동하여 양기를 발동(發動)시켜 주면 치료되어 버린다.



이와 같이 사계절(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각각 발진(發陳), 번수(藩秀), 용평(容平), 폐장(閉藏)이라 하여, 기후 변화에 따라 정신과 신체를 조절하면 인체의 기능 활동이 외부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여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음을 논하고 있다.

또한, 동양의학은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에 있어서 그 지방(地方)의 특색을 고려한 치료체계를 적용한다. 예로써, 이법방의론(異法方宜論)을 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을 중심으로 동방(東方) 나라에는 해안이 가까워 생선이나 염분(鹽分)이 많은 음식을 먹게 되어 피가 끈기(粘性)가 있어 종기(腫氣)가 나기 쉽다. 그래서 절개술(切開術)과 피를 배혈(排血)시키는 사혈요법(瀉血療法)이 발달했다.

서쪽 나라는 사막 지대로 언덕이 많다. 짐승 고기를 늘 먹기 때문에 기름기가 많아 내부(內部)의 병이 많다. 이곳에는 한약(漢藥) 치료법이 발달했다.

북쪽 나라는 고원 지대로 춥다. 유목민(遊牧民)이 많아서 유제품(乳製品)을 많이 먹기 때문에 내장(內臟)을 냉(冷)하게 한다. 이곳에는 쑥으로 뜸을 뜨는 구요법(灸療法)이 발달했다.

남쪽 나라는 고온 다습(高溫多濕)한 땅이다. 과실(果實)이나 신(酸味) 음식을 많이 먹어 근육(筋肉)의 마비(麻痺)나 경련(痙攣)을 일으키는 병이 생긴다. 이곳에서는 가느다란 침법(毫鍼療法)이 발달했다.

중앙의 나라에는 평지(平地)로 기온도 적당하다. 무엇이든지 산출(産出)되기 때문에 주민은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다. 육체노동을 않기 때문에 현기증이나 수족(手足)이 무력해 지는 병이 된다. 이곳에서는 도인술(導引術)이나 안마술(按摩術)이 발달했다.

이러한 동양의학의 지역과 관련된 질병 발생과 그 치료법의 발전은 신토불이(身土不二)에 입각한 [생태 지역주의](bioregionalism) 요법에 비전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동양의학은 인체의 질병 발생과 치료에 있어서, 인체를 자연 환경과 전기관(全器官)의 역동적 관계로 취급할 뿐만 아니라, 기후와 절기 더 나아가 세상 만물에 대하여 음양오행의 특성을 부여한 상호관계를 총괄하는 전일적(全一的) 치료 체계라 할 수 있다.

동양의학과 서양의 대체의학들은 서양의학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는데 참조될 수 있다. 질병 치료에 있어서, 동양의 통합적 방법과 서양의 분석적 방법은 상호 보완됨이 바람직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질병의 진전 과정을 살피고, 치료 정도를 알기 위해서는 서양의 분석적 방법론이 유리하다. 예컨대 생화학 검사를 비롯한 각종 진단 자료에 나타나는 수치(數値)적 개념은, 서양적 인식 바탕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는 현대인에게는 보다 쉽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한편 실제 치료 국면에서는 동양적 방법이나 서양의 전체성에 근거를 둔 통합적 방법이 통찰력을 발휘하여, 환자에게 희망을 주면서 치료를 진행시킬 수 있다.

지금까지 환경과 인간 건강의 일차적인 관련성을 고찰하면서 우리의 건강이 환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확인해 보았다. 즉 환경성 질환은 인간이 환경과 올바른 생명적 관계의 단절로부터 연유되는 것이며, 환경성 질환을 포함한 인간의 전인적 건강은 서구의 기계론적(機械論的) 세계관에 바탕을 둔 서양의학이 인간 건강을 다만 기계론적, 생리적 기능 문제로만 취급하고 있는 경우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한계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전체성에 입각한 서양의 대체의학(代替醫學)과 기존의 동양의학적 관점을 살펴보았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같은 맥락에서 대두되고 있는 생태요법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즉 생태요법은 인간의 근원인 지구 생태계의 생태영성에 입각한 치료법으로 자연과 올바른 접촉을 통해 생태계 순환 안에서 전인건강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제2장. 전인건강을 위한 생태요법

1. 생태요법의 특징

클라인벨(H. Clinebell)이 주창한 생태요법은 [전인건강]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태계(生態界)의 안녕(安寧)으로부터 기초되어야 한다고 본다. 클라인벨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땅(자연)으로부터 소외를 포함한 온갖 소외와 기능이상(dysfunction)을 전인건강과 관련짓고 있다. 생태요법은 이러한 의미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치유과정(healing process)이며, 녹색심리학(Greening of psycholoy), 환경 심리학(Ecopsychology)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또한 생태요법은 심리학적 테크닉뿐만 아니라 모든 생태계가 가지는 내재적(內在的) 유전적(遺傳的) 관계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자연이 가지는 치유적 에너지를 인간 성장과 치유에 공조(共助)하여 적용한다. 이러한 생태요법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전인성]이다. 전인성은 결코 정(靜)적인 것이 아니라 간단(間斷)없이 성장하여 지구촌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을 하나의 우주 정신으로 통합한 맥동(脈動)과도 같다. 클라인벨은 빛의 특성과 관련하여 전인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즉, "빛이란 단지 어둠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빛은 일정한 파장으로 움직이는 에너지이다. 마찬가지로 전인건강이란 단순히 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인 생기와 내적 능력과 창조성을 창출하는 사랑과 건강한 영성의 생동적인 에너지들이 존재하는 상태이다."

둘째, [생명성]이다. 환경 위기와 생태계 파괴 현상이 심화되면서 멸종될 위험에 처한 다른 생명체들 속에 인류도 포함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인류는 테크놀로지를 창조하고 그것을 오용(誤用)하여 자원을 낭비하고 무제한으로 허비하여 회복시킬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지구를 황폐화시켰다. 생태요법은 땅을 생육 환경(生育環境)으로 되돌려 전 인간 가족과 모든 동물들 그리고 식물들이 개체적으로 온전해지고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종(種)의 다양성(多樣性)이 실현되는 미래를 약속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상호 관련성]이다. 생태요법적 관점에서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면, 인간은 자연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땅) 속의 존재로 땅에 속하여 있기 때문에 자연과의 조화 없이는 인간의 온전함을 구현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자연과의 상호 관련성은 자연과의 통교(通交)라는 특징을 갖는다.

넷째, [전지구적이며, 우주적 관점]으로 확대된다. 오늘날 서양의학이 개인적인 건강 유지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제한된 시각이라고 비판되고 있다. 생태요법은 전지구적, 우주적(宇宙的)으로 전인건강에 접근한다. 토마스 베리는 "인간 건강에 있어서 하나의 전제 조건으로, 가장 진보한 의학으로도 병든 땅 위에서는 그 건강을 소유할 수 없다. --- 인간 건강은 파생적인 것에 불과하다. 땅의 건강이 근원적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생태요법의 시각이 전체적이며 우주적임을 잘 드러낸다.

다섯째, [소외의 극복]이다. 소외의 극복은 전인성, 생명성, 상호 관련성 및 전지구적, 우주적 관점에서 생태정의가 실현되었을 때 나타나는 결과로서 전인건강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창세기에 하느님께서 매 창조 시마다 더불어 함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시며,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를 재현하는 이상(理想)을 재현하는 것이다. 또한, 소외의 극복은 소외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들의 상호 의존성의 뿌리를 인식하게 하며, 인간 성격발달(性格發達)의 기초를 생태학에 기초한 확장된 이론으로 회귀(回歸)시켜 잃어 버린 지구감각을 되찾게 하여, 자아 정체성(自我正體性) 확립에 도움을 준다. 이렇게 확립된 자아 정체성은 가정(家庭) 생활을 향상시키고 모든 사회 공동체를 보다 활기차게 변화시키게 된다.

이러한 생태요법적 전인건강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올바른 접촉에 의하여 인도된다.



(1) 자연과 접촉하는 인간의 세가지 측면

클라인벨은 인간과 자연 환경이 접촉하는 양상에 있어서 기본적인 세가지 측면이 있음을 주장한다. 그는 인간과 자연 환경이 접촉하는 양상에 있어서 내적(內的) 깨달음의 내면접촉(內面接觸 inreach), 신성(神性)과 초월접촉(超越面接觸 upreach), 이로부터 동기를 부여받아 생태정의를 실천하는 외면접촉(外面接觸 outreach)을 소개하면서 생태계에 있어서 인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재발견한다.

첫째, 생태계와의 [내면 접촉(inreach)]은 자연이 주는 선물에 감사하는 깨달음의 문을 더 넓게 활짝 열고, 세계와 친밀한 교재를 더 깊게 하여 자연 에너지로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생명이 자연의 계속적인 양육을 받지 않는다면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우리들이 호흡하는 숨결 하나, 먹는 음식물 한 조각, 마시는 물 한 방울까지도 조용히 그리고 대개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자연과 인간의 절대적 상호 의존성을 표현한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러한 선물을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으나, 만약 계속적으로 새롭게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건강할 수도 생존할 수도 없다.

둘째, [초월 접촉(upreach)]은 내면접촉을 더욱 신비롭게 심화시키고, 외면접촉에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받게 하는 영적 깨달음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이 자연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창조주와 친밀한 경험을 조용히 묵상하며 즐거워함으로써 창조적 힘으로 임재한 초월적 실재에 자신을 열어 일치하는 것이다.

셋째, [외면 접촉(outreach)]은 자연에 의해 양육 받는 경험과 초월적이고 영적인 실재를 느낄 때, 자연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인 접촉이 깊어지고 향상되는 것이다. 외면 접촉은 위의 두 가지 접촉 중 어느 하나로부터, 또는 둘 다로부터 유출되는 것으로서 자연과 상호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로써 우리는 더욱 사랑으로 땅을 돌보며 양육하려는 동기를 부여받고 실천하게 된다.

자연과의 이 세 가지 접촉 측면에서 인간이 땅을 보살피는 것은 실제로 자기 이익을 개발시켜 주고, 동시에 자신을 치료하며, 우리 주변을 생명적 환경으로 고치게 한다. 이러한 우리의 실천은 인간의 전인적 치유와 함께 성장의 본질적 요소이다. 즉, 땅 보살핌과 인간 보살핌은 같은 과정의 양면으로 전인건강을 향상시키고, 인간의 세계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변화시킨다. 이렇게 변화된 우리는 전체 인간가족과 전체 생물계 건강을 위해서 인간 중심적, 시간 제한적, 공간 제한적 시각을 초월하여 [생태 중심적 시각]으로 관점을 변화시킨다.



(2) 생태 중심적 시각

얼마전 경남 거제시 사등면 일대의 백로들이 떼죽음을 당한 일이 보도되었다. TV 화면에는 죽은 백로가 긴 목을 축 늘어뜨리고 취재 기자의 손에 매달려 있었다. 죽어 가는 백로들은 비틀거리면서 자꾸 감기는 눈을 겨우 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보도는 환경오염에 따른 폐해의 심각함과 함께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들 시각은 백로들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백로가 죽을 정도의 오염된 환경 폐해가 인간에게 되돌아온다는 인간중심적(人間中心的) 시각이었음을 필자는 지적하고자 한다. 지구 환경문제를 다루는 단체들의 정신적 지도이념들도 단기적 안목으로는 우리 인간 생활의 어려움과 인간 건강에 위해(危害)됨을 문제삼고 있으며, 장기적 안목으로는 우리 후손들이 살아야할 미래 지구환경오염을 부각시키고 있다. 지구는 인간만이 전세(傳貰)를 얻어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인 것이다.

45억년 역사를 지닌 지구상에는 수십만 종(種)의 생명체가 우글거리며 살고 있다. 그 중에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의 아픔을 방관하면서 자기들만이 모든 상속권이 있는 양 처신한다면 정의롭지 못한 처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포함한 생태계에 대해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생기(生氣)를 표현하는 종(種)의 다양성(多樣性)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올바르게 대하고 모든 생명이 충만해질 수 있도록 인간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체를 포함한 생태적 시각으로 전환해야 한다. 생태적 시각이란 모든 생명체들과 인간의 유기적(有機的) 상호관계성(相互關係性)과 상호 의존성(相互依存性)의 의식을 향상시키는 개혁적(改革的) 시각(視覺)이다. 다음은 클라인벨의 주장을 참조하여 필자가 우리 현실에 맞게 재구성한 생태주의적 시각이다.

첫째, 생태주의적 시각은 우주(宇宙)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관점이 내면화되어야 한다. 최근 우리 나라도 인공위성을 지구궤도 위에 올려놓고 지구를 바라보고 있지만, 1967년 7월 아폴로 11호는 최초로 인간을 달에 착륙시켰다.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Neil A. Armstrong)은 인간을 대표하여 달에 서서 파란 별 지구를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이러한 우주적 시각은 우리 자신을 포함한 생태계 위기를 겪고 있는 이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에 극적인 영향을 준다. 만일 우리 자신도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국경들과 경계선과 장벽들은 볼 수 없을 것이며, 그것들이 설사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를 갈라놓는 장벽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지구는 생명체가 살아 숨쉬는 하나의 별로서 우리 모두의 고향이다.

둘째, 생태주의적 시각은 초세대(超世代)적이고 미래지향(未來志向)적 관점이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우리 선조들이 살아 왔고, 또 후손들이 살아야할 지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손들이 사용해야 할 지구 자원들을 우리 후손에게서 빌려쓰고 있기에 초세대적 미래 지향적 관점이 요구된다.

셋째, 생태주의적 시각은 전체 생물계(全體生物界)의 온 지구적 건강 관점이어야 한다. 다른 모든 종들은 인간을 위하여 존재한다고 보는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의 자아 도취적 발상으로 장기적으로는 인간 자신의 건강을 헤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참된 건강은 온 생물계의 건강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넷째, 생태주의적 시각은 인간사회(人間社會)의 온 가족(家族)적 건강 관점이어야 한다. 이기적 성향을 지닌 개인, 지역 사회, 국가 그리고 자기 이익을 과다하게 챙기는 집단들은 자기들의 이익과 가치에만 몰두한다. 그러나,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이기적으로 좁아진 시각은 자신들의 이익까지도 잃게 한다.

다섯째, 생태주의적 시각은 음양조화(陰陽調和)의 관점이어야 한다. 여성들이 남성들의 지혜와 함께 그들의 지혜를 사용하여야 지구가 소유한 지혜를 온전히 사용하는 것이 된다. 생태 심리학적 깨달음은 남성의 지도력과 여성의 포용성이 동시에 수용되어 양성간의 창조적인 파트너쉽을 살리는 것이다. 이는 동양철학의 음양(陰陽)조화에서 하늘의 '뜻'과 땅의 '따름'이 음양 조화를 이루는 관점으로 필자가 보는 전인건강의 기본적 시각이다.

2. 자연환경과 생태요법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측면, 정신적 측면의 조건이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 물질적 측면에서는 신체에 유해한 환경이 배제된 주거공간 확보와 깨끗한 공기, 신선한 물, 풍부한 영양이 있어야 하며, 정신적 측면에서는 자연과의 접촉을 통해 심리적, 정신적, 영적으로 온전해지는 전인건강이 필요하다. 그 가운데 이 장에서는 물질적 측면의 조건과 관련하여 생태요법이 강조하는 자연과 접촉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자연 환경과의 접촉은 우선 시각(視覺)을 비롯한 오감(五感)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외적 접촉을 통해 얻어지는 치유는 심신(心身)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버니 시겔(Bernie Siegel)은 병원의 수술 환자들로 하여금 수술 후 그들의 병상에서 유리창을 통해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한 결과, 그들이 좀더 빠르게 치유되었다고 보고한 바 있다. 또 빅터 플랭클(Victer Frankl)은 나치 수용소의 독방에 갇혀 있을 때 감옥의 창문을 통해 보이는 나무 가지가 봄철에 움터 가는 모습과 꽃이 피는 것을 보면서 생의 위안과 강렬한 생명의 욕구를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 일하는 공간에서 잠시 눈을 돌려 푸른 나무와 자연 공간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긴장과 피로를 해소하는데 아주 큰 효과가 있다. 우울증(憂鬱症)은 갱년기 증상의 하나인데 햇볕과 운동은 우울증 치료에 아주 좋은 치료법이다.

본 절에서는 이처럼 인간은 주변의 무생물이나 동물, 식물, 생활주변의 주거 환경 등에 의해 알게 모르게 영적, 정신적 공조 형태로 지원되고 있음을 한국의 풍수사상에서 먼저 살펴보고, 이어서 물과 공기를 비롯한 자연물의 중요성에 관한 생태요법적 통찰을 살펴보기로 한다.



(1) 풍수 사상

한국의 대표적 생태 사상이라 할 수 있는 풍수(風水)에는 지리적 환경이 우리의 건강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생태요법적 통찰이 배어 있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는 한국의 풍수 사상을 고찰하면서 전인건강을 위한 자연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풍수가 우리 나라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삼국시대 초기였다. 그 뒤로 우리는 나라의 수도를 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마을이나 집터, 집안에서도 침실과 거실, 부엌, 변소 등의 위치나 묘(墓) 자리를 정하는데도 풍수 지리적인 관점을 고려하였으며, 고장의 이름을 정하는데도 땅의 기운을 예민하게 느끼는 [풍수]를 활용하여 왔다.

풍수의 기본 입장은 땅속에 살아 움직이는 정기(精氣)가 있으며, 이것은 우리 몸 속의 피(血)와 같이 일정한 길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타고난 사람은 복(福)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고, 이것이 뭉친 곳에 집을 지으면 가운(家運)이 뻗쳐서 대대로 번창하며, 도읍(都邑)을 정하면 천년왕국이 되고, 조상의 무덤을 정하면 위대한 인물이 줄줄이 태어난다고 하는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풍수의 원리는 땅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며 정기(精氣)가 가득 찬 좋은 땅을 사람, 동물, 물질, 식물, 문자 등에 비유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이를 형국(形局)이라 한다. 이러한 사상은 겉모양과 정기(精氣)는 서로 동조(同調)하여 통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김광언은 이러한 형국을 266가지로 소개하고 있는데, 형국에 따라 장소의 해석이 달라진다. 예로써, 소(牛)는 신성한 존재로 보아 묘 자리가 소의 형국이면 그 자손이 부자가 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풍수는 자연의 형상과 인간의 삶을 관련짓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풍수는 인간을 포함해서 동물이나 식물, 그 밖의 모든 것은 자연이란 커다란 품속에 안겨져 있는 작은 것들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 선조들은 그 모든 것들이 계절적 변화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화되고 적응됨을 보면서 자연과 땅에 대한 신비감과 경외심을 가졌다. 우리에게 땅은 식물을 자라게 하고 동물이 발붙여 살게 하는 것으로서 지모신(地母神)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풍수(風水) 사상을 삶의 공간에도 적용했다. 그래서 예컨대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면 온화한 실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되, 모든 것을 단번에 노출시킨 구조는 피했다. 주거 공간이 너무 쉽게 노출되면 자신을 보호할 공간이 없어 심리적 불안이 나타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2) 생태적 생활공간

생태적 건축이 지향하는 바는 생활주변의 병든 건물(sick building)을 추방하고, 모든 삶의 공간을 자연 친화적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인건강을 위해 환경이 중요하다고 보는 생태요법과 동일한 취지의 통찰이 들어있다.

생태적 건축은 건강을 위해 거주자가 언제라도 뜰에 나아갈 수 있도록 구조를 짜고, 외부의 신선한 공기가 늘 유입될 수 있도록 설계를 한다. 건물 구조나 건축 자재에서 유해한 물질이 없도록 하고, 건축물 내부로 깨끗한 공기가 잘 유입되게 한다. 만일 사무실이나 주택의 유리창이 밀폐식(密閉式)으로 되어 있다면 항시 여닫을 수 있도록 개폐식(開閉式)으로 고쳐서 신선한 공기의 유입을 유도한다. 겨울철에 바람이 들어올 만한 틈이 모두 막히면, 석유나 가스를 연료로 하는 난로들이 연소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이산화질소, 수산화 탄소, 타르 등이 배출되지 못한 채 인체에 심각한 해를 주기 때문이다. 또 실내에서 사용하는 스프레이, 화학 청소제, 흡연 등도 실내 공기 오염의 주범이다. 이러한 병든 주택이나 건물들 때문에 우리는 각종 기관지염, 폐렴 같은 호흡기 질환이나 감기를 달고 다니게 된다.

건물의 색조(色調)와 문양(文樣)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동양철학의 오행(五行)의 관점에 오색(五色)이 있다. 동양의학은 오색을 인체의 오장(五臟)과 관련시키며, 자연물의 색조와 장기(臟器)를 연결시킨다. 오색은 특별한 질병이 나타나면 그 질병과 관련된 오장의 색을 고려하여 병실의 색깔이나 환자의 의복 등에도 참고하여 적절하게 배색(配色)하여 치료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오색을 실내 분위기와 관련시키면 정신적 육체적 영향을 예측할 수 있다. 예컨대 집중을 요하는 공간에는 연한 녹색(木의 色)을, 여흥(餘興)에 적합한 공간은 분홍색(火의 色)을, 식당과 같이 식사와 소화를 위해서는 연한 황토색(土의 色)을, 청결을 요하는 곳은 백색이나 미색(金의 色)을, 엄숙한 분위기는 회색이나 검정(水의 色)을 선택한다. 그리고 바닥의 색조는 벽이나 천장보다 다소 진한 색을 사용하면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실내 문양을 결정할 때, 주공간은 체크무늬나 세로줄 무늬를 사용하면 업무에 있어서 효율성과 정확성이 기대되고, 침실이나 휴식 공간에는 원형 무늬가 선호된다. 실내의 조명(照明)이나 벽지, 커튼의 종류 및 그림 문양 등은 인간의 심리적 건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또한 실내 구조물의 높이가 비슷하도록 수평(水平) 맞춤이 되어 있으면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일하는 실내공간에 적절한 수종(樹種)의 화분이 놓여 창가의 자연 채광(採光)과 어우러질 수 있으면 자연 생명력과 가까워질 수 있는 환경이 된다.

(3) 자연환경과 생태요법

우리는 맑은 공기에서 숨을 깊이 쉬고 신선한 물을 마시며 상쾌하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가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온몸으로 일하면 긴장과 피로가 쉽게 쌓이지 않는다. 긴장이 쌓이면 잠시 '휴식'을 즐김으로써 그것들을 물리치는 방법을 강구한다. 자연 안에서 자신의 내적 리듬에 따라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거나 햇볕 아래서 기지개를 켜고 호흡하면서 휴식을 취하여 정신적 사고능력을 증대시키고 에너지의 수준을 고양시킬 수도 있다.

① 공기와 인간 건강

인간은 음식을 먹지 않고는 한 달을 살 수 있고, 물을 마시지 않고는 5일간을 살 수 있지만 공기를 호흡하지 않고는 단 5분도 살 수 없다. 맑고 신선한 공기가 가득한 산 속이나 야외에서는 누구나 심호흡(深呼吸)을 하지만, 공장 지대나 매연이 많은 도심(都心)에서는 오히려 호흡을 줄여 쉬려고 한다. 이것은 공기의 상태에 따라서 우리 신체도 활짝 펴기도 하고 움츠려 들기도 한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맑은 공기를 심호흡하면 천기(天氣)를 많이 받아들여 온몸은 활력을 충만해 진다. 예컨대, 혈액 속의 적혈구(赤血球)가 산소를 많이 받아 모든 신체의 구석구석까지 잘 운반함으로써 약 10조(兆)나 되는 세포들에 활력을 주고, 몸에서는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노폐가스가 잘 배출된다. 신선한 공기는 그 자체로 우리 몸에서 해독작용(解毒作用)을 한다. 그러나, 만약 산소가 부족하고 해로운 화학물질에 오염된 공기를 마시면 적혈구 기능과 면역력(免疫力)은 저하되며 인체는 스트레스 상태에 놓이게 되어 각종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이러한 공기를 우리 몸이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태식호흡(胎式呼吸)과 같은 자연스러운 호흡이 권유된다. 동양의학에서는 기(氣)를 받아 생명을 유지한다고 본다. 호흡으로 천기(天氣)를 받아들이고, 땅에서 나오는 곡식과 육류 등 모든 음식물에서 땅의 지기(地氣)를 받아들여, 천기와 지기의 화합하는 힘(太極)으로 생명을 유지한다고 본다. 이것은 하늘과 땅은 양(陽)과 음(陰)이며, 하늘(大氣)에는 양기(陽氣)가 있고, 땅에는 음기(陰氣)가 있음을 전제한다. 즉 양기는 호흡(呼吸)에 의해, 음기는 섭생(攝生)에 의해 함께 인체로 들어와 생명을 지속하는 근원인 단(丹)에 이르러 기화(氣化)한다. 이러한 단(丹)을 얻는 밭(田)에 해당되는 곳이 단전(丹田)이다. 한의학의 경락 이론(經絡理論)에 보면 단전(丹田)은 인체의 모든 소화물질(地氣)의 대부분을 흡수하는 작은창자, 곧 소장(小腸)의 중심에 해당되고, 하늘의 기운인 호흡(天氣)도 이곳에 함께 모아 집중함으로써 천기(天氣)와 지기(地氣)의 혼융(太極運動)이 이루어져 생명현상이 유지되고 충만해 지는 곳이다. 단전의 어의(語意)상 의미에서 붉을 단(丹), 밭 전(田)은 에너지의 근원인 붉은 밭, 즉 [피의 밭]이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이것으로 우리는 자연과 인체를 동일하게 바라보는 선인들의 전일적 통찰을 엿볼 수 있다.

단전호흡은 가급적 복식호흡(腹息呼吸)으로 크게 흡입하여 천천히 내쉼으로써 에너지 축적(蓄積)을 도와주어 신체적인 충만과 정신적인 안정, 그리고 영적인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호흡이 주는 영적 의미는 성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창세기의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2 : 7)와 또 부활하신 예수가 제자들 앞에 나타나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아라"(요한 20 : 23) 등에서 숨과 영적 에너지는 동일시된다.

이러한 공기와 대기의 중요성은 동양철학적 사유체계에서는 활동성과 생명의 시발이 되는 태양성(太陽性)과 관련시켜 언급한다. 민속의학자 정성택은 태양은 모든 생명체와 무형적인 물질들에 활동 동기를 부여한다고 보았다. 그는 모든 물질운동은 이온화로부터 흐름이 시작되고, 그 이온화의 주체가 태양열(太陽熱)로부터 파동을 타고 날아오는 태양열 에너지와 전달물질인 H+이온이라 설명한다. 즉, 태양열(火)에 의해 모든 것들은 생명활동을 영위하고, H는 여러 물질을 이온화시켜 화학적, 전기적 에너지로 자연계의 형상변화를 주도한다. 광물의 이온화, 식물의 탄생, 동물의 탄생, 성장 등이 모두 일차적으로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열과 H+이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러한 에너지는 지구에서 질적(質的) 변화에 따르는 양적(量的) 변화를 발생시키며, 그러한 변화에 따라 대기권(大氣圈)까지 생명력이 확장된다. 확장된 대기권은 지구의 모습에 완충력이 발생하며, 지구가 태양주위를 회전하는 공전속도를 조정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지구는 자전을 통해 밤낮의 온도차를 이용하여 호흡하며 물질의 변화와 순환을 유지한다. 따라서, 지구의 완충공간인 대기권은 지구의 호흡공간이 되며, 지구로서는 절대 절명의 생존법칙인 지리(地理)라는 것이다.

② 물과 인간 건강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물을 만물의 근원으로 보았다. 물론 탈레스는 물의 물질성(物質性)만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물의 활동성(活動性)도 포함하였다. 예컨대 파도가 계속해서 해변에 부서지는 것과 같은 끊임없는 움직임에 대하여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유추하였다. 생물학과 진화론의 관점에서 [물과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라는 이론에 의하여 탈레스의 이론은 그 설득력을 더한다.

물질 순환에 있어서 물은 필수적이다. 지구에 물은 수소이온 때문에 모든 물질의 용매로 작용하여 분해와 결합 에너지를 제공한다. 강한 장력(張力)과 높은 비등점(沸騰點)을 가진 물의 액체성은 태양 에너지를 적절하게 운용하는데 유효하다. 개체들의 생명은 환경변화에 따라 물질변화와 상태(狀態)적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물질이 필요하며, 따라서 물에 의하여 매개되는 물질이동 수단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물 그 자체가 생명 활동상(活動狀)인 것이다. 생명 활동이란 자연의 모든 것과 물질과 에너지를 교환하는 하는 것이다. 물이라는 자율적 탄성 공간에서 생명체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그 탄성의 한계 내에서 안정되어 생을 영위한다. 물은 지구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의 물리 화학적 에너지 변화를 조정하면서 본질을 지킬 수 있는 물질이다. 물이 탄성도(彈性度)를 증가시키면 질량증가를 낳고, 그 결과 중력을 증가시켜 하강운동을 한다. 반면에 활성화되어 탄성계수를 감소시키면, 물은 수증기로 변화되어 부력을 증가시켜 허공으로 상승한다. 이처럼 물의 독특한 성질 때문에 열 에너지에 대한 탄성도의 폭이 넓어 본질을 지키면서도 물리적 운동의 변화 폭을 크게 유지한다. 또한, 물은 강한 화학적(化學的) 변화 요구에도 본질로 회귀하는 힘이 강하다. 이것은 물이 모든 물질의 음 또는 양 전하(電荷)에 대해서 가장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수소와 산소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은 모든 개체들의 모든 변화를 물이 회귀하는 탄성운동 범위 내로 포함할 수 있는 물질이다.

생명현상에서 물은 필수적이다. "우주 탐사에 있어서 어느 위성(衛星)에 물이 있나 없나를 탐색하는 것은 그 위성에 생명체가 있나 없나를 추측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우리 몸은 세포(細胞)로 구성되어 있고, 어느 세포든지 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의 용해성(溶解性)은 영양 물질을 녹여 몸 안에 흡수할 수 있으며, 반대로 몸 속에서 생성되는 독성물질(毒性物質)을 희석하여 배출할 수 있다. 이러한 수분대사(水分代謝)가 잘 되기 위해서 인체는 하루에 8컵 이상(2리터)의 물을 섭취해야 한다. 가급적 오염이 적어 많은 영양분을 녹일 수 있고, 신선하여 신체를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이 많은 물을 섭취하는 것이 요구된다."

물은 마시는 것 외에도 몸과 외면에서 접촉한다. 목욕과 세안(洗眼)은 기분 전환에 최고의 효과가 있다. 물기가 있어야 피부의 윤택(潤澤)한 건강과 아름다움은 물의 탄성에 의해 실현된다. 또한, 깨끗함은 물이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성서에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요한, 3. 5), 사마리아 여인의 야곱의 우물 비유에서 말하는 생명수(요한, 4. 7-15), 수난사에 나오는 그리스도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물(요한, 19. 34) 등은 생명과 정화를 함축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건조함에서 우리는 생명과 풍요로움을 찾을 수 없다.

한편, 물은 오관(五官)을 통해서 정신 건강에 크게 기여한다. 예로써 폭포 소리, 시냇물이 흘러가는 소리, 파도 소리 등은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정신을 맑고 쾌적하게 해준다. 물은 바라만 보아도 평화로움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생명체가 물에서 나왔기 때문에, 바다나 호수, 수평선은 그 시원(始原)에서부터 연유되는 생명의 고향(故鄕)으로 되돌아 온 듯한 아늑함을 준다.

물과 자연에 대한 영적인 묵상은 겸허한 마음으로 인간 본연의 자세를 되찾게 한다. 도덕경(道德經)에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법도(天法道),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자연을 따르는 것이 진리임을 강조한다. '자연을 따른다'에서 따른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 '법'(法)자에도 물과 관련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즉 '법'자('法'字)는 삼수변에 갈거(去)가 붙어 있다. 즉, [물이 흘러가는 것]이 바로 법(法)이고, 인간이 따라야할 도리(道理)라는 것이다. 이것은 물이 내포한 자연 영성, 즉 자연섭리에 대한 순응을 명확하게 한다.

우리 앞에 한 컵의 물이 있다고 하자! 이 물은 우주가 생성된 대단한 순간에 수소(H2)와 산소(O2)이었으며, 태양계와 지구가 생성된 한참 후, 쥬라기(期)에는 공룡(海龍)들이 놀던 호수에 담긴 물이었다. 또 하늘에 올라 구름이 되었다가 땅 속 깊이 지하수가 되었고, 우리 선조들이 마셨던 물이 되었을 것이며, 그들의 몸을 구성했던 물이다. 한 컵의 물은 태초이래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만물 유전(流轉)의 신비를 보여주는 자연의 증인(證人)이다. 물을 비롯한 만물이 이처럼 온전히 순환되기에 자연은 참된 법(法)인 것이다.



③ 음식물(飮食物)과 인간 건강

모든 음식물은 땅의 자양분(滋養分)과 태양 에너지로부터 연유된다. 하루에 세끼의 음식물을 먹고사는 우리는 매 식사 때마다 음식물과 접촉하면서 자연에 대한 감사와 활동에 대한 사명을 부여받는다.

올바른 섭생(攝生)이야 말로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에 필수적 전제요건이다. 자연·유기농법(自然·有機農法)에 의한 양질(良質)의 먹거리를 골고루 섭취하고, 필요한 양을 적절히 섭취하여 소화기관의 부담을 줄여 준다. 우리는 마음이 안정되고 정신이 안정(安靜)된 상태에서는 생태적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들어 있는 음식에 대한 원의(願意)가 생기고, 해로운 음식에 대해서는 자연히 멀리하게 된다.

우리의 식(食) 문화는 이 땅에서 체득된 먹거리 문화이다. 오랜 세월동안 경험적 인식으로부터 얻어진 습관체계이다. 이러한 음식문화는 질병의 치료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즉 병이 생기면 그 약도 반드시 주변에 있다. 음식물을 취하는 과정에서도 생태학적 원리를 우리는 찾아 볼 수 있다. 즉 식단을 꾸밀 때 가급적 그 지방에서 나는, 그 계절의 음식이 자연과 인체의 리듬이 가장 잘 조화되는 먹거리 패턴이 된다. 이러한 섭생법을 [신토불이](身土不二) 섭생이라 한다. 신토불이는 지역적(地域的) 공간적(空間的)인 의미 외에도 시간적(時間的)인 의미도 적용된다. 즉 제철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많은 음식물들이 속성(速成)으로 재배되고 장기간 저온 보관(低溫保管)되어,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철을 가리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정서(情緖)도 계절감(季節感)을 잃어 혼란스러울 때가 많고, 신체적 리듬에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섭생에 있어서 신토불이와 함께 자연건강 섭생법으로 중요한 또 하나의 원칙이 있다. 즉, 어떤 음식을 취할 때는 가급적 음식물 전체를 다 먹는다는 의미의 [일물전체식](一物全體食)이다. 예컨대 멸치를 먹을 때 멸치 대가리와 내장을 떼어버리지 말고, 또 무를 먹을 때 무 뿌리뿐만 아니라 무 잎까지 함께 섭취한다. 주식(主食)으로 먹는 밥은 쌀 성분이 전체적으로 들어 있는 현미(玄米)를 먹기를 권유한다. 벼를 도정(搗精)하는 과정에서 먼저 온전한 형태의 현미(玄米)가 나오지만, 이를 더욱 도정하면 입맛과 윤기가 나는 백미(白米)가 된다. 백미는 도정 과정에서 쌀의 겉부분 섬유질과 쌀눈 같은 영양소가 많은 부분들이 인위적(人爲的)으로 버려져 결과적으로 생명 요소가 왜곡되고 적어진다. 따라서, 백미로 편향된 대부분 현대인들의 식생활은 여러 가지 성인병에 취약하게 된다. 우리가 그날그날 받아들인 자연이 주는 일용할 양식은 우리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적 양식이 될 수 있어야 한다.



3. 생태요법과 심리치료

클라인벨은 인간의 땅에 대한 소외로부터 땅이라는 근원에 대한 인식 부재(不在)와 거절(拒絶)이 생겨나고, 그 결과 생태공포증 또는 생태소외가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생태요법은 땅으로부터의 소외에서 생겨난 심리적 문제와 기능이상(dysfunction)을 전인건강의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그러나 대개의 서구 심리치료에서 지금까지 땅의 중요성은 간과되어 왔다. 생태요법은 그처럼 간과되어 온 땅의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땅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고 생태적 자아의 정체성을 확립해야만 자아치유(self-care), 지구치유(earth-care), 및 영혼치유(soul-care)에 이룰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태적 자아 정체성은 클라인벨에 따르자면, 자연의 양육을 받는 경험에 의해 가장 극대화된다. 즉 자연의 양육을 받는 체험을 통해 우리는 잃어버린 야생성을 되찾게 되며, 그러한 야생성의 회복은 생태적 자아 정체성 확립의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생태요법은 이처럼 야생성 회복을 통한 생태적 자아의 정체성 확립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개성화(個性化) 과정]을 강조하는 융의 이론과도 연결된다. 또 게슈탈트 치료법을 비롯한 다양한 심리치료법 가운데에도 이와 유사한 통찰들이 스며있다. 그러므로 이번 절에서는 융의 개성화 이론을 야생성의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해 보면서 그것의 생태요법적 의의를 드러내 보이고, 아울러서 다른 다양한 심리치료법들 가운데 생태요법적 통찰들이 어떤 식으로 구체화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1) 개성화와 야생성의 회복

인간은 자연과 대립적인 관계로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인간 내면의 귀중한 잠재력인 야생성을 잃어 가게 되었다. 야생성의 상실은 인간의 창의력을 약화시키고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를 가속화하게 되었다. 따라서, 생태요법의 심리적인 측면은 인간의 생태적 자아 정체성 확립을 위한 개성화와 이를 지원하는 야생성의 회복과 자연체험에 중점을 둔다.

① 개성화와 자아 정체성

융의 심리학에서 생태적 자아와 관련된 생태적 비전은 그의 [개성화(個性化) 과정]에서 얻을 수 있다. 생태 중심적 사고에 있어서 모든 개체는 주체적(主體的) 통교(通交)를 위해서 [개성화 과정](個性化過程)을 실천해야 한다. 개성화 과정은 창조적인 자기실현(自己實現)에의 욕구에서 유래하는 충동에 의하여 무한한 다양성(多樣性)으로 나타난다.

융은 무한한 다양성의 예를 동물학자 포트만(A. Portman)이 '대부분의 초식동물(草食動物)들이 정확하게 1년 중 풀이 가장 많은 시기에 그들의 새끼를 갖는 것'에서 나타난 동물의 내향적(內向的) 본성(本性) 연구를 인용하여 설명한다. 즉 "각 동물의 내적 성질은 그를 둘러싼 주위 세계로 연결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자연의 전체성에 합류하고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야생 동물들이 무의식적으로 자연의 전체성에 합류되는 것은 [개성화 과정]에 나타난 무한한 다양성(多樣性)의 한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인간에 있어서 이러한 다양성은 우리를 움직이는 무의식적 충동으로, 각자가 자기 실현의 특유한 과제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개성화 과정에 있어서 인간의 다양성은 각자에게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즉, 우리의 많은 문제들이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결코 똑같은 것은 아니며, 이렇게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개성화 과정]은 [전체성]에도 기여하게 된다. 이러한 개성화와 전체성의 관계는 서로 대립(對立) 개념으로 오해될 수 있으나 전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개체성과 전체성 관계는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현상을 통해 설명하면 그 의미를 보다 명료하게 할 수 있다. 즉, 태양계(太陽系) 궤도운동(軌道運動)에 있어서 개성화는 지구 자전(自轉) 운동에, 전체성은 지구 공전(公轉) 운동에 비유할 수 있다. 개성화는 지축(地軸)을 중심으로 스스로 돌면서(正向的 回轉) 바로 서는 것이며(自我 正體性 確保), 이러한 자전(自轉-개성화)을 바탕으로,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여 태양계 내에 자신을 조화시키게 된다(全體性에 合流). 개성화의 실현이 전체성에 기여하는 것은 성서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소금과 빛의 역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성서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라"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소금성(鹹味)과 빛성(透明性)이 주는 의미가 바로 융이 말하는 개성화를 함축한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그 소금은 맛을 낼 수 없어 아무런 소용없어 버려지게 되고, 빛이 투명성(透明性)을 잃어 세상을 밝힐 수 없으면 광명천지(光明天地)는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각각의 개체는 소금과 빛처럼 고유한 개성을 상실(喪失)하고는 자아정체성(自我正體性)을 잃어 전체성(全體性)에 합류하지 못하게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문명화 이후 인류가 잃어가고 있는 야생성을 다시 회복하여 우리의 자아 정체성을 온전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클라인벨은 "지구에 근원을 둔 정체성은 자연의 양육을 받는 경험에 의하여 극대화된다"고 하였다. 인간의 근원이 태양으로부터 동기를 부여받고, 지구로부터 몸이 화생(化生)하였으므로, 필연적으로 지구·태양에 근거한 생태적 자아가 인간 정체성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전체성에 입각한 생태적 정체성 확립이 우리의 생태적 자아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며, 전인건강을 실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태적 심리요법은 인간의 생태적 자아를 되찾아 개성화를 보다 온전하게 촉진시키는 것이다.

② 개성화를 촉진시키는 야생성의 회복

융은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진 종교들이 [그림자」(shadow)라고 부르는 정신의 부정적 측면을 거절하고, 문화적인 규범들을 엄격하게 본받은 '문명화'를 신앙적이며 윤리적이라 생각하는 경향을 비판한다. 인간 내면의 귀중한 잠재력인 야생성이 문화적인 이유로 거절된 이후, [그림자]화(化)된 성향은 인간의 내적, 외적 야생성으로부터 소외를 조장하여 점점 영적으로 쇠퇴하게 되었으며 심리적 불안을 일으켜 개성화를 어렵게 한다. 클라인벨은 "생태요법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가 인간 정신의 [그림자」측면에 있는 야생성을 존중하고, 즐거워하는 영성과 윤리를 개발하여 자신의 영과 몸과 정신을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라고 하여 야생성 회복이 생태적 심리요법의 중요한 부분임을 주장하였다. 또한 토마스 베리는 이러한 야생성의 중요성에 대하여 한 예술가 단체의 초청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간이 지난 수천년 동안 자연계를 인간의 지배하에 두려고 싸워 온 그 엄청난 노력 이상으로 문명 그 자체를 종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없다고 알고 있다. 이런 노력은 결국 인간 자신 속에 있는 내면의 야성까지도 길들이려고 하며, 결과적으로 인간의 그 엄청난 창조의 가능성들을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야생성, 우리는 이것을 모든 존재의 진정한 자발성(自發性)의 뿌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창조성의 근원으로서 모든 생명체들에게 음식을 얻게 하고, 거주지를 만들게 하고, 짝을 구하는 의식을 행하게 하고, 노래하며 춤추며, 하늘을 날으며, 바다 속을 헤엄치게 만드는 본능적 활동들의 샘이다. 바로 이것이 시인들에게 통찰력을 주고, 예술가들에게 기술을 주고, 무속인들에게 힘을 주는 내면의 우물이다.



야생성(野生性)을 받아들이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과 아주 다른 문화적인 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단체들에게도 쉽게 자신의 야성을 투사하여 그들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야성은 위기 상황에서의 대응력의 근원이며, 물질계의 자유전자(自由電子)의 자유로운 활동성의 원천과 같고, 진화적(進化的)인 측면에서는 변화인자(變化因子)나 활동인자(活動因子) 및 적응인자(適應因子)들과 같은 자유로움으로 이 세계를 대면하게 된다. 따라서, 야생성은 자기를 해방시키고 초월을 얻게 하는 것으로 자기 방어적 긴장과 편집증(偏執症)적 습성들에서 자유로워지는 요건이며, 인간의 창의력을 회복하는 개성화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③ 자연체험의 심리적 치유

자연 체험요법은 그림자화 된 내적 야생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자연 체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외적 야생성을 이용함으로써 자연으로부터의 소외(疎外)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야생성의 내적-외적 결합은 생태요법과 생태교육에 있어서 자연으로부터 얻는 치유력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된다. 야성적 자연의 힘은 창조적 과정을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소외를 극복하게 해준다.

린다 휠라잇 슈미트(Lynda Wheelwright Schumit)는 "우리의 창조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우리는 위대한 자원, 즉 우리의 최초 어머니인 야성적 자연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야성적 자연에 관심을 집중할 때, 우리는 거대한 우주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계속적인 탐색을 위한 심장과 혼을 제공받게 될 것이다"고 하여 실제적인 자연체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자연체험의 실천가이며 안내자인 스티븐 하퍼(Steven Harper)는 "실제적인 자연 체험만이 '문명'이나 '원시'의 가상(假象)을 벗어버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융 학파를 비롯한 심리학자들에게 "본능적 자아에 대하여 '분석하여 아는 것'과 '경험하여 아는 것'은 다르다"고 비판하고, 그들이 실제로 자연체험에 들어가 되어 보려는(becomming) 경험을 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더 나아가 그는 "자연 안에서 우리가 진화해 왔을 대상들이 되어 보는 것은 적어도 우리가 거쳐온 우리 안의 여러 단계의 진화적 유산을 알고 다시 획득하는 일이며, 이는 잃어 버린 원시 자아를 다시 체험함으로써 심리의 원형을 체험적으로 파악할 기회를 갖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하퍼는 "구체적인 자연체험 즉 광야 체험이나 야생지(野生地) 체험 등은 물리적인 면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자연에 참여하게 하여 자연의 심층까지 느껴지는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는 생태적 자아와 관련하여, "자연 안에는 경이로움 외에 슬픔도 있으며, 이 모든 것들이 확장과 재결합의 [생태적 자아]체험으로 균형을 이루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자연체험은 모든 사물들의 관계를 알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체성을 체험하게 되며, 확장된 자아를 체험하게 된다. 전체성(全體性)의 통전적(統全的) 교감 안에 자연과 단절되었던 문제가 극복되고 치유되는 것이 생태요법에서 말하는 야성의 회복이며, 융이 말하고 있는 개성화라 할 수 있다.

(2) 생태요법과 심리치료

클라인벨의 생태요법적 심리치료 연구는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한 [대상관계이론(對象關係理論)]을 땅과의 관계로 확장시킨 [확장된 대상관계이론]이라 할 수 있으며, 여기에 [인성발달이론(人性發達理論)]을 통합한다.

대상관계이론의 중심 주제는 성장기 아동들이 자기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대상'을 자기 안에 내면화하면서 자신의 성격과 정체성을 형성해 간다는 이론이다. 대상관계이론의 선구자 위니캇(D. W. Winnicott)은 '대상관계는 계속적 내면적 관계가 일어나는 상태'라 하였고, 그는 이것을 진정한 자기(true self)로 특징지었다. 위니캇은 인간의 자기 안에 있는 근본적 욕구를 '완전한 환경에의 욕구'로 보았다. 그는 '환경'은 자기 성장을 촉진시키고, 성숙을 위한 조건으로 여기면서, 여기서 말하는 '환경'은 대상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며, 특히 어머니와 같은 '최초의 돌봄을 베푸는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클라인벨은 이러한 대상관계를 인간과 땅의 관계로 발전시킨 확장된 의미의 대상관계로 발전시켜 생태요법과 관련시킨다. 따라서 대상관계이론에서 자기 의식의 형성과정에 나타나는 '좋은 어머니'는 '좋은 땅'으로 내면화되면서 정체감(正體感)을 형성한다. 땅과의 대상관계는 단지 땅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연으로부터 얻는 잠정적 대상들, 즉 애완동물, 애완식물, 정원가꾸기 등으로 대체되어 우리 인생 전반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클라인벨은 이것들이 자연과 우리들 사이에 가졌던 최초의 친밀한 연대를 대신하는 '뿌리 의식'을 주며, 그것들은 우리의 뿌리가 되는 유전적 프로그램과 연관되어, 어머니 몸 속에 있었을 때 자궁(子宮)에서의 삶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자연으로부터 얻는 잠정적 대상들은 우리 안에 있는 야성(野性)에 비추어 외부세계의 근원과 연관시켜, 내면과 외면을 유지하는 방식이 된다. 이러한 자연과의 접촉은 땅과의 관계에서 야생성을 회복시켜주며, 잠정적 대상들과 공조되어 치유효과를 얻도록 유도한다.

생태요법에 있어서 심리적인 접근을 시도함에 있어서 다룰 수 있는 분야는 많지만 인간의 질병에 대한 이해와 생태적 접근을 주로 언급하고자 한다. 이에, 자기 주변의 문제를 전체로서 통합적으로 자신과 환경을 체험하게 하는 게슈탈트 심리치료법(Gestalt Therapy)을 간단히 살펴보고, 죽음의 슬픔이 주는 자연 치유적 기능과 생태 지역주의적인 치유를 포함한 서식처(棲息處)로부터 얻는 심리적 안정감, 자연의 잠정적 대상들, 예컨대 식물, 동물로부터 얻는 심리치유를 예로 들어보겠다.



① 게슈탈트 심리치료법

정신분석학이나 심리치료라는 말은 서양의 방법론을 우선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프릿츠 퍼얼스(Fritz Pearrls)에 의하여 창안된 게슈탈트 치료법(Gestalt Therapy)은 서양의 정신분석과 실존철학(實存哲學), 동양의 도가(道家) 사상과 선(禪) 사상 등이 두루 접목되었고, 여러 가지 관련된 치료이론이 생태적인 요소와 잘 연결되어 있다. 이 연구는 어떻게 주위 환경 속에서 자신이 내부 세계와, 생태적 자아와, 이 세계로 분극화되는가에 집중하면서 환자들을 그 자신으로부터 부인된 부분과 재통합시키는 것을 도와준다.

케슈탈트 치료법은 서양의 분석(分析)요법과는 달리 동양적인 통합(統合)을 통하여 치료한다. 즉 개체를 여러 가지 심리적인 요소로 분할하여 분석하는 대신에 전체, 즉 場(field)의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통합과 해결에 있어서 중요한 이론으로 [알아차림]과 [접촉]이 있다. [알아차림](awareness)은 개체가 환경의 장(場)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들을 지각하고 체험하는 것으로 문제를 인식한다. 즉 자신의 유기체적 욕구나 감정을 지각한 다음, 게슈탈트로 형성하여 문제의 전면으로 내세우는(前景) 행위를 말한다. 여기서 알아차림은 단순한 관찰과는 다르다. 즉 알아차림은 자의식과는 달리 자기를 대상화(對象化)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 또는 신체감각이나 욕구, 감정, 혹은 환경이나 상황 등을 대상화하지 않고 그냥 단순히 받아들이는 접촉을 통하여, 전체로서 통합적으로 자신과 환경을 체험한다. [접촉](contact)은 전경(前景)으로 떠올린 게슈탈트를 해소하기 위하여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접촉으로 문제점들이 알아차려지면 전경(게슈탈트)으로 떠오르고, 이러한 게슈탈트는 또 다른 접촉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여 해결하면 전경에서 물러나, 배경(背景)으로 되거나 사라진다.

여기서 접촉이란 체험을 하는 것으로 체험은 대상과 하나가 될 때 가능해 진다. 그냥 순수히 자신을 개방하고서 그 대상에 내맡김으로써 그것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접촉은 마치 도(道)의 무위성(無爲性)인 결을 따르는 것과 같이 어떤 인위적(人爲的) 사고나 이론적 태도를 버리고 순수히 유기체적 체험이 가능하도록 자연에 내맡기는 것이다.

삶의 과정 속에 이러한 알아차림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접촉의 반복된 주기를 [알아차림-접촉 주기]라 한다. 건강한 유기체는 환경과 교류를 통하여 [알아차림-접촉 주기]를 자연스럽게 반복하면서 성장해 간다. 그런데 접촉 경계(境界)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알아차림 주기가 단절되고, 그 결과 미해결 과제가 쌓이게 되면 심리적 장애를 일으킨다. E. 사피로(Elan Shapiro)는 이 방법을 이용하여 인간 안에 내재한 지혜와 자아 치유력을 재 각성하도록 한다. 건강한 사람은 좋은 접촉을 만들고, 그 각성의 전경에 나타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완전하고 만족한 상호관계를 갖는다. 즉 주위환경을 배제(排除)함이 없이 건강한 자아는 그 기능을 다하기 위하여 건강한 환경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게슈탈트 연구는 우리가 어떻게 분리되어 내부 세계와 자아와 이 세계로 분극화되는가에 집중하면서 동시병리적(同時病理的)인 원인과 증후로서 분열(dissociation)을 보여준다. 따라서 게슈탈트 치료는 환자들에게 그들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기 위한 개성화 과정을 촉진시키고, 전체성에 합류가 가능하도록 행동 실험과 자각 실험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것은 환자들을 그 자신으로부터 부인된 부분과 재통합시키는 것을 도와준다. 이러한 게슈탈트 요법은 생태심리요법에서 자연과 일체가 되는 삶의 방식과 자연으로부터 얻는 치유적 효과를 증대시키는데 좋은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② 죽음의 슬픔이 주는 자연치유적 기능

심리적 측면의 생태요법은 인간이 자연순환에 순응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이러한 순응은 심리적 평화를 얻게 하여 자신의 죽음까지도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생각하게 한다. 죽음에 대한 올바른 사생관(死生觀)은 노인들에 있어서 삶의 질을 향상시켜 여생을 보람되고 하고, 젊은이들에게도 성숙된 삶의 자세를 견지하게 한다.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는 죽음(死)이 주는 불안은 원본능(id)의 좌절로 인한 신경증적 불안과 구별되는 실존적 불안이며, 이러한 실존적 불안은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생명과 죽음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생겨나는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기가 죽어야 할 운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경험들, 예컨대 심각한 질병, 사랑하는 이나 친척의 죽음, 얼마나 빨리 늙어 가고 있는지를 일깨워 주는 생일 잔치, 삶 속에서 경험하는 좌절과 실패, 상실(喪失) 등을 반복 경험하면서 죽어야 할 운명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대체로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실존적인 불안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우리를 움직이는 동인(動因)이 된다.

우리는 자신의 어머니나 아버지를 잃었을 때 아무도 자기 자신을 죽어야 할 운명에서 지켜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공통적인 종교전통이나 생명철학에서, 이러한 제한적 불안은 [창조]를 일깨우는 기회로 바뀔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질병에 대한 전인적 통찰을 갖게 한다. 클라인벨은 이러한 맥락에서 "실존적 위기와 절망의 시간 동안에 생명의 세계와 깊은 연대를 가지고, 자연 가운데 현존하는 하느님의 영(靈)를 경험할 때, 그것은 희망을 일깨우고, 이 불안을 교육의 장으로 바꾸어 준다"고 하였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는 그의 시 [태양의 찬가](canticle to the sun)에서 모든 자연을 형제 자매로 느끼며 자연 속에 빛나는 하느님의 빛을 찬양한다. 프란치스코는 심지어는 죽음을 자매라고 부르고 그 속에서 하느님의 빛이 빛나고 있다고 노래하였다. 매튜 폭스(Mattew Fox)는 프란치스코에 있어서의 죽음은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라 우주의 한 과정으로 찬양해야 할 대상이었다고 하였다. 즉, "프란치스코는 그의 일생 동안 경험한 모든 작은 죽음들과 같이 자신의 죽음을 보았다. 죽음은 마치 그가 문둥병자를 껴안고 입맞추는 것과 같다. 그는 자신의 이 행위를 죽음과의 만남처럼 가장 위대한 행위로 간주했다. 그에 있어서 이것은 우주적인 계획안에 현존하는 죽음과 만나 거듭남의 경험이었다"고 전한다.

어떤 노인들은 자신의 미래가 점점 빨리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평안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손으로 정원을 가꾸고, 싱싱한 꽃을 심으며 땅을 손질하면서 기쁨을 얻고 있는 경우가 많다. 슬픔이나 우울증(憂鬱症)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자연환경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갖도록 하면 그들은 가끔 자기들 속에 있는 슬픔이 정화되는 것을 보게 된다. 선구적 자연주의자이며 시에라 클럽의 창시자인 존 뮤어(John Muir)는 죽음에 대하여 어린이들에게 '자연이 학습의 기회가 된다'고 다음과 같이 계몽적으로 주장한다.

죽음이라는 주제보다 더 우리의 생각들을 왜곡시키고 연민에 빠지게 하는 주제는 없다. 아이들에게 자연과 함께 걷게 만들자. 자연은 죽음과 삶이 나누일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한 하나임을 보여 준다. 숲들과 목장들 , 들판과 산들, 복된 별무리의 흐름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생명과 죽음을 보게 하자. 그러면 그들은 죽음에 돋아 있는 가시가 사라지고 죽음(死)도 생명(生)과 같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배울 것이다. 그리고 무덤은 더 이상 우리를 이길 수 없으며, 그것은 결코 우리와 싸울 수 없는 것임을 어린이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하느님 안에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이라는 상황 속에서 슬픔에 처했을 때 자연의 양육을 받으면 그 고통스러운 상실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죽음은 슬픈 것이지만, 죽음은 더 이상 파괴적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연의 순환에 대한 깨달음은 죽음이 새로운 시작과 연관되어 순환되기 때문에 죽음을 오히려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질병은 괴롭고 슬픈 것이지만 질병에 대한 의미를 깨달음으로서 인간은 보다 온전해지고 참되게 치유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③ 서식처(棲息處)와 심리적 건강

인간 생명과 주위 환경과의 관계를 한국적 사유 방식으로 표현하면 신토불이(身土不二)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을 [생태 지역주의](bioregionalism) 라고 표현한다. 땅위에 존재하고 있는 소우주인 나(身)는 나를 둘러싼 대우주와 교감하는 열려진 존재이며, 땅(土)은 모든 삶들의 근거가 되는 모든 자연을 가리킨다. 불이(不二)란 나(身)와 땅(土)이 둘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 공동체(biotic community)이며, 이는 인간 생명이 그 지역의 자연 환경과 밀접한 연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구약 성경(창세기)에 나타난 인간의 시원(始原)에 대한 설화를 살펴보면, 인간과 땅의 관계에 대한 유의(有意)할 만한 상징성(象徵性)을 찾을 수 있다. 즉,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으셨다는 내용은 우리 몸(身)을 바로 진흙(土)과 동일시시킴으로써 인간의 시원(始原)과 종국(終局)이 대지(大地)로 귀속(歸屬)된다는 명상을 이끌어 내어, 자연과 인간의 밀접성을 반증해 준다. 그런데 현대 문명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연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다. 자연을 단지 인간 편의를 위하여 마구 착취하는 대상으로 간주하면서부터 인간 자신의 거처(居處)이기도 한 자연과의 유기적(有機的)관계는 급격히 단절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자신의 고향(故鄕)을 등지고 떠나는 탕자(蕩子)와 같이 외로움과 고독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고향을 향한 향수(鄕愁)를 저버리지 못하고, 끝내는 귀향(歸鄕)하여 '아버지 집의 잔치'에 참여하는 아들처럼 자연의 돌봄과 평화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서식처(棲息處)가 주는 치유 효과는 이러한 탕자의 비유로써 비유될 수 있다.

서식처는 자연의 순환 원리인 만물 생성(生成)과 소멸(消滅)의 장(場)이다. 만물은 계속 순환한다. 생명체들은 생명현상을 통하여 순환하고, 무생물인 무기환경(無機環境)은 생성, 변화, 소멸하거나, 분해와 결합 등으로 끊임없는 변화를 지속하고 있다. 무기환경의 터전 위에 생명체가 살아가므로 생물들의 터전은 바로 무기 환경이요, 구체적으로는 땅(지구, 土)이다.

이 땅의 환경에 따라 생명체의 순환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건강을 포함한 삶의 질(質)은 구체적으로 우리 주변의 장소(場所)에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주변의 생태계와 함께 생각하고, 자신들의 생물학적 지혜를 활용하는 법을 배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엘런 사피로(Elan Shapiro)는 자연 서식처(棲息處)를 공동체 영혼을 회복시키는 장소로 보았다. 즉, "우리들의 삶은 자신이 속한 특정한 장소에서 [생명의 그물](web of life)을 치유하고, 그 자체를 새롭게 하도록 도와주는 환경회복 작업은 자신이나 인간 공동체의 재생을 위한 거울(반사되어 비추어 주는 指標)로서 추진력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실제로 인간의 안녕에 필수적인 [생명의 그물]에 인간을 연결시킬 때 인간은 관계(關係)와 주체성(主體性)의 기본적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땅과의 재 결속은 자신의 서식지(棲息地)를 회복하는 작업을 행하는 동안 그 장소에 깊이 관여될 수 있도록 돕게 된다. 즉 그들은 그 장소의 각기 다른 종(種)과 원소(元素)들과 동일시(同一視)됨으로써 그들과 관계망(關係網)을 통하여 공감된다. 이러한 회복 작업에는 정신과 육체 모두가 관계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장소 고유의 생명력과 지혜를 자연적으로 흡수한다. 사피로의 글에서 이러한 생태 지역주의(bioregionalism)적 입장을 살펴보기로 한다.

한때 아름다운 삼림지(森林地)였던 북 캘리포니아의 마토레강(江) 계곡은 좋은 연어 서식지였다. 40년 동안 계속된 벌목으로 강 유역 고목들의 90%가 벌채된 이후, 연어는 멸종에 가까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 지역 주민들은 연어 서식지를 회복하기 위하여 합동하여 강 유역과 강으로 배수되는 모든 지역을 회복하는데 힘을 모았다.

먼저 우선 정치적 경계선의 개념을 초월하여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의 강을 살려 내려는 노력으로 필요한 그 주변의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집하기에 이르렀다. 마토레 사람들이 그 강 주변을 걸어서 답사하였고, 연어의 생태, 고목의 분포, 벌목의 역사들을 검토하는데 생태지역주의 심리학자, 벌목꾼들, 강 유역의 목장 경영자들,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과 주민들이 동맹하여 노력한 결과 얼마 안되어 연어들은 되돌아왔다. 그들의 이러한 활동은 그들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고양시켰고, 학교의 교과과정을 발전시켰으며, 뮤지컬 등을 통해 그들의 전설을 공유하게 되었다. 또한 생태적 경계선을 함께 인식한 이 모험은 방송을 통해 지구적 차원으로 가치가 부여되어 여러 나라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생태 지역성(生態地域性)은 한 지역에 있는 생명공동체의 건강이 인간의 삶에 합당한 사회적, 경제적 개발을 지도하는 궁극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 사회가 지도 이념으로 삼고 있는 무한 경쟁적 산업화, 과학화는 생태 지역성과는 대치되는 면도 있다. 왜냐하면 생태 지역성은 정치, 경제의 지방 분권화(分權化)와 상호보완성, 다양성을 강조하고, 보존과 안정, 그리고 그 지역의 생물들에 의한 자급성(自給性)과 협동성(協同性)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생태학의 ecology라는 단어의 헬라어 어원은 가정(家庭)이라는 의미의 oikos(여기서 eco가 나옴)이다. 가정이라는 의미를 사회 생태적 입장에서 보면, 가정은 사랑의 원리로 출산(出産)과 양육(養育)이 이루어지고, 안정과 평온, 그리고 자아 정체성(正體性)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휴식과 위로가 있어 재충전하는 원천이다. 이로써, 동양의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사회 생태적 의미를 일깨울 수 있다. 생태학의 산실(産室)로서 가정, 즉, 인간 가족, 동물 가족, 식물 가족, 그리고 온 지구적 가족 개념이 바로 생태 지역성의 주요 관점이다. 가족 안에서 모든 생명체는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고, 토착화(土着化)되어 융이 말하는 개성화(個性化)가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 지역성은 그 장소 안에서, 그리고 그 장소 주변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생태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며, 생태적 관계성을 깨닫게 하고, 그 장소에 토착화되어 생명의 다양성과, 그 장소에 맞는 존재의 형태를 확립할 수 있게 한다. 장소(場所)와 함께 생명을 존속시키는 인간 삶의 자세가 동양적 의미의 신토불이(身土不二)이며, 클라인벨(H. Clinebell)이 말하는 자연과의 [내면, 외면 접촉]의 장(場)이다.

④ 식물·동물에 의한 심리 치료

자연체험의 실천적인 방법에는 실제로 자연에 들어가 체험하는 것 외에도 동물이나 식물, 정원 가꾸기 등 잠정적 자연대상을 통한 체험이 포함된다. 자연 체험에서 자연물은 자신의 건강한 생명력을 억압된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요소들과 공진(共振), 동조(同調)시켜 인간을 치유시킨다. 따라서 인간은 어머니 품에 안기듯이 자연에 귀의(歸依)함으로써, 자연의 생명 에너지에 공감(共感)하는 것이다. 실제로 자연물과의 관계 안에서 치유를 얻는 인간은 그것이 식물이건 동물이건 산이건 바다이건 또는 강물이건 간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의 진정한 형제로서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여 전체성 안에 공조된 치유를 얻게 된다.

로버트 스테판(Robert Steffan)은 {치료로서의 식물(Plant as Therapy)}이라는 책에서 "지구의 위대한 치유 능력은 식물에 의해서 가능하게 하며, 식물 없이는 우리가 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는 "이것이 어떻게, 그리고 왜 사실인가를 배우는 것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또 시작되는 것이며, 그것은 미래에 대해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재기(再起)를 제시하는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식물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계절의 주기에 따른 유한성(有限性)과 순환성(循環性)을 이해하게 되며, 인간 자신도 우주의 한 리듬에 속해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식물 치료법의 실제적인 경우는 [원예 요법]이나 [정원 요법] 등으로 구체화된다.

1812년 미국 정신의학의 선구자 벤자민 러쉬(Benjamin Rush)가 정원 가꾸기가 정신적으로 아픈 이들에게 효과가 있다는 보고를 하였다. 그는 5년 후 필라델피아 근처에 [동우회](Society of Friends)라는 비영리 정신병원을 세웠다. 그 병원에서는 '사람과 자연의 접촉을 통한 회복' 이라 불리는 나무와 채소심기 원예요법이 이루어졌다. 그 병원의 소개 책자에 "우리가 정원을 가꿀 때 우리는 수동적 방관자가 아니라 자연의 진행 과정 속에 있는 적극적 참여자이다. 우리는 흙 속에 손을 넣음으로써 대지와 접촉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러한 원예 요법은 1940년 이후 여러 곳에 전파되어 노인병 환자, 알콜 및 마약 중독자, 부상자나 장애자들에게 주로 적용되었다. 현재 미국 12개 대학에 원예치료 과정이 개설되었다.

클라인벨은 원예요법의 효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꽃과 나무를 가꾸는 생산적 삶의 자세로부터 얻어지는 인지적 향상(cognitive improvement)이다. 이것은 외부 세계와 그 안에 있는 자신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생기는 것으로서 문제점에 대한 자기 투신적 학습은 흥미와 적극성을 유발한다. 둘째, 생산적이고 유용한 감정을 포함한 정서적 심리적 향상(psychological improvement)이다. 이것은 식물들을 가꾸는 계획수립과 실천에 있어서 성취와 향상된 책임감을 유발시킨다. 잡초 제거와 가지치기 등에서 그들의 분노와 공격적 충동은 건설적으로 해소되고, 그들의 창조적인 조력(助力)은 생태적 자아의식(ecological sense of self)을 되찾게 해준다. 셋째, 공동작업으로부터의 사회적 향상(social improvement)이다. 이것은 공동 목표를 향한 그룹 활동을 통해서 대화와 타협의 방법을 배움으로써, 또한 중립적 주제인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함으로써 생긴다. 넷째, 맑은 공기와 안정된 환경 그리고 적당한 운동은 신체적 향상(physical improvement)을 얻게 한다.

동물에 있어서도 인간과 공조되는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다. 동물과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치료를 살펴보면, 그 대상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즉 첫째, 야생 동물들의 야생성으로부터 경이로움과 함께 그들과의 관계성 증진이 성취감과 관련된 부분에서 치료 효과가 있다. 둘째, 애완 동물들과의 관계로부터 자신의 고독을 해소할 수 있다.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확립하게 된다. 셋째, 동물들의 아픔을 우리들의 아픔과 공조하여 동반적(同伴的)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어 그 아픔을 극복할 힘을 얻는다.

야생 동물요법에 있어서 인간이 자연의 야성(野性wilderness)과 친해지는 방법의 하나는 야생 동물들과 친해지는 것이다. 치료적인 관점에서 야생 동물과 친하게 함께 놀다 보면 대인 관계성을 포함한 자신감이 고취되고, 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된다. 이로부터 역할적 기능능력이 향상된다. 즉 동물과 인간 사이의 생태적 결속에 의한 치료와 교육 효과가 나타나고, 동물을 돌보는 과정에서 즐거움뿐 아니라 스트레스 감소가 나타난다. 정신의학자 브라운(Stuart L. Brown)은 우리가 동물들과 친하게 지낸다면, 동물들이 자신들의 생존 방법을 배우는 수단으로 [놀기]를 좋아하는 습성을 우리도 배우게 되어 '억지로가 아니라 좀더 즐겁게 노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야생 동물들의 놀이 형태를 연구하면서 "뇌, 진화, 그리고 인종학이나 동물의 행동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놀이는 우리 인간이나 다른 동물에게 잠이나 꿈처럼 삶의 중요한 것일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브라운은 텍사스에서 살인 유죄판결을 받은 26명에 대해서 연구한 결과, 그들 중 90%가 놀이가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고작 동물을 못살게 구는 잔인한 놀이를 했을 뿐이라는 대답을 상기시키면서, 놀이가 얼마나 놀랍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게 한다.

애완 동물과의 우정은 인간의 고독을 경감시킨다. 그래서 때로는 독신자, 자식 없는 부부들에게 자식과 같게 된다. 뉴욕 시립대학 아이린 디취(Irene Deitch)는 인간과 친해진 돌고래의 관찰로부터 애완동물의 치료적 역할에 대하여 "인간과 동물의 이런 유대는 이것이 자존감, 자신감, 그리고 주인의식을 증진시켜 주기 때문에, 인지적 기술(cognitive skills), 기계적 기술(moter skills), 그리고 사회적 기술(social skills)을 발전시켜 준다."고 하였다. 구체적인 치료 경우로서 "특히 돌고래와 함께 수영하는 것은 우울증(憂鬱症)과 자폐증(自閉症)을 포함한 정신적 정서적 질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으며, 어항 속의 물고기를 쳐다보는 것은 매우 긴장된 사람의 혈압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상처(傷處) 입은 동물은 동일한 인간의 상처에 대하여 치료적 기능을 발휘한다.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상처들에 대하여 상처 입은 동물들이 서로 공조되어 외로움이 극복되고, 상처 입은 동물을 돌보거나 치료해 주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가 점차 치유되는 예가 많다.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가 잘려 세개의 다리로 걸어다니는 강아지가 다리 절단 수술을 해야하는 정형외과 병동에서 어린이들과 그들 부모에게 힘과 용기를 잃지 않게 했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또 살인죄로 교도소에서 수감 중이었던 로버트 스트랜드(Robert Strand)는 교도소 뜰에서 둥지에서 떨어진 새의 다리를 치료해 주려고 간수에게 새집을 만들 나무를 부탁해서 간수가 나무를 전해 주자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말했을 것으로 회상하는 '고맙소'라는 말을 하였다. 그는 그 새를 정성스럽게 자기 방으로 데려와 보살펴 주었고, 새에 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연구한끝에 그는 존경받는 앨카트라즈의 조류인(The Bird Man of Alcatraz)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동물의 상황과 자신의 문제를 공감하는 과정에서 모든 상황 안에 깃들어 있는 섭리의 온전함을 믿게 되어 절망으로부터 다시 일어서는 힘과 용기를 얻게 된다.

지금까지 자연과의 외면, 내면 접촉을 통한 생태요법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접촉은 인간으로 하여금 전체성에 비추어 자연 순환을 인간 자신에 반영하는 것으로 자연과 생명적 관계를 통해 치유적 효과가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성의 근본은 자연의 실재와 초월적 접촉을 전제하고 있으며, 이러한 초월성으로부터 인간은 보다 온전해질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근원인 지구 생태계의 영성인 생태 영성을 인간역사에 나타난 종교, 신화, 동양사상 등과 관련시켜 재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제3장. 생태영성과 전인건강

본 3장에서는 그리스도교 생태영성과 토착종교의 생태영성 그리고 동양사상의 생태영성 등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생태요법이 강조하는 생태영성이 전인건강의 근본 토대임을 확인해 보고, 이러한 생태영성이 전인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1. 종교와 동양사상에 나타난 생태영성

현대사회의 생태위기 상황은 여러 가지 윤리적, 사회적 문제들이 종합적으로 얽혀 나타난 결과이다. 이러한 상황은 토마스 베리가 즐겨 인용하는 [방향을 조절하는 키가 없는 배의 위기]와 같은 영성(靈性) 부재(不在)의 상황이다. 클라인벨의 생태요법은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생태영성](ecospirituality)의 회복을 요청하고 있다.

지구 생태계의 관점에서 볼 때 [생태영성]이란 생태계를 통합시키는 중심이며, 인간의 시각을 생태적으로 교정시키는 힘의 근원이다. 이로부터 파생되어 나타나는 영적인 힘은 땅으로부터 인간의 소외라는 상황을 치료할 수 있으며, 반대로 그 원인들을 제공할 수도 있다. 생태영성의 역동성은 현재와 같은 환경파괴와 그로부터 야기되는 여러 가지 병리현상을 희망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현재 이 세계는 개인적, 사회적 영적 혼란과 가치관의 빈곤, 종교적 병리현상과 생태계 소외로 특징 지울 수 있는 영적 불안이 만연해 있는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영적·윤리적 병리 현상과 폭력 중독 증후군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영적 영감과 자연에 대한 초월접촉을 통하여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부여된 [생물애호심](Biophilia)과 생태학적 윤리가 펼쳐져 생태적 병증(病症)을 개선하여 더 건강한 사회와 지구를 창조할 수 있다는 신념을 되찾아 전인건강의 기초를 놓아야 한다.

본 절에서는 생태요법이 주목하고 있는 생태영성의 의미를 그리스도교, 신화(神話), 고대 부족국가의 전통, 우리 나라 무속, 그리고 동양사상 등에 나타난 다양한 측면들을 중심으로 고찰하여 보겠다. 그리하여 생태계 전체의 건강과 온전성 실현이 절박하게 요구되는 현싯점에서 그리스도교적 영성의 의미를 생태영성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신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함께 이해할 수 있음을 보이고, 북미 인디안의 자연관이나 우리 민족의 경천사상(敬天思想), 그리고 동양의 음양사상에 나타난 자연과의 친화를 강조하는 요소들 역시 생태영성으로 재해석하여 발전시킬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1) 그리스도교 생태영성

성경은 여러 부분에서 인간 건강과 땅의 건강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성서의 전체적인 맥락은 '인간은 어느 누구도 이 지구를 소유하지 못한다. 다만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인간 중심주의나 자연에 대한 도구적 가치관의 입장은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비판되어야만 한다.

창세기 창조 이야기는 1장과 2장에서 두번 나온다. 첫번째 창조 이야기(창세기 1장)에서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만드신 다음 "보시니 참 좋았다"라는 구절이 반복된다. 두번째 창조 이야기(창세기 2장)는 인간이 흙(土)에서 나온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즉 흙으로 사람은 만들어졌으며 결국 인간 존재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가르침으로써, 인간과 땅을 동일시한다. 창세기는 땅과 온 우주(하늘과 별들)를 아름다운 동산으로 그리고 있으며, 인간의 책임은 "가꾸고 지키는 것"(창세기 2 : 15)이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세상을 주의 깊게 보살피고 가꾸어 그 동산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는 인간의 사명을 암시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다스리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이다.

그런데 지난 3세기를 되돌아 보면, 그리스도교 영성이 무미건조해지고 생동력이 줄어들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근대 과학 문명의 발흥과 인본주의 그리고 서구 사고를 지난 300백년 동안 지배해온 데카르트-뉴턴적 세계관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세속적 경향은 교회 안에서도 프란치스코처럼 자연 안에서 느꼈던 경이와 놀라움이 사라지게 하였다.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Kempis)의 {그리스도를 본받음}(Imitatio Christi)과 같은 서적이나 얀세니즘(Jansenism) 등이 지난 몇 세기의 영성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비록 그들 안에는 영적 이익과 유익을 발견할 수 있지만 인간의 본성과 은총 사이에 어떤 긴장과 불연속성이 발견됨을 인정해야 한다. 문영석은 "토마스 아 켐피스의 '본성을 더욱 억누르고 극복하면 할수록 더 많은 은총을 받는다', 또는 얀센주교의 '신앙에서 오지 않는 모든 것은 죄다'라고 하였던 것들은 창조주와 피조물, 몸과 마음, 본성과 은총 등으로 철저하게 이원론으로 분리하게 된 결과다"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이러한 경향은 자연에 대하여 인간이 더 이상 아무런 감동도 느낄 수 없도록 조장 받게 되었고, 진리와 영 안에서 하느님을 흠숭하는 내면적 예배(interior worship)와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극도로 고양하였으며, 외적인 것들 곧 자연과 다른 인간마저도 완덕에 이르는 방해물로 여기게 되었다"고 하였다. 하느님의 초월성은 인간의 모든 지식과 사랑과 온전히 자유로운 선택의 무한한 지평 그 위에 계시며, 동시에 하느님의 내재성은 온 우주의 모든 입자 안에, 그리고 우리 육체의 모든 세포 안에 스며 계시며 우리 자신보다도 더 가까이 우리 안에 거(居)하신다. 지난 3세기 동안은 멀리 초월해 계시는 하느님의 초월성이 강조되어 개인의 구원과 완덕이 중심이었다면, 현대의 영성은 내재성과 초월성이 균형을 이루어 조화를 도모하는 공동체적 구원과 온전성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영성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조화는 생태계 전체의 건강과 온전성 실현이 절박하게 요구되는 현싯점에서 생태영성으로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고 본다.

시편의 "이 세상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모두 야훼의 것, 이 땅과 그 위에 사는 모든 것이 야훼의 것"(시편 24 : 1)이나, "야훼여, 손수 만드신 것이 참으로 많사오나 어느 것 하나 오묘하지 않은 것이 없고, 땅은 온통 당신 것으로 풍요합니다"(시편 104 : 24)라고 하였음은 이 세상은 아름다운 신의 잔치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도 바오로는 디모데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은 모두 다 좋은 것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디모테오Ⅰ 4 : 4)라고 하였다. 이것은 세속의 악습에 의하여 명예가 실추된 모든 자연물에 성사성(聖事性)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모든 창조물은 하느님의 비가시적 현존을 드러내는 가시적 표징인 성사이다. 이 자연은 모든 창조계 안에서 하느님의 흔적을 보며, 이를 매개로 하느님께로 이끌어 지게 한다. 이와 같은 연계성으로 전체우주와 개체는 서로 하느님의 표징이자 성사의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샤르뎅이 말하는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는 이러한 성사성을 잘 대변하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의 육화(肉化)는 자연 자체에 성사성을 함축한 것으로 지구가 하느님의 몸으로 승화되는 의미를 부여한다.

생태 여성 신학자 샐리 맥훼이그(Sallie Mcfague)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중심인 강생(降生)과 부활의 주제는 육체적 창조물에 신성을 부여하였음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맥훼이그는 환경위기 상황에 놓인 시련을 하느님의 몸인 지구에 해를 끼치는 것, 착취하는 것 등 지구 오용의 결과로 언급하였다. 예수의 못 박힘에 대한 성서의 설명처럼 지구의 훼손은 인간의 손으로 하느님을 고통받게 함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전통적 신관(觀)이 아주 강력한 초월적 군주로서 적들을 이기고, 자신이 만든 지구 밖에 존재하는 위엄 있고, 가까이 할 수 없는 나이 많은 남자로서의 하느님 상을 떠올리는 것에 대해서 인간의 지구 의존성을 무시하는 태도를 기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지배적 이미지는 하느님과 지구 사이에 심각한 이분법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신의 여성적 이미지를 강조하였다.

환경문제의 접근에 있어서 그리스도교 교회는 1979년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하여 [자연 환경보호 수호자]로 선포된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신심(信心)을 모델로 한다. 그가 보여준 자연 피조물에 대한 태도는 생명에 대한 경외, 피조물에 대한 사랑, 창조주께 대한 찬미와 믿음, 철저한 무소유와 애긍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의 [태양의 찬가]는 창조계 전체와 깊은 가족적 유대 정신을 보여준다. 그는 태양과 달, 불과 땅, 죽음과 생명, 그 모두를 형제 자매라고 부른다. 이것은 우주의 모든 것이 짝지어 서로 화해된 상태로 모두 다 하느님 대전에서 하나의 가족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 준다. 보나벤뚜라는 프란치스코 전기에서 "프란치스코는 만물이 동일한 근원에서 나왔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자연과 그 안에 사는 모든 생물이 그와 똑같은 기원을 가졌다는 생각 때문에, 모든 피조물들을 그의 형제 자매로 불렀다"고 하였다. 또한 프란치스코는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과 물질 그 모든 것은 신(神)이 사랑하시는 창조물로서 고유한 가치가 있으며 우리와 같은 피조물로서의 권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하였다.

땅에 대한 하느님 사랑은 모든 것을 해방하고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만드신다. 이러한 기초 위에 자연 보전적(保全的) 입장은 소비가 아닌 보존(保存), 탐욕이 아닌 필요(必要), 지배가 아닌 권한(權限)의 부여(賦與), 자연의 개발이 아닌 창조(創造)의 보전(保全) 등으로 전환된다. 이로써 그리스도교 신학은 생태영성의 관점에서 인간 건강과 땅의 건강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토착 종교에 나타난 생태영성

여기서는 인간과 자연의 전일적 자연관을 함축한 신화(神話)에 나타난 생태영성과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토착신앙에 나타난 자연과 합일된 생태영성과 우리 나라 무속(巫俗)에 나타난 생태영성들을 살펴보면서 자연과의 친화를 강조하는 이러한 요소들 역시 생태영성으로 재해석하여 발전시킬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① 신화에 나타난 생태영성

생태영성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보다 원형적인 형태로 모든 존재의 통합성(統合性)과 동질성(同質性), 전일성(全一性)을 나타낸다. 융은 "신화(神話)는 고대와 현대를 이어주는 시간적 전일성(全一性, oneness)을 지니고 있어 인간 역사 속에 여러 가지 상징적 이미지를 오늘날에도 재현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고대 그리스 신화나 미국 인디언의 민담(民譚)을 읽으면서 그것들이 오늘날의 영웅이나 극적 사건과 아무런 관련성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깊이 살펴보면 그것들은 상징(象徵)으로서 아직도 인류와 관련성을 갖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현대인의 복잡한 생활양식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느껴지는 고대 전통들이 현재와 서로 연결되어 전일적(全一的)인 입장으로 새롭게 인식되는 것이다. 따라서 신화들의 공통적 주제인 대지(大地)와 거룩한 존재에 대한 언급은 인간과 우주 전체와의 유기적(有機的)인 연대(連帶)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베리는 신화를 무엇보다도 "우주의 신비스런 근원(根源)에 대한 인간 정신의 해석"으로 본다. 신화와 상징은 인간 무의식이 종합적으로 서술된 문화적 산물이기 때문에, 인간사(人間史)를 압축하여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신화는 인간을 성스러운 존재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은 그 자체로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인간 역사 안에 정신의 무의식적 내용은 현재의 정신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의식적으로는 그 내용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무시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그것이 나타내는 상징적 형태에 의해서 지금도 반복해서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은 우주와 실체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얻을 수 있다. 이들 중 인류 전체에 공통된 정신적 유산으로 계속 유지되고 전달되는 정신적 부분을 융은 [집단 무의식](集團無意識)이라 불렀다. 집단적 상징 안에는 모든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전인간 존재의 전일적(全一的) 관념이 분명히 표현되고 있다. 신화(神話)와 종교적 가르침에 [우주적 인간의 상(像)]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우주적 인간의 상은 일반적으로 아담(Adam)이나 페르시아의 가요마르트(Gayomart)로 나타나기도 하며, 심지어 전세계의 기본적 원리로서 기술되기도 한다. 특히 고대 중국인은 어떤 것이 창조되기 이전에 하늘과 땅에 그들의 형태를 부여한 반고(盤古)라 불리는 신인(神人)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화들은 존재에 대한 경외, 자연에 대한 숭배 그리고 인간의 근본을 땅과 관련된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 실재는 배고픔, 권력, 성, 생존, 종족(種族)의 보존 등과 같은 국한된 본능이나 목적기전(目的機轉)의 용어로는 설명될 수 없다. 인간의 목적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욕구는 스스로를 초월하여 우리들 내적인 정신적 현실을 오직 [상징]에 의해서만 표현할 수 있는 생생한 신비로 나타난다. 따라서, 고대 벽화나 문화적인 잔영(殘影)으로 남아 있는 고대의 흔적에서 오늘날로 이어지는 전일적 일관성(一貫性)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대적인 집단 무의식적 상징이 현대의 환경 위기적 문제점을 규명하고 치유하고 대안을 마련하는데 필수적이다.

② 북미 토착종교의 생태영성

토착 종교의 신비 의식은 융의 집단 무의식적 상징으로서 인간의 자연에 대한 감수성, 성스럽게 느끼는 자세, 창조주에 대한 경외심(敬畏心)이다. 이것은 인간이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경심을 일깨워 주고, 주체적(主體的) 통교성과 상호 감수성(感受性)을 회복하는데 기여하며, [인간 중심적 사고]를 [생태 중심적 사고]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토마스 베리는 산업문명(産業文明)의 후유증으로 오늘날 우리가 겪게 된 생태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생태론적 비전을 {새로운 이야기}로 제시하였다. 그는 생태계 위기로부터 지구를 구하기 위한 새로운 이야기에,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가 자신의 고유성(固有性)과 주체성(主體性)을 유지하면서 지구 안에서 조화와 통일성으로 살아가는 북미 원주민의 토착적 이야기를 포함하고자 하였다.

각 부족의 종교적 전통이나 신화를 되돌아 보는 것은 그냥 지나간 과거의 관습이나 추억을 더듬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위해 잃어 버린 실재를 되찾는 개성화(個性化) 과정을 추구하는 작업이다. 이것은 우리가 당면한 지구적 차원의 위기를 전체성에 입각한 생태적 입장으로 해결하는 대안의 기초가 된다. 베리는 1940년대부터, 고전 문명을 연구하면서 인류 공동체 초기의 원시종교 안에는 인간과 지구의 유대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원형적 형태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슈 인디언(Sioux Indian) 족의 용감한 전사였던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가 전투 중에 우주의 힘에 기도를 할 때, 그 자신이 우주의 깊이와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하였던 것에 대하여, 영적 인간이 그가 태어난 땅의 신비한 힘과 지속적인 친교 상태에 있었다고 보았다. 베리는 이것을 [땅의 신비주의]라고 명명하였다.

베리는 북미 원주민들이 현대 문명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집단 무의식적인 원형적 세계와의 내적 친교'라고 생각하였다. 베리는 서구 사회가 원형적 세계와 단절된 것은 이성적(理性的) 과정과 현상적(現像的) 에고(ego)를 지나치게 발전시켰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비생태적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보았다.

원시 부족 종교들의 체험에서는 자연 세계에 영묘한 능력을 부여하는 생태 중심적 사고가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마치 "당신-너(Thou)"를 대하듯 자연 세계와 이야기한다. 어떤 경우에는 외경(畏敬)과 경탄(敬歎)에 역점이 두어지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자연 세계가 두려움의 대상으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제의적(祭儀的) 봉헌으로 그 영(靈)들을 달랜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 세계는 영의 현존과 더불어 살아 있는 존재로 인식된다. 이들에게 있어서 자연은 일체의 가치를 떠나서 그 자체의 내적인 현존과 존엄을 갖고 있다.

자연을 이같이 신성시하는 태도는 워싱턴주의 두와미쉬(Duewamish) 부족의 추장에게 인디언들의 땅을 매입하고, 이 부족을 인디언 제한 구역에로의 이전을 협조해 달라는 정부의 요청에 대한, 인디언 추장 시에틀(Seattle)의 답장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추장의 편지에는 그 땅의 경제적 가치나 가격의 흥정 따위는 없다. 이 추장은 백인들의 파괴적인 삶의 방식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고 있는 목격자로서, 온 땅을 백인들의 맹습 하에 땅과 강, 산, 공기, 그리고 그 땅에 사는 동물들에게 발생할 일들에 대해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예컨대, "땅은 거룩하다. 강들한테 애정을--, 공기는 귀중하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등등은 제목만 들어도 자연과 합일된 생태적인 입장이 농후하다.

③ 한국 무속에 나타난 생태영성

한국적 토속 전통의 사고에는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무속신앙(巫俗信仰)이 자리하고 있다. 무속신앙 안에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존중과 자연에 대한 경외가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자연 친화적 자연관이 있다.

한국의 무속(巫俗)에서 자연은 신성한 상징들의 보고(寶庫)이다. 김태곤(金泰坤)이 그의 저서에 열거한 273 위(位)의 신령들 가운데 대략 63%가 자연과 관련되어 있다. 즉, 한국 무속에서는 자연의 신성을 찾아볼 수 있는 상징적 의미가 많다고 할 수 있다. 고대 한국인들은 자연에서 신성(神性)을 찾고, 그러한 신령들을 숭배하는 태도에서 생태적 자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김인회(金仁會)는 "자연현상이 바로 신의 강림처(降臨處)가 어떠한 곳이었나를 보여주는 것이지, 그곳이 신의 거처(居處)이거나, 또는 곧 신격(神格) 그 자체라는 뜻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고대 한국인이 품고 있던 범신론(汎神論)적 사고를 보여주는 것이다.

무속적 사고방식에서는 어느 것도 우연히 발생하지 않는 전일성(全一性)을 내포하고 있다. 어느 신방의 말에 따르면 특별한 자연현상은 흔히 신의 힘을 암시한다. 예컨대 기묘한 형상의 바위와 쉽게 눈에 뜨이는 북두칠성, 세파에도 변함없이 높이 치솟은 산이나 고목(古木), 생명수를 내뿜는 신선한 샘, 무한한 힘이 용솟음치는 광활한 바다 등은 모두 무속 신앙과 관련된 것이다. 환경 보전과 생태학적 가치를 무속과 관련지어 본다면 환경을 보호하고 소중히 하기 위한 노력은 신성(神性)에 대한 비전과 결합될 필요가 있다. 키스터 다니엘은 "한국의 전통에서 산에 솟아 있는 둥근 바위 앞이나 샘터 또는 바닷가에서 치성을 드리는 무속 신봉자는 자연과 친화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유태 교회당에 있는 유태교 인이나 천주교 성당의 밀폐된 공간 안에서 기도하는 그리스도교 인들보다 자연에 대한 신성한 비전을 더욱 잘 보존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한국인의 무속 전통이 얼마나 생태적인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한국 무속에 나타난 생태적 자연관은 굿에서도 잘 나타난다. 굿이 시작되면 태평소 소리와 꽹과리에 맞추어 신명나게 원무(圓舞)를 추는 행위 가운데 개개인들은 공동체로, 또한 하늘의 신령들과 교감하는 공동체로 질적(質的)인 변화를 가져온다. 엘리아데(M. Eliade)는 굿을 언급하면서, "종교 행위를 신과 교통하려는 인간 행동양식을 표현한 것이며, 이러한 의식(儀式)은 인간과 자연과 신이 조화로이 일치하는 상태로, '시간과 변화에 의해 때묻지 않은' 온전성과 조화와 자유가 넘치는 낙원의 상태로 회귀하려는 공동체의 원형적 노력을 형상화(形象化)하는 것"이라 하였다.

한편, 한국인의 정신 속에는 하늘을 숭상하는 경외(敬畏)의식이 있다. 한민족(韓民族)을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 일컫는 것과 관련하여 단군신화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한국인들은 미(美)의식을 대명천지(大明天地)를 밝히는 천신(天神)의 광채로 나타내었다. 한국인의 색채(色彩) 의식에 대한 고찰에서 민주식(閔周植)은 육당(최남선)의 말을 빌려 유별나게 많이 사용하는 백(白)자와 백색(白色)이 [' '의 문화]를 이루며, 여기서 " "은 태양의 광명을 뜻할 뿐만 아니라, [신이나 하늘]을 내포하고 "밝음을 숭상하는 제천의식의 근본 정신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한민족의 하늘을 경외하는 사상(天神敬畏思想)을 잘 나타내고 있다.

(3) 동양사상에 나타난 생태영성

동양사상에 나타난 영성적 측면들을 살펴보면서 자연과의 친화를 강조하는 이러한 요소들 역시 생태영성으로 재해석하여 발전시킬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인간이 흙에서 나온 자연 안의 존재임을 상징하는 의미는 동양사상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예컨대 동양의학의 고전 {황제내경 영추}-사객(邪客)편을 보면,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 있는데, 사람의 머리는 둥글고 발은 네모져 천지(天地)와 상응한다.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두 눈이 있고, 땅에 구주(九州)가 있듯이 인체에는 구규(九竅 - 두개의 耳, 두개의 目, 口, 鼻와 前陰·성기, 後陰·항문으로 9개의 구멍)가 있으며, 하늘에 풍우(風雨 기후 변화)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희노(喜怒 감정 변화)가 있다. 하늘에 천둥번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음성(音聲)이 있고, 자연계에 사계(四季)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四肢 팔다리)가 있고, 자연계에 오음(五音)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오장(五臟 - 肝, 心, 脾, 肺, 腎)이 있고, 자연계에 육률(六律 - 十二律 중에 陽聲에 속하는 여섯가지 소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육부(六腑 - 膽, 小腸, 胃, 大腸, 膀胱, 三焦)가 있다"고 하였다. 이는 천지자연과 인간의 동형적(同形的)인 관련성을 말해준다.

또한, 음양 관계에 있어서 "자연계에 겨울과 여름이 있듯이 인체에는 한열(寒熱)이 있다. 하늘에 천간(天干)이 있듯이 인체에는 열 손가락이 있고, 땅에 십이지(十二支)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열 개의 발가락과 음경(陰莖), 고환(睾丸)의 열 두개가 있고, 여자는 이절(二節 - 陰莖과 睾丸)이 부족하나 잉태(孕胎) 능력이 있으며, 하늘에 음양(陰陽)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부부(夫婦)가 있다"고 하였다. 이는 인간과 천지자연의 유사성에 있어서 천지자연이 인간처럼 유기체적인 성향을 함축하고 있음을 천지의 음양 조화를 통해 말해 주는 것이다.

동양의 이러한 사상은 제임스 러브록(James E. Lovelock)의 가이아 가설(Gaia hypothesis)을 상기시켜 준다. 가이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모신(地母神)의 이름인데, 러브록은 이를 가지고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지구'를 표현하고 있다. 러브록은 데이지 세계(Daisy world)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실험을 통해 가이아 지구가 사이버네틱스의 원리에 따라 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 모의실험의 의의를 환경보전을 위한 종 다양성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실험의 의의는 동양의 음양사상을 통해 파악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음이 성(盛)하면 양이 쇠(衰)하게 되고(陰實陽虛), 양이 성하면 음이 쇠(陽實陰虛)하게 되는 음양 역동성의 원리는 미묘한 피드백에 의해 균형을 유지하는 가이아의 사이버네틱스 원리와 견줄 수 있다고 여겨진다.

한편 하늘의 도(道)와 땅의 리(理)로 부터 사색된 동양철학의 오행(五行)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라는 성상(性象)으로 표시된다. 그 구성은 춘하추동의 사계 기후(四氣)와 땅의 기운인 토성기(土性氣)이다. 목(木)은 봄의 기후이며, 풍(風) 기운이다. 화(火)는 여름의 기후이며, 열(熱) 기운이다. 금(金)은 가을의 기후이며, 조(燥) 기운이다. 수(水)는 겨울의 기후이며, 한(寒) 기운이다. 토(土)는 늦여름과 초가을의 기후이며, 습(濕) 기운이다. 습(濕)은 물을 가지고 있다. 물은 물질의 구성에 매체적 물질이며, 땅에 작용하는 오기상(五氣像)은 물의 변화를 주도한다. 따라서, 목화토금수라는 오기상(五氣像)은 땅에 있는 모든 물질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연의 힘이다. 봄기운은 수분운동을 강하게 상승시킴으로써 생명들을 움터 낸다. 여름기운은 수분의 응고적 힘인 찬(冷) 기운까지 다 증발시킴으로써 기상이 수분의 결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넓게 퍼지게 한다. 가을은 수분의 운동이 하강하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모든 물질이 수분을 빼앗겨 마르고 딱딱하여 진다하여 딱딱한 것의 상징인 금상(金狀)으로 표현한다. 겨울은 수분증발이 거의 없다. 겨울은 결박 주체인 찬 기운을 만나며, 물이 하강 응고하여 한곳으로 모이니 이를 수상(水像)이라 한다. 토상(土像)은 뜨거운 여름의 수분이 하늘에서 찬 기운과 만나서, 증발시키려는 기운이 억제되어 승강을 못하고 허공에 머무는 상이므로 이를 습(濕)이라 한다. 그러므로 오행의 실체는 오기(五氣)의 모습이며, 순환하는 사계절의 기후상(氣候像)이다.

그런데 인간의 인위적 역할 때문에 천도(天道)를 따르려는 지구의 리(理)를 지구가 지킬 수 없어 지구에 이상(異狀)이 나타나게 된다면 우주의 능동적인 질서 변화는 당연한 것이 될 것이며 같은 맥락에서 인간 존재가 지구 환경에 암과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면 지구 가이아는 인간을 소거하게 될 것이다.

동양철학의 생태적 관점을 치료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오장육부와 오행관계에서 오장(五臟 - 肝, 心, 脾, 肺, 腎)은 음(陰)이며, 육부(六腑 - 膽, 小腸, 胃, 大腸, 膀胱, 三焦)는 양(陽)으로서, 음양(陰陽)조화는 하늘의 '뜻'과 땅의 '따름'을 내세워 음양조화를 중시한다. 음양 성격과 작용은 "음(陰)은 땅을 본뜬 물(水)이며 내부를 지키는 영양으로 양(陽)의 작용이 지나치지 않도록 긴장시키고, 양(陽)은 하늘을 본뜬 불(火)이며 외부에 많아 적당히 발산하여 기온의 변화로부터 신체를 보호한다"고 함은 음양의 긴장 속에 조화가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오행(五行) 분류에서는 오신(五神 - 魂, 神, 意, 魄, 志), 오정(五情 - 怒, 喜驚, 思憂, 悲, 恐), 오미(五味 - 酸, 苦, 甘, 辛, 鹹), 오색(五色 - 靑, 赤, 黃, 白, 黑), 오관(五官 - 眼, 舌, 口, 鼻, 耳) 등은 인체의 건강이 바로 기후를 비롯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건강하게 살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예컨대 간(肝)은 혼(魂)을 간직하고 있어서, 놀라는(驚) 것이 간을 상하게 하고, 봄철에 병이 움직이고, 눈병(目)과 관련되어 있는 것 등은 인간과 우주가 하나임을 증명해 준다. 이처럼 간을 치료하기 위한 음식의 맛과 색, 그리고 주변 환경의 구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은 서양적인 사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2. 생태영성(ecospirituality)이 전인건강에 미치는 영향

생태영성은 인간 존재가 주변의 자연 안에서 하느님과의 관계성을 추구하고 발견하고자 하는 영성으로 생태계를 통합시키는 중심이며, 인간의 시각을 생태적으로 교정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인간은 물질성과 영성이 통합된 존재다. 인간 영혼은 모든 물질계를 초월하여 온전하신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생태영성은 자연과의 [초월적인 접촉(upreach)]을 통하여 땅으로부터 인간 소외라는 상황을 극복하게 하며, 또한 동시에 하느님이 우리들 안에 내재해 계심을 깨닫는 [내면적인 접촉(inreach)]을 통하여 전인건강을 달성하도록 한다. 따라서, 생태영성은 초월성과 내재성에 의해 생태계 전체의 건강이 실현되는 토대가 된다고 볼 수 있다.

(1) 생태영성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어쩔 수 없는 종교적 존재(incurably religious)이며, 영적인 존재이다. 인간에 있어서 으뜸이 되는 가르침을 종교(宗敎)라 한다. 인간들이 종교를 통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종교적 가치관이 인간의 사고와 느낌과 행동 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영성의 중심성(中心性)을 말할 수 있다.

영성(靈性)은 비물질성(非物質性)을 전제한다. 영성은 본질 및 활동의 원인에 있어서 물질에 의존하지 않는 정신적 속성이다. 영성은 신령스러운 총명한 품성(品性)이나 성질, 또는 천부의 총명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서 영성은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聖靈)의 역사에 대한 생생한 증거를 역대의 신비가들과 성인들을 통해 드러내었다. 동시에 이들은 자연계 안에서 그들의 영감을 발견하였는지를 드러내 준다. 지혜서는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그들을 만드신 분을 알 수 있다"(13. 5)고 증언한다. 이는 이신론(理神論)적 방법이 아니라 바로 직관으로 하느님을 발견함을 말한다. 시편에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속삭이고, 창공은 그 훌륭한 솜씨를 일러줍니다. 낮은 낮에게 그 말을 전하고, 밤은 밤에게 그 일을 알려줍니다".(19. 1-2)는 자연계의 아름다움과 경이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감탄과 찬양, 매혹과 감사로 채워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영적, 창조적, 심미적 가치들로 채움을 알 수 있다.

생태요법은 이러한 자연적 영성을 지구와 생태계에 대한 관심으로 구체화시킨다. 생태 심리학자들은 생태 영성이 지구 위의 모든 식물, 생물, 동물들이 서로 의존되어 있다는 통합성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생태 영성의 통합적 의미는 ①정의를 실천하는 일, ②은덕에 보답하는 일, ③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로 요약한다. 이들은 각각 실천적인 면에서, ⓐ공공적 구조적 정의 실현과, ⓑ대인 관계적 의무 이행을 중시하고, ⓒ개인적 삶에 있어 초월적, 구도적 삶을 추구한다. 이러한 통합영성은 개인을 생태적으로 개방되도록 하고, 생태계는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하며, 생태적 공동체를 구성하게 되어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룩하는데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통합영성은 현대 영성이 공공적 구조적 정의 측면이 간과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생태적 의미에서 인간이 타 생명체와 차별의식을 지니고 있는 한 인간은 타인과도 분리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예전에 영성은 주로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개인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생태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생태시대에 있어서 영성의 의미는 삶의 현장인 이 세계(자연)와의 유기적 관계 안에서 생태적 범위로의 확장을 요구한다. 따라서, 생태영성은 인간 공동체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 대한 유기적(有機的) 연대(連帶)를 포함하고 있으며, 전지구적 의미를 함축한다.

(2) 생태영성과 전인건강

생태적 자연 건강을 논할 때, 온전한 인간 건강은 자연과 일체가 되려는 자세를 통해서만 실현된다. 이는 인간 건강이 지구 환경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첫 인간 아담(Adam, '흙'이라는 뜻에서 유래됨)의 어원(語原)에서 땅과 인간을 동일시하고 있으며, 토착종교에서는 자연에서부터 원초적인 신적 감각을 되살리고 있다.

종교의 초자연적 영성이 우리의 의념(意念) 안에서 지향되고 동일시되면, 우리의 마음에는 중심성(中心性)에 입각한 질서가 잡히게 된다. 왜냐하면 가장 으뜸이 되는 존재가 마음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면, 차후의 마음 자리 배열에는 혼란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마음 자리 가운데 경쟁적 자기 과시욕(誇示慾)이나 자아 도취(自我陶醉), 혹은 이기적 탐욕이 있게 되면, 혼란과 파괴성향이 나타나고, 어떤 경우에는 질병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흔히 우리는 '신앙을 가졌더니 불치의 병으로부터 쾌유되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것은 마음자리의 질서가 잡혔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바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 영성적으로 고양된 의식을 추구하여 참된 신앙을 구축하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 안에서 참된 이웃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며, 더 나아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태계 안에서 생태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전인건강의 입장에서 보는 영성의 중심성이다.

인간 영성은 주변의 무생물이나 하등동물에게 반영된다. 영(靈)이 반영되어 표출되는 것은 진동(振動)이나 파장(波長)의 형태로 감지되는 [텔레파시]로 가정할 수 있다. 우리의 육체적 건강도 정렬이 잘된 파장 내에서는 좋은 여건을 만나게 된다. 건전한 사고 체계는 건강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우리 몸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즉 효율적 섭생(攝生)으로 혈(血)이 충만해 지고, 적절한 활동으로 기(氣)가 잘 순환하도록 하여 건강을 유지한다. 실천적 면에서, 자연영성(自然靈性)에 귀의(歸依)하는 훈련은 인간에게 잃었던 야생성(野生性)을 회복시키고 자연 영성과 합일을 이루게 한다. 또한, 인간의 선천적인 생물 애호심과 지구와의 동일시에 대한 깨달음은 자아 정체성(正體性)을 확립시켜 생태적 온전성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안내역할을 한다.

영성은 실제 생활의 영역에서 우리에게 많은 보화(寶貨)를 가져다준다.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얻는다 해도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마음이 산란할 때 조용한 산이나 푸른 들판으로 나가면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평온해짐을 우리는 느낀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살아간다. 자연에 무관심한 성직자, 수도자, 신앙인이 있다면, 그는 영적으로 빈곤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연은 곧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을 발견할 수 있는 투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는 "자연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책이다"라고 하였고, 프란치스꼬 성인은 자연 안에서 신의 영(靈)을 섬세하게 느끼면서 [태양의 노래]와 같은 여러 찬미가를 불렀다.

생태영성을 고양시키는 명상(暝想)은 전인건강을 위해 대단히 좋다. 이러한 명상의 본질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고르는 것, 그저 기분 좋은 의식의 상태를 맛볼 수 있다면 전인건강을 위한 명상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명상은 자연 속에서 마치 호수의 수면이 잔잔해져 자신의 마음을 비춰 볼 수 있는 상태나 흙탕물을 가만히 두어 흙먼지가 가라앉게 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자연 속에서 신토불이(身土不二)에 입각한 기도는 우리가 속한 자연 안에 펼쳐진 하느님의 영(靈)과 나누는 편안한 영적 대화이다. 이러한 기도는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말없이 가만히 지켜보는 것처럼 자연을 음미하며 편안하고 평화로운 영적 교감(靈的交感)을 이룰 수 있게 한다.

도교(道敎)는 만물의 구성 원리인 '도'(道)보다 근원적 위치에 '자연'을 두고 있다. 이것은 그냥 순수하게 자연에 자신을 개방하고 내맡김으로써(無爲自然)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연과의 접촉은 마치 도(道)의 무위성(無爲性)을 따르는 것과 같아서, 어떤 인위적(人爲的) 사고나 이론적 태도를 버리고 순수히 유기체적 체험이 가능하도록 하기에 전인건강을 가능하게 한다.

결 론

전인건강을 지향하는 생태요법(Eco-Therapy)은 인간의 영적,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통합적으로 생각한다. 인간은 천부적(天賦的) 자연 영성에 따라 개체적으로 선(善)함에 이끌리는 거룩함을 통하여 생태적 자아 완성을 추구하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에 대한 귀속적(歸屬的) 연대감(連帶感)을 견지함으로써 영적, 정신적 건강과 신체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생태계 전체의 건강함이 없을 때 인간의 참된 건강은 실현될 수 없고, 이웃이 편안하지 않을 때 나만의 안녕(安寧)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생태요법이 제시하는 건강의 길을 모든 생명을 포함한 이타적(利他的) 개방성(開放性)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인건강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건강은 나를 둘러싼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인간 건강은 신체적 좋은 컨디션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의 상태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또한,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며 유기적 전체로서 우주의 일부이기 때문에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는 모든 생태계의 건강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주위 환경의 파괴는 바로 자기들 삶의 터전에 대한 파괴이며, 하느님의 몸인 지구에 대한 훼손으로 하느님을 경시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구 환경파괴는 현대사회가 서구적 산업사회(産業社會)를 지향하고 있는 한 계속될 것이며, 이를 멈출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쉽지 않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에 본 논문은 환경파괴와 관련하여 생태계의 생명위기가 바로 인간 건강의 위기(危機)로 귀결됨을 부각시켜 경각심을 일깨우고, 전인건강을 위한 생태영성 회복의 필요성을 보이는데 주력하였다.



제1장에서는 환경성 질환과 치료에 대해 다루었다. 근대 이후 산업화의 물결은 여러 가지 환경성 질환들과 신종 전염병을 나타나게 하였으며, 이에 대한 서양의학의 치료는 정신과 육체를 분리시키는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한 나머지 질병퇴치에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서양의학의 한계점에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대체의학과 맥을 같이한 동양의학을 살펴보았다.

서양의학은 질병을 분석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병명(病名)이 계속 양산(量産)되고 있다. 병명은 환자의 상태나 질병의 원인에 대한 핵심적인 의미를 함축한 명칭이지만 병명에 의해 대부분의 환자들은 스스로를 한정하게 되고, 자신의 상태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여유 있는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심리적으로 고착(固着, fixation)되어 오히려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위축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에 반해 생태요법은 '생태적인 자아 실현'을 돕는 것에 일차적인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세계에 대한 인간의 개방성과 관계성을 중시한다. 전인건강은 현재 질병의 유무나, 장애의 유무보다는 현존하는 '나(自我)'로서 세계 내에 전체로서의 부분인 자아 실현에 달려있다. 이러한 전체성에 입각한 건강관은 우리를 '온전함'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지구적 자아' 안에서의 바른 정체성을 깨닫게 한다.

생태적인 입장에서 질병을 치료하려는 상담자·치료자는 환자가 질병의 생태적 의미(온전성의 실현)를 깨달을 수 있도록 협조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전인건강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정신적, 영적 건강과 모든 생명체가 자연과 공생관계에 있다는 생태학적 윤리를 회복하게 한다.

제2장에서는 전인건강을 위한 생태요법을 다루었다. 여기서 클라인벨이 주창한 생태요법의 특징을 전인성, 생명성, 상호 관련성, 우주적 관점, 소외의 극복 등으로 재정리해 보았고, 자연과 접촉하는 인간의 세 가지 측면(내면접촉, 초월접촉, 외면접촉)을 살펴보면서 생태적 시각으로의 관점 전환을 유도하였다. 뿐만 아니라 생태요법적 통찰들이 실제로 구체화 된 몇가지 예를 논하였다. 그런데 인간의 개체성(개성화)을 간과한 '생태적 시각'이나 생태 영성에 따른 실천적인 부분인 '생태 정의'를 절대시한다면 편견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 '생태 정의'에 있어서 정의로움의 공공성(公共性)·공리성(功利性)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현대사회의 공리주의(功利主義)에 입각한 다수결의(多數決議)의 원칙은 소외(疎外)된 소수(小數)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소외된 소수는 종(種)의 다양성(多樣性)을 지향하는 '생태 정의'에 부합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어떻게 이 세계에 대한 올바른 생태적 시각으로 모든 생명의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가는 완성되어져 가는 이 세계(becomming)에서 과제(課題)로 남아 있다. 따라서 인간의 영적 경외심과 겸허한 행동으로 오로지 선(善)을 지향하는 지향성(志向性) 안에 지속적인 깨달음을 추구하고, 그러한 깨달음(개성화)을 실천하여야 한다.

제3장에서는 생태요법과 전인건강에 있어서 생태영성의 중심성(中心性)을 강조하였다. 이제까지 우리는 인간 건강에 대한 생태영성을 주요 부분으로 간주하지 않았었다. 단지, 생태 심리학자나 몇몇 의학자에 의하여 치료에 적용해볼 뿐이었다. 그러나 생태영성은 생태계를 통합시키는 중심이며, 인간 시각을 생태적으로 교정할 수 있는 힘의 원천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생태영성을 통하여 우리는 땅으로부터 인간 소외라는 병적 상황을 극복하고, 자연과의 [초월적인 접촉(upreach)]과 [내면적인 접촉(inreach)}을 통한 전인건강의 기초를 얻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전인건강은 언제나 힘차고 생기 차며, 확장되고, 양적으로 증대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모든 삶의 양상이 폭넓은 의미의 생태적 건강 개념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이 온전성을 향해 진화하는 이 세계에서, 샤르댕이 말하는 '진화(進化)의 수동성(受動性)' 안에 질병과 결핍, 고통과 죽음 등 부정적인 부분들이 긍정적인 부분으로 승화(昇華)되는 창조진화(becomming)의 신비를 간과하고는 이해 될 수 없다. 이러한 자연 순응적 생태영성이 바로 자연과 초월적, 내재적 접촉으로부터 유출되어 영적, 정신적, 신체적 온전성을 이루는 것이 생태요법의 전인건강이다.

본 논문을 마감하면서 생태요법이 땅(지구)과의 일체감을 중시하면서 모든 생명을 키워 내고 에너지를 공급하는 태양의 중요성이 간과(看過)되고 있음에 주목하고자 한다. 주역(周易)에 부양억음(扶陽抑陰)이라는 사상이 있다. 이것은 중국 고대 사상이 태양을 숭상하는 관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뿌리에 천지자연(天地自然), 사계물후(四季物候)의 변화과정을 관찰하는 가운데 만물의 생장 번성과 수렴(收斂) 잠장(潛藏)이 태양의 일조(日照)시간 열광(熱光)의 강약과 유관함을 이해함에서 비롯되었다. 태양이 지구상 모든 생명활동의 원천인 양기(陽氣)로 볼 수 있는 것은 지금에 있어서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태양의 역할은 대지·땅과 함께 생태영성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예컨대 인간의 자연에 대한 접촉에 있어서 태양에 대한 이미지는 초월성과, 대지(땅)에 대한 이미지는 내면성과 보다 더 깊게 관련된 것으로 가정할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 치유적 관계는 태양과 땅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관계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생태요법은 하늘과 땅이 양(陽)과 음(陰)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는 관점(태극운동)에서 태양성(太陽性)에 대한 연구 진척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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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n effect of ecospirituality on the holistic health

Park, Sun Sik


Health dose not consist only in the good condition of physical body. As the state of body is closely connected with that of mind and spirit, we should take into account the condition of mind and spirit also. Health in this integrated and holistic sense including the good condition of mind and spirit, depends on the social, cultural and natural environment. For man is not an isolated being, but a part of the universe which is an organic whole.

In this article, I tried to explicate how the mutual interaction occurs between man and The Creating Spirit, man and nature, and finally man and other fellow human beings in the process of recovery and growth. And I went on to introduce ecotheraphy as an alternative approach to health and evaluate it with the new perspective obtained through the insight into such interaction. More detailed aims of this article may be summed up as follows

Firstly, this article intends to criticize the present approach to health based on the western modern medicine. The western medicine of present day is taking the dualistic view on human being according to which mind and body are sharply divided. And It is focusing on the health of the separated individual while disregarding the harmonious relationship between man and his environment. However, the ultimate source of health and vitality of all creatures is the earth. And such vitality flows around along the circulatory route of the ecological system. Since the western medicine fails to notice this holistic characteristic of the circulation of vitality, it fails either at helping man live in health.

This article is also pointing out another weaknesses of the western medicine. The western mainstream medicine has been developed only to satisfy human needs and desires, reflecting the negative influence of the crisis in our society. Because of the patriarchical ideology, medical investment has been limited to the field which is related to the health of physical body and promises cash reward, while the study of more fundamental principles of medicine being neglected. Besides, in this world of high technology, the maternity of God (the value of patience, generosity, warm-heartedness, mercy) is being disregarded. As a result, the agenda set up by secular scientists and technologists for the realization of the millenium is anthropocentric and anti-ecological.

Another major aim of this article is to suggest a more integrated concept of health matching well with the new world view based on modern physics, biology, process theology, and eco-feminism. This new concept of health concerns not only the exclusion of physical illness but also the prosperous life of human being in harmony with the entire eco-system. In other words, new concept of health emphasizes rediscovery of the root of human mind and spirit, that is, the earth. Not the earth belongs to man, but man belongs to the earth. Man is not the weaver of the network of life, but a thread of the network so weaved. Therefore, we, human beings should convert to earth-centricism and eco-centricism from the illusion of anthropocentricism. Only such shift of paradigm can ensure us healthy life.

This article also discusses the real meaning of pain, suffering, and death in the light of the great stream of ecological circulation. Moreover, it tries to show with examples how an organism responds cooperatively to the affection of environment in the process of healing. Through this, the horizon of our vision would be widen and we could have the inreach of our inner selves, the upreach of God, and the outreach of our ecological environment.

Finally, this article was written to explore the methodology for healthy living on the base of ecological sensitivity. So it is inquired how to live in harmony with others. One of the way proposed here is to live in humility of nature with the scope of vision enlarged to the dimension of the earth. In addition to it, realizing the importance of encounter with nature should be stressed too. And in this article, the traditional thoughts and customs including shamanism are appreciated in connection with ecotheraphy. For such thoughts and customs could give us hints for the practice of ecological education and environment-friendly life. For more concrete discussion, this article also surveys some health care methods based on the insight into the dynamic interactions among spirit, mind, and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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