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장면이 있다. 강호를 떠돌던 주인공이 우연치 않게 무공비급을 손에 넣어 절정의 고수로 거듭나는 장면 말이다. 강만길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가 쓴 『분단고통과 통일전망의 역사』는 민족사를 보는 나의 시야를 단번에 넓혀준 무공비급 같은 책이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절정의 고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인데, 이는 강 교수의 책이 뛰어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나의 노력과 재능 부족 때문임을 미리 밝혀둔다.
잘 알려져 있듯이 강만길 교수는 한국근현대사 연구의 거목이자, 한국사회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해 온 실천적 지식인이다. 강 교수는 1999년에 고려대학교에서 정년퇴직한 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 수행원으로 방북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통일고문,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남측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남북화해·협력의 일선에 서 있었다.
이 책은 80대의 노학자가 평생 동안 연구실과 실천현장에서 쌓아온 지혜를 우리 민족구성원들, 특히 남과 북의 젊은 세대에게 친절하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씌어졌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19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100여 년 넘는 한국 역사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연관 지어서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도 병자수호조약(1876년) 이래 일제 강점기까지 역사에 대해서는 자신 없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절반 이상 분량을 이른바 제국주의 침략 시대에 할애하고 있는데다가, ‘해양을 겨누는 칼’과 ‘대륙으로 진출하는 다리’라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비유를 활용해 독자들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치열했게 전개됐던 주변 열강의 다툼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강 교수가 보기에 우리 민족사는 중세 이래 크게 세 가지 길을 걸어 왔다. 첫째, 중국, 러시아 등 대륙세력이 강해지고 한반도가 그 세력권에 포함되는 경우다. 이 경우 한반도는 “해양세력 일본의 심장을 겨누는 ‘칼’”이 된다. 둘째, 해양세력 일본과 그 배후이기도 한 영국과 미국 등의 세력이 강해져서 우리 땅이 그 세력권에 포함되는 경우다. 이 경우 한반도는 “해양세력이 대륙으로 진출하는 ‘다리’”가 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한반도 주변 열강의 다툼은 바로 중세 이래 쥐고 있던 칼을 놓치지 않으려는 대륙세력과, 다리를 차지하려는 해양세력의 충돌이었고, 이 다툼의 최종승자는 알다시피 일본이었다. 셋째, 해방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는 “‘칼’이건 ‘다리’건 모두 두 동강이 나고 만” 역사다. 강 교수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책을 내면서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_5
1. 왜 거듭 분단과 통일을 말해야 할까요_15
2. 강점되기 전에도 우리 땅 분단위험이 있었습니다_34
3. 강점되기 전에 우리 땅의 국외중립화론도 있었습니다_55
4. 청일-러일전쟁 결과 우리 땅이 일본에 강점됐습니다_71
5. 우리 땅의 불행이 동아시아의 불행으로 번졌습니다_84
6. 실패한 민족사는 반드시 반성돼야 합니다_101
7. 민족분단시대에는 좌우합작독립운동이 주목됩니다_112
8.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다시 좌우합작정부로 됐습니다_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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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해방과 함께 ‘원한의 38선’이 그어졌습니다_155
10. 6·25전쟁으로 분단이 고착되고 말았습니다_187
11. 6·25전쟁 뒤 평화통일론이 정착돼 갔습니다_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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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6·15남북공동선언으로 평화통일이 시작됐습니다_256
13. 남북화해로 북-미, 북-일수교가 될 뻔했습니다_278
14. ‘우리의 소원’ 통일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_297
글쓰기를 마치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_323
주요참고자료_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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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의 4년에 걸친 태평양전쟁에서 이긴 미국과, 전쟁막판에 기회를 놓칠세라 급히 참전해서 역시 전승국이 된 소련 등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두 전승국에 의해 우리 땅이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분단되어 그 북반부는 대륙세력권에, 그 남반부는 해양세력권에 포함됨으로써 ‘칼’이건 ‘다리’건 모두 두 동강이 나고 만 셈입니다. 그리고 그 ‘부러진 칼’이요 ‘동강난 다리’가 6·25전쟁으로 처음에는 ‘이어진 칼’이 될 뻔했고, 다음에는 ‘이어진 다리’로 될 뻔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21세기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우리 땅은 여전히 ‘부러진 칼’이요 ‘동강난 다리’인 채, 그 남반부는 해양세력권에 북반부는 대륙세력권에 포함되어 있는 거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강 교수가 생각하는 우리 민족의 바람직한 진로는 무엇일까?
강 교수는 ‘통일과 중립화’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19세기 말에 나왔던 한반도 중립화 방안들의 내용과 그러한 방안들이 좌절된 이유 등을 소개해주고 있다.
아래 인용문처럼 21세기에는 ‘해양을 겨누는 칼’도, ‘대륙 진출의 다리’도, 분단도 되지 말고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의 가교’ 역할을 하자는 게 강 교수의 핵심 주장이다.
“동북아시아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지점에 위치한 우리 땅의 ‘운명’이 대륙세력권에 포함되거나 해양세력권에 포함되거나, 대륙세력권과 해양세력권의 이해관계 대립으로 남북으로 분단되거나 하는 세 가지 경우이외에, 어느 세력권에도 포함되지 않고 또 분단되지도 않고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서 국외중립화가 논의되기도 했지만 한 번도 실행되지는 않았던 겁니다. (…) 통일된 우리 땅이 만약 대륙의 중국 쪽과 가까워지면 일본이 고단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며, 반대로 일본 쪽과 가까워지면 중국이 말하는 ‘한쪽 팔’을 잃게 되어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나 통일된 우리 땅은 어느 쪽에도 가까워질 필요가 없지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그들의 대립과 충돌을 완화하는 역할을 다하고 두 지역을 평화적으로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과 2007년 10·4선언은 외세의 대결에 휩쓸린 채 두 동강나서 살아가는 운명을 반복하지 말자는 남북 공동의 다짐이었고, 강 교수가 말하는 민족사의 ‘제4의 길’을 걷자는 약속이기도 했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6·15남북공동선언 1항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탓에 대륙 또는 해양에 예속당하든지, 아니면 분단된 채 지내는 게 우리 민족의 ‘숙명’이라 여기던 이들의 마음속에 다른 길도 가능하다는 믿음을 심어준 참으로 빛나는 합의였다.
그렇다면 2015년 현재 우리 민족은 어떤 길을 걷고 있는 걸까? 중국의 굴기, 러시아의 부상, 일본의 부활, 미국의 귀환으로 점점 더 첨예화되고 있는 주변 열강의 다툼 속에서 우리 민족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 민족화해와 통일을 절절히 호소한 노학자는 남북이 좀처럼 화해·협력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책을 읽다 보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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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인 강만길 저자의 책.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민족분단의 시대, 민족상잔의 시대는 우리 민족의 전체 역사를 통해서 가장 불행한 시대라 해도 틀리지 않다. 지난 일제강점기를 산 우리 민족구성원들 모두가 그 강제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책무를 가졌던 것과 같이, 민족분단시대에 사는 민족구성원 모두는 이 분단불행을 해소하는 일에 이바지해야 하는 책무를 가지고 있다.
저자 : 강만길
수상 : 2010년 만해문학상
최근작 : <책과 연애하는 41가지 방법>,<공부의 시대 세트 - 전5권>,<강만길의 내 인생의 역사 공부> … 총 94종 (모두보기)
소개 :
1933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 일제강점 말기와 해방정국을 경험하며 역사공부에 뜻을 두게 되어 고려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원에 다니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일하다 1967년 고려대 사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1972년 ‘유신’후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각종 논설문을 쓰면서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광주항쟁 직후 항의집회 성명서 작성과 김대중으로부터 학생선동자금을 받았다는 혐의 등으로 한 달 동안 경찰에 유치되었다. 그해 7월 고려대에서 해직되었고, 1983년 4년 만에 복직하여 강단으로 돌아온다....
‘통일로 향하는 분단시대의 근현대사 이야기’
21세기를 살아갈 젊은이들에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민족분단의 시대, 민족상잔의 시대는 우리 민족의 전체 역사를 통해서 가장 불행한 시대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난 일제강점기를 산 우리 민족구성원들 모두가 그 강제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책무를 가졌던 것과 같이, 민족분단시대에 사는 민족구성원 모두는 이 분단불행을 해소하는 일에 이바지해야 하는 책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적 안목에서 보면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현실은 언제나 지나가야 하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과거를 알자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철저히 알아서 바람직한 미래를 개척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과거나 현실에 안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타개해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려는 데 역사공부의 근본적 목적이 있는 겁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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