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도 양심성찰이 될 수 있죠?
기사승인 2016.10.20
- [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신부]
갑자기 양심성찰(examen of conscience)이란 말을 써서 이건 뭐지 할 분도 계실 듯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체험을 더듬어 보면, 양심성찰이란 말은 낯선 단어가 아닙니다. 고해성사(고백성사)를 위해 잠시 고백소 앞에서 대기하면서 그간 나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되짚어 보는 작업을 해 보신 분은 양심성찰을 해 보신 것입니다. 우리는 고해성사를 위해 보통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칩니다.
우선, 내 행실에 대해 알아보고(성찰), 그중에 잘못이나 개인의 삶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태도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며(통회), 다시는 그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겠노라 결심하고(결심, 어려운 말로는 정개라고 합니다), 고백소에 들어가 성찰한 내용을 고백(고백)합니다. 그리고 고백소 안에서 사제가 요청하는 보속의 내용을 실행(보속)하면 고해성사가 이뤄집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고해성사를 위해서라도 정기적, 부정기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작업을 양심성찰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양심성찰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성찰' 작업을 좀 더 일상적인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꼭 고해성사를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일종의 기도로서 말입니다.
아마도 제 지인 한 분이 이미 이런 작업을 시작하셨나 봅니다. 날마다 성찰 작업을 하고 싶은데, 그 방법이 일기를 쓴다거나 '마인드 맵' 형식으로 해도 되는지를 물어 오셨습니다. 내게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적고 느낌을 기록해 두는 일기 쓰기는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방법이며, 양심성찰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편 마인드 맵은 일기에 비해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양심성찰 작업으로 활용해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입니다. 오늘 내게 중요한 열쇠말을 중심으로 그것과 관련된 등장인물, 사건, 느낌들이 기억의 끈으로 연결됩니다. 이렇게 마인드 맵을 그리는 동안 마음과 생각이 정돈될 것입니다.
'나 자신'을 주제로 하는 기도라 불릴 만한 양심성찰은 일상의 삶에서 나는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점검해 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만큼 날마다 거르지 않고 하루를 마감하고 잠들기 전에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예수회원들에게 이것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권했습니다. 양심성찰을 위한 시간은 15분 정도입니다. 이 시간 동안 내가 지나온 오늘 하루를 훑어봅니다.
▲ 양심성찰의 과정에서 나의 모습과 나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양심성찰을 위해서는 따라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1) 가능하면 조용한 장소와 시간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렇게 양심성찰을 위한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조용히 들숨과 날숨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이것을 통해 마음을 더 고요히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2) 그리고 나서 오늘 내 기억에 먼저 떠오르는 감사할 일을 가지고 하느님께 고맙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런 사건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 여기에 내가 있도록 생명을 지켜 주신 분께 감사드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3) 성령을 청합니다. 즉, "성령이여 오소서. 당신의 힘으로 내가 나의 선입견, 상처 등의 한계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태에서 자유롭게 풀려나 오늘 나의 하루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세요" 하는 내용의 짦은 기도를 올립니다.
4) 하루를 돌아봅니다. 즉, 아침에 눈을 뜬 뒤부터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들,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느낀 감정들을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듯 감상합니다.
5) 나의 하루를 감상하며 인상 깊게 들어온 부분을 가지고 하느님과 대화를 해 봅니다. 그분과 나의 느낌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때 좀 더 구체적으로 감사를 전할 사건이 떠오를 것입니다. 혹은 미안한 부분에 대해서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 단계는 하느님과 대화를 통해 친분을 쌓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6) 밤 사이와 내일 하루도 함께해 주시길 바라며, '주님의 기도'로 성찰을 마칩니다.
정확히 말하면, 환경 세팅하는 시간을 뺀 2-6 단계가 15분 내외 드는 것입니다. 그중에 아무래도 넷째 단계인 하루를 감상하는 작업이 가장 시간을 많이 요구할 것입니다. 시간 분배는 직접 해 보면서 조정 가능합니다. 보통 넷째 단계에서 약 9분 내외, 그 다음으로 하느님과 대화하는 다섯째 단계에서 5분 내외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 기도 내용을 간단히 일기 형식으로 적어 보거나, 이 기도 안에서 울림이 컸던 것을 마인드 맵으로 기록해 본다면 한 개인에 대한 매우 중요한 탐구 기록이 될 것입니다. 이 기록들을 모아서 보면, 일정기간 동안 내 삶이 어떤 상태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그 삶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나는 하느님을 자주 만나며 살고 있었는지, 아니면 그분과는 동떨어져 살아가고 있었는지, 행복했는지, 행복을 못 느꼈는지 등을 알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들 역시 찾아낼 수 있게 됩니다.
성찰을 위한 작업을 할 때, 그냥 일기나 마인드 맵을 기록하는 게 더 익숙하고 쉽기에 그것만 하면 안 될까? 하시는 분도 계실 듯합니다. 각자 더 최적의 방법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겠습니다. 그럼에도, 그 작업을 위해서라도 앞서 제시한 1-3단계는 일단 거치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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