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4

금광왕 이종만의 ‘아름다운 실패’ : 신동아

금광왕 이종만의 ‘아름다운 실패’ : 신동아 [7/7]
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⑮
금광왕 이종만의 ‘아름다운 실패’


북한 애국열사릉에 묻힌 유일한 ‘자본가’, 그가 도전한 최후의 실험
전봉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국문학 junbg@kaist.ac.kr
1938년 이종만은 대동광업주식회사, 대동광산조합, 대동농촌사, 대동출판사, 대동공업전문학교 등 ‘대동콘체른’이라 불린 총 5개 거대 사업체의 수장이 되었다. 대동광업주식회사에서 나오는 수익을 바탕으로 영세 광산 지원, 자영농 육성, 신문화 보급, 과학기술 전문가 양성 등 20대에 사업을 처음 시작하며 가슴속에 품었던 꿈을 차례로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일하는 사람은 다 같이 잘살자.” 

이종만은 이 단순한 경영철학으로 사업체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고, 추가이익을 노동자들에게 배분하여 자신이 사심 없는 경영자임을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이종만에게나 조선에나 축복이었던 ‘대동콘체른’ 역시 이전 28번의 사업이 그랬던 것처럼 끝내 실패로 돌아갔다. 다섯 개의 거대 사업체 중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은 대동광업뿐이었는데, 그것만으로 나머지 사업체에서 천문학적인 숫자로 발생하는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1940년 대동광업의 부채는 500만원에 달했고, 대동공전은 교사 신축자금이 부족해 사채까지 끌어 썼다. 경영실적이 극도로 악화된 가운데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대동콘체른’은 차례로 붕괴했다. 1942년 부채액이 800만원까지 늘어나 이미 파산상태였던 대동광업은 1943년 총독부의 금광 강제정리사업 과정에서 해체되었고, 같은 해 대동출판사는 대동공전 경비마련을 위해 매각되었다. 1944년 대동공전은 평남도청이 인수하여 공립으로 전환되었다. 평양공업전문학교로 간판을 바꿔 단 대동공전은 광복 후 평양공업대학, 김일성대학 공학부를 거쳐 김책공업대학으로 이어졌다. 

광복 후 이종만은 적산(敵産)기업인 삼척탄광을 불하받아 30번째 사업을 시작했다. 정치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조선산업건설협의회 회장,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을 역임했다. 1948년 분단이 되자 이종만은 고심 끝에 자진 월북했다. 1949년 평양에서 열린 ‘조국통일 민주주의 결성대회’에서 김일성은 자진 월북한 유일무이한 자본가 이종만을 ‘애국적 기업가’라고 치하했다. 이종만은 제1, 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고, 광업부 고문으로 활동하다가 1977년 아흔셋을 일기로 사망해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애국열사릉에 묻힌 자본가 

북한의 피폐한 경제현실을 고려하면 이종만의 31번째 사업인 ‘북조선 광업 건설’ 또한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이종만은 이 세상에서 93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사업에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이종만의 실패는 아름답고 숭고했다. 그는 28번 쓰러지고 29번 일어나면서도 기필코 사업에 성공해 소작인에게 토지를, 광부에게 광산을 돌려주려 했고, 일하는 사람이 다 같이 잘사는 사회를 구현하려 했다. 

금광왕 이종만의 ‘아름다운 실패’
전봉관 

● 1971년 부산 출생 

● 서울대 국문과 졸업, 동 대학 석·박사(국문학)

● 서울대, 아주대, 한신대, 한성대, 덕성여대에서 강의

● 現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 저서 및 논문 : ‘1930년대 한국 도시적 서정시 연구’ ‘황금광시대’ 등


이종만은 부를 누리기 위해 돈을 좇은 것이 아니라 부를 베풀기 위해 집요하게 돈을 좇았다. 돈은 이상을 실현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종만은 자본가 신분에도 ‘노동자의 나라’를 표방한 북한으로 자진 월북했다.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꿈을 일찌감치 포기했다면, 이종만은 서른한 번의 실패를 경험하지 않아도 됐을는지 모른다.

1980년대 한국의 대학에는 이상사회를 꿈꾸던 수많은 청년이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이상을 품고 부조리한 현실에 뛰어들었다. 언젠가 성공하면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할 것이라 다짐하기도 했다. 그렇게 현실에 뛰어든 청년들 중 더러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큰 성공도 거뒀다. 그러나 그들이 온 세상을 감동시킬 만큼 엄청난 계획을 발표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이종만의 실패가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입력 2006-09-14 1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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