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 - 4월에서 8월까지 모든 진보에게 묻는다
손석춘 (지은이) | 철수와영희 | 2012-08-15
정가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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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양장본 | 140쪽 | 215*13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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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절대 권력을 무너뜨린 4월혁명 세대는 어느새 70대다. 박정희와 맞서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젊은이들은 50대, 60대다. 5월항쟁과 6월항쟁, 7~8월 노동자대투쟁 세대는 40대다. 1996년 8월 연세대 통일 집회에 나섰던 한총련 세대는 30대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부터 스스로 '진보'를 자임한 세대, 정의감으로 불타오른 세대가 줄기차게 등장했다.
진보가 모든 세대에 걸쳐있지만, 2012년 8월 현재 진보의 만장 아래서 너도나도 진보의 죽음을 선고하고 있다. 4월에서 8월까지 젊은 시절 정의로운 꿈을 지녔던, 하지만 그 이후는 일상의 경제생활에서 참으로 억척스럽게 살아온 수많은 진보는 진보정치 세력의 지리멸렬 앞에 실망하거나 자조하고 있다.
이 책은 진보의 죽음이 선고된 지금, 정의롭고 깨끗한 꿈인 권력과 자본의 세상을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와 통일을 갈망했었고, 2012년 지금은 이미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가 된 사람들과 가슴으로 나누고 싶은 진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손석춘은 진보의 역사를 살펴보며, 진보의 위기를 진단하고, 4월에서 8월까지 누구보다 억척스럽게 살아온 모든 진보가 함께 뜻을 모아야 진보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진보진영의 위기를 극복할 큰 혁신의 원칙으로 '실사구시 학습, 대안사회 토론, 국민과의 소통'을 제안한다.
머리말. 4월에서 8월까지 모든 진보에게 묻는다
1부. 진보에 돌 던질 자격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
‘돌직구’ 던진 젊은 여성 노동자
1퍼센트를 위한 99퍼센트의 희생? 먹통의 환상
그 많던 진보는 어디 있을까?
2부. 우리는 민주파다
평등파와 자주파의 기원 | 별
제도 정치권의 강력한 자장
진보정당의 분열
진보 대통합 운동
3부. 소통 | 모든 진보의 첫 마음
통합진보당의 실패
민주당은 진보정당인가
허세욱과 박영재, 누가 죽였는가
왜 자주와 평등인가 | 돌직구에 답함
4부. 정의롭고 깨끗한 큰 그릇
진보에 대안이 없다?
성찰의 길 | 학습·토론·소통
전환시대 모든 진보에 고함
닫는 글. 별이 사라진 시대의 별
정의감이 넘치지만, 정의는 메마른 나라
깨끗한 꿈을 꾼 사람들에게 새삼 ‘목욕재계’의 성찰을 제안하는 까닭은 절실하다. 정의감 넘쳐온 사회 곳곳에 불의가 창궐하는 현실 때문이다. 진보가 모든 세대에 걸쳐 두 눈 버젓이 뜨고 있는데도 2012년 8월 현재 너도나도 진보의 죽음을 선고한다. 참으로 해괴하지 않은가.
이 책은 ‘진보’의 개념을 학문적으로 정의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구체적으로 사람을, 젊은 시절 4월에서 8월까지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그 모든 사람을 한마디로 ‘진보’라고 아울렀다. 그러니까 ‘진보’는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과 젊은 시절 당신의 친구들이다.
현란하게 나부끼는 진보의 만장 아래서 나는 지금 울분을 삭이며 묻는다. 그 깨끗한 꿈, 무덤까지 가져갈 셈인가를. 정의롭던 그대, 진보에게.
저자 : 손석춘
최근작 : <파란 구리 반지>,<어른의 교양>,<신문 읽기의 혁명> … 총 105종 (모두보기)
소개 : 1980년 문학평론 <겨레의 진실과 표현의 과제>로 연세문학상에 입선했다. 2001년 장편소설 《아름다운 집》에 이어 《유령의 사랑》, 《마흔아홉 통의 편지》를 발표했다. 2009년 《아름다운 집》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美しい家》로 출간됐다. 2015년 《아름다운 집》의 속편이자 세월호를 소재로 한 《뉴리버티호의 항해》를 출간했다. 2016년 발표한 《코레예바의 눈물》로 2017년 이태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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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의롭고 깨끗한 진보의 꿈을 무덤까지 가져갈 셈인가?
- 모든 진보세대에게 고함
이승만의 절대 권력을 무너뜨린 4월혁명 세대는 어느새 70대다. 박정희와 맞서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젊은이들은 50대, 60대다. 5월항쟁과 6월항쟁, 7~8월 노동자대투쟁 세대는 40대다. 1996년 8월 연세대 통일 집회에 나섰던 한총련 세대는 30대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부터 스스로 ‘진보’를 자임한 세대, 정의감으로 불타오른 세대가 줄기차게 등장했다. 진보가 모든 세대에 걸쳐있지만, 2012년 8월 현재 진보의 만장 아래서 너도나도 진보의 죽음을 선고하고 있다.
4월에서 8월까지 젊은 시절 정의로운 꿈을 지녔던, 하지만 그 이후는 일상의 경제생활에서 참으로 억척스럽게 살아온 수많은 진보는 진보정치 세력의 지리멸렬 앞에 실망하거나 자조하고 있다.
이 책은 진보의 죽음이 선고된 지금, 정의롭고 깨끗한 꿈인 권력과 자본의 세상을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와 통일을 갈망했었고, 2012년 지금은 이미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가 된 사람들과 가슴으로 나누고 싶은 진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진보 혁신의 대원칙, ‘실사구시 학습, 대안사회 토론, 국민과의 소통’
이 책은 진보의 역사를 살펴보며, 진보의 위기를 진단하고, 4월에서 8월까지 누구보다 억척스럽게 살아온 모든 진보가 함께 뜻을 모아야 진보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진보진영의 위기를 극복할 큰 혁신의 원칙으로 ‘실사구시 학습, 대안사회 토론, 국민과의 소통’을 제안한다.
실사구시의 성찰로 학습하고 토론하며 소통하는 큰 혁신의 과정에서 진보는 내면에 쌓인 문제들인 경직된 사상,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지 않은 폐쇄적 정파 조직,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 덧셈보다 뺄셈에 몰두하는 일상의 문화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 단계에서 진보를 ‘신자유주의 체제와 분단체제를 넘어서는 운동’으로 전제하며, 이 최소강령으로 단결해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넘어선 사회를 현실로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이후는 다음 세대가 소통을 통해 풀어가도록 열어두어야 옳다고 본다.
진보진영의 각 세력들이 각자 최대강령의 차이로 분열하고 반목함으로써 결국은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가 더 고착되는 세상을 사랑하는 아들, 딸에게 남길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민중과 더불어 우리가 열어갈 길은 스웨덴이나 핀란드와 같은 북유럽 길도, 베네수엘라나 브라질 같은 남미의 길도 아니며, 사회주의나 민주주의와도 거리가 먼 조선로동당의 길도 아니기에 우리의 길을 담대하게 열어가야 옳다고 주장한다.
진보 대통합의 원칙, ‘반신자유주의, 분단체제 극복, 국정 대안 제시’
저자는 통합진보당이 진보의 미래가 될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땅의 진보세력들의 새로운 진보 대통합을 제안한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은 물론, 두 당이 담아내지 못한 진보정치 세력을 모두 아우르는 대통합 정당을 창당하는 길에 4월에서 8월까지 모든 진보가 적극 동참하는 것이 진보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진보 대통합이 최우선으로 섬길 대상은 민중이며 민중의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면 미완과 실패로 귀결된 대통합을 다시 추진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민중을 섬기는 대통합의 이념 앞에 관념적 논쟁은 무익하며, 반신자유주의, 분단체제 극복, 국정 대안 제시의 원칙인 3항 18자가 대통합의 실사구시 철학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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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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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물어 볼께! 메틀키드 ㅣ 2012-11-24 ㅣ 공감(2) ㅣ 댓글 (0)
권력은 태생 자체가 거대담론을 좋아해. 아주 많이. 때문에 내 월급 통장에 5만 원이 더 들어오는 것보다, 우리나라가 G20정상회의를 개최하고, 듣도 보도 못했던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에 더 자부심을 가지라고 윽박질러. 뭐 사실 그렇게 좋아한 국민들도 별로 없었는데 말야.
그럼에도 권력은 말야. 우리가 그딴 건방진 모임이나 회의를 개최하거나 주최국이 된 것을 마치 국가가 꽤 성장한 것인양, 우리가 선진국으로 훌쩍 발돋움한 것인양 떠벌리곤 해. 그리고 그 따위 행사를 치르기 위해 국민들의 불편이나 뭐 이런 것은 신경에 쓰지도 않고.
손석춘 선생은 내가 정말 존경하는 분이야. 이상하게 내가 존경하는 분들 중 상당 수가 보수 진영에서는 친북좌파라고 하더군. 글쎄, 그 말이 사실인 것인지는 보수 진영이 그리도 좋아하는 ‘역사가 평가’해 주겠지만, 적어도 내가 존경하는 분들은 가식적이지 않고, 썩지도 않았으며, 남을 무시하거나 억압하지도 않는 분들이야.
선생의 글을 읽다보면 글을 잘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끼게 돼. 그리고 진정 좋은 글은 온갖 미사여구에다가 외국 유명인사의 글 따위를 인용하는 게 아닌, 삶에서 우러나온 곰탕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정말이지 고맙고도 고마운 분이야.
하지만 이번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는 감탄보다는 울컥거리는 마음을 계속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소위 진보 진영이 처해있는 아찔한 상황과 그렇게 된 배경,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선생의 절실함이 담겨 있었거든.
통합진보당은 통합도 진보도 보여주지 못하고 무너졌어. 진보 진영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같이 감방가고 같이 투쟁하고 같이 진보의 세상을 꿈꿨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죽일 듯한 원수 사이가 되었지. 누구의 잘못이냐도 물론 중요해. 억울하게 보수 진영이나 쓰레기 언론들에 의해 희생된 분들도 물론 계시지. 하지만 국민들은, 대다수 국민들은 말이야. 누구 잘못이냐를 따지지 않아. 그냥 ‘저것들도 별 수 없는 것들’이라는 생각으로 끝나. 국민들이 멍청한 탓도 있겠지. 하지만 진보 진영에서 보여준 자중지란은 분명 큰 잘못과 책임이 있어.
선생은 책에서 이 땅에 모든 진보들에게 호소하고 있어. 진보는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고. 그리고 모든 세대에 걸쳐 존재하는 진보의 새로운 시작을 다시 꿈꾸자고. 1960년 4·19혁명 세대에서 1996년 8월 연세대 통일집회의 한총련 세대까지. 이 땅의 모든 진보가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뜨겁게 일어서자고 말하고 있어.
우씨, 이런데 울컥하지 않겠어? 선생의 말처럼 지금 진보는 ‘신자유주의 체제와 분단체제를 넘어서는 운동’으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야. 말이 어렵다고? 돈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전쟁과 증오를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말자는 말이야!
일부러 외면하면 세상은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다고 누가 말했어. 그런데 우린 이제 그 수준을 넘어선 듯해. 아무리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무너지는 이웃들, 썩어가는 이 땅, 이 강, 이 바다, 더욱 더 착취를 일상화하려는 권력들의 광기가 느껴져. 하다못해 이 땅의 1%도 더 이상 편하게 살 수 없는 지경에까지 오고 있는 거야.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야? 도대체 뭐가 잘사는 나라야? 혹시 알아? 아이 낳기가 두렵고 노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야. 근데 잘 사는 나라야? 수치나 통계 좋아하시는 보수 분들 많이 있지? 한국갤럽에서 1992년과 2010년 사이의 소득변화와 행복지수 사이에 관계를 조사했거든? 이 시기에 국민소득은 3배나 커졌지만, 행복감을 느끼는 이들은 오히려 10%나 줄었어. 그리고 같은 시기에 하루 평균 자살자는 9.9명에서 42.6명으로 4배나 늘었고.
정말 생각해보자. 우리가 행복해? 그런데 아버지에 이어 권력을 잡겠다는 어떤 분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또 설레발을 치고 있다. 공부 좀 하신 분이 왜 그럴까? 우리나라는 더 이상 ‘내 꿈’으로는 안돼. ‘네 꿈’‘우리 꿈’을 함께 이뤄나가야 살아갈 수 있어. 행복할 수 있다고. 우리가 없는 나는 이미 행복하지 않아.
하지만 지금까지 우린 남을 밟고 나만 잘 사는 것을 가르쳐 왔어. 우리 사회는 ‘우리의 꿈’을 말하면 포퓰리즘이고 좌파라고 낙인찍어. 오직 나만 잘 살면 된다고 말해. 이게 정상이야?
어떤 사람들은 또 그래. 이명박 정부 5년이 너무 괴로웠다고, 이번 선거에서 두고 보자고 이를 박박 갈아. 하지만 강인규 교수도 말했듯, 착각하지 마. 지금 우리 사회가 비정상적이고, 최악의 야만 사회가 된 것은 이명박 대통령 잘못이 아니야. 지도자 하나 갈아치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의 비인간적인 탐욕이 비인간적이고 탐욕스러운 지도자를 고른 것 뿐’이야.
우린 모두 공감의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더라. 한 아기가 울면 옆에 있던 아기들도 따라 울잖아. 연대의식을 발휘해 주는 거야. 혼자 울지 말라고. 우리도 옆에서 누가 하품하면 따라하지? 왜 그럴까?
미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가 바뀌지 전에, 바로 내가 바뀌어야 해. 내가 변한 딱 그만큼 세상이 변하는 거야. 자, 그럼 손 선생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뭐겠니?
진보도 역시 권력을 차지해야 하고, 그 권력을 온전히 국민들을 위해 정의롭게 사용해야 해. 맞는 말이야. 하지만 그 과정이 보수와 마찬가지로 더럽고 추잡스럽다면? 권력을 잡지 말아야해. 많은 사람들이 민주통합당을 진보라 말하더라? 미쳤어? 민주통합당은 단 한 번도 진보인 적이 없었어. 여전히 맘에 안 들겠지만, 이 땅의 진보는 정치세력으로 말하자면 여전히 통합진보당이고, 진보신당이고, 진보정의당이야.
정치가 중요해. 당연하지.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어. 백 배는 중요해. 바로 당신이야. 당신이 투표를 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당신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해. 이웃을 존중하고, 정의를 사랑하고, 상식을 지키려 노력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우리는 거수기가 아니야. 5년마다 한 번씩 투표할 때만 시민이 아니라고. 그때만 민주시민인 척 하지 말자고. 그냥 하루하루 더럽지 않게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니까 나는 완전 성인군자같이 보이네. 물론 나도 아니지. 나도 더럽고 겁 많고 찌질해. 하지만 적어도 양심을 지키며 살고 싶어. 노력하고 있다고.
손 선생이 말한 것처럼 진보 진영의 대통합은 이번 대선 전까지 힘들 것 같아. 아무리 호소하면 뭘 하나. 인간들이 말을 들어먹지 않는데. 하지만 손 선생과 같은 분들은 반드시 이 땅에 존재해야해. 물론이지.
이 땅의 진보만 뭉치지 말자. 보수 진영들이 박정희를 반인반신의 경지에까지 올려 두었다고 한탄하지만 말고, 일상의 행동으로 쿨하게 상식을 지키며, 무엇이 정의인지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살자고. 그러면 반드시 희망은 생겨. 그리고 바뀔 수 있어. 손 선생의 간곡한 호소를 잊지 말자고. 기억하자고. 그리고 실천에 옮겨보자고.
아, 그러기 위해서 선생은 부단히 공부하고 토론하라 하셨는데, 이놈의 게으름이 영 발목을 잡네. 하지만, 지난 5년을 견뎠는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함 해보자고! 아, 생각해보니 지난 5년은 정말 군대를 다시 갔다 온 것 같았어. 너무 박터졌어.
우리는 올 해 12월만을 위해 살진 않아. 내년도 오잖아? 책의 제목은 ‘세계 7대 강국의 찬가를 부르대던 2012년 6월 바로 그 시점에 수도권에서 어느 60대 부부가 남긴 유서의 첫 문장’에서 따온 거야.
‘그동안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월세방에서 15만 900원의 노인수당으로 살아온 노부부였어. 야, 이러면서 우리 선진국이니 복지병이니 경쟁력 강화니 떠들지 말자. 정말 양심 좀 갖고 살자고. 우리 인간이잖아.
바로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왜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지, 이제 우리 고민 좀 하고 살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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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아닌 평화를 이룰 삶 숲노래 ㅣ 2012-08-16 ㅣ 공감(8) ㅣ 댓글 (0)
진보 아닌 평화를 이룰 삶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1] 손석춘,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
- 책이름 :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
- 글 : 손석춘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12.8.15.)
- 책값 : 1만 원
방바닥을 걸레질합니다. 하루에 몇 차례씩 걸레질을 하거나 비질을 하곤 합니다. 어린 두 아이와 살아가면서 그야말로 쉴 겨를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어버이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하는 보금자리에서 숱한 일을 쉴 틈 없이 하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걸레질이 지겹거나 비질이 귀찮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어지르거나 작은아이가 똥오줌을 눈다 하더라도, 닦거나 치울 만하니까 닦거나 치웁니다. 어지른 것을 치우고 똥오줌 또한 치우면서 집안을 한 번 더 쓸거나 닦는 셈이리라 느낍니다.
집 안팎에서 놀며 땀에 젖거나 지저분해진 옷을 벗겨 씻깁니다. 새 옷을 입힙니다. 아이들 옷가지 빨래는 날마다 수북하게 나옵니다. 한 살을 더 먹으면 빨래가 줄까, 두 살을 더 먹으면 빨래가 가뿐할까, 하고 생각한 지 다섯 해가 흐릅니다. 앞으로 해는 흐르고 흘러 또 다섯 해가 흐를 테고, 거듭 다섯 해가 흐르겠지요. 이동안 아이들마다 팔힘이나 다리힘이 부쩍 붙는다면, 바야흐로 아이들은 저희 옷을 저희가 빨래하거나 건사하거나 보듬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 갖은 집일과 빨래와 밥하기에 얽히며 살아가지만, 이처럼 보낼 나날은 아주 짧으리라 느껴요. 무럭무럭 큰 아이들이 저희 삶을 저희 깜냥껏 빛내는 모습을 마주하면서 활짝 웃을 날이 아주 길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 대한민국 찬가를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 가운데는 4월혁명 세대도 있고 가까이는 한총련 세대도 있다. 그들의 찬가는 사뭇 객관적 통계로 뒷받침된다. 헐벗고 굶주린 나라가 산업화에 성공했고 민주화도 이뤘으며 마침내 선진화에 이르고 있다는 논리다. 그래서일까. 진보 일각에서도 마치 박정희를 비판만 하면 낡은 진보, ‘꼴통 진보’ 따위로 매도하는 윤똑똑이들이 나타났다. 박정희가 이룬 경제성장을 인정해야 새로운 진보이고 수구좌파가 아니라는 논리는 사뭇 학문의 옷까지 걸치고 등장했다. 박정희가 일본제국주의에 혈서를 써 가며 충성을 맹세할 만큼 출세를 위해서라면 민족을 배신하길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도, 쿠테타 직후 〈민족일보〉 발행인 처형을 비롯해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숱한 민주 인사들의 생명을 앗아간 살인범이었다는 사실도, 민주공화국 헌법을 유린하고 사실상 총통으로 군림하며 정수장학회니 육영재단, 영남대 재단 따위로 다른 사람 재산을 빼앗거나 축적한 사실도, 국가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에 ‘채홍사’를 둘 만큼 주색잡기에 빠져 있었다는 증언도 죄다 중요하지 않다 .. (9∼10쪽)
빨래를 날마다 너덧 차례나 예닐곱 차례까지 합니다. 겨울철에는 하루 서너 차례 빨래로 마무리지었으나, 여름철에는 예닐곱 차례뿐 아니라 여덟아홉 차례 빨래를 할 때가 있습니다. 후끈후끈 무더운 날에는 아이도 어른도 옷을 자주 갈아입고 자주 씻기고 씻으면서 새삼스레 빨래를 합니다. 무더운 날에는 빨래도 잘 마르니 자주 빨아 바지런히 말립니다.
때로는 빨래만 바지런히 하고, 옷 개기는 미적미적 미룹니다. 예쁘게 개어 옷장에 넣어도 워낙 빨리 옷을 버리고 갈아입으니 다른 일을 할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다른 집일에 마음을 쓰느라 그만 깜빡 잊곤 합니다. 요즈음에는 마당에서 빨래를 걷을 적에 아예 마당에서 선 채 빨래를 갭니다. 이렇게 개지 않으면 옷가지를 집안으로 들이고서 옷을 못 개리라 느껴요. 옷가지를 들고 집으로 들어오면 다른 집일이 나를 부르는 바람에 옷은 나중에 개도 되지, 하고 여기고 맙니다.
바로 옆에 수북하게 쌓인 옷가지는 어서 개 달라고 부릅니다. 부러 못 본 척하지는 않으나 가만히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은 조금 더 잠을 자 주는구나 싶습니다. 밤새 틈틈이 비가 오더니 아침 일곱 시 즈음에는 햇살이 노오랗게 비치고, 뒤꼍에서 매미가 노래합니다. 아침햇살은 나뭇잎과 풀잎 사이에 곱게 드리웁니다. 물기 머금은 흙은 보들보들 빛납니다. 더위는 한풀 꺾인 듯하다가도 쉬 물러서지 않습니다. 아직 팔월 한복판인걸요.
어느 논자락에는 벌써 이삭이 맺히고 열매가 익습니다. 이삭 맺힌 논은 얼마 없지만, 남녘나라에서 많이 따사로운 전남 고흥 시골마을 논자락은 조금 더 일찍 노오란 들판으로 바뀌리라 생각합니다. 나뭇잎은 푸르고, 들판은 노오라며, 하늘은 파랗게 눈부실 때에, 이 빛깔 사이사이 하얗게 흐르는 구름이 있을 적에, 네 식구 천천히 들길을 거닐면서 두 팔을 스르르 듭니다. 맑은 빛을 맞아들입니다. 밝은 볕을 받아들입니다. 고운 숨결을 끌어안습니다.
걸을 수 있어 들길을 걷습니다. 누울 수 있어 풀숲에 눕습니다. 달릴 수 있어 멧길을 낑낑거리며 달립니다.
바람은 산들산들 붑니다. 빛살은 골고루 퍼집니다. 풀벌레는 곳곳에서 노래합니다. 이 모든 목숨붙이 사이에서 사람은 예쁜 생각을 틔웁니다.
.. 그들의 반발감은 ‘조중동 프레임’을 남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더 확고해지기도 했다. 자신의 잘못을 생뚱맞게 조중동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을 우리는 적잖게 목격해 왔다 … 조중동 때문만으로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치 세력과 국민 사이에, 좁게는 진보정치 세력 내부에, 더 좁게는 바로 진보 개개인 내부에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 먹통은 이명박 정권만이 아니다. 적잖은 진보도 먹통이다 … 문제는 아무리 대안 토론회를 열고 책을 출간해도 국민과의 소통이 막히는 데 있다. 대다수 언론이 대안을 담은 신간 소개조차 모르쇠다 … 진보를 내세운 언론도 진보세력이 내놓는 대안 보도에 인색한 데 있다 .. (17, 30, 106쪽)
손석춘 님이 쓴 자그마한 책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철수와영희,2012)를 읽습니다. 진보정치나 진보운동이 걸어온 길을 찬찬히 짚으면서, 옳은 넋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만히 그리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한국땅에서 나고 자란 젊은 넋이 바라던 옳은 길이란 무엇이었나 하고 밝힙니다. 한국땅에서 아이를 낳고 어버이나 어른이 될 젊거나 푸른 넋이 스스로 붙안을 만한 예쁜 길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 한국의 대다수 시민은 ‘노동자’라는 말을 부담스러워 한다. 이해할 수 있다.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노사 관계를 비롯해 노동 교육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신문과 방송에서 노동자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도 아니다 … 한국은 노동자라는 말은 물론, 노동운동이나 임금협상과 단체협상 그 모든 게 시민권조차 확보하지 못한 나라다 … 진보정당의 분열상은 대서특필하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정작 생활 현장에서 실제로 진보 대안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무시하는 모습을 이해하기는 난감하다 .. (22∼23, 25, 110쪽)
누구한테나 들려줄 만한 말인데, 억척스레 살아갈 까닭이 없습니다. 힘을 내어 살아갈 때에 즐겁지, 억척스레 살며 즐거울 수 없습니다. 악을 쓰며 살아갈 까닭이 없습니다.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때에 기쁘지, 악을 쓰며 사는 동안 기쁠 수 없습니다.
자가용이 있으면 하루만에 훌쩍 다녀올 만한 길이라면, 자전거를 타면 이틀이나 사흘에 걸쳐 천천히 다녀올 만한 길입니다. 두 다리로 걷는다면 열흘이나 보름이 걸릴 만한 길일 수 있습니다.
꼭 자가용을 몰아야 좋은 삶이 아닙니다. 자전거를 우악스레 빨리 몰아야 좋은 나들이가 아닙니다. 죽을 동 살 동 쉬잖고 걸어야 좋은 마실이 아닙니다.
자가용 있어도 즐겁고, 자가용 없어도 즐겁습니다. 돈 넉넉히 있어도 즐거우며, 돈 얼마 없어도 즐겁습니다. 즐거움은 자가용이나 돈에 깃들지 않아요. 즐거움은 오직 내 마음에 깃들어요. 너른 마음에 깃드는 즐거움이에요. 착한 마음에 스미는 기쁨이에요. 맑은 마음에 찾아드는 웃음이에요. 고운 마음에 넘치는 사랑이에요.
.. 김대중이 군사독재 아래서 “경제성장의 열매는 이들과 결탁한 소수 특권층에 의해 거의 독점되어 왔으며 노동자·농민들은 성장의 결실 배분에 참여하는 것으로부터 배제되어 왔다”고 주장했지만, 바로 그 노동자와 농민들이 갈망했던 ‘김대중 대통령’ 아래서도 경제성장의 열매는 소수 특권층이 독점했다 …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국가에서 국민 대다수가 억척스럽게 살아가면서도 얼마 안 되는 여가시간 대부분을 텔레비전 드라마 시청으로 보낸다. 케케묵은 바보상자론을 펴려는 게 아니다. 다만 차분히 토론해 볼 필요는 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드라마를 보았는가를. 드라마에 나오는 대기업 회장과 그 가족들의 모습은 한결같다 .. (76∼77, 123쪽)
나는 진보가 더 좋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진보(進步)’를 한국말로 쉽게 풀자면 ‘나아짐’이나 ‘높아짐’이라 하는데, 한 마디로 ‘발돋움’이라 할 테지요. 한결 앞으로 나아가고 한결 슬기롭게 높아진다는 뜻일 테지요. 아무튼, 나아지거나 높아질 때에 아름다울 수 있지만, 나아지거나 높아진다는 뜻을 꼭 발돋움으로 따져야 하지는 않아요. ‘생활 진보’라 말할 것 없이, 오이꽃이나 수박꽃이나 호박꽃이나 수세미꽃을 보는 하루도 아름답고 즐거우며 놀랍습니다. 감꽃이나 벼꽃이나 매화꽃이나 딸기꽃이나 달맞이꽃이나 나팔꽃이나 오얏꽃을 보는 하루도 예쁘며 빛나고 훌륭합니다.
진보정당일 때에 진보가 된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삶이 아름다울 때에 ‘환하게 웃는 길로 나아간다’고 느껴요. 내가 웃고 네가 웃는 길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만화책 《도라에몽》에 나오는 ‘이슬이’는 ‘영민이’와 ‘진구’뿐 아니라 ‘퉁퉁이’와 ‘비실이’한테도 손수 구운 과자를 나눕니다. ‘도라에몽’과 ‘진구’는 ‘이슬이’뿐 아니라 ‘퉁퉁이’와 ‘비실이’도 불러 즐겁게 구름을 타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놀이를 즐깁니다.
함께 나아가는 길이에요. 가을날 누렇게 익은 들판에서 거두는 벼는 이이한테만 먹이고 저이한테는 안 먹여도 되지 않아요. 골고루 나누는 사랑이자 꿈입니다. 다 함께 누리는 밥이자 삶입니다.
이를테면, 무상급식을 하면 돈있는 집한테든 돈없는 집한테든 골고루 좋겠지요. 무상급식을 할 돈은 세금을 골고루 슬기롭게 거두면 되겠지요. 나는 100원을 벌기에 10원을 세금으로 냅니다. 내 이웃은 10000원을 벌기에 1000원을 세금으로 냅니다. 또는, 나는 10원을 벌기에 세금을 따로 내지 않습니다. 내 동무는 100000원을 벌기에 10000원이나 20000원을 세금으로 냅니다.
어린 아이들은 작은 손으로 흙을 조금 떠서 나릅니다. 힘센 어른들은 푸대에 흙을 잔뜩 담아 지게로 몇 섬씩 나릅니다. 그런데,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떡을 한 점씩 줍니다. 아이한테도 어른한테도 밥그릇 하나씩 베풉니다. 집에 아이가 있는 어른은 떡을 두 점 받거나 석 점 받습니다. 몸이 아파 드러누운 어른은 흙푸대를 한 섬도 안 날랐으나 떡과 밥을 똑같이 받습니다. 아기를 밴 어머니는 떡과 밥을 둘씩 받기도 합니다. 아기를 밴 어머니 또한 흙푸대는 한 섬도 안 날랐으나 떡과 밥은 외려 더 받는다 할 만합니다.
너무 마땅한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마땅한 이야기는 이쪽 신문을 읽으며 이쪽 생각을 하든 저쪽 신문을 읽으며 저쪽 생각을 하든 누구한테나 마땅하고 옳으며 똑같습니다. 귀여운 손자는 왼쪽 사람한테도 귀엽고 오른쪽 사람한테도 귀엽습니다. 우리 집 아픈 아이는 왼쪽 사람한테도 보살필 애틋한 아이요 오른쪽 사람한테도 보살필 애틋한 아이예요.
.. 무엇보다 진보가 할 일은 사람에 대한 존중이다. 우리에게 사람과 사회, 역사의 변화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진보운동을 시작했겠는가. 그 첫 마음을 소통해야 옳다 … 진보 대혁신의 출발점은 개개인의 자기성찰과 학습이다 .. (97, 113쪽)
우리 삶은 굳이 ‘진보’로 가지 않아도 됩니다. ‘진보’가 굳이 이 땅에 뿌리내리지 않아도 됩니다. 오직 ‘착함·참다움·고움’ 이렇게 세 가지가 이 땅에 뿌리내리면 돼요. 누구한테나 착한 빛과 서로서로 참다운 꿈과 다 함께 고운 사랑이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으면 즐거워요.
고운 아이한테도 미운 아이한테도 떡 한 점씩 나눕니다. 고운 이웃도 미운 이웃도 따로 없이, 저마다 논밭을 푸르게 일굽니다. 능금나무는 모든 사람한테 달콤한 열매를 나누어 줍니다. 복숭아나무는 모든 아이들한테 달콤한 열매를 베풉니다. 포도나무는 모든 어른들한테 달콤한 열매를 선사합니다.
정치이든 경제이든 문화이든 교육이든 예술이든, 또 집안일이든 집살림이든, 능금나무 같은 길을 걸어가면 좋으리라 느껴요. 복숭아나무처럼, 포도나무처럼, 또 볏포기처럼 배추처럼 무처럼, 누구한테나 맛나고 달콤하며 배부른 숨결을 불어넣는 예쁜 길을 걸어가면 참말 좋으리라 생각해요.
삶을 배워야지요. 사랑을 얘기해야지요. 꿈을 이루어야지요. (4345.8.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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