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31

11 서평 극장국가 북한 권헌익·정병호



북한 3대 세습 비밀은 ‘스펙터클 극장정치’ : 책과 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등록 :2013-02-15 16:46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의 한 장면. 극장국가 북한이 세계에 자랑하는 과시적 스펙터클의 대표작. 북한은 본질적으로 영속할 수 없는 카리스마 권력을 세습을 통해 영속화(일상화)하기 위해 극장국가 체제로 전환했으며 그것은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고 <극장국가 북한>은 말한다. 자료제공 창비



극장국가 북한
권헌익·정병호 지음/창비·2만원



출구가 없다
조너선 폴락 지음, 이화여대통역번역연구소 옮김/아산정책연그치구원·1만8000원



“북한이 결국 핵무기를 가지게 된다면, 그 무기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부시가 만들어준 무기(Bush’s Bomb)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2004년에 이런 말을 한 브루스 커밍스의 우려대로 북은 최근 3차 핵실험까지 거치면서 사실상 핵보유 국가가 됐다. 그의 지적대로 미국은 북의 핵무장을 막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지 부시로 대표되는 미국 공화당 우파들의 호전적인 대북정책은 결과적으로 핵무장을 더욱 재촉했을 뿐이다. 미국이 앞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란 커밍스의 예측 역시 그대로 맞아들어갈 공산이 커 보인다.


<극장국가 북한>에서 커밍스의 얘기를 인용한 공동저자 권헌익과 정병호는 1990년 전후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김일성이 중국식 경제우선 사회주의 모델로의 전환을 모색한 사실도 지적한다. 

남북기본합의서 작성과도 무관하지 않은 그런 노력은, 그러나 미국과 한국 보수우파들의 저항 때문에 무산됐고, 북의 핵 개발 노력은 그 무렵부터 본격화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이런 흐름을 돌려놓을 정세 전환이 이뤄졌으나 부시 정권의 등장으로 상황은 다시 반전됐다.

하지만 결국 핵무장까지 하기에 이른 북 체제의 오늘은 중국이나 베트남 식 사회주의 시장경제형 개발방식에 대한 북 내부의 반발 탓이기도 하다. 두 지은이가 보기에 이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다.

 ‘선군 사회주의 혁명정치’를 대표하는 그 반발세력의 중심이 바로 ‘사회주의 체제 역사상 최초 세습’의 주역 김정일이며, 그가 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완성한 독특한 체제가 ‘극장국가’ 북한이다. 이 극장국가의 실태와 내부 메커니즘, 역사적 유래를 정교하게 추적하면서 그 문제점과 한계까지 명쾌하게 지적한 책이 <국장국가 북한>이다. 북은 유례없는 극장국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역시 유례없는 사회주의 세습체제를 만들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바로 그 성공 탓에 오히려 총체적 실패에 직면해 있다. 이것이 <극장국가 북한>에서 내린 결론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각각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권헌익과 정병호는 극장국가의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막스 베버의 정치이론에서 ‘카리스마 권력’ 개념을 빌려 온다. 카리스마적 인물들은 역사상의 급진적 사회격변 상황, 곧 변화에 대한 사회의 열망을 일상적 전통적 체제로 더는 억누르지 못하고, 기존의 합법적·관료적 체제를 통해 충족시킬 수 없을 때 출현한다. 따라서 카리스마 권력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사회 위기가 수습되고 일상의 질서가 회복되면 사라지게 된다. 동유럽 국가들도, 스탈린·마오쩌둥 체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베버가 보기에 “혁명적 카리스마의 관례화(일상화)”는 근본적으로 자기모순적(또는 자멸적) 과정이다. 카리스마 권력은 결국 전통적 권력으로 되돌아가거나 합리적 관료구조 형태로 발전하는 방식으로 다른 종류의 권력에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경계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예외였다. 개인숭배로 정착된 북한 김씨 가문의 카리스마 권력은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이 ‘성공’의 비결이 바로 극장국가요 그 완성자가 북 ‘혁명예술’의 최고 권위자였던 김정일이다.

<극장국가 북한>은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가 인도네시아 제의정치와 권력의 스펙터클에 대한 고전적 연구에서 소개한 ‘극장국가’ 개념을 인용하면서 북한의 극장국가적 성격을 탐구한다. 

1970년대 초에 김정일이 주도했다는 혁명가극 <피바다> <꽃 파는 처녀>, 이의 종합판이라 할 ‘아리랑 대축전’ 등이 북한이 세계에 자랑하는 과시적 스펙터클의 대표작들이요 극장국가의 주요 공연목록이다. 이들은 모두 김일성 가문의 항일무장투쟁 역사를 중심으로 하여 북 체제의 정통성을 찬양하는 것을 기본 줄거리를 삼고 있다. 

혁명가문의 전통은 이런 스펙터클을 통해 ‘재발명’됐다. ‘고난의 행군’ 시기 김일성과 김정일이 선대로부터 각각 물려받았다는 권총을 둘러싼 일화에 토대를 둔 ‘총대사상(철학)’과 거기에 기원을 둔 선군정치, 항일 무장투쟁에 초점을 맞춘 혁명렬사릉 등의 국립묘지, 주체사상탑, 동상 등의 장대한 기념물, 국제친선전람관….

일본의 북한연구 권위자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얘기한 ‘유격대 국가’는 거기서 발원했다. 김정일의 친모 김정숙을 ‘빨치산 전사’ ‘혁명의 어머니’로 재발명하고 이를 위해 유교적 충·효 이념까지 통합해서 녹여 넣은 가부장적 ‘가족국가’ 개념도 결국 카리스마 세습을 위해 창안됐다.

그렇게 해서 일단 3대 세습은 달성했으나 그 대가가 너무 컸다. 경제 파산과 대기근이 닥친 것은 냉전 붕괴와 함께 사회주의 분업체제가 무너진 이후지만, 북의 쇠퇴는 이미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 북은 그럴수록 극장국가적 스펙터클에 더욱 매달렸다.

인민을 제대로 먹일 수 없는 가족국가·극장국가·유격대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 책이 내린 다음과 같은 결론이 북에 출구가 될 수 있을까.

 “자랑스러운 성취는 그러나 동시에 비극적 실패이기도 했다. 북한은 카리스마의 자연적 수명에 저항하여 영원한 권위를 성취하겠다는 각오로 인위적이고 과장된 대중동원의 예술정치로 무장한 극장국가로 변모해 가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쳐갔다. 

이러면서 정치적으로 독립적이며 사회적으로 민주적이며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공동체를 건설한다는, 20세기 혁명국가로서의 근본 목적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갔다. … 

그 실패는 도덕적인 동시에 구조적인 것이었다. 달리 말해 그것이 심각한 구조적 실패가 된 것은 전면적인 도덕적 실패였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생존력 있는 사회 없이 생존력 있는 국가는 없다. … 북한의 역사는 국민(인민)의 역사가 아니라 국민의 역사를 가장해 사회에 강요한 국가의 역사에 불과하다. 선군정치, … 극장국가의 환상을 깨버리고 그 파편 속에서 진정한 북한혁명의 보물을 회복하라. … 극장국가의 환상을 무너뜨릴, 새로운 북한혁명을 시작하고자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 현대세계가 받아들일 수도 없는 신비주의적 상징의 연출가 역할을 끝내야 한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외교정책 선임연구원인 조너선 폴락이 쓴 <출구가 없다>는 ‘북한과 핵무기, 국제안보’라는 부제대로 북한 핵개발을 중심에 놓고 북한사회 변화와 주변국들에 대한 파장 등을 다루고 있다. 2011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지은이는 북이 끝내 핵무장 쪽으로 갈 것이라 예상하면서 대응책을 모색을 촉구했으나 역시 뾰족한 수는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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