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그후 1년]나는 이렇게 달라졌다 - 경향신문

[촛불, 그후 1년]나는 이렇게 달라졌다 - 경향신문

[촛불, 그후 1년]나는 이렇게 달라졌다이재덕·심윤지·배명재·권순재·이종섭 기자 duk@kyunghyang.com

입력 : 2017.10.25


지난 3월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3·1절 촛불집회’ 참가자가 촛불 위로 떨어지는 비를 가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참여·공유의 작품 활동 계기 된 ‘차벽 꽃 스티커’”

■ ‘차벽 꽃 스티커’ 만든 작가 이강훈씨(44)



지난해 11월 4차 촛불집회부터 경찰 차벽에 꽃 스티커를 붙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집회가 있을 때마다 차벽 설치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져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최근 경찰이 집회에 차벽과 살수차를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는 뉴스를 보고 기뻤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차벽이 등장하면 또 나가서 스티커를 붙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안 나가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내 작품 작업은 개인적인 관심사를 개인적으로 풀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촛불집회를 거친 후 많은 사람들이 경험을 공유하고 작품에 참여하는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를 ‘소셜아트’라고 부른다.


최근 제주에서 놀이터에 오는 아이들에게 분필을 나눠주고 바닥에 마음대로 낙서할 수 있도록 하는 소셜아트를 진행했다. 요즘은 아이들이 마음 놓고 낙서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아이들이 이런 체험을 하고 이를 기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촛불집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이 부모들과 함께 차벽에 꽃 스티커를 붙이는 장면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이를 깨닫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아이들도 뉴스 보게 한 ‘순시리 깜빵’ ‘하야빵’”

■ ‘순시리 깜빵’ 나눠준 빵집 주인 김형표씨(42)



아내, 초등학생인 아이와 함께 촛불집회에 참가해 시민들에게 두 가지 빵을 나눠드렸다. ‘순시리 깜빵’과 ‘하야빵’이었다. 촛불집회에서 빵을 먹는 손님들에게 얘깃거리를 던져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뿌듯한 것은 아이들이 촛불집회에 참석한 후부터 뉴스를 본 뒤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자기주장도 생겼다는 점이다. 몇 달 전 최저임금 인상 뉴스가 나왔을 때 아이가 “최저임금이 오르면 힘들지 않냐”고 질문해 깜짝 놀랐다. “아빠도 힘들지. 그런데 최저임금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이라서 줘야 하는 게 맞아. 아빠가 더 벌면 되니까 괜찮아”라고 했다.


요즘 이 작은 빵집에서도 어떤 리더가 돼야 할지 고민한다. 빵 만들 때 직원들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려고 한다. 대통령이든, 사장이든, 리더라면 의견을 듣고, 방향을 제시하고, 자신이 결정한 부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순시리 깜빵’과 ‘하야빵’을 찾는 손님들이 있다. 그러나 지난여름 매대에서 내렸다. 처음부터 돈을 벌려고 만든 빵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도 낮게 책정했다. 손님들이 빵을 먹으면서 논쟁하고 즐거운 경험을 했다는 것만으로 족하다.


“동료들과 정치·사회적 대화 자연스러워져”

■ 안경사 이상호씨(36)



지난해 11월 대전에서 열린 첫 시국대회에서 촛불을 들고 ‘이게 나라냐’고 외치는 청소년, 시민들을 보며 역사의 현장이 될 광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전에서 131일 동안 16번에 걸쳐 진행된 주말 시국대회를 빠짐 없이 기록했다. 그 현장을 함께 기억하기 위해 ‘봄’이 찾아온 지난 5월 사진집을 냈다.


지난겨울 촛불집회는 억눌리고 내재돼 있던 국민들의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분출된 계기였다. 주변에서도 변화를 목격한다. 임용고시를 봐야 하는데 혹시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도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하기 꺼려진다던 한 친구는 촛불집회 이후 참여하니까 바뀌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촛불집회에 함께 나갔던 아내와는 정치적 이슈나 사회문제에 대한 대화가 많아졌다. 직장에서도 동료들과 정치적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인권단체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주변에 회원 가입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난겨울의 촛불은 내가 한 단계 더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거듭나도록 고민하게 한 것 같다.


“색소폰 들고 촛불 무대, 요즘은 봉사 연주자”

■ 퇴직공무원 윤종식씨(63)



전남 해남 군민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지난해 말부터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좀 더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극적인 요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참가자 숫자가 200~300명으로 적었고, 분위기도 울분과 비난조만 가득해 끝날 때쯤 허탈하기만 했다.


집회에 웃음과 연대의식을 불어넣고 싶었다. 한창 실력이 붙은 색소폰을 들고 무대로 올라가면 어떨까 했다. 서울과 광주에서 공무원 생활을 한 후 3년 전 귀향하면서 동호회 활동을 통해 다진 레퍼토리를 들고 나가보자고 다짐했다.


올해 초 용기를 내 무대에 올랐다. ‘걱정 말아요 그대’ ‘아침이슬’ ‘여러분’ 등 수곡을 들려드렸다. 집회 분위기가 달라졌다. 완벽하지 못한 연주였지만 박수가 쏟아져 나오고 웃음이 가득했다. 색소폰 연주가 사람들의 표정을 변화시키고, 참가자 숫자를 끌어올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고 본다. 요즘에는 색소폰 연주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봄부터 열린 해남대흥사 토요음악회에 한번도 빠짐없이 나가고 있고 요양원, 장애인복지관, 동네잔치에도 단골연주자로 달려간다. 덩달아 폐활량을 늘리기 위해 40년 가까이 피우던 담배도 끊게 됐고 건강도 더욱 좋아졌다.



“집회 생소했던 지역, 이젠 시민학교도 만들어”

■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다솜 원장 최용진씨(39)



촛불집회 이전에는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했다. 나 하나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지역을 바꿀 수 있겠냐는 회의감이 앞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촛불집회가 전국으로 퍼질 때 충남 금산군에서도 집회를 열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금산군은 집회문화가 생소할뿐더러 정치적 성향도 보수적인 곳이라 걱정이 앞섰지만 지인들과 함께 촛불집회를 진행했다. 당시 촛불집회는 지역에도 힘을 모아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동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촛불집회가 나와 지인들을 지역 문제를 고민하는 활동가로 만들었다. 촛불집회를 함께 기획하고 진행한 지인들은 모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시민이다. 촛불집회 이후 우리는 삶의 터전인 마을부터 민주화를 이루고 농촌지역이 가지고 있는 수구성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자는 목표가 생긴 상황이다.


촛불집회를 기획했던 동료들을 중심으로 현재 금산에서 주민들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시민학교를 만들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무너져 가는 마을의 공동체를 회복하고 침체된 농촌마을에 삶의 활력소를 불어넣기 위한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도 진행할 계획이다.


“광장의 시민들 보며 ‘왜 공연을 하는가’ 답 찾아”

■ 촛불 뮤지컬 연출 김가람씨(26)



본래 죽음과 사랑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촛불정국이 오면서 ‘사회가 엉망진창인데 사랑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옳은가. 나는 왜 공연을 하는가’라는 고민이 깊어졌다.


지난해 11월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배우들’(시함뮤)이 청계광장에서 뮤지컬 <레미제라블> 중 ‘민중의 노래’를 공연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조연출을 자원했다. 우리는 촛불집회 무대에도 올랐다. 시함뮤 활동은 계속 이어갔다. 지난 1월9일 세월호 1000일 추모 음악회를 시작으로 양심수 석방 문화제, 미세먼지 시민대토론회 등 다양한 집회 현장에서 공연을 했다. 오는 28일 열리는 촛불 1주년 집회 무대에도 오른다. 오랜만에 연습을 하며 처음 시함뮤 공연에 참여한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서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왜 공연을 하는가’에 대한 답도 그곳에 있었다.


개인적으로 올 12월에는 세월호 참사를 모티브로 죽음에 대한 고찰을 담은 창작극을 올린다. 공연 준비로 바빠 이전처럼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지는 못하지만 ‘태평성대는 백성들이 왕을 모르는 사회’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재치 담은 음료 이름, 노동운동 현장으로 전파”

■ ‘박근혜 그만두유’ 나눠준 시민활동가 김숙희씨(45)



내가 속해 있는 노동운동단체 ‘카페 봄봄’은 촛불집회 때 시중에서 파는 두유에 ‘박근혜 그만두유’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여 매주 3000개씩 무료로 나눠줬다. 노동자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으로 했던 일이다.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노동운동도 재밌게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난 5월1일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때는 ‘최저임금 1만원’을 촉구하는 의미로 ‘레몬에이드’에 ‘만원’이라는 스티커를 붙인 ‘만원에이드’ 2000개를 만들어 무료로 제공했다. 그동안은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만원에이드를 나눠준 뒤에는 확실히 시민들의 반응이 달라진 걸 느낀다. 취지에 쉽게 공감해 준다. 최근 장기 파업농성장을 찾을 때는 ‘파업에이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집회에는 ‘쿨피스 노사드’를 가져간다. 운동의 방식이 바뀌자 회원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과거에 ‘노동자들 파업 현장에 간다’고 하면 머뭇거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잘 모르는 일’ ‘가기 어려운 곳’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요즘에는 ‘파업에이드 가지고 철도노조 농성장에 간다’고 공지를 띄우면 ‘잘 다녀오세요’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많이 받는다. 촛불도 노동운동도 결국 재밌어야 오래간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0252207005&code=940100&utm_campaign=backend_share_btn_click&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_share&utm_content=backend#csidx56e25d84cbb5f89baa0e3a4369392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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