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현대사 산책 1 - 해방과 김일성 체제 l 북한 현대사 산책 1
안문석 (지은이) | 인물과사상사 | 2016-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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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안문석 교수가 원고지 5,500매 분량으로 북한 현대사를 전5권으로 집필했다. 국내 최초로 북한 현대사를 사건과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가장 객관적으로 집필한 것이다. 수많은 자료에서 사실(史實)을 찾아내서 기자의 눈과 학자의 눈으로 북한 현대사를 꿰뚫고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조선통사>, <조선전사> 등과 <김일성 선집>, <김일성 저작 선집>, <인민의 지도자>, <김정일 위인상> 등 북한 자료의 진위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통찰력 있게 북한 현대사를 분석했다. 또한 남한의 학자들의 논문과 단행본, 조선인민군의 수기를 통해 균형 잡힌 시각과 안목으로 왜곡되고 잘못된 사실들을 바로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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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4
제1장 해방과 김일성 : 1945년
오, 자유!
‘만세’의 대향연 15 · 자생적인 정치조직들 19
소련군의 진주
소련군은 ‘마오제’ 22 · 북한은 전리품 26 · 소련의 간접통치 28
김일성의 등장
세력을 확장하는 김일성 31 · 김일성의 요정정치 35
공산당 창당
김일성과 박헌영의 담판 38 · 속도전 창당 42 · 『로동신문』창간 45
최고 권력자가 되다
신의주학생시위 사건 50 · 민족통일전선론의 승리 52 · 권력을 손아귀에 넣다 56 · 소련은 왜 김일성을 택했는가? 59 · 김일성과 보천보전투 62
김일성의 정적들
조선의 트로츠키, 오기섭 67 · 황해도의 아버지, 무정 73
김일성과 다른 길을 가다
시인형 운동가, 조만식 80 · 의문의 죽음, 현준혁 84 · 김일성이 현준혁을 암살했을까? 87
초등학생 눈에 보인 1945년 · 91
제2장 모든 것을 바꿔라 : 1946년
김일성 정권의 수립
공산청년동맹을 민주청년동맹으로 97 ·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출범 100 · 민주기지론과 국토완정론 106
사회를 개혁하다
모든 토지는 농민들에게 110 · 8시간 노동과 남녀평등 117 · 친일파 청산 119
사회주의의 시작
자본주의를 제한적으로 이용하다 124 · 주요 산업시설을 국유화하다 127
북조선노동당을 창당하다
연안파의 분열과 조선신민당 창당 130 · 김일성과 박헌영의 모스크바행 134 · 북조선노동당 출범 136
박헌영의 월북
미 군정에 쫓기다 139 · 남조선노동당의 탄생 143
정권의 물리적 기초 다지기
군대 창설 148 · 첫 선거 152
의식개혁운동
김일성종합대학 개교 155 · 건국사상총동원운동 159 · 기독교 탄압 162
문인들의 월북
이기영·한설야·이태준의 월북 166 · 응향 필화사건과 구상의 월남 171 · 최초의 한류스타, 최승희 175
통역장교가 본 1946년 · 179
제3장 멀어지는 통일의 길 : 1947년
사실상의 단독정부 수립
북조선인민위원회 출범 185 · 군 장교 숙청 작업 187 · 첫 화폐개혁 194
사회주의로 가기 위한 개혁
생산합작사를 만들다 197 · 사회주의적 농업협동화 200
물 건너간 통일임시정부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203 · 『동아일보』의 오보 208 · 여운형 암살 211
예술도 사상이 있어야 한다
영화를 통한 사상 교육 215 · 전국미술전람회 개최 220 · 원조 개그맨 신불출의 흥망 222
여성 광부의 1947년 · 229
제4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 1948년
정규군 완성
조선인민군 출범 235 · 기관단총 첫 시제품 생산 239
국내파의 몰락과 소련파의 득세
김일성의 국내파 비판 242 · ‘당박사’ 허가이의 권력 245
통일정부를 향한 마지막 몸부림
성시백의 활약 249 · 김구의 방북 253 · 홍명희와 허헌의 월북 261
정부 수립의 예비 단계
북한의 송전 중단 조치 266 · 임시통일헌법 제정 269 ·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272 ·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 개최 27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공식 정부 출범 277 · 국토완정론과 북진통일론의 대립 282
자율성의 확장
2개년 경제계획 수립 285 · 소련군 철수 288 · 조선인민군과 소련군 고문의 갈등 289
평안북도 농민의 1948년 · 294
제5장 전쟁으로 가는 길 : 1949년
높아지는 자신감
북한과 남한의 유엔 가입 신청 301 · 선거를 증산의 기회로 305 · 한자 전면 폐지 307
김일성의 남침 계획
스탈린 대원수 만세 312 · 스탈린의 반대 315 · 마오쩌둥의 반대 318
통일은 멀어졌다
김구 암살 323 · 38선의 무력 충돌 327
김일성을 고무하는 것들
조선노동당 창당 332 · 주한미군 철수 335 ·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339
강대해지는 조선인민군
징병제와 군 통제 강화 343 · 사회의 지원 체계 확립 346 · 조선인 부대의 입북 349
은행원의 1949년 · 353
주 · 356
연표 · 361
찾아보기 · 364
P.32~33 : 김일성과 함께 들어온 사람들이 김책, 최용건, 김일, 최현 등이다. 특히 김일성과 김책과 최용건은 북한 정권 수립의 핵심 역할을 하게 되는 삼총사다.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에 비유할 만하다. 최용건이 1900년생, 김책은 1903년생이니 1912년생인 김일성보다 나이가 훨씬 많지만 이들은 김일성을 받들어 정권을 세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항일무장투쟁을 함께하면서 다진 결속력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최용건과 김책의 지지가 없었다면 김일성 정권도 수립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일성은 원산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부터 자신의 항일빨치산 동지들을 북한의 주요 지역으로 파견했다. 오진우는 함경북도, 최현은 함경남도, 안길과 박성철은 평안북도, 림춘추는 평안남도로 보냈다. 그렇게 지방에 내려간 인물이 60명 정도 된다. 정보를 수집하고 각 지역에 자기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정치는 조직과 인물이라고 하는데, 김일성은 일찌감치 지역조직 확보에 나섰다. 「제1장 해방과 김일성」
P.62 : 스탈린은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1946년 7월 김일성과 박헌영을 만날 필요를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모스크바로 이들을 불러 면담을 했다. 여기서 스탈린이 김일성을 낙점했는지는 불확실하다. 이후에도 김일성과 박헌영이 경쟁한 점으로 미루어보면 분명한 낙점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귀환한 이후 김일성은 민주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이듬해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출범시켜 위원장이 되었다. 하지만 박헌영은 이후 내리막이었다. 박헌영은 1946년 10월 미 군정에 쫓겨 월북했다. 김일성의 세력권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로써 그의 기반인 남한의 조선노동당에 대한 지도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반면에 김일성의 세력은 더 커져 결국 그가 북한의 최고 지도자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제1장 해방과 김일성」
P.119~120 : 북한에서 친일파는 남한보다 철저하게 청산되었다. 청산 작업은 해방 직후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되었다. 강원도 고성에서 민족반역자 11명이 인민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강원도 양양에서도 3명이 인민재판에서 교화형을 선고받았다. 지역별로 자발적으로 조직된 각급 인민위원회는 친일파에 대한 색출 작업을 전개해 많은 친일파를 찾아내 숙청했다. 그러다가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체계적인 청산 작업이 진행되었다. 민주개혁의 핵심 내용으로 토지개혁과 주요 산업 국유화와 함께 친일파 청산 작업을 시행한 것이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제시한 11개항의 정책 가운데 첫 번째가 친일파와 반동 세력에 대한 청산이고, 두 번째가 친일파 토지 몰수를 포함하는 토지개혁에 대한 내용이었다. 「제2장 모든 것을 바꿔라」
권홍우 (『서울경제신문』 논설실장)
: 이 책은 사료를 바탕으로 사실에 입각해서 객관적으로 서술했다는 점이 장점이다. 기자 출신답게 글은 막힘이 없고, 학자답게 이론과 실제를 접목한 지점에서 글에 신뢰감을 준다. 특히나 북한 현대사 70년을 꿰뚫고 있는 안목과 인식은 여타 북한 관련 책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재)무지개청소년센터 이사장)
: 사드 배치, 북핵 위기, 대북전단 살포, 개성공단 폐쇄, 3대 세습, 전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 등은 한반도의 어두운 그림자들이다. 21세기 평화와 협력의 시대에 우리는 왜 아직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총을 겨누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남과 북이 서로 협력하는 시대 분위기를 만드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1인자를 만든 참모들》저자)
: 어떻게 3대 세습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가 형성되었을까?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도 김일성 일가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왕정국가를 통치할 수 있을까? 누구나 갖게 되는 의문이다. 이 책에 그 답이 있다. 우리 삶의 안정을 끊임없이 흔들고 위협하는 불량국가 북한, 그 북한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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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7년 1월 5일자
저자 : 안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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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북한 현대사 산책 2>,<북한 현대사 산책 1>,<북한 현대사 산책 5> … 총 12종 (모두보기)
소개 :
1965년 전라북도 진안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KBS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통일부, 국제부, 정치부 등을 거쳤고 정치부 외교안보데스크로 외교·안보·북한 문제를 총괄했다. KBS 재직 중 영국으로 유학해 요크대학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워릭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고 공부하다가 재미가 붙어 박사학위까지 받게 된 것이다.
한반도 문제와 국제정치를 깊이 파고 싶은 생각으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2012년부터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국제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주요 관심사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외교정책을 관찰하고 있다. 북한의 대외관계, 북한의 내부 권력관계, 국제정치이론, 한국의 외교정책, 미국의 외교정책 등을 주제로 연구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글로벌 정치의 이해』, 『오기섭 평전』, 『이제 만나러 갑니다』, 『김정은의 고민』, 『북한이 필요한 미국, 미국이 필요한 한국』, 『노무현 정부와 미국』 등이 있다. 「북미 불신 구조의 형성 원인과 극복 방안」(『한국동북아논총』, 2016년 9월), 「A Nuclear South Korea?」(『International Journal』, 2014년 3월), 「How Stable is the New Kim Jong-un Regime: a Revolution in North Korea」(『Problems of Post-Communism』, 2013년 1월) 등 북한과 국제정치 관련 논문을 국내외 저널에 계속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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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현대사의 모든 것,
70여 년의 사건과 사실을 생생하게 읽는다!
“1945년 해방부터 2016년 제5차 핵실험까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등을 한눈에 보다”
우리에게 북한은 무엇인가? 원수인가, 동포인가? 그런데 보수 정부 10년의 언행을 보면 북한을 원수로 보는 것 같다.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면 대화하겠다는 북한의 요구를 묵살하고 대결 국면으로 가더니, 북한이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로켓을 발사하자 개성공단마저 중단시켰다. 보수 정부는 대화하자고 말로는 했지만 대화를 위해 북한이 요구한 어느 것 하나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놓고는 대화를 제의했는데 북한이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북한이 각각의 정부를 세운 이후 제2공화국 11개월과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제외하고 60여 년 동안은 그런 식으로 북한을 대해왔다.
어떻게 하면 북한이 발가벗은 채 손들고 나오게 만들 것인지, 어떻게 하면 북한이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하도록 할 것인지 골몰해왔다. 가진 것 없이 자존심만 남은 북한은 “굶을지언정 무릎 꿇진 않겠다”는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러니 남북의 역사는 대결의 역사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그런 대결의 역사가 실제로 시작된 것은 정부 수립 훨씬 이전인 1945년이다. 해방의 해(年)에 벌써 대결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남북을 각각 점령한 미국과 소련이, 그 이후에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 확연히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이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당을 세워나가고, 찬탁과 반탁으로 나뉘면서 대결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1945년이 이후 한반도의 상황을 대부분 규정해버렸다.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안문석 교수가 원고지 5,500매 분량으로 북한 현대사를 전5권으로 집필했다. 국내 최초로 북한 현대사를 사건과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가장 객관적으로 집필한 것이다. 수많은 자료에서 사실(史實)을 찾아내서 기자의 눈과 학자의 눈으로 북한 현대사를 꿰뚫고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조선통사』, 『조선전사』 등과 『김일성 선집』, 『김일성 저작 선집』, 『인민의 지도자』, 『김정일 위인상』 등 북한 자료의 진위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통찰력 있게 북한 현대사를 분석했다. 또한 남한의 학자들의 논문과 단행본, 조선인민군의 수기를 통해 균형 잡힌 시각과 안목으로 왜곡되고 잘못된 사실들을 바로잡기도 했다.
북한 현대사 70여 년을 탁월한 안목으로 꿰뚫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1권 : 해방과 김일성 체제 (1945~1949년)
북한의 1940년대는 김일성의 역사라 해도 좋을 만큼 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는 민주기지론을 제기하고, 북한을 사회주의화한 뒤 남한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정부 수립 이후 국토완정론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1945년을 깊이 보면 아쉬움이 많다. 소련이 태평양전쟁에 뒤늦게 참전해 북한에 들어오게 된 것이 답답하고, 미군 대령 2명이 한반도 위에 그은 선 하나로 분단이 되었다는 것도 원통하다. 패전국 독일이 분단된 것처럼 패전국 일본이 분할 점령되었어야 했는데, 한반도가 나뉘었다는 것도 분한 일이다. 하지만 1940년대 한국 현대사의 아픈 점은 남북한의 핵심 인물들이 통일의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단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좌우 합작을 이루고 통일임시정부를 마련하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여운형과 김구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먹을 것이 많은 데로 몰리는 것이 정치의 생리 아닌가. 이들 곁엔 먹을 것이 많지 않았다. 결국 둘 다 권총을 맞고 한국 현대사의 뒤안길로 처연히 사라져갔다. 하긴 이들보다 먼저 간 이가 있었다. 현준혁이다. 누구보다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그도 민족주의자 조만식과 협력하다가 총을 맞았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2권 : 전쟁과 사회주의 건설 (1950~1959년)
북한의 1950년대는 전쟁, 김일성 권력 공고화, 숙청, 종파투쟁, 독자성 추구의 역사였다. 하지만 민족의 단일성과 동질성이라는 측량하기 어려운 가치를 잃었고, 북한 사회의 다양성이라는 어느 것에 못지않은 가치도 상실했다. 1953년 휴전은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이승만은 반대하고, 김일성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협정에 서명했다. 한반도 통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제네바 정치 회담은 당시 세계를 지휘하던 인물들이 모두 모였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그렇게 굳어진 정전 체제가 지금도 한반도를 규정하고 있다. 한편 김일성 세력의 중공업 우선 정책에 대해 연안파와 소련파 가운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일성 개인숭배에 대해서도 반감을 품은 세력들도 있었다. 북한의 1950년대 후반은 김일성 세력이 이들 반대파에 대한 제거 과정의 시기이기도 했다. 1961년 제4차 당대회에서 김일성 세력이 승리를 선언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3권 : 주체사상과 후계체제 (1960~1979년)
북한의 1960∼1970년대는 전제정치 체제와 세습 체제를 완성하는 시기였다. 1960년대에는 김일성 유일사상 체계와 김일성 유일지도 체계를 세웠고, 1970년대 중반에는 김일성이 주장하는 여러 혁명 이론과 대중지도 방법 등이 보태져 ‘김일성주의’가 되었다. 김일성 유일체제 형성 과정은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 과정과 동전의 양면이었다. 유일체제를 만들어가면서 김정일 후계체제를 구축해갔다. 그래서 김정일은 김일성 유일체제 형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버지를 세우는 것은 곧 자신을 세우는 것이었다. 갑산파를 비롯한 유일체제 반대 세력에 대한 숙청을 주도한 것도 김정일이었다. 김일성 개인숭배 작업을 지휘한 것도 김정일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에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와 수교를 확대하면서 비동맹 외교에 적극성을 보였다. 하지만 깊이와 폭에서 한계가 많았다. 북한의 관심은 북한식의 사회주의 체제를 세우는 데에만 있었다. 그것이 북한의 현실이었다. 그 핵심에는 물론 김일성이 있었다. 김일성 주변에는 가산제 국가 체제하에서 권력과 부를 분여받은 항일빨치산 세력들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김일성 유일체제가 바람직했고, 김정일의 권력 승계도 나쁘지 않았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4권 : 김정일과 고난의 행군 (1980~1999년)
북한의 1980∼1990년대는 권력 이양기이면서 체제 위기의 시기였다. 1980년 김정일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후계자로 확정되어 군권과 국가기관을 장악했다. 김일성의 권력은 김정일로 서서히 옮아갔다. 김정일은 국가기관을 중심으로 권력을 이어받으면서 1983년에는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지도부와 대면 교류도 시작했다. 1990년에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선출되고, 1991년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올라 군권을 장악했다. 1990년대의 북한 경제는 훨씬 어려워졌다. 1990년대 중반에는 특히 식량난이 극심했다. 배급 체계는 붕괴되고 주민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장마당으로, 산으로, 심지어는 중국으로 가야 했다. 굶어죽는 사람도 많았다. 북한 당국은 ‘고난의 행군’을 외치며 주민들의 희생과 악전고투를 요구했지만, 당국의 장악력은 떨어지고 사회 이완 현상은 점점 심해졌다. 서구와 중국의 지원으로 위기를 겨우 넘길 수 있었다.
『북한 현대사 산책』 제5권 : 김정은과 북핵 위기 (2000~2016년)
북한의 2000∼2010년대는 변화의 시기였다. 실리사회주의를 추구하거나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에 진전도 있었다. 200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으로 은둔의 세계에서 탈출했다. 그 자신도 그렇게 말했다.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일을 은둔에서 벗어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합의도 이끌어냈다. 남과 북이 이야기하는 통일 방안이 유사한 점이 있음을 확인하고 그 방향에서 통일 논의를 해나가기로 한 것이다. 남북이, 그것도 남북의 정상이 통일 방안을 놓고 진지하게 논의한 것은 처음이고, 합의도 처음이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 이후 세 차례의 핵실험은 한반도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고 남북 관계를 경색시켰다. 2016년 북한은 ‘자강력 제일주의’를 부쩍 강조했다. 자신의 능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생산 현장에서 이를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1960년대의 자력갱생과 같은 모토다. 자력갱생은 주민의 노력 동원에 이용되었고, 외부와의 교류를 방해했다. ‘자강력 제일주의’도 같은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했다.
소련은 왜 김일성을 선택했는가?
김일성이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된 데에는 소련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 제25군 군사위원 레베데프는 소련군 극동군 소속 고위 장성들이 대일전 이후 제88특별정찰여단에 있던 김일성을 조선의 주요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삼아 입북시켰다고 증언했다. 소련군 연해주군관구 사령부 군사위원 스티코프에게서 김일성을 평양에 들여보낼 테니 그에게 주택과 자동차를 지급하라는 지시도 받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스티코프가 김일성 지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스티코프가 극동경비국 사령관을 할 당시 김일성이 있던 제88특별정찰여단이 극동경비국 소속이었다. 당시 이 여단의 책임자는 중국인 저우바오중이었다. 그는 김일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스티코프는 그를 통해 김일성의 항일투쟁 등에 대한 정보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이 여단 내 한인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김일성을 알게 된 스티코프가 그의 지원자가 되었다.
사회 개혁과 북조선노동당 창당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출범하자 김일성 세력은 토지와 산업시설의 소유, 노동제도, 남녀평등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개혁했다. 토지개혁은 ‘모든 토지는 농민들에게’라는 모토로 시작되었고, ‘북조선 노동자 및 사무원에 대한 노동법령’을 공포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분명히 정리했다. ‘북조선의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을 시행해서 정치, 경제, 문화,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남녀가 평등한 권리를 갖도록 했다. 그리고 민족반역자, 즉 친일파의 토지는 작은 것이라도 모두 몰수해 친일파를 청산했다.
북조선공산당은 조선신민당과 합당 작업을 본격화해 북조선노동당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북조선노동당은 민주적인 자주독립국가의 건설, 일본인·민족반역자·지주의 토지 무상몰수과 무상분배, 일본인·민족반역자 소유의 공장·광산·철도 등 주요시설 국유화, 8시간 노동제, 남녀 동일 임금제, 남녀평등 선거제 등을 제시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성립 이후 추진해오던 민주개혁의 내용을 당의 강령에 포함해 그 시행을 재차 강조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김일성은 1948년 9월 9일 10시 모란봉극장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 앞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을 공식 선포했다. 이때 김일성은 8개 정부정강을 발표했다. 첫째, 국토완정과 민족통일의 선결 요건이 되는 미소 양국 군대의 철수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둘째, 조선 인민의 이익을 배반하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적극 협력한 친일파와 민족 반역자들을 처벌한다. 셋째, 토지개혁과 산업국유화, 노동법, 남녀평등법 등 민주개혁을 더욱 공고화할 것이다. 넷째, 경제의 식민지 예속성을 청산하고 조선 인민의 복리를 향상시키기 위해 자주적 민족경제를 건설할 것이다. 다섯째, 교육과 문화와 보건 분야의 발전을 위해 힘을 쓸 것이다. 여섯째, 인민정권기관을 더욱 발전시킬 것이다. 일곱째, 여러 자유애호국가와 친선 관계를 맺도록 노력할 것이다. 여덟째, 외래 침략 세력에서 국토를 보위하고 민주개혁의 성과를 보호하기 위해 인민군대를 강화할 것이다.
김일성은 왜 남침을 계획했는가?
1949년 3월 3일 모스크바에 도착한 김일성 일행은 스탈린에게 남침 계획을 밝히면서 소련의 지원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미국의 개입을 우려해 전쟁을 반대했다. 군사적으로도 미국은 비대칭 전력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중국의 마오쩌둥도 전쟁을 반대했다. 중국은 타이완 해방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스티코프도 김일성의 남침에 반대 의견을 보냈다. 첫째, 남북한의 군사력이 비슷하다. 둘째, 미국의 개입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기에 군사적·정치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그 대신 그동안 해오던 남한 내 빨치산투쟁을 강화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했다. 김일성이 1949년 초부터 모스크바와 베이징에 남침 의사를 적극 개진했지만, 스탈린이나 마오쩌둥도 쉽게 동의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정부를 세우면서 국토완정을 내세운 김일성은 군사적으로 남한을 공격·점령하는 방안을 치밀하게 준비해나갔다. 소련과 중국을 다시 설득하고 모든 준비도 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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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하루끼의 북한 현대사의 경우, 북한 내부 인물간의 권력과 갈등관계의 부재가 아쉬웠는데 상기 책은 해방 이후 북조선 공화국을 성립해가는 과정에서 큰 그림과 세부적인 인물관계 잘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책이 지금에야 나오는 것은 빨갱이 컴플렉스에 아직도 우리가 있다는 것 아닐까?
울프심 ㅣ 2017-06-12 l 공감(0) ㅣ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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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문석-임지현-정옥자 로쟈 ㅣ 2016-12-31 ㅣ 공감(32) ㅣ 댓글 (0)
해를 넘기기 전에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지만 역사학자 3인을 선택했다. 먼저 <북한 현대사 산책>(전5권, 인물과사상사, 2016)을 펴낸 안문석 교수. 권별 제목으로는 '해방과 김일성 체제'부터 '김정은과 북핵 위기'까지다(알라딘에서는 4권의 이미지가 1권 이미지로 잘못 떠 있다).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안문석 교수가 원고지 5,500매 분량으로 북한 현대사를 전5권으로 집필했다. 국내 최초로 북한 현대사를 사건과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가장 객관적으로 집필한 것이다. 수많은 자료에서 사실(史實)을 찾아내서 기자의 눈과 학자의 눈으로 북한 현대사를 꿰뚫고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조선통사>, <조선전사> 등과 <김일성 선집>, <김일성 저작 선집>, <인민의 지도자>, <김정일 위인상> 등 북한 자료의 진위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통찰력 있게 북한 현대사를 분석했다. 또한 남한의 학자들의 논문과 단행본, 조선인민군의 수기를 통해 균형 잡힌 시각과 안목으로 왜곡되고 잘못된 사실들을 바로잡기도 했다."
저자는 KBS 기자로 재직하다가 늦은 유학길에 올라 국제정치학을 전공하고 대학에 재직중이다. <대통령과 골프>(인물과사상사, 2015) 같은 책이 나왔을 때는 이런 주제도 책이 되나, 의구심이 들었는데 북한 현대사에 관한 규모 있는 책을 따로 준비해온 모양이다. 강준만 교수의 <한국 현대사 산책>처럼 속도감 있게 읽히지 않을까 싶다.
서양사학자 임지현 교수가 오랜만에 책을 펴냈다. <우리 안의 파시즘>(삼인, 2016)처럼 재출간된 공저를 제외하면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휴머니스트, 2016) 이후인 듯싶다.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소나무, 2016). '어느 사학자의 에고 히스토리'가 부제. 역사학자 혹은 '기억활동가'로서 저자가 자신의 학문을 회고하고 있는 특이한 종류의 책이다.
"이 책은, 임지현이라는 기억 활동가가 지금껏 꾸불꾸불 걸어온 학문 여정을 기록한 자신의 에고 히스토리(ego-history)이자 퍼블릭 히스토리(public history)이다. 이 책이 지향하는 에고 히스토리는, '임지현이 만든 역사'에 대한 성찰과 '임지현을 만든 역사'에 대한 분석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는 역사이다. 그리고 임지현이라는 한 역사가가 역사적 행위자로서 어떻게 역사 지식의 생산과 소비, 유통에 참여해 왔는가에 대한 지성사적 고찰을 요구한다."
내가 기억하는 임지현은 <바르샤바에서 보낸 편지>(강, 1998),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소나무, 1999)의 저자로서인데, 어느덧 20년이 되어 간다. 요즘처럼 빛의 속도로 나이를 먹어 가는 시대에는 바로 엊그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감회가 없지 않다. 하기야 지난 세기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역인한 바 있는 국사학자 정옥자 교수(현재는 서울대 명예교수)도 신간을 펴냈다. <사임당전>(민음사, 2016). 날짜로는 한달 전이다.
"이 책은 후세 사람들에 의해 사임당에게 덧씌워진 여러 이미지에 대한 논란은 접어 두고 사임당의 실제 삶에 초점을 두어 살펴본다. 사임당이라는 인물이 실제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았는지 일생을 알아보고 사임당이 남긴 작품들을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이 책의 저자 정옥자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임용되었고 규장각 관장을 지냈으며, 2016년 현재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 '최초 여성'이었던 저자가 그려 내는 조선 시대 여성 선비의 전범(典範), 사임당의 진정한 모습을 <사임당전>에서 만나 본다."
신사임당 평전이 그간에 없지 않았지만(주로 어린이용이 많았다) 조선 후기사 권위자의 저작인 만큼 신뢰감을 갖게 된다.
올해 사임당 관련서가 몇 권 나왔는데, 같이 모아서 읽어봐도 좋겠다...
16.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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