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순 (지은이) | 동녘 | 2017-07-31
정가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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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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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이며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강남순의 에세이. 평범한 일상에서 얻은 배움을 기록한 수백 편의 글 가운데서 아흔한 편을 추려 엮었다. 평소 ‘스승’으로 사는 그에게는 일상이 학교이고, 또 그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교사다. 각기 다른 모습과 배경의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집중하다보면 차별과 배제의 근거로 작동하는 여러 경계와 범주들이 허물어진다. 그래서 그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가리켜 ‘살아 있는 텍스트’라 한다. 이것은 곧 자기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저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배움’과 연결된다.
그에게 배움이란, 익숙한 세계관을 뒤흔드는 내면의 불편함과 좋은 질문을 수반하는 것이다. 배움은 당연해 보이는 것들에 의문을 던질 때 시작된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를 강조한다. ‘진정한 배움’은 다양한 차별과 억압적 사회구조를 인지하는 예민함을 길러주고, 자기 인식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또한 삶의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게 하며,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데 개입하도록 부추기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왜 배우려고 하는가, 배움이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었나, 내가 생각하는 배움은 배움이 맞는가, 어떤 종류의 배움이 내게 필요한가, 진정한 배움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얻기 위해 뭘 할 것인가. 저자는 특유의 담백한 문장으로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과 장소 및 매체 등을 경유하며 그 질문들을 사유하게 한다.
책을 시작하며
1장 살아감, 그 배움의 여정
저주받은 삶이란 없다
어느 특별한 선물
두 살 사람의 절대적 환대
‘나’를 선택하기의 과제
살아감이란
오늘 나의 선생, ‘노래하는 이’
두 명의 한국인과 ‘구원’
‘함께 읽는 기쁨’이란
어떤 모자母子 이야기
삶의 패러독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프라하의 예수, 카프카 그리고 노숙인들
시청 앞 광장, 들꽃 같은 이들
탈일상성의 공간, 공항에서
왜 ‘쓰기’를 하는가
‘함께 실존’은 인식에 선행한다
따스함이 필요한 존재들
치열함이 내미는 손길
소통 부재 속의 소통
뉴욕 한가운데서 만나는 세계들
어느 신부님 이야기
낯설음과 익숙함의 교차 공간에서
빵과 ‘더불어’ 빵을 ‘넘어서’ 사유하기
2장 살아 있는 텍스트, 타자의 얼굴들
‘자기 사랑’이라는 이름의 과제
목사탕 다섯 개, 그 소중한 선물
상賞의 폭력성
사랑의 행위
사랑의 상투성을 넘어서
성적 매기는 행위의 아이러니
한 학생의 자살을 마주하며
살아 있는 텍스트, 타자의 얼굴들
진지한 눈빛에 대한 목마름
무수한 선택과의 대면
나는, 우리는 어떠한 ‘물음’들과 대면하고 있는가
‘불현듯’이 부재한 시대
편지, 그 ‘말 건네기’의 아름다움
자기 자신과의 관계의 정원
‘위험한 교수’의 말과 글
예순아홉 살 소녀, 로즈메리
아웃사이더, 데리다와의 만남
데리다, 스스로 쓴 자신의 장례식 조사
동료들, 친구들이 있다는 것
불확실성 시대의 신
미국의 대학교, 나의 강의실 이야기
‘비결정성’의 존재, 그 가능성과 아름다움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사회변혁과 얼굴들
3장 사랑, 치열한 생명 긍정의 희망
이중섭, 그 불가능한 가능성의 유토피아
고갱,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프리다 칼로, 그 치열한 ‘생명 긍정’에 대하여
피카소, 비극의 한 가운데에서
4장 인식의 사각지대를 넘어
순수주의의 위험성
성차별, 그 천의 얼굴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은 의도성과는 상관없다
여성혐오의 다층적 얼굴들
세계 여성의 날, 그 양가성
순종과 희생 이데올로기에 갇힌 이들
한국 신문에 바란다
혐오의 몸짓을 거두라
혐오에 저항하는 이들
작은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든다
눈물이 언어가 되어버린 이들
‘추상화로서의 존재’의 정체성
장애인 외면하는 사회를 넘어서
‘장애인의 날’이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꾼다
‘권리의 원’의 확장, 그 절실한 과제
존재의 위계적 사다리, 그 바닥에 서 있는 이들
무관심은 인류에 대한 범죄의 시작이다
5장 감히 스스로 생각하라
스스로 자신의 멘토가 되라
고립사회를 넘어서
계속 배우라, 책 속에 길이 있다
인문학의 상품화,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나는 지불한다, 고로 존재한다
유행의 물결로서의 지적 액세서리
지도자로서의 ‘철학자 왕’은 어디에
“그대는 잘 지내고 있나요?”의 회복
고향에서 망명자로 사는 이들
고향에 대한 갈망, 그 변혁에의 열정
진정성의 부재 시대, ‘진정성의 삶’이란
실존적 독감을 앓고 있는 이에게
아픔에는 ‘왜’가 없다: ‘이중국적자’로서의 삶
어떻게 지내는가?: 생명지향적 삶을 향하여
종교, 상투성에의 저항
왜 질문은 해답보다 중요한가
불확실성을 끌어안으라
정황 불감증, 그 정서적 폭력성에 대하여
새로운 탄생을 향한 존재
비판과 악마화의 근원적 차이
(감히) 스스로 생각하라
노숙인 예수
한국말과 호칭, 그 위계주의적 딜레마
대안 공동체의 희망
P.7 : 아무리 책을 양적으로 많이 읽고 여러 강연을 듣는다 해도, 비판적 성찰 없는 배움이란 ‘정보의 축적’일 뿐이다. (…) 아무런 비판적 성찰 없이 책이나 선생으로부터 받기만 하는 수동적 교육과 배움은, 다양한 차별과 억압적 구조에 대한 예민성을 길러주지 못한다. 진정한 배움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배움이란 비판적 성찰이 동반될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사건’이다.
P.35 : 자신이 지닌 백 개의 가지 중에서 아흔아홉 개가 앙상한 가지라 한들 어떠한가. 한 개의 가지라도 강렬한 생명력을 내뿜고 있다면, 그 단 한 개의 가지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절절한 생명력이 움틀 수 있도록 만들어가도록 애쓰는 것, 그것이 이 삶이 여전히 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아닐까.
P.50 : 나는 ‘모든 것이 잘 될 거야’라는 상투적인 희망의 약속이나 위로의 말이 어떤 상황에서는 오히려 고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에서 그렇게 결국에는 모든 것이 잘 되는 ‘장밋빛 인생’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흑처럼 느껴지는 절망의 터널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님을 인지하는 것, 그 암흑을 바라보는 ‘나’가 가느다란 햇살을 만들어내어 암흑과 햇살 두 축 사이에서 춤추기를 연습하는 것, 그것이 살아 있음에 대하여 우리가 가져야 하는 엄숙한 과제인지 모른다.
저자 : 강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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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페미니즘과 기독교>,<배움에 관하여>,<용서에 대하여> … 총 13종 (모두보기)
소개 :
현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T exas Christian University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Brite Divinity School 교수.
현 대학에서 코즈모폴리터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페미니즘과 같은 현대 철학적■신학적 담론들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임마누엘 칸트, 한나 아렌트, 자크 데리다 등의 사상과 연계한 코즈모폴리턴 권리, 정의, 환대, 그리고 사랑의 문제들에 대한 학문적, 실천적 관심을 두고 다양한 국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한국일보■, ■경향신문■, ■시사인■ 등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왔다.
지은 책으로 ■배움에 대하여: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2017), ■용서에 대하여: 용서의 가능성과 불가능성■(2017), ■정의를 위하여: 비판적 저항으로서의 인문학적 성찰■(2016),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 21세기 영구적 평화를 위하여■(2015), ■디아스포라 페미니스트 신학: 아시아와 신학정치적 상상 Diasporic Feminist Theology: Asia and Theopolitical Imagination■(2015), ■코즈모폴리턴 신학: 불균등한 세계에서의 행성적 환대, 이웃 사랑, 연대의 재구성 Cosmopolitan Theology: Reconstituting Planetary Hospitality, Neighbor-Love, and Solidarity in an Uneven World■(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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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물음표를 붙이는 순간,
배움이 시작된다!
강남순이 안내하는 ‘진정한 배움’에 닿는 길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학교 교수이며,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강남순의 에세이. 평범한 일상에서 얻은 배움을 기록한 수백 편의 글 가운데서 아흔한 편을 추려 엮었다. 우리 일상은 훌륭한 배움터다. 곳곳에 교사와 반면교사가 될 만한 사람과 사건이 존재한다. 하지만 막연히 삶을 이어나가는 것만으로 배움이 얻어지진 않는다. 배움은 당연해 보이는 것들에 의문을 던질 때 시작된다. 그런 맥락에서 저자는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를 강조한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강연을 듣는다 해도 비판적 성찰을 작동하지 않는다면 정보 축적 이상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강남순은 정보 축적으로서의 배움을 경계한다. 그에게 배움이란 많이 알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배움’은 다양한 차별과 억압적 사회구조를 인지하는 예민함을 길러주고, 자기 인식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또한 삶의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게 하며,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데 개입하도록 부추기기도 한다. 강남순이 그런 진정한 배움의 전제로 말하는 것이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비판적 성찰을 일상화하며 끊임없이 배워온 자기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자들은 그 이야기의 안내를 받아 진정한 배움에 이르는 자기만의 길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이라는 ‘살아 있는 텍스트’, 그들이 선생이다
강남순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가리켜 ‘살아 있는 텍스트’라 한다. 활자를 읽으며 배울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타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은 산책길에서 만난 어린아이이기도 하고,(26쪽) 즐겁게 노래 부르며 일하던 호텔 청소노동자이기도 하다.(36쪽) 또 가르침과 배움은 둘이 아니라는 평소 그의 지론처럼,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 역시 그의 선생이다. ‘자기 사랑’과 ‘타자 사랑’이 어떤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지 상기시켜준 K,(87쪽) 서로의 좋은 인간성을 일깨우는 일은 거창한 행동이 아닌 작은 관심과 배려로도 가능함을 알게 해준 제니퍼,(91쪽) 이론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깨기 힘든 편견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준 T(165쪽) 등, 강남순은 종종 제자들을 자신의 스승으로 삼는다. 한편, 강남순은 타인을 응시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각기 다른 모습과 배경의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집중하다보면 성별, 몸매, 나이, 피부색처럼 현실에서 차별과 배제의 근거로 작동하는 여러 경계와 범주들이 허물어진다. 그들이 나와 같은 고귀한 생명이자 함께 살아가는 ‘동료 인간’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112쪽) 이것은 곧 자기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강남순이 생각하는 ‘진정한 배움’과 연결된다.
배우기 전에 배움 그 자체를 사유하라
한국사회는 배움에 굶주린 것처럼 보인다. 인문학 강좌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텔레비전 방송은 지식 전달형 예능이 점령했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뭔가를 알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강남순은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긍정하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배움이 일반화되는 현상에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그에게 배움이란, 익숙한 세계관을 뒤흔드는 내면의 불편함과 좋은 질문을 수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인문학 강좌나 방송 프로그램은 간결 명쾌한 해답을 던져주면서 청중을 즐겁게 하는 데 치중한다. 강남순이 보기에 이런 풍토는 우리를 배움과 멀어지게 만든다. 그는 무작정 배우기 전에 배움에 관해 곱씹어보기를 권한다. 나는 왜 배우려고 하는가, 배움이 무엇이라 생각하고 있었나, 내가 생각하는 배움은 배움이 맞는가, 어떤 종류의 배움이 내게 필요한가, 진정한 배움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얻기 위해 뭘 할 것인가. 강남순의 이 책 《배움에 관하여》는 저자 특유의 담백한 문장으로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과 장소 및 매체 등을 경유하며 그 질문들을 사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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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서 교육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왔으면서 정작 ˝배움˝에 대해 강남순 선생님보다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비로소 이 책을 통해 나를, 내가 몸담고 있는 교육을, 그리고 우리의 배움을 돌아보게 된다. 저자의 사유가 죽비소리가 되어 나를 내려친다.
랑이 ㅣ 2017-09-27 l 공감(3) ㅣ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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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1편
배움은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다 연보라빛우주 ㅣ 2017-08-25 ㅣ 공감(3) ㅣ 댓글 (0)
이 책의 부제는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다. 제목과 이어보자면, '배움은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다' 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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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성찰은 무엇인가. 이 책의 서문에 친절하게 제시되어 있다. 우선 "무엇도 자명한 것은 없다"는 전제를 세워야 한다. 즉 "진정한 배움을 위해서는 우리가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물음표를 붙여야 한다."(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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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를 세운 후 세 가지 단계를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묘사적 단계, 분석적 단계, 비판적 단계"다. 스스로 묘사하고 분석한 후에야 비판이 가능하다.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사유에 근거 해 '판단'하며 그 판단이 개혁과 변화를 모색하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배움이 가능하게 된다."(7쪽)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진짜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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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의 위와 같은 생각이 담긴 91편의 에세이집이다. 1장은 "살아감, 그 배움의 여정"이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계속 배울 수밖에 없다.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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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아닌 어떤 사람의 모조품이 되지 마라. (…) 눈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발자국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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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토마스 크바스토프'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가 배워야 할 대상(혹은 가꾸어가야 할 대상)은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대체 불가능한 유일성"을 가진 나라고 말한다. 이는 '나르시시즘'이 아니다.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나'라는 존재를 앎으로 인해 '타자'의 존재도 배운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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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사랑'을 배우고 연습하지 않으면, '타자 사랑'을 하는 법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자기 사랑'이란 자동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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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주변과 연계하고 반응하는 방식이 이렇게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보면서, 사실상 각기 다른 모습들이 특정한 사람에게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속에 모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나의 나'가 아닌 것이다."(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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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타인과는 너무나도 다르고 특별한 나'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수없이 많은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나'로 성장한다. 즉, 나만 사랑받을 존재라고 주장하는 나르시시즘과 다르게 '나를 배운다'는 의미는 '연대'를 가능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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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이 "살아 있는 텍스트, 타자의 얼굴들"이 되는 이유다. 나를 들여다 보는 과정에서 "타자의 얼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법을 배운다면" 나와 너와 다르다고 단정내릴 수만은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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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얼굴을 배우는 행위는 "사랑이 치열한 생명 긍정의 희망"(3장)임을 알게 되고 "인식의 사각 지대를 넘어"(4장) "감히 스스로 생각"(5장)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책 속에 길이 있"으니 계속 배우"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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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각가의 인식록적 한계는 물론 자신의 정황에 한계 지워진 존재라는 점에서 그 한계들을 넘어서기 위한 '부단한 배움'이 없을 때 독선과 아집에 빠지게 된다. 배움을 멈춘 인간은 '나'를 찾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그만 배워라"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배움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이 먼저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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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좋은' 책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것은 맹목적 '정보'가 아닌 다층적 '세계들'이다. '나의 존재함'이란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개별적 나'는 타자와의 절대적 분리 속에서는 불가능하다. 좋은 책은 바로 나-타자-세계의 다양한 존재 방식을 담은 '다층적 세계들'과의 만남을 담고 있다. <중략> 이 점에서 인간은 '홀로'이면서 동시에 '함께 존재'라는 것, 그 '홀로-함께 존재'로서 이 세계에 개입해야 하는 책임성. '좋은' 책이 우리에게 인식하게 하는 중요한 통찰이다."(278-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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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다. 계속 배우는 과정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인식함과 동시에 나라는 존재의 한계를 깨닫기 위해서다. 한계가 있는 나는 타인과 함께 존재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이 세상에 책임이 있음을 배운다. 독서는 그런 과정에 이르도록 돕는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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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면 대안"을 생각하게 된다. 나만 잘 살면 된다고 말하고, 끊임없이 타인을 배척하고 미워하게 만드는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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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변화는 언제나 새로운 대안적 세계를 꿈꾸고 실천하고자 무수한 시도를 하는 '소수'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희망의 근거는 '성공과 승리의 보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보다 나은 대안 공동체를 위하여 씨름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과감히 해내는 바로 그 '과정' 속에 있다. 대안을 꿈꾸는 이들은 확고한 성공의 보장 때문이 아니라, 그 성공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그 대안이 꿈꾸는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열정과 신념으로 모험의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모험을 감행하는 이들이 꿈꾸는 대안적 세계에 대한 열정으로 변화해왔다는 것을 우리는 끊임없이 기억해야 할 것이다."(367-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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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능성을 희망한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살아가는 삶은 불안하고 불확실하고 불투명하여 수없이 좌절하게 만든다. 좌절한다 해도 멈출 수 없다. 계속 배우며 살아갈 뿐이다. 그 끝에서도 끝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저항'은 그 자체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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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5장 감히 스스로 생각하라' 중에서 "정황불감증, 그 정서적 폭력성에 대하여"는,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K씨가 트위터에 올린 글에 관한 저자의 사색이 담겨 있다. 나와 생각이 비슷하여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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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가 신영복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바가 거의 없다"고 해도 신영복 선생님의 죽음이라는 '정황'에 이런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저자의 말대로 "정황불감증"은 "정서적 폭력을 가하는 것"이 되는 동시에 "비인간화"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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