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입력2015-12-03 16:31:05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교수(58)를 검찰 기소하면서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2일에는 박 교수의 ‘해명 기자회견’에 이어 엇갈린 주장을 담은 ‘지식인 성명’이 연달아 발표됐습니다.
박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제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판하거나 폄훼하는 책을 쓸 이유가 없다”며 “검찰의 비인권적인 조사와 기소에 강력 항의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검찰의 기소에 반대하는 지식인 194명도 박 교수의 기자회견에 이어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김철 연세대 교수,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장정일 작가 등 3명이 대표로 낭독한 공동성명서는 “한 학자가 내놓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발상은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라며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시민들과 함께 박 교수에 대한 기소 사태를 깊이 우려한다”고 말했습니다.
박유하 교수
‘<제국의 위안부> 사태’를 학문과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을 우려하는 성명도 이날 발표됐습니다. 윤정옥 이화여대 명예교수, 정진성 서울대 교수 등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 명의로 성명을 내 “원칙적으로 연구자 저작에 대해 법정에서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하지만 <제국의 위안부>는 사실 관계, 논점의 이해, 논거의 제시, 서술의 균형, 논리의 일관성 등 여러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제국의 위안부>가 충분한 학문적 뒷받침 없는 서술로 피해자들에게 아픔을 주는 책”이라면서 “박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 지지 연구자들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성명에는 박 교수와 공개논쟁을 벌였던 이재승 건국대 교수,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등 60명이 1차 서명자로 참가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학문과 표현의 자유는 연구자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듯 합니다. 일단 박 교수를 고소한 당사자가 위안부 할머니들입니다.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명예가 훼손돼 고소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검찰이 <제국의 위안부>를 기소한 것을 두고 ‘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판단이 쉽지 않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지루함과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천천히 관련 내용을 '많이' 읽어보는 것입니다. 문제가 됐던 <제국의 위안부>의 내용과 논란, 그리고 2일 발표된 박유하 교수의 성명, 지식인들의 성명을 시간순으로 정리했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박유하 교수가 경향신문에 보내온 '반론'도 추가했습니다. 끝까지 읽어보시면, 나름대로 판단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어떤 책일까요. 2013년 8월10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서평입니다.
▶[책과 삶]위안부 해법, 일본정부는 물론 한국의 민족주의도 걸림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정복수 할머니(98) 등 9명은 지난해 6월16일 박유하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고소했습니다. 이어 17일에는 책의 출판·판매·광고 등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동부지법에 냈습니다. 할머니들은 “이 책이 피해자들을 ‘매춘부’ ‘일본군의 협력자’로 허위 기술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정신적 고통을 줘 배상 책임이 있다”고 고소 이유를 밝혔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판금 신청
지난해 7월9일 <제국의 위안부> 판매금지 소송의 첫 심리가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법정에는 강일출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5명이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박유하 교수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매춘행위자나 일본군의 협력자로 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 교수는 서면 답변서에서 “매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이유로 위안부들을 비하했다고 보는 시각은 매춘의 피해자를 비난하는 도덕 군자들의 의식보다 나을 것이 없다”며 “‘협력’이란 단어도 식민지배 하의 조선인들에게 요구됐고 위안부들에겐 특히 강요됐던 봉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소송대리인들이 지난해 6월16일 오전 서울 광진구 동부지방검찰청 민원실 앞에서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와 출판사에 대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이옥선,정복수,이옥선 할머니. /연합뉴스
▶<제국의 위안부> 판매금지 소송 첫 심리…법정서 소동까지
지난 2월17일 <제국의 위안부>가 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법원의 결정이 나왔습니다. 법원은 일본군 위안부가 ‘피해자’이며, 대부분 10·20대 초반의 여성들로 강제동원돼 ‘성노예’ 취급을 받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책에서 군 위안부에 대해 ‘정신적 위안자’ ‘군인의 전쟁 수행을 도운 애국처녀’ ‘자발적 매춘부’ 등으로 표현한 부분을 삭제하지 않으면 명예나 인격권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법원 “도서 ‘제국의 위안부’ 매춘부 등 표현 삭제해야”
박유하 교수는 결국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지난달 19일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로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박유하 교수를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저자 재판에 학문·표현의 자유 법리 공방
박교수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습니다. 또 검찰기소의 부당성도 주장했습니다. 지식인들은 학문·표현의 자유를 두고 엇갈린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박유하 교수, 기소 항의 회견
■아래는 박유하 교수의 성명 전문입니다.
참담한 심경으로 이 기자회견에 임합니다.
<집필배경>
저는 10년 전에 <화해를 위해서-교과서. 위안부. 야스쿠니. 독도>라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후로도 위안부문제의 해결에 줄곧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2007년에 위안부문제를 위해 조성되었던 일본의 아시아여성기금이 해산된 이후,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급속도로 식어갔습니다. 2010년, 한일합방 100주년이 되어 간담화가 발표되고 문화재 반환이 있었지만 위안부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는 일본매체에 쓴 칼럼에서 이 해에 꼭 해야 할 일은 위안부문제 논의를 위한 해결이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한국정부조차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여름, 2006년에 위안부할머니들의 이름으로 고발당했던 외교부가 소송에 패소해,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정황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같은 해 겨울, 수요시위라는 이름이 붙은 위안부문제해결 1000회를 기념하는 소녀상이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지면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감정이 급격히 악화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 때 다른 책을 집필 중이었는데 그 중에는 위안부문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일본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헌법재판소에서의 외교부패소와 소녀상문제로 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론자>라고 하는 일본인터넷잡지의 의뢰를 받고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발간된 <제국의위안부>는, 원래 일본을 향해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과 일본정부와 지원자들의 방식과 사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쓰인 책입니다.
그런 제가 위안부할머니들을 비판하거나 폄훼하는 책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젠더이론에 입각해 여성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사람입니다.(<내셔널아이덴티티와 젠더-소세키/문학/근대>참조)
2012년 봄, 민주당정권이었던 일본에서 사죄와 보상을 향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지원단체가 오랫동안 주장해왔던 <법적 책임>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접점을 찾지 못하고 끝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을 향해 다시 한번 위안부문제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때입니다. 지원 단체에게 패소해 한국정부는 지원 단체의 주장대로 움직이게 되었지만 그 지원 단체의 주장은 처음에 <군인이 강제로 11살짜리 소녀를 끌고 갔다>고 생각했던 때와 비교해 한 치도 달라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러한 정황에 의문을 품고, 지원 단체의 주장에 과연 문제가 없는지 검증해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2013년 8월, 저는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을 출간했습니다. 제목에 있는 것처럼 위안부문제를 둘러싸고 일본의 부정론자들이 위안부를 <매춘부>라 하고 지원 단체는 위안부소녀상이 표상하는 <무구한 소녀>라는 이미지만을 유일한 것으로 주장하며 대립해 온 20년 세월을 검증하고, 그 이전에 위안부란 어떤 존재인지를, 그 중에서도 위안부문제를 두고 일본과 가장 갈등이 심한 것이 한국이었던 만큼, <조선인위안부>에 포커스를 맞추어 고찰해 보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찰결과, 위안부란 <전쟁>이 만든 존재이기 이전에 국가세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제국주의>가 만든 존재이며, 그러한 국가의 욕망에 동원되는 개인의 희생의 문제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보상조치를 평가하면서도 <위안부문제는 한일협정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던 일본을 향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음을 강조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의 책은 그동안 위안부문제에 관여해 온 주체들을 모두 조금씩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들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세월이 20년이 넘은 이상, 각 관계자들이 그 원인을 자성적으로 직시하고 새로운 전환점을 찾는데 힌트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화해를 위해서>도 <제국의 위안부>도, 발간 직후에는 저의 책의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하는 리뷰와 인터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과정에서 드러난 <소녀상>과는 다른 위안부상과, 한일관계에서 주요발언단체가 되기까지 성장한 지원 단체 비판을 불편해 하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저의 책이 고발당한 것은 무려 10개월 후입니다. 이 기간 동안 나눔의 집 에 게시던 한 할머니와 친해졌고 그 분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러면서 나눔의 집 소장에게 경계당하고 배척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세한 것은 생략하겠지만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일주일 만에 저는 고발을 당했습니다. 제 앞에 던져진 것은 로스쿨대학생의 조악한 독해로 가득한 고발장이었습니다. 이들의 해석은 오독과 곡해로 가득했지만 이들이 읽은 대로 한국 사회에는 <박유하의 책은 허위><위안부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문제된 부분에 대해>
원고 측은 특히 <매춘>과 <동지적 관계>라는 단어를 문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은 매춘부라면 피해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러한 직종에 어린 소녀들이 동원되기 쉬운 것은 오늘날 역시 마찬가지지만, 나이/매춘여부와 상관없이 그 고통은 노예의 고통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시 말해 위안부를 단순한 매춘부라면서 책임을 부정하는 이들이나 매춘부가 아니라면서 <소녀>이미지에 집착하는 이들은 매춘에 대한 격한 혐오와 차별감정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허위>라고 부정하는 심리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로 이동당하고 고통 속에 신체를 훼손당했다는 사실일 뿐입니다.
또한 <동지적 관계>라는 말을 쓴 첫 번째 이유는 조선은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인의 식민 지배를 받고 <일본제국>의 일원으로서 동원 당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런 틀 안에서 있을 수 있었던 일본군과 조선인여성의 또 다른 관계를 쓴 것은 우선은 총체적인 모습을 보기 위한 것이고, 동시에 그런 모습마저 보아야 표면적인 평화안에 존재했던 차별의식, 제국의 지배자의 차별의식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조선인 위안부를 징병되었던 조선인들과 같은 틀로 간주하게 되면, 즉 <제국>에 성과 신체를 동원당한 개인으로 간주하게 되면 일본에 대한 사죄와 보상요구이유가 더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그들에게 조차 보장되었던 법의 보호가 없었다는 것을 일본을 향해 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그들이 말하는 단순한 <매춘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책에서 논란의 대상이 된 또 하나의 개념 <업자>의 문제를 말한 것은 우선은 국가정책을 빌미로 협력하며 이득을 취하는 경제주체의 문제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지만 사실은 그런 <협력과 저항>의 문제를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조선인업자만 강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규모가 큰 업자는 일본인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합니다.)국가가 아무리 나쁜 정책을 써도, 국민들이 저항하는 한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는 것은 막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업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을 구매하고 때로 강간한 것은 군인이지만, 착취하고 폭행하고 감시하고 때로 납치와 사기에 관여한 것은 업자였습니다, 그리고 빚을 지워 지배하며 <노예>상태로 둔 것은 업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죄와 책임은 아무도 묻지 않았고, 저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는 그러한 인간착취의 문제와, 그런 업자를 이용하는 국가와 제국의 문제, 그리고 나쁜 <국가정책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환기시키고 싶어 업자문제를 지적했던 것입니다. 과거의 협력자를 직시하지 않고 또 다른 추종과 협력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지적은 연구자와 지원 단체를 불편하게 만든 듯합니다. 이들은 다른 정황을 보는 일은 그저 <일본을 면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정치공동체만을 죄와 책임의 대상으로 삼습니다.저 역시 이 책에서 일본에 책임이 있음을 말했습니다. 똑같이 전쟁터에 동원하면서 조선인일본군에게는 했던 보장--생명과 신체가 훼손되는 데 대한 보장 제도를 일본인여성을 포함한 가난한 여성들을 위해서는 만들지 않았던 것은 근대국가의 남성주의. 가부장적사고, 매춘차별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근대국가의 시스템의 문제이니 그런 인식에 입각해 사죄와 보상의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일본에서 과분한 평가를 받게 된 것을 저는 이러한 생각이 받아들여진 결과로 생각합니다.
그러한 제 책이 위안부할머니를 비판하거나 폄훼할 이유가 없습니다, 검찰이 <명예훼손>이라고 지적한 부분은 대부분 <매춘부취급>을 했다고 그들이 단정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매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매춘부취급>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매춘부라 말하는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부분마저 원고와 가처분재판부와 검찰은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제가 한말로 환치시켰습니다, 물론 언론은 대부분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1차적 책임은 원고와 가처분재판부와 검찰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찰이 명예훼손이라고 지적한 부분의 앞뒤문맥을 알 수 있도록 책을 복사한 자료를 준비하였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원고가 처음에 지적한 109곳에 대해한 반박문 150매의 반박문, 검찰조사에 응해 작성한 53곳에 대한 간략반박문, 그밖의 재판자료들을 조만간 홈페이지를 개설해 공개할 생각입니다.
원고 측은 처음에 <허위>라고 했던 주장을 바꾸어 <전쟁범죄를 찬양>하고 <공공선>에 반하는 책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발 당시의 주장 <위안부는 자발적인 매춘부>라고 말하는 <거짓말>을 쓴 책이라는 보도는 지금도 돌아다니면서 가끔씩 저를 공격하는 자료로 사용되곤 합니다. 특히 고발, 가처분, 기소 때 도합 세 번 저는 전국민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황을 야기하고 방치하고 조장해온 원고 측 주변인들과, 저의 책을 삭제토록 조치한 가처분재판부와 그리고 검찰의 비인권적인 조사와 기소에 강력 항의합니다. 원고 측이 이제라도 자신들이 만든 위안부할머니들의 오해를 푸는 역할에 앞장서 소송을 기각하기를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2015년12월 2일
박유하
■다음은 지식인 194명이 낸 성명 전문과 명단입니다
<제국의 위안부>의 형사 기소에 대한 지식인 성명
2015년 11월19일, 서울 동부지방 검찰청은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 종군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묘사하고 일본군과 종군위안부를 “동지적 관계”로 표현하였다는 이유로 저자를 형법상의 명예훼손죄로 기소하였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17일, 서울 동부지방 법원은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학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로 <제국의 위안부>의 내용 가운데 서른네 곳의 삭제를 명하는 “가처분 신청 일부인용”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 일련의 조치에 대해 우리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선, 검찰 측에서 제시한 기소 사유는 책의 실제 내용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습니다. “자발적 매춘부”라는 말은 저자 자신의 것이 아니라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인사들을 비판하기 위해 저자가 그들의 발언 중에서 인용한 것이며, “동지적 관계”라는 말은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된 식민지 조선인의 사정을 그 전쟁의 객관적 상황에 의거해서 기술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입니다. 검찰이 과연 문제의 책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기소 결정이 과연 공정한 검토와 숙의의 결과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공론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책입니다. 특히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집단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마이니치 신문이 주관하는 아시아태평양상, 와세다 대학이 주관하는 이시바시 단잔 기념 저널리즘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국내 출판사 마흔일곱 곳이 참여하는 모임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책의 삭제판 출간이라는 오늘의 출판현실에 주목하여 이 책을 올해의 책 중 한 권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의 주장에 논란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학술적으로 보다 철저한 조사와 정교한 분석을 요하는 대목이 있을 수 있고, 국내외의 이런저런 정치사회단체의 비위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군위안부는 당초부터 갈등을 유발할 요소를 가지고 있는,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까다로운 사안입니다. 이 사안을 다루는 합리적인 방법은 어느 특정 정치사회집단이 발언의 권위를 독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표출되고 경합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검찰의 기소 조치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사법부가 나서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여론을 국가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와 발언의 자유가 당연히 제한을 받을 것이고, 국가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주장들이 진리의 자리를 배타적으로 차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종군위안부 문제의 범위를 넘어 역사 문제 일반과 관련해서도, 국가가 원한다면 시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도 무방하다는 반민주적 관례를 낳을 것입니다.
한 학자가 내놓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발상은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입니다. 우리 사회는 1987년 권위주의 정권을 퇴출한 이후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민주적 관례와 제도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으며 사법부를 포함한 국가 기구 또한 그러한 사회적 진보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검찰이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를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것은 그러한 민주화의 대세에 역행하는 조치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시민들과 함께 박유하 교수에 대한 기소 사태를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부디 검찰의 기소가 취하되기를 바라며,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2015년 12월 2일
<제국의 위안부>의 형사 기소에 대한 지식인 성명 명단
*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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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
금태섭(변호사)김용찬(변호사)김향훈(변호사)박도준(변호사)정우성(변리사)최명규(변호사)
*의료계
김택수(의학박사)박성환(의사)윤종완(의사)윤준호(치과의사)정 부(의료인)최명환(의사)
*종교계
이정우(목사)
총 서명인 194명
2015년 12월1일
**2일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명단은 191명이었으나 박유하 교수가 5일 오경환(교수), 문강형준(문화평론가), 노재현(출판인) 등 3명의 이름이 누락되었다고 추가를 요청했습니다.
■다음은 다른 입장을 가진 연구자와 활동가들의 성명입니다. 여기에는 1차로 60명이 서명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입장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그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우리는,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2013년에 출간된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하여, 2014년 6월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9명이 박유하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한국 검찰에 고소했고, 지난 11월18일에 박유하 교수가 불구속 기소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일부 학계와 언론계로부터 학문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지난 11월26일에는 일본과 미국의 지식인 54명이 항의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연구자의 저작에 대해 법정에서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학문과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으로만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접근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일본 국가기관의 관여 아래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연행된 여성들에게 ‘성노예’를 강요한, 극히 반인도적이고 추악한 범죄행위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 그 범죄행위로 인해 참으로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커다란 아픔을 견디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합니다.
그 범죄행위에 대해 일본은 지금 국가적 차원에서 사죄와 배상을 하고 역사교육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법적 상식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65년에는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래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문제가 1965년에 해결되었다고 강변하는 부조리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그 부조리에 맞서 1,200회 이상 매주 ‘수요시위’를 개최하고 있고, 지친 노구를 이끌고 전 세계를 돌며 ‘정의로운 해결’을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엄중한 사실들을 도외시한 연구는 결코 학문적일 수 없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제국의 위안부>가 사실 관계, 논점의 이해, 논거의 제시, 서술의 균형, 논리의 일관성 등 여러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책이라고 봅니다. 기존의 연구 성과와 국제사회의 법적 상식에 의해 확인된 것처럼,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책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위안부>는 책임의 주체가 ‘업자’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법적인 쟁점들에 대한 이해의 수준은 매우 낮은 데 반해 주장의 수위는 지나치게 높습니다. 충분한 논거의 제시 없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였고 “일본제국에 대한 ‘애국’”을 위해 “군인과 ‘동지’적인 관계”에 있었다고 규정하는 것은, ‘피해의 구제’를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또 하나의 커다란 아픔을 주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제국의 위안부>가 충분한 학문적 뒷받침 없는 서술로 피해자들에게 아픔을 주는 책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의 지식사회가 ‘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워 <제국의 위안부>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접하면서, 과연 그러한 평가가 엄밀한 학문적 검토를 거친 것인지 커다란 의문을 가지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태를 무엇보다 학문적인 논의 속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과 일본과 세계의 연구자들이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그 논의 속에서 문제의 실체를 확인하고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구자들이 주체가 되는 장기적이고도 지속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우선 박유하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를 지지하는 연구자들에게 가능한 한 가까운 시일 내에 공개토론을 개최할 것을 제안합니다.
끝으로 우리는,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고소라는 법적인 수단에까지 호소하시게 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깊이 되새기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거듭 상처를 주는 이러한 사태에 이르게 되기까지 우리의 고민과 노력이 과연 충분했는지 깊이 반성합니다. 그리고 외교적·정치적·사회적 현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의의 여신의 저울이 진정 수평을 이루게 하는 그런 방식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2015. 12. 2.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
(1차 서명자 60명)
윤정옥(전 이화여대), 정진성(서울대학교), 양현아(서울대학교), 김창록(경북대학교), 이재승(건국대학교), 조시현(전 건국대학교), 이나영(중앙대학교), 이신철(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곽귀병(서울대학교), 공준환(서울대학교), 강석주(서울대학교), 강성현(성공회대학교), 강정숙(성균관대학교), 김교성(중앙대학교), 김귀옥(한성대학교), 김명희(성공회대학교), 김미란(성공회대학교), 김민환(성공회대학교), 김부자(도쿄외국어대학교), 김지나(서울대학교), 김혜경(전북대학교), 권은혜(동국대학교), 도진순(창원대학교), 박노자(Vladimir Tikhonov, Oslo University), 박정애(동국대학교), 박해순((사)한국군사문제), 배경식(역사문제연구소), 배은경(서울대학교), 백시진(중앙대학교), 백재예(서울대학교), 백조연(중앙대학교), 신그리나(서울대학교), 신혜수(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신혜숙(서울대학교), 오동석(아주대학교), 오승은(한양대학교), 윤경원(동아시아사회문화포럼), 윤명숙(충남대학교), 이경수(중앙대학교), 이민아(중앙대학교), 이동기(강릉원주대학교), 이연숙(히토츠바시대학교), 이정은(성공회대학교), 이지원(대림대학교), 이토 다리(퍼포먼스 아티스트), 이타가키 류타(일본 도시샤대학), 이하영(중앙대학교), 임경화(연세대학교), 임지현(서강대학교), 정미례(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정슬기(중앙대학교), 정현주(이화여자대학교), 정현희(서울대학교), 치 나오미(호가이도대학교), 최종길(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한봉석(역사문제연구소), 한승미(연세대학교), 한혜인(한국여성인권진흥원), 홍순권(동아대학교), 후루아시 아야(중앙대학교)
■다음은 박유하 교수가 지난 5일 경향신문에 보낸 ‘반론’입니다. 박 교수는 기사 말미에 추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분들께 드립니다
2015년12월2일, 고발과 기소에 대한 저의 입장을 표명하는 기자회견에 이어 내놓은 제안서, 잘 보았습니다.
진작부터 이런 제안이 있기를 저는 진심으로 바라 왔습니다. 책을 낸 것은 바로 그런 제안을 받기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운동의 한가운데 있지는 않았어도 저 역시 오랫동안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 온 사람으로서, 여러분들과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저의 생각에 문제가 있다면 수정하고 또다른 지혜를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3년 8월 책을 낸 이후 2년 이상 이 성명에 참여하신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전회장님을 비롯,연구나 운동에 관여해 오신 분들의 연락은 받은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잘 아시다시피 이 1년반동안 저는 여론재판과 민사재판, 그리고 검찰조사에 시달려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형사재판에 기소되고, 이 기소에 대한 문제제기가 곳곳에서 나온 다음에야 이런 제안이 왔다는 것을 실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제안을 저는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위안부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전에 확인하고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우선 저는 여러분들께 이번 토론제안의 의미를 묻고 싶습니다.
책 일부내용이”범죄리스트” 가 되어 들이밀어지고, 책 일부를 삭제 당하고, 이제는 기소까지 당한 저로서는, 분명한 전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토론제안은
1) 위안부문제 전반에 관한 박유하의 주장을 논박하는 일 자체입니까?
혹은
2)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입니까?
저는 당장 열흘 후, 12월14일과 12월16일에 형사/민사재판이 예정되어 있어, 이 두개의 재판에 임해야 합니다.
따라서 , 만약 논박자체가 목적이라면, 이 소송과 기소가 취하되도록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먄 제가 재판에서 해방된 상태에서 더 밀도있고 충실한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같은" 지평에서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죄인취급이 전제된 "심문"같은 논박은 검찰과 법원만으로 이미 충분합니다.
고발 이후에도 여러분은 저를 비판해 왔고 한일양국어로 즉각 유통시켜 왔지만 , 저는 재판대응만도 힘이 부쳐서 반론을 곧바로 할 수 없었습니다.
비판은 언제나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재판중에는 학자들의 비판마저 검찰쪽에서는 <제국의 위안부>의 유죄 증거로 활용되고 맙니다.
실제로 그동안 재판문서에는 성명서에 서명한 분들의 책이나 논문이 저를 논박하는 근거로 인용되어 왔습니다. 동시에, 그런 비판들은 저에 대한 고발과 기소가 당연한 것처럼 세간에서 인식되는 자료로 사용되어 오기도 했습니다. 법정에서의 재판 뿐 아니라 여론재판의 한복판에서도 저는 피고로 서 있는 상황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저를 비판하거나 논박하는 것이 이 제안의 목적이라면, 저는 그 비판을 회피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 비판의 당사자인 저를 법정에 묶어둔 채 행해지는 토론이 어떻게 공정성과 진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토론을 원하신다면, 제가 법정을 나와 자유롭고 공정한 학문의 장 안에서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고발 이후 이루어진 비판에 대해,저는 1년이 지난 이번 여름에야 반론을 둘 써서 발표했습니다. 아직 한국어뿐이지만, 새로운 비판을 하기 전에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일본군위안부와 1965년체제- 정영환의 <제국의 위안부>비판에 답한다](역사비평 112호),[젊은 역사학자들의 <제국의 위안부>비판에 답한다](역사문제연구 34호))
만약 토론제안의 목적이 후자라면,저의 논지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어떻게 도움이 되지 않는지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오래 애써 왔고 혹은 앞으로 그렇게 하실 분들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위해 기울여 왔던 노력과 충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논쟁이라면 저를 비판하기 전에, 이 문제에 부정적인 이들을 "제대로 “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일본 정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2015년 2월, 대립중인 학자들이 같은 자리에서 논의할 수 있는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그리고 거기서 염두에 둔 것은 여러분과 제가 아니라 여러분과 이 문제에서 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학자들이었습니다.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그런 확장된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과 대립적인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20년 이상 주장해 왔던, 그러나 여러분의 주장의 골자이기도 해서 해결이 지연되어 왔던 "법적책임"론이 어떻게 유효한 지도 그분들과 양국국민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논박한다고 해도 위안부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논의가 자유롭게 확장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서 공표하신 토론제안 성명서에는 제가 위안부할머니들을 향해 "자발적인 매춘부"라고 했다고 씌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쓰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런 표현은 토론하자는 내용보다 저에 대한 비난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기능했을 듯 합니다. 여러분들이 보낸 메일을 받을 분들께. 그리고 다른 매체를 통해.
여러분의 진심은 여론재판과 학술적토론, 어느 쪽에 있습니까?
아무튼 저는 여러분과 진지하고도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서명에 참여한 분들이 학자인 만큼 공부하는 학자에게 예정하지 않은 일들에 뺏기는 시간이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공론장에서 토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저는 곳곳에서 피고입니다. 그래서 몇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분명한 의견을 경청하겠습니다. 공정한 토론과 자유로운 논의는, 제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만들 수 있습니다.
2015년 12월4일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사건, 논란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봤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추가해서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박유하 교수는 어떤 학자일까요. 참고할만한 자료가 있습니다. 박 교수는 2000년에는 ‘창간특집’으로, 2013년에는 신년기획으로 경향신문 지면에서 일본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과 대담을 했습니다. 또 <제국의 위안부>를 집필하기 한참전인 2000년에는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란 책에서 “한국이 일제에 대한 피해의식 탓에 맹목적인 민족주의·국가주의에 빠져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감정적·비약적인 반일 담론은 오히려 피해·열등의식을 공고히 하며 폭력주의·군국주의적 성향을 부추긴다는 진단이었습니다.
아래에 링크된 과거 기사를 읽어보시면 박유하 교수의 생각을 조금 더 알 수 있을겁니다.
가라타니 고진이 2013년 1월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대담자인 세종대 박유하 교수와 도쿄 한국문화원 정원에서 환담하고 있다. /서의동 기자
▶[이책 이사람]“맹목적 反日도 위험하다”.
▶[창간특집]일본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 대담
▶[신년기획 - 2013년을 말한다](6) 일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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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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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15-12-03 16:31:05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교수(58)를 검찰 기소하면서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특히 2일에는 박 교수의 ‘해명 기자회견’에 이어 엇갈린 주장을 담은 ‘지식인 성명’이 연달아 발표됐습니다.
박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제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판하거나 폄훼하는 책을 쓸 이유가 없다”며 “검찰의 비인권적인 조사와 기소에 강력 항의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검찰의 기소에 반대하는 지식인 194명도 박 교수의 기자회견에 이어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김철 연세대 교수,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장정일 작가 등 3명이 대표로 낭독한 공동성명서는 “한 학자가 내놓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발상은 너무나 시대착오적”이라며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시민들과 함께 박 교수에 대한 기소 사태를 깊이 우려한다”고 말했습니다.
박유하 교수
‘<제국의 위안부> 사태’를 학문과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것을 우려하는 성명도 이날 발표됐습니다. 윤정옥 이화여대 명예교수, 정진성 서울대 교수 등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 명의로 성명을 내 “원칙적으로 연구자 저작에 대해 법정에서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하지만 <제국의 위안부>는 사실 관계, 논점의 이해, 논거의 제시, 서술의 균형, 논리의 일관성 등 여러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제국의 위안부>가 충분한 학문적 뒷받침 없는 서술로 피해자들에게 아픔을 주는 책”이라면서 “박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 지지 연구자들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성명에는 박 교수와 공개논쟁을 벌였던 이재승 건국대 교수,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등 60명이 1차 서명자로 참가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학문과 표현의 자유는 연구자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듯 합니다. 일단 박 교수를 고소한 당사자가 위안부 할머니들입니다.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명예가 훼손돼 고소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검찰이 <제국의 위안부>를 기소한 것을 두고 ‘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판단이 쉽지 않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지루함과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천천히 관련 내용을 '많이' 읽어보는 것입니다. 문제가 됐던 <제국의 위안부>의 내용과 논란, 그리고 2일 발표된 박유하 교수의 성명, 지식인들의 성명을 시간순으로 정리했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박유하 교수가 경향신문에 보내온 '반론'도 추가했습니다. 끝까지 읽어보시면, 나름대로 판단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어떤 책일까요. 2013년 8월10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서평입니다.
▶[책과 삶]위안부 해법, 일본정부는 물론 한국의 민족주의도 걸림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정복수 할머니(98) 등 9명은 지난해 6월16일 박유하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고소했습니다. 이어 17일에는 책의 출판·판매·광고 등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동부지법에 냈습니다. 할머니들은 “이 책이 피해자들을 ‘매춘부’ ‘일본군의 협력자’로 허위 기술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정신적 고통을 줘 배상 책임이 있다”고 고소 이유를 밝혔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판금 신청
지난해 7월9일 <제국의 위안부> 판매금지 소송의 첫 심리가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법정에는 강일출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5명이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박유하 교수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매춘행위자나 일본군의 협력자로 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 교수는 서면 답변서에서 “매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이유로 위안부들을 비하했다고 보는 시각은 매춘의 피해자를 비난하는 도덕 군자들의 의식보다 나을 것이 없다”며 “‘협력’이란 단어도 식민지배 하의 조선인들에게 요구됐고 위안부들에겐 특히 강요됐던 봉사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소송대리인들이 지난해 6월16일 오전 서울 광진구 동부지방검찰청 민원실 앞에서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와 출판사에 대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이옥선,정복수,이옥선 할머니. /연합뉴스
▶<제국의 위안부> 판매금지 소송 첫 심리…법정서 소동까지
지난 2월17일 <제국의 위안부>가 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법원의 결정이 나왔습니다. 법원은 일본군 위안부가 ‘피해자’이며, 대부분 10·20대 초반의 여성들로 강제동원돼 ‘성노예’ 취급을 받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책에서 군 위안부에 대해 ‘정신적 위안자’ ‘군인의 전쟁 수행을 도운 애국처녀’ ‘자발적 매춘부’ 등으로 표현한 부분을 삭제하지 않으면 명예나 인격권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법원 “도서 ‘제국의 위안부’ 매춘부 등 표현 삭제해야”
박유하 교수는 결국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지난달 19일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로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박유하 교수를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저자 재판에 학문·표현의 자유 법리 공방
박교수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습니다. 또 검찰기소의 부당성도 주장했습니다. 지식인들은 학문·표현의 자유를 두고 엇갈린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박유하 교수, 기소 항의 회견
■아래는 박유하 교수의 성명 전문입니다.
참담한 심경으로 이 기자회견에 임합니다.
<집필배경>
저는 10년 전에 <화해를 위해서-교과서. 위안부. 야스쿠니. 독도>라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후로도 위안부문제의 해결에 줄곧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2007년에 위안부문제를 위해 조성되었던 일본의 아시아여성기금이 해산된 이후,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급속도로 식어갔습니다. 2010년, 한일합방 100주년이 되어 간담화가 발표되고 문화재 반환이 있었지만 위안부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는 일본매체에 쓴 칼럼에서 이 해에 꼭 해야 할 일은 위안부문제 논의를 위한 해결이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한국정부조차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여름, 2006년에 위안부할머니들의 이름으로 고발당했던 외교부가 소송에 패소해,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정황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같은 해 겨울, 수요시위라는 이름이 붙은 위안부문제해결 1000회를 기념하는 소녀상이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지면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감정이 급격히 악화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 때 다른 책을 집필 중이었는데 그 중에는 위안부문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일본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헌법재판소에서의 외교부패소와 소녀상문제로 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론자>라고 하는 일본인터넷잡지의 의뢰를 받고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발간된 <제국의위안부>는, 원래 일본을 향해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과 일본정부와 지원자들의 방식과 사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쓰인 책입니다.
그런 제가 위안부할머니들을 비판하거나 폄훼하는 책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젠더이론에 입각해 여성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사람입니다.(<내셔널아이덴티티와 젠더-소세키/문학/근대>참조)
2012년 봄, 민주당정권이었던 일본에서 사죄와 보상을 향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지원단체가 오랫동안 주장해왔던 <법적 책임>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접점을 찾지 못하고 끝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을 향해 다시 한번 위안부문제를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때입니다. 지원 단체에게 패소해 한국정부는 지원 단체의 주장대로 움직이게 되었지만 그 지원 단체의 주장은 처음에 <군인이 강제로 11살짜리 소녀를 끌고 갔다>고 생각했던 때와 비교해 한 치도 달라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러한 정황에 의문을 품고, 지원 단체의 주장에 과연 문제가 없는지 검증해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2013년 8월, 저는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을 출간했습니다. 제목에 있는 것처럼 위안부문제를 둘러싸고 일본의 부정론자들이 위안부를 <매춘부>라 하고 지원 단체는 위안부소녀상이 표상하는 <무구한 소녀>라는 이미지만을 유일한 것으로 주장하며 대립해 온 20년 세월을 검증하고, 그 이전에 위안부란 어떤 존재인지를, 그 중에서도 위안부문제를 두고 일본과 가장 갈등이 심한 것이 한국이었던 만큼, <조선인위안부>에 포커스를 맞추어 고찰해 보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찰결과, 위안부란 <전쟁>이 만든 존재이기 이전에 국가세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제국주의>가 만든 존재이며, 그러한 국가의 욕망에 동원되는 개인의 희생의 문제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보상조치를 평가하면서도 <위안부문제는 한일협정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던 일본을 향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음을 강조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저의 책은 그동안 위안부문제에 관여해 온 주체들을 모두 조금씩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들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세월이 20년이 넘은 이상, 각 관계자들이 그 원인을 자성적으로 직시하고 새로운 전환점을 찾는데 힌트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화해를 위해서>도 <제국의 위안부>도, 발간 직후에는 저의 책의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하는 리뷰와 인터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과정에서 드러난 <소녀상>과는 다른 위안부상과, 한일관계에서 주요발언단체가 되기까지 성장한 지원 단체 비판을 불편해 하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저의 책이 고발당한 것은 무려 10개월 후입니다. 이 기간 동안 나눔의 집 에 게시던 한 할머니와 친해졌고 그 분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그러면서 나눔의 집 소장에게 경계당하고 배척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세한 것은 생략하겠지만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일주일 만에 저는 고발을 당했습니다. 제 앞에 던져진 것은 로스쿨대학생의 조악한 독해로 가득한 고발장이었습니다. 이들의 해석은 오독과 곡해로 가득했지만 이들이 읽은 대로 한국 사회에는 <박유하의 책은 허위><위안부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문제된 부분에 대해>
원고 측은 특히 <매춘>과 <동지적 관계>라는 단어를 문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은 매춘부라면 피해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러한 직종에 어린 소녀들이 동원되기 쉬운 것은 오늘날 역시 마찬가지지만, 나이/매춘여부와 상관없이 그 고통은 노예의 고통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시 말해 위안부를 단순한 매춘부라면서 책임을 부정하는 이들이나 매춘부가 아니라면서 <소녀>이미지에 집착하는 이들은 매춘에 대한 격한 혐오와 차별감정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허위>라고 부정하는 심리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로 이동당하고 고통 속에 신체를 훼손당했다는 사실일 뿐입니다.
또한 <동지적 관계>라는 말을 쓴 첫 번째 이유는 조선은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인의 식민 지배를 받고 <일본제국>의 일원으로서 동원 당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런 틀 안에서 있을 수 있었던 일본군과 조선인여성의 또 다른 관계를 쓴 것은 우선은 총체적인 모습을 보기 위한 것이고, 동시에 그런 모습마저 보아야 표면적인 평화안에 존재했던 차별의식, 제국의 지배자의 차별의식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조선인 위안부를 징병되었던 조선인들과 같은 틀로 간주하게 되면, 즉 <제국>에 성과 신체를 동원당한 개인으로 간주하게 되면 일본에 대한 사죄와 보상요구이유가 더 명확해지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그들에게 조차 보장되었던 법의 보호가 없었다는 것을 일본을 향해 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그들이 말하는 단순한 <매춘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책에서 논란의 대상이 된 또 하나의 개념 <업자>의 문제를 말한 것은 우선은 국가정책을 빌미로 협력하며 이득을 취하는 경제주체의 문제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지만 사실은 그런 <협력과 저항>의 문제를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조선인업자만 강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규모가 큰 업자는 일본인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합니다.)국가가 아무리 나쁜 정책을 써도, 국민들이 저항하는 한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는 것은 막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업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을 구매하고 때로 강간한 것은 군인이지만, 착취하고 폭행하고 감시하고 때로 납치와 사기에 관여한 것은 업자였습니다, 그리고 빚을 지워 지배하며 <노예>상태로 둔 것은 업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죄와 책임은 아무도 묻지 않았고, 저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는 그러한 인간착취의 문제와, 그런 업자를 이용하는 국가와 제국의 문제, 그리고 나쁜 <국가정책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환기시키고 싶어 업자문제를 지적했던 것입니다. 과거의 협력자를 직시하지 않고 또 다른 추종과 협력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지적은 연구자와 지원 단체를 불편하게 만든 듯합니다. 이들은 다른 정황을 보는 일은 그저 <일본을 면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정치공동체만을 죄와 책임의 대상으로 삼습니다.저 역시 이 책에서 일본에 책임이 있음을 말했습니다. 똑같이 전쟁터에 동원하면서 조선인일본군에게는 했던 보장--생명과 신체가 훼손되는 데 대한 보장 제도를 일본인여성을 포함한 가난한 여성들을 위해서는 만들지 않았던 것은 근대국가의 남성주의. 가부장적사고, 매춘차별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근대국가의 시스템의 문제이니 그런 인식에 입각해 사죄와 보상의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일본에서 과분한 평가를 받게 된 것을 저는 이러한 생각이 받아들여진 결과로 생각합니다.
그러한 제 책이 위안부할머니를 비판하거나 폄훼할 이유가 없습니다, 검찰이 <명예훼손>이라고 지적한 부분은 대부분 <매춘부취급>을 했다고 그들이 단정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매춘>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매춘부취급>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매춘부라 말하는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부분마저 원고와 가처분재판부와 검찰은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제가 한말로 환치시켰습니다, 물론 언론은 대부분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1차적 책임은 원고와 가처분재판부와 검찰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검찰이 명예훼손이라고 지적한 부분의 앞뒤문맥을 알 수 있도록 책을 복사한 자료를 준비하였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원고가 처음에 지적한 109곳에 대해한 반박문 150매의 반박문, 검찰조사에 응해 작성한 53곳에 대한 간략반박문, 그밖의 재판자료들을 조만간 홈페이지를 개설해 공개할 생각입니다.
원고 측은 처음에 <허위>라고 했던 주장을 바꾸어 <전쟁범죄를 찬양>하고 <공공선>에 반하는 책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발 당시의 주장 <위안부는 자발적인 매춘부>라고 말하는 <거짓말>을 쓴 책이라는 보도는 지금도 돌아다니면서 가끔씩 저를 공격하는 자료로 사용되곤 합니다. 특히 고발, 가처분, 기소 때 도합 세 번 저는 전국민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황을 야기하고 방치하고 조장해온 원고 측 주변인들과, 저의 책을 삭제토록 조치한 가처분재판부와 그리고 검찰의 비인권적인 조사와 기소에 강력 항의합니다. 원고 측이 이제라도 자신들이 만든 위안부할머니들의 오해를 푸는 역할에 앞장서 소송을 기각하기를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2015년12월 2일
박유하
■다음은 지식인 194명이 낸 성명 전문과 명단입니다
<제국의 위안부>의 형사 기소에 대한 지식인 성명
2015년 11월19일, 서울 동부지방 검찰청은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 종군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묘사하고 일본군과 종군위안부를 “동지적 관계”로 표현하였다는 이유로 저자를 형법상의 명예훼손죄로 기소하였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17일, 서울 동부지방 법원은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학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로 <제국의 위안부>의 내용 가운데 서른네 곳의 삭제를 명하는 “가처분 신청 일부인용”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 일련의 조치에 대해 우리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선, 검찰 측에서 제시한 기소 사유는 책의 실제 내용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습니다. “자발적 매춘부”라는 말은 저자 자신의 것이 아니라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인사들을 비판하기 위해 저자가 그들의 발언 중에서 인용한 것이며, “동지적 관계”라는 말은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된 식민지 조선인의 사정을 그 전쟁의 객관적 상황에 의거해서 기술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입니다. 검찰이 과연 문제의 책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기소 결정이 과연 공정한 검토와 숙의의 결과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공론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책입니다. 특히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집단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마이니치 신문이 주관하는 아시아태평양상, 와세다 대학이 주관하는 이시바시 단잔 기념 저널리즘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국내 출판사 마흔일곱 곳이 참여하는 모임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책의 삭제판 출간이라는 오늘의 출판현실에 주목하여 이 책을 올해의 책 중 한 권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의 주장에 논란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학술적으로 보다 철저한 조사와 정교한 분석을 요하는 대목이 있을 수 있고, 국내외의 이런저런 정치사회단체의 비위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군위안부는 당초부터 갈등을 유발할 요소를 가지고 있는,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까다로운 사안입니다. 이 사안을 다루는 합리적인 방법은 어느 특정 정치사회집단이 발언의 권위를 독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표출되고 경합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검찰의 기소 조치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사법부가 나서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여론을 국가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와 발언의 자유가 당연히 제한을 받을 것이고, 국가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주장들이 진리의 자리를 배타적으로 차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종군위안부 문제의 범위를 넘어 역사 문제 일반과 관련해서도, 국가가 원한다면 시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도 무방하다는 반민주적 관례를 낳을 것입니다.
한 학자가 내놓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발상은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입니다. 우리 사회는 1987년 권위주의 정권을 퇴출한 이후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민주적 관례와 제도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으며 사법부를 포함한 국가 기구 또한 그러한 사회적 진보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검찰이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를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것은 그러한 민주화의 대세에 역행하는 조치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시민들과 함께 박유하 교수에 대한 기소 사태를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부디 검찰의 기소가 취하되기를 바라며,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2015년 12월 2일
<제국의 위안부>의 형사 기소에 대한 지식인 성명 명단
*학계
강남순(교수)구인모(교수)권보드래(교수)권순엽(교수)권영돈(교수)권정희(연구자)권창규(학자)권희주(교수)김경옥(교수)김규현(교수)김두철(교수)김미영(교수)김석희(교수)김성보(교수)김승구(교수)김예림(교수)김용균(교수)김용찬(교수)김우재(교수)김유수(학자)김 철(교수)김현석(교수)김현주(교수)나병철(교수)나일경(교수)남기정(교수)남상욱(교수)문정인(교수)박경수(교수)박노현(교수)박삼헌(교수)박성현(연구자)박세진(교수)박슬기(교수)박정란(교수)박재석(학자)박진영(교수)박진용(학자)박현선(교수)박혜란(교수)박혜성(교수)배승주(강사)배아란(연구자)백규석(연구자)백문임(교수)서동진(학자)서현석(교수)소문수(교수)송기문(교수)송은영(학자)신경숙(교수)신인섭(교수)신형기(교수)심준섭(교육가)오경환(교수)오김숙이(연구원)오덕재(교수)오석태(학자)오정환(연구자)유승경(연구자)유승진(학자)윤성호(교수)윤태진(교수)윤현국(연구원)이강민(교수)이경분(교수)이경원(교수)이경훈(교수)이권희(교수)이기연(강사)이순재(교수)이승은(학자)이승희(학자)이영준(교수)이우연(학자)이윤석(교수)이윤영(교수)이종일(교수)이진경(교수)이창남(교수)이한정(교수)이혜령(교수)이효석(과학자)임정화(연구원)임진영(학자)장세진(교수)장영철(교수)정규영(교수)정병호(교수)정승원(연구원)정영희(교수)정의태(교수)정종현(교수)정혜선(교수)정희모(교수)조관자(교수)조문영(교수)조석주(연구자)조세영(교수)진영복(교수)차승기(교수)최건영(교수)최길성(교수)최순애(학자)표세만(교수)한승욱(연구자)허병식(학자)홍윤표(교수)
*작가·문인
고영범(극작가)고종석(작가)김경옥(공연평론가)김곰치(소설가)김도언(작가)김병익(평론가)김원우(작가)김현호(사진비평가)류 근(시인)문강형준(문화평론가)문부식(시인)박일환(시인)배수아(소설가)배홍진(작가)변정수(평론가)서준환(소설가)손이상(문화평론가)송태욱(번역가)신은실(영화비평가)양한승(문인)양혜진(번역가)유시민(작가)이광호(평론가)이문재(시인)이원석(문화비평가)이제하(작가)장윤선(번역가)장정일(소설가)정과리(평론가)정숙희(극작가)정찬용(작가)조영일(평론가)최규승(시인)최 범(평론가)함성호(시인)홍미화(번역가)홍세화(작가)
*문화·예술인
강운구(사진작가)경 순(다큐감독)고성용(건축사)김인범(예술가)박진영(사진작가)안악희(독립음악가)유성준(예술가)임옥상(화가)장현우(사진작가)정경록(독립영화감독)조미영(예술가)조민숙(예술가)조세영(독립영화감독)최정우(작곡가)태준식(독립영화감독)
*언론·출판인
김규항(칼럼니스트)김다미(출판인)김용범(프로듀서)김종영(언론인)김지현(언론인)노재현(출판인)박성태(언론인)안보영(프로듀서)오태규(언론인)이강택(프로듀서)이수경(언론, 예술인)임현규(광고인)장혜경(언론인)정종주(출판인)조기조(출판인)조동신(출판인)조용래(언론인)주연선(출판인)최성욱(언론인)황성기(언론인)황영식(언론인)
*법조인
금태섭(변호사)김용찬(변호사)김향훈(변호사)박도준(변호사)정우성(변리사)최명규(변호사)
*의료계
김택수(의학박사)박성환(의사)윤종완(의사)윤준호(치과의사)정 부(의료인)최명환(의사)
*종교계
이정우(목사)
총 서명인 194명
2015년 12월1일
**2일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명단은 191명이었으나 박유하 교수가 5일 오경환(교수), 문강형준(문화평론가), 노재현(출판인) 등 3명의 이름이 누락되었다고 추가를 요청했습니다.
■다음은 다른 입장을 가진 연구자와 활동가들의 성명입니다. 여기에는 1차로 60명이 서명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입장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그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우리는,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2013년에 출간된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하여, 2014년 6월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9명이 박유하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한국 검찰에 고소했고, 지난 11월18일에 박유하 교수가 불구속 기소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일부 학계와 언론계로부터 학문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지난 11월26일에는 일본과 미국의 지식인 54명이 항의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연구자의 저작에 대해 법정에서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학문과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으로만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접근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일본 국가기관의 관여 아래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연행된 여성들에게 ‘성노예’를 강요한, 극히 반인도적이고 추악한 범죄행위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 그 범죄행위로 인해 참으로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커다란 아픔을 견디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합니다.
그 범죄행위에 대해 일본은 지금 국가적 차원에서 사죄와 배상을 하고 역사교육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법적 상식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65년에는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래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문제가 1965년에 해결되었다고 강변하는 부조리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그 부조리에 맞서 1,200회 이상 매주 ‘수요시위’를 개최하고 있고, 지친 노구를 이끌고 전 세계를 돌며 ‘정의로운 해결’을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엄중한 사실들을 도외시한 연구는 결코 학문적일 수 없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제국의 위안부>가 사실 관계, 논점의 이해, 논거의 제시, 서술의 균형, 논리의 일관성 등 여러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책이라고 봅니다. 기존의 연구 성과와 국제사회의 법적 상식에 의해 확인된 것처럼,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책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위안부>는 책임의 주체가 ‘업자’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법적인 쟁점들에 대한 이해의 수준은 매우 낮은 데 반해 주장의 수위는 지나치게 높습니다. 충분한 논거의 제시 없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였고 “일본제국에 대한 ‘애국’”을 위해 “군인과 ‘동지’적인 관계”에 있었다고 규정하는 것은, ‘피해의 구제’를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또 하나의 커다란 아픔을 주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제국의 위안부>가 충분한 학문적 뒷받침 없는 서술로 피해자들에게 아픔을 주는 책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의 지식사회가 ‘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워 <제국의 위안부>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접하면서, 과연 그러한 평가가 엄밀한 학문적 검토를 거친 것인지 커다란 의문을 가지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태를 무엇보다 학문적인 논의 속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과 일본과 세계의 연구자들이 문제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그 논의 속에서 문제의 실체를 확인하고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구자들이 주체가 되는 장기적이고도 지속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우선 박유하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를 지지하는 연구자들에게 가능한 한 가까운 시일 내에 공개토론을 개최할 것을 제안합니다.
끝으로 우리는,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고소라는 법적인 수단에까지 호소하시게 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깊이 되새기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거듭 상처를 주는 이러한 사태에 이르게 되기까지 우리의 고민과 노력이 과연 충분했는지 깊이 반성합니다. 그리고 외교적·정치적·사회적 현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의의 여신의 저울이 진정 수평을 이루게 하는 그런 방식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
2015. 12. 2.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
(1차 서명자 60명)
윤정옥(전 이화여대), 정진성(서울대학교), 양현아(서울대학교), 김창록(경북대학교), 이재승(건국대학교), 조시현(전 건국대학교), 이나영(중앙대학교), 이신철(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곽귀병(서울대학교), 공준환(서울대학교), 강석주(서울대학교), 강성현(성공회대학교), 강정숙(성균관대학교), 김교성(중앙대학교), 김귀옥(한성대학교), 김명희(성공회대학교), 김미란(성공회대학교), 김민환(성공회대학교), 김부자(도쿄외국어대학교), 김지나(서울대학교), 김혜경(전북대학교), 권은혜(동국대학교), 도진순(창원대학교), 박노자(Vladimir Tikhonov, Oslo University), 박정애(동국대학교), 박해순((사)한국군사문제), 배경식(역사문제연구소), 배은경(서울대학교), 백시진(중앙대학교), 백재예(서울대학교), 백조연(중앙대학교), 신그리나(서울대학교), 신혜수(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신혜숙(서울대학교), 오동석(아주대학교), 오승은(한양대학교), 윤경원(동아시아사회문화포럼), 윤명숙(충남대학교), 이경수(중앙대학교), 이민아(중앙대학교), 이동기(강릉원주대학교), 이연숙(히토츠바시대학교), 이정은(성공회대학교), 이지원(대림대학교), 이토 다리(퍼포먼스 아티스트), 이타가키 류타(일본 도시샤대학), 이하영(중앙대학교), 임경화(연세대학교), 임지현(서강대학교), 정미례(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정슬기(중앙대학교), 정현주(이화여자대학교), 정현희(서울대학교), 치 나오미(호가이도대학교), 최종길(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한봉석(역사문제연구소), 한승미(연세대학교), 한혜인(한국여성인권진흥원), 홍순권(동아대학교), 후루아시 아야(중앙대학교)
■다음은 박유하 교수가 지난 5일 경향신문에 보낸 ‘반론’입니다. 박 교수는 기사 말미에 추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분들께 드립니다
2015년12월2일, 고발과 기소에 대한 저의 입장을 표명하는 기자회견에 이어 내놓은 제안서, 잘 보았습니다.
진작부터 이런 제안이 있기를 저는 진심으로 바라 왔습니다. 책을 낸 것은 바로 그런 제안을 받기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운동의 한가운데 있지는 않았어도 저 역시 오랫동안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 온 사람으로서, 여러분들과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저의 생각에 문제가 있다면 수정하고 또다른 지혜를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3년 8월 책을 낸 이후 2년 이상 이 성명에 참여하신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전회장님을 비롯,연구나 운동에 관여해 오신 분들의 연락은 받은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잘 아시다시피 이 1년반동안 저는 여론재판과 민사재판, 그리고 검찰조사에 시달려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형사재판에 기소되고, 이 기소에 대한 문제제기가 곳곳에서 나온 다음에야 이런 제안이 왔다는 것을 실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제안을 저는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위안부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전에 확인하고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우선 저는 여러분들께 이번 토론제안의 의미를 묻고 싶습니다.
책 일부내용이”범죄리스트” 가 되어 들이밀어지고, 책 일부를 삭제 당하고, 이제는 기소까지 당한 저로서는, 분명한 전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토론제안은
1) 위안부문제 전반에 관한 박유하의 주장을 논박하는 일 자체입니까?
혹은
2)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입니까?
저는 당장 열흘 후, 12월14일과 12월16일에 형사/민사재판이 예정되어 있어, 이 두개의 재판에 임해야 합니다.
따라서 , 만약 논박자체가 목적이라면, 이 소송과 기소가 취하되도록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먄 제가 재판에서 해방된 상태에서 더 밀도있고 충실한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같은" 지평에서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죄인취급이 전제된 "심문"같은 논박은 검찰과 법원만으로 이미 충분합니다.
고발 이후에도 여러분은 저를 비판해 왔고 한일양국어로 즉각 유통시켜 왔지만 , 저는 재판대응만도 힘이 부쳐서 반론을 곧바로 할 수 없었습니다.
비판은 언제나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재판중에는 학자들의 비판마저 검찰쪽에서는 <제국의 위안부>의 유죄 증거로 활용되고 맙니다.
실제로 그동안 재판문서에는 성명서에 서명한 분들의 책이나 논문이 저를 논박하는 근거로 인용되어 왔습니다. 동시에, 그런 비판들은 저에 대한 고발과 기소가 당연한 것처럼 세간에서 인식되는 자료로 사용되어 오기도 했습니다. 법정에서의 재판 뿐 아니라 여론재판의 한복판에서도 저는 피고로 서 있는 상황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저를 비판하거나 논박하는 것이 이 제안의 목적이라면, 저는 그 비판을 회피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 비판의 당사자인 저를 법정에 묶어둔 채 행해지는 토론이 어떻게 공정성과 진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토론을 원하신다면, 제가 법정을 나와 자유롭고 공정한 학문의 장 안에서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고발 이후 이루어진 비판에 대해,저는 1년이 지난 이번 여름에야 반론을 둘 써서 발표했습니다. 아직 한국어뿐이지만, 새로운 비판을 하기 전에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일본군위안부와 1965년체제- 정영환의 <제국의 위안부>비판에 답한다](역사비평 112호),[젊은 역사학자들의 <제국의 위안부>비판에 답한다](역사문제연구 34호))
만약 토론제안의 목적이 후자라면,저의 논지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어떻게 도움이 되지 않는지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오래 애써 왔고 혹은 앞으로 그렇게 하실 분들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위해 기울여 왔던 노력과 충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논쟁이라면 저를 비판하기 전에, 이 문제에 부정적인 이들을 "제대로 “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일본 정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2015년 2월, 대립중인 학자들이 같은 자리에서 논의할 수 있는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그리고 거기서 염두에 둔 것은 여러분과 제가 아니라 여러분과 이 문제에서 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학자들이었습니다.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그런 확장된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과 대립적인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20년 이상 주장해 왔던, 그러나 여러분의 주장의 골자이기도 해서 해결이 지연되어 왔던 "법적책임"론이 어떻게 유효한 지도 그분들과 양국국민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논박한다고 해도 위안부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논의가 자유롭게 확장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서 공표하신 토론제안 성명서에는 제가 위안부할머니들을 향해 "자발적인 매춘부"라고 했다고 씌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쓰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런 표현은 토론하자는 내용보다 저에 대한 비난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기능했을 듯 합니다. 여러분들이 보낸 메일을 받을 분들께. 그리고 다른 매체를 통해.
여러분의 진심은 여론재판과 학술적토론, 어느 쪽에 있습니까?
아무튼 저는 여러분과 진지하고도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서명에 참여한 분들이 학자인 만큼 공부하는 학자에게 예정하지 않은 일들에 뺏기는 시간이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지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공론장에서 토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저는 곳곳에서 피고입니다. 그래서 몇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분명한 의견을 경청하겠습니다. 공정한 토론과 자유로운 논의는, 제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만들 수 있습니다.
2015년 12월4일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사건, 논란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봤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추가해서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박유하 교수는 어떤 학자일까요. 참고할만한 자료가 있습니다. 박 교수는 2000년에는 ‘창간특집’으로, 2013년에는 신년기획으로 경향신문 지면에서 일본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과 대담을 했습니다. 또 <제국의 위안부>를 집필하기 한참전인 2000년에는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란 책에서 “한국이 일제에 대한 피해의식 탓에 맹목적인 민족주의·국가주의에 빠져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감정적·비약적인 반일 담론은 오히려 피해·열등의식을 공고히 하며 폭력주의·군국주의적 성향을 부추긴다는 진단이었습니다.
아래에 링크된 과거 기사를 읽어보시면 박유하 교수의 생각을 조금 더 알 수 있을겁니다.
가라타니 고진이 2013년 1월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대담자인 세종대 박유하 교수와 도쿄 한국문화원 정원에서 환담하고 있다. /서의동 기자
▶[이책 이사람]“맹목적 反日도 위험하다”.
▶[창간특집]일본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 대담
▶[신년기획 - 2013년을 말한다](6) 일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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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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