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u Bae 1 hr ·화해를 위해서
"한일 사이 요즘 이 주제가 핫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터 동료든 거래처든 일본인과 갖는 저녁 자리에서 가끔 받는 질문이다. 주제는 독도, '위안부', 징용 보상, 수출규제...무궁무진하다. 여기에 대해
1. 글쎄요...제가 원체 관심이 없어서...
2. 잘 모릅니다만 흥미롭네요. 견해를 들려주시지요. 앞으로 관심 갖고 싶습니다.
3. 한일 주장의 논리, 배경은 각각 이러합니다. 저는 이 측면 저 관점에 동의하고 이러저러 명료하지 않은 부분은 양측이 보다 더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2로 시작해서 상대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일단 확인, 더 들어가도 되겠다 싶을 때 3을 시도한다. 왜냐면 나는 그 상대에게 있어 계속 교류할 만한 대화 상대로 남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1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대화가 거기서 끝나 썰렁해지며 상대는 그러저러한 사람 중 하나로 나를 취급할 가능성이 보다 높아진다.
...돈 안되는 짓을 왜 그리 하냐는 지적을 받을 때 위와 같이 설명한다. 일신 영달을 위한 일이요, 어떻게든 정보를 얻어 돈을 벌어보자는 거동인 바 딱히 공동선 대의가 주목적은 아니라는 거지.
2단계에서 상대 지점을 빠른 시간 판별하는 것이 혹여 일어날지 모르는 참사 방지 위해 가장 중요한데 그 주제를 미리 얼마나 학습했느냐가 결정한다. 반면 거리의 장삼이사 대화인지라 요구되는 학습 난이도는 중상 정도면 충분하다.
일본 정치 문화 스포츠 따위 화제에는 별 지식이 없어도 2로 뭉갤 수 있다. 동서고금 잘 모르지만 듣고 싶다는 이 싫어하는 이 잘 없다. 문제는 한일 갈등, 이건 옳든 그르든 관점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한국 국적을 가진 이 중 위와 같은 처지에서 노선을 정하고 학습하는 이는 아마 극소수일 터, 보는 분들은 정치적 관점이 다른 거래처 사람과 갖는 술 자리를 떠올려보시라. 같은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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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상대와 내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짚고 불분명한 부분, 서로 양보하지 못할 가치를 서둘러 파악하는 것이 영양가 있다는 점이다. 감정 격앙 논파 시도는 돈이 날아가는 불상사...끊임없이 경계할 일이다.
안티조선, 광우병, 방사능을 거쳐 내가 꽂혀 있는 주제는 '위안부' 문제, '제국의 위안부' 사태이다. 정독한 책은 달랑 세 권, 거의 인터넷 검색으로 닥치는대로 텍스트를 읽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처음 읽은 '화해를 위해서'는 위에 적은 내 스탠스와 적확히 일치하더라. 동의 여부를 떠나 서로 말하고자 하는 바, 양보 못할 가치, 불분명 영역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먼저라는 것.
일본을 압도적 무력으로 굴복시킬 수 있다면 통쾌하겠지. 그러나 그 보다 상위 버전은 일본 다중이 관심을 갖고 재발 방지 노력 다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가해자의 마음에서 우러난 사과를 받아야 '위안부' 피해자의 비원이 풀린다 할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는 한글판 일본어판이 1년 간격을 두고 출판된 책이다. 저자는 양국 다중에게 자신의 관점을 제시했는데 6년 지난 지금까지 썩 그 의도가 전해졌다고 보긴 어렵다. 왜 그럴까? 내 주된 관심사다.
며칠 전 '법적 책임'을 다룬 파트에서 저자의 의도를 읽기 어렵다고 적은 바 있는데 엊그제 저자의 글을 보고 실마리를 본 느낌이다. 업자들이 구비한 서류 상으로는, 그것이 가짜라 할지라도, 적법하다는 것. 그래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것.
즉, 이 주제는 한국과 일본의 다중이 공통적으로 인정할 기초 자료가 극히 비대칭, 제한적이다. 전쟁범죄 성격 상 범법 자료가 있을 리 없고 (아예 만들지 않았거나 없앴다고 봐야 할 게다) 적법 자료는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근데 그래서?
1. 어떤 책임도 물을 일 아니다.
2. 도의적 책임은 져야 한다.
3. 법적 책임도 물어야 한다.
아마도 1이면 뉴라이트, 2는 일본정부, 3은 정의연, 박유하, 2004년의 이영훈의 견해로 둘 수 있다. 뜨악한 분 많겠지. 나중 밝힐 것이고 오늘은 결론만 적는다.
박유하는 2015년 4월 '제3의 길' 식으로 법적 책임 인정을 의도한 심포지움을 연 직후 형사고발당한다. 요즘 내가 자료를 접하고 판정한 이영훈은 먼저 간 탓에 사회적으로 매장된 사람이요, 내게도 n분의 1 책임이 있다. 왜 그랬을까?를 따지는 것이 요즘 내 글의 목적 중 하나다.
(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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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k
"업자들이 구비한 서류"는 어떤 서류를 말하시는 것인가요?
· Reply · 1 h
Insu Bae
Sejin Pak 모집 때 계약서, 취업규칙 인지 각서 따위로 추정하는데, 제가 본 건 (아마도 권용득님 글에 쓴) 박교수 댓글 뿐입니다. 최근 발견된 것이라 주전장 감독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부분일 것이라는 요지였는데, 어느 글에서였는지 찾으면 여기 붙이겠습니다.
· Reply · 1 h · Edited
Sejin Pak
Insu Bae 감사합니다.
· Reply · 1 h
Myungsuk Yun
배인수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닙니다만, 해당 자료 운운은 피해자모두에해당하는 것이 아니므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할 수 있고, 해당 건이 있다면 ‘모집’은 적법했다고 해도 서류 있는 대상이 미성년자면 국제법에 위법... 등등. 따지려면, 개별로 따져서 총체적으로 내려야 할 결론이어야 하죠.
(급히 쓰느라 여러 측면의 얘기가 꼬여 ‘모집’에 국한 수정함)
· Reply · 1 h · Edited
Insu Bae
Myungsuk Yun 댓글 고맙습니다. 제가 보다 명확히 적었어야...적으신 바와 박교수 글은 모집 단계의 유괴 약취의 일반화 문제 부분에서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류 있는 대상에 미성년자 나이를 허위 기재한 서류 구비로 읽어야 앞뒤 맞을 듯, 언제든 기회 있을 때 어떤 취지 발언이었는지 물어봐야...
· Reply · 1 h
권용득
<주전장> 감독 미키 데자키는 요시미 요시아키의 법적 책임론을 따르고 있는데, 그 법적 책임론은 배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아래와 같죠.
1) 당시 일본 형법으로도 인신매매·미성년자 약취 유괴는 금지였음
2) 일본 정부는 1930년에 이미 ILO(국제노동기구) 강제 노동 조약 비준했음
3) 일본 정부는 1926년 노예제 조약은 비준하지 않았으나, 관련 조약은 비준하지 않더라도 당시에는 관습법처럼 여겨진 국제 규범이었음
박유하 교수는 일전에 제 포스팅에서 1)에 대한 답변을 했고요.
"그 주체를 일본 국가로 상정하고 있다는. 업자여도 그냥 내버려 뒀다는 논리가 많죠. 그런데 실은 업자들은 가짜라도 서류를 대개 갖추고 있었다는 것. 이런 걸 감독은 전혀 몰랐던거고 몰랐던 이유는 직접 그 많은 연구서를 읽고 공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겠죠."
답변의 취지는 아마도 미키 데자키 감독이 요시미 요시아키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직접 찾아볼 여력은 없었을 거라는 지적인 듯하고, 적어도 2007년까지 이영훈도 말씀처럼 요시미 요시아키의 법적 책임론을 고스란히 따랐습니다. 당시에는 여행이 제한돼 있었고, 업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통행증 따위의 서류를 준비했을 거라면서 그러므로 법적 책임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지요. 지금은 바로 기억 나지 않는데, 위안부 피해자 증언 중에서도 종전 후 그 통행증이 쓸모없는 종잇조각이 됐다는 얘기도 있고, 송신도 할머니 증언에도 그와 비슷한 얘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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