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8

책벌레 2014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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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9 June 2014  · Shared with Public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공동체니 마을이니 하는 말과 관련 현상들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여러 생각 드는 가운데「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가끔씩 떠오르곤 했다. 동료에게 온라인 주문을 부탁해서 받아보니 책 생김새 어딘가가 내 기억과는 뭔가 좀 다르다 싶다. 이거 뭐냐 하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아, 나는 1996년 녹색평론사에서 재생용지 사용해서 소박한 모양새로 펴낸 김종철 번역본을 기억하고 있던 거였다. 저자는 번역판권을 2007년에 중앙북스에 넘겼단다. 쩝… 입안이 살짝 마른다. 좋은 책 오랜만에 다시 받아보는 즐거운 기대에 그렇게 흠집이 난다. 한때 「녹색평론」을 가까이 두고 읽었고 지금도 격월간으로 꾸준히 나오는 「녹색평론」을 참 귀하고 고맙게 여겨오던 터이기에.
더욱이「오래된 미래」번역 출간에 따른 판매수익으로 녹색평론사가 재정적 어려움을 넘어서는데 상당기간 적잖은 힘을 얻었다고 들었다. 초판 발간 이래 계속해서 꾸준히 나가는 스테디셀러로 꼽혀왔는데 저자는 왜 녹색평론사와의 계약을 해지했을까, 중앙일보 자회사인 중앙북스가 돈을 더 많이 준다고 했나, 혹시 그렇다면 저자가 여기저기서 강조하는 '사회적 생태적 연대'에 배반되는 거 아닌가, 속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저자의 진실성에 물음표를 단 채 책을 펴들었다.

“「오래된 미래」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새롭게 소개되어 너무나 기쁘다”로 시작되는 저자 서문, 그 아리송한 유감을 접어두고 책 내용에만 집중해보자 하면서 책읽기를 시작했다.

언어학자였던 저자가 소수민족언어 연구를 위해 1975년 처음 방문한 라다크는 히말라야 인근의 인도령 속주로, 인도정부에 의해 1974년 외국인에게 처음 개방된 곳이다. 저자는 그래서 전통문화가 거의 온존하던 상태의 라다크 사회를 접할 수 있었다. 히말라야에 이어져 이리저리 얽혀있는 거대한 산맥들에 둘러싸인 이곳은 해발 1만 피트(3천 미터 이상)의 고지대로, 거기 주민들은 연간 8개월을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기 때문에 4개월가량만 농사를 짓고 동물들을 키우며 자급자족한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살림살이 공동체에서 자기 역할을 지니고 살았으며 그들에게 가장 심한 욕설은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평화롭게 '삶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라다크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 사이의 유대관계 그리고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통해 내면의 평화로움과 기쁨이 넘치는 삶의 태도를 부양할 수 있었다."(178쪽)

부족한 자원과 혹독한 기후 그리고 쉽지 않은 접근성으로 인해 라다크는 식민주의와 개발의 영향권에서도 오래도록 벗어나 있었고, 그럼에도 아시아의 주요 교역로에 위치했기 때문에 외래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외래문화가 일으키는 변화의 속도가 빠르지 않아 그런 외부의 영향들은 고유문화의 영역 안에서 서서히 통합될 수 있었다. 하지만 1974년 인도정부가 그 지역을 관광지역으로 외국인들에게 개방하면서 개발압력이 드세졌고, 라다크 언어도 모르는 행정관리와 개발감독관들이 인도정부에서 파견된 이후 서구식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그곳의 문화는 서구 물질문명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화려한 차림의 관광객들이 달러를 뿌리고 도시화 압력이 커지면서 그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유문화에 대한 편안함과 느긋한 삶의 속도를 잃어버렸다.
"라다크의 변화되는 모습 가운데 내가 가장 슬프게 생각하는 것은 개인들이 느끼는 불안감으로 인해 가족과 공동체 사이의 연계가 점점 더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 다시 개인들의 자부심을 흔들어놓는 파급효과를 낳는다. 소비지향주의는 이 모든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234쪽)

서구의 생활양식이 라다크의 전통적인 그리고 지속가능한 삶을 망가뜨리는 것을 보며 서구 출신의 저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개발로 인해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깨우침을 서구사람들에게 전하는 세미나 여행을 하다가 1980년 '라다크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국제기구를 설립하고 이를 1991년 'ISEC'(에콜로지 및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로 재탄생시키기까지 16년을 라다크에 머물며 저자는 서구 물질문명에 대항하는 공동체 중심의 생활방식을 그곳의 과거로부터 찾아보자고 호소한다. 세계에서 가장 현대화된 지역에서는 어떤 식의 노력으로 보다 공동체적이고 생태친화적인 변화를 실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그곳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탈중심적 중간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 등의 노력이다.

"우리 앞에 놓인 위기 상황의 구조적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다크 개발' 이후 나타난) 인종간의 폭력사태나, 대기와 수질오염, 가족해체, 문화붕괴 등의 문제들은 외관상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것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 문제점들이 상호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문제의 본질이 너무나 엄청난 것 같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문제들의 접점을 찾게 된다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시도가 더욱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상황은 각각의 문제를 개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접근을 하고 있는 조직들을 포함하는) 전체의 조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어떤 실마리를 잡아당겨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압축되는 것이다."(319쪽, 괄호 안은 필자 주)

저자는 자신의 활동과 관련된 라다크의 주목할 만한 변화들을 제시하면서, 글로벌 경제화에 의해 파생된 많은 문제점들이 라다크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생존의 위기상황을 불러오고 있지만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희망의 실마리를 시민운동에서 찾는다. 글로벌 경제성장의 엔진을 가속시키며 수익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위로부터의 영향력'이 점차 쇠퇴하는 반면, 공동체의 유대와 자연친화를 유지함으로써 우리 자신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아래로부터의 영향력', 인간의 자연스러운 요구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민간주도운동이 힘과 지지를 얻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희망에 대해 우리 각자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최성각 작가는 이 책을 읽은 후 라다크를 직접 방문해보니 "라다크에는 금세기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민족들이 겪고 있는 산업화로의 변화, 이른바 '지속불가능한 방향으로의 변화'가 급속도로 진행중이었다."(「달려라 냇물아」180쪽)는, 저자가 라다크의 희망적인 변화를 말한 것에 비해 보면 매우 회의적인 방문기를 냈다. 그럼에도 선택은 우리 자신들의 몫이다. 저자가 말한 시민운동에서 희망을 찾고 참여·지지할 것인지, 그 하나의 방식으로 저자가 말한 '인간적 규모의 사회단위'를 형성하고 참여하는 것에서 상호유대와 같은 삶의 근본을 느끼며 살 것인지, 아니면 글로벌 경제권력을 어쩔 수 없는 대세라고 여기며 그에 부합하는 또는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는 삶을 살 것인지, 또 다른 선택지를 찾을 것인지…

이 글을 쓰는 취지는 분석적이거나 비판적인 서평을 하자는 게 아니고 책을 통해 우리가 공감할 만한 내용을 찾아 생각해보고 공부하자는 것이다. 글머리에서 쓴 대로 저자에 대해 내가 못마땅하게 또는 아리송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서구 출신의 한 언어학자가 16년간 라다크에 머물며 그 경험에 입각해 인간과 사회의 근본과 나아갈 바에 대해 성실하게 추적하며 기술한 노작이다. 이론적인 문명비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확인이며 서구문명, 글로벌 경제화가 인간과 자연에게 저지른 폭력에 대한 르뽀르타쥬이자 그를 근거로 한 제안서이다. 저자는 2003년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웃과의 좋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자연과의 친밀한 접촉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사회의 가치를 판단하는 여러 기준들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면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구성원들의 행복이 그 척도가 되어야 하고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유지가능성이 그 척도가 되어야 한다"(251쪽)고.

'오래된 미래' 속에서 지금의 지배적인 문화와 본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문화의 실마리를 우리 사는 현실 속에서 찾고자 하는, 그래서 사람중심·지역중심·관계중심을 귀히 여기는 우리 일촌인들이 동질감 느낄만한 반가운 얘기들 아닌가.

출처: http://goodsociety.or.kr/%EC%98%A4%EB%9E%98%EB%90%9C-%EB%AF%B8%EB%9E%98-%EB%9D%BC%EB%8B%A4%ED%81%AC%EB%A1%9C%EB%B6%80%ED%84%B0-%EB%B0%B0%EC%9A%B4%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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