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약속의 차이 이해해야 한·일 갈등 풀린다 - 중앙일보
[기고] 약속의 차이 이해해야 한·일 갈등 풀린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0.05.16
이수철 일본 메이죠대학교 경제학부 교수(환경경제학)
한일 양국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체결로 일단 식민지시대의 청구권 문제가 해결됨과 동시에 정상적인 국교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후 한국의 반도체와 IT관련 산업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완제품 생산과 필수소재 공급의 긴밀한 경제파트너 관계도 형성됐다. 하지만 과거 역사문제와 한일조약의 해석문제를 둘러싼 양국간 인식의 차이가 불거질 때마다 한일관계는 냉각기를 맞이해왔고, 이는 경제 뿐만 아니라 문화, 사회 전반에 걸친 양국 간 교류에 많은 지장을 초래해 왔다.
물론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한 과거사에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서로 다른 앵글로 보는 시각의 차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구체적 요인으로는 다음의 두가지를 들 수 있다. 첫번째는 양국 간에는 문화적 차이로 인한 상호간 오해의 소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양국관계의 신뢰 형성에 책임이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본의 든 본의가 아니든 양국관계를 국내정치 국면의 전환용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우선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 중 하나가 약속에 대한 차이다. 우리나라에서 약속을 한다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이라는 약속보다 더 중요한 사정이 있을 경우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무언의 전제가 들어가 있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 약속을 한다는 것은 “인력으로 통제불가한 천재지변이 아닌한~” 이라는 선약을 최우선시하는 전제가 깔려 있다.
위안부나 징용공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본으로서는 일단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5억달러를 배상했고 이로써 모든 청구권을 말소하기로 한국과 약속했다고 여기고 있다. 반면 현재 한국으로서는 당시 상황과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으며 그때 피해를 입은 개개인의 입장을 가해자인 일본이 반드시 헤아려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약속에 대한 문화적 차이를 서로 이해하지 못해 상호 불신의 골은 깊어졌고, 일본은 경제적 보복이라는 카드까지 꺼내 들게 되었다.
두번째로 국내정치의 전환용으로 한일관계가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임기 말기에 바닥을 친 정권 지지율을 만회하려고 돌연 독도를 방문하는 것이 그 예다. 이러한 이슈 이후에는 일본 내 한류 붐이 시들어지고 혐한론이 기세를 얻게 됐다. 그리고 이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손해는 고스란히 일본 내 교포들 그리고 한일 간의 비지니스에 종사하던 중소상인과 기업들의 몫이 됐다.
일본의 일부 정치가들도 한일 외교문제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이용해 온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수상으로서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는 등 재임 시 한일관계 개선에 노력을 기울였으며 일본의 큰 정치인으로 추앙받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 康弘) 전 수상은 생전에 “내정과 외교를 섞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정치적 신조는 한일 정치가들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피로 얼룩진 무수한 전쟁의 역사를 가진 유럽도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동체를 탄생시켰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 아래서 사이좋게 서로 도와야 할 이웃끼리 서로 불신하고 경제분쟁까지 일으키며 서로 발목을 잡고 넘어뜨리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일이다. 경제적으로도 뗄레야 뗄 수 없는 중요한 파트너인 일본과는 과거사와는 별개로 상호 협력하는 발전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수철 일본 메이죠대학교 경제학부 교수(환경경제학)
1982년 서울대 농생대를 졸업하고 2000년 교토대에서 환경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나고야학원대학교 경제학부 조교수를 거쳐 2005년부터 메이죠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환경경제와 환경에너지정책 전문으로 동아시아의 지속가능한 저탄소사회를 향한 제도 개혁과 정책 협력에 관한 저서와 논문이 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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