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9

Facebook 林泰一 is with 김용해. Ichiro Mitsunobu様께서 발제 중에 언급한 小林 勝작 쪽발이

 Facebook 林泰一 is with 김용해.
3 December 2019 ·

저번에 서강대에서 있던 세미나에서 Ichiro Mitsunobu様께서 발제 중에 언급한 小林 勝작 쪽발이.
김용해 신부님, 그날 아가페 때도 제가 잠깐 얘기드렸지만 이 사람 자기연민이 굉장히 강했던 사람이에요. 며칠 후에 제 흥미를 유발하는 책을 만나서 읽었었죠. 
그 책 '조선을 떠나며' 소개도 같이 해드릴게요. 이 책에 그런 단어들이 나오더라고요.

 조선에 동화된 조선 태생의 일본인들의 정사와 '倭奴掃蕩'일본의 노예 제도  과 집단적 공포. 그런 얘기를 잘 구성한 책이더라고요.
고바야시 마사루에게 '쪽발이'란 그런 의미가 아니었나...
저 책이 더 나아가서 '만레사 체험'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교보에 재고 없어서 저는 오늘 광화문 미사간 김에 예약 주문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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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조선은 해방을 맞이했지만,
일본인들에게 그것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생경한 공포요, 끔찍한 재앙이었다
1945년 8월 16일부터 23일까지 약 1주일 동안 조선 전역에서 중앙에 보고된 ‘불상사건不祥事件’은 총 913건이었다. 
사건 내역을 살펴보면 조선인이 집단으로 습격한 곳은 주로 경찰관서, 지방행정기관, 신사였다.

 또한 개인을 상대로 한 살상과 폭행 사건은 약 267건이 보고되었는데, 주된 표적은 경찰관, 학교 교원, 행정기관의 공무원, 그리고 그 가족들이었다. (…) 패전 후 벌어진 이 같은 사태에 당황한 총독부는 8월 18일 각 기관에 걸어둔 천황 사진을 불태울 것을 지시하는 한편, 각 지역 신사에 신속히 연락해 신령이 불경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위패를 불태우는 승신식昇神式을 거행하라고 했다. 
일본 식민 지배의 상징인 천황 사진은 말할 것도 없고, 거류민에게 온갖 재앙을 막아주는 액막이로서 정서적 안정감을 안겨준 일상의 공간이자 일본 문화의 구현체였던 신사가 ‘불경’하기 그지없는 조선인들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차마 두 손 놓고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인들은 사건의 경중과 다과를 떠나 이러한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며 집단적 공포에 시달렸다.

-본문 25~26쪽

*고바야시 마사루, 왜 읽어야 할까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서 태어나고 16년간 생활한 고바야시 마사루는 1945년 일본의 패전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식민지 조선에서 살았던 일본인, 일본인이 바라본 식민지 조선을 주제로 삼아 여러 작품을 남겼다. 

노천명이 작중인물로 등장하는 다나카 히데미쓰, 한국의 아름다움을 시로 남긴 미요시 다쓰지 등 일본작가가 더러 있다.

하지만 고바야시 마사루는 이들과 또 다르다. 그 자신 조선에서 귀향한 일본인으로서, 또한 공산주의 이념의 보편성을 믿는 공산주의자로서 시종일관 “일본인에게 ‘조선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미를 고통스럽게 천착했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은 “일본인에게 ‘조선’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며 느낀 자신의 나태함과 무력감에 대한 구토이자 자신이 속한 일본의 추악함에 대해, 착실히 강대해져 가는 권력과 군사력에 대해 느낀 분노이기도 하다. 일본인이라는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 조선인을 위해 이처럼 고통스러워한 일본 작가 고바야시 마사루.

이 점만으로도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고바야시 마사루의 쪽발이를 읽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만 작품의 구성 또한 탄탄하다. 개개 작품의 구성뿐 아니라 4편의 중․단편이 어우러져 이루는 큰 틀과 메시지가 빼어나다.

-링크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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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해

꼭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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