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남매간첩 사건’ 김삼석씨, 공갈 혐의로 징역 1년 선고받아 - 시사저널
[단독]‘남매간첩 사건’ 김삼석씨, 공갈 혐의로 징역 1년 선고받아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승인 2019.07.19 10:00
대학들로부터 6000여만원 뜯어낸 혐의, 김씨 "갈취한 것 아니다" 주장
1993년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남매 간첩단' 사건 관련자이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을 지낸 김삼석씨(54)가 공갈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윤미향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의 남편이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김씨는 지역에서 소규모 언론사를 운영하면서 16개 대학교를 상대로 과도하게 정보공개청구를 한 뒤 6000만원가량을 갈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한지연 판사는 지난 6월5일 김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한 판사는 "이 사건 범행은 언론인의 지위에 있는 피고인이 정당한 권리 행사인 양 정보공개청구를 한 후 광고비를 약속받으면 이를 취하하는 방법으로 돈을 갈취한 것"이라면서 "범행 수법이 불량한 데다 범행 기간이 길고 피해 학교의 수도 상당히 많으며, 피해가 회복되지도 못했다"고 실형 판결 이유를 밝혔다.
ⓒ 일러스트 김세중
‘정보공개청구’ 빌미로 25차례 금품 갈취
김씨는 2005년 4월 경기도 수원에서 A주간신문, B인터넷신문을 창간해 발행·편집인으로 재직하며 기사도 썼다. 그러면서 대학들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하기 시작했다. 정보공개청구는 공공기관에서 보유·관리하는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라고 요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시스템이다. 정당한 취재 목적이었다면 문제 될 게 없었겠지만, 법원은 김씨가 '광고비 명목의 금원 갈취'를 위해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악용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는 김씨의 범죄 사실이 상세히 기록됐다.
김씨가 처음 정보공개청구를 한 것은 C대학이었다. 김씨는 2013년 12월20일 C대학을 상대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문화홍보처 세부예산지출내역 및 지출증빙자료 일체, 국제부총장실·재정부총장실 세부예산지출내역 및 지출증빙자료 일체, 발전기금 세부내역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일반적인 정보공개청구 수준을 뛰어넘는 광범위한 내용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씨는 2013년 12월말쯤 수원 모처에서 C대학 문화홍보처 소속 교직원과 만났다. 김씨는 이 교직원에게 "정보공개청구를 하느라 변호사 비용이 1000만원 정도 들었다"며 "광고비 조로 300만원을 주면 정보공개는 취하해 주겠다"고 말했다. 이어 돈을 주지 않으면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해 막대한 업무 마비를 초래하도록 하겠다고 윽박질렀다. 더 나아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거나 C대학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게재할 것처럼 행세했다.
공갈 혐의를 받는 김삼석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1심 판결문을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했다.(사진=시사저널 최준필 기자)
김씨에게 겁을 먹은 C대학 측은 결국 김씨 요구를 수용했다. 김씨는 2014년 1월6일 정보공개청구를 취하했고, C대학은 2014년 4월 김씨 예금계좌로 300만원을 송금했다. 이 건을 포함해 김씨가 비슷한 방법으로 2013~18년 사이 16개 대학을 상대로 25차례에 걸쳐 정보공개청구로 뜯어낸 돈은 6033만원에 이르렀다. 금액은 한 건에 적게는 110만원에서 많게는 440만원이었다.
C대학의 경우 2017년 똑같은 수법에 당해 김씨에게 한 차례 더 돈을 줬다. 이때 김씨에게 준 돈은 지난번보다 많은 330만원이었다. 이 밖에 김씨에게 2번 이상 돈을 준 대학은 6곳이나 됐다. 특히 D대학은 4번에 걸쳐 673만원을 김씨에게 입금해야 했다. 김씨는 다른 대학 2곳에는 정보공개청구에 이어 손해배상청구 소송 내용증명까지 보냈다.
현재 김씨와 검찰은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수원지법에 항소한 상태다. 김씨 측은 1심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정보공개청구 취하에 따른 대가로 광고비를 지급할 것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면서 "각 대학 관계자들이 피고인에게 광고비를 제안하면서 정보공개청구를 취하할 것을 종용했으므로, 피고인이 광고비를 갈취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한편에선 ‘간첩 조작’ 호소해 온 피해자
한편, 김삼석씨와 동생 김은주씨 남매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발표한 '남매 간첩단' 사건 당사자다. 당시 삼석씨는 반핵평화운동연합 정책위원, 은주씨는 백화점 점원이었다. 이들은 1992년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관계자들과 만났다는 등의 혐의를 받았다. 이듬해인 1994년 대법원은 삼석씨에게 징역 4년, 은주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후 이 사건과 관련해 북한에 망명한 영화제작업자 백흥용씨가 자신은 안기부 프락치였다면서 이 간첩단 사건 조작에 가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씨 남매는 2014년 재심을 청구했고, 2016년 서울고등법원은 안기부 수사관들이 '이틀 7시간' 동안 영장 없이 불법 구금하는 등 수사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김씨 남매가 한통련 관계자들에게 국내 동향이나 군사기밀이 담긴 문서 등을 넘겼다는 혐의 등을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두 사람이 한통련 의장 등을 만나고 이 단체에서 금품을 받은 사실은 여전히 유죄로 인정된다며 삼석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은주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 판결은 2017년 대법원의 상고 기각으로 확정됐다.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 판결이 최종 확정된 것이다.
삼석씨의 아내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으로 잘 알려진 정의연 윤미향 이사장이다. 정의연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통합한 단체다. 윤 이사장은 2013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결혼한 해 남편이 간첩 혐의로 체포돼 4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당시 나는 임신한 몸으로 수요집회(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진행하면서 남편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돌아다녔다"며 "그(남매 간첩단) 사건은 안기부 프락치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대한변호사협회와 국회진상조사위원회에서 밝혀졌다"고 밝혔다. 윤 이사장은 "남편이 (결혼 전) 수요집회에서 나와 교대로 메가폰을 잡았다. 지금은 경기도 수원에서 지역 신문사를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재심 확정 후 김씨 남매를 포함한 형제들과 그 자녀, 윤 이사장 등은 "불법 수사로 남매 간첩단이라는 오명을 쓰고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과 2심은 모두 "안기부 수사관들이 영장 없이 김씨 남매를 체포해 가혹행위로 자백을 강요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2심에서 윤 이사장의 위자료는 3000만원으로, 은주씨의 위자료는 상속분을 포함해 5400여만원으로, 다른 가족들의 위자료는 400만~3600만원으로 책정됐다.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삼석씨에게 1억여원의 위자료를 인정하면서도 재심 후 형사보상금으로 1억9000여만원을 받은 만큼 국가의 배상채무가 사라졌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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