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6

정승국 김부겸 전장관 오늘 올린 글은 놀랍고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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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국
1 hr ·



사실을 말하자면, 김부겸 전장관
과는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다녔다. 동기수가 35명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수업이 있는 날이면 동기들은 거의 매번 붙어다녔다. 같이 밥을 먹었고 같이 술을 마셨다. 그는 대구 출신답게 붙임성이 좋았고 담백하고 담대했으므로 누구나 그를 좋아했다. 여름이 되어 등짝을 환히 드러낸 대담한 복장을 한 여성에 대해 장난을 걸고난 후 파안대소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러던 그가 1학기를 마치고 반수하여 서울대 정치학과로 가버렸다.
그러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앞으로가 더 크게 기대되는 정치가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 올린 글은 놀랍고 실망스럽다. 비정규직 문제를 자본의 분할통치 전략에서 해석했다.
“사회적 약자와 약자를 갈라 싸움 붙이는 것이 오늘날의 자본주의입니다. 같은 노동자인데도 누구는 정규직, 누구는 임시직, 누구는 계약직, 누구는 파견직, 가르는 겁니다. 그렇게 해놓고 노-노 갈등을 조장합니다.”
나는 이러한 인식을 그뿐 아니라 운동권 출신 장관이나 국회의원(류모 정의당 의원이 인천국제공항과 관련하여 최근 포스팅한 글이 전형적이다), 정권의 핵심부에서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비정규직이 확산되는 역사적 과정은 이렇다. 60년대말 유럽의 각국에서 노동자의 비공식적인 파업(붉은 파도들: red waves)이 확산되었다. 고용보호입법(이것을 정리해고제라고 번역하고 정리해고제 철폐를 부르짖는 일부 급진좌파들이 있지만, 그들은 고용불안으로부터 노동자의 고용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철폐하자고 주장하고 있다!)이 이때 생겨났다. 

그러다가 80년대 들어서 경제위기가 닥치고 많은 실업자들이 거리에 쏟아졌다. 정부는 70년대 생겨난 고용보호입법을 약간 완화하자고 노조의 정상조직에 요청했다. 그래야 사용자들이 좀 더 수월하게 고용에 나설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 요청을 노조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러자 정부는 비정규직만이라도 해고규제의 정도를 완화하자고 다시 요청했다. 이 요청에 대해서는 70년대 영국의 노조들이 대처의 반노조정책에 의해서 박살나는 것을 지켜봤던 터라 마지못해 수락하게 된다.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고용유연성은 이렇게 하여 생겨났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연구자들은 이것을 주변적 유연성(marginal flexibility)이라고 부른다. 드디어 고용보호제도의 이중성(dual EPL)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각국의 비정규직 정도는 상당한 정도로 차이가 있다. 청년 비정규직의 정도도 상당히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각국의 해고규제의 정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해고규제의 차이, 내부노동시장의 효율성의 차이, 노동시장제도와 노사관계 제도의 차이 등이다. 

우리나라는 비정규 비율, 처우, 정규직 전환율의 측면에서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의 분절구조가 심대한 사회이다(a deep segmentation between insiders and outsiders). 특히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것은 내부노동시장의 비효율성 및 노사관계의 성격과 깊이 있게 관련되어 있다. 연공급, 기업복지뿐 아니라, 노조의 전투적인 임금인상, 사업장 내부의 갖가지 규제들은 기업으로 하여금 정규직 채용을 꺼리게 만드는 특성들이다

권현지 서울대 교수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이 연공급의 비중이 높을수록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크다는 사실을 밝혀왔다.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의 사업을 통해 분절구조의 약화를 시도해 왔으나, 연공급 등 내부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전통적인 보호들을 유지한채로 정책을 구사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전환된 공무직들이 연공급의 혜택을 받는 경우는 허다하다(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도 마찬가지이지만, 중요한 정책이 초래할 영향력을 정밀하게 타산하여 중장기적으로 정책을 실시하지 않고 발표부터 하는 정책의 후과는 크다). 

연공급의 직무급 전환 등 내부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높여 비정규직의 사용 유인을 줄이는 정책은 이해당사자의 반발에 부딪혀, 또는 다가오는 선거를 의식하여 추진 안 하고 있다. 

내가 ‘지독한 내부자성’이라고 부르는, 한국의 노동시장이 독특하게 갖는 특성을 줄이는 정책을 정부가 용기 있게 실행하지 않는 한 비정규직이든 청년들이든 취약집단 지위의 지속적인 개선은 어렵다. 정책이 실행되었을 때 우연히 비정규직 지위에 있었던 일부 노동자들은 로또처럼 혜택을 누린다(인천국제공항 직고 노동자들이 로또의 혜택을 누린 것은 아니다). 


김부겸 전 장관이 옛 친구의 글을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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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e Shin

결국 그 용기있는 정부의 정책은 고용 유연화인 것 아닌가요? 고용도 늘리고 학벌주의도 타파할 수 있는...



정승국 replied ·1 reply1 h


강동욱

연공급의 직무급전환과 지독한 내부자성 완화 없인 비정규직 문제해결은 매우 어렵군요. 고용노동정책도 이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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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승

김부겸 김부겸실 일케 부르면 될까요?



Cho Jung-Kwan

김부겸이 이재명같은 포퓰리스트로 등극하려는 노력이죠. 이렇게 되면 김부겸다움이 사라지고 유권자의 쇼핑 리스트에서 그는 더 무가치해지죠.


정승국

조정관 우려스런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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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 Jung-Kwan

정승국 동감입니다ㅠ

송태경

차별의 시정을 방치한 채, 연공급의 직무급 등으로의 전환도 저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임금을 둘러싼 소란스런 분쟁(애덤 스미스가 오래 전에 통찰했듯이, 결국 노동자들의 패배로 끝날 수밖에 없지만)은 자본이든 국가든 달가워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제가 생각하기에 차별을 통한 임금비용 삭감이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변화된 이후에야 비로소 연공급의 직무급 전환 등은 자본이나 국가의 현안으로 부상될 수 있으리라 그리 보입니다....


정승국

송태경 연공급의 완화나 폐지는 사용자들이 절실히 바라는 사항이고 이런저런 사업장에서 실행되고 있습니다.

송태경

절실히 실행하고 싶어하나 하지 못하는 사업장들도 아주 많지요. 예컨대 현대자동차에서 "정규직 고참이라고 해서 힘든 일 하는 젊은 사람보다 임금을 두 배 받는 게 말이 되나?"라는 얘기는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서도 나오는 얘기지만, 여전히 방치되고 있는 문제지요~ 여전히 계약직 차별이나 사내하청 등의 형태로 그 임금비용을 회피할 수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지성

오 서로 실제로 이름부르는 친구사이인가요?


Yoonseong Lee

진심이 느껴지는 비판입니다.



정승국

이윤성 ^^


Paul Ma

이 글을 복사 공유했습니다.


정승국

Paul Ma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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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인천공항 사태는 직무내용의 차이를 무시한 맹목적 비판을 부채질하는 언론의 무책임성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정승국

이종구 그렇습니다.




Seokho KIm

공유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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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국

김석호 감사합니다.


Hyungdon Kim

교수님. 생각의 폭을 넓혀 주는 글 잘 읽었습니다. 사회현상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기 전에는 섣부른 예단을 조심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기 전까지 저는 내부자와 외부자 사이의 분절구조 또한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이 노동자를 분리통치하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본이 연공급과 관대한 복리후생으로 소수의 노동자를 내부자로 포섭하고, 다수의 노동자는 외부자로 분리한다고 보았습니다. 포섭된 내부자가 외부자와 연대할 인센티브가 없도록 자본이 조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Han Yi

다음 대권이 순서가 아니면 곧은 생각 바른 정치를 하면 기회는 올 것인데 이분도 조급하게 가려하다 보니 엉터리 소리를 하게 되네요



Paul Ma

Han Yi 그러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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