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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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에 의하면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으로 사망한 중국인은 약 1,500만명정도이고, 인도네시아가 약 400만명, 베트남에서 약 200만명, 말레이시아에서 12만 5천명, 필리핀에서 12만명정도가 죽었다고 한다. 인도에서도 2차세계대전으로 18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존 다우어에 의하면 동전쟁으로 조선인은 원폭피해자까지 합쳐도 7만명정도가 사망했다. 고통의 정도를 숫자로 표시하기 어렵겠으나 상대적으로 적은 인명피해를 겪은 건 분명해 보인다. 물론 브루스 커밍스가 문학적으로 표현했듯이 전세계가 불타고 있을 때 역사로부터 벗어난 것처럼 보였던 한국인들에게 역사는 한국전쟁이라는 더 큰 파국을 준비해두었지만.. 그런데 일본제국주의로 인한 피해 정도를 따진다고 한다면 36년동안 혹은 그 이전의 식민화 과정에서 겪었던 피해까지 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비교대상이 된 지역들도 대부분 식민화 과정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피해를 겪었기에 그부분까지 포함해도 그다지 차이가 없을 것 같기는 하다만. 임지현은 이를 두고 스스로를 일본 제국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라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적 자체는 동의하는데 임지현은 그뒤로 숫자상의 비교가 희생자 의식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논한다는 점에서 약간 모순적이지 않나 싶다.
-피해의 위계를 세우는 행위를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그 위계를 이용해 한국인의 희생자 의식을 비판한다는 모순을 범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숫자가 주는 어떤 효과도 분명히 있다. 희생의 위계가 숫자로 표현되니 확연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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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uke Lee
피해가 큰 다른 국가들에게 당시 조선은 또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전쟁 참여로 본다면 또 가해의 입장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죠(물론 그게 강제 징집에 가까웠다고 하겠지만) 여튼 민석님 덕에 이런 짧은 글을 통해서도 많이 배웁니다.
· Reply · 4 h
손민석
제가 다른 글에서도 썼지만 가해의 모습이 더 정확했다고 봅니다. 저는 마르크스를 공부하면서 되려 친일파에 너그러워졌는데요, 근대국가 내부에서 민족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차원에서 접근하면 유별나게 반발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정치의 영역에 참여하고자 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 보여서 걱정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정치의 과잉과 그 반대극단인 정치의 금지가 동시에 작동하는 과정이라 봐요.
· Reply · 4 h
Luke Lee
손민석 이런 게 온전히 학문(?)의 영역에서만 이야기된다는 게 안타깝죠.
· Reply · 4 h
손민석
이관식 근데 뭐 학문에서도 잘 논의되는지는.. 내부 분위기는 여전히 민족주의적인 게 강해서..
· Reply · 4 h
Luke Lee
손민석 뜬금없지만 아래의 댓글들이 흥미롭군요. ㅎㅎ
· Reply · 3 h
손민석
이관식 하하. 흥미로우시다니.
· Reply · 3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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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jai Jung
임지현 쌤의 인식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한국의 피해는 1905년부터 2020년까지 계속된 거라고 봐야죠. 특히 한국전쟁의 피해가 절대적이었고. 한국전쟁을 어떻게 식민지배와 떼어서 볼 수 있을까요? 게다가 분단은 너무도 뼈아프죠. 덕분에 자주성을 상당히 상실한 상태인걸요.
· Reply · 4 h
손민석
분단의 책임을 일본이 어느정도 져야 한다는 것과 한국전쟁의 피해의 책임이 일본에게 귀속된다는 건 엄연히 다른 층위의 주장입니다. 김일성을 비롯한 북조선 지도부의 결정은 왜 그 피해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되는 건가요? 그리고 전쟁을 조기에 끝낼 수 있었음에도 지정학적인 요인과 정치적 이익 등을 고려하여 휴전선 인근에서 전쟁을 계속하며 희생을 늘린 한국 지도부의 책임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 학살의 책임도 일본이 져야 하는 건가요? 분단은 국내의 정치지도자들의 미숙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이뤄졌는데 왜 그 과정에 하나의 주체로서 참여했던 일본만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나요? 지나칠 정도의 단순화와 그것이 아니면 유지되기 어려운 반일정서는 제대로 된 현실인식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 Reply · 4 h
Hojai Jung
손민석
전쟁을 그냥 하나의 사건으로 따로 떼어놓고 보면...남북전쟁에서 일본이 개입할 여지가 없죠. 물론, 제가 한국전쟁과 분단의 책임이 전적으로 일본이 져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저의 짧은 코멘트 속에 어디에 모든 책임이 일본에 귀속된다는 표현이 있나요?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이 연결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다시 한번 읽어보시죠.
그러면, 한반도의 통일은, 남한과 북한이 합의하면 되는 사안일까요? 그러면 일본은 왜 계속 방해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게 사건이 하나하나 따로 떼어지지 않습니다. 한국전쟁의 민간인 학살의 책임이 일본은 아닙니다. 하지만 비극의 기원을 따라가보면, 중국, 서양세력, 일본, 못난 조선까지 다 튀어나오겠지만, 한국전쟁의 가장 이전의 체제인 식민지배에 비중이 조금 더 높을 수는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가 반일정서라고요? 너무 넘겨 짚으시는 것 아닌가요? 너무 표현이 거치시네요.
· Reply · 4 h
손민석
Hojai Jung 말씀하시는 게 계속 충돌하시는데요, 일본제국주의의 책임이 첫문단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일본이 개입할 여지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면 왜 둘째 문단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비중이 더 높은 정도"가 되는 건가요? 둘이 상충한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비극의 책임에 일본이 개입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책임의 정도가 낮은데 왜 비극의 기원의 책임을 일본이 다른 사건들보다 "비중이 더 높을 정도"가 되는 건가요? 정리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한국전쟁의 가장 이전의 체제"는 식민지 체제가 아니라 "미군정체제"가 아닌지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한국 정치체제는 일본 총독부 - 미군정 - 대한민국 순으로 이어집니다. 말씀하신 기준이라면 미군정에게 분단과 한국전쟁의 가장 큰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미군정과 소련군정 시기를 생략하고 곧바로 식민지배로 점프하게 되는건지요? 또 이 군정기간 동안에 남북한의 정치적 지도자들의 행위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식민지배와 무관하게 남북한 정치지도자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전쟁이 났을 수도 있는 건데 무슨 근거로 식민지배가 가장 비중이 높다고 생각하시는건지 말씀해주신 바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네요.
마지막으로 저는 현재를 "자주성을 상당히 상실한 상태"라 인식하시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말씀하시는 "자주성"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와닿지 않네요. 한반도의 통일은 당연히 다른 주변국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집니다. 독일도 동독과 서독이 둘이 합의해서 이뤄졌나요?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통일도 둘만 합의해서 이뤄졌나요? 그나마 합의로 통일한 남예멘과 북예멘의 통일도 전쟁을 치뤘고 소련의 쇠퇴 속에서 가능했습니다. 당연히 국제적으로 주변국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과정입니다. 베트남도 독일도 예멘도 모두 자주성을 상실한 상태인가요? 주권의 제한이라는 표현은 제가 알기로 굉장히 애매한 개념입니다. 유럽 나토 체제 속에서도 그러면 프랑스, 독일 등의 국가들이 모두 군사주권을 제한당하는 꼴입니다. 하다 못해 개인이 둘만의 합의로 결혼을 하려고 해도 주변 지인들의 무수한 간섭과 조언 등을 받습니다. 그걸 모두 자주성의 상실이라 표현할 수 있을지요. 저는 의문입니다.
1905~2020년까지 한국이 일본에게 피해를 받았다고 인식하는 것만큼 강한 반일정서가 또 있나요? 넘겨짚었다는 말씀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피해도 있지만 일본으로부터 이익을 받은 것도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100년이 넘는 기간을 피해가 "계속"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두고 일본에 긍정적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중립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생각되고요. 반일정서가 아니면 설명이 안되는데 달리 설명하실 표현이나 주장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 Reply · 3 h
Hojai Jung
손민석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알겠습니다. 남한의 입장에서만 보면, 한국이 피해를 본것 보다, 일본으로부터 이득을 본게 더 많겠죠.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으로부터 이득을 본 것 보다 피해를 본게 훨씬 더 많겠죠. 그냥, 저라는 사람은 "남북한 통합 관점"에서 일본을 본거고, 손민석 선생의 경우는 남한의 관점에서만 본 것 같네요. 잘 알겠습니다.
· Reply · 3 h · Edited
손민석
Hojai Jung 그렇군요. 선생님께서 쓰신 '한국'이라는 표현을 저는 남한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남북한 통합의 관점이라 하시니 말씀하신 바가 이해가 됩니다. 반일정서와는 결이 다른 것이었네요. 제 표현이 거칠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남북한의 통합의 관점에서 볼 때 일본 정부의 외교행위가 미국 등에 비해 유달리 부정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저도 의문의 여지를 갖고 있습니다만 그리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 Reply · 3 h
Hojai Jung
손민석 아...네....한가지만 추가로 달면, 저는 반일주의자이기도 하면서 친일주의자이기도 한데요, 그게 날카롭게 분리되지가 않습니다. 누가 저를 반일주의자로 몰면 저는 "친일"이 되고, 누가 저를 친일로 몰면 "반일"로 돌변하고 합니다. 사실, 상당수 지식인 따라쟁이들이 저 같은 포지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이라는 것을 그냥 모더니티나 제국주의로 치환해도 상관은 없는데, 현대성에 대해서 거부하거나 완전히 탈출할 수 있는 식민지 지식인이 있을런지요?? 저는 없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6.25나 베트남전쟁이나 요즘에는 아시아의 근대화의 관점에서 연결된 사건으로 보는 관점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비극이기는 하죠....우리야 다들 비극을 통해 남겨진 빛의 자식들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6.25를 하나의 사건으로 따로 떼어서 책임을 논하는게 조금은 어색해 보입니다. 어찌보면 일어날 사건이 일어난 게 아닐가 싶기도 하고요. 거기서 나타나는 인간군상들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비난을 하는 것 보다는, 그것과 연결된 사건들의 관계성에 대해서 탐구하는게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은 인식하고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는 20세기 21세기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극복할 대상이자 연구할 대상이긴 한 것 같습니다.
· Reply · 3 h
손민석
Hojai Jung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는 별달리 이견이 없습니다. 제가 지적하고자 한 것은 거기서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것에 비해 더 크냐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본 것이고, 선생님은 그렇다고 보신 점에서 차이가 생겼습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저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근대성의 확장이 중국혁명 - 조선혁명 - 일본혁명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연쇄라는 반작용 속에서 상호작용하다가 미국이라는 새로운 국제질서에 의해 기존의 제국주의 질서가 붕괴되면서 생긴 틈을 메우려다 생긴 사건이 분단과 한국전쟁이라 봅니다. 단순히 누구 하나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게 아니지요. 복합적으로 보아야겠습니다만 한국 분단의 책임에는 세계적 냉전에서 소련이 미국보다 더 큰 책임을 지는 것과 반대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고 일본제국의 책임은 상대적으로 작다고 봅니다. 한국인 지도자들의 문제도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만은 국제질서의 교체보다는 적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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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jai Jung
손민석 밥 먹고 왔는데, 그냥 저도 공부하는 셈 치고 제 생각을 정리하면, 저는 NL출신은 아니지만 통일이 너무나 중요한 과제라는 점을 오히려 대학을 졸업하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인식하게 되긴 했습니다. 그런데 통일의 과정을 전략적으로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일본과 힘으로 대등해지는게 어찌보면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의 기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4대 주변강국의 동의가 필요한데, 그 4차방정식 수준의 동의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거든요. 때문에 그 개입자 수를 줄이는 방법이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자연스레 일본을 하나 빼는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겠더군요. 러시아는 자연스럽게 통일에 호불호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어떻게든 일본 먼저 극복하면 미중갈등 속에서 확률이 더 높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2019년의 반일흐름이 생각보다 효과적인 작용을 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손 선생의 생각은 완전히 다를 수 있을 것 같긴 한데요....에효...어려운 문제긴 하네요.
· Reply · 2 h
손민석
Hojai Jung 어려운 문제입니다만 저는 한반도의 통일은 역사적으로 조선왕조와 대한제국 지향했던 중립화 정책과 연결된다고 봅니다. 지정학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서 중립화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주변국들의 동의와 협조가 필수적이라 봐서요. 일본을 배제한다고 해서 일본의 영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 이번에도 볼턴 회고록에 나왔듯이 미국의 결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북조선이 얼마나 동의할지도 의문스럽고요.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아 누가 옳다 그르다의 영역은 아니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도 하나의 방안으로 고민해볼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 Reply · 2 h
Hojai Jung
손민석 일본과 힘으로 대등해지는게 인구구조상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섬나라 일본의 특성상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끊을 일도 아니긴 합니다...다만...일본을 이기겠다는 표현은,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라, 한반도 주도의 통일을 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라, 저는 그게 정답이 아니더라도, 최초의 사건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 Reply · 2 h
손민석
김영규
나라별 식민지배의 역사도 다르고, 한국의 경우 징용 문제도 있지 않을까요? 가령 필리핀에서도 일본이 징용을 하려 했지만 행정력이 딸려서 실패했다고 들었고,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는 수많은 인원들을 징용해서 많이 목숨을 잃었다고도 알고 있지만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 수카르노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한다는 대의 아래에 일본제국의 노동력 징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만의 경우에는 토착 전염병을 옮기는 모기로 인해서 한국만큼 일본인들이 정착해 살지 못하기도 했고 일본의 존재가 중국 정부의 영향력을 밀어낸 측면도 있어 대만인들에게는 일본의 지배가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측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의 지배에 불만을 느낀 대만 엘리트들은 중국으로 이탈할 수 있는 옵션이 있었지만 한국에는 그런 옵션이 없었기 때문에 더 큰 반감을 느끼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인들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담론 역시 민족주의적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민족간 “피해의식”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나타나는 “피해의식”의 차이를 민족성보다는 역사적인 조건을 통해서 찾았어야 하지 않았나 궁금하네요. 문외한의 의견입니다ㅠㅠ
· Reply · 4 h
손민석
한국의 경우에도 친일파라 지칭되는 집단들이 적극적으로 징용, 징병 등에 참여하면서 일본제국의 전쟁수행에 참여했으니 그런 건 별로 변별점이 되지 않을 것 같고요. 오히려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강력하게 주입받은 게 더 크다고 봅니다. 대만 같은 경우에는 장제스의 국민당 때문에 나타나는 내부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보고요. 임 선생이 그런 역사적 조건을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이분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그렇게 형성된 피해자 의식, 자신을 희생자로 여기는 '희생자 의식'이 실제 역사적 사건과 별개로 어떻게 자가발전하면서 현대를 규정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라서요.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는 걸 지적하는 게 왜 민족주의적인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네요.
· Reply · 3 h
김영규
손민석 무례한 질문에 답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이 된다는 인식 때문에 일본의 징용에 협조했다고 해서 수카르노를 친일파라고 손가락질 하는 경우는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문제있는 역사인식이 어떤 역사적 혹은 우연적 환경 속에서 발생한 것인지 설명하지 않는다면, 혹시 그 피해의식을 가진 민족이 원래 그런 성질을 타고 났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아닌가 하여 넘겨짚고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쉽게 답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제가 직접 책을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Reply · 3 h
손민석
김영규 아닙니다. 무례하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든 편하게 말씀주시는 게 저도 제 생각을 점검해볼 수 있어 오히려 더 도움이 됩니다. 친일파와 같은 '협력자' 부류에 대한 각 사회의 입장은 굉장히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예컨대 한국의 독립운동사 연구에서는 자치론자들을 친일파의 범주, 즉 협력자의 범주에 넣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대만의 경우에는 자치론과 자치운동 자체가 일본제국으로부터의 독립으로 규정되어 실제 탄압받기도 해서 독립운동사의 범… See more
· Reply · 3 h
김영규
그렇군요... 계승의식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흥미롭네요.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 Reply · 3 h
손민석
김영규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현재의 입장에서 기억을 소환한다고 봅니다.
· Reply · 3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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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의 <기억전쟁>을 읽다가 드는 생각 메모.
어떠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억 혹은 평가는 단순히 그 역사적 사실의 진실성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 기억을 자신의 구성요소로 삼고 있는 하나의 '정치적 서사'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예컨대 5.18 광주에 북한군 침투설이 사라지지 않은 건 실증이 부족해서 혹은 역사적 사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386세대를 규정하는 광주항쟁을 부정해야 본인들의 정치적 입장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정치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실관계 여부가 얼마나 중요할까.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한 민족공동체의 '기억'이란 그 내부의 다양한 계급적, 계층적 구성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서사와 긴밀하게 연결된 일종의 이데올로기라 생각한다.
그 이데올로기의 구성이 과거로부터 내려온, 파편화된 증거들에 기초하여 다른 민족공동체와의 학술적인 대화를 통해 혹은 학술공동체 내부의 자정을 통해 나름대로 객관화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정치적 서사로부터 일정한 자율성과 거리를 유지하게 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정치적 영역, 정치 서사를 아예 벗어나지 못한다.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 속에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바로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이 바로 역사해석의 장이라 생각한다. 북한군 침투설이든 뭐든 그런 사례라 생각하는데, 임지현은 이 정치적 투쟁의 장을 가해자와 희생자의 구도로 너무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피해자라 규정이 이미 끝난 이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끝까지 다 읽고 판단해야겠으나 일단 생각 정리용.
14Yuik Kim and 1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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