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45년 이후 일본을, 일본은 45년 이전 일본을 모른다” - 교수신문
“한국은 45년 이후 일본을, 일본은 45년 이전 일본을 모른다”
박강수
승인 2020.11.23
서울대 일본연구소 개소 16주년 좌담
스가 내각 출범 이후의 한일관계를 묻다
손 “다자주의 저물고 미일동맹 강화”
오 “역사문제는 국내 합의 중요”
(왼쪽부터) 손석의 서울대일본연구소 연구교수, 남기정 서울대일본연구소 교수, 오승희 동아시아연구원 수석연구원
사진=박강수 기자
한일관계는 북핵문제만큼이나 복잡한 고차방정식이다. 지정학적 이해관계와 역사적 과오, 모호한 협정문과 오해가 뒤엉켜 있다. 지난 3년은 그 복잡성이 터져 나온 기간이었다. 문재인 정부 이후 한국과 일본의 동아시아에서 전략적 이해가 어긋나기 시작했고 여기에 ‘김정은의 북한’, ‘트럼프의 미국’, ‘시진핑의 중국’ 등 변수가 차례로 얹혔다. 가장 최근 업데이트는 트럼프 대통령 재선 실패지만 그 이전에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사임이 있다.
역대 최장수 총리의 뒤를 이은 것은 최장수 관방장관이다. 사임 발표 19일 뒤인 지난 9월 16일 스가 요시히데 신임 총리가 취임했다. 스가 총리는 2012년 시작된 2차 아베 내각의 관방장관 출신이다. 도쿄올림픽이 연기되고 일본의 방역시스템이 휘청거리는 사이 최장 집권 내각의 바톤이 넘어갔다. 최악으로 치닫던 한일 사이에도 반등의 일렁임이 인다. 지난 여름 “’노 재팬’ 아닌 ‘노 아베’”라는 플래카드를 들기도 했던 한국 시민사회에서는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아베가 물러났으니 한일관계는 나아질 수 있을까?
"일본 야당 표심 추적을 해보면 과거 민주당 지지자들은 투표를 포기하거나, 유신회 같은 제3당으로 갔다. 어쨌거나 자민당으로 가지 않는 수가 꽤 된다. 아울러 최근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 민사당의 통합 움직임이 활발하다. 내년 총선을 주시하고 있다" 손석의 서울대 일본연구소 연구교수
사진=서울대일본연구소
아베 이후 한일관계에 대한 고찰
서울대일본연구소가 개소 16주년을 맞아 지난 18일 ‘스가 내각 출범 이후 한일관계를 구상하다’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표제 옆에는 “젊은 연구자의 시선”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사회를 맡은 남기정 교수는 “기존의 권위와 규범에 도전하는 재기발랄한 시선이 필요한 때”라고 설명했다. 패널은 손석의 서울대일본연구소 연구교수와 오승희 동아시아연구원 수석연구원이 맡았다. 손 연구교수는 일본 정당정치를, 오 수석연구원은 중일관계를 전공했다. 두 ‘젊은 연구자’는 포스트 아베 시대 전망부터 미중 패권 싸움까지 한일관계라는 고차방정식의 변수를 두루 살폈다.
아베의 일본은 ‘강한 일본에 대한 향수’로 요약됐다. 손 연구교수는 “대외정책의 측면에서는 다자협력이 사라지고 미일동맹이 강화된 시기이고, 국내정치의 측면에서는 총리 관저와 자민당 지도부로 권력이 집중된 시기”라고 평했다. 다만 미일 동맹 강화 기조는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미국과 마찰을 빚었던 전임 민주당 정권의 실패를 보상하는 움직임으로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 수석연구원은 “마치 트럼프가 그러했듯 아베 총리도 일본 사람들에게 ‘강한 일본으로 복귀하자’는 카리스마를 보여줬다”고 봤다.
다음은 스가 내각에 대한 전망이다. 손 연구교수는 “자민당은 소수 계파의 이미지 좋은 정치인을 총재에 선출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관리해왔다”면서 “스가는 무파벌, 비세습 총리로 화제를 모았지만 본질적으로는 내년 총선을 앞둔 ‘중간 계투형 내각’”이라고 말했다. 오 수석연구원은 “스가 총리가 장기집권으로 가기 위해서는 결국 올림픽이 중요하다”라고 짚었다. “스가 총리도 IOC의 바흐 총재도 내년 8~9월이 임기 마지막이라 7월에 있을 올림픽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협력해 개최하는지에 달렸다”라는 설명이다.
"미중관계의 요지는 이것 같다. 미중 대립, 갈등 상황에서 한일이 관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중일이 관계 개선하면서 한국이 소외되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 중일관계가 개선된다면 한일 관계의 중요도는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남기정 서울대일본연구소 교수사진=서울대일본연구소
‘투 트랙 전략’과 ‘국내적 프로세스’
역사문제 해법에서는 다소 의견이 갈렸다. “한일이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서로의 원칙을 조금도 내려놓지 않고 있다. 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이 살짝 양보한다면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남 교수의 질문에 손 연구교수는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어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비도덕적이지만 외교는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하며 전략적 사고에 기초한 ‘투 트랙 전략’과 ‘조용한 외교’를 강조했다. 역사 문제와 현안을 분리하면서 정치적 타협을 도모하는 방안이 있지 않겠냐는 제안이다.
반면 오 수석연구원은 “서둘러 합의하면 오히려 합의 안 한 것만 못할 수 있다”고 받았다. “역사 문제에는 여러 행위자가 얽혀 있다. 국제 관계도 중요하지만 국내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역사와 외교를 연계하는 일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투 트랙 관리를 주장하는데 역사 문제 해결 없이 진정한 관계 개선은 어려워 보인다”라고 밝혔다. 식민주의 자체가 국제적 성찰 과제이므로 한국이 이 맥락에서 적극적으로 규범을 제시할 수 있지 않겠냐는 제안도 나왔다.
"70년대 중일 국교정상화 과정을 추적 중이다. 71년 나고야탁구선수권 대회에서 미중 화해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72년 일본이 먼저 움직여서 중국과 최고위급 공동성명을 낸다. 이후 78년 중일평화우호조약, 79년 미중 국교 정상화로 이어진다. 내년 도쿄올림픽도 그런 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승희 동아시아연구원 수석연구원
사진=서울대일본연구소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일본관
한국과 일본 젊은 세대의 정치관도 거론됐다. “아베, 스가 내각에 대한 일본 젊은이들의 지지가 높은 상황을 우경화로 봐야 하나”라는 질문에 손 연구교수는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답했다. “젊은 세대의 삶이 힘든 상황이고 전임 민주당 정권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이런 이유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자민당에 대한 대안이나 색깔 있는 정치리더도 별로 없는 상황이다”라는 부연이 이어졌다.
오 수석연구원은 양국의 일본관에서 드러나는 인식차이를 지적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일본 정치에 대해 ‘군국주의’를 연상하는 비율이 높은데 이 경향을 일본 젊은이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후 일본이 평화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싸워 온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45년 이후의 일본을 모르고 일본은 1945년 이전의 일본을 모르는 상황 같다.” 오 수석연구원의 요약이다. 이 인식의 간극을 새로운 세대에서부터 메워가는 일이 새로운 한일관계의 출발일 것이라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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