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경화하는 일본’을 독해하는 방법
서동주 서울대 일본연구소 HK조교수 승인 2021.03.24
글로컬 오디세이_서울대 일본연구소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이 말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다. 세계 각 지역 이슈와 동향을 우리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국내 유수의 해외지역학 연구소 전문가의 통찰을 매주 싣는다. 세계를 읽는 작은 균형추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동일본 대지진 10주기를 맞아 희생된 가족을 추모하고 있는 일본 시민. 사진=로이터/연합
동일본 대지진 10주기를 맞아 희생된 가족을 추모하고 있는 일본 시민. 사진=로이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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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고인이 된 문예평론가 가토 노리히로는 일찍이 ‘혁신파’와 ‘보수파’로 나뉘어 하나의 인격이 되지 못한 전후 일본의 상황을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비유한 바 있다.
그가 ‘인격분열’을 거론한 이유는 어느 각료가 과거 전쟁에 대한 사죄 발언을 하면, 바로 같은 내각의 다른 각료가 앞선 사죄를 부인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인격분열’의 양상은 지난 20년 사이에 크게 달라졌다. 단적으로 망언하는 정치인의 수는 늘었지만, 사죄의 역사를 고수하려는 정치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또 과거에는 망언을 하면 바로 사임하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제는 이것도 지켜지지 않는다. 과연 일본은 여전히 가토가 말한 ‘인격분열’에 시달리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과거에 인격분열이 있었다면 오늘날 그것은 망언의 인격이 사죄하는 인격을 제압한 것처럼 보인다.
‘일본정치의 우경화’가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나카노 고이치는 『일본정치의 우경화』(제이앤씨, 2016)에서 ‘재군비’와 ‘역사 다시쓰기’에 대한 지향을 ‘우경화’의 판별기준으로 제시하며 대체로 2차 아베 내각이 들어선 2012년 말부터 정치인들 사이에 후자의 경향이 가속화되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시기 동안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제한했던 ‘안보법안’의 개정(2015)이 이루어졌고, 자민당의 새로운 헌법개정안(2018)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2019년 7월 한국 대법원이 전쟁 시기 징용공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을 인정한 판결에 대해 아베 정부가 취한 ‘수출제한’ 조치가 이런 정치의 우경화 흐름 속에서 나왔음은 두말한 나위도 없다.
일본인의 주관적 만족과 일본사회의 객관적 실패
그럼 사람들의 의식은 어떨까? ‘일본인’들도 우경화되었을까? NHK방송문화연구소가 1973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일본인의 의식’ 조사 중에는 ‘일본인의 자신감’을 묻는 항목이 있다. 이 항목은 ‘일본인의 소질’과 ‘일본인은 일류국인가’라는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림1]에서는 보는 것처럼 ‘일본인은 다른 국민에 비해 매우 훌륭한 소질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2010년 이후로 ‘그렇다’라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다. 특히 2013년에는 응답자의 68%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1983년의 역대 최고치에 근접한 결과이다. 또한 ‘일본은 일류국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도 2010년 이후로 긍정의 비중이 상승하고 있다.
이 흐름은 ‘생활만족도’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매년 일본의 내각부가 실시하는 사회의식조사 가운데 ‘사회전체의 만족도’에 관한 응답 결과를 보면 2012년을 경계로 ‘만족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44-45%에서 65%까지 상승하고 있다([그림2]). 2011~12년을 기점으로 현재에 대한 만족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의할 사항은 생활만족도가 높아지고 일본에 대한 자부심이 상승하던 시기에 일본사회의 ‘객관적’ 사정이 결코 좋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제면에서 ‘장기불황’이 지속되었고, ‘저출산∙고령화’(2010년부터 인구감소 시작), ‘지방소멸’, ‘격차확대’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무엇보다 2011년에 발생한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원전 폭발사고는 풍요와 안전으로 상징되던 ‘전후체제’의 종언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결과적으로 일본사회의 상황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었지만, 오히려 사람들의 생활만족도와 일본에 대한 자부심은 높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객관적 상황과 주관적 인식 간의 어긋남은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불안하고 체념해서 행복한 사람들
정치학자 야마구치 지로는 『민주주의는 끝나는가』(岩波書店, 2019)에서 이 현상을 “당분간 더 악화될 것만 같은 상황에 대해 불행한 미래를 조금이라도 유예시키고 싶은 기분의 표현”으로 해석한다. 지금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민음사, 2015)에서 “최근 일본인들의 높은 행복감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여전히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거꾸로 상당 부분 포기한 결과”로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의 ‘언어’는 ‘일본’의 자존심을 강조하며 주변국과의 긴장을 통해 지지를 결집하려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 안의 미래 ‘일본’은 짙은 안개 속이다. 이것은 ‘일본정치의 우경화’를 일본인들 사이에 잠재돼있는 소위 ‘군국주의’적 무의식의 발로 정도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소박한 ‘현상∙본질’의 관점에서 보면 전후 70년간 이어온 ‘호헌’ 상태는 본질을 감추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이처럼 변하지 않는 일본인의 ‘본질’을 상정하는 순간, 일본 이해는 객관적인 인식의 지평에서 멀어진다. 사회학자 요시미 슌야는 헤이세이라는 연호로 불렸던 지난 30년의 시간을 사회의 모든 방면에서 실패와 좌절이 계속된 ‘실패의 박물관’이라 불렀다(『헤이세이, 일본의 일어버린 30년』, AK, 2020). ‘정치의 우경화’ 또한 일본인들이 겪은 이런 장기간의 사회적 경험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의 우경화’는 일본에 대한 분석의 결론이 될 수 없다. 그것은 거꾸로 일본 이해를 위한 출발이자 ‘잃어버린 30년’의 경험이 낳은 증후로 읽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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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주
서울대 일본연구소 HK조교수
일본 쓰쿠바대에서 문학박사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일본 근현대문학이며, ‘냉전과 전후의 관계’에 관한 현대일본의 사상 및 문화 표상을 연구하고 있다. 『전후의 탈각과 민주주의의 탈주』(공저, 2020)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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