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4

일본 정치, '사회'에서 ‘개인’으로 미끄러지다 - 교수신문

일본 정치, '사회'에서 ‘개인’으로 미끄러지다 - 교수신문


일본 정치, '사회'에서 ‘개인’으로 미끄러지다

박강수
승인 2021.03.18 



깊이읽기_『일본의 내일』
나카지마 다케시 지음 | 박제이 옮김 | 생각의힘 | 252쪽




『일본의 내일』은 신인 드래프트를 앞둔 프로스포츠구단이 선수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하듯 일본 자민당 유력 정치인 9명의 이력, 이념, 행보, 언동을 정리한 프로파일이다. 재일 작가 박철현씨는 추천사에 “이 중에 차기, 차차기 총리대신이 반드시 나온다”고 썼다. 9명 가운데 스가 요시히데가 포함돼 있으니 실제로 나왔다. 아마 또 나올 것이다. 일본 시민들을 위한 정치인 도감인 만큼 관점도 입체적이고 정보 값도 풍부하다. 일본 정치인에 대해서라면 ‘극우냐 아니냐’ 정도의 기준을 가졌을 뿐인 한국인 입장에서도 흥미로운 내용이 많지만 일단 내용보다는 형식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편이 좋겠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사진=로이터/연합



아베, 스가… 그리고 다음은 누구?



저자인 나카지마 다케시 교수가 취한 프로파일링 방법론은 크게 둘이다. 첫 번째는 정치인들이 직접 쓴 책을 정독해 그들의 생각 지도를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왜 책인가. 나카지마 교수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치인의 정책과 비전을 다루는 언론 보도는 찾기 힘들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뉴스만 봐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언론은 언제나 정치인의 지향과 이념보다 구설수, 망언, 지지율에 관심이 많고, 헤드라인을 열심히 주워섬기는 독자일수록 정치적으로는 무지한 사람이 되기 쉽다. 이 만국 공통의 경향 앞에서 저자는 ‘미디어가 의무를 잊었으니 내가 한다’라고 결단한 듯 보인다.

당연히 기록을 많이 남긴 사람일수록 정치적 실마리도 풍부하다. 자민당의 고독한 오타쿠 이시바 시게루는 9권의 책을 쓰고 8권의 대담집을 냈다. 학자와 유권자 입장에서는 기특한 정치인이다. 그런 이시바와 함께 지난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섰던 기시다 후미오는 반면에 단 한 권의 책도 출간한 적이 없다. 저자는 “그때그때 권력자의 입맛에 맞춰 요령 있게 충돌을 피해온 생각을 표현하는 데 소극적인 정치인”이라고 그를 묘사하고 이어서 “(주관 없이) 아베에 전면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정권을 선양받으리라 기대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기시다는 실제 지난 총리 선출 과정에서 아베에 물을 먹었다.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사진=EPA/연합
기시다 후미오 전 자민당 정조회장. 사진=AP/연합



‘위기’와 ‘가치’의 매트릭스



두 번째는 나카지마 교수가 직접 고안한 정치인 분류법이다. 그는 기존의 보수∙진보 이분법이 아닌 두 개의 좌표축을 설정한다. 세로축은 위기에 대한 태도를 나타낸다. 위기를 사회화하는 성향일수록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중시하고 위기를 개인화하는 성향일수록 ‘작은 정부’를 강조한다. 가로축은 가치 지향을 나타낸다. 권위주의적일수록 오른쪽, 자유주의적일수록 왼쪽이다. 이렇게 완성된 사분면 위에서 아베 신조의 자리는 위기를 개인화하고자 하는 권위주의자다. ‘아베 내각의 시누이’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노다 세이코는 위기의 사회화를 추구하는 자유주의자다. 정치인 9명이 제 좌표를 갖는다.


자료=생각의힘 출판사



다시 이들의 좌표를 이으면 곧 자민당이 거쳐온 변화를 읽는 항적도가 된다. 나카지마 교수는 과거 자민당의 주류가 기본적으로 ‘중도 보수’를 지향하는 온건한 개혁주의자들이었다고 설명한다. 대표적으로 70년대 자민당의 실세 중 실세였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는 노인 의료비 무상화, 연금 인상 등을 추진하며 ‘위기의 사회화’를 추구한 정치인이었다. 그랬던 흐름이 80년대 ‘위기의 개인화’로 돌아섰고, 2000년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를 거치면서 자민당의 중심 세력도 ‘신자유주의자’, ‘신보수주의자’로 교체된다. 현재는 “‘아베 칠드런’이라 불리는 젊은 신보수주의 정치인이 자민당 중의원 중에서만 40%에 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왼쪽)노다 세이코 자민당 간사장 대행. 사진=EPA/연합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 사진=AP/연합



‘한국의 내일’은 좌표축 어디에



일본에서 이 책은 2019년 5월 31일에 나왔다. 이 날은 몇 년간 아베 내각을 만싱창이로 몰아 세웠던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 관련 피의자 전원에 대해 오사카지검 특수부가 불기소 처분을 내린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벚꽃을 보는 모임 비리 의혹’에 대한 문제 제기가 슬슬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햇수로 따지면 아베 2기 7년차다. 비위는 쏟아지지만 ‘아베일강’ 체제는 굳건했다. 불과 1년 3개월여 뒤에 그가 물러날 것이라 예측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사뭇 절망적일 법도 한데 나카지마 교수는 답답함을 침착하고 냉철한 질문으로 승화시켰다. ‘아베 이후에도 자민당 정권은 계속된다. 그 ‘이후’를 이어 받을 정치인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

정치인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들이는 품은 아깝지 않을 것이다. 나카지마 교수는 마지막에 “정치를 경시하거나 냉소하거나 얕잡아봐서는 안 된다.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인생관과 직결되는 것이 바로 정치”라고 썼다. 뻔한 교훈이지만 뉴스를 접할수록 정치혐오도 강해지는 오늘날 미디어 환경 속에서는 되새겨 볼만하다. 『일본의 내일』 속 문제의식을 시의에 맞게 한국식으로 번역하면 이런 물음이 될 것이다. 우리는 박영선과 오세훈, 안철수의 정책과 이념 차이를 설명할 수 있을까. 위기와 가치의 사분면에서 한국 정치인들의 자리는 어디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좌표는 어디일까.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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