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서경식 徐京植 | |
---|---|
작가 정보 | |
출생 | 1951년 ?월 ?일 일본 교토 부 교토 |
사망 | 2023년 12월 18일(72세)[1] |
언어 | 일본어, 한국어 |
직업 | 저술가 겸 대학 교수 |
학력 | 일본 와세다 대학교 불어불문학과 |
활동기간 | 1974년 ~ 2023년 |
장르 | 저술 |
친지 | 서승(형), 서준식(형) |
서경식(徐京植, 1951년 ~ 2023년 12월 18일)은 재일 조선인 저술가이자 작가이다. 도쿄 경제대학 현대법학부 교수였다. 리쓰메이칸 대학 교수인 서승과 인권운동가인 서준식의 동생이다.
생애[편집]
교토시에서 태어났다. 와세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71년, 대한민국에서 공부하던 두 형이 서울에서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다. 당시 서승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석사과정에, 서준식은 같은 학교 법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한차례 방북 사실 때문에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서승은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서준식은 7년형을 선고받았다.[2] 곧바로 체포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어머니와 그들을 돕는 사람들과 함께 구호 활동을 폈다. 1974년 와세다 대학 프랑스 문학과를 나왔지만 형들이 구속상태라 진학을 포기하고 형들의 석방과 한국 민주화 운동을 위한 활동을 계속한다. 그 사이 어머니는 1980년에 사망했다. 투옥 17년째인 1988년에 서준식이 석방되고 1990년에는 서승도 석방되었다. 장기적인 구호 활동의 경험은 이후의 사색과 문필 활동으로 연결되었다. 인권과 소수 민족을 주제로 한 강연 활동을 많이 펼쳐 왔다. 2000년에 동경경제대학 부교수가 되었다.
작가 활동은 다방면에 걸쳐 있으며 그 근원은 형 2명의 구출 활동 경험과 함께, 재일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부터 2년간 대한민국에 머물렀다.
저서[편집]
- 《나의 서양미술 순례》『私の西洋美術巡礼』(みすず書房、1991年)
- 《소년의 눈물》『子どもの涙 ある在日朝鮮人の読書遍歴』(柏書房、1995年;小学館文庫)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
-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プリーモ・レーヴィへの旅』(朝日新聞社、1999年)마르코폴로상
-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過ぎ去らない人々 難民の世紀の墓碑銘』(影書房、2001年)
- 《청춘의 사신》『青春の死神 記憶のなかの20世紀絵画』(毎日新聞社、2001年)
- 《난민과 국민 사이》『半難民の位置から 戦後責任論争と在日朝鮮人』(影書房、2002年)
- 《디아스포라 기행》『ディアスポラ紀行 追放された者のまなざし 』(岩波新書、2006年)
- 《시대를 건너는 법》『夜の時代に語るべきこと ソウル発「深夜通信」』(毎日新聞社、2007年)
- 《고뇌의 원근법》『汝の眼を信じよ!-統一ドイツ美術紀行』(みすず書房、2010)
-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在日朝鮮人ってどんな人?』(平凡社、2012年)
- 《언어의 감옥에서》『植民地主義の暴力 -- 「ことばの檻」から』(高文研、2013年)
-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 《디아스포라의 눈》
- 《나의 서양음악 순례》
- 《나의 조선미술 순례》
- 《시의 힘》詩の力 (徐京植評論集)
- 《내 서재 속 고전》
- 공저
- 《교양, 모든 것의 시작》『教養の再生のために 危機の時代の想像力 東京経済大学21世紀教養プログラム発足記念講演会』(加藤周一、ノーマ・フィールド共著、影書房、2005年)
- 《경계에서 춤추다》『ソウルーベルリン玉突き書簡 境界線上の対話』 多和田葉子 (岩波書店、2008年)
- 《책임에 대하여》責任について (徐 京植、 高橋哲哉)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 ↑ 김종목 (2023년 12월 19일). “서경식 교수 별세…전세계 ‘작은 사람들’ 편에 최후까지 서려 했던 디아스포라”. 경향신문. 2023년 12월 19일에 확인함.
- ↑ 박광희 기자 (2006년 5월 3일). “[한국인터뷰] 서경식 도쿄경제大 교수”. 한국일보. 2012년 7월 1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2월 9일에 확인함.
서경식
徐 京植 | |
---|---|
탄생 | 1951년 일본 교토 |
사망 | 2023년 12월 18일 (72세몰) 일본 나가노현 지노시 |
직업 | 소설가 |
국적 | 북한 |
최종 학력 |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 |
활동 기간 | 1988년 -2023 년 |
위키 포털 문학 |
徐 京植 | |
---|---|
각종 표기 | |
한글 : | 서경식 |
한자 : | 徐 京植 |
발음: |
|
영어 표기: | So Kyong-sik |
서경식 (서경식, 서경식, 1951년-2023년 12 월 18일 [1] )은 재일조선인 작가 , 문학자 [2] . 도쿄 경제대학 명예교수 [3] .
교토 시 출생 [2] . 와세다 대학 제일 문학부 졸업( 프랑스 문학 전공) [2] . 형에게 전립 명관 대학 특임 교수의 서승 , 인권 운동가의 서준식이 있다. 4인 형제의 막내.
내력 [ 편집 ]
재일조선인의 부모 아래 교토시 에서 태어난다. 와세다대학 재학 중인 1971년 두 형이 유학중인 서울에서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다( 학원 침투 스파이단 사건 ). 바로 체포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어머니와 지원자와 함께 구호 활동을 전개. 1974년 와세다대학 제1문학부 불문학과를 졸업하더라도 여전히 형제는 옥중에 있으며 스스로도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형의 해방과 한국민주화운동을 위해 활동을 계속 한다 . 이 활동 중에 어머니를 잃는다.
투옥으로부터 17년째인 1988년에 서준식이 석방되어, 1990년에는 서승도 석방. 장기에 걸친 구호활동의 경험은 그 후의 사색과 문필활동으로 이어진다. 요즘부터 도내 대학 등에서 '인권'과 '마이너리티'를 테마로 한 강의를 가지고 있다. 2000년 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 조교수로 취임. 2009년에 동 교수. 후에는 전학공통교육센터장, 도서관장 등도 맡아 2021년 정년퇴직하여 명예교수 [3] .
작가로서의 활동은 다방면에 걸쳐 있지만, 그 원점은 형 2명의 구출 활동의 경험과 함께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있다고 한다 . 자서전 '아이의 눈물 - 어느 재일조선인의 독서편력'(1995년)은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을 수상. 이후, 디아스포라 (이산자· 난민 )를 둘러싼 여러 문제에 다각적 고찰을 시도하는 저작 활동을 전개. 『프리모 레이비로 의 여행』(1999년)에서 마르코 폴로상을 수상. 이순애 는 “서경식의 사상에 결정적으로 누락된 것은 냉전붕괴 라는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에 대한 인식이다.”라며 서의 재일조선인론은 “60년대식의 운동론을 "형태대로 추적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4] .
2004년에는 타카하시 테츠야 등과 계간의 사상잡지 ' 전야 '를 간행해, 호소인, 편집 위원을 맡았다. 2006년부터 2년간 한국 유학을 하고 있다. 2011년부터 한국의 신문 한겨레 에 ‘몰락하는 일본의 모습을 보고 ’ 하는 연재 ‘일본통신’을 시작했다 .
한국에서도 저작 다수가 간행되고 있다. 한국· 전남대학이 수여하는 2012년도 제6회 ‘후광 김대중 학술상’을 수상했다 [6] .
2023년 12월 18일 , 나가노현 지노시 의 자택에서 사망 [1] [7] . 72세몰.
저서 [ 편집 ]
단저 [ 편집 ]
- “길고 끔찍한 길 서 형제·옥중의 삶”( 그림자 서방 , 1988년)
- 「황민화 정책으로부터 지문 압박까지 재일조선인의 「쇼와사」」( 이와나미 서점 , 1989년)
- 『내 서양 미술 순례』( 미스즈 서방 , 1991년)
- 「민족」을 읽는 20세기의 아폴리아( 일본 에디터 스쿨 출판부 , 1994년)
- 『아이의 눈물 어떤 재일조선인의 독서 편력』( 카시와 서방 , 1995년; 쇼가쿠칸 문고 )
- 「분단을 사는 「재일」을 넘어」(그림자 서방, 19997)
- 『새로운 보편성에 대화집』(그림자 서방, 1999년)
- 「프리모・레이비로 의 여행」( 아사히 신문사 , 1999년)
- 『지나가지 않는 사람들 난민의 세기의 묘비명』(그림자 서방, 2001년)
- 「청춘의 사신 기억 속의 20세기 회화」(매일 신문사, 2001년)
- 『반난민의 위치에서 전후책임논쟁과 재일조선인』(그림자서방, 2002년)
- 『저울에 걸쳐서는 안 된다
- 『디아스포라 기행 추방된 자의 눈빛』( 이와나미 신서 , 2006년)
- 「밤의 시대에 말해야 할 일 서울발 「심야 통신」」(매일 신문사, 2007년)
- 『여의 눈을 믿어! -통일독일미술기행'( 미스즈 서방 , 2010)
- 『재일조선인은 어떤 사람? 』( 평범사 , 2012년)
- '식민지주의 폭력 - '말씀의 새장''( 고문연 , 2013년)
- 『시의 힘』( 고문연 , 2014년)
- 『일본 리버럴파의 낙락』( 고문연 , 2017년)
공저 [ 편집 ]
- 『20세기를 살았던 조선인 ‘재일’에서 생각한다’( 림철 , 조경달 공 편저, 야마토 서방 , 1999년)
- 「단절의 세기·증언의 시대 전쟁의 기억을 둘러싼 대화」( 다카하시 테츠야 공저, 이와나미 서점, 2000년)
- “이시하라도 지사 “삼국인” 발언의 무엇이 문제인가”(내해 아이코 ·타카하시 테츠야 공편, 그림자 서방, 2000년)
- 『교양의 재생을 위해 위기의 시대의 상상력 도쿄경제대학 21세기 교양 프로그램 발족 기념 강연회』(카토 슈이치, 노마 필드 공저, 그림자 서방 , 2005 년 )
- 『서울-베를린 공 찌르기 서간 경계선상의 대화』다와다 하코 (이와나미 서점, 2008년)
- ''위안부' 문제의 현재-'박유하 현상'과 지식인' 마에다 에로 편
- 「알렉시에비치와의 대화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요구해」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 (이와나미 서점, 2021년)
번역 [ 편집 ]
- 서승·서준식 “서 형제 옥중으로부터의 편지 서승, 서순식의 10년”(이와나미 신서, 1981)
- 지혜의 시대를 위해 현대 한국에서 시라라쿠 하루 · 이순애 공역 ( 오리진 출판 센터 , 1991년)
- 다니엘 에르난데스=사라사르 “ 과테말라 있는 천사의 기억”(그림자 서방, 2004년)
각주 [ 편집 ]
- ↑ a b 재일조선인 작가 서경식씨가 사망
- ↑ a b c 「서경식씨가 사망 작가」 「일본 경제 신문」2023년 12월 20일. 2023년 12월 20일에 확인함.
- ↑ a b “ 명예 교수의 칭호 수여식, 2021년도 4명에게 명칭을 증정 ”. 도쿄경제대학. 2021년 12월 4일 열람.
- ^ “ [기고] 서경식씨와 와다 하루키씨의 문장을 읽고 ”. 한겨레 신문. 2016년 5월 13일 22:17 열람.
- ^ ““국민주의”에 갇히지 않고 일본을 바라본다” . 한겨레 . (2011년 9월 23일) 2015년 5월 7일 열람.
- ^ [1]
- ↑ “ 작가의 서경식씨 사망 재일조선인 2세 ”. 산스포 (2023년 12월 19일). 2023년 12월 19일 열람.
외부 링크 [ 편집 ]
徐京植
徐 京植 | |
---|---|
誕生 | 1951年 日本 京都市 |
死没 | 2023年12月18日(72歳没) 日本 長野県茅野市 |
職業 | 小説家 |
国籍 | 北朝鮮 |
最終学歴 | 早稲田大学第一文学部 |
活動期間 | 1988年 - 2023年 |
ウィキポータル 文学 |
徐 京植 | |
---|---|
各種表記 | |
ハングル: | 서경식 |
漢字: | 徐 京植 |
発音: |
|
英語表記: | So Kyong-sik |
徐 京植(ソ・キョンシク、서 경식、1951年 - 2023年12月18日[1])は、在日朝鮮人作家、文学者[2]。東京経済大学名誉教授[3]。
京都市生まれ[2]。早稲田大学第一文学部卒業(フランス文学専攻)[2]。兄に元立命館大学特任教授の徐勝、人権運動家の徐俊植がいる。4人兄弟の末っ子。
来歴[編集]
在日朝鮮人の父母のもと、京都市に生まれる。早稲田大学在学中の1971年、二人の兄が留学中のソウルで国家保安法違反容疑で逮捕される(学園浸透スパイ団事件)。すぐさま逮捕の不当性を訴えて母や支援者とともに救援活動を展開。1974年に早稲田大学第一文学部仏文学科を卒業するも、依然兄弟は獄中にあり、自らも大学院進学を諦めて兄の解放と韓国民主化運動のため活動を継続する。この活動中に母を亡くす。
投獄から17年目の1988年に徐俊植が釈放され、1990年には徐勝も釈放。長期にわたる救援活動の経験は、その後の思索と文筆活動へとつながっていく。この頃より都内の大学などで「人権」や「マイノリティ」をテーマとした講義を持っている。2000年、東京経済大学現代法学部助教授に就任。2009年に同教授。後には全学共通教育センター長、図書館長なども務め、2021年に定年退職して名誉教授[3]。
作家としての活動は多岐にわたるが、その原点は兄2人の救出活動の経験と共に、在日朝鮮人としての自身のアイデンティティにあるとされる。自叙伝『子どもの涙 - ある在日朝鮮人の読書遍歴』(1995年)は日本エッセイストクラブ賞を受賞。以後、ディアスポラ(離散者・難民)をめぐる諸問題に多角的考察を試みる著作活動を展開。『プリーモ・レーヴィへの旅』(1999年)にてマルコ・ポーロ賞を受賞。李順愛は「徐京植の思想に決定的に欠落しているのは、冷戦崩壊という不可逆的な転換点への認識である。」とし、徐の在日朝鮮人論は「60年代式の運動論を型どおりになぞっている」と評している[4]。
2004年には高橋哲哉らと季刊の思想雑誌『前夜』を刊行し、呼びかけ人、編集委員をつとめた。2006年より2年間、韓国留学を果たしている。2011年から、韓国の新聞ハンギョレに「没落する日本の様子を報告」する連載『日本通信』を開始した[5]。
韓国でも著作多数が刊行されている。韓国・全南大学が授与する2012年度第6回「後廣(フグァン)金大中学術賞」を受賞した[6]。
2023年12月18日、長野県茅野市の自宅で死去[1][7]。72歳没。
著書[編集]
単著[編集]
- 『長くきびしい道のり 徐兄弟・獄中の生』(影書房、1988年)
- 『皇民化政策から指紋押捺まで 在日朝鮮人の「昭和史」』(岩波書店、1989年)
- 『私の西洋美術巡礼』(みすず書房、1991年)
- 『「民族」を読む 20世紀のアポリア』(日本エディタースクール出版部、1994年)
- 『子どもの涙 ある在日朝鮮人の読書遍歴』(柏書房、1995年;小学館文庫)
- 『分断を生きる 「在日」を超えて』(影書房、19997)
- 『新しい普遍性へ 対話集』(影書房、1999年)
- 『プリーモ・レーヴィへの旅』(朝日新聞社、1999年)
- 『過ぎ去らない人々 難民の世紀の墓碑銘』(影書房、2001年)
- 『青春の死神 記憶のなかの20世紀絵画』(毎日新聞社、2001年)
- 『半難民の位置から 戦後責任論争と在日朝鮮人』(影書房、2002年)
- 『秤にかけてはならない 日朝問題を考える座標軸』(影書房 2003年)
- 『ディアスポラ紀行 追放された者のまなざし 』(岩波新書、2006年)
- 『夜の時代に語るべきこと ソウル発「深夜通信」』(毎日新聞社、2007年)
- 『汝の眼を信じよ!-統一ドイツ美術紀行』(みすず書房、2010)
- 『在日朝鮮人ってどんな人?』(平凡社、2012年)
- 『植民地主義の暴力 -- 「ことばの檻」から』(高文研、2013年)
- 『詩の力』(高文研、2014年)
- 『日本リベラル派の頽落』(高文研、2017年)
共著[編集]
- 『二〇世紀を生きた朝鮮人「在日」から考える』(林哲,趙景達共編著、大和書房、1999年)
- 『断絶の世紀・証言の時代 戦争の記憶をめぐる対話』(高橋哲哉共著、岩波書店、2000年)
- 『石原都知事「三国人」発言の何が問題なのか』(内海愛子・高橋哲哉共編、影書房、2000年)
- 『教養の再生のために 危機の時代の想像力 東京経済大学21世紀教養プログラム発足記念講演会』(加藤周一、ノーマ・フィールド共著、影書房、2005年)
- 『ソウル―ベルリン玉突き書簡 境界線上の対話』 多和田葉子 (岩波書店、2008年)
- 『「慰安婦」問題の現在―「朴裕河現象」と知識人』前田朗編(三一書房、2016年)
- 『アレクシエーヴィチとの対話 「小さき人々」の声を求めて』 スヴェトラーナ・アレクシエーヴィッチ (岩波書店、2021年)
訳書[編集]
- 徐勝・徐俊植『徐兄弟獄中からの手紙 徐勝,徐俊植の10年』(岩波新書、1981)
- 知恵の時代のために 現代韓国から 白楽晴・李順愛共訳 (オリジン出版センター、1991年)
- ダニエル・エルナンデス=サラサール『グアテマラ ある天使の記憶』(影書房、2004年)
脚注[編集]
- ^ a b 在日朝鮮人作家の徐京植氏が死去
- ^ a b c 「徐京植氏が死去 作家」『日本経済新聞』2023年12月20日。2023年12月20日閲覧。
- ^ a b “名誉教授の称号授与式、2021年度4名に名称を贈呈”. 東京経済大学. 2021年12月4日閲覧。
- ^ “[寄稿]徐京植氏と和田春樹氏の文章を読んで”. ハンギョレ新聞. 2016年5月13日22:17閲覧。
- ^ “「国民主義」に閉じ込められずに日本を眺める”. ハンギョレ. (2011年9月23日) 2015年5月7日閲覧。
- ^ [1]
- ^ “作家の徐京植さん死去 在日朝鮮人2世”. サンスポ (2023年12月19日). 2023年12月19日閲覧。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