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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힘
지은이서경식
옮긴이서은혜
발행일 2015년 07월 05일
ISBN 978-89-323-1743-4
판형/면수 138 x 210 / 296
가격 14,000 원
도서분류 문학이론
수상 · 선정 한국출판문화상 저술 교양 부문 최종 후보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도서 선정도서
KDC 810
2차 저작권 문의
책소개
대표적 재일조선인 문필가 서경식의 첫 문학 에세이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본 ‘시’와 ‘문학’의 초월성
일제 강점기 윤동주의 시, 중일전쟁 중 루쉰의 에세이,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문학까지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 문학의 보편적 울림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사상가’, ‘우리 시대 최고의 에세이스트’, ‘베스트셀러 『나의 서양미술 순례』 저자’. 서경식을 수식하는 문장들이다. 그는 꾸준히 글을 읽고 쓰는 ‘글쟁이’이지만 지금까지 그가 발표한 작품 중 순수하게 문학만을 다룬 것은 없었다.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룬 도서, 예술과 음악 등의 문화를 다룬 도서를 집필하다 보니 정작 문학과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것은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인이 되길 열망했으며, 청춘기에는 “어떻게든 문학과 관련된 분야에 끼어들어 살고 싶다고 생각”한 그이기에 이 책의 출간은 늦었지만 예정된 일이었다.
『시의 힘』은 그의 첫 문학 에세이이자, 시대의 격류와 그 흐름에 휘말린 개인사를 아우르는 ‘언어’에 관한 비평집이다. 제목은 ‘시의 힘’이지만 그의 사유는 ‘시’와 ‘문학’을 넘어서서 ‘언어’의 바다에 닿는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습득하기 시작하는 ‘말’과 학습을 통해 배우는 ‘글’이 어떻게 개인의 사상을 구축하는지, ‘모어’와 ‘모국어’의 틈새에 갇힌 디아스포라의 외로움은 이해받을 수 있는지, ‘시’와 ‘문학’이 주는 힘은 무엇이며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고립과 패배를 예감하면서도 우직하게 길을 만드는 시의 힘
패배의 역사에서 태어난 시와 문학이 지금 여기의 삶을 뒤흔들다
그는 자신의 ‘글쟁이’ 인생을 거꾸로 되짚으며 본인 글의 구조적 원형을 중학교 시절에서 찾아낸다. 재일조선인인 자신의 ‘타자성’을 깨닫고 자비를 털어 문고본을 냈던 사건이 그것이다. 그는 그때 이미 조선과 일본이라는 두 세계의 균열에 발 딛고 서서 양자 모두에게 ‘타자’ 인식을 촉구하려 했으며, 이 문제의식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조선과 일본, 재일조선인 피차별 세계와 중산층 주류의 세계, 그 사이에 선 그는 복수의 아이덴티티를 끌어안고 분열의 아픔을 감내한다. 그리고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언설을 빌려 “인간은 승리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가 이기고 있기에 정의에 관해 묻고, 허위로 뒤덮여 있기에 진실을 말하려고 싸운다”라고 말한다. 그의 ‘글쟁이’로서의 결심과 문제의식은 시에 관해 논하는 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문학은 태생적으로 시대적 상황과 호흡하며 쓰인다. 저자 서경식은 조선, 중국, 일본의 시와 문학에 관해 이야기하며 역동적인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통과한다. 당연히 일본의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되기는 하나, 여기에 주저앉아 잘잘못을 가리는 데 치중하지는 않는다. 그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 북돋고 연대하던 힘이 문학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더 큰 힘을 기울인다.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시에 흐르는 조선독립투사에 대한 안타까움, 침략국인 일본의 선구자를 애도하는 루쉰(魯迅)의 절절한 문장은 서로에게 칼을 겨누던 그 시대에 ‘있을 수 없었던’ 한 줄기 희망이다. 피로 물든 동아시아 역사는 일본의 잘못 떠넘기기식 역사관으로 아직도 말끔히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아직 이 관계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그 희망의 상당 부분은 ‘시’와 ‘문학’에 빚지고 있지 않을까.
그는 시의 힘을 이렇게 설명한다.
“생각하면 이것이 시의 힘이다. 말하자면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 승산 유무로 따지자면 소수자는 언제나 패한다. 효율성이니 유효성이라는 것으로는 자본에 진다. 기술이 없는 인간은 기술이 있는 인간에게 진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원리로서 인간은 이러해야 한다거나, 이럴 수가 있다거나, 이렇게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이 시의 작용이다.”
분단과 이산의 민족적 아픔을 타자와의 연대로 승화하는 법
국경과 민족마저 뛰어넘은 새로운 차원의 ‘우리’를 꿈꾸다
조선 근대사 속의 유명 시인인 한용운, 이상화, 윤동주는 모두 나라를 ‘빼앗긴’ 상황 속에서 그 절절한 고통을 시로 표현해 많은 이의 지지를 받았다. 국민 애송시로 평가받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서시」, 「별 헤는 밤」은 우리가 당시 시대적 상황에 심리적으로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 공감이 좁은 세계의 ‘우리들’이란 범위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외친다. ‘우리 국토’를 빼앗긴 ‘우리 민족’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빼앗겼다’는 고통의 핵을 인지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변화는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시각에서 벗어나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디아스포라와 연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준다. 예를 들어 일본의 내부 식민지로 평가받는 오키나와 주민,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후쿠시마 주민 또한 국가에 의해 살 곳과 주권을 ‘빼앗긴’ 자들이다. 그들과 연대하여 기본권을 ‘빼앗은’ 국가와 자본에 함께 맞서야 한다는 그의 과감한 주장은 낯설지만 그만큼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의 태도는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을 논할 때도 일관된다. 그는 우리에게 ‘한국문학’이 무엇인지 묻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한국어를 공유하는 소비자에 의해 구성되는 시장이라는 것이 답이라면, 한국문학은 민족 문학보다 더 좁은 개념이 된다. 다른 나라에서 다른 언어로 작품을 발표한 디아스포라 작가는 자연스레 배제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분단과 이산이라는 현실 속을 살고 있는 민족의 문학을 ‘한국문학’이라는 말로는 담아낼 수 없다고 단언한다. 또한 ‘한국문학’의 틀에서 벗어나 세계적 보편성을 가진 문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문학은 숙명적으로 언어의 장벽이라는 한계성을 지닌다. 그러나 어떤 언어로 쓰였든 국가를 빼앗긴 자들의 싸움, 거대 자본과 거대 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면, 그리하여 국가와 민족의 경계선을 뛰어넘은 새로운 ‘우리’를 형성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문학이 가진 보편성이자 힘이 아니겠는가.
모어와 모국어, 문맹자와 지식인… 다층적으로 존재하는 ‘언어의 감옥’
국민의 틀을 넘어선 언어교육이 필요한 이유
저자 서경식의 개인사, 즉 서승, 서준식 두 형이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으로 투옥된 이후의 지난한 과정에 대해서는 많이들 알고 있다. 그들의 어머니인 오기순 여사의 눈물겨운 노력 또한 잘 알려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재일조선인이자 문맹인 그녀가 처한 현실이 구체적으로 어땠는지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는 20세기의 증인 49인을 꼽은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격동의 20세기를 겪은 조선 민족의 상징으로 오기순 여사를 꼽으며 기린 적이 있다. 실제로 재일조선인 1세대인 그녀의 삶은 많은 부분에서 우리 민족의 아픔을 대변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교육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교육받을 기회가 없어 문맹으로 지내던 그녀는 자식의 옥바라지를 하며 조금씩 지식의 세계로 발돋움했으나 끝내 글로 자신의 참된 목소리를 전하지는 못했다.
저자는 교육받은 지식인으로서 어머니를 ‘해석’하는 특권을 행사하곤 했지만, 처지를 바꿔 보면 자신 또한 일본어의 메이저리티에게 해석의 특권을 행사당한다고 말한다. 일본어를 모어(母語)로 쓰고 있지만 조선인인 그는 ‘일본 보통 국민’의 틀 밖에 있다. 그로 인해 처한 부당한 처지를 설명할 만한 수단 또한 일본어밖에 없다. 일본어라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것이다.
재일조선인 1세대이자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어머니가 갇힌 언어의 감옥과 재일조선인 2세대 지식인인 저자가 갇힌 언어의 감옥은 각기 다른 형태의 감옥이다. 그는 이 차이점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맥상통하는 공통점을 예민한 감각으로 다룬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국민의 틀을 넘어선 언어교육을 주장한다. ‘국어’는 곧 ‘한국어’인가? 한국에 사는 다른 나라 사람, 다른 민족은 한국에 있다는 것만으로 자신들의 국어를 버리고 ‘한국어’로만 소통해야 하는가? 저자의 예리한 질문은 언어와 국민을 의심 없이 연결하는 습성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준다.
홀로코스트, 동일본 대지진, 원전 피해…
피해자와 비(非)피해자가 함께 재난을 건너는 힘, ‘직시하는 용기’와 ‘상상력’
2011년 3월, 비극적인 자연재해 동일본 대지진은 끔찍한 원전 사고로 발전했다. 후쿠시마 현은 방사능으로 인해 죽음의 땅이 되었고,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듯 떠나야 했다. 서경식은 후쿠시마 사태와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를 병치하여 희생자, 생존자, 증언자인 그들의 아픔에 관해 논한다.
일반적으로 제노사이드를 주제로 하는 증언 문학은 성립하기 어렵다. 경험자 대다수가 학살당해 부재하며, 생존자는 입을 닫고 기억을 억압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설사 증언이 이루어진다 해도 메시지가 왜곡되어 소비되거나, 진부화, 상품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증언 불가능’한 사건을 증언한 생존자 중 손꼽히는 인물이 바로 프리모 레비(Primo Levi)다. 그는 돌아보는 것 자체가 고통인 사건을 뼈아프게 직시하며 끊임없는 각성을 촉구했다. 사건을 깊이 성찰하는 곤란한 역할을 피해자인 그가 부당하게 맡은 것이다. “사건은 일어났고 따라서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핵심이다”라는 레비의 말은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났어’라고 쉽게 말하는 지금의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저자는 참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기울여야 할 노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피해의 진원지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일수록 피해의 진실에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하려 노력하고, 피해의 진원지에 가까운 이들일수록 용기를 내어 가혹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증언자(표현자)는 ‘표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증언(표상)에 도전해야만 하고, 독자는 스스로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발휘하려고 애써야만 한다.”
의문형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희망
‘생명’은 ‘픽션화’되지 않는다
『시의 힘』은 「의문형의 희망」이라는 장으로 시작한다.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를 다룬 일본 시인의 시집에 대한 감상문이다. 많은 이가 죽어간 바다,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이 표류하다 죽어간 바다. 고등학교 교사인 시인은 절망만이 존재하는 현장에서 고요하게 분노를 토로한다. “꾸며낸 혓바닥으로 / 상냥하게, 희망을 노래하지 마라”라며, 애도가 끝나지도 않은 자리의 섣부른 거짓 희망을 경계한다. 절망의 순간, 희망은 행복한 노래로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이 존재하는지 않는지도 알 수 없다. 지금은 의문을 함께하며 헤매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루쉰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생각해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에 없다. 걷는 이가 많아지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시의 힘』의 마지막 장 「픽션화된 생명」은, 첫 번째 장에 대한 저자 나름의 대답이라고도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픽션화’하며 거리를 두어 자신을 보호하는 요즘 학생이 시의 힘으로 처음 ‘생명’을 실감하는 순간을 다룬 이 짧은 글은, 묵직한 질문으로 점철된 이 책에 작고 연약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존재하는 희망의 날개를 달아준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거듭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꿈을 가져야 할 이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길, 심지어 패배할 것이 뻔한 길을 묵묵히 걷는 이유, 한 편의 시를 읽는 이유. 어쩌면 이 의지 자체가 희망은 아닐까.
■ 작품 해설
서경식에게 진정한 시란 패배할 것임을 예감하면서도 쓰지 않을 수 없는 어떤 운명적인 정서, 길이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길도 보이지 않지만 그대로 갈 수밖에 없는 태도와 함께하는 것이다. 이런 시의 성격이 어떤 생산적인 의미를 담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가 의미 없는 무용한 존재라고 할 수는 없다. 비록 지금 우리에게 한 편의 시가 지닌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시를 유희나 실험, 아름다움의 향연으로 보는 태도도 물론 필요하다. 또한 과거와는 달리 시와 문학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바뀌었다는 점도 일면 수긍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구 상의 어떤 사회보다도 극심한 경쟁 속에서 무수한 패배자를 양산하는 한국 사회, 소수자의 아픈 상처가 켜켜이 배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 ‘시’에 대한 서경식의 관점은 충분히 뜻깊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 권성우(문학평론가,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 책 속에서
“시에는 힘이 있을까? 문학에 힘이 있을까? 의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 ‘시의 힘’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우리를 끝없이 비인간화하는 이 시대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더 시와 문학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략) ‘저항’은 자주 패배로 끝난다. 하지만 패배로 끝난 저항이 시가 되었을 때, 그것은 또 다른 시대, 또 다른 장소의 ‘저항’을 격려한다. 시에는 힘이 있을까? 나의 대답은 이렇다. 이 질문은 시인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던져져 있다. 시에 힘을 부여할지 말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달린 것이다.”
- p.4~5
이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열세 살 무렵의 에피소드에 그 후 일생에 걸친 ‘나의 글’의 구조적 원형이 이미 드러나기 때문이다. 요컨대 나는 저소득층 피차별자의 세계로부터 중산층 주류들의 세계로 옮아갔고(비유하자면 식민지에서 종주국으로, 조선에서 일본으로 옮아갔고), 양자 사이의 경계에 서서 주위 사람들에게 ‘타자’ 인식을 촉구하려는 동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물론 동시에, 이 두 세계 사이에서 온몸이 찢기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행위를 통한 자기 인식의 시도이기도 했다.
- p.24~25
생각하면 이것이 시의 힘이다. 말하자면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 승산 유무로 따지자면 소수자는 언제나 패한다. 효율성이니 유효성이라는 것으로는 자본에 진다. 기술이 없는 인간은 기술이 있는 인간에게 진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원리로서 인간은 이러해야 한다거나, 이럴 수가 있다거나, 이렇게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이 시의 작용이다.
- p.110~111
그렇다면 시인이란 어떤 존재일까? 시인이란 어떤 경우에도 침묵해선 안 되는 사람을 가리킨다. 요컨대 이것은 승산이 있는지 없는지, 효율적인지 아닌지, 유효한지 어떤지 하는 이야기와는 다르다는 말이다.
- p.154
어떤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자들만이 그 나라의 국민이라고 승인된다. 해당 언어를 쓰지 못하는 자는 국민이 아니다.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자는 2등 국민이나 동정해야 할 소수자로서 열등한 지위에 놓인다. 이렇게 언어와 국민(nation)을 의심 없이 연결하고, 오히려 언어 내셔널리즘을 강화하는 듯한 분위기가 언어 교육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 (중략) 본래 언어 상호 간에는 우열 관계가 없다. 더불어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인간 상호 간의 우열 관계가 생겨서는 안 된다.
- p.202
전쟁, 대학살, 자연재해 등의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극한상황에 던져진 피해자는, 자신에게 닥친 고난이 ‘하늘’이나 ‘신’으로부터 내려온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 재앙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는’ 까닭에 이해를 넘어선 초월적 존재에 의지하여 납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고난이 다름 아닌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이상,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그 원인을 규명하여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p.224
위험한 지역에 그대로 머무르는 사람들은 스스로 위로받기 위해 ‘만들어진 위로의 진실’에 매달리려는 경향이 있다. 현장에서 거리가 떨어진 이들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고, 거리가 가까운 이들은 ‘고통스러운 진실’에서 눈을 돌린다. 나는 이런 현상을 ‘동심원의 패러독스’라고 부른 적이 있다. 이런 구조는 진상을 은폐하고 피해를 경시하게 만든다.
- p.230
‘문학’이 저항의 무기로서 유효한지 의심스럽다. 내가 쓰는 것을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더욱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내려는 이유는 본문에서 루쉰의 말을 빌렸듯, “걸어가면 길이 되기” 때문이다. 아직 걸을 수 있는 동안은 걷는 수밖에.
- p.277
목차
* 한국어판 서문
1장 의문형의 희망 - 사이토 미쓰구 시집 『너는, 티끌이니』에 부쳐
-너는, 티끌이니-사이토 미쓰구
2장 나는 왜 글쟁이가 되었는가
어린 시절-첫 단편소설
시집 『8월』-고등학교 1학년, 조국과의 첫 만남
대학 시절-현장도 없고, 독자도 없던
‘민족 문학’과의 만남
-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김수영
서양미술순례-미술과의 대화
그 후-일본을 ‘현장’삼아
* 시집 『8월』
3장 시의 힘
제1부 루쉰과 나카노 시게하루
동아시아-일본이 침략 전쟁 혹은 식민지 지배를 했던 지역
탈원전운동도 평화운동
엇갈린 만남
- 코코아 한 스푼-이시카와 다쿠보쿠
희망
어떤 측면-나카노 시게하루
망각을 위한 기념
서정시 형태의 정치적 태도 결정
제2부 조선의 시인들-‘동아시아’ 근대사 속에서
역사적 분기점
- 당신을 보았습니다–한용운
지금도 일본인에게 묻고 있는‘3·1독립선언’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조선・오키나와・후쿠시마
생략해서는 안 되는 것
- 별헤는 밤-윤동주
번역에서 보이는 식민지주의의 심성
- 서시-윤동주
안락사하는 일본 민주주의
한국민주화 투쟁・노동운동 속에서
- 겨울 공화국-양성우
- 노동의 새벽-박노해
- 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
- 돌-정희성
- 세상이 달라졌다-정희성
시인이란 침묵해선 안 되는 사람
4장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을 둘러싼 단상–‘새로운 보편성’을 찾아서
‘한국문학’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문학’이 지닌 한계성과 보편성
5장 경계를 넘은 자의 모어와 읽기 쓰기–어느 재일조선인 1세 여성의 경험에서
어머니가 남긴 노트
어머니 앞을 막아섰던 네 개의 벽
배움의 원동력
‘배우지 못한’ 것의 강함과 괴로움
풍성한 이야기를 떠받쳤던 민중적 네트워크
‘참된 목소리’를 어디까지 담아낼 수 있는가?
역경이 불러온 만남, 언어의 획득
모국어를 일본인의 틀 밖까지 펼쳐내다
국민(nation)의 틀을 넘어서는 언어교육을
6장 ‘증언불가능성’의 현재–아우슈비츠와 후쿠시마를 잇는 상상력
「지상의 유력자들이여, 새로운 독의 주인이여」
- 폼페이의 소녀-프리모 레비
제노사이드 문학의 ‘불가능성’
표상의 한계
『안네의 일기』의 교훈
프랑클과 레비
동심원의 패러독스
7장 패트리어티즘을 다시 생각한다–디아스포라의 시점에서
어느 택시 기사와의 대화
향수와 국가주의
가족애와 애국심
‘패트리어티즘’이라는 용어
8장_픽션화된 생명
- 산다는 것-이시가키 린
* ‘돌아선 인간’의 저항-후기에 갈음하여
* 작품 해설
* 역자 후기
저자 소개
지은이서경식
서경식(徐京植)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早稲田) 대학 제1문학부(프랑스문학 전공)를 졸업했다. 현재 도쿄게이자이(東京経済) 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성공회대학에서 2년간 연구교수로 지내기도 했다.
1971년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으로 한국 유학 중이던 두 형, 서승과 서준식이 구속·수감되자 형들의 석방과 한국 민주화를 위해 앞장서서 활동했다. 이후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라는 경계적 인간의 입장에서 재일조선인들의 역사와 현실, 일본의 우경화, 예술과 정치의 관계, 국민주의의 위험 등에 대해 열정적으로 기고하고 강연했다.
국내 출간된 책으로는 『나의 서양 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시대를 건너는 법』,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고뇌의 원근법』, 『언어의 감옥에서』,『나의 서양음악 순례』 , 『디아스포라의 눈』,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나의 조선미술 순례』 등이 있다.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2000년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문학원이 주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2012년 제6회 후광김대중학술상을 수상했다.
옮긴이서은혜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도리쓰(東京都立)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전주대학교 인문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3부작 『체인지링』, 『우울한 얼굴의 아이』, 『책이여, 안녕!』과 『개인적인 체험』,『회복하는 인간』 등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들과 『뱀을 밟다』,『세키가하라 전투』,『이상한 소리』,『경계에서 춤추다』,『게 가공선』,『성소녀』,『라쇼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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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세상 바꾸는 건 서정시적 상상력
by주혜진May 27. 2021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그린 식민지 현실과 일본 3.11 후 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비극이 맞닿을 수 있을까?
재일조선인 학자, 도쿄 경제대학교 교수 서경식은 첫 문학 산문집 <시의 힘>에서 이러한 가능성 을 그려본다.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사상의 가장 본질적인 무기인 ‘글’과 ‘문학’에 맞닿고 있어 경계인으로서 살아온 서경식이란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소소한 악행에 가담하고 불안해하던 소 학교 학생 서경식에서부터, 첫 시집을 낸 고등학생 서경식, 오늘날 일본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 서경식에 이르기까지 시, 문학과 함께한 그의 인생의 기록이다.
그의 운명은 한반도를 휩쓴 근현대사의 시간이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부모에게서 출생한 서경식에게는 식민지 역사가 태생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서울로 유학 가 시대와 불화하던 서승, 서중식 두 형의 석방과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던 그는, 석방 이후 디아스포라라는 경계인의 눈으로 정치, 사회, 문화, 예술에 관한 글을 써왔다. 문장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쉽사리 희망과 타협하지 않고, 절망적이었음에도 그 누구보다 끝까지 몸을 끌고 간 이의 것이기에 마음으로 읽는 글이었다.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저자 서경식을 만나 경계인으로서의 그의 인생, 동아시아의 역사, 상상력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글에서 받은 무겁고 진 지할 것이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그는 지적인 언변 사이사이에 자상한 비유와 코믹한 농담도 잊지 않았다.
Q <시의 힘> 초반부는 중학생 시절 단편소설 습작기부터, 첫 조국과의 만남, 대학 시절, 1980년대 한국 군사독재 종료 후 ‘일본’을 현장 삼아 활동한 기록들이 문학적 회고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박일호’라는 필명으로 낸 첫 시집 <8월>의 시들도 함께 수록되어 있고요. 유년시절 문학적인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살아오면서 다른 주제들에 관해 더 많이 쓰게 된 데에 이유가 있을까요?
어려서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시인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 했어요. 일본말로 시를 쓰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었죠. 저에게 일본말은 식민지로 강제당한 남의 말, 지배하는 다수자들의 말인데, 소수자로서의 심정을 이것으로 표현, 소통하는 데 한계를 느꼈죠. 우연히 여러 계기로 글 쓰는 사람이 된 후 한일 관계, 재일 조선인과 같은 민족적 사회적 시사적 문제에 대해 필요 에 따라 쓰고, 한편에는 서양미술이나 서양음악 같은 문화적인 것에 대해 써왔지만, 시는 이후로도 쓰지 않았습니다. 마흔 살 가까이 되었을 때 형 둘이 출옥한 후 한국에 오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 이 정도나마 한국어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시를 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에요.
Q 식민지배 국가에 체류하며 그곳의 말을 써야만 했던 소수자로서 시를 쓸 수 없는 심정이란 어떤 것이었습니까?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말로 생활하고 문학도 일본어로 배웠기 때문에 일본어는 저의 모어입니다만 모국어는 아니에요.
가야트리 스피박은
“인도인에게 영어는 강간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다. 영국 제국주의가 자신들을 강간했기 때문에 우리가 영어 를 쓰게 됐다.”라고 말한 바 있죠.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쉽게
“인도인들은 영어를 잘해서 좋겠다”라든가,
“영어를 쓰니 글로벌 IT 기업에서 일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말하죠. 그런데 사 실 그 배경에는 식민지의 역사가 숨어 있는 거예요. 재일 조선인에게 일본어의 존재도 이것과 마찬가지예요. 표현에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재일조선 인에겐 일본말도 강간의 산물’이라 말할 수 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일본어를 ‘좋아해서 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을 가져왔어요. 그래도 모어니까 버리거나 벗어날 수는 없어요. 주변에 모어를 바꾸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사람도 있고, 또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자신이 사는 장소나 생활환경을 전부 바꾸지 않는 한 그건 어려워요. 이 나이까지 일본에서 살아왔으니까 ‘기꺼이’는 아니지만 ‘승인’하고, 지금 말한 것과 같은 이 미묘한 착잡함을 표현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Q 너무 당연하게 모어와 모국어, 민족과 국가를 등가물로 여기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민족이란 개념은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일 텐데요. 선 생님께서 생각하는 민족이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민족은 하나의 본질이 아닌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인이라는 본질이 있어서 그 본질을 지닌 사람만 민족이고 아닌 사람은 민족이 아닌 건 아니라 생각해서, 소위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반대해요.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는 말도 서툴고. 일본에 사는 나 같은 사람을 보고
“너는 더 이상 우리 겨레가 아니다”라고 얘기해요. 실제로 정치인
김종필이 한일 협정 때 일본을 방문해 잡지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재일조선인은 한국말을 상실하고, 일본인들처럼 살고 있으면서 왜 자신을 조선 사람이라 주장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김종필이 사고하는 식의 민족주의에는 난 반대해요. 식민지 지배의 결과로 재일조선인이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고 그게 아니었으면 코리언 디아스포라로 해외 표류할 근거도 없죠. 이런 맥락을 읽어야 해요. 이 맥락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런 맥락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같은 민족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거죠.
Q 역사적 맥락을 두지 않고 단순히 ‘한국인’, ‘일본인’으로 표현하는 게 폭력적 방식일 수 있겠네요.
지난 3월 런던에서 BBC 방송과 인터뷰를 했어요. 현재 한일관계나 동아시아 국가 간 정세에 대해서 였는데, 기자가
“한국도 일 본과 마찬가지로 내셔널리즘에 빠지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했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국가는 어느 국가든 내셔널리스트예요. 하지만 나는
“양쪽 내셔널리즘을 비교해서 ‘나는 이쪽 편’이란 얘길 하고 싶진 않다”고 대답했어요. 덧붙여서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진 모르겠지만,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독일-프랑스, 영국-프랑스와는 다르다. 오히려 독일-폴란드 영국 -아일랜드의 관계로 상상하라.”고
했어요. 폴란드인들이 “우리는 폴란드인이다”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독일 등 주변 국가로부터 침략받아왔기 때문이고, 아일랜드인들이 “우리는 아일리시”라고 할 때는 영국
크롬웰한테 너무 무참히 탄압받았 기 때문이니까요. 그럴 때 영국이나 독일 사람이 역사를 무시하면서 폴란드나 아일랜드인에게 너도 내셔널리스트 아니냐고 하는 것은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레 토릭이 될 수가 있죠.
생각해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걷는 이가 많아지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루쉰의 <고향> 중)
[...] 읽는 이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희망은 없지만 걷는 수밖에 없다, 걸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희망’이라는 이야기이다. 이처 럼 루쉰은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이야기한다. 암흑을 이야기한다. (<시의 힘> 중에서)
Q 이번 책을 포함한 여러 기회를 통해 루쉰에게 많은 공감과 동질성을 표해 오셨습니다. 선 생님께 루쉰은 어떤 존재인가요? 고바야시 다키지가 1933년 2월 고문사 했을 때, 루쉰이 보낸 편지에 대해 쓴 나카노 시게하루의 글을 루쉰에 관한 문장 가운데 제일 좋은 것으로 꼽으셨는데요.
루쉰 선생님께 직접 지도받은 적은 없지만 제게 은사 같은 존재지요. 동아시아에 루쉰이란 존재가 있기에 우리도 제대로 생각하고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고바야시 다키지는 일본의 대표적인 프롤레타리아 작가예요. 고바야시 다키지는 <게공선>이란 작품을 쓴 후 치안유지법 때문에 구속당하고 고문당해 죽고 말았어요. 당시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무렵임에도 루쉰 선생님이 거기(편지)서는 ‘동지’라는 말을 쓰면서 진심으로 조의를 표했어 요. 국가와 국가가 대립관계에 있을 때 우리 인민들은 어떻게 연대할지에 대한 모범적인 사례예요. 유화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과거는 과거로 해서 더 이상 묻 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는 이야기와는 전혀 달라요. 정 반대예요. 국가는 그런 얘기를 하죠. 일본도 마찬가지고요.
Q 책에서 루쉰의 태도와 비교해 일본을 ‘정작 일본인은 자국이 저지른 침략을, 마치 천재지변이나 남의 일처럼 이야기해도 되는 것일까?(p.103)’라고 강력히 비판하셨습니다.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에 대해 역사적 책임을 지지 않을 뿐 아니라, 자국민 중 천황제 희생자에 대해서도 책임을 안 지는 나라예요. 지금껏 그런 체제가 지속하 여 왔고. 악화하고 있어요. 그 원인은 근대 국가 자체가 그 틀을 이용해 이익을 얻은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도구였기 때문이지요. 국가 지배층이 시대별로 지주, 기업주로 바뀌면서 이들은 국민 대다수에 대해선 소수인데. 소수가 대다수를 지배하려면 폭력적이게 돼요. 폭력적으로 지배한 사례가 아까 말씀드린 치안유지 법이기도 하고, 이 나라에서의 유신체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국가 이데올로기 아래서는 지배받은 다수자 쪽에서 자신들이 폭력적으로 지배받으면서도 그걸 자각하지 못하게 돼요. 한쪽은 지배자이고 다른 쪽은 피지배자인데도 ’둘은 같은 국민’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젖어 있기 때문이죠. 일본이라 는 국가가 농민이나 노동자 같은 가난 사람들을 탄압하면서도 ‘침략전쟁에 이겨서 이 나라가 이렇게 발전되었다’, ‘우리도 일등국민이 되 었다’고 해서 국가와 무의식적인 공범 관계를 만들고, 그렇게 국가가 유지되는 거예요.
Q <시의 힘>에서 루쉰과 고바야시 다키지와 같은 관계가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단 얘길 하셨는데요.
고바야시 다키지는 결국 학살당했고, 루쉰 선생은 억울하게 죽고 말았어요. 루쉰 선생이 ‘피의 예감’이라는 말로 유서를 쓰고 세상을 떠난 1년 후에 중일 전쟁이 터졌어요. 60년대 일본 민주주의나 평화주의에 가담한 선생님들은 “조금만 참아라. 천황이 늙어서 죽을 것이 다. 이놈만 죽으면 일본 사회가 더 좋아질 거야.”라고 얘길 했어요. 그런데 그건 거짓말이었어요. 더 나빠졌어요. 그래서 이렇게 단기적으로 보 면 과거도 지금도 비관적이죠. 그런데 낙관이라 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루쉰이라는 존재가 있었고, 고바야시 다키지가 있었다. 지금도 많진 않지만 잘 안 보이 지만 그런 존재가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이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희망이라면 희망일 겁니다.
Q 루쉰의 말처럼 결국 희망은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것, 걸으니까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겠네요.
루쉰 선생님이 살아 계시던 게 20세기 초니까 이제 100년이 되었죠. 100년을 싸워왔는데 아직 이길 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게 의미 없는 헛된 싸움이었는가 하 면 그게 아니죠. 왜냐하면, 나 같은 힘이 약하지만 뭔가를 해야겠다는 영감을 주지요. 그것이 희망이라 한다면 전부예요.
Q “길이 그곳으로 뻗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걷는 것이 아니라 아무 데로도 통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걷는다는 것. […] 그것은 시인의 언어이며 그것이 서정시다.”라고 하셨는데요. 이와 같은 서정시의 본질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신다면요?
우리 논리가 지배하는 로고스적인 세계에서는 이 행동을 하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입증해야 해요. 요즘 통계 수치를 내밀면서 ‘너 희가 아무리 그걸 하더라도 소용없다’라고 하잖아요. 인간에게는 그게 아닌 세계가 있단 말이에요. 논리적으로 증명하기 어렵더라도 “그래도 이 건 싫다”, “도저히 못 하겠다”, “이 방향으로 가고 싶다”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권력자나 지배자나 아버지나 교수 같은 사 람들은 비논리적인 방식이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요. 그럴 때 “그래도 난 이 길로 가겠다”는 태도는 입증 불가능해도 인간 삶에서 필수적인 서정시의 세계예요. 시라는 게 엉뚱하면 엉뚱할수록 잘 되면 재미가 있지요? 예를 들어 “이 사람은 나”라 했을 때 듣는 사람이 “’ 이 사람은 나’라는 게 무슨 얘기지?”라고 의문을 가져 상상력을 개방하고 “왜 이 사람이 이런 얘길 하고 있지? 어떻게 비유가 되지?”라고 생각을 하지요? 이 사람이 실제 나라면 비유로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싸워선 이길 수 있다고 입증 못 해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것이 시적인 상상력의 세계예요. 그것이 서정시의 형태로의 저항이라 말할 수 있어요.
Q 서정시적인 상상력이 어떤 모습으로 현실에 등장할 수 있을까요?
일본 전후 대표적 지식인인 카토 슈이치 선생이 쓴 <양의 노래>라는 책을 보면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 비아 대학에서 가르치던 시절에 학생들 사이에서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이 일어난 이야기가 있어요. 학생들의 움직임에 교수들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때 가장 먼저 일어서는 사람들은 문학 전공이고, 제일 마지막은 정치학자들이었대요. 이 사람들은 국가가 하는 전쟁 행위에 우리가 이 힘으로 저항 해도 도움이 될지를 입증하려고 하니까 안 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시인이나 문학 하는 사람들은 “전쟁 공범자로 죽고 싶 지 않다”는, 말하자면 비합리적일 수 있는 동기로 일어서는 것이죠. 그것이 서정시적인 상상력이잖아요.
Q 시라고 무조건 다 좋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텐데요.
일본에서는 요즘 ‘세계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같은 시가 쓰여요. 자기중심적이고 사적인 좁은 세계지요. 그것으로 자기 위로만 하고 있어요 . 이런 시가 상상력을 개방한다고 할 수는 없어요. 가령 이 사람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어떻게 하면 독창적이고 나만 할 수 있는 표현으로 할 수 있을지를 고 민해야 시가 되죠. 디에고 리베라가 프리다 칼로와 사랑에 빠졌을 때 러브레터를 어떻게 썼는 지 알고 계세요? 프리다 칼로가 원주민 혈통이어서 눈썹이 일자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런데 디에고 리베라가 ‘새까만 새가 날개를 연 것처럼 보이는 그 눈썹’이라는 비유를 적어 편지를 보냈어요. 이런 게 바로 시죠. 물론 상대방도 그걸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있어야 하겠죠. 디에고 리베라가 그런 러브레 터를 보냈을 때 프리다 칼로가 “새까만 새?”하고 이해 못 하는 반응이었다면 곤란하겠죠.(웃음)
Q 한 강연에서 “우경화와 반제국주의에 맞서는 방법으로 정치투쟁에 앞서 교양 교육이 시급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노동투쟁이나 정치투쟁을 부정하는 건 아니며 그것도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젊은 세대에게 직설적으로 투쟁하라고 얘기하기 전에 바탕이 되는 교양, 기초 자체를 알아야 소통할 수 있어요. 교양이 없으면 이것이 옳다고 직선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게 되거든요. 예를 들어 <시의 힘>에서 후쿠시마 원 전 사고를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비유로 들어 얘기했죠. 일본밖에 모르던 사람에게도 그런 비유를 든다면 일본의 과거 식민지 지배가 조선 민족에게 가져온 슬픔에 대해서 상상하게 될 거예요. 그것이 비유예요. 비유하는 능력은 현시대를 살피는 수평적 관점도 필요하고. 과 거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시야도 필요하지요. 그런데 좀 경직된 사람들은 학문적으로 엄밀치 않다던가 하는 식으로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건 시적인 상상력이 부족한 경우라고 저는 생각하고, 이때 필요한 게 교양이에요.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고 싶습니다.
9월 5일과 6일 인천에서 ‘다큐 영화제’가 열려요. 그때 내가 출연한 NHK 제작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데, 디아스포라에 대해 강연도 하고, 다큐 멘터리 제작한 감독과 대화 시간도 가질 거예요. 9월 하순에는 한남대에서 특강이 있고요. 대학에서 저는 예술학과 인권론을 동시에 강의하는 이상한 교수예요. 제겐 인권과 예술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에요. 위안부 문제를 다룰 때도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미술 작가 잉카 쇼니바레 얘기를 통해 접근할 수 있듯 말이죠. 예술적 관심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학생에게 상상력을 개방시키는 수업을 계속할 거예요.
사진 : 기준서(스튜디오춘)
- 북DB 2015.7.29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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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서경식 작가를 추억하며 [읽기의 일기]
읽기의 일기
by피터 화엉Dec 20. 2023
글을 읽고 쓰는 것 관련하여 나에게 전범이 되어주셨던 서경식 작가가 며칠 전 세상을 떠나셨다. 서경식 작가는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평생 디아스포라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글을 쓰고 입장을 발표하고 강연을 했다. 7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예전에 회사에서 독서 동아리에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춘천에 있는 김유정 문학관에 탐방을 간적이 있다. 함께 춘천을 찾았던 동아리 회원 중에 어떤 팀장님이 <나의 서양미술 순례> 책을 소개하신 적이 있는데 그게 내가 서경식 작가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첫 걸음이었다. 2012년 상반기는 서경식 작가의 모든 책을 읽으며 보냈는데, 이 사람처럼 글을 잘 쓰고 싶다라거나 이 사람처럼 예술과 사회와 인간 스스로에 깊은 고민을 기울여야겠다 라는 생각을 감히 하진 않았다. 다만, 자신의 생을 투과해서 서사를 기록하고 증언하는 것이 글을 쓴다는 것의 방향이 되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다. 그게 2012년, 내가 스물 아홉 살 무렵이었다.
서경식 작가와 관련해서 나름대로의 많은 생각을 남겼지만 그 중 두 가지를 아래에 옮겨 둔다. 둘 다 누나와 함께 했던 <나와 누나의 서재>에서 나눈 생각인데, 하나는 2021년 2월에 정리한 것, 또 하나는 2017년 7월에 정리한 생각이다. 다시 읽어보아도 서경식 작가를 존경으로 대하는 나의 태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서경식 작가님의 명복을 빈다.
[나누서2021] 2월 '읽고 쓰기' - '나..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https://brunch.co.kr/@aboutexpression/16
누나에게,
2011년 3월 어느 날 저는 늦은 밤까지 조선일보사 뒤에 위치한 모 카페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창 서울 시내의 공공미술 작품을 탐방하고 글을 쓰던 무렵이었는데 무엇에 홀렸는지 글을 모아 책을 내겠다고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하던 무렵이었어요. 50개 정도 크고 작은 출판사에 투고를 했던가 …… 작은 규모의 어느 신생 출판사와 연락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다소 긍정적인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그 날이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두 번째 미팅이었죠. 사실 세 번째 미팅은 없었답니다. 그 미팅이란, 출판사 내부 논의 결과 책을 내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저에게 통보하려 만난 것이었죠. 이대로 작가가 되는 것인가? 들떴던 마음이 갑자기 차갑게 식었고, 내게 이별 통보(?)를 전했던 출판사 직원이 먼저 자리를 떠난 뒤에도 카페에 앉아 멍하니 있었던 3월 어느 날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읽고 쓰는 것의 의미랄까 혹은 목표가 다분히 책을 출판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던 무렵입니다. 사실 책을 출판하고 난 뒤에는 무엇이 될 것인가? 그것을 깊게 생각해 본 편은 아니에요. 전업 작가로 변신하겠다는 마음보다는, 이대로 평범한 직장인으로만 머무르지 않겠다, 뭐라도 하겠다는 생각이 모아진 결과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그런 시도가 조금 빛을 보는 것 같다가 무산되고 나니 …… 어차피 책을 낼 것도 아니라면 읽고 쓰는 것을 왜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펜을 들어 뭔가를 쓴다는 것도, 책을 집어 읽는다는 것을 잠시 멈추고 하릴없이 일상을 보내던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읽고 쓰는 삶의 거대한 공백기라고 할까요.
그런 공백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것이 서경식 작가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 입니다. 이 책은 여러 의미로 내게 많은 충격과 울림을 주었고, 이 책을 계기로 서경식 작가의 열렬한 팬이 되었지만 (지금도 단연 제게는 최고의 작가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왜 읽고 써야 하는지? 저만의 답을 찾아 나설 수 있게 한, 일종의 시발점이 된 책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해보면, 읽고 쓰는 것은 꼭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 전업 작가만의 전유물은 아닌 듯 해요. 누구에게나 열려 있되, 꼭 그 목적이 작가가 되기 위함은 아닐 겁니다. 읽고 쓰는 것, 크게 봤을 때 뭔가를 보고 접하고 그 흡수한 것을 나만의 언어로 다시 표현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수단이자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제목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 순례라 …… 경건한 마음이 우선 들 법하죠. 작가의 문체가 경건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분이 미술에 조예가 무척 깊다거나 학자로서 전공했다거나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 책을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같은 부류의 책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서경식 작가는 195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로 와세다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친 이력 때문인지 예술가보다는 사상가 내지 교양인에 가까운 인상입니다. 그의 두 형은 - 리쓰메이칸 대학 교수인 서승과 인권운동가인 서준식 – 재일교포 간첩으로 간주되어 근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찍 돌아 가셨고 …… 이런 상황에서 누이와 함께 ‘도망치듯’ 유럽으로 떠난 것이 그의 서양미술 순례의 출발입니다. 이른 1980년대, 그의 나이 30대 초반의 일입니다.
작가는 프랑스, 벨기에,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오랜 기간 체류하며 여러 작품에 대한 감상을 글로 남겼는데, 그 중 열 한 편의 글을 골라 묶어 펴낸 것이 이 <나의 서양미술 순례> 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이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말하는 미술관이나 미술 작품에 대해 궁금해지는 것도 분명 있겠지만, 그 보다는 작가에 대해 겉잡을 수 없는 관심과 호기심이 생기게 된다는 점입니다. 10년 전 이 책을 처음 읽고 나서 저는 “미술에 대해 말하는 것 같지만 결국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고 메모를 남기기도 했는데, 여전히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답니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심리를 순례하는 책입니다.
작가는 미술 작품을 보며 끊임없이 그것을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연관지어 시선을 안으로 거두고 맙니다. 모딜리아니의 <쑤띤 초상>을 보고 누이와 어머니를 떠올리고, 미켈란젤로의 <반항하는 노예>를 보며 영어(囹圄)의 몸이 된 두 형을 생각하고, 삐까소의 <게르니까>를 보고 1980년대 후반 한국의 치안정국을, 그 속에서 51일간에 걸쳐 단식투쟁을 한 형을 생각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작가가 작품에 대해 더 정밀하게 묘사하지 않아도, 작품의 미술사적 의미를 더 풍부하게 소개해주지 않아도 저는 괜찮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미술에 대해 더 알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니라는 결론마저 내렸습니다. 그건 묘한 뫼비우스의 띠였습니다. 작가가 미술 작품을 보며 더 많은 자신의 생각을 들려줄수록, 독자인 저는 작가에 대해 더 궁금해졌고 이윽고 그런 작가가 소개하는 작품을 직접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이 2012년 …… 그 뒤로 10년 동안 저는 끊임없이 많은 텍스트를 읽고 또 많은 글을 썼습니다. 그것이 누군가에 더 많이 읽히고, 또 어딘가에 팔리길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저는 끊임없이 읽고 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읽고 쓰는 것을 일종의 직업으로 살아가는 누나와 달리 나에게는 그것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아무래도 없습니다. 그 답을 조심스럽게 말씀 드리면, “읽고 쓰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한 걸음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 이라는 생각입니다.
타인이 남긴 글을 읽으면 분명히 지평이 넓어지고 넓어진 지평 어딘가에는 제가 감응하는 지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것을 지향할 때 조금의 보람과 행복을 더 느끼는 유형의 사람인지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읽으며 느낀 것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다 보면 미처 정리되지 못한 채 헝클어진 것이 바로 잡히며 보다 명확하게 나 자신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읽고 쓰는 것은 서로 결합된 행위 같아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독립적으로 해 나갈 수 있지만 그것을 함께 할 때 비로소 완전하게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에 한 5년 전이던가요, 또 무슨 바람이 들었던지 독립잡지를 만들겠다고 해서 월간 <그런 사람>을 1년 정도 만들고 시중 서점에서 판매했던 적이 있죠. 제작 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했기 때문에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1년만에 접었던 비운의 잡지입니다. 돌이켜보면 독립 잡지를 만들어 보겠다고 한 것도 서경식 작가의 끊임없는 영향 아니었나 싶어요. ‘아, 나는 읽고 쓰는 사람이다.’ 비록 읽고 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누구인지 계속 알아가기 위해 평생을 읽고 쓰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은 이 책에서부터 지금까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자의식을 느끼고 키워가는 수단이 직장일 수도 있고, 열렬한 운동일 수도 있고, 또 다양한 사람과의 교류일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텍스트와 결부된 유형이라는 사람임을 …… 인정해버린 듯 합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처음 읽은 것이 2012년 2월입니다. 지금은 2021년 2월, 10년의 시간이 흘렀네요. 2021년 서른 일곱 살의 나는 2012년 스물 여덟 살의 나보다 얼마나 더 나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요? 고백하자면 사실 저는 조금 자신이 없습니다. 나를 알아갈 수록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만 알게 됩니다.
나와 누나의 서재 - 06. 주홍색 (나의 서..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누나_ 동생은 주홍색과 어떤 추억이 있나요.
나_ 우리가 어떤 색을 접할 때 자연에서 그 색을 추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홍색은 자연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색은 아닌 듯 합니다. 인공적인 색에 가깝기도 하고 저 역시 주홍색이 친숙하진 않습니다. 저희 남매가 아주 어렸을 때는 경기도 수원 아파트에 살았죠. 구조를 한 번 떠올려보면 가운데에 거실과 부엌이 연결되어 있었고 안방이 있었고 현관에 작은 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누나_ 그 작은 방이 우리 자는 방이었어요.
나_ 그게 우리 방이었나요. 그 작은 방 말고 방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부엌 쪽에 더 작은 방이 하나 또 있었는데 그 방에 들어가서 왼쪽을 바라보면 커다란 책장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책장 가장 하단에는 하늘색인지 회색인지 두꺼운 백과사전 전집이 있었죠. 10권 가량의 백과사전이었는데 아이들용이라 그런지 글씨도 크고 사진이 많았죠. 백과사전인지 과학책 시리즈였는지 가물가물 합니다. 누나와 제가 열심히 꺼내 읽었는데 읽고 다시 책장에 꽂아두지는 않고 옆에 쌓아두었다가 어머니께 종종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릴 적에 또 다른 전집이 있었습니다. 책 한 권에 이야기가 세 개씩 실려 있던 문학전집인데 혹시 기억나는지요.
누나_ 네 기억나요. 금색으로 된 문학전집이었죠.
나_ 표지가 반짝대던 문학전집이었죠. 국내작품은 아니고 주로 세계문학작품이 실려 있었는데 아동용 세계문학전집이어서 그런지 쉬운 문학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쉽다는 건 작품의 깊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동용으로 내용을 각색하고 축약했다는 의미입니다. 원본의 내용이 100이라면 20의 내용만 소개하거나 항상 권선징악으로 결론이 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세계문학전집에 어떤 작품들이 있었는가 하면 소공자, 소공녀, 걸리버 여행기, 정글북, 해저2만리 ...... 이런 작품들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컴퓨터가 발달하면서부터 조금씩 그런 전집 문화가 사라진 것 아닌가 싶어요.
누나_ 그런 건 아닌 듯 해요. 예전에는 책이 귀하던 시절이었는데,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어서 전집을 꼭 들이곤 했던 거죠. 지금도 저는 단행본으로 책을 많이 사지만 사실 아이들에게 단행본을 사주는 비율이 많지 않아요. 여전히 아이들 교육을 위해 대형출판사의 전집이 널리 쓰이고 있죠.
나_ 아 그렇군요. 제가 자라면서 전집 문화권에서 잠시 벗어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렇게 바뀌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전집 이야기를 계속 해보죠. 지금도 본가에 가면 아직도 갖고 있는 전집이 있는데 어느 출판사 것인지 역시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얀색 두꺼운 표지로 구성된 양장본 세트인데 아마 고등학생 논술 대비로 널리 팔렸던 전집으로 기억합니다. 마치 자녀를 서울대에 보내고 싶으면 이문열 삼국지를 읽으라고 해서 그 삼국지 10권 세트가 정말 인기가 높았던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겁니다. 이 전집을 누나가 고등학생일 때 샀으니 제가 중학생 때입니다. 그 전집은 앞서 이야기했던 아동용 세계문학전집과는 차원이 다르게 정말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원본이 100이라면 아동용 전집은 20의 내용을 담았다면 이 하얀색 양장본 전집은 한 80-90의 내용이 담겼죠. 수록된 작품들도 하나같이 어려웠습니다. 스탕달의 <적과 흑>, 펄벅의 <대지> ...... 제목만 봐도 <해저2만리>와는 상당히 다르죠. 그 전집에 수록된 작품이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다시 찾아보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어떤 출판사에서 발간했는지 결국은 못 찾겠더라고요.
누나_ 표지나 전집 제목을 바꿔서 다시 발간했을 수도 있어요.
나_ 그렇군요. 그런데 그 전집 중에 <주홍글씨> 작품이 있었습니다. 1850년에 출판된 미국의 나다니엘 호손의 첫번째 장편 소설이니까 150년 전의 고전작품입니다. 얼마 전 찾아보니, 청교도주의의 인습적 도덕사회에서 애정도 없이 늙은 학자와 결혼한 헤스터 프린이 뉴잉글랜드라는 신세계에서 젊은 목사와 불륜의 관계로 인해 냉혹한 제재를 받으며 살아나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윤리소설이라고 소개하고 있군요. 그런데 이 <주홍글씨> 책이 책장에 꽂혀 있는 것만 보고 정작 읽지는 않았습니다. 책을 읽지는 않고 제목과 뒷표지에 있는 책 소개만 읽었는데 내 자신이 뭔가 가득 채워진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서점에 가서 책을 굳이 사지 않고 서서 책 날개에 쓰여진 책 소개만 읽어도 책을 다 읽은 것 같은 뿌듯한 기분이 들죠. 그런 비슷한 기분이 그 당시에도 들었습니다. 책을 읽진 않았지만 꼭 읽은 것만 같은, 읽었다는 행세를 하고 싶은 그런 감정이었죠. 지금 돌이켜보니 그런 제 모습이 굉장히 부끄러웠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했던 것이 책에 담긴 문학적, 예술적 가치가 아니라 책을 읽는 행위 혹은 책을 읽는 내 모습 아니었나 싶었거든요. 책이 아니라 나 자신에 초점을 맞춘 셈이죠.
누나_ 괜찮아요. 최근 방영하는 어떤 방송을 보니 김영하 작가도 <토지> 안 읽었다고 하면서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거라고 말하는걸요. (웃음)
나_ ‘좋은 글이네요, 물론 읽지는 않았습니다’ 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종이로 출력해서 보면 전혀 긴 분량의 글이 아닌데, 요즘 대부분 인터넷으로 글을 접하다 보니 화면으로 보면 길어 보이기 때문에 읽지 않는 세태를 패러디한 유머입니다. 저에게는 <주홍글씨>가 약간 그런 책이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떠올렸을 때 나는 그걸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그것인지 혹은 그것에서 연상되는 정서를 좋아하는 것인지, 그것을 좋아하는 내 모습을 좋아하는 것인지 ...... 사실 잘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속내였습니다.
누나_ 어떻게 보면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체 하는 것에서 오는 부끄러운 마음 같은 거네요. 동생에게 그런 주홍색의 느낌으로 소개하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아마추어 미술 감상자가 전하는 절절한 자기 고백”
나_ 저에게 주홍색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지 못하다는 일종의 고백이고 오늘 소개하고 싶은 책은 서경식 작가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입니다. 제가 서경식 작가를 소개하며 드는 감정은 가수 박정현씨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는 박정현씨를 아주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2011년 <나는가수다>라는 음악 프로그램에 나오고 난 뒤 박정현씨는 대중적으로 정말 유명해졌죠. 물론 그 이전에도 유명했지만 이제는 만인의 연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서경식 작가도 그러합니다. 제가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처음 읽었던 것이 2010년인데 그때 이후 지금은 이 분의 인지도도 정말 높아지고 서경식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참 많아진 걸 느낍니다.
누나_ 동생이 저에게 이 책을 처음 추천해주었던 것이 아마 2013년 무렵이었을 거에요. 이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잖아요. 그래서 이력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지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고, 책이 그렇게까지 유명한 편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나_ 서경식 작가의 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약간은 남달리 보일 수 있죠. 혹은 책을 읽으며 그런 걸 기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까 누나가 특이한 이력을 이야기했죠. 이 분의 이력을 먼저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경식은 재일조선인 2세입니다. 서경식 작가의 조부께서 1928년 당시 대 여섯 살 이던 작가의 아버지를 데리고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 옵니다. 서경식 작가는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죠. 그런데 일제강점기만해도 비록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국가이긴 하지만 한반도에 존재했던 국가는 바로 조선이었습니다. 남한이나 북한이라는 개념이 아직 없었죠. 일제강점기가 끝나자 다시 조선이라는 국가가 부활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분단이 되었고 전쟁을 겪으며 분단 체제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게 됩니다. 그 결과 조선이라는 국가가 영영 사라져 버렸죠. 일본에 남아있던 조선의 후예들, 망국의 후예들인 재일조선인들은 국적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일본인으로 귀화하거나 북한을 선택하거나 혹은 한국 국적을 선택해야 했죠. 나의 뿌리는 조선인데 더 이상 조선의 국적을 택할 수 없다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재일조선인들을 일종의 유목민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서경식 작가는 바로 이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앞장서서 하는 분입니다. 어느 한 국가에 뿌리를 내리고 귀속된 국민이 아니라 이 나라도 아니고 저 나라도 아니고 계속 부유하며 떠돌아다니는 난민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이 단어는 바빌론 유수 이후에 팔레스타인에서 강제적으로 떠나 전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녀야 했던 유대인들의 삶에서 기인합니다. 이산(離散)이라는 그리스어가 기원이죠. 한 마디로 서경식 작가는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로 예술, 문학, 인문학, 혹은 사회학까지 접근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네요. 1951년생이니 어느덧 60을 넘어 70에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할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이 분이 오늘의 나와 같은 나이인 서른 세 살 때 누이와 함께 유럽을 기행하며 보았던 미술작품을 자신의 관점으로 소개하는 책입니다. 그때가 1983년입니다.
누나_ 제가 1983년생인데요 (웃음) 저는 이 책이 이 분의 데뷔작으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나_ 제가 알기로는 <나의 서양미술 순례>가 거의 데뷔작에 해당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1991년에 출판되었고 한국에는 그 이듬해인 1992년 창비에서 펴냈습니다. 언제 이 책을 소개할까 고민이 될 정도로 저는 서경식 작가를 정말 좋아합니다. 이 작가의 문체, 사유, 어휘 모든 것들을 참 존경하는 마음까지 갖고 있습니다. 문체하니까 생각나는데 언젠가 누나가 저에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이 분의 책이 대부분 창비에서 발간되었는데 제가 이 작가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누나가 싫어하는 표현을 줄곧 쓰자 누나가 잔소리를 했던 적이 있죠. 프리모 레비가 아니라 쁘리모 레비, 톨스토이가 아니라 똘스또이 등 ......
누나_ 이 작가의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출판사의 표기 원칙이죠. 제가 잔소리를 했던 이유는 표준 외래어표기법에 맞지 않아서였어요. 사람들이 어떤 단어를 접했는데 그 단어를 잘 몰랐을 때 사전을 찾아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 단어가 표준어법에 맞지 않게 표현되어 있으면 검색이 어려울 수 밖에 없어요. 저는 번역자의 입장이다 보니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한 거죠. 원어 발음에 가까워질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 독자가 혼란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나_ 표준어법은 저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흔히 컨텐츠라고 쓰지만 사실은 콘텐츠라는 점, 워크샵이 아니고 워크숍이고, 리더쉽이 아니고 리더십으로 표기하자고 주변에 말하고 있기도 하죠. (웃음) 작가 소개로 돌아가보죠. 서경식 작가의 가족사도 상당히 기구합니다. 비록 투철한 독립운동가의 후예는 아니지만 큰 형과 작은 형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간 뒤 반공사상에 휩쓸려 감옥에 투옥하게 됩니다. 거의 20년 가까이 옥중생활을 겪게 되죠. 그 일을 계기로 작가의 어머니가 십 여 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고 가다 자궁암으로 1980년 돌아가시고 3년 뒤 1983년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서른 세 살의 서경식 작가는 부모님이 모두 작고하시고 두 형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있는 상태였죠. 국가적으로도 그랬지만 가족적으로도 비극을 겪으면서 마음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았고 유럽행을 결심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벨기에, 프랑스, 영국 등을 돌아다니죠. 서경식 작가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일본에서 대학 강단에 서고 있지만 역시 미술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일종의 아마추어 미술 감상기에 가까운 책입니다. 미술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엄청난 심미안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미술 작품을 마주했을 때 작가의 경험에 비추어 생겨나는 심상을 담담하고 슬픈 어조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어조가 너무나도 흡입력 있습니다.
누나_ 저는 동생이 처음 이 책을 소개했을 때 썩 끌리진 않았어요. 그 이전에 미술 에세이를 상당히 많이 읽었던 편인데 한 동안은 또 찾지 않게 되더라고요. 너무 좋고 예쁘고 감상적인 이야기들에 약간 지쳤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한 동안 미술 에세이를 멀리하고 있었는데, 이 책의 제목을 보니 예전에 읽던 그런 에세이들이 연상되더라고요. 동생에게 추천 받았으니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일단 분량이 짧아서 읽기 시작했죠. 어떻게 보면 개인사가 많이 담긴 책이고 참 감상적이라고 느껴지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내쳐지지 않더라고요. 이 작가의 절절한 마음이 너무나 와 닿았거든요. 이 문장이 겉으로만 쓰여진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심장에서 글을 써 내려가는 펜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거쳤을지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다른 미술 에세이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책이었어요.
나_ 서경식 작가와 가장 대척점에 있는 분이 진중권 작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중권 작가는 미학, 인문학에 알고 있는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날줄과 씨줄을 엮듯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폭넓게 전개하는 분입니다. 전문가죠. 반면 서경식 작가는 미술작품은 하나의 소재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미술작품을 소재로 자신의 삶과 생각을 전개해나가는 겁니다. 미술작품이 아니라 서경식 작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누나가 이야기한 절절한 울림이 느껴졌고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어떤 미술작품이 생각나기보다 이 작가만 제 가슴 속에 남더군요.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계기로 서경식 작가의 모든 책을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 분이 제 인생 작가가 되었습니다.
누나_ 저도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책을 읽고 났을 때 절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어떤 구절들이 생각나고, 그 그림을 다시 찾아보고 싶다는 마음보다도 이 작가가 누구며 무엇이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저는 같은 작가의 책을 두루 찾아보는 편은 아니에요.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책을 묶어 읽는 편이거든요. 진짜 오랜만에 같은 작가의 책을 찾아서 여러 권 읽었던 그런 작가입니다.
“예술 앞에서의 진실된 자세”
나_ 오늘 제가 떠올린 주홍색은 부끄러운 것이라고 이야기 했었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것이 2010년이니까 7년 전이네요.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도 미술을 좋아하고 싶다, 좋아해야 하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표현이 약간 미묘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 작품을 정말 좋아해서 미술이 나의 삶이 된 그것과는 다른 감정입니다. 예전에 누나가 들려주었던 경험인데요. 누나는 아주 어릴 적 샤갈 전시회를 찾았다가 거기서 푸른 빛이 가득한 샤갈의 그림에서 받았던 인상을 계기로 지금까지 샤갈과 미술을 좋아하게 되었잖아요. 사실 저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이 책을 계기로 나도 미술을 알아가고 싶다는 감정이 시작된 셈입니다. 그런데 내가 미술작품을 많이 알고 싶다는 감정을 곰곰이 뜯어보니 내가 서경식 작가처럼 되고 싶다는 치기 어린 감정이었습니다. 이 작가를 흉내 내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웠습니다.
대학 3학년생이 되었을 뿐인 스무살 때에 형들의 투옥사건을 만난 나에게는, 형들을 구출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하는 것이 그 후의 ‘생활’로 되었다. 그것은 좀더 보편적인 대의(大義)에 이어지는 길이기도 할 터이었다. 허나 그것은 또한 스스로의 무력함과 왜소함을 알게 하는 나날이기도 했다. 나는 단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이 운명의 형태를 속속들이 지켜보도록 스스로에게 명령해왔을 따름이지만, 그 과정에서 역사와 인간, 민족과 개인, 고향과 유망(流亡) 그리고 고통과 죽음 같은 것들에 대해서 거듭거듭 많은 것을 느끼기도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특히나 죽음이란, 그것이 내 자신의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언제나 내 몸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한 느낌이나 생각은 모름지기 명확한 언어로 표현되기에는 너무도 불분명한 ‘응어리’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럽을 여행하면서 온갖 종류의 서양미술에 접하고 그것들과 마음속에서 대화를 거듭하는 가운데, 내 속에 있던 불분명한 ‘응어리’가 조금씩 표현의 형상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나의 서양미술 순례>, p.208-209, 서경식, 창비
누나_ 동생이 쓰는 글을 보면 서경식 작가 문체와 너무 비슷하다고 제가 몇 번 이야기도 했죠.
나_ 네. 제가 미술에 대한 글을 썼을 때 누나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죠. 여하튼 2010년에 이 책을 읽고 나서 서울시 곳곳에 있는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도 돌아보고 서울 시내 곳곳의 미술관도 참 많이 다녀보았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누군가가 저에게 해준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제가 미술 전시회 다니는 것을 참 좋아하지만 정작 미술 작품을 굉장히 짧게 스치듯 감상한다는 겁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어떤 작품 앞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그 작품의 포로가 된 경험이 거의 없어요. 짧게 감상하고 또 돌아다니면서 흘깃 보고 그런 식으로 짧게 여러 번 그림을 보곤 합니다.
누나_ 결국 동생도 동생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나_ 결국 미술을 통해 나 자신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지난 7년을 돌아보니 나는 줄곧 주변에 미술을 좋아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슬램덩크>에서 채소연이 강백호에게 농구 좋아하냐고 물어봤을 때 강백호가 농구를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는데 사실은 농구보다는 채소연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나도 미술이 아니라 서경식 작가를 끊임없이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그래서 되돌아보니 내가 정말 좋아했던 것이 미술 그 자체인지. 미술을 좋아하는 나의 모습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나는 미술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때 느껴지는 일종의 부르주아 같은 감정이었는지, 어떤 것을 내가 좋아했던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어요.
누나_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성인들이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로 그림책을 활용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어른이 되어서 잃어버린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주제와 관련된 그림책을 네다섯 권 선정해서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셈이죠.
나_ 어떻게 보면 상대방과 교감하는 소재로써 그림책을 활용한다는 거군요.
누나_ 네, 내가 이야기하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소재이기도 해요. 그런데 저도 동생과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내가 정말 그림책을 좋아하는 건지, 혹은 그림책을 통해 어떤 이야기 소재를 찾는 것인지 고민했던 거죠. 그림책의 매력에 푹 빠진 건지 아니면 내가 말하고 싶은 글귀를 찾는 건지 말이죠. 그림책 커뮤니티에 가보면 그림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_ 그림책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이죠.
누나_ 네. 하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은 또 아니거든요. 내가 그림책을 좋아하긴 하는데 그 강도가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또 약한 것 아닌가, 이런 반성도 해보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을 바꿨어요. 사람마다 예술을 감상하는 방법이 다양한 것 같아요. 그 작품에 푹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감상자도 있고, 그 작품을 자신의 방법으로 소화해서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것에서 흥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죠. 저는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동생도 조금은 마음을 가볍게 가져도 좋을 것 같아요. 내가 너무 그림을 얄팍하게 좋아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림을 통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동생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해요.
나_ 누나 말을 듣고 보니 의심하지 않고 어쨌거나 계속 해 나가는 것이 신성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이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린다고 고백했지만 그림을 거짓으로 좋아한 것은 아니거든요. 그 앞에 마주했을 때 감동을 느꼈던 그림이 분명 있었습니다. 다만 한 시간 동안 그림의 포로가 되지 못했을 뿐이죠 (웃음) 저에게는 그런 작품 중 하나가 마네의 <올랭피아> 였습니다. 2015년 파리 여행 도중 오르세미술관을 찾았는데 직접 그림을 보니 압도적이더군요. 생각보다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파리 여행 중에 센 강을 걷다가 팔레 드 도쿄 바로 옆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에 들린 적이 있었어요. 마침 관람요금도 무료여서 가방을 맡기고 어느 큰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에 앙리 마티스의 엄청나게 큰 그림이 단 한 점 걸려 있었습니다. 마티스 하면 어떤 작품이 떠오르나요.
누나_ 여러 가지가 있죠. <춤>도 있고 ......
나_ 바로 그 <춤 La Dance>의 미완성 작품이 걸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그림이 내 시각을 압도했는데, 마치 원시시대의 사람들이 회전하며 춤을 추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습니다.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어요. 이게 정말 위대한 그림의 힘이라고 경탄했습니다. 내가 나중에 서경식 작가처럼 미술에 대한 글을 쓰게 된다면 이 그림을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제가 미술작품을 좋아했던 순간과 경험이 분명 있었고 내 자신에 대해 조금은 자신감을 가져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누나_ 너무 아는 척 하는 것만 아니라면, 약간의 허세도 다 필요한 것 같아요.
나_ 맞습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으로 같은 서경식 작가의 <소년의 눈물>을 추천합니다. 사실 이 분의 모든 책을 추천하고 싶지만 이 작가의 사유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보다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죠. <소년의 눈물>은 서경식 작가가 읽었던 책을 소개하는 책인데 유년기에 읽었던 책과 그 경험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담담하게 전해줍니다. 슬플 이유가 없는 책인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딘가 또 슬퍼집니다. 슬픈 정서가 이 작가의 고유한 정체성인 것 같아요.
누나_ 기본적으로 자신의 뿌리 없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의 흔들리는 마음이 계속 엿보이는 것 같아요.
나_ 이런 생각도 문득 해봅니다. 누나가 저에게 너무 서경식 작가를 오마주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했는데, 기본적으로 아예 상극인 사람들끼리 서로 오마주 할 수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어느 정도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끌리는 것 같아요. 저도 제가 쓴 글이 이유 없이 슬프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몇 번 들었던 적이 있거든요. 무슨 글을 써도 하여튼 슬프대요 (웃음) 그 정서가 비슷하기 때문에 이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던 것 아닌가 합니다.
누나_ 저는 짧게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서경식 작가의 또 다른 책 중에 <나의 조선미술 순례> 라는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생각한 조선과 이 사람이 생각하는 조선이 너무 달랐거든요. 흔히 생각하는 조선은 곤룡포 입은 임금님이 등장하는 조선왕조를 떠올리기 마련인데요. 그런데 서경식 작가에게 조선은 지금의 대한민국과 북한으로 갈려진 바로 그 지점의 조선을 떠올리고 있는 거에요. 조선인들의 디아스포라 삶이 서경식 작가의 조선을 관통하는 키워드죠.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참 충격적이었어요. 이 작가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세계관이 폭넓어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_ 일종의 다짐을 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해보겠습니다. 황정은이라는 젊은 작가가 있습니다. 2014년에 쓴 <계속해보겠습니다> 소설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한 후회, 부끄러움, 두려움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겁니다. 더구나 그 두려운 감정의 대상이 취미 영역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것이 직업의 영역이면 더 큰 고민이 될 법합니다. 그렇지만 이 <계속해보겠습니다> 소설 제목처럼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일단 계속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닌가 싶어요. 자, 제게 주홍색은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자각 때문에 부끄러웠고, 나에게 좋아해볼 수 있는 것을 알려주고 또 좋아하는 것이 정말 그것 맞는지 물어보던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소개하고 같이 읽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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