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リベラル派の頽落 (徐京植評論集) 単行本 – 2017/11/24
徐京植 (著)
3.0 5つ星のうち3.0 1個の評価
昭和天皇の死去(一九八九年)に際して、戦争責任・植民地支配責任と向き合う最大の好機を逃した日本社会はいま、一九九〇年代後半の右派によるバックラッシュ、「9・11同時多発テロ」「福島原発事故」を経て長い反動期に入っている。
今回の衆院選でも「排除」=「リベラル潰し」の高波が打ち寄せた。
「戦後民主主義」を担ってきたリベラル派の溶解を目の当たりにしてきた著者30年に渡る思索の軌跡を綴る。
本の長さ
440ページ
言語
日本語
出版社
高文研
発売日
2017/11/24
寸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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商品の説明
出版社からのコメント
昭和天皇の死去(1989年)に際して、戦争責任・植民地支配責任と向き合う最大の好機を逃した日本社会はいま、1990年代後半の右派によるバックラッシュ、「9.11同時多発テロ」「福島原発事故」を経て長い反動期に入っている。
本書の第1部は、日本リベラル派知識人の役割・責任を問うてきた在日朝鮮人作家がここ数年間で国内外で行った講演、発表した論文を抄録したものである。
第2部は、「右傾化した」と言われる日本社会に対して、およそ30年前から警鐘を鳴らし、日本人に向けて「覚醒」を促してきた論文を採録した。
著者の30年にわたる思索の軌跡は、そのまま日本社会の「戦後民主主義」といわれるリベラル派がよりどころしてきた思想・規範が溶解していく過程でもあった。
쇼와 천황의 사망(1989년)에 즈음해, 전쟁 책임·식민지 지배 책임과 마주하는 최대의 호기를 놓친 일본 사회는 지금, 1990년대 후반의 우파에 의한 백래쉬, 「9.11 동시 다발 테러」 「후쿠시마 원전 사고」 를 거쳐 긴 반동기에 들어가 있다. 본서의 제1부는, 일본 리버럴파 지식인의 역할·책임을 물어온 재일조선인 작가가 최근 몇 년간 국내외에서 실시한 강연, 발표한 논문을 초록한 것이다. 제2부는, 「우경화했다」라고 불리는 일본 사회에 대해, 약 30년 전부터 경종을 울려, 일본인을 향해 「각성」을 촉구해 온 논문을 채록했다. 저자의 30년에 걸친 사색의 궤적은, 그대로 일본 사회의 「전후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리버럴파가 보다 커져 온 사상·규범이 용해해 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内容(「BOOK」データベースより)
「頽落」という言葉がある。頽廃しつつ転落するさまである。反動の時代に生きる日本リベラル派知識人の責任とは何か?―およそ30年にわたる思索の軌跡。
著者について
1951年京都生まれ。東京経済大学現代法学部教授。
著書に 『植民地主義の暴力―「ことばの檻」から』『詩の力──「東アジア」近代史の中で』(ともに高文研)、
『私の西洋美術巡礼』『私の西洋音楽巡礼』(ともにみすず書房)、『プリーモ・レーヴィへの旅』(晃洋書房)、
『フクシマを歩いて―ディアスポラの眼』(毎日新聞社)、『中学生の質問箱 在日朝鮮人ってどんなひと?』(平凡社)など多数。
著者略歴 (「BOOK著者紹介情報」より)
徐/京植
1951年京都生まれ。東京経済大学現代法学部教授(本データはこの書籍が刊行された当時に掲載されていたも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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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録情報
出版社 : 高文研 (2017/11/24)
発売日 : 2017/11/24
言語 : 日本語
単行本 : 440ページ
3.0 5つ星のうち3.0 1個の評価
カスタマーレビュ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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トップレビュー
上位レビュー、対象国: 日本
ぬ
5つ星のうち3.0 知恵のある反抗期の中学生が書いてそうな文2017年12月7日に日本でレビュー済み
大雑把に言えば「少数派被害者の立場に立って考えましょう」ってだけ
少数派被害者というのは慰安婦の方々や福島原発事故被害者の方々らしい
著者は日本人に残ってる国民主義的な考えと植民地主義的な考え それに付随する政治などに反対していた
自分は嘘が書いてあったりしたし全体として過去を嘆く形で当たり前のことしか書いてなかったので賛同も反対も出来なかった 誤字もあったし
「まぁたしかにそういう考え方もあるわな」程度になりました
지혜가 있는 반항기 중학생이 써서 그런 글 2017년 12월 7일에 일본에서 리뷰 완료
그것은 위안부 분들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자 분들 같다
저자는 일본인에게 남아있는 국민주의적인 생각과 식민지주의적인 생각 거기에 부수하는 정치 등에 반대하고 있었다
자신은 거짓말이 있었고 전체적으로 과거를 슬퍼하는 형태로 당연한 것 밖에 쓰지 않았기 때문에 찬동도 반대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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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리버럴파의 낙락(徐京植評論集)
서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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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想・レビュ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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ネタバレ
古本虫がさまよう
古本虫がさまよう
ご自身の立場を「リベラル」と思っているようだが、読み進めている段階では、北朝鮮への批判も何もなく、悪いのは日本の権力…といった「左翼全体主義(コミュニズム)」への批判的視点は皆無のようだ? なにせ、和田春樹さんの慰安婦への視座もケシカランという御立場。「左翼リベラル」が頽廃・頽落していることを自ら証明しているかのような本。ただ、「あるタクシー運転手との会話」で綴られているエッセイは、ちょっと一読の価値はあるかなと。
ナイ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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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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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segawa noboru
hasegawa noboru
ただ泣けた。「母を辱めるな」の章。90年代、歴史修正主義者や右派政治家の面々が、元「慰安婦」が今頃騒ぎ出すのは「金ほしさ」のためだろうとの侮辱言説があって、多くの人が賛同した。〈忘れてしまいたかった、思い出したくなかった、それでも勇気をふるって法廷に立ち、ここまで語ってくれたのである。それを「金ほしさ」に騒ぎだしたのだと罵る者がおり、その野卑な罵声にうなずいている多くの者がいる。これは、いかなる世界であろうか。〉我が家よりより貧しい地区の人たちのことを意味も分からず「チョーセン」と口にした遠い記憶が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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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벌레가 방황하자.
자신의 입장을 「리버럴」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읽고 진행하고 있는 단계에서는, 북한에의 비판도 아무것도 없고, 나쁜 것은 일본의 권력…이라고 하는 「좌익 전체주의(커뮤니즘)」에의 비판적 시점은 전무인 것 같다?
어쨌든, 와다 하루키씨의 위안부에의 시좌도 케시카란이라고 하는 입장.
「좌익 리버럴」이 폐폐·낙락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 같은 책.
다만, 「어느 택시 운전사와의 대화」로 쓰여지고 있는 에세이는, 조금 일독의 가치는 있을까라고.
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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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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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가와 노보루
그냥 울었다. "어머니를 욕하지 마라"장. 90년대 역사 수정주의자와 우파 정치인의 면면이 전 '위안부'가 지금쯤 떠들썩한 것은 '김 호시사' 때문일 것이라는 모욕 언설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찬동했다.
<잊어버리고 싶었어,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용기를 흔들어 법정에 서서 여기까지 말해준 것이다. 그것을 '김 호시사'에 떠들썩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 그 야한 목소리에 끄덕이고 있는 많은 사람이 있다. 이것은 어떠한 세계일까? >
우리 집보다 더 가난한 지구의 사람들을 의미도 모르고 「초센」이라고 입으로 한 먼 기억이 있다.
나이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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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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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일본 리버럴파의 낙락”
2017-12-30 10:05:59 | 한국·조선
서경식 『일본 리버럴파의 낙락』 (고문연, 2017년)을 읽는다.
본서에는 1989년부터 현재까지의 저자의 문장이 수록되어 있다. 주제는 식민지주의, 전쟁책임, 위안부,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이며, 이러한 문제를 신경쓰고 있던 사람에게는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적은 마사쿠라를 얻고 있어, 그것들이 새롭지 않다는 것이, 일본에 있어서 역사의 참당한 공유가 실패해 버린 것을 여실하게 나타내고 있다.
사색의 수많은 것은, 그것을 기억에 남겨두고, 깊게 가야 할 것이다.
한때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침략의 손끝이 된 황군의 병사를 '짱'이라고 부르고, 감정을 기만적으로 비대화시켜 일본의 침략 책임이나 전쟁 책임을 잃어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저자가 말했듯이 '죄'와 '책임'과는 다르다. 손끝이 조직의 결정이나 공기에 저항할 수 없었다고 해서, 「죄」에 묻지 않았다고 해서, 「책임」은 존재하는 것이다. 즉 대일본제국의 손끝과 시민과는 무조건 같을 수 없다. 이 차이에 관하여, 무라타니 행인은 개인과 사회 사이에 있는 자유도를 「괄호에 넣는 것」에 의한 태도 변경을 설명했다(『윤리 21』). 또한 타카하시 테츠야는 '책임'은 '응답책임'이라고 명확하게 자리매김했다(『전후책임론』). 이런 지식인들의 사색을 발전시키지 않고 폭력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망각의 그분에게 쫓으려는 책동, 즉 역사수정주의는 여전히 괴물처럼 살아가고 있다.
이는 저자에게 있어서의 「한국인으로서의 책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국 병사도 베트남 전쟁에서 잔학 행위를 했다.
“나는 그(※고바야시 요시노리)와는 달리 자신을 속여서까지 “빌어먹을”의 등을 훌륭하다고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자국의 권력에 의해 불합리하게도 등에 이끌린 '빌어먹을'을 어떻게든 닦아내기 위해 노력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의 '한국인으로서의 책임'은 박정희나 전두환과 '동일화'하고 그들을 '갓', 그들의 죄에 연좌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과 그 잔당과 싸워 한국 정부에 베트남에 대한 공식 사과와 개인 보상을 실현시키고, 그러한 것을 다시 반복하지 않는 사회로 한국을 바꾸기 위해 맡는 것이다. 그것이 등의 '빌어먹을'을 닦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
이런 '책임'에 대한 생각은 북한의 납치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도 바로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공작원이 조직의 일원으로서 「어쩔 수 없이」한 일이라고 인정하는 것인가. 하물며 그 죄나 책임을 없는 것으로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왔다고 해서 그것을 인정하는 것인가. 납치 피해자 가족을 정치 이용하면서 위안부와 침략의 희생자를 매는 것인가. 그것은 너무 비대칭이다.
●참조
서경식의 후쿠시마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타카하시 테츠야·서경식편 저 '탈취 타노에도 봄이 올까? 정주하 사진전의 기록』 '빼앗긴 들에게도 봄은 올까', '마음의 시대' 서경식, 다카하시 테츠야, 한홍구 '후쿠시마 이후의 사상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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