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괜찮으려나 했는데 결국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두개의 재판과 짧은 기간동안의 일본왕복이 무리가 된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눔의집측의 악의적 서면과 다시 마주 하느라 감당해야 했던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
나눔의집은 이번엔 “피해자의견서”라면서,
나에게 “일본정부의 법적인 책임 을 인정하는지 물어보라“고 쓰인 서면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오랫동안 내가 ”일본의 책임“자체를 부정했다면서, 그래서 내가 ”자발적 매춘부“라 했다고 주장해
언론이 내가 그런 주장을 한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어 왔는데,
정작 법원에서는 내가 비판한 것이 “법적책임”임을 명확히 한 것.
유도심문적 질문까지 재판부에 종용하는 태도를 다시 만나면서, 이들과의 사이에 더이상은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느꼈다.
이런 식 이중적 태도를 보는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의 위안부 관련 학자들도, 학회에서는 “식민지로의 공창제도 이식“ 등에 대해 당당하게 발표하고 토론하면서, 학회바깥—-언론과 외부에 대해선 그런 구조같은 건 전혀 없다는 듯한 태도를 취해 왔다.
그리고 그 양쪽이 손 잡고 함께 나에게 화살을 쏘아댄 것이 지난 9년반 세월.
그 이유는 물론, 나의 의견이 세간에 알려지고 시간은 걸렸지만 지원단체 비판도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악의—패턴을 달리 한 사방에서의 악의와 교묘한 전술에는 사실 10년 동안 익숙해졌다면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런 장면을 만나면 회의와 절망을 반복하고 마는 것.
일본정부를 상대로 해 온 ’혼자서 하는 씨름‘을 앞으로도 이어가려는 생각이기 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멈출 줄 모르는 ”악의”에 여전히 정신에 스크래치를 입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오랜 주장을 전면으로 논파 하는 논문은 이미 작년에 나왔다.
“ 조선의 행정 당국이 직접, 그리고 계획적으로 위안부요원 확보를 행했던 것은 아니라“고 명확히 기술하는.
이 논문을 쓴 도쿄대학 교수는 원래 그들 그룹의 가까이에 있었던 이이니 그들이 이 논문을 안 읽었을리는 없다.
그럼에도 아직껏 ‘주류’ 위안부 연구자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게 가능한 건 이들이 ‘주류’ 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한국 관계자들도 침묵을 지킨 채로 지난 30년 주장을 일본정부와 한국국민들에 대해 반복 중인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대법원 무죄가 잘못 되었다면서 여전히 나를 놓아주려 하지 않는 것이 그저 “이지메” 인지,
아니면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돌아갈 배상금이 정대협이 수령자가 되어 있는 것처럼,
돌아가신 나눔의집 거주자 여섯분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게 해서 다시 나눔의집이 착복할 생각이기 때문인지는,나로선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이들의 악의를, 끝까지 넘어서야 한다.
이선균 배우가 이겨내지 못했던 건, 그를 쓰러뜨리려 했던 세상의 악의다.
기회가 있었다면 내가 10년의 시간을 거치며 터득한 방법을 말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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