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 Yuha 231223
“피고소환장”을 받았던 재판이, 오늘 오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있었다. 이하는 법원에서 읽은 내용.
최종진술이 필요한 줄도 모르고 있다가 법원으로 향하기 직전에 급히 쓴 글.
검사는 ‘무죄’ 를 선고해 달라고 했다는데 현장에서 미처 듣지 못했고, 만감이 교차하여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아무튼 나쁜 일을 한 기억이 없다고 변명해야 하는 시간은 이제 끝났다. 아마도.
선고는 2024년 2월22일.
(아주 기니까 관심있는 분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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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파기환송심 최후진술서>
재판장님,
이미 형사쪽 대법원 판결문이 명확히 말해 준 것처럼 저의 책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폄훼하기는 커녕 오히려 위안부할머니들을 위해 쓴 책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한반도 평화와 한일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져 왔고, 그 과정에서 구체적 갈등을 빚어온 몇몇 문제들에 대해 책을 쓰거나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갖는 지식인/시민들과 함께 그때 그때 필요하다고 생각한 문제의식을 한일 양쪽사회에 제기해 왔습니다.
그 세월도 벌써 20년이 넘습니다.
혹자는 제가 원래 정치나 역사, 한일 관계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혹은 운동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저의 책과 활동을 폄훼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저의 저서와 활동에 대한 평가를 살펴 봐 주신다면, 그런 이들의 비난이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임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생산/소비되는 담론이 올바른 방향을 지향하고 있음에도 구체적으로 현실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많은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고, 그때문에 한일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도 이미 20 여년 전 일입니다.
한국에서 익숙하지 않은 담론이기 때문에, 책을 내거나 모임을 가질 때마다 다소 긴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지혜로운 한국의 시민들은 저의 문제제기를 늘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2005년 <화해를 위해서>를 낸 이후였습니다. 일본어 번역서가 다음해에 나오자, 책의 4분의 1정도 분량이었던 위안부문제부분을 둘러싸고 제 주변에 있던 이른바 ‘양심적’ 일본지식인들간에 균열이 일어났습니다. 그 균열은 재일교포지식인과 연구자에 의해 점차 한국사회로까지 확산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저에 대한 음해와 거짓말이 태연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그것을 대표하는 말이 저의 책이 일본우익의 칭송을 받았다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책을 높이 평가해 준 건 아사히신문이며 오에겐자부로, 가라타니 고진, 우에노 치즈코등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 지식인과 진보매체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이해와 해법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저의 책이 일본에서 높이 평가 받았다는 이유로, 저를 적대시하는 사태는 이어졌습니다.
저에 대한 고발은 바로 그런 상황이 만든 사태입니다.
그에 더해 그런 적대의 화살쏘기를 앞당긴 또하나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를 내고 나서 저는 여러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났습니다. 오래된 증언을 분석해 책을 쓰기는 했지만, 실제 할머니들의 생각은 어떤지, 일본의 사죄와 보상이 어떤 것이기를 바라시는지 직접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눔의집에도 갔었고, 할머니들은 제가 예상한 것과 다르지 않은 답변들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해 4월에 그때까지 들려 오지 않았던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내보내는 심포지움을 <위안부 문제 제3 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열었습니다. 한일 양국 언론도 크게 주목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가장 가깝게 교류했던 나눔의집 거주자 할머니가 6월 초에 작고하셨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저는 나눔의집으로부터 고발당했습니다.
저의 책 <제국의 위안부>에는 사실 위안부에 대한 기술보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상황분석이 훨씬 분량이 많습니다.
문제 해결에 앞장섰던 지원단체의 해결방식에 대한 문제제기, 그들과 대립하던 일본우파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일본정부에 대한 제안, 위안부 문제를 시간과 공간을 확대해 생각해 본내용 등 입니다.
자신들을 비판한 저의 책에 불만을 품고 정대협(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 전 정의연)은 간행 직후에 고발을 하려다가 변호사의 자제 조언을 받아들여 하지 않았던 경위가 있습니다. 운동단체 비판 대부분이 정대협 비판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로부터 10개월 후, 정대협 대신 나눔의집이 고발에 나섰던 것입니다.
후에 알려지게 됩니다만, 나눔의집은 위안부할머니들의 소중한 유산등을 횡령했고 저를 고발한 나눔의집 소장은 지금 현재 그 죄로 수감중입니다. 저와 친했던 할머니가 저에게 유산 관련 이야기도 하였기 때문에 저를 경계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원단체의 위안부문제 관련 이해와 활동에 대한 비판도, 할머니들은 저에게 털어놓았습니다.
2020년, 이른바 윤미향 사태가 일어난 이후에 비로소, 저는 당시의 할머니들과의 대화를 <일본군 위안부, 또 하나의 목소리>라는 책으로 펴냈습니다.
참조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저의 책이 지원단체를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은 은폐하고, 마치 제가 위안부를 비판/비난한 것처럼 악의적인 프레임을 만들어 고발하였습니다. 저의 생각이 30년 동안 지켜왔던 그들의 생각과 달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제가 일본 우파는 물론 일본 시민과 정부에 대해서도 말걸기를 시도하고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물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일본은 저의 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처음으로 이 문제가 조선인위안부의 경우 전쟁책임이 아니라 제가 주장한대로 “식민지지배책임”“제국의 책임” 이라는 것을 수긍해 주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라는 제목은 ‘제국에 동원당한 위안부’ 라는 의미입니다.
운동가들과 기존 연구자들은 그런 사실을 당혹스러워하면서 저에 대한 공격에 나섰던 것입니다.
그동안 쌓아온 사회적/문화적/경제적 권력에 흠집이 나는 것을 두려워 했던 것이겠지요.
<제국의 위안부>고발 사태는 그렇게 해서 일어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발자들은 국가를 동원해 고발에 나섰을 쁀 아니라 언론을 이용해 국민비난동원에도 나섰습니다.
그 결과로, 저는 이 9년 반 동안 참혹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기간동안, 문제의 배경에 대한 설명, 혹은 비난과 공격에 대한 반론을 펼치는 네 권의 책을 펴냈지만, 그에 대한 관심을 가져 주는 언론은 별로 없었습니다.
저의 취지를 제대로 받아 들여 준 사람들이 늘어나기는 했어도 저는 여전히 고발자들이 심어 놓은 사회적 오해 속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날 조차, 판결문을 읽지 않은 언론 대부분이, 고발자들이 처음 만든 악의적 프레임 그대로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주장한 박유하“ 라는 말로 시작했던 보도들이 그 정황을 보여줍니다.
재판장님,
고발자들이 지키려 하는 것은 위안부할머니들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운동과 연구로 쌓아온 권위와, 그것이 가져다준 것들을 지키기 위해 이들은 저를 고발했습니다.
조금만 책을 차분히 들여다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온갖 거짓말과 궤변을 이 사회에 확산시킨 것도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다행히 작년에 무사히 대학을 퇴임했고, 이제 대법원의 무죄판결도 받았지만 이들이 심어놓은 프레임이 너무 크고 깊어서, 저의 명예회복은 여전히 요원하다고 느낍니다.
온사회에 불신이 가득하여 법원의 판결 조차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 통탄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종판결은 그 무게로서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재판관님들께서 저의 책과 함께 저의 의도를 있는 그대로 파악한 대법원판결문을 참조하시어, 이제는 그만 최종무죄를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 드리는 바입니다.
2023년12월 22일
피고인 박유하
Park Y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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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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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ざっと日本語翻訳してみました。長すぎると言うので、分けて貼り付けておき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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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被告召喚状"が届いていた裁判が、今日の午後、ソウル高等裁判所で行われた。以下は裁判所で読んだ内容。
最終陳述が必要とも知らずにいたので、裁判所に向かう直前に急いで書いた文。
検事は「無罪」を宣告してほしいと言ったそうだが聞き逃し、万感が交錯して思わず声がつまったりも。
ともかく、悪いことをした覚えがないと言い訳する時間はもう終わった。たぶん。
宣告は2024年2月23日。
(とても長いので興味のある方だけ読んでくだ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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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刑事破棄差し戻し審 最終陳述書>
裁判長様、
すでに刑事側の最高裁判決文が明確に言ってくれたように、私の本 <帝国の慰安婦>は元慰安婦の方々を誹謗するどころか、むしろ元慰安婦の方々のために書いた本です。
私は早くから韓半島の平和と日韓関係に深い関心を持っており、その過程で具体的な葛藤を生み出していたいくつかの問題について本を書いたり、似たような問題意識を持つ知識人・市民と共に、そのつど必要と思われる問題意識を日韓両社会に提起してきました。その歳月ももう20年以上になります。
ある人たちは、私がも元来政治や歴史、日韓関係を専攻していないという理由で、あるいは運動家ではないという理由で、私の本と活動を貶そうとしました。
しかし、これまでの私の著書と活動に対する評価を見ていただけるのなら、そのような非難に何の根拠もないことがお分かりいただけると思います。
韓国で生産・消費される言説が正しい方向を目指し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具体的に現実の解決に役立つどころかかえって多くの問題を次々と生み出しており、そのために日韓対立の解消が難しくなっているとの認識を持つようになったのもすでに20年以上前のことです。
韓国では馴染みのない内容であるため、本を出したり集会を開くたびに多少緊張しないわけではなかったのですが、幸いなことにものを深く考える韓国の市民たちは私の問題提起をいつも前向きに受け入れてくれました。
そのような状況に亀裂が入り始めたのは、2005年に『和解のために』を出した後でした。日本語翻訳本が翌年に出ると、本の4分の1ほどの分量だった慰安婦問題の部分をめぐって、私の周りにいたいわゆる「良心的な」日本の知識人たちの間で亀裂が生じました。その亀裂は、在日知識人/研究者によって次第に韓国社会にまで広がることになりました。
問題は、その過程で私に対する誹謗中傷と嘘が平然と行われたことです。 それを代表する言葉が、私の本が日本右翼の称賛を受けたという言葉でした。
しかし、私の本を高く評価してくれたのは朝日新聞であり、大江健三郎、柄谷行人、上野千鶴子など日本を代表するリベラル知識人やメディアでした。
しかし、そのような状況はあまり知られず、慰安婦問題をめぐる理解や解決方法が自分たちと違うという理由だけで、そのような私の本が日本で高く評価されたという理由で、私を敵視する事態が続きました。
私に対する訴えは、まさにそのような状況が生み出した事態です。
1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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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2)
さらに、そのような敵対の矢を早めたもう一つの理由がありました。
<帝国の慰安婦』を出してから、私は複数の慰安婦の元慰安婦の方々に会いました。古い証言を分析して本を書きましたが、現実の元慰安婦の方たちの考えはどうなのか、どのような形の日本の謝罪と補償を求めているのかを直接聞きたかったからです。その過程で「分かち合いの家」にも行きましたが、おばあちゃんたちは私が予想していたのと変わらない答えをくれました。
そこで私は翌年4月に、それまで聞こえなかった元慰安婦の方たちの声を韓国社会に伝えるシンポジウムを「慰安婦問題、第3の声」というタイトルで開きました。日韓両国のマスコミも大きく注目してくれました。
ところが、当時最も親しく交流していた分かち合いの家の入居者の元慰安婦の方が6月初めに亡くなりました。その一週間後に私は分かち合いの家から訴えられました。
私の本 <帝国の慰安婦>には、実は慰安婦についての記述よりも、慰安婦問題を取り巻く状況分析の方がはるかに分量が多いです。
問題解決の先頭に立っていた支援団体の解決方式に対する問題提起、彼らと対立していた日本右派に対する批判、そして日本政府に対する提案、慰安婦問題を時間と空間を拡大して考えてみた内容などです。
自分たちを批判した私の本に不満を抱いた挺対協(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現正義連)は、出版直後に訴えるつもりで弁護士の自制のアドバイスを受け、訴えなかった経緯があります。運動団体の批判のほとんどが挺対協批判だったからです。
ところが、それから10ヶ月後、挺対協の代わりに分かち合いの家が訴えに出たのです。
後に知られることになりますが、「分かち合いの家」は慰安婦のおばあちゃんたちの大切な遺産などを横領し、私を訴えた「分かち合いの家」の所長は現在その罪で収監中です。私と親しかった元慰安婦の方が私に遺産関連の話もしていたので、私を警戒していたのです。
それだけでなく、支援団体の慰安婦問題に関する理解と活動に対する批判も、元慰安婦の方たちは私に打ち明けていました。
2020年、いわゆる尹美香事件が起きてから初めて、私は当時の対話を「日本軍慰安婦、もう一つの声」というタイトルの本にまとめました。
ご参考いただければ幸いです。
ところが、彼らは私の本が支援団体を批判しているという事実は隠し、あたかも私が慰安婦を批判・非難したかのように悪意に満ちたフレームを作って訴えました。私の考えが長年守ってきた彼らの考えと違ったからです。
しかし、重要なのは、私が日本の右派はもちろん日本の市民や政府にも声をかけ、支援団体とは異なる方法で責任を問うたという事実です。
そして、日本は私の本をあるがまま受け入れ、この問題が、朝鮮人慰安婦の場合戦争責任ではなく、私が主張したように「植民地支配責任」「帝国の責任」であることを受け入れてくれました。
"帝国の慰安婦"というタイトルは「帝国に動員された慰安婦」という意味です。
運動家や既存の研究者たちは、そのような状況に当惑し、私に対する攻撃に出たのです。
それまで築いてきた社会的・文化的・経済的な権力に傷がつくことを恐れたのでしょう。
<帝国の慰安婦>告訴事態はそのようにして起こりました。 その過程で、告訴者たちは国家を動員して訴えに出ただけなく、メディアを動員して国民非難も煽り遺産のました。
その結果として、私はこの9年半の間、悲惨な時間を過ご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
この間、問題の背景についての説明、あるいは非難と攻撃に対する反論を展開する4冊の本を出版しましたが、それらに関心を寄せてくれるメディアはあまりありませんでした。私の趣旨をきちんと受け入れてくれる人が増えてきたとはいえ、そのため、私はいまだ訴えたひとたちが社会に植え付けた大きな誤解の中を生きています。
最高裁無罪判決の日にさえ、判決文を読まなかったメディアのほとんどが、告訴者たちが最初に作った悪意に満ちたフレームのまま「慰安婦を売春婦と主張した朴裕河」との言葉から始まる報道であったことがそうした状況を示しています。
裁判長、
告訴者たちが守ろうとしているのは、元慰安婦の方たちではありません。運動と研究で築いてきた権威と、それがもたらしたものを守るために、彼らは私を訴えました。
本をちゃんと読めばすぐに分かるような嘘と詭弁をこの社会に拡散させたのも、その過程で起こったことです。
幸い、昨年無事に大学を退職し、先般最高裁の無罪判決も受けましたが、彼らが植え付けたフレームがあまりにも大きく深すぎて、私の名誉回復の日は遥か遠いと感じています。
社会全体が相互不信に陥り、裁判所の判決さえ社会的認識を変えることが難しい社会になっている現状が嘆かわしいです。
しかし、それでも、最終判決はその重みで、私たちの社会を少しでも前へ進めさせることができると信じています。
裁判官の皆様、
私の本とともに私の意図をありのままに捉えてくれた最高裁判決文をご参照いただき、今こそ、最終無罪判決を出して下さることを切に願っております。
2023年12月22日
被告人 朴裕河
1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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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jin Park
다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1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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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Park Yuha
Whojin Park 고맙습니다
11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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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Won Hwang
그간 명예훼손은 당하시면 당하셨지 하신 건 아닌 듯 합니다
1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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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Ik Park
힘드셨겠지만 잘 버티셨네요
앞으로도 그 마음 버리지 마세요
1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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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숙
최후 변론이 찡합니다.
11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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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송문숙 공감해 주셔서 감사해요.
11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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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동
혹 사건을 담당한 검사의 재판정에서 공식적인 사죄는 없었나요? 특히 1심검사..
11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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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우영동 그럴리가요. 권방문 검사는 변호사가 되었다더군요
11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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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동
박유하 공직을 떠났으니 상징적인 불이익도 없겠군요. 형사보상..도 (또 재판하는것도 넘 힘겹겠죠)
10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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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 Hwan Park
검사도 인정하는 무죄군요 ㅠㅠ
10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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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박성환 네. 그래도 원고측은 이것저것 제출했다더군요
9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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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k Jae Yang
정의를 호도하여 밥그릇을 구축하는 자들. 그런자들이 여엉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교수님께서 그들의 일부를 허물어트리고, 그들을 구별하는 선구안의 단초를 알려주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 되돌리시기에는 만시지탄이지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8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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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양석재 마음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1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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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onggun Choi
차분하게 잘 설명하셨습니다. 100% 공감합니다.
7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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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Park Yuha
Hyonggun Choi 공감, 고맙습니다.
1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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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isang Sohn
ㅠ.ㅠ
7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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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2월이 기다려집니다. 항상 응원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4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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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Yuha
이상현 기다려 주시는 마음, 고맙습니다
1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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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 Hyun Kim
혹시 놓친 글이 있나 싶어서 몇 번을 읽었습니다.
응원합니다.
1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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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화
조목조목 잘 쓰셨어요. 명예훼손이라니...오히려 선생님이 당하신건데.
고생하셨어요.
1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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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희
단숨에 읽었습니다. 격정의 토로였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힘들었던 그동안의 시간들이 최후 진술서에 그대로 녹아 있군요.
사실 예전엔 제 분야가 아니라 큰 관심이 없었고, 내용도 몰랐습니다. 그냥 그런 일이 있나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국의위안부도 구입해 읽었고, 관련 보도들도 찾아 봤습니다.
제 결론은 "우리의 지적 담론의 수준, 우리의 지성,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특히 무엇보다 실천적 의미에서의 시민단체 활동 목적과 양태, 이 모든 것이 참으로 부끄럽다"입니다.
저 혼자 만이라도 박교수님께 거듭 사과드립니다. 무관심해 죄송했습니다
52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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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형
잘 견뎌내셨습니다.순리대로 잘 풀려지실 것입니다. 상처 뿐인 승소겠지만 이를 통해 권력화되는 사회운동에 금이 생기길 바래봅니다
50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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