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공동선언 20주년 연속 기고 ③]
정주영 ‘소떼방북’보다 6년 앞선 북한방문을 아십니까
올해는 2000년 역사상 첫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6.15공동선언 20주년 준비위원회는 남북공동선언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현재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고, 한반도 평화 실현의 해법을 찾기 위해 각계의 목소리를 담은 연속 기고를 게재합니다.
① 20년전 6.15남북공동선언, 문제는 ‘이행’이다 / 김동한(6.15선언실천남측위원회 학술본부 공동대표)
② 경색된 남북관계…기회는 ‘남북경제협력’이다 / 정숙경 (남북경제협력협회 운영지원실장)
③ 정주영 ‘소떼방북’보다 6년 앞선 북한 방문을 아십니까 / 김정수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④ 남북이 단절될 때마다 봉합에 나섰던 사람들 / 이영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활동가)
⑤ 됐다가, 안 됐다가.. 휘둘리는 ‘남북교류협력’ 되지 않으려면 / 홍상영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⑥ 남북 대학생의 ‘하이파이브’, 언제 다시 가능할까요 / 곽호남 (진보대학생넷 대표, 6.15청학본부 대학생분과위 대표)
정주영 ‘소떼방북’보다 6년 앞선 북한방문을 아십니까
[6.15공동선언 20주년 연속 기고 ③]
올해는 2000년 역사상 첫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6.15공동선언 20주년 준비위원회는 남북공동선언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현재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고, 한반도 평화 실현의 해법을 찾기 위해 각계의 목소리를 담은 연속 기고를 게재합니다.
① 20년전 6.15남북공동선언, 문제는 ‘이행’이다 / 김동한(6.15선언실천남측위원회 학술본부 공동대표)
② 경색된 남북관계…기회는 ‘남북경제협력’이다 / 정숙경 (남북경제협력협회 운영지원실장)
③ 정주영 ‘소떼방북’보다 6년 앞선 북한 방문을 아십니까 / 김정수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④ 남북이 단절될 때마다 봉합에 나섰던 사람들 / 이영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활동가)
⑤ 됐다가, 안 됐다가.. 휘둘리는 ‘남북교류협력’ 되지 않으려면 / 홍상영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⑥ 남북 대학생의 ‘하이파이브’, 언제 다시 가능할까요 / 곽호남 (진보대학생넷 대표, 6.15청학본부 대학생분과위 대표)
정주영 ‘소떼방북’보다 6년 앞선 북한방문을 아십니까
[6.15공동선언 20주년 연속 기고 ③]
여성들에게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의 의미는?
김정수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탈북민단체에서 대북전단을 다시 띄우고,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남한 정부가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는다는 비판 담화를 발표했다. 이후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보도문을 통해 ‘6월 9일 12시(정오)부터 청와대와 조선 노동당 사이의 직통 통신 연락선을 포함해 남북간 모든 통신 연락선을 완전히 차단·폐기하겠다’고 밝혔다. 5월 말부터 현재까지, 짧은 기간 안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정부보다 먼저 대응한 이들은 바로 강화도 주민들이다. 6월 8일 한 탈북민단체에서 강화도 인근에서 쌀을 담은 페트병을 바다에 띄워 북측에 보내려는 것을 인근 주민들이 반대했다.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불안하니 되돌아가 달라.’
6.15 남북공동선언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가능성’을 차단한 것
강화도 주민들의 ‘불안하다’는 이 말은 바로 6.15남북공동선언의 의미를 비롯해 10.4공동선언, 4.27 판문점선언, 9.19 평양공동선언 그리고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의 의미를 가장 잘 요약했다고 본다.
즉 지난 20년간 남북 정상 간의 합의는 한반도에서 실질적으로 전쟁을 억제하는 기능을 해왔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서 6.15공동선언에 합의·서명하고 성남공항을 통해 남으로 돌아와 국민들에게 처음으로 한 말도 바로 “이제 더이상 한반도에는 전쟁이 없다”였다. ‘전쟁의 공포 없는 한반도’를 우리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성취해 왔고, 이후 남북 정상들은 이를 다시 확인하고 또 이를 지키려 노력해 왔다고 믿는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20년이 돼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 차원에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나 역시 <오마이뉴스> 연속 기고를 통해 6.15 공동선언이 여성평화운동에 어떤 의미를 던지고 있는지 돌아보고 이 글을 준비하는 와중에 대북전단을 둘러싼 현재의 사태를 바라보며 그동안 너무 관성적으로 남북공동합의를 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깊은 반성을 한다.
남북여성들의 공동의 목소리: 여성의 힘으로 전쟁을 막자!
역사는 남성 중심의 기록(his-story)이다. 지금까지도 남북여성들이 남북의 민간인 교류를 최초로 시작하고, 1991년 북한의 여성들이 1991년 11월 판문점을 통해 남으로, 1992년 9월 남한의 여성들이 다시 판문점을 통해 방북한 역사적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1998년 고(故) 정주영 현대 회장의 소떼 방북을 분단 이후 민간인에 의한 최초의 방북으로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보다 10년 전에 벌써 동경-서울-평양-동경에서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를 통해 만났다. 특별히 1992년 평양토론회에 참석한 남-북-일 대표들이 고 김일성 주석의 초청을 받았을 정도로 남북여성들의 만남은 매우 높은 정치적 의미를 지녔다.
▲ 1992년 가을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평양토론회에 참석한 남-북-일 대표단이 고 김일성 주석의 초청을 받아 함께 찍은 사진,
당시 이 남북여성이 함께 만난 평양토론회의 정치적 위상을 엿볼 수 있다. ⓒ 자료사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1994년 이후 중단된 교류를 다시 개최한 남북여성들 700명은 2002년 10월 17일 금강산에서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 실천과 평화를 위한 남북여성통일대회’를 열었다. 2박 3일의 감동적인 통일 대회를 마치고 남북여성들을 폐막식에서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조국 통일의 새로운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6.15 공동선언 실천을 통한 통일 운동에 적극 나선다.
김정수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탈북민단체에서 대북전단을 다시 띄우고,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남한 정부가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는다는 비판 담화를 발표했다. 이후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보도문을 통해 ‘6월 9일 12시(정오)부터 청와대와 조선 노동당 사이의 직통 통신 연락선을 포함해 남북간 모든 통신 연락선을 완전히 차단·폐기하겠다’고 밝혔다. 5월 말부터 현재까지, 짧은 기간 안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정부보다 먼저 대응한 이들은 바로 강화도 주민들이다. 6월 8일 한 탈북민단체에서 강화도 인근에서 쌀을 담은 페트병을 바다에 띄워 북측에 보내려는 것을 인근 주민들이 반대했다.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불안하니 되돌아가 달라.’
6.15 남북공동선언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가능성’을 차단한 것
강화도 주민들의 ‘불안하다’는 이 말은 바로 6.15남북공동선언의 의미를 비롯해 10.4공동선언, 4.27 판문점선언, 9.19 평양공동선언 그리고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합의서의 의미를 가장 잘 요약했다고 본다.
즉 지난 20년간 남북 정상 간의 합의는 한반도에서 실질적으로 전쟁을 억제하는 기능을 해왔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서 6.15공동선언에 합의·서명하고 성남공항을 통해 남으로 돌아와 국민들에게 처음으로 한 말도 바로 “이제 더이상 한반도에는 전쟁이 없다”였다. ‘전쟁의 공포 없는 한반도’를 우리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성취해 왔고, 이후 남북 정상들은 이를 다시 확인하고 또 이를 지키려 노력해 왔다고 믿는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20년이 돼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 차원에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나 역시 <오마이뉴스> 연속 기고를 통해 6.15 공동선언이 여성평화운동에 어떤 의미를 던지고 있는지 돌아보고 이 글을 준비하는 와중에 대북전단을 둘러싼 현재의 사태를 바라보며 그동안 너무 관성적으로 남북공동합의를 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깊은 반성을 한다.
남북여성들의 공동의 목소리: 여성의 힘으로 전쟁을 막자!
역사는 남성 중심의 기록(his-story)이다. 지금까지도 남북여성들이 남북의 민간인 교류를 최초로 시작하고, 1991년 북한의 여성들이 1991년 11월 판문점을 통해 남으로, 1992년 9월 남한의 여성들이 다시 판문점을 통해 방북한 역사적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1998년 고(故) 정주영 현대 회장의 소떼 방북을 분단 이후 민간인에 의한 최초의 방북으로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보다 10년 전에 벌써 동경-서울-평양-동경에서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를 통해 만났다. 특별히 1992년 평양토론회에 참석한 남-북-일 대표들이 고 김일성 주석의 초청을 받았을 정도로 남북여성들의 만남은 매우 높은 정치적 의미를 지녔다.
▲ 1992년 가을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평양토론회에 참석한 남-북-일 대표단이 고 김일성 주석의 초청을 받아 함께 찍은 사진,
당시 이 남북여성이 함께 만난 평양토론회의 정치적 위상을 엿볼 수 있다. ⓒ 자료사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1994년 이후 중단된 교류를 다시 개최한 남북여성들 700명은 2002년 10월 17일 금강산에서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 실천과 평화를 위한 남북여성통일대회’를 열었다. 2박 3일의 감동적인 통일 대회를 마치고 남북여성들을 폐막식에서 다음과 같이 결의했다.
▲조국 통일의 새로운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6.15 공동선언 실천을 통한 통일 운동에 적극 나선다.
▲이 땅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와 안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여성들 사이에 연대와 단합을 적극 도모해 나간다.
▲남녀가 평등한 통일사회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인다.
돌이켜 보면, 2002년 남북여성들이 함께 한 공동결의는 여성평화·통일 운동의 기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들이 한반도에서 제2의 전쟁을 막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이를 위해 남북공동선언의 이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 동시에 성평등한 통일사회를 함께 준비하자!!”
이 결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금강산, 평양, 개성, 서울에서 성사된 남북여성교류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됐다. 또한 2019년 2월 12~13일 금강산에서 남북 해외 새해맞이 연대모임에서 다시 만남 남북여성들이 함께 다시 확인한 내용이기도 하다. 남북여성들의 결의는 여전히 유효하며 그런 의미에서 남북여성들의 만남과 교류는 필요하다.
2000년 이후 남북 정상들의 공동선언, 여성들의 평화의 권리를 보장
▲ 2019년 2월 오랜만에 6.15 남-북-해외 여성본부 차원의 만남이 금강산에서 이루어졌다. 위 사진은 금강산 신계사에서 남북여성들이 함께 만나 찍은 사진이다.
돌이켜 보면, 2002년 남북여성들이 함께 한 공동결의는 여성평화·통일 운동의 기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들이 한반도에서 제2의 전쟁을 막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이를 위해 남북공동선언의 이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 동시에 성평등한 통일사회를 함께 준비하자!!”
이 결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금강산, 평양, 개성, 서울에서 성사된 남북여성교류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됐다. 또한 2019년 2월 12~13일 금강산에서 남북 해외 새해맞이 연대모임에서 다시 만남 남북여성들이 함께 다시 확인한 내용이기도 하다. 남북여성들의 결의는 여전히 유효하며 그런 의미에서 남북여성들의 만남과 교류는 필요하다.
2000년 이후 남북 정상들의 공동선언, 여성들의 평화의 권리를 보장
▲ 2019년 2월 오랜만에 6.15 남-북-해외 여성본부 차원의 만남이 금강산에서 이루어졌다. 위 사진은 금강산 신계사에서 남북여성들이 함께 만나 찍은 사진이다.
6.15 남측 여성본부는 2019년 1월 30일 약 1000명이 참여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여성평화선언문”을 발표하여 남북공동선언과 합의의 실질적 이행을 촉구하였다.
ⓒ 평화를만드는여성회
SGBV(Sexual & Gender-Based Violence: 성폭력과 젠더폭력)는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무력분쟁 상황에서 겪는 여성과 소녀들의 경험을 드러내는 용어일 정도로 여성과 소녀는 전쟁과 무력 분쟁에서 가장 큰 피해자 집단이다. 남북여성들이 6.15 공동선언을 비롯해 남북 정상이 합의한 공동선언의 충실한 이행을 주장해 온 까닭은 바로 남북의 공동선언 이행이 여성들을 비롯한 한반도 주민들의 평화권을 보장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의 가장 큰 피해자였지만 전쟁과 분단폭력의 피해자로 머물지 않고 한반도 평화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남북여성교류는 그런 의미에서 여성들의 한반도 평화 만들기 노력의 일환이었다.
6.15 남북공동선언 20년을 맞이하는 현재, 지난 20년간 유지돼온 실질적 종전은 안타깝게도 공식적 종전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남북여성교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여성연대 그리고 2008년과 2015년의 짧은 만남 외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1991년 일본 여성들이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 통해 남북여성이 분단 후 처음으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처럼, 2015년 5월 24일 노벨평화상 수상자들과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도 북에서 남으로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Women Cross DMZ 행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과정에 남북여성들과 함께 참여하게 됐다.
▲ 2015년 5월 25일 Women Cross DMZ 행사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이 북에서 남으로 군사분계선을 통과한 후 행진하고 있다.ⓒ 평화를만드는여성회
2019년부터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전국여성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YWCA연합회 이렇게 4개의 여성평화운동 단체들은 여성평화운동네트워크를 조직해 국제여성평화운동 단체들과 협력해 ‘한반도 전쟁 종식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Korea Peace Now. Women Mobilizing to End the War’ 글로벌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여성들의 삶의 안전과 안녕이 보장된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기 위하여, 남북여성들의 실질적 삶의 질이 향상되는 성평등한 통일사회를 준비하기 위하여 지난 30년 동안 남과 북 그리고 해외의 여성들이 함께 노력해 왔다. ‘여성, 평화의 힘으로.’ 여성들이 전쟁과 무력 분쟁의 피해자가 아니라, 평화건설과 평화창조의 주체가 되는 한반도 평화과정에의 여성들의 의미 있는 참여는 계속될 것이다.
오마이뉴스에서 보기 >> http://omn.kr/1nw1g
SGBV(Sexual & Gender-Based Violence: 성폭력과 젠더폭력)는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무력분쟁 상황에서 겪는 여성과 소녀들의 경험을 드러내는 용어일 정도로 여성과 소녀는 전쟁과 무력 분쟁에서 가장 큰 피해자 집단이다. 남북여성들이 6.15 공동선언을 비롯해 남북 정상이 합의한 공동선언의 충실한 이행을 주장해 온 까닭은 바로 남북의 공동선언 이행이 여성들을 비롯한 한반도 주민들의 평화권을 보장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의 가장 큰 피해자였지만 전쟁과 분단폭력의 피해자로 머물지 않고 한반도 평화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남북여성교류는 그런 의미에서 여성들의 한반도 평화 만들기 노력의 일환이었다.
6.15 남북공동선언 20년을 맞이하는 현재, 지난 20년간 유지돼온 실질적 종전은 안타깝게도 공식적 종전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남북여성교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여성연대 그리고 2008년과 2015년의 짧은 만남 외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1991년 일본 여성들이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 통해 남북여성이 분단 후 처음으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처럼, 2015년 5월 24일 노벨평화상 수상자들과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도 북에서 남으로 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Women Cross DMZ 행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과정에 남북여성들과 함께 참여하게 됐다.
▲ 2015년 5월 25일 Women Cross DMZ 행사 국제여성평화운동가들이 북에서 남으로 군사분계선을 통과한 후 행진하고 있다.ⓒ 평화를만드는여성회
2019년부터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전국여성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YWCA연합회 이렇게 4개의 여성평화운동 단체들은 여성평화운동네트워크를 조직해 국제여성평화운동 단체들과 협력해 ‘한반도 전쟁 종식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Korea Peace Now. Women Mobilizing to End the War’ 글로벌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여성들의 삶의 안전과 안녕이 보장된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기 위하여, 남북여성들의 실질적 삶의 질이 향상되는 성평등한 통일사회를 준비하기 위하여 지난 30년 동안 남과 북 그리고 해외의 여성들이 함께 노력해 왔다. ‘여성, 평화의 힘으로.’ 여성들이 전쟁과 무력 분쟁의 피해자가 아니라, 평화건설과 평화창조의 주체가 되는 한반도 평화과정에의 여성들의 의미 있는 참여는 계속될 것이다.
오마이뉴스에서 보기 >> http://omn.kr/1nw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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