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2

일본 ‘리버럴’에 속지 마라, 더 위험하다 : 서경식 - 언어의 감옥에서-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일본 ‘리버럴’에 속지 마라, 더 위험하다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일본 ‘리버럴’에 속지 마라, 더 위험하다

등록 2011-04-01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중도 자처하는 양심적 지식인?
공허한 양비론으로 본질 흐려
서경식 교수 “밖에선 안 보여”
<언어의 감옥에서-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권혁태 옮김/돌베개·2만원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엄정하게 인식하고 자신들의 역사를 자기부정하는 것은, 일본인 스스로의 도덕적 갱생과 영구적인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인은 장래에도 ‘항일투쟁’에 계속 직면할 수밖에 없다.”


서경식(사진) 도쿄경제대 교수가 이런 글을 쓴 것은 1989년이었다. 서 교수는 ‘네 번째 호기’라는 제목을 단 이 글을 20여년 뒤 한국에서 엮어낸 자신의 두 번째 평론집 <언어의 감옥에서>에 다시 수록했다. 그때의 문제의식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2월 책 서문을 쓰면서 그는 지금의 일본을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상태로 진단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파의 야비한 욕설이 울려 퍼지고 리버럴 세력은 공허한 양비론을 중얼거리며 방관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무참한 사회를 젊은 세대에게 남겨주게 되었다.” 그래서 “이 황량한 현실을 살아가야만 하는 젊은 세대에 대한 책임감에서 무거운 마음을 북돋아” 썼노라고.



우리는 그 실상의 일단을 지난 30일 발표된 일본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대지진과 해일(쓰나미), 원전 사고라는 3중 재난이 부른 비극 속에서도 일본 우파의 집요한 독도 공작은 멈추지 않았고 다수의 중간파 리버럴들은 공허한 양비론을 읊조리며 거기에 가담하거나 침묵했다. 대지진의 비극이 동아시아 연대를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바랐던 이들에게 그것은 ‘야비한 욕설’로 들리지 않았을까. 당연히 ‘항일투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 유구한 항일투쟁을 멈추게 할 결정적 계기가 세번 있었다고 말한 사람은 와다 하루키 교수다. 와다 교수는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이 터지자,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부정하고 조선반도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창조해나갈 호기(好機)” 가 다시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런 호기는 일본 패전(1945) 때도, 한-일 국교정상화(1965) 때도 찾아왔으나 일본인들은 이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며, 그는 김대중 납치사건을 제3의 호기로 삼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 기회도 무산됐다. 서경식 교수는 거기에 빗대 1989년 히로히토 일본국왕의 죽음을 ‘계속되는 식민지주의’를 끝장낼 ‘네 번째 호기’로 삼자고 주장했다. 그 역시 무산됐다. 그리고 다시, 역설적이게도 이번 일본 대재난이 제5의 호기가 될 뻔했으나, 교과서 검정 결과를 통해 재확인된 일본 우파의 야비함과 리버럴의 모호한 공허가 다섯 번째 호기마저 날려버릴 공산이 커졌다.

일본 우파에 대해 우리는 좀 안다고 할 수 있다. 국수적 천황주의자인 그들의 행태는 날것으로 드러나 있고 그들의 전략 또한 단순우직하다. 하지만 그 우파에 동조하거나 방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들 편이 돼버리는 일본 리버럴들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들은 누구인가? <언어의 감옥에서>의 핵심 메시지는 바로 이 질문에 응축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리버럴은 우파의 노골적인 국가주의에는 반대한다. 그들은 비합리적이고 광신적인 우파와 구별되는 이성적인 민주주의자로 자임한다. 정당으로 치면 사민당이나 민주당 왼쪽 세력, 신문으로 치면 중도적 <아사히신문>이 거기에 속할 것이고, 이른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대다수가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스테레오타입화한 일본 우파에 대한 경계심이나 비판의식으로 무장하고 일본에 처음 가 본 사람들은 뜻밖의 상황과 조우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본 일본인들 대다수는 그들이 간직했던 우파(극우) 이미지와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배려하며 합리적이고 양심적이며 부드러운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리하여 우파에 대한 고정관념 위주로 형성된 한국인들의 일본인관은 일거에 무장해제당하기 쉽다. 서 교수는 그렇게 해서 형성된 한국인들의 우호적인 일본인관은 대체로 부정확하고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며 “안타까운 일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조차 하다”고 말한다.

서 교수는 지난 20여년 동안 일본 리버럴 지식인들은 사상적으로 끝없이 퇴락해왔다고 본다. 그것이 일본의 비극이다. 중간을 자처하는 리버럴은 우파의 왕당파적 국수주의나 공격적인 국가주의를 거부하지만 그들과 같은 일본 ‘국민’으로서 향유하는 기득권에 집착하면서 자기중심적 ‘국민주의’로 퇴락해갔다. 이 국민주의는 어떤 국면에선 우파의 국수·국가주의와 대립관계를 이루지만 식민지배를 통한 약탈과 노동착취를 통해 축적된 일본 국민의 윤택한 경제생활이나 문화생활, 곧 일본 국민으로서 향유하는 자신들의 기득권이 외부의 타자(또는 내부 타자인 재일외국인, 곧 ‘비국민’)로부터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우파와 보완관계, 공범관계로 전환한다. 그때 리버럴 다수는 시종 양비론을 앞세우며 방관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그것이 지난 수십년간 일본 우파의 대두를 결정적으로 도왔다. 외부인들의 눈에는 이게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빤히 보이는 우파보다 리버럴이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서 교수는 얘기한다.



언어의 감옥에서-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우파 논리를 비판하는 듯하면서도 결국 일본 국민적 공동체 재건에 집착하는 <패전후론>의 가토 노리히로를 비판한 ‘전후 책임론’의 주창자 다카하시 데쓰야는 “외부의 피해자를 대변해서 일본 동포를 규탄하는 윤리주의자”로 낙인찍히고 고립당한다. 서 교수는 개인적 ‘죄’는 없을지라도 일본 국민으로서의 윤택을 즐기면서 ‘계속되는 식민지주의’를 결과적으로 옹호하는 ‘일본 국민으로서의 책임’은 져야 한다는 다카하시를 오히려 내셔널리즘의 함정에 사로잡혔다고 비판하는 페미니스트 우에노 지즈코의 생각이야말로 “내셔널리즘 비판과 전후 책임 회피의 뒤집어진 결합”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한-일 간의 문제는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들보다 자기비판과 책임의식이 현저히 부족한 한국 쪽 내셔널리즘 탓이라며 피해자인 한국이 먼저 화해를 청해야 한다는 주장이 얼마 전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서 교수에게 이런 ‘가짜 화해’는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일 뿐이다. 그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일본 리버럴의 사상적 퇴락을 더욱 조장함으로써 일본 우경화를 부추기는 죄악일 수 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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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퇴행의 책임, 일본 리버럴에 있다
2017-08-31 19:59
정의길 기자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809170.html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퇴락한 반동기의 사상적 풍경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나무연필·1만6000원

“와다 선생의 방향 설정은 잘못된 게 아닌가, 라는 것이 나의 논점이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그는 선한 사람이다’라는 식의 반격은 논점에서 벗어난 것이고 (…) 악의적인 바꿔치기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는 한국과 일본 두 사회에서 모두 ‘타자’다. 그는 한국에서는 재일동포라는 국외자로, 일본에서는 재일조선인이라는 소수자로 살아왔다. 한국에서는 두 형이 간첩단 조작사건으로 참혹한 곤경을 겪고, 일본에서는 차별과 배척을 받았다. 그의 가족사는 두 사회의 주류와 다수자들이 볼 수 없는, 아니 보지 않으려는 불편한 진실을 대면케 한다. 그가 겪는 신산한 삶은 전작인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보여준 풍부한 인문학적, 문학적, 역사적 소양으로 승화됐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에서 칼을 꺼낸다. 한일관계와 일본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의 양심을 대변한다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에 대한 그의 직설적 비판이 대표적이다. 그가 이 책에서 건드리는 불편한 진실의 대상은 일본의 진보 진영이다. 그는 아베 신조 정권으로 상징되는 최근 일본의 퇴행과 반동의 책임을 우리에게는 진보 진영으로 인식되는 ‘리버럴파’에 묻는다.

그에 따르면 일본 사회는 1990년대 이후 긴 ‘반동의 시대’로 들어갔다. 1990년대 중반까지의 ‘사회당·총평(일본노동조합평의회)’계 그룹, 신문을 예로 든다면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도쿄신문>과 그 독자층으로 구성된 일본의 리버럴파는 일본 안팎의 조류에 붕괴했다. 사회주의권 붕괴와 동서 대립 구도의 종언, 신자유주의의 도래 앞에 투항한 것이다.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권위주의 체제가 동요하며 민주화가 진행된 결과,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봉인된 전쟁범죄 문제가 표면에 떠올랐다. 하지만 당사국 일본은 이 벡터가 역방향으로 향했다.

진보 세력을 결집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에, ‘탈이데올로기 시대’라는 천박한 구호와 함께 스스로 자기붕괴의 길을 택했다. 진보적 입장을 대변하던 사회당은 보수 우파인 자민당과의 연립을 받아들였다가 결국 소멸로 갔다. 국가주의에 저항하며 일장기 히노마루와 국가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하던 교원노조는 이를 용인했다.

서경식은 위안부 문제를 제국 운영의 부수적 피해라고 주장하는 ‘박유하 현상’에 빗대 이를 설명한다. “박유하의 언설이 일본 리버럴파의 숨겨진 욕구와 정확하게 합치하기 때문이다 (…) 우파와 일선을 긋는 리버럴파 다수는 이성적인 민주주의자를 자임하는 명예 감정과 옛 종주국 국민으로서의 국민적 특권 모두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그의 이런 비판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와다 교수의 현실주의적 선회로 보면 이해된다. 와다 교수는 2015년 12월28일의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백지 철회하도록 하는 것은 ‘일의 경과로 보건대 어렵다’고 말한다. 새로운 해결안을 내놓게 할 힘이 일본 국내에는 없기 때문에 그 한일 합의가 개조·개선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책은 그가 최근에 쓴 일본에 관한 글을 골라 모은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놓고 와다 교수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두 편의 글, 그가 소수자로 일본 사회를 바라보는 애국주의, 개헌, 안보법제 문제 등을 해부한다.

그에게 일본 리버럴파는 두 나라와 그 관계의 미래를 위해 버리거나 매도할 수 없는, 아니 끝까지 같이 가야 하는 세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경식의 불편한 진실 뒤집어내기는 결코 해코지가 아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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