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6
호사카 유지-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즈의 저에 대한 글에 대한 반박문 | 독도와동아시아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즈의 저에 대한 글에 대한 반박문 | 독도와동아시아
코리아 히스토리 타임즈의 저에 대한 글에 대한 반박문
2017/07/07
오종홍 기자님.
논라운 기사를 발견하여서 메일을 드립니다.
먼저 제가 교묘하게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말한다는 그쪽의 주장은 큰 잘못이자 저에 대한 모욕입니다.
저는 20년의 독도연구로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저에 대한 왜곡된 주장이 나왔는지 저는 잘 압니다.
저에 대한 시기와 정치적 의도 때문입니다.
아래에 바로 잡습니다.
이번 기사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제보를 받고 쓴 것으로 되어 있는데
저는 그 제보자가 누군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
바로 나** 박사님이십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씨도 독도연구자이고 독도연구의 원로격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안 좋은 버릇이 있습니다.
항상 제가 대중 강연을 할 때 찾아오셔서 강연 마지막에 저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그는 공개학술 회의장에도 반드시 나오십니다. 그때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긴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그분의 질문은 질문이라기보다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시는 것이고
마지막은 발표자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으십니다.
중간에서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로도 말씀 하시기 때문에 강연이나 회의 진행자가 난처합니다.
시간도 없는데 그분이 10분-20분 혼자 강연을 하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많은 청충들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어이없이 합니다.
올해 3월16일 교보문고에서 저의 두 번째 독도강연(오후 7시30분-9시)이 있었을 때 300명정도가 들으러 오셨습니다.
그때도 오후 9시에 강연이 시간대로 끝났고 사회자가 이제 끝나는 시간이라고 했는데 손을 들으셔서 의견을 말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제가 “나** 선생님! 이제 밤이 깊으니 나중에 저와 둘이서 얘기하시지요.”라고 말해 그분의 말씀 도중에서
그날의 저의 특강을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그분이 무엇인가 욕하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왜인지는 잘 모르지만 제가 다음날 전화를 직접 나**씨한테 걸어서 부탁을 했습니다.
“서로 아는 사이고 다 아는 내용이니 저의 연구실로 오시면 언제든지 함께 얘기를 나눌 수 있지 않겠냐, 강연장에서는 일반 시민들에게 좀 양보하시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말했더니
처음은 싫다고 다시 나의 강연장으로 찾아가겠다고 하셨지만 결국 그분이 저에 대한 의견이 있을 때 저의 연구실로 오시는 데 동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이 맺혔는지 그쪽에 제보를 하셨군요. 저는 왜그런지도 잘 압니다. 그러나 나**씨의 명예를 지키는 차원에서 그점은 여기서는 밝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1951년 4월 7일 미국초안은 <동아시아의 영토분쟁과 국제법>(이석우 저, 2007, 집문당, p. 176, pp.191-192)에 출저와 함께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저가 출저를 밝히지 않아서 문제는 있었지만 근거는 위 책입니다.
또한 저의 잘못이 있다면 다른 자료들은 다 원문을 갖고 있는데 이 자료만 미국에서 원문을 입수하지 않았고 위의 책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자료제시가 명백하기 때문에 미국 측에서 원문 입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초안이 제가 주장하는 핵심내용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을 빼도 저의 주장은 바뀌지 않습니다.
즉 미국은 독도를 일본영토로 하고 싶어했다는 내용입니다.
독도를 일본영토로 쓴 초안과 연합국에 대한 미국 측 의견은 1946년 11월 19일, 1949년 12월 29일 초안, 1950년 1월의 두 개 초안, 1951년 10월 26일자 호주의 질문에 대한 미국의 답변 등 많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독도를 일본영토로 하고 싶어했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그러나 다른 엽합국들의 반대로 그것을 철회하려고 했고 1951년 6월에 합의된 영미합동초안에서는 독도명칭을 초안에서 삭제했습니다.
그런데 1951년 8월 미국은 대한민국에게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러스크 서한’을 송부합니다.
저의 논지의 핵심은 ‘러스크 서한’을 비판하여 극복하는데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러스크 서한’이 일본 측 독도영유논리의 핵심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러스크 서한이 일본 측 독도영유논리의 핵심이라는 것은 다음 사이트에 들어가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한국어 페이지도 있으므로 잘 보십시오.
http://www.kr.emb-japan.go.jp/territory/takeshima/issue.html
‘러스크 서한’이 일본 측 독도영유권 주장의 핵심 중 하나이므로 반드시 비판, 극복해야 한다고 저는 주장해 왔으나
한국 **부 등은 한미관계를 고려해 그것은 못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대신 저의 주장을 수용한 동북아역사재단의 독도관련 사이트나 독립기념관의 독도관련 사이트나 팸플릿에는
러스크 서한에 대한 비판이 들어갔습니다.
1951년 당시 독도에 대한 미국의 주장은 1951년 8월 10일의 ‘러스크 서한’에 ‘독도는 사실상 1905년 이후 일본영토’라고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서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 미국만의 견해이고 공개되지 않았을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만 송부된 비밀문서이기 때문에 무효라는 것이 저의 주장의 핵심입니다.
즉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하는 일본 측 최대의 왜곡주장 러스크 서한을 비판, 극복해 버리는 것이 저의 목적이고 미국 측 초안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자님이 저의 주장의 핵심을 왜곡하시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 한국 내에서 싸우고 물어뜯고 힘을 소진해 버리는 것이지요.
러스크 서한을 비판, 극복해 버리면 일본이 내세울 것이 별로 없어집니다.
러스크 서한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제가 SSCI논문(=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고급논문)으로 인정을 받은 적이 있어 그 논문을 첨부합니다.
그리고 러스크 서한을 극복하는 ‘밴플리트 보고서'(1953)와 ‘델러스 보고서'(1954)도 제보자의 주장과는 달리 항상 제가 강연 때 사람들에게 강의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1954년 이후 미국이 태도를 바꿔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한다는 내용도 현재의 미국의 지명위원회의 독도페이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강의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강의파일도 보내드립니다.(이 파일은 보도 이외의 목적으로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국 저는 한국 외교부 등이 회피하는 일본 측 핵심 논리 극복을 항상 강도 높게 주장하고 있으며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일본 측 국제법적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어디에서나 역설하고 있습니다. 기자님도 직접 저의 강연을 들으시면 아실 겁니다.
한국의 정서로는 한국에 좋은 얘기만 듣고 싶을지 모르지만 저는 팩트를 중요시합니다.
팩트를 놓고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을 비우면 진실이 보이고 진실 쪽으로 역사는 움직이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저의 순수한 의도를 왜곡시키면서 한국을 위한 저의 행보를 방해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저를 공격하려는 새력과는 끝까지 사투를 벌일 생각입니다.
진실이야말로 저의 생명이기 때문이지요.
저를 비판하는 분들은 제가 미국을 비판한다고 단락적으로 생각해서 저를 비판하는 경향이 있는 것같습니다.
그들은 미국이 절대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한국에서 반미감정이 일어나는 일에 마치 제가 조력하고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먼저 진실을 알고 그 다음에 한국에 불리한 내용이라면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문제 극복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큰 문제점은 불편한 사실을 덮어버리려는데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에 불리하게 보이는 사실을 일시적으로 덮어버리려는 의도는 언젠가 실패로 돌아간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제가 문재인 캠프에서 자문을 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저에 대한 공격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블랙리스트 문제는 끝난 문제가 아니라 진행 중입니다.
일부 세력들이 앞으로도 저를 공격대상으로 삼고 꾸준히 저를 공격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면 할 수록 저는 제 자신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해
환영합니다.
기자님은 저의 반박문 전문을 개제할 책임이 있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호사카 유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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