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중립화', 한반도 평화의 답이다.
<제언> 한반도 평화정착의 장기적 과제
김민웅 재미 언론인ㆍ목사
2003.01.01
북한의 핵 문제 해결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핵심적 관건은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패권적 지배정책의 포기이다. 그리고 이것을 실현해나갈 수 있는 미래적 평화체제의 형태는 지난 1백년의 우리 민족사적 경험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고 우리 자신의 행동반경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영세중립화' 외에는 없다.
이것은 일체의 제국주의적 패권이 한반도의 운명을 장악하거나 우리 민족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가능성을 차단하는 구조이자, 우리 자신이 동북아시아 평화의 주도적 창출자로서의 역할을 맡는 세계사적 의미를 가지게 하는 선택이다.
주변 열강에 의해 간섭을 받거나 지배당해온 민족의 처지와 현재 우리가 직면해 있는 미국에 의한 우리의 주권 유린사태를 극복하고, 그 어떤 나라와도 불평등하거나 적대적 관계로 위협 당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면 '한반도의 영세중립화' 문제는 이제 최대의 민족사적 프로젝트로 설정해야 할 현안이다.
***한반도 영세중립화, 최대의 민족사적 프로젝트가 되어야**
우리와 같이 첨예한 국제적 대립의 와중에 있는 약소민족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적어도 세 가지의 진로가 있다.
- 첫째는 무장력을 최대한 강화하는 것이며
- 둘째는 강대국과 동맹체제를 맺는 것이고
- 세 번째는 중립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첫번째 선택은 우리를 한없는 군비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며 보다 강한 무장력을 갖고 있는 나라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될 빌미를 준다는 점에서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예비적 단계에 스스로 돌입하는 꼴이 되고 만다.
두번째 선택은 강대국과의 동맹체제가 우리로 하여금 그 강대국과 맞선 나라와 적대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동맹의 성격이 기본적으로 불평등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종속 내지는 식민지적 위치로 전락하게 되는 근거가 된다. 우리는 현재 바로 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복합적 형태로 민족의 안보문제를 대하고 있는데, 그로 인한 현실은 민족 자주권의 훼손이 심화되고, 항상적 긴장과 전쟁의 가능성이 계속해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번째는 바로 이러한 앞의 두 가지 방식이 강대국의 영향권 내에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국에는 맡겨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과는 전혀 반대의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 즉, 강대국들의 관계가 어떠하든 관계없이 중립화는 모든 교전상태 내지는 잠재적 적대 관계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평화의 기본구조가 우리의 국제적 지위에 내장되도록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경제발전과 문화적 성숙에도 엄청난 자산이 되어 한반도를 살기 좋은 나라로 변화시켜나가는 동력이 되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반도 영세중립화에는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이 적지 않다. 우선 중립화의 실상을 어떻게 설정하고 그 방향을 정하는가의 문제가 최우선의 과제이다. 이 대목은 매우 신중하고 구체적으로 사고하고 연구해야 할 대목이며 이에 대한 정리가 확실할 때 우리는 중립화 전략을 확고하게 밀고 나갈 수 있다.
왜 그런가? 중립화는 자칫 잘못 접근하는 경우, 중립화가 명분이 되어 우리 자신의 민족적 방위력을 위험한 지경에까지 손상시킬 수 있는 무장해제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 민족사의 경험 속에서도 확인되는 바이지만, 강대국의 담합이 우리의 등뒤에서 이루어지면 무장력이 약화된 중립화는 어이없게도 다국적 식민지의 길을 여는 첩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강대국들이 서로의 영향권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아예 한반도를 완충형 중립지대로 만들어 이를 공동관리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면 중립화는 강대국들 사이의 중립을 의미할 뿐 우리 자신은 지난 역사 속의 상전들이 모조리 복귀하여 다시 주인행세를 하는 비운에 처하게 된다.
***중립화의 기본 환경 요건은 동북아지역의 상호군축 감시체제 확립**
따라서 이 중립화의 기본 환경요건은 '동북아시아 집단안전보장체제'이다. 이 집단안전보장체제는 그 핵심이 “상호군축감시체제”에 있다. 즉 집단적인 군축 실현이 보장되는 방식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중립화는 우리와 같은 약소민족에게 자해적 조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집단적 군축 실현은 물론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동북아시아 평화체제의 중대 관건이며, 이 작업의 결정적 계기가 제대로 확보되면 반드시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그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최대의 무장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군사력이 퇴각하고 이를 고리로 하여 남과 북이 주변 4대 강국과 교차적으로 상호 불가침 조약을 체결, 확정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군축문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하는 것이다.
이 발상은 미군이 동북아시아 지역의 균형자인가 아니면 무장력 증강의 주범인가를 판명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이른바 균형자 이론은 미군 퇴각의 군사적 공백에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상은 미국의 군사력 증강이 이 지역의 군비경쟁을 지속적으로 촉발하고 있고, 일본의 무장력 강화의 토대로 기능하고 있으며 남북간의 무장력 대결주의를 심화시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의 군사력 퇴각은 이 지역의 새로운 군사적 충돌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군축의 논리적, 현실적 근거를 마련해주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주변 강대국이 이러한 상황 변화를 군축 지향적으로 풀지 않고 군비증강의 절호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 존재한다. 따라서 이 지역의 미국 군사력 퇴각은 군축에 대한 국제적 논의, 그리고 이를 실현해나가기 위한 움직임과 아귀 맞게 물려가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미국은 베트남전쟁의 개입과정에서 베트남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규정한 1954년 제네바 합의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제네바 합의 파기를 주도했고, 베트남 전쟁 과정에서 베트남 중립화 논의가 나왔을 때 이를 미국의 간섭과 개입을 배격하는 논리로 받아들여 중립화 논의 주도세력들을 정치적으로 제거해버렸다. 이러한 역사적 실례로 볼 때에도 우리의 중립화 논의에 대하여 미국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즉, 미국의 중립화 논의 반대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를 압박해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중립화 논의가 한반도의 내부적 무장상태를 군축의 방식으로 풀기로 작정하고 그 군축의 대상에 주변 열강을 포함하여 미국의 군사력까지 포함시켜 이를 중립화와 관련된 국제적 논의의 장으로 끌고 나가는데 성공할 수 있다면 미국은 군축 논의와 중립화 논의, 이 양자를 한꺼번에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너무나도 명분과 가치가 있는 주장인데다가 평화체제의 전제적 요건을 만드는 일이기에 이에 대한 미국의 반대는 우리 민족의 저항과 국제적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게 된다.
***중립화와 군축논의의 결합, 휴전협정체제의 평화협정체제 이행으로부터 시작**
이 논의를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는 논리는 간단명료하다. “우리는 영세중립의 지위를 원한다. 중립은 그 어떤 외국의 군대도 그 나라에 있지 않은 것을 전제로 한다. 그와 동시에 이 지역의 국제적 군축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조건에서 이 일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중립의 안전이 보장된다.”
중립을 원하는 나라에서 외국 군대가 계속 주둔할 수 있는 명분과 이유는 사라진다. 그리고 외국 군대의 철수가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군사환경의 중대한 변화라고 한다면 그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군축을 동시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하며 일본의 군축도 이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요구할 수 있게 됨을 뜻한다.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 일정하게 이루어져나가면 미군의 균형자 이론 운운은 현실적으로 폐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역시 이 군축 논의는 작은 차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장기적으로 큰 흐름을 만드는 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 그 작은 차원이란 일차적으로 한국전쟁의 평화적 해결이 미완된 상태인 현재의 휴전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이행시키는 작업을 의미한다.
이 평화협정 체제의 결성은 남북간의 군사력 제1단계 축소와 양측이 전방에 배치한 군사력 후진, 그리고 이와 동시에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의 실질적 표명인 북한과의 불가침 조약 체결 및 단계적 미군 철수 프로그램 확정과 추진이 일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절차를 확인하고 국제적으로 검증하는, 주변 4대 강국과 남북한, 그리고 유럽연합의 7자 대표위원회를 가동시켜 군축과 중립화의 초기단계에서부터 국제적 지지 기반을 만들어 가고 이 문제를 푸는 경험과 신뢰를 관련당사자간에 축적해나가는 것이다.
이 방식은 다국적 개입의 가능성을 만든다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남과 북이 주축이 되어 이 위원회의 기능을 이끌어나가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민족 내부의 대외정책상의 공동대응 능력이 강화되고 어느 일방적 패권세력의 주도권 행사에 제동을 걸 수 있으며 향후 중립화 실시에 대한 국제적 보장의 틀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이점(利點)이 있어 선택할 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중립화/군축/동북아집단안전보장 체제의 다층적 결합은 한반도의 통일에도 가속도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반도의 평화는 통일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한 항상적 불안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 그런데 통일 문제는 적어도 '영세 중립'이라는 민족적 공동의 지위가 국제적으로 확보되는 순간부터 그 차원을 달리하는 상황으로 가게 된다. 내부적으로 서로를 군사적 적대관계로 상정할 이유가 없게 되고, 대외적으로 강대국의 입장에 따라 민족 분열적 상태를 고수할 원인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 남과 북 두 체제는 외교와 국방 이 두 부문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난제들을 이미 어렵지 않게 해결하는 셈이 되고 그 여력으로 연방체제이든지 국가연합이든지 내부적 체제 융합의 과정으로 안정되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영세중립화 체제는 남과 북이 서로 안보상의 부담을 대폭 축소하면서 외부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을 받지 않는 가운데 각기 가지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공동의 번영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해주고 그 결과를 공동으로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근간이 될 것이다. 지금처럼 퍼주기 운운이 아니라, 상대를 이롭게 하는 것이 결국 민족 전체의 복리 증진에 도움이 되는 그런 일체화된 상태로 전환해나갈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영세중립화 논의, 우리 민족의 절박한 현실에 대한 응답**
오늘날, 이 중립화 논의가 얼마나 우리 민족의 절박한 현실에 대한 중요한 응답이 될 수 있는 것인지는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정책의 존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 민족의 절반이 자칫하면 세계 최강대국의 침공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자신 역시 그에 따라 결코 안전하지 못하며 이 민족의 생존이 백척간두에 있게 됨을 뜻한다.
유엔의 대 이라크 사찰 결의안 통과의 과정에서, 그리고 그 이후 사찰단의 이라크 입국 과정에서 외교적 접근은 그저 말로만 그치고 끊임없이 전쟁추진으로 상황을 몰아가고 있는 미국 부시정권의 현실은 우리에게 우리 민족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구성해야 모두의 생존을 지켜내고 후세들을 위해 평화롭고 안전한 조국을 물려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도록 하고 있다.
'한반도의 영세중립화' 논의는 간단한 듯 하나 매우 복잡하기 짝이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실은 엄청나다. 그러한 가치를 지닌 이 작업의 대의를 우리 사회 전체가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그 구체적 과정에 대하여 장기적 안목에서 파악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능력을 길러나간다면, 이것은 결코 논의로만 그치게 되는 환상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당연한 권리이자 미래의 청사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세중립화'를 외치는 나라와 민족을 제국주의적 패권체제가 지배하기 어렵고, 점령군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동맹군의 존재 또한 생각할 수 없으며 강대국의 군사주의적 적대정책의 희생제물이 될 가능성도 이토록 높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실로, 주변 국제정세의 움직임을 명확하게 꿰뚫고 우리 내부의 역량을 결집하여 우리가 진실로 한반도의 운명, 그 명실상부한 주인이 되는 역사를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김민웅 재미 언론인ㆍ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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