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 「만영감의 죽음」을 중심으로-
노상래**1)
∥차례∥
1. 서론
2. 왜 일본어소설인가?
3. 조선의 ‘아귀’가 죽음을 통해 획득한 미적 근대성
4. 결론
【국문초록】
- 차남 근의 죽음은 춘원의 가치 에 일 변 을 가져온다. 특히 이념으로서의 문학 에서 미 상으로서의 문학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의 일본어 소설 「만 감 의 죽음」은 이 수 문학에 있어 하나의 분기 이라 할 수 있다.
- 비록 일본어로 쓰인 작품 이긴 하지만 이 소설은 이 에 보여주던 그의 문학세계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민족주 의 거 담론이나 안창호나 이순신으로 표되는 문제 개인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 서 만날 수 있는 ‘사람’에 한 소설이라는 에서 비로소 「만 감의 죽음」은 근 소설의 본질에 근 했다고 볼 수 있다.
- 특히 주인공 만 감의 죽음을 통해 근 의 물성을 고발 함과 동시에 자본과 결탁된 통 질서의 그릇된 권 를 해체하려는 춘원의 작가정신은 이 의 문학세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목이다.
- 지고지순한 사랑을 해 죽음까지 불사 하는 만 감을 통해 춘원은 죽음의 미 근 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이 미 근 성은 춘원 문학이 도달한 소설의 근 성을 의미하며, 향후 개될 그의 소설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에서 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주제어:사람에 대한 글쓰기, 죽음, 미적 근대성, 대중성, 일본어 글쓰기
* 이 연구는 2008학년도 남 학교 학술연구조성비에 의한 것임.
** 남 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1. 서론
‘국어’라고 함은 일반 으로 내 인 개념을 지칭한다. 그리고 ‘한국어’ 라고 하면 그것은 외 인 개념으로 인지된다. 그런데 식민지하 조선에서 조선어가 국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일본어가 국어로서 기능하게 되었 을 때 조선인 문인들에게 언어 문제는 심리 으로 매우 혼란스러우면서도 곤란한 양상을 야기하 다. 일본어를 국어로 인정할 경우 이민족인 조선인 에게 국어는 내 인 개념인 동시에 외 인 개념으로 인지될 수밖에 없 었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일국가 일언어라는 명목으로 아이 어나 류쿠(琉球)어를 무시하고, 지방어를 방언으로 억압하며” 일본어를 “국민국가에 필요한 표 어로서 균질화하려 한 것”1)처럼 조선어 한 그 와 같은 철을 밟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조선문인이 일본어를 국어로 인정하건 하지 않건 일본어로 창작할 경우 민족 감정에 배됨은 물론 일본의 식민지인 동화정책에 동조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심리 부담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당시 일본어 수용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나 는 1930년 가 되면 일본의 식민지이거나 식민지인 만ㆍ조선 만주 국에서는 “독자 인 ‘국어’의 창출이나 보 이 시도되고 있었고,2) 다른 한 편에서는 식민지 지배에 항하기 해 일본 ‘국어’가 수용되어 일본 ‘국어’ 로 쓰인 문학이 독서시장을 형성”3)하게 되기 때문에 조선인의 일본어 창
1) 藤井省三, 東アジアの諸「國語」文學と「國民」映畵」, 「帝國」日本の學知 第5券東アジアの文學ㆍ語空間, 東京 : 岩波書店, 2006, 10쪽.
2) 조선의 경우 1933년 11월 4일 조선어학회에서 발표한 ‘한 맞춤법통일안’이 표 인 사례이며, 국의 경우 1928년 국민당에 의한 화민국 통일 이후 국 륙의 규모에 맞는 문화시장이 형성되며, 북경어 ‘국어’문학의 황 시 가 열린 것이 그 좋은 일 것이다.
3) 藤井省三, 앞의 , 2쪽. 항수단으로서의 일본어 차용은 김사량의 일련의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작은 문학 내 인 문제 뿐 아니라 문학 외 인 정치 논리까지 혼융되어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는 이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어떤 작가의 일본어 수용이 자발 인 일본어 습득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식민 지 지배에 항하기 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인지에 한 여부를 밝히 는 일이다. 이것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민족 이냐 반민족 이냐, 즉 친일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잣 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민족(민족 주의)에 근거한 수탈과 항이라는 이분법 사고는 친일이라는 개념을 필 수 으로 동반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족이 라는 잣 를 벗어던지고 개인과 사회의 분화라는 잣 를 가지면 제국주의 통치에 한 항 행 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거기에 식민지 모어 인 일본어 쓰기가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일본어 쓰기가 반드시 친일 일 수 없는 근거가 된다.
수탈과 항의 사고로는 개인의 정체성이 민족이라는 거 담론에 의해
어떻게 억압되고 무시되었는지를 밝히기란 쉽지 않다. 특히 이 수의 일본 어소설 「만 감의 죽음」4)은 수탈과 항이라는 이분법 사고에서 한 발 떨어져 바라보면 소설의 내 맥락 속에서 사뭇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발견 할 수 있다. 민족, 해방, 역사라는 거 담론이 육, 효, 가족애 등 사 계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존재할 수 있는가를 따져보는 것은 「만 감의 죽 음」에서 놓쳐서는 안 될 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주된 단 기 이 “항상 독특하고 그러므로 새로운 개인 경험 의 진실”5)에 있다면 「만 감의 죽음」은 그런 에서 심을 요하는 작품 이다. 왜냐하면 「만 감의 죽음」에서부터 비로소 춘원은 새로운 경험에 바 탕하여 거 담론에서 비껴난 쓰기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4) 이 수, 「만 감의 죽음(萬爺の死)」, 改造, 1936. 8.
5) 이언 와트, 철민 역, 소설의 탄생, 열린책들, 1988, 22쪽.
이 작품은 육이나 효, 가족애 등 사 계에서 애정 행 와 근 의 물 성은 어떤 유기 계 하에서 미 가치를 갖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춘원 에게는 새로운 방식의 쓰기이다. 이런 쓰기는 “피 물이 나도록 가슴 이 아팠”던6) 차남 근의 죽음이 발한 것이다. 근의 죽음으로 춘원은 민족이라는 거 담론이나 안창호ㆍ이순신 같은 문제 개인에서 벗어난 쓰기를 시도한다. 그 쓰기는 크게 자신에 한 쓰기와 사람에 한 쓰기로 나 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둘은 명확히 분리되기보다는 상보 인 계에 있다. 자신에 한 쓰기는 「그의 자서」에서, 그리고 사람에 한 쓰기는 「만 감의 죽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만 감의 죽음」은 사랑과 통 질서가 상충하여 빚어내는 갈등 양상 이 서사의 요한 골격을 이룬다. 특히 한 집단의 세계 이나 문화 규범 과 가치가 개인의 그것과 상충할 때 개인은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토착 인 문화와 정체성을 무시하거나 경멸해 서는 안 되겠지만 의식의 속화가 지속될 경우 한 개인의 정체성은 훼손 되고 말 것이다. 「만 감의 죽음」은 통 인 의식체계와 담론으로부터 탈 각하는 신 사랑을 선택했을 경우 그것이 어떤 결과를 래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다만 이 소설이 일본어로 발표되었다는 것, 노신의 「아큐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을 함께 고려할 때 이 소설의 의미는 제 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만 감의 죽음」이 춘원문학에서 어떻게 자리매김 될 수 있 는지, 그리고 만 감의 죽음을 통해 어떤 미 근 성을 획득하게 되는지 를 살펴보려 한다. 그럼으로써 이 에 지속해오던 춘원의 쓰기가 향후 어떤 모습을 띠게 될지 가늠해 볼 수 있는 토 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그 리고 「만 감의 죽음」 발표 당시 춘원의 문학 을 객 으로 살펴보기
6) 이 수, 「그의 자서 」, 이 수 집 6, 삼 당, 1973, 347쪽.
해 가능한 한 이 작품이 발표된 때를 후한 자료들에 국한하여 논의를 개할 것임을 밝 둔다.
2. 왜 일본어소설인가?
김미 은 「만 감의 죽음」이 “일본 찬과 조선폄하”의 소설로 “조선인
의 습 , 문화에 해 비인 시각이 상 으로 두드러진”7) 작품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면서 「만 감의 죽음」에 해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 놓았다.
두 번째 유형의 작품들에 나타난 조선(인)의 표상에는 불합리와 더러움, 교양 없음, 거짓을 행함 등의 부정 인 서술어들이 동원되고 있다. <만 감의 죽음>에 그려진 조선(인)의 삶은 외형 틀은 근 인데 내용은 근 인 불합리로 채워져 있다.8)
의 분석 로라면 「만 감의 죽음」은 마치 「민족개조론」에서 언 했던 <못난 조선인>의 허구 산물처럼 이해된다.9) 「만 감의 죽음」을 민족개 조론의 허구(fiction) 산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 김미 의 에
7) 김미 , 「이 수(1892-1950)의 일본어 소설 연구」, 한국 문학회 학술발표회자료 집, 한국 문학회, 2008, 86쪽.
8) 의 , 87쪽. 이 논문에는 도망간 여자를 작부로 규정하고 있는데(87쪽) 사실 소설 어디에도 작부 출신이라는 말은 없다. 다만 경성의 직업소개소에서 소개 받아 데려온 여자라고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구장과 ‘나’의 화 속에서는 그 여자를 두고 ‘닳아빠진 여자는 아닌 것 같아요’라는 말도 나온다. 이 말은 작부 출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9) 「민족개조론」에 한 이 오의 분석은 친일문학 혹은 이 수 문학의 친일성 여부와 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세한 것은 이 오의 이 수를 한 변명(앙
M&B, 2000) 192~212쪽 참조할 것.
한 타당성 여부를 밝히려면 왜 일본어인가에 한 해명이 필요하다. 왜 냐하면 김미 의 은 ‘친일문학’이라는 범주를 상정해두고 이 수의 ‘일본 어소설군’를 바라보았고, 그런 류의 작품 ‘하나’로 「만 감의 죽음」을 분 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어로 쓰인 작품은 친일작품일 것이라는 언어 심주의가 낳은 하나의 오류이다. 그 다면 춘원은 ‘사람’에 한 쓰기를 시도하면서 왜 일본어로 창작한 것일까?
「만 감의 죽음」이 발표되던 해인 1936년 1월호 신인문학에는 춘원의 조선어 을 엿볼 수 있는 이 한 편 실린다. 조선어에 한 춘원의 분명한 이 이 에는 잘 드러나 있다.
춘—나 역시 동감입니다. 그러나 조선어로는 편지 한 장두 제 로 못 쓰는
얼치기들이 말을 많이 하지요.
이—그럼은요. 조선말이 귀한 을 알아야 해요. 조선 사람은 무 자존심 이 없고 사 사상만 있어요. 허란설헌(許蘭雪軒), 신자하(申紫河) 같은 이들 도 한문으로 시를 많이 썼는데 국인이 보고 잘 지었다고 하니까. 그때야 좋다고들 했지요. 요새도 그래요. 장혁주 씨 같은 이는 일어로 소설을 쓰는 데, 동경서 발표만 되면 훌륭한 줄만 알거든요.
춘—참 그 더군요. 장씨의 「カルボウ」를 요새 읽었는데, 아무 것도 아니더
군요. 그것을 조선어로 번역해 놓는다면 삼문의 값도 없겠던데요……
이—기가 막히지요. 조선인의 버르장이가 자기 해는 모두 나쁜 만 알아
요. 그것부터 고쳐야 해요. 옛날에는 명나라를 조종(祖宗)으로 알아서 명나라 것이면 모두 좋은 것으로만 알더니, 요새는 조종이 흠썩 늘어서 하나는 모스 크바, 는 국, 미국. 이 게 많아졌지요. (략)
이—무엇보다도 조선말을 잘 발달시키고 유지하고 세련시켜야 합니다. 이
것은 문인들의 책임이지요. 아름다운 시와 좋은 소설을 많이 써서 조선말을 아름답게 는 풍부하게 해야 합니다. 는 문 작품이 자꾸 많이 나야 해요.
(략) 이-언어는 그 나라 그 국민의 재산이요 보배거든요. 이것을 좋게, 아름 답게 풍부하게 만드는 문인이 아니고는 도저히 할 이가 없읍니다.10) (강조 : 인용자)
“언어는 그 나라 그 국민의 재산이요 보배”라는 생각과 문인이 언어를 “좋게 아름답게 풍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의 근 에는 조선어가 외 국어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춘원의 언어 이 자리하고 있다. 춘원의 이런 언어 이 약 반년이 지난 1936년 8월, 「만 감의 죽음」을 발표할 당 시에 돌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춘원은 「만 감의 죽음」을 발표 한 직후인 그 해 10월에 ‘조선문학의 발 책’을 논하는 자리에서도 조선어 와 조선문화에 해 작가나 평론가들이 깊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 고 있기 때문이다.11) 뿐만 아니라 「만 감의 죽음」을 발표할 때까지 춘원 의 어떤 친일 언사나 행동, 작품의 기미를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의 인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일본어로 창작을 하던 장 주의 사례를 구체 으로 들어가면서까지 일본어 창작에 해 본능에 가까운 거부감을 드러 내 보이고 있다.
춘원의 이런 언어 은 어제오늘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갈무
리된 하나의 신념이었다. 다음의 인용은 그런 사실을 뒷받침해 다.
어떤 나라의 문학은 그 나라의 어학이라는 흙에 핀 꽃이다.
국어를 떠난 문학이 있을 수 없고 국어도 문학으로 하여 보유되고 세련
되고 발달되는 것이다. 조선문학이 조선어 에 성립될 것은 무론이다.12)
10) 「이 수씨와의 일문일답기」(신인문학, 1936. 1), 이 수 집 8, 645쪽. 이 인용에 서 ‘춘’은 춘성(노자 ), ‘이’는 이 수를 말함.
11) 이 수, 「조선문학의 발 책」(조 1936. 10), 이 수 집 8, 612~614쪽 참조.
12) 이 수, 「문학에 한 소견」(동아일보 1929. 7. 23~8. 1), 이 수 집 10, 458쪽.
의 인용은 물론 조선문학은 “조선문으로 쓴 문학”13)이라는 자기규정 이라든지 “언어가 멸망되면 정신도 멸망되는 것이며, 언어가 보존되면 정 신도 보존”14)된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 감의 죽음」을 발표할 당 시까지만 해도 춘원의 언어 은 확고한 것이었다. 그 기 때문에 일본어로 쓴 「만 감의 죽음」은 춘원의 문학자리에서는 일탈임에 틀림없다.
1936년 11월호 삼천리에는 「장편작가회의」라는 제목의 이 게재되 는데, 당시 신문이나 잡지 등에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던 장편소설 작가들 이 한 자리에 모여 마다의 문학 에 해 피력한다.15) 이 자리에서 춘원 은 문학을 여기(餘技)로 여기던 수단으로서의 쓰기에서 탈피하여 문학 을 술 그 자체로 용인하는 발언을 한다. 춘원의 입장에서 보면 쓰기의 일 명이라고 할 만하다.
진정한 인류의 행복을 한다는 참된 술품이라면 모든 작가는 각기 자기
의 개성과 성격에 따라 이것도 그릴 수 있을 것이요, 것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작가들은 자기의 개성과 개성에 따라 어떠한 제한과 교 섭도 받지 않고 참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술」만 창조한다면 어떤 것을 그려도 좋을 로 안다.16)
13) 이 수, 「조선문학의 개념」(신생 1929. 1), 이 수 집 10, 451쪽. 본격 으로 친일 인 일본어 소설을 창작하던 시기에도 춘원은 “조선인의 생활, 조선인의 감정은 당분간은 조선어가 아니고는 완 히 표 되지 않는다는 것만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 니 여기 조선문학의 존재이유의 제1조”(이 수, 「심 신체제와 조선문학의 진로」, 매일신보, 1940. 9. 10.)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조선어에 한 애착은 남달랐다.
14) 이 수, 「‘외래어와 조선어’ 강연기」(계명 1932. 7), 이 수 집 8, 659쪽.
15) 이 회의에 참석한 작가는 「애욕의 피안」(조선일보)의 춘원, 「불연속선」(매일신 보)의 횡보, 「반려」(삼천리)의 회월, 「후회」(조선 앙일보)의 만해, 「황진이(조 선 앙일보)의 상허, 「 삼의 피」(매일신보)의 월탄, 「여명기」(동아일보)의 장 주, 「림」(동아일보)의 박말 , 「황혼」(조선일보)의 한설야 등이다.
16) 「장편작가회의」(삼천리 1936. 11), 이 수 집 8, 655쪽.
“술만 창조한다면 어떤 것을 그려도 좋을 로 안다”는 말에서 계몽 이거나 목 인 쓰기와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술’에 해 춘원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그런데 요사이 세상에서는 소 「 술성」이라 하면 의례히 가장 알아보기 어려운 말로 몇 사람 안 되는 지식층의 사람만이 감상할 수 있는 일종 병 인 것으로만 해석하는 모양인데, 원래 「 술」이라면 어느 구나 다 읽고 알 수 있는 즉 인 것이라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17)
의 인용에서 여겨 볼 것은 ‘술성’은 ‘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일러 술 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춘원의 순수한 계몽 쓰기와는 다른 차원에서 근할 필요가 있다. 술성을 담보하기 해서는 ‘ ’이어야 한다는 춘원의 술 에 비추어 본다면 「만 감 의 죽음」 한 비록 일본인 독자들이긴 하지만 술성이 담보된 쓰기를 제로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성은 이 의 문학 에 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양주동과 주고받은 논 에서 이 수는 자기 소설의 독자, 혹은 소설의 성과 련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 를 피력한 이 있다.
내가 소설을 쓰는데 첫째 가는 목표가 「이것이 조선인에게 읽 지어 이익
을 주려」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나는 내 소설이 조선인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읽 지기를 바라지 아니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읽을 것을 가지지 못한 이는 조선인이요, 내가 조선인인 까닭이다. 내 소설은 미국인에게는 연히 불필요한 수지 뭉텅이 일는지 모르지마는 조선인에게는 혹시 필요한 독물(讀物)이 될는지 모른다. (략) 나는 이 생각을 내어 던지려고 생각해 본 일도 있다. 나는 일문이나 문으
17) 의 , 655쪽.
로 소설을 써 볼까. 조선이라는 나를 얽어버린 결박을 벗어 버리고 자유로운 일세계인으로 세계 문단을 향하여 한번 소리 쳐 볼까 하는 유혹도 나지 아니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때마다 배의(背義)라는 일종의 강박 념 을 가지게 되었다. 세계는 네가 아니라도 하다. 그러나 조선은 같은 것 이라도 요구한다 하는 소리를 나는 듣는다. 이것을 민족주의 이라고 부르는
지 모른다.18)
이 까지 춘원은 자신의 소설 독자를 조선인에게만 한정했었다. 그리고
그런 제한된 독자를 상으로 했기 때문에 특수성은 가질 수 있었을지 모 르나 보편성을 획득하기는 어려웠다. 이미 독자를 조선인으로 한정해 둔 쓰기 기 때문에 계몽 쓰기라는 주제 한 그 범주를 뛰어넘기 어려 웠다. 따라서 문학의 미 근 성의 측면에서 보면 춘원의 계몽 쓰기 는 인류 성이나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한계를 가진 름발이 문학 이었고, 이것을 춘원은 ‘민족주의 ’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이런 문학 은 다음의 인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소설을 쓰는 구경(究竟)의 동기는 내가 신문기자가 되는 구경의 동기,
교사가 되는 구경의 동기, 내가 하는 모든 작 의 구경의 동기와 일치하는 것이니, 그것은 곧 「조선과 조선민족을 하는 사―의무의 이행」이다.19)
문학 쓰기가 신문기자나 교사의 동기와 동일시되는 한, 춘원의 쓰 기는 문학 보편성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미 춘원은 쓰기 의 세계성에 해 고민하고 있었음을 앞선 인용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지만 그 포부를 주 앉 야 했던 것은 강한 민족주의에 근거한 배외감 때문이었다. 조선민족을 배신할 수 없다는 민족주의 태도는 춘원의 쓰
18) 이 수, 「여의 작가 태도」(동 1931. 4), 이 수 집 10」, 460쪽.
19) 의 , 462쪽.
기를 제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근의 죽음은 배외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틈새를 만들어
셈이다. 조선민족만을 한 제한된 독자층의 쓰기나 계몽의 기획이라 는 특수한 주제의 쓰기에서 탈피하여, ‘자유로운 일세계인’으로 “세계 문 단을 향하여 한번 소리쳐” 보고 싶은 욕구가 다시 살아났다고 볼 수 있다. 「만 감의 죽음」은 독자층의 확 와 계몽 쓰기의 탈피라는 이 의 미가 고스란히 용해되어 있는 미학 쓰기라는 제는 이 게 성립되는 것이다. 다만 독자층의 확 가 미학 단의 근거는 될 수 있지만 당시 첨 하게 부각되는 민족 감정을 어떻게 추스를 수 있을 지에 한 문제 는 별개의 것이다. 문학은 완벽한 자가재생산시스템이 아니다. 일탈이 언 제나 허용되는 것이다. 그 일탈은 한 순간에 이루어질 수 있다. 「만 감의 죽음」이 바로 그런 경우다.
정백수는 「만 감의 죽음」에 두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나는 “한
국어에서 일본어로 창작 언어가 환되는 계기를 노정하는 텍스트”라는 것, 다른 하나는 “일본어를 모어로 하는 독자층을 직 상정하고 있다는
”이다. ) 그런데 「만 감의 죽음」이 갖는 문학사 맥락이나 미학 가 치를 토 로 할 경우 자의 의미는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 야 할 것이다. 「만 감의 죽음」은 1936년 8월에 발표되고, 다음의 일본어 작품인 「산사의 사람들(山寺の人人)」이 1940년 5월에 발표되니, 그 사이에 약 4년의 공백 기가 있다. 「만 감의 죽음」이 일본어 창작의 환 에 해당한다면 문학사 으로 볼 때 이 수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일 터인데, 조선의 일본어 문학 작품을 정선한 조선국민문학집(朝鮮國民文學集)(1943), 신반도 문학선집(新半島文學選集)(1944), 신반도문학선집(新半島文學選集) 2
(1944), 반도작가단편집(半島作家短篇集)(1944) 등에는 수록되지 않는
다. 신 「산사의 사람들」이 조선국민문학집과 신반도문학선집에 실 린다. 이는 이 수의 일본어소설에 해 평가할 경우, 「만 감의 죽음」과 「산사의 사람들」을 다른 각도에서 평가해야 함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수의 본격 인 일본어창작의 환은 「산사의 사람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럴 경우 「만 감의 죽음」은 조선국민문학집 등에 수록된 이 수의 작품과는 다른 문학사 ․미학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만 감의 죽음」은 이후의 일본어 작품들이 친일문학 성 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에 비해 표 어만 문제 삼지 않는다면 후 의 작품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에서 정백수의 “일본어로 창작어가 환되는 계기”라는 단은 좀 더 세 한 찰을 요하는 목임을 알 수 있다.
춘원의 일본어 창작은 조선문학이 도달한 시 에서의 성과와 그에
한 불만이 일본어창작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춘원은 「만 감의 죽음」이 발표되기 인 1932년 6월호 가이조(改造)에 조선문학 의 반 인 개략을 소개한 「조선의 문학(朝鮮の文学)」21)이라는 논평을 발표한다. 이 은 가이조사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 첫머리 에서 춘원은 조선문학의 주소에 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일의 조선문학은 아직 세계 시장에 내놓을 만한 정도에 도달치 못하 다. 작가도 작품도 수에 있어서도 질에 있어서도 유감이나 아직 역사를 지닌 일민 족의 문학으로써 리 내어 놀 수 없다.22)
21) 이 은 번역되어 삼천리 1933년 3월호에 게재되며, 다시 개고(改稿)되어 「조선 문학의 발 -경술(庚戌)이래 25년간-」이라는 제목으로 삼천리 1934년 7월호에 실 린다.
22) 조선의 문학」(삼천리 1933. 3), 이 수 집 10 464쪽.
‘일의 조선문학’이 도달한 ‘유감’스러운 실을 안타깝게 여기는 춘원 의 심정에는 ‘세계 시장에 내놓을 만한 정도’의 작품이 조선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염원이 스며있다. 그런데 이 에서 여겨 볼 목이 있다. 하나는 조선시 에 ‘조선어의 조선문학’을 ‘ 돌보지 않’고 ‘국문학에 탐닉한 조선인’은 ‘민족에 상응되는 문학을 제작치 못하’다는 신랄한 비 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시 문인들이 사 주의에 기울 어 외국어인 한자를 사용한 것에 한 매서운 지 이다. 이 수의 조선어 은 여기서도 빛난다. 다음으로 여겨 볼 것은 당시에 활동하던 근 문 인들을 소개하면서 자신에 해 언 하지 않았다는 이다. 애국시가 시 의 작품이나, 최남선, 주요한, 김안서, 박월탄, 김소월, 김 인, 이은상, 이병기, 정인보 같은 시인이나 시조시인, 그리고 이인직, 김동인, 빙허, 염상섭, 나도향 박 희․김기진으로 표되는 로문인을 이 에서 소 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타가 인정하는 조선의 표 문인인 자신에 해서는 한 마디도 언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특이하다. 말미에 자신 의 역할에 해 일체 쓰지 않는 것이 ‘바른 을 알기 때문’이라는 첨언이 있긴 하지만 춘원은 스스로 이상의 문인들과는 유비될 수 없는, 질에 있어 서나 작품의 수로 보거나 무엇으로도 ‘세계 시장에 내놓을 만한 정도’의 수 에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본보기의 쓰기로서 「만 감의 죽음」을 “동양의 가장 큰 서울이요, 정치의 심이요, 세계문화 의 몇 개 심 의 하나라는 동경”23)에서 발표한다면 장 주와는 다른 조선문학의 세계 수 을 입증하게 될 것이라고 춘원은 단했음 직하다.
그리고 춘원의 일본어 쓰기는 당시 검열제도와 련지어 생각할 수 있
다. 춘원은 조선의 검열제도에 해 지속 인 심을 가지고 있었다. 기실 그 심은 우려의 표명이다.
23) 「동경구경기」(조 1936. 11), 이 수 집 9, 187쪽.
아무려나 나는 을 쓸 때에 반드시 조선인―그 에도 나와 같이 은 조 선의 아들딸을 염두에 둔다. 나는 붓을 들고 종이를 할 때에 그들 은 조선 인에게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통정이 샘솟듯 솟아 나옴을 깨닫는다. 그것이 듣는 이에게 유익한 것인지 불필요한 것인지 모르거니와, 내 딴에 말하지 아 니치 못할 것을 느낀다. 그 중에서 나는 경무국이 허할만한 재료를 골라서 원고지에 적기를 시작하는 것이다.―이것이 내 소설이다.24) (강조 : 인용자)
경무국의 검열을 거쳐야만 소설이 발표될 수 있었다는 것은 소재나 주 제가 쓰기 부터 제한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제한된 쓰기는 작 가의 창작 의욕을 하시킬 뿐만 아니라 표 방식도 강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고의 자유로운 유로를 방해할 것이며, 정치 시스템에 흡수될 것을 강요한다. 그런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지속될수록 작가는 구속에서의 자유를 갈망하게 될 것이다. 춘원은 조선의 문학이 발달하지 못하는 이유 에 하나가 바로 이 검열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학의 나라라는 조선에 있어 이만큼이나 문학에 냉담하다고 하는 것은
좀 이상한 느낌을 느낀 것이로되, 그것은 이유가 있다.
제일, 조선인은 이 삼십년래 평안히 문학이나 술을 맛볼 만한 그러한 여
유를 갖지 못하 었다. (략)
다음에 조선인의 생활의 경제 궁핍은 해를 따라, 날을 따라 궁핍하여진다. 문학이나 술을 좋아할 마음의 여유도 는 경제 여유도 없다. (략) 제삼에, 조선의 검열제도이다. 이것은 조선인이 되어보면 참으로 상상도
안 된다.25)
정치 인 이유로 인해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쓰기는 모든 작가들의
24) 이 수, 「여의 작가 태도」, 460~461쪽.
25) 조선의 문학」(삼천리 1933. 3), 이 수 집 10, 솔출 사, 1999, 68쪽.
염원이다. 그러나 조선의 실 상황은 작가들에게 검열제도라는 시스템 에 길들여지기를 원했다. 제한된 테두리 속에서만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것 이다. “테에마를 찾아 마치 간 장이가 그 주인의 마음에 맞도록 의장을 하듯이”26) 쓰는 은 의사 쓰기이다. 자유로운 쓰기는 당시 조선문인 들의 공통된 갈망이었다. 검열에서 상 으로 자유로운 일본어 쓰기는 검열을 피할 수 있는 한 방편일 수 있었다. 그럴 경우 소설의 스토리나 주 제가 검열 과정에서 문제가 될 만큼의 내용을 담고 있는지가 문제이다. 이 부분은 다음 장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27)
결국 춘원은 신앙처럼 받들던 조선어 에도 불구하고 술 성이
확보된 미학 쓰기, 조선문학의 세계 수 제고, 그리고 검열제도 라는 속박에서 벗어나기 한 쓰기로 「만 감의 죽음」을 창작한 것이라 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어 쓰기가 당시 민족 감 정에 부합한 것이었는지, 그런 쓰기가 민족문학 시각에서 어떻게 단 될 수 있을지는 여 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3. 조선의 ‘아귀’가 죽음을 통해 획득한 미 근 성
「만 감의 죽음」은 「성조기」와 유기 상 물이다. 「성조기」는 홍지동 산장을 짓는 과정을 그린 ‘사람’에 한 쓰기인데, 이 수필에서 춘원은 ‘박선달’이라는 인물에 큰 심을 가지게 된다. 춘원의 표 로 하면 박선 달은 “노신(魯迅)의 아귀(阿鬼)28)와 비슷한 이 있어서, 인생의 한 표본
26) 의 , 468쪽.
27) 이 외에도 가이조(改造) 사장 야마모토 츠네히코(山本實彦)와의 친분 계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친분 계는 창작의 직 동기라고 보기보다는 간 동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 부분에 해서는 김윤식 교수가 이 수와 그의 시 2(253~262쪽)에서 논하 기 때문에 참조하기 바란다.
으로 썩 재미있는 인물”29)이었다. 박선달은 일생에 십 수 명의 마 라를 얻었지만 사흘도 되기 에 마 라들이 다 도망을 가버려 인생의 비애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얼굴도 잘 나고 기운도 남보다 센 그 지만 ‘생리 결함’ 때문이었다. 그의 국부는 ‘14, 5세의 소아를 연상 하는’ 크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만 감’은 바로 이 박선달이 모델이었다. 박선달과 만 감의 인물 묘사를 비교해보면 그것은 확연해진다.
석수 박선달은 감님이라고도 하고 박 감이라고도 하 다. (략) 그러나 박선달은 자칭하는 거와 같이 일류 석수는 아니었다. 그는 성미가 겁겁하고 우락부락하나 뒷심이 없는 거와 같이 못쓸 바윗돌을 깨뜨려 내는 데는 상당하지마는, 재주를 부리거나 조심해서 할 일은 맡길 수가 없었다.30)
만 감은 쉰을 네댓 살이나 지난 채석장의 인부이다. 스스로는 석공이라고 하지만 어엿한 석공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화약으로 폭 된 큰 돌멩이를 도편수의 지시에 따라 치수 로 자르기도 하고, 강 강 다듬기도 하는 모양
이었다.31)
이런 박선달 혹은 만 감을 통해 춘원은 조선의 어떤 ‘아귀’를 그리고자
했던 것일까? 이를 구명하기 해서는 고려되어야 할 이 있다. 첫째, 만 감이 조선민 을 표하는 형 인물이었는지를 따져 야 한다. 둘째, 만 감의 죽음이 단순히 사랑의 실패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따져 야 한다. 셋째, 만 감의 일탈이 공동체 사회 의 해체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공동체 사회에서 스스로 이탈해 간 것인지
28) 여기서는 「아Q정 」의 ‘아큐’를 춘원의 에 나오는 ‘아귀’로 통일하여 부르기로 한다.
29) 이 수, 「성조기」, 이 수 집 8, 256쪽 30) 의 , 255쪽.
31) 이 수, 만 감의 죽음」, 改造, 164쪽.
를 따져 야 한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훌륭한 분’이었던 최 씨 성을 가진 만 감은 친형 인 ‘용 감’이 제공하는 정보에 따르면 보통의 조선사람과 그리 다를 것도 없다.
“이놈, 만이 녀석은 말이 없고, 언제나 성이 난 얼굴이지만, 근본은 정직하 며, 인정도 의리도 헤아릴 아는 녀석입니다.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 지 않으며, 소처럼 일을 잘하여 자신의 손으로 이만큼의 재산도 모았으며, 놈들(천길과 삼길을 가리키며)이 어려서 아비가 죽어버려 빌어먹게 된 것을 이놈이 떠맡아 길 지요.”32)
우직하고 착하기 그지없을 뿐만 아니라 인정이나 의리도 있어 ‘용 감’에
게 있어 만 감은 평범한 동생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화자인 ‘나’에게 비친 만 감은 좀 다르다. ‘지력과 감정이 보통 이하 지만 바 덩이 같은 사내’ 로 도무지 말이 없어, 새로 이사를 와서 3년이나 이웃해 산 ‘나’는 그가 ‘벙 어리’인 착각할 정도 다. 뿐만 아니라 ‘자식도 없고, 친구도 없으며, 이 웃사람과 교제도 없고, 책도 읽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으며, 담배도 않는’33) 만 감은 여느 조선사람과는 뭔가 좀 색다른 면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런 만 감은 여성 편력으로 동네 주민에게 신기한 인물로 이미지화
된다. ‘오직 여자만이 유일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만 감은 무당인 첫 부 인이 어느 집에 푸닥거리를 갔다가 돌아오지 않자 그 후 여자를 열 번이나 갈아치울 정도로 여자에 한 한은 단한 능력의 소유자 다. 어느 날 그 는 동리에서는 미를 견 만한 인물이 없을 만큼 아리따운 25, 6세쯤 되는 여인 하나를 ‘경성’에서 데려오는데, 후에 그녀가 도망을 가고, 그 때문에
32) 의 소설, 172쪽.
33) 164쪽.
만 감은 ‘갔는가’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미치 이로 변해 버린다. 그 다면 만 감은 아귀와 어떤 동이(同異)가 있을까?
「아Q정」이 발표되자 마오둔(茅盾)은 “아큐란 사람은 아주 낯이 익다. 그는 국인 품성의 결정이다”34)라고 말하여 ‘아귀’가 국인의 형 인 모습임을 지 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귀’의 형성에 한 다음 의 평가는 매우 이채롭다.
우양은 형이란 “한 특정한 시 , 한 특정집단의 공통 인 특성을 지니 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가 표하는 사회와 구별되는 개별 면모를 지니 고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우양은 아큐는 농민의 공통 인 특징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농민의 공통 인 특징과 구별되는 특수한 개별 특징을 지닌 인물이라고 본다. 우양은 형에 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큐는 농민 이지만 보편 농민이 아니라 농민 에서도 특수한 존재이고, 특정 시기, 특 히 신해 명 시기의 농민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크게 보자면 신 국 성립 이후 국가주의가 직조한 문화 기억의
일한 지배에 균열을 내는 한편, 그 문화 아이콘 역할을 수행하 던 국 문학 작품을 새롭게 읽어내는 일이 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 문학의 주요 작품들이 국가주의에 동원되어 새롭게 텍스트가 구성되면서 일그러지고 뒤틀렸던 것을 복원하여 국 문학의 명작들에게 제몫을 찾 아주는 일이자, 궁극 으로는 문학 차원을 넘어 과거 역사를 바로잡는 일의 일환일 것이다.35)
‘아귀’는 정치 이해 계에 따라 그의 형성이 다르게 평가되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특히 마오쩌뚱시 에는 명성이나 억압의 주체 문제에
34) 雁冰, 「通信」(1922), 이욱연, 「시 와 정 ―루쉰의 「아큐정 」의 경우」, 中國現代文學 第39號, 228쪽 재인용.
35) 周揚, 「現實主義試論」(1936), 「典型 個性」(1936) 등 참조. 陳漱渝 主編, 說不盡的阿Q(中國文聯出版公社, 1997), 415-416면, 428-433면. 의 , 231쪽 재인용.
을 맞춰 ‘아귀’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귀’는 형성과 명성, 달리 말 하면 변 의 주체로서의 역할에 이 맞춰져 국근 문학의 한 장을 구
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귀’를 억압하는 주체는 주로 ‘자오’가로 표되는 건지배세력이나 ‘가짜 양놈’으로 설정된다.36)
그러나 만 감의 경우 억압 주체를 건지배세력으로 보기는 어렵다. 얼 핏 보면 만 감을 억압하는 주체는 그의 가족과 동리의 모든 주민인 것처 럼 보인다. 그런데 문맥을 깊이 따라가면 아주 특이한 인물이 등장한다. ‘구장’이었다. 소설에서 구장은 이 게 묘사되고 있다.
구장이, 만 감을 그 로 방치해 두면 인명에 해를 가할 우려가 있다는
, 특히 부인에게 폭행을 가하기 쉽다는 , 마지막으로 만약 무슨 일이 생기 면 그것은 친족의 책임이라는 등, 일종의 헌(官憲) 엄으로써 설명하 고, 즉각 그를 병원에 입원시키든가 그 지 않으면 폭행을 하지 못하게 보호 하도록 명령했다. 구장은 배운 것은 없으나, 오랜 동안 구장을 하여 면사무소 나 주재소에 출입을 한 터이라, 말하는 꼴도 리 냄새를 풍기고 있었으며, 입심도 상당히 좋았다.37)
‘색 ’이라는 명분으로 만 감의 인신을 구속하라고 명령하는 장본인은 ‘구장’이다. 제국주의에 의해 도입된 근 행정 체계는 상명하달식이다. 거기에 불복할 경우 ‘당한 몽둥이와 튼튼한 밧’38)로 상징되는 해가 가해진다. 단순히 언어 폭력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물리 폭력성을 수반하는 것이 근 행정 체계 다. 만 감은 바로 이 근 행정체계 의 최말단인 ‘구장’의 <명령>에 의해 인신(人身)의 자유를 박탈당한 것이 다. 그런 에서 ‘구장’은 근 행정의 의사(擬似)집행 으로 간주할 수 있
36) 의 , 238쪽.
37) 이 수, 「만 감의 죽음」, 170쪽.
38) 171쪽.
다. 도 몰라 책도 읽지 않는 무지하고 무자각한 만 감의 본능 사랑은 근 이성으로 무장된 행정제도에 의해 고스란히 해체되고 박탈당한 것 이다. 만 감의 특별한 사랑 방식은 당 조선의 보편 사랑은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만 감은 평범한 조선인이었지만 보편 조선인이 아니라 특수한 존재이고, 특정 시기의 인물인 것이다. 우양은 표 로 하면 만 감은 “농민의 공통 인 특징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농민의 공통 인 특징과 구별되는 특수한 개별 특징을 지닌 인물”인 셈이다. 그러나 그가 형 인물이건 특수한 인물이건 그의 사랑이 억압받은 사실은 변하지 않 는다.
의사집행 ‘구장’이 ‘만 감’의 죽음에 간 으로 간여하고 있다면, 그 의 죽음에 직 간여한 인물은 ‘경성’에서 데려온 ‘여자’와 만 감의 가족들 이다. 사실 만 감을 미치게 만들고 기야 죽음에 이르도록 한 장본인은 <경성에서 온 그 여자>이다. ‘뽀얀 피부에, 통통히 살이 오르고, 때를 벗은’ 그녀는 ‘자개 박힌 장롱이나 일본 경 ’를 쓸 정도여서 “아무래도 이 마을 사람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 그녀는 동리에서 ‘나’의 집 이외에는 아무 도 설치하지 않은 ‘등’이라는 <근 의 불빛>을 설치해 달라거나, 만 감 의 땅과 집을 자신의 명의로 돌려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아는 여자 다. 근 무늬로 치장되어, 도무지 만 감과는 ‘궁합이 맞지 않’을 것 같은 그 여자가 만 감과 붙어사는 것은 바로 이런 근 의 속성들 때문이었다. 만 감에게 그녀는 ‘돈으로도 목숨으로도 바꿀 수 없는’ ) 존재 지만, 그 녀에게 만 감은 토지나 집으로 상징되는 자본이었을 따름이다. 이 어 남 이 바로 만 감의 죽음을 재 하는 화근이 된다. 만 감의 사랑이 자본의 근 에 굴복하는 모습은 고리 업에 의해 기를 박는다.
만 감은 여자가 도망간 뒤 보름간 일을 쉬었다. 그러나 그에게 은 없
었다. 그의 재산이라고는 2백여 평 되는 매우 경사진 땅의 과수원과 쓰러질 것 같은 자그마한 집뿐이었다. 으로 환산하면 겨우 6백 원 남짓 될 것이
다. 그러나 이 부동산은 연 6할이나 이자를 물어야 하는 2백 원의 고리채에 당 잡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말한 로 여자를 해 자개로 세공된 장롱이나 일본 경 를 사기 해서는 백 원을 빌리지 않으 면 안 되었다. 그의 하루 2원 정도 채석장 수입으로는 여자의 화장값이나 감당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구나 비가 오는 날은 채석장을 쉬어야 했다. 한 달 이상의 장마철에 비하기 해서는 어도 5, 6십 원의 돈을 모아둘 필요가 있으며, 그 지 않으면 연 6할 이자의 돈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는 믿을 수 없는 은 여자를 감 하면서까지 일을 하러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
연 6할이라는 살인 인 고리 을 빌려서라도 여자의 욕구를 충족시키
려 했던 만 감의 사랑은 간 했다. 하지만 만 감이 ‘믿을 수 없는’ 여자를 지키기 해 벌이는 행동에서 죽음으로 내모는 고리 업을 비 하는 춘 원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은 요하다. 춘원은 만 감의 우직한 애정행 와 그것을 방해하는 근 속성을 병립시켜서 근 를 비 하고 있는 것이다. 근 속성으로 치장한 ‘믿을 수 없는’ 그녀와의 사랑싸움이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것은 소설 첫머리부터 정되어 있었다. “끝날 모르는, 구슬픔 과 원망을 호소하는 원혼의 규처럼” ) 울어 는 북한산 자락의 뻐꾸기 의 울음소리가 사롭지 않음은 바로 그 때문이다.
‘14, 5나 살아와 마을에서는 명문가’의 일원인 만 감의 몰락은 근 행정체계의 말단인 구장, 경성이라는 도회에서 온 여자, 그리고 고리 업이라는 근 의 속성들이 합체하여 만들어낸 산물이다. 억압하는 주체로
서의 근 와 그것에 의해 미치거나 죽는 것으로 결딴나고 마는 만 감의 립은 「만 감의 죽음」이 도달한 미 근 성이며, 세계성이다. 정신승리 법이나 논하면서 끊임없는 수모를 웃어넘기거나 계속되는 핍박과 굴욕에 도 분노할 모르는 무기력한 노신의 아귀와 근 속성에 속수무책인 춘원의 아귀는 그런 에서 서로 닮았다. 그러나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해 뭔가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에서 춘원의 아귀는 노신의 아귀와 다르 다. 따라서 만 감은 근 의 속성을 제 로 이해하지 못하고 몰락해간 수 많은 조선인의 한 형이면서, 특수한 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만 감의 죽음이 더 비극 인 것은 이런 근 속성에 더해 통 인
질서에 무비 으로 길들여진 가족들의 강고한 사고가 만 감을 죽음으 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답답한 통 질서 속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가족공동체의 모습은 만 감이 그의 토지와 집을 여자와 공동명의로 바꾸 려는 것에 한 반응에서 잘 나타난다.
그런데 용 감은 즉석에서 아우의 불찰을 꾸짖었고, 이에 멈추지 않고 조
카들에게도 말을 해버렸다.
「삼길아. 큰일났다. 네 몫이 될 재산이 그 여자 손에 들어가 버렸다.」 라고 말하여 삼길의 형인 천길이나 복길이나 그들의 어머니, 그리고 그들의 고모이자 동시에 용 감과 만 감의 이가 되는 산 머 고모라 불리는 무당 좋아하는 여자가 모여서 의를 하여 만 감의 분별없는 계획을 막으려 했던 것이었다. (략)
「그런 여자에게 재산을 넘겨주면 난 양자 따 는 안 할 겁니다. 아버지가 죽더라도 난 상주도 안 할 겁니다.」
라고 삼길이가 고함치는 소리가 내 집까지도 들렸다. 삼길은 시내의 보통학 교 3학년까지 다녀서 이 마을에서는 도회풍의 신청년 중 한 사람으로 경찰 을 두려워할 뿐, 그 외에 두려울 것이 없는 계급에 속하는 사내였다. 친족들이 의한 결과, 최가의 재산을 생 남인 그 여자에게 넘겨주는 것
은 최가 가문의 수치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만 감의 형인 용 감이, 집안사 람들 앞에서 이러한 선고를 달한 것이었다.43) (강조 : 인용자)
‘명문가’의 후 답게 가족들은 ‘분별없는 계획’을 세운 만 감의 ‘불찰’을 꾸짖을 뿐만 아니라 가족의 ‘의’ 하에 최씨 가문의 재산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다는 ‘선고’를 내린다. 가문이라는 통은 만 감의 사랑쯤은 무시하거 나 꾸짖을 수 있는 권 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권 는 압 인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만 감’의 의사와는 무 하게 집행되었다.
그런데 가문이나 가족의 의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압 인 힘도 따
지고 보면 ‘토지와 집’이라는 달콤한 자본의 앞에서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 자본이 매개되지 않았다면 권 인 힘이 만들어지지도 않았 을 뿐만 아니라 그 힘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아비가 사망한 뒤 빌어먹게 생긴 삼길의 형제들을 거둬주었을 뿐만 아니라 삼길을 양자로 삼아 세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 친자식처럼 길러 만 감의 헌신 인 보살 핌은 돈 앞에서는 손바닥 크기만큼의 가치도 없었다. 특히 ‘도회풍의 신청 년 한 사람’이며 경찰 외에는 ‘두려울 것이 없는 계 ’인 삼길에게 있어 자본의 력은 다른 사람에게 비길 수 없을 만큼 단한 것이었다. 상속되 지 않는 재산 앞에 양아버지라는 이름은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삼길 에게 가문의 힘은 바로 자본의 힘이었고, 도회풍의 신청년에게 그것은 일 상화된 내면이었던 것이다. ‘돈’으로 상징되는 <도회풍>의 이성 사고 앞 에서 ‘사랑’이라는 비과학 , 비논리 인 가치는 해체되고 만 것이다. 이런 에서 「만 감의 죽음」은 “가족ㆍ마을공동체의 이데올로기 권력이 그 시스템 내부의 이질 존재를 배재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44)이라고 할 수 있다.
43) 의 소설, 169쪽.
44) 정백수, 앞의 책, 174~5쪽.
그러나 그 권력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근 자본의 속성을 빼놓고서는
시스템의 내부를 제 로 들여다보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 면 만 감은 통 질서의 언 리에서 살면서 근 의 속성에 의해 무 져 내렸지만, 그가 선택한 사랑을 하여 스스로 미쳐감으로써 공동체의 질서 에서 자신을 유폐시키는 방식으로 근 와 통 질서에 항한 셈이었다. 이처럼 춘원은 만 감의 죽음을 통해 재구성된 근 의 폐해를 제국의 언어 (일본어)로 비 함으로써 언어를 월한 문학의 미 가치를 확보할 수 있 었다. 그럼으로써 「만 감의 죽음」은 세계성을 지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제라는 근 의 물성에 한 비 은 검열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 어는 그것을 넘어서는 하나의 방편일 수 있었다.
그 다면 춘원이 만 감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을 까? 이즈음 춘원이 가슴에 담아두고 있던 사랑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오늘날까지의 문학에는 원망이라든가 질투라든가 욕심이라든가 미움이라 든가, 이러한 사나운 감정이 무 많이 취 되고 강조되지 않았는가 한다. 이 러한 추폭한 감정은 늘 사람에게 불행과 악을 주는 근본이 된다.
사랑이라는 부드러운 감정조차도 많은 문학에서는 사나운 감정을 곁들이
기를 좋아하 다. 이것은 조라든가 의 심리에 맞춘다든가 하는 문학 기술의 편의를 함도 있겠지마는 역시 사람에게 있고 싶고 발달되고 싶은 것은 부드러운 감정일 것이다.
사랑, 동정, 기쁨, 슬픔 들들. 이러한 부드러운 감정만으로 문학 작품을
만든 이가 과거에도 없지는 않았다. (략) 사람은 마다 제 오막살이 한 간을 가지고 있는 모양으로 마다 제 세계
하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오막살이들이 다 견치 못한 것임과 같이, 사람은 항상 제가
들어앉은 세계를 벗어나서 더 크고 넓은 세계를 찾아야만 한다. 「끝없이 높은 사랑을 찾아 향상하려」는 애 ― 여러분이여. 이것은 한 아름다운 제목이 아닐까.45)
‘갔는가’라고 외치는 만 감의 사랑에 한 울분은 죽어가면서 찾던 물 한 모 으로 씻겨 내려갈 갈증은 아니었다. 단순하고, 무식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사랑일지언정 육정 인 사랑을 넘어서는 ‘끝없이 높은 사랑’을 ‘만 감’을 통해 춘원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사랑이 「무정」류와 다른 것은 계몽 이지 않다는 것이다. 답답한 사랑, 무지한 사랑을 통해 진리를 드러내는 방식을 선택한 춘원의 소설 기법에 만 감은 썩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만 감은 ‘박선달’이라는 ‘사람’의 근 촬 을 통해 활 사(活寫)된 것이기 때문에 이 의 추상 , 이론 사랑을 뛰어넘고 있다. 아울러 ‘조선의 아귀’에 한 춘원의 욕망은 비굴하고 무기력에 빠진 자신 의 자화상뿐만 아니라 식민지의 자화상을 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만 감 이 죽음으로써 모든 것은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사 랑의 고귀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신승리 법>이었다. 따라서 “은 시 부터 가져온 동포들에 한 계몽자 내지 교 사 의식을 넘어서는 길목에서 루쉰과의 만남이 있었다는 것은 의미 있는 발견”46)이었다.
마지막으로 노신의 「아Q정」이 갖는 의의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필 자는 노신의 언어 에 주목하고자 한다. 국에서는 노신을 근 소설 장르 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 평가는 그의 문체 과 근 의식에 서도 연유한다.
요컨 이 한 편(阿Q의 일생 이야기)은 역시 ‘本傳’이 되겠지만, 내 문장에
해서 생각해 보면 문체에 품 가 없어 ‘인력거꾼이나 콩국팔이’가 쓰는 말 이기 때문에 本傳이라고 주제넘게 지칭할 수도 없다.47)
45) 이 수, 「높은 사랑을 향하여」(삼천리, 1938. 11), 이 수 집 8, 484~485쪽.
46) 임명신, 아Q정 , 살림, 2006, 119쪽.
47) 魯迅, 「阿Q正傳」, 魯迅全集 1, 이보경, 「<阿Q正傳>이 ‘阿Q正傳’이 된 까닭」,
노신은 스스로의 문체를 “품 가 없어 ‘인력거꾼이나 콩국팔이’가 쓰는 말”이라고 하여 ‘본 ’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이 말은 국근 소설사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단히 의미심장한 말이다. 노신은 스스로 ‘인 력거꾼이나 콩국팔이’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임을 공개 으로 천명하고 있는데, 이 말은 곧 노신이 “고문(古文)이라는 문체 권력에 항하여 인력 거꾼이나 콩국팔이 같은 하층민 들의 언어를 의식 으로 지향하고”48) 있 었음을 의미한다. 노신에게 있어 문체의 변 은 곧 의식의 변 이었다. “문 학 작품과 그 작품이 모방하는 실 사이의 일치라는 문제에 해 주의를 기울”49)일 때 문체 변화는 가능하며 리얼리티 한 확보될 수 있다.
「만 감의 죽음」을 노신의 언어 에 견주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만 감의 죽음」이 미 근 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문체 변화 와 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만 감의 죽음」은 춘원의 이 소설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던 ‘채석장 인부’를 주인공으로 상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노신 이 말한 ‘인력거꾼이나 콩국팔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는 의미일 테고, 그 변화된 의식에 버 가는 문체상의 변모를 가정해 볼 수 있다. 이런 변화의 일단은 ‘이 놈(こいつ, こら, 奴)’, ‘바보 같은 놈(馬鹿野郎)’ 같은 비속어들에서 우선 확인할 수 있다.50) 즉 하층민들의 언어에 한 의식 심은 새로운 방식의 쓰기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체의 변화는 춘원의 일본어 쓰기와 상보 인 계 다고 볼 수 있다.
만 감의 사랑은 실패했지만 어쩌면 시 임무를 완수하 고, 이제 만 감의 시 는 죽었다. 「만 감의 죽음」은 춘원문학이 보여 새로운 쓰
48) 의 , 375쪽.
49) 이언 와트, 앞의 책, 20쪽.
50) 「만 감의 죽음」을 비롯하여 이후 쓰인 작품들과 이 의 작품들의 문체 변모에 한 고찰은 과제로 남겨 둔다.
기의 한 모습이었지만 만 감은 그 시 를 월하지는 못했다. 조선의 아 귀 만 감은 우직한 조선민 의 특성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특수한 개인 의 치에 놓임으로써 시 를 월하지 못하 지만, 시 를 넘어서려는 그 의 의지는 춘원 문학이 이룩한 미 결실인 셈이다. 죽음을 통한 미 근 성은 이 게 획득되고 있었다. 이후 개된 「무명」 등의 소설이 갖는 미 근 성은 「만 감의 죽음」이 다져놓은 석이었던 것이다.
4. 결론
지 까지 「만 감의 죽음」에 나타난 구장, 경성에서 온 여인, 고리
업이라는 근 물들과 자본의 속성에 길들여진 통으로 장된 권 라는 공범에 의해 만 감이 살해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춘원은 근 이후 ‘우리’라는 공동체를 상상하게 만들어 문학을 통해 근 자본의 속성이 어떻게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만 감의 죽음」 통해 재구성함으로써 이식된 혹은 일제에 의해 양산된 근 의식의 폐해를 제국의 언어인 일본어로 고발하 다. 춘원에게 있어 일본어의 선택 은 성과 술성이 확보된 미학 쓰기, 조선문학의 세계 수 제고, 검열을 통과하기 한 소설 책략이었기 때문에 일본어 선택만을 두고 친일문학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치 못하다.
그리고 견고한 통 질서에 한 만 감의 거부(인이 되거나 죽는
행 )는 사랑이라는 이름에 성스러움을 부여하기 한 만 감의 처 한 몸 부림으로 간주할 수 있다. 만 감의 사랑이 근 자본의 논리와 자본에 물 든 통 질서에 의해 거부되고 좌 되었을 때 만 감은 스스로 인이 되어 통 질서에 포섭되는 신 그 공간에서 스스로를 유폐시킴으로써 자유를 얻으려 했다. 그것이 「만 감의 죽음」이 도달한 미 근 성이었으 며, 그 근 성은 세계성을 지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문학 성과에도 불구하고 춘원의 일본어 쓰기가 사롭
게 보이지 않음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창씨개명과 암흑기에 보여 그의 일본어 쓰기가 남긴 과오 때문이다. 그런 에서 보면 다음의 시는 생각 의 여지를 많이 남긴다.
세상은 내가 「죽을 죄로 잘못했습니다. 나는 내 명리를 하여서 민족을
반역했습니다」 하는 참회만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겸손을 꾸미더라도 그런 거짓말은 할 수 없습니다. 나를 어리석었다면 그것은 수 도 하겠습니다.
국(大局)을 볼 몰랐다 하면 그럴 법도 하겠습니다. 를 모르는 과
망상이었다 하면 그럴 법도 하겠습니다. (략) 그러나 나는 내가 할 일을 하여 버렸습니다. 내게는 아무 불평도 회한도 없습니다.
나는 「민족을 하여 살고 민족을 하다가 죽은 이 수」가 되기에 부끄러
움이 없습니다. 천지가 이를 알고 신만이 이를 알 것입니다.51)
“민족을 하여 살고 민족을 하여 부끄러움이 없다”고 하는 자신감이 나 “자신을 희생해서 몇 사람이라도 동포를 핍박에서 건지자”52)는 마음이 었다고 강변하는 춘원의 당당함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춘원의 이런 속내는 그의 친일 련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할 숙제를 우리에 게 던진다. 앞으로의 과제다.
51) 이 수, 「인과」, 이 수 집 9, 541쪽.
52) 이 수, 「서문-<나의 고백>」, 이 수 집 10, 5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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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n the Aesthetic Modernity of Death
- Focused on Death of Man Yeong-Gam of Lee Kwang-Soo
Roh, Sang-Rae
The death of Lee Kwang-Soo's second son, Lee Bong-Geun, brings about an epoch in Lee Kwang-Soo's sense of values. Especially, Death of Man Yeong-Gam written in Japanese language is a watershed in his literary career, that is, from a literature as an ideology to a literature as an aesthetic object.
Though it is written in Japanese langage, it is a work of difference with his previous works in his literary outlook. It can be said that it is adjacent to the essence of modern novel in that it is not a work of heroic protagonists such as Ahn Chang-Ho or Lee Soon-Shin and of a nationalistic grand discourse but a work of 'person' who is supposed to meet in ordinary lives. Especially, it is notable that he brings out prominently his spirit as a writer, with which indicts the pursuit of material immersed in modern societies, and also with which seeks to deconstruct the false authority of traditional order in colluded with capital. This literary quality of him is hardly ever seen before.
Lee Kwang-Su acquires an aesthetic modernity of death by way of Man Yeong-Gam, the protagonist of the novel, who dares any danger including his own death for supreme and purest love. This aesthetic modernity means a modernity of his literary outlook. And it has a significant meaning in that it gives us a basis of anticipation and understanding for his further development of his novel.
Key-words : Writing on person, Death, Aesthetic modernity, Popularity, Japanese writing.
노상래 남 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주소 : (706-777) 구시 수성구 수성4가 수성보성타운 107동 1802호 화번호 : 053-810-2117, 010-9812-8674 자우편 : yunc82@ynu.ac.kr
이 논문은 2009년 10월 31일 투고되어 2009년 12월 18일까지 심사 완료하여 2009년 12월 19일 게재 확정됨.
의 인용은 물론 조선문학은 “조선문으로 쓴 문학”13)이라는 자기규정 이라든지 “언어가 멸망되면 정신도 멸망되는 것이며, 언어가 보존되면 정 신도 보존”14)된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 감의 죽음」을 발표할 당 시까지만 해도 춘원의 언어 은 확고한 것이었다. 그 기 때문에 일본어로 쓴 「만 감의 죽음」은 춘원의 문학자리에서는 일탈임에 틀림없다.
1936년 11월호 삼천리에는 「장편작가회의」라는 제목의 이 게재되 는데, 당시 신문이나 잡지 등에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던 장편소설 작가들 이 한 자리에 모여 마다의 문학 에 해 피력한다.15) 이 자리에서 춘원 은 문학을 여기(餘技)로 여기던 수단으로서의 쓰기에서 탈피하여 문학 을 술 그 자체로 용인하는 발언을 한다. 춘원의 입장에서 보면 쓰기의 일 명이라고 할 만하다.
진정한 인류의 행복을 한다는 참된 술품이라면 모든 작가는 각기 자기
의 개성과 성격에 따라 이것도 그릴 수 있을 것이요, 것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작가들은 자기의 개성과 개성에 따라 어떠한 제한과 교 섭도 받지 않고 참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술」만 창조한다면 어떤 것을 그려도 좋을 로 안다.16)
13) 이 수, 「조선문학의 개념」(신생 1929. 1), 이 수 집 10, 451쪽. 본격 으로 친일 인 일본어 소설을 창작하던 시기에도 춘원은 “조선인의 생활, 조선인의 감정은 당분간은 조선어가 아니고는 완 히 표 되지 않는다는 것만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 니 여기 조선문학의 존재이유의 제1조”(이 수, 「심 신체제와 조선문학의 진로」, 매일신보, 1940. 9. 10.)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조선어에 한 애착은 남달랐다.
14) 이 수, 「‘외래어와 조선어’ 강연기」(계명 1932. 7), 이 수 집 8, 659쪽.
15) 이 회의에 참석한 작가는 「애욕의 피안」(조선일보)의 춘원, 「불연속선」(매일신 보)의 횡보, 「반려」(삼천리)의 회월, 「후회」(조선 앙일보)의 만해, 「황진이(조 선 앙일보)의 상허, 「 삼의 피」(매일신보)의 월탄, 「여명기」(동아일보)의 장 주, 「림」(동아일보)의 박말 , 「황혼」(조선일보)의 한설야 등이다.
16) 「장편작가회의」(삼천리 1936. 11), 이 수 집 8, 655쪽.
“술만 창조한다면 어떤 것을 그려도 좋을 로 안다”는 말에서 계몽 이거나 목 인 쓰기와의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술’에 해 춘원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그런데 요사이 세상에서는 소 「 술성」이라 하면 의례히 가장 알아보기 어려운 말로 몇 사람 안 되는 지식층의 사람만이 감상할 수 있는 일종 병 인 것으로만 해석하는 모양인데, 원래 「 술」이라면 어느 구나 다 읽고 알 수 있는 즉 인 것이라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17)
의 인용에서 여겨 볼 것은 ‘술성’은 ‘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일러 술 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춘원의 순수한 계몽 쓰기와는 다른 차원에서 근할 필요가 있다. 술성을 담보하기 해서는 ‘ ’이어야 한다는 춘원의 술 에 비추어 본다면 「만 감 의 죽음」 한 비록 일본인 독자들이긴 하지만 술성이 담보된 쓰기를 제로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성은 이 의 문학 에 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양주동과 주고받은 논 에서 이 수는 자기 소설의 독자, 혹은 소설의 성과 련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 를 피력한 이 있다.
내가 소설을 쓰는데 첫째 가는 목표가 「이것이 조선인에게 읽 지어 이익
을 주려」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나는 내 소설이 조선인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읽 지기를 바라지 아니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읽을 것을 가지지 못한 이는 조선인이요, 내가 조선인인 까닭이다. 내 소설은 미국인에게는 연히 불필요한 수지 뭉텅이 일는지 모르지마는 조선인에게는 혹시 필요한 독물(讀物)이 될는지 모른다. (략) 나는 이 생각을 내어 던지려고 생각해 본 일도 있다. 나는 일문이나 문으
17) 의 , 655쪽.
로 소설을 써 볼까. 조선이라는 나를 얽어버린 결박을 벗어 버리고 자유로운 일세계인으로 세계 문단을 향하여 한번 소리 쳐 볼까 하는 유혹도 나지 아니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때마다 배의(背義)라는 일종의 강박 념 을 가지게 되었다. 세계는 네가 아니라도 하다. 그러나 조선은 같은 것 이라도 요구한다 하는 소리를 나는 듣는다. 이것을 민족주의 이라고 부르는
지 모른다.18)
이 까지 춘원은 자신의 소설 독자를 조선인에게만 한정했었다. 그리고
그런 제한된 독자를 상으로 했기 때문에 특수성은 가질 수 있었을지 모 르나 보편성을 획득하기는 어려웠다. 이미 독자를 조선인으로 한정해 둔 쓰기 기 때문에 계몽 쓰기라는 주제 한 그 범주를 뛰어넘기 어려 웠다. 따라서 문학의 미 근 성의 측면에서 보면 춘원의 계몽 쓰기 는 인류 성이나 보편성을 획득하는데 한계를 가진 름발이 문학 이었고, 이것을 춘원은 ‘민족주의 ’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이런 문학 은 다음의 인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소설을 쓰는 구경(究竟)의 동기는 내가 신문기자가 되는 구경의 동기,
교사가 되는 구경의 동기, 내가 하는 모든 작 의 구경의 동기와 일치하는 것이니, 그것은 곧 「조선과 조선민족을 하는 사―의무의 이행」이다.19)
문학 쓰기가 신문기자나 교사의 동기와 동일시되는 한, 춘원의 쓰 기는 문학 보편성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미 춘원은 쓰기 의 세계성에 해 고민하고 있었음을 앞선 인용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지만 그 포부를 주 앉 야 했던 것은 강한 민족주의에 근거한 배외감 때문이었다. 조선민족을 배신할 수 없다는 민족주의 태도는 춘원의 쓰
18) 이 수, 「여의 작가 태도」(동 1931. 4), 이 수 집 10」, 460쪽.
19) 의 , 462쪽.
기를 제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근의 죽음은 배외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틈새를 만들어
셈이다. 조선민족만을 한 제한된 독자층의 쓰기나 계몽의 기획이라 는 특수한 주제의 쓰기에서 탈피하여, ‘자유로운 일세계인’으로 “세계 문 단을 향하여 한번 소리쳐” 보고 싶은 욕구가 다시 살아났다고 볼 수 있다. 「만 감의 죽음」은 독자층의 확 와 계몽 쓰기의 탈피라는 이 의 미가 고스란히 용해되어 있는 미학 쓰기라는 제는 이 게 성립되는 것이다. 다만 독자층의 확 가 미학 단의 근거는 될 수 있지만 당시 첨 하게 부각되는 민족 감정을 어떻게 추스를 수 있을 지에 한 문제 는 별개의 것이다. 문학은 완벽한 자가재생산시스템이 아니다. 일탈이 언 제나 허용되는 것이다. 그 일탈은 한 순간에 이루어질 수 있다. 「만 감의 죽음」이 바로 그런 경우다.
정백수는 「만 감의 죽음」에 두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나는 “한
국어에서 일본어로 창작 언어가 환되는 계기를 노정하는 텍스트”라는 것, 다른 하나는 “일본어를 모어로 하는 독자층을 직 상정하고 있다는
”이다. ) 그런데 「만 감의 죽음」이 갖는 문학사 맥락이나 미학 가 치를 토 로 할 경우 자의 의미는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 야 할 것이다. 「만 감의 죽음」은 1936년 8월에 발표되고, 다음의 일본어 작품인 「산사의 사람들(山寺の人人)」이 1940년 5월에 발표되니, 그 사이에 약 4년의 공백 기가 있다. 「만 감의 죽음」이 일본어 창작의 환 에 해당한다면 문학사 으로 볼 때 이 수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일 터인데, 조선의 일본어 문학 작품을 정선한 조선국민문학집(朝鮮國民文學集)(1943), 신반도 문학선집(新半島文學選集)(1944), 신반도문학선집(新半島文學選集) 2
(1944), 반도작가단편집(半島作家短篇集)(1944) 등에는 수록되지 않는
다. 신 「산사의 사람들」이 조선국민문학집과 신반도문학선집에 실 린다. 이는 이 수의 일본어소설에 해 평가할 경우, 「만 감의 죽음」과 「산사의 사람들」을 다른 각도에서 평가해야 함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수의 본격 인 일본어창작의 환은 「산사의 사람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럴 경우 「만 감의 죽음」은 조선국민문학집 등에 수록된 이 수의 작품과는 다른 문학사 ․미학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만 감의 죽음」은 이후의 일본어 작품들이 친일문학 성 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에 비해 표 어만 문제 삼지 않는다면 후 의 작품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에서 정백수의 “일본어로 창작어가 환되는 계기”라는 단은 좀 더 세 한 찰을 요하는 목임을 알 수 있다.
춘원의 일본어 창작은 조선문학이 도달한 시 에서의 성과와 그에
한 불만이 일본어창작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춘원은 「만 감의 죽음」이 발표되기 인 1932년 6월호 가이조(改造)에 조선문학 의 반 인 개략을 소개한 「조선의 문학(朝鮮の文学)」21)이라는 논평을 발표한다. 이 은 가이조사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 첫머리 에서 춘원은 조선문학의 주소에 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일의 조선문학은 아직 세계 시장에 내놓을 만한 정도에 도달치 못하 다. 작가도 작품도 수에 있어서도 질에 있어서도 유감이나 아직 역사를 지닌 일민 족의 문학으로써 리 내어 놀 수 없다.22)
21) 이 은 번역되어 삼천리 1933년 3월호에 게재되며, 다시 개고(改稿)되어 「조선 문학의 발 -경술(庚戌)이래 25년간-」이라는 제목으로 삼천리 1934년 7월호에 실 린다.
22) 조선의 문학」(삼천리 1933. 3), 이 수 집 10 464쪽.
‘일의 조선문학’이 도달한 ‘유감’스러운 실을 안타깝게 여기는 춘원 의 심정에는 ‘세계 시장에 내놓을 만한 정도’의 작품이 조선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염원이 스며있다. 그런데 이 에서 여겨 볼 목이 있다. 하나는 조선시 에 ‘조선어의 조선문학’을 ‘ 돌보지 않’고 ‘국문학에 탐닉한 조선인’은 ‘민족에 상응되는 문학을 제작치 못하’다는 신랄한 비 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시 문인들이 사 주의에 기울 어 외국어인 한자를 사용한 것에 한 매서운 지 이다. 이 수의 조선어 은 여기서도 빛난다. 다음으로 여겨 볼 것은 당시에 활동하던 근 문 인들을 소개하면서 자신에 해 언 하지 않았다는 이다. 애국시가 시 의 작품이나, 최남선, 주요한, 김안서, 박월탄, 김소월, 김 인, 이은상, 이병기, 정인보 같은 시인이나 시조시인, 그리고 이인직, 김동인, 빙허, 염상섭, 나도향 박 희․김기진으로 표되는 로문인을 이 에서 소 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타가 인정하는 조선의 표 문인인 자신에 해서는 한 마디도 언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특이하다. 말미에 자신 의 역할에 해 일체 쓰지 않는 것이 ‘바른 을 알기 때문’이라는 첨언이 있긴 하지만 춘원은 스스로 이상의 문인들과는 유비될 수 없는, 질에 있어 서나 작품의 수로 보거나 무엇으로도 ‘세계 시장에 내놓을 만한 정도’의 수 에 도달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본보기의 쓰기로서 「만 감의 죽음」을 “동양의 가장 큰 서울이요, 정치의 심이요, 세계문화 의 몇 개 심 의 하나라는 동경”23)에서 발표한다면 장 주와는 다른 조선문학의 세계 수 을 입증하게 될 것이라고 춘원은 단했음 직하다.
그리고 춘원의 일본어 쓰기는 당시 검열제도와 련지어 생각할 수 있
다. 춘원은 조선의 검열제도에 해 지속 인 심을 가지고 있었다. 기실 그 심은 우려의 표명이다.
23) 「동경구경기」(조 1936. 11), 이 수 집 9, 187쪽.
아무려나 나는 을 쓸 때에 반드시 조선인―그 에도 나와 같이 은 조 선의 아들딸을 염두에 둔다. 나는 붓을 들고 종이를 할 때에 그들 은 조선 인에게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통정이 샘솟듯 솟아 나옴을 깨닫는다. 그것이 듣는 이에게 유익한 것인지 불필요한 것인지 모르거니와, 내 딴에 말하지 아 니치 못할 것을 느낀다. 그 중에서 나는 경무국이 허할만한 재료를 골라서 원고지에 적기를 시작하는 것이다.―이것이 내 소설이다.24) (강조 : 인용자)
경무국의 검열을 거쳐야만 소설이 발표될 수 있었다는 것은 소재나 주 제가 쓰기 부터 제한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제한된 쓰기는 작 가의 창작 의욕을 하시킬 뿐만 아니라 표 방식도 강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고의 자유로운 유로를 방해할 것이며, 정치 시스템에 흡수될 것을 강요한다. 그런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지속될수록 작가는 구속에서의 자유를 갈망하게 될 것이다. 춘원은 조선의 문학이 발달하지 못하는 이유 에 하나가 바로 이 검열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학의 나라라는 조선에 있어 이만큼이나 문학에 냉담하다고 하는 것은
좀 이상한 느낌을 느낀 것이로되, 그것은 이유가 있다.
제일, 조선인은 이 삼십년래 평안히 문학이나 술을 맛볼 만한 그러한 여
유를 갖지 못하 었다. (략)
다음에 조선인의 생활의 경제 궁핍은 해를 따라, 날을 따라 궁핍하여진다. 문학이나 술을 좋아할 마음의 여유도 는 경제 여유도 없다. (략) 제삼에, 조선의 검열제도이다. 이것은 조선인이 되어보면 참으로 상상도
안 된다.25)
정치 인 이유로 인해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쓰기는 모든 작가들의
24) 이 수, 「여의 작가 태도」, 460~461쪽.
25) 조선의 문학」(삼천리 1933. 3), 이 수 집 10, 솔출 사, 1999, 68쪽.
염원이다. 그러나 조선의 실 상황은 작가들에게 검열제도라는 시스템 에 길들여지기를 원했다. 제한된 테두리 속에서만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것 이다. “테에마를 찾아 마치 간 장이가 그 주인의 마음에 맞도록 의장을 하듯이”26) 쓰는 은 의사 쓰기이다. 자유로운 쓰기는 당시 조선문인 들의 공통된 갈망이었다. 검열에서 상 으로 자유로운 일본어 쓰기는 검열을 피할 수 있는 한 방편일 수 있었다. 그럴 경우 소설의 스토리나 주 제가 검열 과정에서 문제가 될 만큼의 내용을 담고 있는지가 문제이다. 이 부분은 다음 장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27)
결국 춘원은 신앙처럼 받들던 조선어 에도 불구하고 술 성이
확보된 미학 쓰기, 조선문학의 세계 수 제고, 그리고 검열제도 라는 속박에서 벗어나기 한 쓰기로 「만 감의 죽음」을 창작한 것이라 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어 쓰기가 당시 민족 감 정에 부합한 것이었는지, 그런 쓰기가 민족문학 시각에서 어떻게 단 될 수 있을지는 여 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3. 조선의 ‘아귀’가 죽음을 통해 획득한 미 근 성
「만 감의 죽음」은 「성조기」와 유기 상 물이다. 「성조기」는 홍지동 산장을 짓는 과정을 그린 ‘사람’에 한 쓰기인데, 이 수필에서 춘원은 ‘박선달’이라는 인물에 큰 심을 가지게 된다. 춘원의 표 로 하면 박선 달은 “노신(魯迅)의 아귀(阿鬼)28)와 비슷한 이 있어서, 인생의 한 표본
26) 의 , 468쪽.
27) 이 외에도 가이조(改造) 사장 야마모토 츠네히코(山本實彦)와의 친분 계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친분 계는 창작의 직 동기라고 보기보다는 간 동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 부분에 해서는 김윤식 교수가 이 수와 그의 시 2(253~262쪽)에서 논하 기 때문에 참조하기 바란다.
으로 썩 재미있는 인물”29)이었다. 박선달은 일생에 십 수 명의 마 라를 얻었지만 사흘도 되기 에 마 라들이 다 도망을 가버려 인생의 비애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얼굴도 잘 나고 기운도 남보다 센 그 지만 ‘생리 결함’ 때문이었다. 그의 국부는 ‘14, 5세의 소아를 연상 하는’ 크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만 감’은 바로 이 박선달이 모델이었다. 박선달과 만 감의 인물 묘사를 비교해보면 그것은 확연해진다.
석수 박선달은 감님이라고도 하고 박 감이라고도 하 다. (략) 그러나 박선달은 자칭하는 거와 같이 일류 석수는 아니었다. 그는 성미가 겁겁하고 우락부락하나 뒷심이 없는 거와 같이 못쓸 바윗돌을 깨뜨려 내는 데는 상당하지마는, 재주를 부리거나 조심해서 할 일은 맡길 수가 없었다.30)
만 감은 쉰을 네댓 살이나 지난 채석장의 인부이다. 스스로는 석공이라고 하지만 어엿한 석공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화약으로 폭 된 큰 돌멩이를 도편수의 지시에 따라 치수 로 자르기도 하고, 강 강 다듬기도 하는 모양
이었다.31)
이런 박선달 혹은 만 감을 통해 춘원은 조선의 어떤 ‘아귀’를 그리고자
했던 것일까? 이를 구명하기 해서는 고려되어야 할 이 있다. 첫째, 만 감이 조선민 을 표하는 형 인물이었는지를 따져 야 한다. 둘째, 만 감의 죽음이 단순히 사랑의 실패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따져 야 한다. 셋째, 만 감의 일탈이 공동체 사회 의 해체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공동체 사회에서 스스로 이탈해 간 것인지
28) 여기서는 「아Q정 」의 ‘아큐’를 춘원의 에 나오는 ‘아귀’로 통일하여 부르기로 한다.
29) 이 수, 「성조기」, 이 수 집 8, 256쪽 30) 의 , 255쪽.
31) 이 수, 만 감의 죽음」, 改造, 164쪽.
를 따져 야 한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훌륭한 분’이었던 최 씨 성을 가진 만 감은 친형 인 ‘용 감’이 제공하는 정보에 따르면 보통의 조선사람과 그리 다를 것도 없다.
“이놈, 만이 녀석은 말이 없고, 언제나 성이 난 얼굴이지만, 근본은 정직하 며, 인정도 의리도 헤아릴 아는 녀석입니다.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 지 않으며, 소처럼 일을 잘하여 자신의 손으로 이만큼의 재산도 모았으며, 놈들(천길과 삼길을 가리키며)이 어려서 아비가 죽어버려 빌어먹게 된 것을 이놈이 떠맡아 길 지요.”32)
우직하고 착하기 그지없을 뿐만 아니라 인정이나 의리도 있어 ‘용 감’에
게 있어 만 감은 평범한 동생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화자인 ‘나’에게 비친 만 감은 좀 다르다. ‘지력과 감정이 보통 이하 지만 바 덩이 같은 사내’ 로 도무지 말이 없어, 새로 이사를 와서 3년이나 이웃해 산 ‘나’는 그가 ‘벙 어리’인 착각할 정도 다. 뿐만 아니라 ‘자식도 없고, 친구도 없으며, 이 웃사람과 교제도 없고, 책도 읽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으며, 담배도 않는’33) 만 감은 여느 조선사람과는 뭔가 좀 색다른 면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런 만 감은 여성 편력으로 동네 주민에게 신기한 인물로 이미지화
된다. ‘오직 여자만이 유일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만 감은 무당인 첫 부 인이 어느 집에 푸닥거리를 갔다가 돌아오지 않자 그 후 여자를 열 번이나 갈아치울 정도로 여자에 한 한은 단한 능력의 소유자 다. 어느 날 그 는 동리에서는 미를 견 만한 인물이 없을 만큼 아리따운 25, 6세쯤 되는 여인 하나를 ‘경성’에서 데려오는데, 후에 그녀가 도망을 가고, 그 때문에
32) 의 소설, 172쪽.
33) 164쪽.
만 감은 ‘갔는가’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미치 이로 변해 버린다. 그 다면 만 감은 아귀와 어떤 동이(同異)가 있을까?
「아Q정」이 발표되자 마오둔(茅盾)은 “아큐란 사람은 아주 낯이 익다. 그는 국인 품성의 결정이다”34)라고 말하여 ‘아귀’가 국인의 형 인 모습임을 지 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귀’의 형성에 한 다음 의 평가는 매우 이채롭다.
우양은 형이란 “한 특정한 시 , 한 특정집단의 공통 인 특성을 지니 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가 표하는 사회와 구별되는 개별 면모를 지니 고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우양은 아큐는 농민의 공통 인 특징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농민의 공통 인 특징과 구별되는 특수한 개별 특징을 지닌 인물이라고 본다. 우양은 형에 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큐는 농민 이지만 보편 농민이 아니라 농민 에서도 특수한 존재이고, 특정 시기, 특 히 신해 명 시기의 농민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크게 보자면 신 국 성립 이후 국가주의가 직조한 문화 기억의
일한 지배에 균열을 내는 한편, 그 문화 아이콘 역할을 수행하 던 국 문학 작품을 새롭게 읽어내는 일이 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 문학의 주요 작품들이 국가주의에 동원되어 새롭게 텍스트가 구성되면서 일그러지고 뒤틀렸던 것을 복원하여 국 문학의 명작들에게 제몫을 찾 아주는 일이자, 궁극 으로는 문학 차원을 넘어 과거 역사를 바로잡는 일의 일환일 것이다.35)
‘아귀’는 정치 이해 계에 따라 그의 형성이 다르게 평가되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특히 마오쩌뚱시 에는 명성이나 억압의 주체 문제에
34) 雁冰, 「通信」(1922), 이욱연, 「시 와 정 ―루쉰의 「아큐정 」의 경우」, 中國現代文學 第39號, 228쪽 재인용.
35) 周揚, 「現實主義試論」(1936), 「典型 個性」(1936) 등 참조. 陳漱渝 主編, 說不盡的阿Q(中國文聯出版公社, 1997), 415-416면, 428-433면. 의 , 231쪽 재인용.
을 맞춰 ‘아귀’를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귀’는 형성과 명성, 달리 말 하면 변 의 주체로서의 역할에 이 맞춰져 국근 문학의 한 장을 구
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귀’를 억압하는 주체는 주로 ‘자오’가로 표되는 건지배세력이나 ‘가짜 양놈’으로 설정된다.36)
그러나 만 감의 경우 억압 주체를 건지배세력으로 보기는 어렵다. 얼 핏 보면 만 감을 억압하는 주체는 그의 가족과 동리의 모든 주민인 것처 럼 보인다. 그런데 문맥을 깊이 따라가면 아주 특이한 인물이 등장한다. ‘구장’이었다. 소설에서 구장은 이 게 묘사되고 있다.
구장이, 만 감을 그 로 방치해 두면 인명에 해를 가할 우려가 있다는
, 특히 부인에게 폭행을 가하기 쉽다는 , 마지막으로 만약 무슨 일이 생기 면 그것은 친족의 책임이라는 등, 일종의 헌(官憲) 엄으로써 설명하 고, 즉각 그를 병원에 입원시키든가 그 지 않으면 폭행을 하지 못하게 보호 하도록 명령했다. 구장은 배운 것은 없으나, 오랜 동안 구장을 하여 면사무소 나 주재소에 출입을 한 터이라, 말하는 꼴도 리 냄새를 풍기고 있었으며, 입심도 상당히 좋았다.37)
‘색 ’이라는 명분으로 만 감의 인신을 구속하라고 명령하는 장본인은 ‘구장’이다. 제국주의에 의해 도입된 근 행정 체계는 상명하달식이다. 거기에 불복할 경우 ‘당한 몽둥이와 튼튼한 밧’38)로 상징되는 해가 가해진다. 단순히 언어 폭력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물리 폭력성을 수반하는 것이 근 행정 체계 다. 만 감은 바로 이 근 행정체계 의 최말단인 ‘구장’의 <명령>에 의해 인신(人身)의 자유를 박탈당한 것이 다. 그런 에서 ‘구장’은 근 행정의 의사(擬似)집행 으로 간주할 수 있
36) 의 , 238쪽.
37) 이 수, 「만 감의 죽음」, 170쪽.
38) 171쪽.
다. 도 몰라 책도 읽지 않는 무지하고 무자각한 만 감의 본능 사랑은 근 이성으로 무장된 행정제도에 의해 고스란히 해체되고 박탈당한 것 이다. 만 감의 특별한 사랑 방식은 당 조선의 보편 사랑은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만 감은 평범한 조선인이었지만 보편 조선인이 아니라 특수한 존재이고, 특정 시기의 인물인 것이다. 우양은 표 로 하면 만 감은 “농민의 공통 인 특징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농민의 공통 인 특징과 구별되는 특수한 개별 특징을 지닌 인물”인 셈이다. 그러나 그가 형 인물이건 특수한 인물이건 그의 사랑이 억압받은 사실은 변하지 않 는다.
의사집행 ‘구장’이 ‘만 감’의 죽음에 간 으로 간여하고 있다면, 그 의 죽음에 직 간여한 인물은 ‘경성’에서 데려온 ‘여자’와 만 감의 가족들 이다. 사실 만 감을 미치게 만들고 기야 죽음에 이르도록 한 장본인은 <경성에서 온 그 여자>이다. ‘뽀얀 피부에, 통통히 살이 오르고, 때를 벗은’ 그녀는 ‘자개 박힌 장롱이나 일본 경 ’를 쓸 정도여서 “아무래도 이 마을 사람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 그녀는 동리에서 ‘나’의 집 이외에는 아무 도 설치하지 않은 ‘등’이라는 <근 의 불빛>을 설치해 달라거나, 만 감 의 땅과 집을 자신의 명의로 돌려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아는 여자 다. 근 무늬로 치장되어, 도무지 만 감과는 ‘궁합이 맞지 않’을 것 같은 그 여자가 만 감과 붙어사는 것은 바로 이런 근 의 속성들 때문이었다. 만 감에게 그녀는 ‘돈으로도 목숨으로도 바꿀 수 없는’ ) 존재 지만, 그 녀에게 만 감은 토지나 집으로 상징되는 자본이었을 따름이다. 이 어 남 이 바로 만 감의 죽음을 재 하는 화근이 된다. 만 감의 사랑이 자본의 근 에 굴복하는 모습은 고리 업에 의해 기를 박는다.
만 감은 여자가 도망간 뒤 보름간 일을 쉬었다. 그러나 그에게 은 없
었다. 그의 재산이라고는 2백여 평 되는 매우 경사진 땅의 과수원과 쓰러질 것 같은 자그마한 집뿐이었다. 으로 환산하면 겨우 6백 원 남짓 될 것이
다. 그러나 이 부동산은 연 6할이나 이자를 물어야 하는 2백 원의 고리채에 당 잡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말한 로 여자를 해 자개로 세공된 장롱이나 일본 경 를 사기 해서는 백 원을 빌리지 않으 면 안 되었다. 그의 하루 2원 정도 채석장 수입으로는 여자의 화장값이나 감당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구나 비가 오는 날은 채석장을 쉬어야 했다. 한 달 이상의 장마철에 비하기 해서는 어도 5, 6십 원의 돈을 모아둘 필요가 있으며, 그 지 않으면 연 6할 이자의 돈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는 믿을 수 없는 은 여자를 감 하면서까지 일을 하러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
연 6할이라는 살인 인 고리 을 빌려서라도 여자의 욕구를 충족시키
려 했던 만 감의 사랑은 간 했다. 하지만 만 감이 ‘믿을 수 없는’ 여자를 지키기 해 벌이는 행동에서 죽음으로 내모는 고리 업을 비 하는 춘 원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은 요하다. 춘원은 만 감의 우직한 애정행 와 그것을 방해하는 근 속성을 병립시켜서 근 를 비 하고 있는 것이다. 근 속성으로 치장한 ‘믿을 수 없는’ 그녀와의 사랑싸움이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것은 소설 첫머리부터 정되어 있었다. “끝날 모르는, 구슬픔 과 원망을 호소하는 원혼의 규처럼” ) 울어 는 북한산 자락의 뻐꾸기 의 울음소리가 사롭지 않음은 바로 그 때문이다.
‘14, 5나 살아와 마을에서는 명문가’의 일원인 만 감의 몰락은 근 행정체계의 말단인 구장, 경성이라는 도회에서 온 여자, 그리고 고리 업이라는 근 의 속성들이 합체하여 만들어낸 산물이다. 억압하는 주체로
서의 근 와 그것에 의해 미치거나 죽는 것으로 결딴나고 마는 만 감의 립은 「만 감의 죽음」이 도달한 미 근 성이며, 세계성이다. 정신승리 법이나 논하면서 끊임없는 수모를 웃어넘기거나 계속되는 핍박과 굴욕에 도 분노할 모르는 무기력한 노신의 아귀와 근 속성에 속수무책인 춘원의 아귀는 그런 에서 서로 닮았다. 그러나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해 뭔가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에서 춘원의 아귀는 노신의 아귀와 다르 다. 따라서 만 감은 근 의 속성을 제 로 이해하지 못하고 몰락해간 수 많은 조선인의 한 형이면서, 특수한 개인이라고 할 수 있다.
만 감의 죽음이 더 비극 인 것은 이런 근 속성에 더해 통 인
질서에 무비 으로 길들여진 가족들의 강고한 사고가 만 감을 죽음으 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답답한 통 질서 속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가족공동체의 모습은 만 감이 그의 토지와 집을 여자와 공동명의로 바꾸 려는 것에 한 반응에서 잘 나타난다.
그런데 용 감은 즉석에서 아우의 불찰을 꾸짖었고, 이에 멈추지 않고 조
카들에게도 말을 해버렸다.
「삼길아. 큰일났다. 네 몫이 될 재산이 그 여자 손에 들어가 버렸다.」 라고 말하여 삼길의 형인 천길이나 복길이나 그들의 어머니, 그리고 그들의 고모이자 동시에 용 감과 만 감의 이가 되는 산 머 고모라 불리는 무당 좋아하는 여자가 모여서 의를 하여 만 감의 분별없는 계획을 막으려 했던 것이었다. (략)
「그런 여자에게 재산을 넘겨주면 난 양자 따 는 안 할 겁니다. 아버지가 죽더라도 난 상주도 안 할 겁니다.」
라고 삼길이가 고함치는 소리가 내 집까지도 들렸다. 삼길은 시내의 보통학 교 3학년까지 다녀서 이 마을에서는 도회풍의 신청년 중 한 사람으로 경찰 을 두려워할 뿐, 그 외에 두려울 것이 없는 계급에 속하는 사내였다. 친족들이 의한 결과, 최가의 재산을 생 남인 그 여자에게 넘겨주는 것
은 최가 가문의 수치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만 감의 형인 용 감이, 집안사 람들 앞에서 이러한 선고를 달한 것이었다.43) (강조 : 인용자)
‘명문가’의 후 답게 가족들은 ‘분별없는 계획’을 세운 만 감의 ‘불찰’을 꾸짖을 뿐만 아니라 가족의 ‘의’ 하에 최씨 가문의 재산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다는 ‘선고’를 내린다. 가문이라는 통은 만 감의 사랑쯤은 무시하거 나 꾸짖을 수 있는 권 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권 는 압 인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만 감’의 의사와는 무 하게 집행되었다.
그런데 가문이나 가족의 의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압 인 힘도 따
지고 보면 ‘토지와 집’이라는 달콤한 자본의 앞에서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 자본이 매개되지 않았다면 권 인 힘이 만들어지지도 않았 을 뿐만 아니라 그 힘은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아비가 사망한 뒤 빌어먹게 생긴 삼길의 형제들을 거둬주었을 뿐만 아니라 삼길을 양자로 삼아 세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 친자식처럼 길러 만 감의 헌신 인 보살 핌은 돈 앞에서는 손바닥 크기만큼의 가치도 없었다. 특히 ‘도회풍의 신청 년 한 사람’이며 경찰 외에는 ‘두려울 것이 없는 계 ’인 삼길에게 있어 자본의 력은 다른 사람에게 비길 수 없을 만큼 단한 것이었다. 상속되 지 않는 재산 앞에 양아버지라는 이름은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삼길 에게 가문의 힘은 바로 자본의 힘이었고, 도회풍의 신청년에게 그것은 일 상화된 내면이었던 것이다. ‘돈’으로 상징되는 <도회풍>의 이성 사고 앞 에서 ‘사랑’이라는 비과학 , 비논리 인 가치는 해체되고 만 것이다. 이런 에서 「만 감의 죽음」은 “가족ㆍ마을공동체의 이데올로기 권력이 그 시스템 내부의 이질 존재를 배재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44)이라고 할 수 있다.
43) 의 소설, 169쪽.
44) 정백수, 앞의 책, 174~5쪽.
그러나 그 권력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근 자본의 속성을 빼놓고서는
시스템의 내부를 제 로 들여다보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 면 만 감은 통 질서의 언 리에서 살면서 근 의 속성에 의해 무 져 내렸지만, 그가 선택한 사랑을 하여 스스로 미쳐감으로써 공동체의 질서 에서 자신을 유폐시키는 방식으로 근 와 통 질서에 항한 셈이었다. 이처럼 춘원은 만 감의 죽음을 통해 재구성된 근 의 폐해를 제국의 언어 (일본어)로 비 함으로써 언어를 월한 문학의 미 가치를 확보할 수 있 었다. 그럼으로써 「만 감의 죽음」은 세계성을 지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제라는 근 의 물성에 한 비 은 검열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일본 어는 그것을 넘어서는 하나의 방편일 수 있었다.
그 다면 춘원이 만 감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을 까? 이즈음 춘원이 가슴에 담아두고 있던 사랑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오늘날까지의 문학에는 원망이라든가 질투라든가 욕심이라든가 미움이라 든가, 이러한 사나운 감정이 무 많이 취 되고 강조되지 않았는가 한다. 이 러한 추폭한 감정은 늘 사람에게 불행과 악을 주는 근본이 된다.
사랑이라는 부드러운 감정조차도 많은 문학에서는 사나운 감정을 곁들이
기를 좋아하 다. 이것은 조라든가 의 심리에 맞춘다든가 하는 문학 기술의 편의를 함도 있겠지마는 역시 사람에게 있고 싶고 발달되고 싶은 것은 부드러운 감정일 것이다.
사랑, 동정, 기쁨, 슬픔 들들. 이러한 부드러운 감정만으로 문학 작품을
만든 이가 과거에도 없지는 않았다. (략) 사람은 마다 제 오막살이 한 간을 가지고 있는 모양으로 마다 제 세계
하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오막살이들이 다 견치 못한 것임과 같이, 사람은 항상 제가
들어앉은 세계를 벗어나서 더 크고 넓은 세계를 찾아야만 한다. 「끝없이 높은 사랑을 찾아 향상하려」는 애 ― 여러분이여. 이것은 한 아름다운 제목이 아닐까.45)
‘갔는가’라고 외치는 만 감의 사랑에 한 울분은 죽어가면서 찾던 물 한 모 으로 씻겨 내려갈 갈증은 아니었다. 단순하고, 무식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사랑일지언정 육정 인 사랑을 넘어서는 ‘끝없이 높은 사랑’을 ‘만 감’을 통해 춘원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사랑이 「무정」류와 다른 것은 계몽 이지 않다는 것이다. 답답한 사랑, 무지한 사랑을 통해 진리를 드러내는 방식을 선택한 춘원의 소설 기법에 만 감은 썩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만 감은 ‘박선달’이라는 ‘사람’의 근 촬 을 통해 활 사(活寫)된 것이기 때문에 이 의 추상 , 이론 사랑을 뛰어넘고 있다. 아울러 ‘조선의 아귀’에 한 춘원의 욕망은 비굴하고 무기력에 빠진 자신 의 자화상뿐만 아니라 식민지의 자화상을 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만 감 이 죽음으로써 모든 것은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사 랑의 고귀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신승리 법>이었다. 따라서 “은 시 부터 가져온 동포들에 한 계몽자 내지 교 사 의식을 넘어서는 길목에서 루쉰과의 만남이 있었다는 것은 의미 있는 발견”46)이었다.
마지막으로 노신의 「아Q정」이 갖는 의의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필 자는 노신의 언어 에 주목하고자 한다. 국에서는 노신을 근 소설 장르 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 평가는 그의 문체 과 근 의식에 서도 연유한다.
요컨 이 한 편(阿Q의 일생 이야기)은 역시 ‘本傳’이 되겠지만, 내 문장에
해서 생각해 보면 문체에 품 가 없어 ‘인력거꾼이나 콩국팔이’가 쓰는 말 이기 때문에 本傳이라고 주제넘게 지칭할 수도 없다.47)
45) 이 수, 「높은 사랑을 향하여」(삼천리, 1938. 11), 이 수 집 8, 484~485쪽.
46) 임명신, 아Q정 , 살림, 2006, 119쪽.
47) 魯迅, 「阿Q正傳」, 魯迅全集 1, 이보경, 「<阿Q正傳>이 ‘阿Q正傳’이 된 까닭」,
노신은 스스로의 문체를 “품 가 없어 ‘인력거꾼이나 콩국팔이’가 쓰는 말”이라고 하여 ‘본 ’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이 말은 국근 소설사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단히 의미심장한 말이다. 노신은 스스로 ‘인 력거꾼이나 콩국팔이’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임을 공개 으로 천명하고 있는데, 이 말은 곧 노신이 “고문(古文)이라는 문체 권력에 항하여 인력 거꾼이나 콩국팔이 같은 하층민 들의 언어를 의식 으로 지향하고”48) 있 었음을 의미한다. 노신에게 있어 문체의 변 은 곧 의식의 변 이었다. “문 학 작품과 그 작품이 모방하는 실 사이의 일치라는 문제에 해 주의를 기울”49)일 때 문체 변화는 가능하며 리얼리티 한 확보될 수 있다.
「만 감의 죽음」을 노신의 언어 에 견주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만 감의 죽음」이 미 근 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문체 변화 와 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만 감의 죽음」은 춘원의 이 소설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던 ‘채석장 인부’를 주인공으로 상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노신 이 말한 ‘인력거꾼이나 콩국팔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는 의미일 테고, 그 변화된 의식에 버 가는 문체상의 변모를 가정해 볼 수 있다. 이런 변화의 일단은 ‘이 놈(こいつ, こら, 奴)’, ‘바보 같은 놈(馬鹿野郎)’ 같은 비속어들에서 우선 확인할 수 있다.50) 즉 하층민들의 언어에 한 의식 심은 새로운 방식의 쓰기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체의 변화는 춘원의 일본어 쓰기와 상보 인 계 다고 볼 수 있다.
만 감의 사랑은 실패했지만 어쩌면 시 임무를 완수하 고, 이제 만 감의 시 는 죽었다. 「만 감의 죽음」은 춘원문학이 보여 새로운 쓰
48) 의 , 375쪽.
49) 이언 와트, 앞의 책, 20쪽.
50) 「만 감의 죽음」을 비롯하여 이후 쓰인 작품들과 이 의 작품들의 문체 변모에 한 고찰은 과제로 남겨 둔다.
기의 한 모습이었지만 만 감은 그 시 를 월하지는 못했다. 조선의 아 귀 만 감은 우직한 조선민 의 특성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특수한 개인 의 치에 놓임으로써 시 를 월하지 못하 지만, 시 를 넘어서려는 그 의 의지는 춘원 문학이 이룩한 미 결실인 셈이다. 죽음을 통한 미 근 성은 이 게 획득되고 있었다. 이후 개된 「무명」 등의 소설이 갖는 미 근 성은 「만 감의 죽음」이 다져놓은 석이었던 것이다.
4. 결론
지 까지 「만 감의 죽음」에 나타난 구장, 경성에서 온 여인, 고리
업이라는 근 물들과 자본의 속성에 길들여진 통으로 장된 권 라는 공범에 의해 만 감이 살해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춘원은 근 이후 ‘우리’라는 공동체를 상상하게 만들어 문학을 통해 근 자본의 속성이 어떻게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만 감의 죽음」 통해 재구성함으로써 이식된 혹은 일제에 의해 양산된 근 의식의 폐해를 제국의 언어인 일본어로 고발하 다. 춘원에게 있어 일본어의 선택 은 성과 술성이 확보된 미학 쓰기, 조선문학의 세계 수 제고, 검열을 통과하기 한 소설 책략이었기 때문에 일본어 선택만을 두고 친일문학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치 못하다.
그리고 견고한 통 질서에 한 만 감의 거부(인이 되거나 죽는
행 )는 사랑이라는 이름에 성스러움을 부여하기 한 만 감의 처 한 몸 부림으로 간주할 수 있다. 만 감의 사랑이 근 자본의 논리와 자본에 물 든 통 질서에 의해 거부되고 좌 되었을 때 만 감은 스스로 인이 되어 통 질서에 포섭되는 신 그 공간에서 스스로를 유폐시킴으로써 자유를 얻으려 했다. 그것이 「만 감의 죽음」이 도달한 미 근 성이었으 며, 그 근 성은 세계성을 지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문학 성과에도 불구하고 춘원의 일본어 쓰기가 사롭
게 보이지 않음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창씨개명과 암흑기에 보여 그의 일본어 쓰기가 남긴 과오 때문이다. 그런 에서 보면 다음의 시는 생각 의 여지를 많이 남긴다.
세상은 내가 「죽을 죄로 잘못했습니다. 나는 내 명리를 하여서 민족을
반역했습니다」 하는 참회만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겸손을 꾸미더라도 그런 거짓말은 할 수 없습니다. 나를 어리석었다면 그것은 수 도 하겠습니다.
국(大局)을 볼 몰랐다 하면 그럴 법도 하겠습니다. 를 모르는 과
망상이었다 하면 그럴 법도 하겠습니다. (략) 그러나 나는 내가 할 일을 하여 버렸습니다. 내게는 아무 불평도 회한도 없습니다.
나는 「민족을 하여 살고 민족을 하다가 죽은 이 수」가 되기에 부끄러
움이 없습니다. 천지가 이를 알고 신만이 이를 알 것입니다.51)
“민족을 하여 살고 민족을 하여 부끄러움이 없다”고 하는 자신감이 나 “자신을 희생해서 몇 사람이라도 동포를 핍박에서 건지자”52)는 마음이 었다고 강변하는 춘원의 당당함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춘원의 이런 속내는 그의 친일 련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할 숙제를 우리에 게 던진다. 앞으로의 과제다.
51) 이 수, 「인과」, 이 수 집 9, 541쪽.
52) 이 수, 「서문-<나의 고백>」, 이 수 집 10, 539쪽.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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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n the Aesthetic Modernity of Death
- Focused on Death of Man Yeong-Gam of Lee Kwang-Soo
Roh, Sang-Rae
The death of Lee Kwang-Soo's second son, Lee Bong-Geun, brings about an epoch in Lee Kwang-Soo's sense of values. Especially, Death of Man Yeong-Gam written in Japanese language is a watershed in his literary career, that is, from a literature as an ideology to a literature as an aesthetic object.
Though it is written in Japanese langage, it is a work of difference with his previous works in his literary outlook. It can be said that it is adjacent to the essence of modern novel in that it is not a work of heroic protagonists such as Ahn Chang-Ho or Lee Soon-Shin and of a nationalistic grand discourse but a work of 'person' who is supposed to meet in ordinary lives. Especially, it is notable that he brings out prominently his spirit as a writer, with which indicts the pursuit of material immersed in modern societies, and also with which seeks to deconstruct the false authority of traditional order in colluded with capital. This literary quality of him is hardly ever seen before.
Lee Kwang-Su acquires an aesthetic modernity of death by way of Man Yeong-Gam, the protagonist of the novel, who dares any danger including his own death for supreme and purest love. This aesthetic modernity means a modernity of his literary outlook. And it has a significant meaning in that it gives us a basis of anticipation and understanding for his further development of his novel.
Key-words : Writing on person, Death, Aesthetic modernity, Popularity, Japanese writing.
노상래 남 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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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2009년 10월 31일 투고되어 2009년 12월 18일까지 심사 완료하여 2009년 12월 19일 게재 확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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