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다시 읽기
권성우,권영민,김연수,김희진,리행리,박태근,박혜진,서동진,양창섭,유유자,윤석남,이종찬,정연두,조해진,최재혁,하마무,한승동,후나하시 유코,서경식 (지은이)
연립서가202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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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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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92년『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번역 출간 이후, 사회와 예술을 넘나들며 국민주의와 식민주의,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의 문제를 제기했던 서경식 교수가 2021년 도쿄경제대학을 퇴직했다.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책이지만, 제도적 장을 떠나는 스승을 위해 제자들이 펴내는 기념논총의 형식에서 벗어나, 이제 더 자유로운 지평에서 글로 싸워갈 서경식 선생에게 친구들이 보내는 연대와 우정의 기록을 모았다.
열여덟 명의 필자는 실로 다양하다. 서경식의 글과 사유를 자양분 삼아 자신의 작품과 세계를 만들어나간 소설가와 예술가,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토론하며 생각을 나눴던 연구자와 평론가, 서경식의 글을 옮기거나 책으로 묶은 번역가, 기자, 편집자, 출판인뿐만 아니라 도쿄경제대학에서 강의를 듣고 성장한 제자와 신진 학자, 저서의 디자인을 맡은 인연에서 서경식의 연구 조교가 된 북디자이너, 그리고 책 속에 자연스럽게 등장했던 삶의 동반자 F까지 모여 그의 글을 다시 읽고 음미하며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때로는 섬세한 감성을 지닌 에세이스트로서, 때로는 전투적 논객으로서 문학과 예술, 정치와 사회를 넘나들었던 서경식의 사유를 다시 읽는 글 모음집은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서경식은 한국 독자와의 만남을 일컬어 “인생에서 얻은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까지 말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열여덟 명의 필자뿐만 아니라 한국의 독자 모두를 향해 감사를 담아 응답하는 글로 마무리된다. 부록으로는 그동안 서경식이 한국 사회에 발신했던 저술 목록과 서경식을 주제로 생산된 문헌(서평 및 비평문과 학술 논문) 리스트를 수록했다.
1998년 첫 만남 이후 서경식과 23년간 우정을 이어온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 윤석남이『서경식 다시 읽기』를 위해 그린 <서경식 초상>을 표지 앞뒷면에 실었다. ‘벗들의 초상’과 ‘한국 여성독립운동가’ 연작을 진행 중인 윤석남 작가가 처음 선보이는 남성 초상화이기도 하다. 2021년 <서경식 초상> 연작은 한국전통채색화, 수묵화, 연필 드로잉 등 총 열다섯 점으로 이루어졌고 그중 일곱 작품이 책에 수록되었다.
목차
『서경식 다시 읽기』를 시작하며
re-ading 1
윤석남_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순간이 있다
김연수_ 믿는 자여, 그대 더욱 방황하리라
조해진_ 그의 궤적 안과 바깥에서
정연두_ 서경식 선생님에게 나는 “맏아들”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그것도 아주 “완고한”
re-ading 2
서동진_ 서경식 선생과 로얄 밀크티
권성우_ 희망과 비관 사이—나는 왜 서경식의 에세이에 끌리는 것일까?
한승동_ 고독한 반식민주의 투사
박혜진_ 번개 같은 직감
re-ading 3
이종찬_ 여행자가 될 수 없었던 순례자
권영민_ 해부도의 윤리학
양창섭_ 매혹과 각성의 시간—서경식과 함께 음악 듣기
최재혁_ 월경하는 미술
re-ading 4
하마무_ 소녀의 눈물
유유자_ 안으로부터의 굴레, 밖으로부터의 굴레
리행리_ 만남을 통해 확장된 질문
re-ading 5
박태근_이름을 전하는 사람
김희진_다시 만난『만남』
후나하시 유코(F) 만남
서경식 길 위에서—응답과 감사의 글
서경식 저작 목록
서경식 관련 문헌
접기
책속에서
P. 35~36
김연수, 「믿는 자여, 그대 더욱 방황하리라」에서
세상에 서경식 문장술이라는 게 있다면, 그 요체는 ‘짐짓’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딴청’이라고 해도 좋고, 요즘 유행어로 말하면, ‘할많하않’이라고 해도 괜찮겠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내가 배운 게 있다면 바로 그 문장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문장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거대한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의 자세한 사연을 생략하는, 어떻게 보면 군더더기를 과감하게 쳐내는 냉혹한 편집술에 가깝다. 왜 그런가? 그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세계관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접기
P. 40~41
사춘기가 되자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의심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나는 모범생이었고, 교과서에서 말하는 아름다운 말들과 정의로운 교훈들을 철저하게 외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번 일어난 의심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서점에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러다가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읽었다. 그 책을 통해 의심은 믿는 자의 숙명이고, 믿는 자는 방황하게 돼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의 소년기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접기
P. 48
조해진, 「그의 궤적 안과 바깥에서」에서
내게 여권 같은 의미를 갖는 책들로 책장을 채운다면, 그 한 칸은 서경식의 저서로 가득 찰 것이다. 그의 책을 처음 접한 건 십여 년 전이었는데, 그 첫 책에서부터 나는 내가 그의 문장을 통해 더 먼 곳으로 가리란 걸 예감했다. 그 책은 『디아스포라 기행』이었다.
P. 50~51
『빛의 호위』가 출간되고 1년여 뒤,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출간 기념 강연회에 간 적이 있다. 강연이 끝난 뒤엔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섰고 내내 떨리는 마음으로 내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다. 드디어 그의 앞에 섰을 때, 나는 책에 사인을 받은 뒤 가슴에 품고 있던 『빛의 호위』 한 권을 드렸다. 책 면지에는 “文章의 인연에 감사하여, 마음을 담아”라고 썼다. 그가 반가워하며 “조해진 군?” 하고 확인하듯 물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소설집 목차 페이지를 열어 보인 뒤 이 중에서 「사물과의 작별」은 특히 작가님의 형들 덕분에 구상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내 뒤에도 사인을 받으려는 독자들이 꽤 있었고 행사장은 이미 정리 중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은 이미 내게 특별했다. 빛을 찾아 헤맸던 내 긴 여정에서 어떤 때는 출발역이, 또 어떤 때는 환승역이 되어 준 실체를 만난 밤이었으니까. 그가 비록 한국어로 된 내 소설을 읽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를 읽으며 소설을 쓰고 세상을 알아 가는 한국 소설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접기
P. 75
서동진, 「서경식 선생과 로얄 밀크티」에서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고 나는 이 ‘연약한’ 저자에게 깊이 감동받았다. 아마 그것은 그 책에서 언급하는 디아스포라란 존재의 삶에 관한 서술보다는 그가 그것을 경험하는 방식, 순전한 그의 실존적인 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품고 있던 근거 없는 반감을 완전히 해제하게 된 것은 그의 책 곳곳에 등장하는 죽음, 특히 자살에 대한 언급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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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권성우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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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비평가. 1963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5년 서울대 대학문학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세계의 문학』『사회비평』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비평이 그 자체로 하나의 매혹적인 읽을거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평가. 사유와 지성의 힘을 갖추면서도 감각의 아름다움을 지닌 에세이를 쓰고픈 희망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신문』에 칼럼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을 연재했다. 저서로는 『비평의 매혹』 『낭만적 망명』 『비평의 고독』 등이 있다. 임화문학... 더보기
수상 : 2017년 임화문학예술상
최근작 : <서경식 다시 읽기>,<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세계문학은 한국문학의 거울인가> … 총 17종 (모두보기)
권영민 (지은이)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과 철학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철학연구자로 자신의 육아 경험을 현상학에 기초해 반성하는 『철학자 아빠의 인문육아』(추수밭, 2013)라는 책을 썼다. 지역에서 지방대 학생들과 연대하며 설립한 연구공동체인 ‘본색소사이어티’에서 지방대생의 자존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강연을 기획해 왔다. 다양한 주제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쓰며 살고 있다.
최근작 : <서경식 다시 읽기>,<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 … 총 2종 (모두보기)
김연수 (지은이)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ㅤㄲㅜㄷ빠이, 이상』으로 2001년 동서문학상을,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2003년 동인문학상을,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2005년 대산문학상을,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2007년 황순원문학상을, 단편소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200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 더보기
수상 : 2009년 이상문학상, 2007년 황순원문학상, 2005년 대산문학상, 2003년 동인문학상, 2001년 동서문학상, 1994년 작가세계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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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희망 없으나 절망은 아닌 따뜻함에 대하여 - 2008.10.17
김희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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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한 후 편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해맑게 편집자 생활을 시작했다. 세 군데 출판사에서 10년 정도 일한 후, 10년 차가 되던 2010년에 민음사의 인문교양 브랜드 반비를 만들어 10년 동안 편집장으로 일하고 20년 차가 되던 2020년에 퇴사했다. 엄밀한 사회과학책보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책을 많이 만들어서 이 책을 쓰게 된 것 같다.
『디아스포라 기행』 외 서경식의 책들, 『이것이 인간인가』 등 프리모 레비의 아우슈비츠 증언 문학,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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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행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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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도쿄경제대학의 서경식 세미나에서 공부한 뒤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에서 재일조선인 생활사(‘밀주’-탁주투쟁)에 대해 연구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 「탈식민지와 재일조선인여성들의 교란」『젠더사학』 13(2017)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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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근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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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인문MD로 일했다. 알라딘에서 지내는 동안, 서경식이 우연히 지어 준 별명 ‘바갈라딘’으로 활동했다.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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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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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문학편집자로 일하며 동시에 평론과 산문을 쓰는 사람. 1986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제19회 젊은평론가상을 수상했다. 마음에 드는 글을 읽으면 책으로 만들고 싶고, 좋은 책을 읽으면 마음이 움직이는 글을 쓰고 싶은 설렘 속에 매일같이 읽고 쓰고 만들면서 책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수상 : 2018년 젊은평론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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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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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원대학교 융합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사회학이며, 대표논문으로 「스트롱맨의 척추해부학-신자유주의와 남성성」「사악한 기계들의 윤리학 - 통신과 인륜성」 등이 있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형태와 문화/예술의 관계에 대하여 관심이 깊다. 최근에는 금융화와 물류혁명이 지각과 경험의 형태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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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섭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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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클래식 음악을 조금 들었던 것을 계기로 이른바 ‘공연 기획’과 관련된 일들을 비교적 오래 했다. 공부와 일을 핑계로 런던과 부다페스트에서 몇 년 동안 살면서 밤마다 열심히 음악회를 다녔고, 지금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사무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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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자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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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이너. 서경식의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일본어판의 디자인을 담당했고 도쿄경제대학에서 연구조교로 근무했다. 도쿄에서 거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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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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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 ‘페미니스트 화가 1세대’라고 불리는 윤석남의 첫 화두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를 통해 이 시대 여성상을 대변하는 작업으로 마흔이 넘은 나이에 첫 개인전을 열어 많은 이의 공감을 얻었고, 차분하면서도 서늘한 시선으로 가부장적 권위에 대응하는 작품활동을 이어 갔다. 허난설헌, 이매창 등 과거의 여성뿐만 아니라 현실의 여성을 화폭 혹은 설치, 조각으로 건져냈고, 1,025마리 유기견 조각을 통해 여성뿐만 아니라 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 대한 배려로 작품 세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화 기법...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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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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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영문과에서 문예비평 및 문화이론을 공부하고, 비판적 문화연구 집단 ‘문화사회연구소’에서 활동했다. 경계의 사유로부터 촉발된 문학과 예술의 사회적 존재론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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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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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서울에서 활동하며 퍼포먼스 기반의 사진, 영상, 설치 작업에 주력해 왔다. 주로 현대인의 일상에서 소재를 발견하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수많은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업은 기억과 재현, 실제와 허구를 교차시키며 타자의 현실을 매번 다르게 반복함으로써 시대의 틈을 드러낸다. 때로 낭만적 감상으로, 때로 현실 비판적 시선으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본주의 사회의 판타지를 현실과의 미묘한 차이 속에 연출함으로써 환영으로서 예술과 삶의 본질을 강화한다. 주요 작품으로는 <내 사랑 지니>, <보라매 댄스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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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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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에 재능이 없다. 농담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많아서이다. 농담임을 밝혀야 성립되는 농담에 웃음의 전파력이 잠재되어 있을 리 없다. 대신 상황이나 대화의 흐름에 맞지 않는, 농담과 달리 아무런 의도나 기획이 없는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는 경우는 종종 있다. 흐름에서 이탈하는 건 내게 다른 세계로 떠나는 타임머신이 제법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다리도, 다리와 연결된 몸도 없이 국경을 넘고 대륙을 가로지른다. 시대를 오간다. 그것이 내 일이고 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쓰는 사람으로 18여 년 동안 ... 더보기
수상 : 2019년 대산문학상, 2018년 백신애문학상, 2016년 이효석문학상, 2016년 무영문학상, 2013년 신동엽문학상
최근작 : <서경식 다시 읽기>,<우리에게 허락된 미래>,<그때 그 마음> … 총 81종 (모두보기)
최재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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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고 옮기고 만든다. 도쿄예술대학에서 동아시아 근대미술을 전공하고 제국 일본과 괴뢰국 만주국에서 펼쳐진 미술 활동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다. 공저로 『아트, 도쿄』『美術の日本近現代史―制度·言說·造型』이 있으며, 2011년부터 서경식의 책 『나의 조선미술 순례』『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나의 영국 인문 기행』『나의 일본미술 순례』(근간)를 비롯해 그의 미술 관련 글을 번역했다. 그 밖의 번역서로 『베르메르 매혹의 비밀을 풀다』『무서운 그림 2』『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 했을까: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재일의 연인』 『나는 ... 더보기
최근작 : <서경식 다시 읽기>,<아트, 도쿄> … 총 21종 (모두보기)
하마무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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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태어났다.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방사능 오염에서 피난을 와서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많아서 그것을 드러내는 한 방편으로 시, 영상, 그림, 사진 등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몸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을 두고 흩어진 몸의 조각을 줍는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또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예술 또는 표현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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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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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다녔다. 1988년 《한겨레》 창간 때부터 현재까지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1998년부터 3년간 도쿄 특파원을 지냈다. 국제부장, 문화부 선임기자, 논설위원 등을 거쳐 지금은 문화부에서 책과 출판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지금 동아시아를 읽는다』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우익에 눈먼 미국』 『시대를 건너는 법』 『나의 서양음악 순례』 『디아스포라의 눈』 『속담 인류학』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멜트다운』 『보수의 공모자들』 『분열병... 더보기
최근작 : <서경식 다시 읽기>,<사회를 말하는 사회>,<지금 동아시아를 읽는다> … 총 56종 (모두보기)
후나하시 유코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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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의 파트너. 성악을 전공하고 오사카에서 중학교 음악교사로 근무했다. 2022년에는 슈만, 브람스, 바하 등으로 가곡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특히 좋아하는 곡은 브람스의 <Der Tod, das ist die kuhle Nacht(죽음, 그것은 차가운 밤)>이다.
최근작 : <서경식 다시 읽기>
서경식 (지은이)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 대학 문학부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도쿄게이자이 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6년부터 2년간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의 다양한 지식인, 예술인 등과 교류하기도 했다.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형 서승과 서준식의 구명운동을 벌였고, 1980년대 초부터는 디아스포라의 입장에서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현실, 일본의 우경화, 예술과 정치의 관계, 국민주의의 위험 등을 화두로 글을 써왔다.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세이스트... 더보기
수상 :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 1995년 마르코폴로상
최근작 : <서경식 다시 읽기>,<책임에 대하여>,<나의 영국 인문 기행> … 총 48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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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국경과 국민주의 너머를 상상해온 서경식 선생이 2021년 도쿄경제대학에서 정년을 맞았다. 서경식 선생은 파울 첼란의 말 ‘투병 통신’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글쓰기란) 외딴섬에 표류하는 사람이 빈 병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흘려보내는 것과 같은, 또는 어둠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은 행위다. 누군가에게 가닿을지, 반향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채 알지 못하는 독자를 향해 말하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유리병과 돌이 마냥 멀고 어두운 곳을 헤매지만은 않았음을 기억하고자 몇 분의 필자에게 원고를 의뢰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들이 응답해주지 않았으면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열여덟 개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1부는 서경식의 글이 문학과 예술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모았다. 윤석남은 서경식 초상화 작업을 진행하며 떠올린 단상과 기억을 작업 노트 형식으로 기록했다. 소설가 김연수는 오랜 시간 따라 읽어왔던 서경식의 책을 다시 꺼내 보면서 쓰는 자, 그리는 자, 노래하는 자, 즉 믿음을 가지고 표현하는 사람들의 방황에는 방향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소설가 조해진은 서경식의 궤적 안과 밖을 오가며 고민하고 알아 갔던 과정이『빛의 호위』를 비롯한 자신의 소설 쓰기로 어떻게 이어졌는지 보여준다. 서경식과 (그를 통해 알게 된)프리모 레비, 그리고 자신의 문장이 이루는 삼각형의 세계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었는지를 말한다.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는 서경식과 2012년 첫 만남 이후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들을 소개한다. 특히 서경식의 『시의 힘』을 읽으며 타자에 대한 현실과 공감을 담은 작품 <블라인드 퍼스펙티브>를 제작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서술했다.
2부는 서경식을 다시 읽으며 그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과 자극을 살펴본다. 사회학자이자 문화평론가 서동진은 소수자(마이너리티)의 삶과 실존적 아픔을,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가 예술을 향유(소비)하는 방식을 사유한다. 서경식을 향한 자신의 오해가 독서와 만남을 통해 공감으로 바뀌었던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담았다. 문학평론가 권성우는 서경식의 에세이가 자신을 매혹하는 이유를 고백하면서 그의 글이 지닌 힘과 가치를 조명한다. 아울러 서경식의 글을 읽으며 이 비관적인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문학의 역할이 유효하다는 희망을 전한다. 서경식의 사회 비평 칼럼을 꾸준히 번역해 오고 있는 언론인 한승동은 포스트콜로니얼 시대로 이어진 ‘기억의 투쟁’ 현장에 선 ‘고독한 반식민주의 투사’로서 서경식을 주목한다. 문학평론가 박혜진은 발언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통로가 되었던 서경식을 ‘증언의 시대’를 연 사람으로 기억하며 연대의 길을 걷고자 다짐한다.
3부의 필자들은 자신이 속한 분야(문화, 철학, 음악, 미술)에서 서경식의 저작을 다시 읽는다. 독립문화기획자이자 비평가 이종찬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언급하며 서경식의 ‘길 떠남’을 여행이 아닌 ‘순례’의 시선으로 해석한다. 순례자의 시선을 통해 문화와 예술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소장파 철학연구자 권영민은 서경식을 읽으며 꾸려갔던 연구공동체와 독서모임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서경식의 자택에 걸려 있던 해부도를 실마리 삼아 근대성, 인문주의, 윤리의 문제를 파고든다. 서울시향 기획팀장을 지냈던 양창섭은 『나의 서양음악 순례』를 꼼꼼히 재독하면서 매혹과 각성을 끊임없이 오가야 하는 것이 음악을 감상하는 이의 자세라는 서경식의 말을 되새긴다. 번역가이며 미술사학자 최재혁은 서경식에게 있어 갇힌 ‘지하실’ 너머를 보게끔 한 ‘창’이었던 미술이 ‘나’의 고통 극복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세계를 의심하고 새로운 세계를 인지하여 경계를 넘을 수 있게 했는지를 언급한다.
4부에서는 일본의 현장에서 바라본 교육자 서경식의 모습을 담았다. 차별과 아이덴티티의 혼란 가운데 있는 재일조선인의 삶과 대학 수업의 생생한 정경도 그려진다. 일본인 제자 하마무는 고등학생 때 진학 상담을 하며 서경식을 만나 처음 ‘좋아하는 어른’이 생겼던 날의 기억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 인연으로 도쿄경제대학을 거쳐 현재 서울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페미니즘 연구자와 아티스트로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는지 서술한다.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일본어판의 디자인을 담당한 후 도쿄경제대학의 연구조교가 된 재일조선인 유유자는 서경식이 어떻게 학생들과 진솔한 대화를 하려 노력했는지 그 지난하고도 감동적인 소통 과정을 전한다. 리행리는 귀화를 고민하던 중 서경식의 「재일조선인의 위기와 기로에 놓인 민족관」을 읽게 된다. 결국 자신이 왜 귀화를 선택하지 않았는지, 그 과정 속에서 서경식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회상하며, 식민지배 역사의 증인으로서 재일조선인 문제, 소수자를 향한 일본 사회의 폭력 등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5부는 출판 현장의 최전선에서 서경식 저작의 영향을 살핀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MD로 활동했던 박태근은 ‘바갈라딘’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 서경식과의 인연을 회상하며, 서경식이 한국 독자에게 전해준 ‘이름’을 열거한다.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이름을 전해 준 그의 저서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품절’ 상태라는 씁쓸한 상황을 전하지만, 그에게 이름을 전해 받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서경식과의 연대를 꿈꾼다. 서경식의 책 14종을 편집 혹은 기획했던 김희진은 자신의 본격적인 첫 기획인 서경식-김상봉의 대담집 『만남』(돌베개, 2004)의 출간 과정을 되짚는다. 두 경계적 지식인이 펼치는 치열한 문답을 복기하면서 그 과정을 통해 남은 귀한 유산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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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선생님을 몰라도 읽을 수 있고, 오히려 입문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 같다.
서경식 선생으로 인해 자신과 타인의 아픔에 대해 더 인식할 수 있게 된 또 다른 서경식 18인이 남긴 글이다. 구매
- 2022-02-21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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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를 묵직하게 강타했던 서경식 선생과 그의 글들에 관해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 이 책을 읽다가 서경식의 글들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구매
MSH62 2022-02-19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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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세월호 사건 이후, 나를 오래도록 괴롭힌 감정은 (아이들에 대한)슬픔과 (책임자 어른들에 대한)분노보다도 죄책감이었다.
'침몰하는 배 속에 내가 있었다면... 내 구명조끼를 벗어서 아이들에게 입혀줄 수 있었을까...' 아무도 시키지 않는 이 가정을 자주 하고는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반복되는 상상 속에서 가끔은 구명조끼를 벗어 눈 앞에 있는 아이에게 입혀줄까도 했지만, 결국엔 매번 그 구명조끼를기어코 내 양팔에 끼웠다.
실제로 어느 선생님들은 자신의 구명조끼를 아이들에게 양보해서 살리고 생을 마감하셨다. 사람들은 이런 귀한 의인들보다도 속옷바람으로 제 몸 하나 보신하려고 구조선에 올라타는 선장에 대한 비난에 더 집중했던 것도 같다. 어린 생명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리라.
그런데 나는 책임자에 대한 비난도 차마 하기가 힘들었다. 비난하려다가도 속옷바람으로 정신없이 몸 보신하는 비겁한 선장이 나 자신인것 같아서,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이불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더욱 깜깜하고자 눈을 질끈 감곤 했다.
몇달 후 인적이 뜸해진 시청 앞 분향소에 향을 태우고는 한참을 묵념하다, 어디 지켜보고 있던 기자에게서 희생자 중에 아는 사람이 있냐는질문을 들었다.
서경식 선생의 제자 하마무씨는 선생의 수업에서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들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간토대지진 때처럼 조선인을 죽이자고 이 강의실에 누가 들어왔을 때 이 방에 있는 학생 중 누군가가 나를 지켜 줄 것인가, 아니면 학생들도 조선인을 죽이자는 무리에 들어갈 것인가, 그런 생각을 늘 합니다. 이러한 걱정과 공포가 과도한 것인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략) 독일 시민은 나치가 한 짓을 몰랐다고,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몰랐을까요? 이웃 유대인들이사라지는 것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p. 221-222)
여기에 대해 하마무씨는 이런 상상을 했다.
"선생님을 지키고 싶다. 그러다가 나도 죽으면? 아니다,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일에 방관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다 갑자기 가슴이 뜨끔했다. 왜 내가 지켜 줄 쪽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순간 나는 내가 다치지 않는 위치에서만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권력을 이미 가지고 있음을 깨닫고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다. 선생님은 현실적인 공포 속에서 산다. 누군가에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억압을 당할 위협을 항상 느끼면서 산다. 그 입자을 여성으로 바꾼다면? 퀴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중략) 권력은 위대한누군가가 지닌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고 내 속에 있다. 그때 나의 가해자성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p. 222)
일본 유학을 8년 정도 한 적이 있는 나는, 이상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서경식 선생의 저 가정이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는다. 아니, 꼭 '일본'과 '조선인'의 예가 아니라도 우리 삶 일상에서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마녀사냥과 '타인만들기'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소수라는 이유로 얼마나 쉽게 피해자가 되는가. 가해그룹의 선두에 서지 않더더라도, 가해자 표명을 하지 않는 이상 자동적으로 피해자 그룹에 속해버리는 분위기라면, 나는 또 얼마나 말을 얼버무리며 어정쩡하게 가해 그룹을 향해서 고개를 돌렸던가.
세월호 사건과 일상 속 소수에 대한 차별은 언뜻 다른 맥락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 자신이 사건이든 편견이든 맞닥뜨렸을 때, 내 보신과편의, 그러니까 물리적 생존과 사회적 생존을 위해 약자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기 쉽다는 점에서, 내 안에서는 매락이 통하는 일들이다. 재일조선인, 성소수자, 장애를 가진 사람,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내 아이와 친구가 될) 다문화 가정 아이들, 보육원 아이들, 환경문제... 내 '바쁜' 일상에 '귀찮고' '머리아픈', 못본 척 외면해버리고 싶은 일들이다.
포시랍게만 자라지는 않았던 나는 소수가 되는 경험도 종종 했다. 교통사고로 인한 눈에 띄는 상처들과 (수술을 위해)밀어버린 민머리로 20대의 몇 년간은 장애를 가진 사람의 취급을 받기도 했고, 부유한 여학생들이 유달리 많았던 여대 대학 시절에는 또각구두 소리가 재잘대던아름다운 봄 캠퍼스 한 구석에 앉아 학자금마련에 가슴 쓰라려하던 고학생이기도 했다. 장학금을 받고 가게 된 일본 유학시절에는 과거 '식민지'에서 온 열등한 사람으로 '일부' 일본인들에게 억울한 일도 아주 '가끔' 겪기도 했다. (물론 좋은 인연이 훨씬 많았다) 그러니까 나는 소수의 아픔에 대해 경험조차 못해본, 아주 몰이해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소수의 고통에 선뜻 연대하고동참하기가 힘들다. 못 본척하고 주저할 때가 많다. 솔직히 말하면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할 때가 오는 것이 두렵다.
그런데 이것이 서경식을 다시 읽어야하는 이유다.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할 때가 올 때,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잠재적이고 소극적인 가해자가 되어 있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때까지 서경식 선생의 글과 그에게 연대하는 '작은 자의 슬픔'을 아는 자들의 글을 계속 읽고 싶다. 그들의 글들이 못본 척 자꾸 고개를 떨구는 나를 다시 고개들어 보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경식 선생의 부인 후나하시 유코씨가 남긴 아름답고 가슴 아픈 말씀을 적는다.
"나는 서경식 씨와 만나서 가치관과 생활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알게 되는 것, 배우는 것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그래도 시대는 돌고 도는군요. 지난 총선거에서는 예상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자민당이 압승했습니다. 쓰라린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되는 날이 다시 찾아오는 걸까요. 그런 날과 맞닥뜨린다면 피해를 입고 싶지 않습니다. 동시에 지금도 일본인으로서 가해의 역사적 책임을 안고 있는 저는 다시 가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습니다. 이 세상에서 저를 지우고 싶습니다." (p.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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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서 간토대지진 때처럼 조선인을 죽이자고 이 강의실에 누가 들어왔을 때 이 방에 있는 학생 중 누군가가 나를 지켜 줄 것인가, 아니면 학생들도 조선인을 죽이자는 무리에 들어갈 것인가, 그런 생각을 늘 합니다. 이러한 걱정과 공포가 과도한 것인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략) 독일 시민은 나치가 한 짓을 몰랐다고,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몰랐을까요? 이웃 유대인들이사라지는 것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 P221
선생님을 지키고 싶다. 그러다가 나도 죽으면? 아니다,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일에 방관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다 갑자기 가슴이 뜨끔했다. 왜 내가 지켜 줄 쪽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순간 나는 내가 다치지 않는 위치에서만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 권력을 이미 가지고 있음을 깨닫고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다. 선생님은 현실적인 공포 속에서 산다. 누군가에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억압을 당할 위협을 항상 느끼면서 산다. 그 입자을 여성으로 바꾼다면? 퀴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중략) 권력은 위대한누군가가 지닌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고 내 속에 있다. 그때 나의 가해자성을 외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 P222
나는 서경식 씨와 만나서 가치관과 생활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알게 되는 것, 배우는 것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그래도 시대는 돌고 도는군요. 지난 총선거에서는 예상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자민당이 압승했습니다. 쓰라린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되는 날이 다시 찾아오는 걸까요. 그런 날과 맞닥뜨린다면 피해를 입고 싶지 않습니다. 동시에 지금도 일본인으로서 가해의 역사적 책임을 안고 있는 저는 다시 가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습니다. 이 세상에서 저를 지우고 싶습니다. -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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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25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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