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독립과 동양 평화의 한 길 - 안중근
어제는 안중근 의사가 112년 전 뤼순 감옥에서 서거한 날이었다. 그를 추모하며 오래 전에 쓴 글을 공유한다.
1. 내세 확신과 현세 책임의 천주교 신앙
안중근 의사는 그 평전을 쓴 황재문 교수가 기술한 것처럼, 한마디로 성자이자, 영웅이며, 인간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독실한 천주교 신앙이 깔려 있다. 안중근 의사는 19세에 입교한 후부터 32세에 순국하기까지 천주교 신앙을 따라 살았다.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서들은 모두 천주교 신앙으로 가득 차 있다. 그 가운데 작은 아버지에게 보낸 유서에는 “큰아버지께옵서는 아직 입교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듣고 참으로 유감된 마음을 견디기 어려운 바”, “마음과 몸을 다하여 속히 귀화하시기를 권유하여 마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세상을 떠남에 있어 일생의 권고임을 전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도마라는 세례명을 가진 안중근 의사는 장남 분도를 신부가 되게 하라고 아내에게 유서를 남겼다.
안중근 의사의 유서들뿐만 아니라 유묵들에도 독실한 천주교 신앙이 잘 나타나 있다. 극락(極樂), 천당지복 영원지락(天堂之福 永遠之樂,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이라는 휘호에 내세 신앙이 표현되어 있고, 경천(敬天), 천여불수 반수기앙이(天與不受 反受其殃耳, “만일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돌이켜 화를 받게 될 따름이다.”)라는 휘호에는 천주교 신앙에 기초하여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나 있다. 유서와 유묵에 잘 드러난 것처럼, 안중근 의사의 천주교 신앙에는 내세에 대한 확신과 현세에 대한 책임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안중근 의사의 천주교 신앙은, 안중근 부대의 국내 진공작전과 일본군 포로 생환, 하얼빈 의거와 동양평화론 등 안중근 의사의 언행과 사상에 모두 깔려 있는 중요한 토대이다. 안중근 의사처럼 내세 확신과 현세 책임을 겸비하고 있는 한국 개신교인들 가운데서 안중근 의사와 같은 인물이 나올 수는 없을까?
2.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비판
몇 년 전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뉴라이트 계열의 어느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식민지근대화론을 그 배경에 깔고 있다.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됨으로써 근대화될 수 있었다는 이 식민지근대화론은 한마디로 일제강점기를 미화하는 주장이다. 그런데 그 역사교과서는 인명 색인에서 안중근 의사를 누락했고, 본문에서도 안중근 의사에 대해 단 두 줄(실제로는 한 줄)로 기술하였으며 사진은 단 한 장도 싣지 않았다. 대한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분을, 독립투사들의 희생에 큰 빚을 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그것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교과서가 이렇게 홀대해도 되는가? 그 역사교과서는 도대체 왜 안중근 의사를 이렇게 홀대하는가?
필자는 안중근 의사를 신문한 조서를 읽고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은 안중근 의사의 사상 및 행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오히려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야말로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는 안중근 의사를 뤼순감옥에서 신문한 일본인 검사와 안중근 의사의 치열한 논쟁에 잘 담겨 있다. 당시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그 재판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안중근 의사를 무지한 테러리스트로 몰아가서 그 의거를 폄하하기 위해 갖가지 비열하고 집요한 공작을 펼쳤다. 그 일환으로 일본인 검사는 작심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서 안중근 의사를 공격했다. 이하에서 안응칠은 안중근 의사이고, 검찰관은 일본인 검사이다.
“안응칠 이토가 한국을 보호한 실적은 조금도 없다.
검찰관 보호한 실적이 있는지 없는지 지금은 아직 모른다. 그건 이후에 나타나는 것이다. 즉 한국이 일본의 보호를 받게 된 이래로 식산공업은 발달하고 있고 위생, 교통 기타 내정도 점차로 완비되고 있다. 그러나 피고처럼 본국에 살지 않는 자는 그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런가.
안응칠 위생, 교통의 완비 그리고 그 밖에 학교 등의 설립이 있었던 일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일본인을 위해 한 것이지, 한국을 위해 노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검찰관 피고는 저 『사기(史記)』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역수(易水)의 형가(荊軻)가 진(秦)나라의 시황을 죽이려고 갔던 것과 같은 비가강개(悲歌慷慨)의 무리이며, 세계의 대세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라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잘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안응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은 상당히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검찰관 한국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피고만의 생각이지,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진보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이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피고는 이를 모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이기웅, 119-120쪽).
이 신문 조서에 의하면, 일본인 검사는 집요하게 식민지근대화론을 펴고 있고, 이에 맞서 안중근 의사는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을 밝히고 있다. 일본인 검사는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한국이 일본의 보호를 받게 된 이래로 식산공업은 발달하고 있고 위생, 교통 기타 내정도 점차로 완비되고 있다.”면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안중근 의사는 “이는 모두 일본인을 위해 한 것이지, 한국을 위해 노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그 허구성을 들어 식민지근대화론을 반박하고 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는 “한국은 상당히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전후문맥을 살펴보면, 일본의 소위 ‘보호’ 없이도 한국은 상당히 발전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한국은 스스로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식민지근대화론을 부정한 것이다. 그러자 일본인 검사는 일본의 소위 ‘보호’ 없이 한국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진보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이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강변하면서 이토 히로부미를 옹호하고 있다.
요컨대 이 논쟁에서 안중근 의사가 일본인 검사의 식민지근대화론을 논박한 핵심은 두 가지인데, 이는 모두 오늘날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하는 학자들의 주요 논지와 동일하다. 안중근 의사의 말을 조금 바꾸어 표현하면, 첫째, 일본이 한국에서 추진한 소위 '근대화'는 일본인을 위해 한 것이지 한국을 위해 한 것이 아니다. 둘째,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고도 한국은 스스로 근대화될 수 있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뤼순감옥에서 일본인 검사가 안중근 의사를 공격하며 제기한 식민지근대화론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 뉴라이트에 의해 재연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는 아직 진정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이 나라의 비참한 현실을 다시 한 번 깨닫고 비탄에 잠기지 않을 수 없다.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희생 앞에, 과연 무엇이 온당한 태도일까? 한국인 뉴라이트여, 순국 직전의 사진에서 하얀 한복을 입은 안중근 의사의 빛나는 두 눈을 바라보라. 그리고 더 이상 식민지근대화론으로 일제강점기를 미화하지 말라!
3. 평화 민족주의와 하얼빈 의거
최근에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반영한 새 안보관련법(평화안법제정비법, 국제평화지원법)을 공포했다. 그 전에 일본 중의원 헌법심사회 참고인 질의에서 집권 자민당 추천인을 비롯한 헌법 전문가 3명 전원이 안보법안을 위헌이라고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참의원 본회의에서 안보법안을 가결한 데 따른 것이다. 이는 미국과 일본이 외교·국방장관 공동성명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환영한다고 발표한 몇 해 전부터 예상되었던 것으로서, 동북아시아 정세에 큰 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사태의 전개이다. 이제 일본은 기존의 평화헌법에 의해 자국이 공격당했을 경우에만 공격할 수 있는 ‘전수방위’에서 벗어나, 자국이 공격받지 않아도 공격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합법화에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과 일본 모두 패권적 국가주의가 대폭 강화되고 동북아시아에 전운이 휘몰아칠 가능성이 높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국가주의의 토양이 되는 민족주의를 제어해야 한다. 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은 국가주의가 아니라 평화를 지향하는 민족주의로 승화시켜야 한다.
민족주의의 목표는 평화가 되어야 한다. 평화를 위한 민족주의, 그것을 ‘평화 민족주의’(‘nationalism for peace’ 또는 ‘peace-nationalism’)라 명명할 수 있다. 필자는 평화 민족주의를 온 몸으로 살아낸 인물로 안중근 의사를 꼽는다. 하얼빈 의거에도 안중근 의사의 평화 민족주의가 잘 나타나 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사건은 당대에 큰 충격을 주었다. 안중근 의사의 평전을 쓴 한 사람은 이렇게 기술한다.
“이토의 죽음은 세계를 뒤흔들 만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10월 26일부터 11월 4일까지 이 사건과 관련된 전보가 9만여 통이었다는 점은 그 충격의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 특히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대한제국 및 일본, 러시아, 중국 등에서는 더욱 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황재문, 293쪽).
일본인 검사가 안중근 의사에게 “피고가 믿는 천주교에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일 것”이라면서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비판하자, 안중근 의사는 “성서에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라고 했다”면서, 바로 이어 “그러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자 하는 자가 있는데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므로, 나는 그 죄악을 제거한 것일 뿐이다”라고 논박한다(이기웅, 194쪽). 나는 안중근 의사에게서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던 개신교 목사 본회퍼를 본다. 안중근 의사의 말처럼,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지만,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자 하는 자가 있는데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 아닌가? 첫 신문조서에 의하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이유는 열다섯 가지이다. 그 가운데 중요한 몇 가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토는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그의 지휘하에 조선의 왕비를 살해했다. 둘째,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이토가 군대를 동원하여 체결한 5개조의 조약은 한국에 대단히 불리한 조약이었다. 셋째, 삼 년 전 이토가 체결한 12개조의 조약은 모두 한국에 있어서 군사상 매우 불리한 내용이었다. 넷째, 이토는 기어이 조선의 황제를 폐위시켰다. 다섯째, 한국의 군대는 이토에 의해 해산됐다. 여섯째, 이런 조약 체결에 대해 분노한 우리 국민들이 의병을 일으켰는데, 이토는 이에 대해 우리의 죄 없는 많은 양민들을 학살했다. 일곱째, 한국의 정치 및 그 밖의 권리들을 빼앗았다. (중략: 인용자) 열두째, 이토는 동양평화를 교란했다. 왜냐하면 일러전쟁(日露戰爭) 당시부터 동양평화 유지라는 명목하에, 한국 황제 폐위 등 당초의 선언과는 모두 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한국의 이천만 국민 모두가 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셋째, 한국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이토는 한국 보호라는 명목으로 한국정부의 일부 인사와 내통하여 한국에 불리한 정치를 하고 있다. (중략: 인용자) 열다섯째, 이토는 한국국민이 분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황제와 세계 각국에 한국은 별 일 없다고 속이고 있다.
이상의 죄목에 의해 나는 이토를 살해했다.”(이기웅, 34쪽).
그 후 안중근 의사는 일본인 재판장 앞에서, 독립전쟁의 차원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나는 삼 년간 도처에서 유세도 하고, 또 의병의 참모중장으로서 각지의 싸움에도 참가했다. 이번의 거사도 한국 독립전쟁의 하나로, 나는 의병의 참모중장으로서 한국을 위해 결행한 것이지 보통의 자객으로서 저지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 나는 피고인이 아니라 적군에 의해 포로가 돼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이기웅, 280쪽).
안중근 의사가 이 말을 한 배경에는 안 의사가 한국 독립전쟁 당시에 사로잡은 일본군 두 명을 죽이지 않고 살려서 돌려보낸 사실이 있다. 이 일 때문에 안중근 의사는 동지들로부터 매서운 비판과 소외를 감수해야 했다. 의병들은 안중근 의사에게 “적은 우리 의병을 잡기만 하면 참혹하게 죽인다. 우리도 저놈들을 죽일 목적으로 싸우고 있는데, 잡은 놈들을 모두 보내준다면 우리의 목적은 무엇이냐”고 질책했는데(김삼웅, 181쪽), 이에 대해 안중근 의사는 이렇게 답변했다.
“그렇지 않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적들이 그렇게 폭행을 자행하는 것은 하느님과 사람을 다 함께 분노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마저 저들과 같은 야만적인 행동을 해야만 하겠는가? 또 그대들은 일본의 4000만 인구를 모두 죽인 다음에 국권을 회복하려고 하는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모두 이길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약하고 적은 강하니 악전고투할 수밖에 없다. 그뿐 아니라 충성된 행동과 의로운 거사로 이토의 포악한 정략을 성토하여 열강의 호응을 얻어야 우리의 한을 풀고 국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물리치고, 어진 것으로 악한 것에 대적한다는 것이다. 그대들은 더이상 여러 말 하지 말아주기 바란다.”(김삼웅, 181-182쪽).
바로 이 말에 생명 존중의 평화 사상이 깃들어 있다. 안중근 의사는 적국인 일본마저 품었고, 교전상대방인 일본군마저 그 생명을 불쌍히 여겨, 포로의 사살을 금하는 만국 공법에 따라, 일본군 포로를 살려 보낸 것이다. 일본군의 야만적 학살에 대해 “하느님과 사람을 다 함께 분노케 하는 것”이라는 말 속에, 독실한 천주교 신앙이 녹아 있다.
또한 안중근 의사는 일본인 재판장 앞에서, 동양 평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음을 당당히 밝혔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 평화에 대한 열망은, 일제의 대동아공영권과 같이 동양이 일본의 지도 아래 하나로 뭉쳐서 구미 제국을 대적하자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유럽과 세계 각국과 더불어 평화에 온 힘을 다하”(이기웅, 283-284쪽)기를 바라는 마음, 곧 세계 평화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곧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동양만을 위한 닫힌 동양평화론이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평화로 가기 위한 열린 동양평화론이었던 것이다.
4.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
안중근 의사는 미완성 유고인 「동양평화론」의 서문을 시작하면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옹호한다.
“대저 합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는 것은 만고에 분명히 정해져 있는 이치이다. 지금 세계는 동서로 나뉘어져 있고 인종도 각각 달라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의 이기利器(무기: 인용자) 연구 같은 것을 보더라도 농업이나 상업보다 대단하며 새 발명인 전기포電氣包, 비행선, 침수정浸水艇은 모두 사람을 상하게 하고 물物을 해치는 기계이다.
청년들을 훈련하여 전쟁터로 몰아넣어 수많은 귀중한 생명들을 희생犧牲처럼 버리고 피가 냇물을 이루고 고기(시체: 인용자)가 질펀히 널려짐이 날마다 그치질 않는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상정이거늘 밝은 세계에 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말과 생각이 이에 미치면 뼈가 시리고 마음이 서늘해진다.”(김삼웅, 336-337쪽).
「동양평화론」은 안중근 의사의 죽음으로 집필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동양평화론」만으로는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를 위해 어떤 구체적인 방안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가 히라이시 우지히토 고등법원장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청취서」를 통해 그 구체적 방안의 개요를 살펴보자. 다음은 그 가운데 일부이다.
“새로운 정책은 여순을 개방하여 일본, 청국 그리고 한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군항으로 만들어 세 나라의 대표를 파견하여 평화회의를 조직한 뒤 이를 공표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이 야심이 없다는 것을 보이는 일이다. 여순은 일단 청국에 돌려주고 그것을 평화의 근거지로 삼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재정확보에 대해 말하면 여순에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하여 회원을 모집하고 회원 1명당 회비로 1원을 모금하는 것이다. 일본, 청국 그리고 (한국의: 인용자) 인민 수억이 이에 가입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은행을 설립하고 각국이 통용하는 화폐를 발행하면 신용이 생기므로 금융은 자연히 원만해질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곳에 평화회의 지부를 두고 은행의 지점도 병설하면 일본의 금융은 원만해지고 재정은 완전해질 것이다.”(김삼웅, 350-351쪽).
이와 같은 안중근 의사의 방략에 대해, 안중근 의사의 평전을 쓴 한 역사가는 이렇게 평한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위하여 한일청 3국 연합 화평회의를 개설하고 은행을 설립해 3국 공통화폐를 발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오늘날 EU와 같은 지역경제 공동체를 제안한 것이다. 놀랄 만한 제안이고 선각적인 혜안이다.”(김삼웅, 352쪽).
안중근 의사의 평화 민족주의는 안 의사의 유묵에서도 그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안중근 의사는 “약육강식 풍진시대(弱肉强食 風塵時代)”라는 유묵으로 당대의 동아시아 정세를 한마디로 표현했다. 또 “검산도수 참운난식(劍山刀水 慘雲難息)”이라는 유묵은 “칼 뫼와 칼 물, 참혹한 구름에 쉬기 어렵다.”는 뜻으로 당대 동아시아의 전쟁 상황을 비판적으로 표현했다. 또 아래 유묵에도 평화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다.
동양대세사묘현 유지남아기안면 화국미성유강개 정략불개진가인
東洋大勢思杳玄 有志男兒豈安眠 和局未成猶慷慨 政略不改眞可憐
“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어둡거니, 뜻 있는 사나이 편한 잠을 어이 자리.
평화시국 못 이룸이 이리도 슬픈지고. 정략(침략 전쟁)을 고치지 않으니 참 가엾도다.”(김삼웅).
그리고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유묵은 “정의로운 세계가 실현되기를 바랐던 안 의사의 염원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김삼웅, 579쪽). 마지막으로 안중근 의사의 유언을 기재한다. 이 유언에도 ‘한국 독립’과 ‘동양 평화’가 모두 담겨 있다.
“<동포에게 고함>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는다.
우리들 2000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한다면
죽는 자로서 유한이 없을 것이다.”(김삼웅, 429-430쪽).
5.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한국이 해야 할 일
안중근 의사의 평화 민족주의를 우리 시대에 계승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동북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이루어 내자!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해준 미국과 일본의 외교·국방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적법한 협상에 나설 경우, 미국은 북한과 불가침조약에 서명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미국은 북한의 정권 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북한과 미국의 관계 개선을 방해하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와서 북한과 미국 사이에 북핵 포기와 불가침 조약이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국가주의가 전쟁으로 치닫지 않고 중국과 일본이 동북아 평화와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평화 민족주의 철학을 중국과 일본에 제창하고 공급하여야 하고, 더 나아가 한국이 주도적으로 노력하여 6자회담 참가국들 모두가 참여하는 동북아 평화 체제까지 만들어내야 한다. 또 그와 더불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까지 이루어내야 한다.
안중근 의사가 국제 분쟁 지역이었던 뤼순(여순)을 역발상으로 동양평화의 거점으로 제안했던 것처럼, 예컨대 세계적 분쟁 지역의 상징인 한반도 비무장 지대(DMZ)를 동북아 평화와 세계평화의 중심지로 만들어내자! 거기에서 6자회담 참가국 모두 군비를 축소하고 평화 체제를 만들어내는 평화 협정을 체결하도록 노력하자!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구약성서 이사야 2장 4절) 만들어 내자! 안중근 의사의 평화 민족주의를 승화시켜, 한국이 6자회담 참가국 모두의 평화 체제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내자!
참고문헌
김삼웅, 『안중근 평전』, 시대의 창, 2009.
이기웅 옮겨 엮음,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 열화당, 2010.
황재문, 『안중근 평전』, 한겨레출판(주),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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