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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 7공화국이 온다-7공화국 플랫폼 디자인 방법론과 시안-
집필 기간 20~30년이 될 책의 첫번째 판본
사회디자인연구소 승인 2020.01.07 16:32 | 최종 수정 2020.01.22 08:31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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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생의 역작
저자는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사회평론, 2001) 『한386의 사상혁명』(시대정신, 2004) 『진보와 보수를 넘어』(백산서당, 2007) 『노무현 이후』-새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한걸음더, 2009) 『2013년 이후』(백산서당, 2011) 『평등의 역습』(공저)(기파랑, 2019) 『386OUT』(공저)(타임라인, 2019) 등 사상이념과 국가비전에 대해 많은 저술을 해 왔다.
이 책은 집필 기간이 6년이 걸린 노작이다. 저자는 향후 10~20년에 걸쳐 수정보완 작업을 할 것이고, 각주에 해당하는 책을 몇 권은 더 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집필 기간이 20~30년이 될 필생의 역작의 첫번째 판본이라고 할 수있다.
거시에서 미시까지, 방법에서 이슈까지 통일적인 체계로
이 책은 지리, 풍토, 지정학적 조건 같은 거시적인 얘기부터, 6공화국 32년에 대한 평가를 거쳐, 향후 몇 십년에 걸쳐 완성해가야 할 7공화국의 골조(정신문화, 제도, 정책)까지 서술하였다. 또한 국가•정당 플랫폼 디자인 방법론부터 첨예한 현안 문제 분석을 거쳐, 이를 타개할 구체적인 이슈(올릴 것, 내릴 것, 만들 것, 없앨 것 등)까지 통일적인 체계로 서술하려 노력하였다. 그래서 이 책은 “대한민국을 책임지겠다는 정치결사의 강령 시안이자 그 시안을 구상하게 된 배경이고, 강령 작성을 위한 방법론”이라 하였던 것이다.
정치적, 정책적 사유체계 정립
이 책은 한국 지식사회의 정치적, 정책적 사유체계를 바로 잡아 보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사유가 들어가는 집의 골조를 바로 잡고, 단편적이고 분절적인 정보•지식을 정리정돈하는 선반(책장)을 만들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국가비전전략 관련 생각의 골조(토대, 기둥, 외벽, 지붕 등)가 바로 서 있지 않고, 정보•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정돈하는 선반(책장)이 없으면 정보•지식은 고물상 야적장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고물이나 다름없다. 이는 책 많이 읽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서 많은 단편적인 정보와 지식을 얻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느끼는 안타까움이다. 이런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정책적 주장을 넘어, 문제인식 방법론 등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대관세찰
사람은 길을 걸으면서 전후좌우를 살피고, 자신이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는지를 의식한다. 그런데 국가나 사회에 대해서는 이런 사고 방식 내지 습관을 적용하지 않는다. 국가나 사회를 역사적, 세계적 시각에서 조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시말해 역사를 만들어낸 지리, 풍토, 지정학적 조건을 의식하지 않고, 역사라는 편집된 '집단기억'도 비판적으로 조망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나를 알려면 남과 비교해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을 알려면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아야 한다. 최소한 거울에 비춰 보기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나와 남을 비교하면서 유전자나 세포를 비교하면 대동소이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사고방식, 감정반응, 소질, 적성, 취향, 얼굴 등을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를 발견할 수있다. 마찬가지로 국가를 비교할 때도 비교 지점 내지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비교 지점은 당연히 국가적 현안인 정치사회적 갈등 양상, 구조, 해법 등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이나 현상이야 국내외 미디어를 통해서 웬만큼 알지만, 그것을 낳은 구조와 정신문화는 알기 어렵다. 도대체 어떤 지점에 주목해야 대한민국의 특성을 알 수 있을까? 바로 이것이 문제인식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문제인식 방법론
이 책의 부제는 “7공화국 플랫폼 디자인 방법론과 시안” 이다. '플랫폼'과 '방법론'은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플랫폼은 국가운영체제이기도하고 정당의 정강정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방법론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이는 기본적으로 국가적 현안 문제들은 인식주체의 관점, 개념(언어), 가치 등에 따라 전혀 다르게 규정되기 때문이다.
“망치를 들면 모든 것이 못의 문제로 보인다고 한다. 집에 비가 새고, 바람이 들고, 창문이 뒤틀리는 원인은 지반 침하, 기둥과 외벽의 균열, 부실한 못질 등 다양하지만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못질 부실만 크게 보인다. 인간은 아는 만큼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주목하지 않으면 방안에 들어와 있는 코끼리가 있어도 보지 못한다.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와 익숙한 개념(프레임)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가치와 제도의 조화와 균형을 잡아야 할 사명이 있는 정치는 망치를 든 사람의 오류나 코끼리 만지는 장님의 오류나 확증편향確證偏向(Confirmation bias)을 경계해야 한다(61~62쪽)
실제 한국 주요 정당의 강령들은 대체로 문제를 읽지 않고 쓴 답과 다를바 없다.
“(한국 주요 정당의 강령은) 문제·위기 규정부터가 너무나 부실하다. 이것이 잘못되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옷처럼 후속이 줄줄이 헝클어진다. 정당강령과 국가플랫폼의 논리적 양대 기둥은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고(현실, 문제, 위기, 모순부조리 규정)’ ‘어디로 가야 하는지(변화개혁의 가치, 방향, 목표, 비전, 전략)’이다. 전자가 문제라면 후자는 답인데, 하나같이 출발점인 ‘현실, 문제, 위기, 모순부조리 규정’이 완전히 헛다리짚거나 너무나 일면적이다.(54쪽)
문제를 인식하는 관점과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을 아예 인식조차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많이 놓치는 문제가 인간과 자연, 인간과 기계간에 일어나는 갈등이다. 서구의 전통에 따라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중심으로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다 보니, 좌우파 공히 사회와 습속 문제를 놓치는 경향이 있다. 그뿐 아니라 국가와 습속은 자연환경, 지정학적 조건, 역사인식, 지배이념과 밀접하게 관련 되어 있는데 이 역시 놓치는 경향이 있다. 정치, 정책, 이슈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 현상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중차대한 이슈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이슈맵을 그려 보아야 한다. 동시에 문제의 곁가지가 아닌 본질과 핵심을 짚기 위해서는 문제를 원점에서 재규정해 보아야 한다. 근본으로 돌아가기(back to basic)는 과학기술뿐 아니라 국가플랫폼 디자인에서도 절실히 필요하다.(65쪽)
필자가 제안하는 주요한 방법 중의 하나는 국가적 현안 문제는 항시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 관점에서 조명하는 습관이다.
한국에서 정치적 정책적 문제 내지 국가적 위기를 논할 때 가장 결여되어 있는 지적 태도는 이름(개념)이든 양상(현상)이든 원인이든 해법이든 크게 보고, 다각도로 보고, 세밀하게도 살피는 태도, 즉 대관세찰大觀細察이다. 대관이란 사고의 시공간을 크게 확장해서 보는 것이다. 사고의 시간적 확장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축선을 오르내리며 생각하는 것이고, 공간적 확장은 다른 문명권이나 다른 나라를 오가며 왜 이런 차이가 날까를 캐묻는 것이다. 통찰洞察(insight)은 주로 이런 태도, 즉 관점의 전환과 차이에 대한 의문에서 나온다. 세찰이란 환자를 보는 의사나 고장 난 기기를 고치는 엔지니어의 시각에서 문제의 실상, 구조, 연관 등을 살피는 것이다.(65~66쪽)
국가적, 국민적 현안 문제에 대한 대관의 핵심은 세계적, 선진국적, 동양적 보편성과 한국적, 한반도적 특수성을 캐묻는 것이다. 동양으로 뭉뚱그려지는 중국, 일본, 한국의 차이도 살펴야 한국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국내 문제를 바라볼 때는 이것이 지역(서울, 수도권 등), 세대, 계층(조직노동, 고학력자, 여성)의 특수한 문제인지 국민들의 보편적인 문제인지를 따져야 한다.(66쪽)
정치가 ‘가치의 권위적 배분’(authoritative allocation of values for the society)이 맞는다면, 가치의 비권위적 배분제도, 즉 시장과 사회(공동체)를 알아야 한다. 가치분배제도는 수평적으로는 국가, 시장, 사회·공동체로 나누고 수직적으로는 중앙, 지방, 마을 소공동체(커뮤니티), 가족·개인으로 나눈다… 정치노선이나 사상이념은 사람(개인 및 가족)과 3대 제도, 자연환경, 지정학적 조건, 역사인식, 감정반응을 총화한 경세방략이다. (81쪽)
이는 책 81쪽 그림으로 도식화 되었다. 국가플랫폼=국가운영체제 디자인의 주요 변수 내지 골조로 2대 환경, 3대 제도, 정신문화(습속)이다. 저자는 이를 국가적 현안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도출할 때, 항상 염두에 두는 변수(실은 상수)들이자, 정치적, 정책적 사고의 기본 틀이라고 말한다. 한편 1부 5장에서 사회와 습속을 분석 할 때는 중간집단과 (상하, 존비, 귀천, 정사 등을 가르는) 질서와 지배엘리트를 주요한 변수로 들었다.
저자가 집필에 6년이 걸린 것은 기본적으로 대상 자체가 난마처럼 얽혀서 이를 적절한 부, 장, 절로 분리하여 체계화 하기 어려웠기 때문인데, 또 하나를 들자면 대한민국의 특성을 알기 위해서 조선, 일본,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미국, 스위스 등을 살피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7공화국과 6공화국
6공화국은 1988년 2월 25일(노태우정부 출범일)부터 현재까지 32년 간 대한민국을 규율하고 있는 헌정체제다. 대통령 직선제를 주요하게 내건 1987년 6월 항쟁이 탄생시킨 제10호 헌법(1987년 10월 29일 전면 개정)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6공화국 혹은 1987체제의 특성은 1987년 헌법에서 새로이 삽입된 조항;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 경제민주화 조항, 헌법재판소 관련 일부 조항이나 삭제된 조항의 영향만 분석하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987체제를 만든 역사·현실 인식을 포함한 정신문화와 정치지형이 오래 전부터 있었어도 사문화되었거나 다르게 해석하던 조항을 새롭게 해석하기 때문이다.(247~248쪽)
따라서 국가의 골조인 헌법과 정치지형의 골조인 선거법은 7공화국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7공화국은 정신문화와 정치지형의 변화로부터 출발한다. 사실 이것이 핵심이다. 헌법과 선거법 개정은 그 후속 행위로서, 정신문화와 정치지형을 보다 공고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로마가 일조일석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이 7공화국도 마찬가지다. 물론 권력구조를 바꾸고, 선거제도와 정당체제를 생산적 정치경쟁과 대승적 정치협력이 가능하도록 만들면 7공화국 건설작업은 많이 앞당겨질 것이다.
체제 유전자
책 2부(246~384쪽)에서는 현 6공화국=1987체제의 빛과 그늘, 성과와 한계를 논했다. 이를 체제 유전자의 관점에서 종단하고, 헌법적 가치와 주요 제도를 횡단하였다. 책은 1987체제의 핵심 유전자로 “다수지배와 대통령 전횡방지”(성군 대통령에 대한 열망, 비대한 국가·권력 간과, 단순무식한 전횡방지 장치), “내 자유와 권리 찾아 각개약진” “안보와 경제에 대한 무관심” “새로운 발전체제 개념 부재” “1980년대 운동권 대학생 수준의 역사인식” 등을 들었다.
“1987체제의 빛과 그늘, 성과와 한계는 그 유전자(핵심가치) 속에 대부분 내재되어 있다. 1987체제의 그늘은 외부환경, 즉 국제정치지형이나 국제통상질서의 악화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다. 아이가 성장하면 어릴 때 입던 옷이 맞지 아니하듯이, 빛을 만든 주요 요인들이 주체와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재구성, 재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핵염기 시토신(C), 구아닌(G), 아데닌(A), 티민(T)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유전자가 수없이 복제되어 사람이나 동물을 창조하듯이, 아주 단순한 어떤 원리가 무한복제 되면서 위대한 문명과 국가를 창조하기도 하고, 반짝 성공 후 몰락하게 하기도 한다. 15~16세기 영국, 프랑스와 조선 사회를 비교하면 국가와 문명의 흥망 원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15~16세기 영국은 해적질을 하든, 무역을 하든 밖에 나가서 부를 일군다는 생각이 있었다. 왕이든, 중앙귀족이든, 지방의 젠트리든 지배 엘리트층이 권력으로 내부(지방, 마을, 농민 등)를 쥐어짜고 억눌러서 부를 쌓으려고 하지 않았다. 또한 종교나 도덕으로 온 사회를 촘촘하고도 강하게 규율하려 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율권을 많이 부여하였고, 상업과 무역에 전향적이었다….중국, 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 대륙에 비해서도 권력 밀도와 인구밀도가 낮은 영국, 그보다 더 낮은 변방 스코틀랜드에서 ‘개인과 시장의 자율과 자치’에 대한 신뢰를 역설한 계몽철학이 나온 것은 이유가 있다.(254~255쪽)
갈라파고스, 귤화위지, 합성의 오류
이 책이 제시하는 대한민국 현실을 진단하는 핵심 열쇠말이 갈라파고스, 귤화위지, 합성의 오류다. 필자는 1987년 이후 대중의 국가•권력에 대한 영향력이 점증하면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와 제도는 그 원산지와 달리 귤화위지(橘化爲枳) 현상을 점점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그 바탕에는 갈라파고스의 동식물처럼 독특하게 진화한 대중의 습속, 즉 정신문화가 있다고 본다.
‘자유’는 반공과 규제완화로, ‘민주’는 반독재와 광장에서의 함성 지르기와 추종하기로, ‘평등’은 격차해소와 반신자유주의로, ‘권리’는 다다익선으로, ‘정의’는 친일청산, 적폐청산, 과거사 신원伸寃으로, ‘시장’은 약육강식의 정글로 등치되었다. 법은 보편 이성에 반하고, 현실과 동떨어져도 국회만 통과하면 되고, 공공은 전체를 생각하고 민간은 제 욕심만 밝히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동양적, 조선적 유산의 핵심인 전제적 권력에 대한 경계심은 없었다.(18쪽)
이는 지중해문명권에서 발아하고 성장한 헌법적 가치와 제도를 이식하면서, 한국의 독특한 토양을 개질(改質) 내지 개량(改良)하지 못하여서 벌어진 현상이다. ‘민족(심성) 개조론’이나 ‘문화(습속) 개조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법령과 제도를 통한 적절한 견제와 균형 장치를 설계하지 못하였다는 얘기다. 물론 정치리더십과 교육과 미디어의 책임도 빼놓을 수는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2부 3장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사회와 습속
모든 제도와 정책의 어머니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습속이다. 토크빌은 이를 “마음의 습관” 또는 “국민들의 도덕적, 지적 상태의 총체” (moeurs 또는 mores)라 하고, 필자는 정신문화라 하였다. 이는 정치학, 사회학 뿐만 아니라 제도경제학 등에서 중요하게 취급한다.
“제도경제학에 따르면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은 1~10년을 묶어서, 헌법질서나 정치체제와 같은 공식적인 제도적 환경은 10~100년을 묶어서, 그리고 관습이나 가치관과 같은 비공식적인 제도적 환경은 100~1000년을 한데 묶어서 들여다 볼 문제라고 한다”(87쪽)
한국은 선진국에서 잘 작동하는 가치와 제도와 정책들이 탱자가 될 소지를 너무 많이 갖고 있다.한 사회를 지배하는 습속의 측면에서 보면 한반도는 갈라파고스 제도와 흡사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뿌리를 내린 토양 내지 습속의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갈라파고스적 특징이 너무 많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산은 지중해(그리스 로마 히브리)문명이다. OECD 37개 국가를 대별하면 지중해 문명권(유럽,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일부, 영연방)국가와 터키, 러시아, 일본, 한국이다.
“지중해문명은 자유정신과 광범위한 사적 자치에 입각한 계약과 상거래(교역, 무역)와 다양한 지역과 민족을 규율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법 관념을 낳았다. 자유정신은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하는 것이고, 자치정신은 우리끼리 알아서 할 테니 제3자는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문명의 원류인 중국(중원)문명은 진제국의 통일 이후부터 강력한 중앙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제반 사회관계를 거래(계약) 관계로 본 흔적이 별로 없다. 자유정신이 중심 가치로 되지 않으면 계약이나 보충성원칙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보충성의 원칙’은 한 마디로 하부가 위임한 것만 상부에서 처리하고, 하부가 위임하지 않는 것은 상부가 개입하면 안 된다는 원칙이다. 보충성 원칙은 연방·중앙 정부와 주·지방 정부와 타운·마을(기초 자치단위) 간의 사회계약이라는 개념을 전제로 한다. (169~170쪽)
일본은 의외로 지중해 문명권 국가와 흡사한 측면이 많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떠받치는 토양 내지 습속을 두텁게 공유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조선 포함)은 많은 것을 공유하지만, 중국은 전통적으로 큰 시장과 발달된 상거래 문화, 강력한 자치분권의 전통, 약한 이념•도덕지향성(근본주의), 물질적 욕망에 대한 약한 억압 기제 등에서 한국과 많이 다르다. 이는 극강의 국가주의 이념을 받아 안은 중국공산당 지배 체제하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북한은 대한민국 보다 동양적, 조선적 습속(역사문화적 전통)을 고스란히 계승한 국가고, 대한민국은 이로부터 힘겹게 일탈한 국가다. 하지만 1987년 이후 대중이 권력에 대한 영향력이 점증하면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에 의해 짓눌려져있던 조선적 습속이 부상하면서, 조선으로 회귀하는 징후가 역력하다.
그 습속의 이름은 권력(성군)만능주의, 도덕(인격도야)만능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민족주의, 지대추구, 독특한 위계서열 의식, 트라우마와 콤플렉스, 정사正邪, 화이華夷, 군자-소인의 이분법에 기초한 세계관 등이다.(7쪽)
러시아, 터키는 지중해문명권 국가와 공유하는 부분이 적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난항을 겪고는 있지만, 한국과 공유하는 것은 강력한 전제 권력 하나 정도다. 터키는 유럽화, 세속화된 이슬람 국가이고, 러시아는 어쨌든 기독교 문명에 기반을 둔 사실상의 유럽 국가이다. 한국은 아주 특이한 나라라고 보아야 한다.
조선과 남북한을 관통하는 (갈라파고스적) 특징의 중심에는 관여, 개입 영역이 광대무변한 국가권력 내지 공적강제력이 있다.(91쪽)
권력이 너무 강했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도덕’이나 ‘이념’으로 국제관계에서 개개인의 일상생활과 영혼까지 규율하려고 했다는 얘기다. 조선과 남북한의 권력은 히브리 민족의 유일신 만큼이나 인류사적으로 특이한 존재가 아닐까 한다. 어떤 문명권이나 신은 있고, 권력도 있다. 하지만 히브리의 야훼 신과 조선과 남북한의 권력(도덕의 구현자) 같은 존재는 거의 없다. 필자는 이런 권력을 그대로 두고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사회(조선 포함)의 독특한 습속과 유별난 권력은 기본적으로 지리, 풍토와 지정학적 조건에서 연유한다고 말한다.
조선의 갈라파고스적 특징을 만든 것은 추측컨대 대규모 외침이나 반란 걱정이 거의 없는 지정학적 조건과 중국대륙을 지배한 안정되고 통일된 왕조(명과 청), 폐쇄적 농업경제와 잘 조응하는 독특한 질서(예) 관념과 유교 도덕의 체현자인 권력이 있다. 이 독특한 권력을 둘러싼 경쟁을 줄이기 위해 상민, 서얼, 사문난적(후손)도 배제하고, 이런저런 명분으로 지방(민)도 배제하였다.(146쪽)
한국사회의 갈라파고스적 특성이나 다른 선진국에서 좀체 발견하기 어려운 특이한 부조리의 대부분은 한국 특유의 불균형, 즉 힘의 집중, 편중, 오남용에서 연유한다. 이 뒤에는 대체로 우월적 지위를 가졌지만, 시장이나 국가(민주주의)나 내부 자율조정 메커니즘 등에 의해 제대로 견제, 통제받지 않는 갑적 존재가 있고,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지만, 파편화되어 각자도생하는 다수가 있다.(229쪽)
흔히 일제 식민통치의 유산, 분단 체제의 유산, 1997년 외환위기의 후과라고 얘기되는 정신문화적 특징의 상당부분은 한반도의 자연환경과 지정학이 만들어낸 집단적 경험과 독특한 역사인식에서 발원한다. 그런데 이제 기업과 돈과 인재는 더 이상 이 자루에 갇히지 않는다. 조선의 백성들처럼 국가권력의 오만가지 갑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이는 전통적으로 국가권력 내지 국가갑질을 통해 많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 온 민주당, 정의당 등 진보정치세력에게는 엄청난 환경 변화가 아닐 수 없다.(105쪽)
합성의 오류
6공화국=1987체제의 문제를 고장 난 자동차에 비유하고, 그 핵심 원인을 ‘합성의 오류’가 다방면에서 나타나는, 아니 나타날 수밖에 없는 체제의 문제에서 찾았다.
지금 대한민국은 고장 난 자동차이다. 도전과 개척, 기업가 정신 등 연료 공급이 막혀 엔진이라 할 수 있는 민간의 경제 활력은 꺼져 가는데, 차체에 해당하는 공공부문은 점점 비대해지고, 정의와 공정의 이름으로 국가 규제라는 브레이크도 점점 세지고 있다. 기존의 한국 정치는 고장 난 자동차의 운전석 쟁탈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케도 운전석을 차지한 문재인정부는 역대 그 어떤 정부보다도 고장을 악화시키고 있다…고장의 핵심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정신문화 등을 규율해온 낡은 체제이다. 전체와 부분 간에, 환경·제도·사람 간에, 정책과 정책 간에, 가치와 가치 간에 극심한 충돌과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 부분적 개선, 개량이 전체적인 퇴행 또는 고장으로 귀결되고, 특정 소수의 자유와 권리의 상향이 전체 다수의 자유와 권리의 하향으로 귀결된다. 이른바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이다.(35~36쪽)
이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민주주의, 공화주의, 시장경제, 시민적 덕성, 정치 리더십 등 선진국에서는 잘 작동하는 조화와 균형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으로, 권력의 명실상부한 주인으로 등극한 대중의 사유체계를 지배하는 동양적, 조선적 습속과 서구 시민혁명의 산물인 민주공화국의 기본원리의 충돌에서 연유한다. 그 습속의 이름은 권력(성군)만능주의, 도덕(인격도야)만능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민족주의, 지대추구, 독특한 위계서열 의식, 트라우마와 콤플렉스, 정사正邪, 화이華夷, 군자-소인의 이분법에 기초한 세계관 등이다.(6~7쪽)
1987년 이후 역대 정부들을 양대 정치세력 간 견제와 균형이 깨지지 않은 일종의 정치적 교착 상태였기에 국민적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일은 하지 않았다…실정은 계속되었어도 폭정과 전횡이랄 것은 없었다. 그러나 촛불혁명(?)을 계기로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이 크게 몰락하면서 역사의 지층 아래 갇혀 있던 낡은 조선적, 민족적, 좌파적, 유아적 가치와 정서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주류 보수세력은 물론 보편상식과 양심세력을 경악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259쪽)
토크빌과 볼리바르
책에서 주요하게 거론하는 두 인물이 알렉시드 토크빌(1805~1859)과 시몬 볼리바르(1783~1830) 다. 이 책은 1831년 5월부터 9개월간 미국 여행을 하고 돌아와 1835년에 출간한 토크빌의 명저 “아메리카의 민주주의 1”과 문제의식과 서술체계가 비슷하다. 1부 4장에서 ‘한반도의 자연환경과 지정학’을, 5장에서 ‘사회와 습속’을, 6장에서 ‘국가와 권력’을 서술한 게 대표적이다. 저자는 토크빌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한국을 여행하고 나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쓴다면 어떻게 쓸까를 많이 의식했다고 한다. 사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 책의 제목 후보 중의 하나였다. 볼리바르에 대해서는 동병상련을 느끼기 때문이다.
“볼리바르의 한탄: ‘일신을 혁명에 바친 사람들은 바다에 쟁기질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나를 전율케 한 것은 베네수엘라 등 오늘날의 남미 현실이 말해 주듯이, 북미와 남미의 정신문화적 토양 내지 습속의 차이를 200년이 지나도록 극복하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볼리바르의 한탄은 남의 일이 아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가들과 노동운동가들 중 머리가 화석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볼리바르와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 특히 노동운동을 하러 남의 신분증을 위조하여 공장 위장취업까지 감행한 나 같은 사람들은, 지금의 노조행태와 노동현실을 보면서 청춘을 바친 운동이 바다에 한 쟁기질이었다는 느낌을 진즉에 받아 왔다”(15쪽)
필자가 습속의 질김과 중요성을 역설했다고 해서 숙명론에 빠진 것은 아니다.
“습속은 법제도 외에도 자연환경, 지정학적 조건, 역사인식 등이 얽히고설켜서 만들어졌기에 해결이 간단치 않다. 하지만 해결이 난망한 것만은 아니다. 최소 5백 년을 내려온 질긴 남아선호사상은 제사 문화가 퇴조하고,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면서 봄눈 녹듯 녹아내렸다. 중국과 조선은 서양에 비해 진리 탐구와 과학기술 중시 문화가 취약하지만,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대한민국 병인 국가권력 과잉과 정치·경제·사회 주체간 힘의 불균형이 초래한 갑질 만연과 그에 따른 국가주의, 도덕주의, 정사이분법, 약탈주의(공짜 밝힘과 지대추구)도, 비생산적인 경쟁과 갈등도 그 킹핀을 뽑아내면 남아선호사상의 전철을 밟게 할 수도 있다”(43쪽)
7공화국 플랫폼 디자인 시안
3부(386~451쪽)에서 제시하는 개혁전략기조는 2014년 11월 결성된 ‘7공화국비전모임’에서 거의 5년간 월 평균 2회 이상 토론한 주제들이다. 1987체제의 핵심 문제를 부분과 전체, 환경과 제도와 사람(습속)의 충돌로 표현되는 ‘합성의 오류’를 지목했기에 부분적 개선이 전체적인 퇴행으로 귀결되지 않는 개선 방안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7공화국 플랫폼 디자인에 있어서 중시하는 가치를 13개를 제시하고 믿음 8개를 제시하였다. 주요한 것(믿음)만 보면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자본과 재벌·대기업이 아니라, 혼미하고 사익편향적인 정치와 정부라고 믿는다. 신자유주의의 과잉이 아니라 국가주의, 도덕주의의 과잉이다. 그러므로 재벌·대기업에 대한 의심보다 정치와 정부에 대한 의심이, 신자유주의 패악보다 국가주의, 도덕주의 패악에 대한 경계심이 백 배는 강화되어야 한다. 법, 규제, 예산, 정책, 인사의 정당성에 대한 의심과 감시가 백 배는 강화되어야 한다. 공공기관의 효율성과 낙하산 인사 추문이 아니라 공공기관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의심이 백 배는 강화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특별히 주목해야 할 모순부조리는 불평등이 아니라 부자유이고, 세입(예산)이 아니라 세출(결산)이고, 주목해야 할 역사는 친일청산실패사가 아니라 조선의 개혁실패사와 망국사라고 믿는다.
역사에 대한 자만(자화자찬)과 자학을 경계한다. 역사바로세우기보다 역사바로알기가 먼저이고, 친일청산보다 조선청산이 먼저이고, 일본 성토가 아니라 조선의 망국·실패·잔혹사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먼저이고, 과거사 시비보다는 미증유의 복합위기가 중첩된 미래 시비가 먼저라고 믿는다,(390~3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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