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보
기획자보 Ⅱ 한국과 중국의 386
6월항쟁의 빛과 그림자, 386
송 명 수 (jsmemory@interpia98.net)
1. 6월 항쟁의 빛과 그림자
독재자 박정희의 서거 직후 80년 서울의 봄에 피어나던 꽃잎이 그해 5월 광주에서 처참하게 짓밟힌 뒤, 군홧발 길게 끌리는 질곡의 세월을 뚫고 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를 쟁취했던 80년대의 젊었던 세대를 사람들은 흔히 386세대라 부른다.
그러나 항쟁세대의 명암을 조망하기 전에 먼저 386세대라는 이름을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6월 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그 주역세대들이 차후의 역사적 진행과정과 언론의 구도에 의해 얼마나 굴절되어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1.1. 386의 상징성은 과연 적절한가?
'386세대'란 이름에는 보수적 상업 언론의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의도가 개입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4.19세대나 6.3세대에서처럼 한 세대가 공유한 역사적 사건에 준거한 명칭이 아니라, "3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이라는 우연적 특징들을 연결해서 80년대 정보산업의 히트상품인 컴퓨터 프로세서와 중첩시킨 것이다. 도대체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이름이 과연 어떻게 그렇게 광범위하게 유포될 수 있었는지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386세대'라는 이름은 97년 1월 4일 '조선일보'의 기사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열린공간 30'이라는 30대 서클의 소개기사인데, 여기에는 조선일보 홍보전시팀장이 가입해 있다고 명기되어 있다. 이들 30대 젊은이들은 21세기의 정신적 리더십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모였다고 한다. 여기서 386은 조선일보와 함께 문화적 전환을 선도하는 주체세력으로 상징화된다.
조선일보에서 특정한 세대의 명칭을 거론할 때는 보통 두 가지 의도가 깔려 있다. 하나는 경제적인 '구매력 집단'으로서의 평가요,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권력의 세대교체 집단'으로서의 평가다.
90년대 중반 조선일보는 '문화는 상품'이라는 모토를 들고 나와 상업전략의 일대 변혁을 꾀한다. 문화생활을 다루는 면들이 대폭 강화되며, 문화기사들은 특정 상품을 선전하는 문화권력이 된다. 정치면의 정치권력과 더불어 문화면의 문화권력은 조선일보의 쌍두마차를 형성한다.
이에 따라 조선일보는 대중문화의 소비를 인도하는 X세대와 함께 '30대 미시족'을 구매력 집단의 입장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미 95년에 '30대 문화론'이란 특집이 나간다. 그러나 당시 30대의 명칭은 막연히 '80년대 세대'였다.
한편 정치적 세대교체를 준비하기 위해 6.3세대 에게 초점이 집중되는데, 95년 DJ의 정계복귀 후 6.3세대에 의한 3김청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뚜렷해지고, 96년 총선에서 30대 신인들의 정치적 잠재력이 평가되자, 조선일보는 6.3세대에 대한 희망을 접고, 30대에로 눈길을 돌린다. 이리하여 97년 1월에 386세대라는 조어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조선일보에서 이 어색한 조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건 99년 1월 '386세대'의 특집을 다루면서부터이다. 그전에는 80년대 세대나 모래시계 세대, 심지어는 '김현철 세대'라고 불리면서 좌익성향을 숨긴 영악한 마키아밸리즘 의 세대라고 의심받았던 것이 이제 주사파 논쟁으로부터 출발하여 수년에 걸친 조선일보의 검증을 통과하고 마침내 인터넷 이후의 시대를 준비한다는 조선일보의 총아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98년만 해도 IMF하에서 우선 순위로 강제퇴직 당하던 고개 숙인 30대가 99년 갑자기 관심의 초점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경제적 측면에서는 30대 벤처창업의 성공으로 재계의 판도가 바뀌어가는 혁명적 상황이 고려되었을 것이고, 둘째로 정치적 측면에서 총선을 앞둔 30대의 정치적 폭발력을 분석해서 현실개혁적인 30대의 정치성향을 미리부터 순화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과정을 거쳐 '386세대'란 명칭은 6월 항쟁에 공헌했던 80년대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로 보편화된다. 그런데 '386'이란 약어가 이미 97년에 30대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결국 60년에서 67년생 중에서도 특히 대졸자들만을 특칭하는 명칭에 불과하다.
그것은 구매력 있는 30대 엘리트들에게는 적절한 명칭이겠지만 결코 80년의 광주로부터 재집결하여 87년 6월에 이르는 국내 민주세력 전체를 의미할 수도 없고, 또 6월항쟁의 정신에 적절한 시대적 상징도 못된다.
6월 항쟁은 결코 학생운동권만의 전리품이 아니다. 당시 아침부터 한 밤중까지 전국을 뒤흔든 시민들의 연대는 학번을 따져 훈장을 받을 일이 아니었다. 386세대란 명칭은 당시의 운동권학생들에게 부당한 특권의식을 부여하는 한편, 당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전체 시민들로부터 거리감을 갖게 하는 역효과를 갖고 있다.
따라서 나는 '386세대'라는 명칭은 그 상징성에 맞게 정보기술산업 시대의 제1세대를 통칭적으로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할 것이며, 그에 대한 문화적 의미를 분석할 것이다. 한편 정치적 차원에서 6월 항쟁의 주역들에 대해서는 6월 항쟁세대라는 명칭을 사용할 것이다. 이때 현재 60년생 80년대 학번인 현재 30대의 일부 엘리트들은 '386세대'와 '항쟁세대'의 한 교집합적 부분이 될 것이다.
1.2. 6월항쟁과 문화적 전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 정치적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시민들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불가침의 권리는 공화국의 헌법이 보장하는 바이다.
그러나 근대사는 시민들의 자율적 권리와 역량이 끊임없이 무시되고 유린된 독재의 역사로 점철된다. 봉건적 독재자에 대한 4.19의 저항은 영도적 독재자에게 유린되고, 군사독재에 대한 광주의 저항은 학살적 독재자에게 유린되었다. 군사반란에 시민학살을 단행하면 국가를 위기에서 건져낸 절세 영웅 대접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80년 광주에서 떨어진 꽃잎은 결코 잊혀질 수 없었다. 5공정권에 대한 학생들의 치열한 저항운동, 줄이어 희생당하는 학생들의 상여 행렬, 넥타이를 맨 중산층의 참여, 밤낮을 잊은 거국적 시민저항운동 등 급박한 상황의 전개 끝에 마침내 87년 6월 한국인은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자기 힘으로 민주화를 쟁취해 냈다. 당시의 해방적 감격을 그 누가 잊을 수 있으랴...
그러나 시민의 수준에서 승리했던 것이 정치의 수준에서 패배하고 만다. 6월항쟁은 2중으로 뒤틀린다. 군사정권은 항복선언을 시혜적 은총의 수준으로 미화시켜 승리의 발판을 굳히는데 성공했다. 한편 민주세력은 양김으로 분열되어 패배한다. 뒤이은 3당합당을 통해 민주세력은 영남권을 상실했으며, DJ 광신도라고 조소되고, 마침내 전라도의 밉살스런 지역감정으로 위축되고 말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연금술이 가능했던 것인가?
연금술은 정보공작과 언론조작의 수준에서 작동했다. 전두환이 감독한 6.29 항복선언은 보통사람 노태우의 대승적 결단으로 각색된다. 양김의 정치야욕은 DJ의 노욕으로 환원된다. 양김분열의 책임이 DJ에게 환원되고, "우리가 남이가?"라는 주문이 경남을 현혹할 때, 영남은 한 덩이로 뭉쳐 수구적 보수층의 요새지로 변화된다.
이리하여 정치적 민주화 시대 이후의 새로운 전선이 형성된다. 그것은 일상인의 사고방식과 느낌양식을 구성하는 '문화'라는 전선이다.
시민의 정치적 비판의식을 전체화된 감정의 수준으로 퇴행시키고, 선거에 반영될 민의를 조직하는 것은 언론이다. 문화가 민주개혁의 새로운 전선으로 등장할 때, 먼저 승리한 것은 바로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극우적 여론조작의 숙달된 솜씨로 정권을 창출하는 괴력을 보여주었다.
조선일보의 역사창출이 일단 힘을 받자, 그것은 사회의 모든 영역을 자신의 이념에 따라 구성하려 간섭하기 시작했다. 문화를 상품화해서 자신의 권력을 굳히고, 정치의 세대교체를 조직하고, 세대들을 분류해서 목록화하고, 각 세대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교육에 착수하기 시작한다.
정론지의 인도를 받은 보수층은 천민 자본주의 의 경박한 소비행태에 몰두하고, 대중문화는 사회적 문제를 창출하지 못한 채 가십에 몰두하고, 고집과 오기로 뭉친 정치 리더쉽은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내부적 모순을 간직한 채 열어 젖힌 개방화는 국제 자본의 희생양을 자초하는 세계화로 귀결되었다.
IMF와 정권교체, 정보산업시대의 도래와 인터넷의 등장은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을 이룬다.
6공이래 해산되었던 386세대는 정보산업시대 인터넷의 제1세대로 재등장한다. 민주혁명의 주체로서 승리를 체험했던 그들은 창의성과 자발성이 강조되는 정보산업의 의식전환에 특히 적절했다. 문화가 상품화되면서, 386세대는 문화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제 그들의 상당수가 보수적 중산층에 흡수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상당수의 6월 항쟁세대는 개혁적 중산층으로 남아 정치개혁과 언론개혁, 문화적 관행의 개혁에 대한 투지를 불태운다. 문화는 시장인 동시에 가치투쟁의 장이기도 한 것이다.
386세대란 정보산업시대의 주역세대다. 30대인 그들은 앞으로 20년간 사회의 주역을 떠맡을 것이다. 좋든 싫든 간에 그들은 새천년의 조국을 틀짓는 책임을 지게 되었다.
386세대엔 보수층과 개혁층이 혼재되어 있다. 보수층은 기존의 관행을 유지한 채 문화를 상품화하여 정보산업시대의 기득권층이 되고자 노력한다. 개혁층은 문화를 가치투쟁의 장으로 인식하며, 인간화된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 시민적 개혁운동에 참여한다.
정보산업시대에 적응한 386세대는 기본적으로 전제 없는 창의성의 합리적 적용에 열려 있다. 따라서 문화를 장으로 한 386세대의 활동은 도구적 관심을 중시하느냐, 아니면 해방적 관심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한국 사회의 미래를 상이한 유형으로 조형하게 될 것이며, 이들간의 변증이 갖는 성과의 생산성은 그들의 합리적 의사소통 능력에 달려 있다.
1.3. 6월 항쟁세대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전망
정치권에서의 지속된 좌절에도 불구하고, 6월 항쟁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사회와 문화의 곳곳에 참여하여 민주화의 열정을 유지하며 자신의 몫을 하고 있다. 정치권력의 억압성을 체험한 많은 사람들이 정치권에 참여하기보다는 정치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교정책을 제시하는 시민운동을 중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6월 항쟁세대 중에서도 정치권에 참여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자연스럽고도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이들의 참여방식이 대개의 경우 각자의 정치적 비전과 신념, 정책 경쟁력과 정치적 갈등 해결능력이 대중적으로 검증되어 선량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학생운동의 경력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무임승차하는 모양을 보여준다는 점에 놓여 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과거 학생운동의 좌경화를 지적하며, 그들의 사상과 신념을 의문시하고, 그들이 과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체제를 신봉하는지를 경계한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오히려 과거 학생운동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여전히 '좌파 파시즘'적 성향을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민주적 시민들로부터 감시받아야 할 것이다. 좌파 이념에서 우파 이념으로 이론적 전환을 하기는 쉽지만, 파시즘적 성향에서 벗어나기란 쉽기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 386 술판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어 사람들을 경악시킨 일이 있었다. 이것은 6월 항쟁세대에서 배출된 정치지도자들에게 성원을 보내던 많은 지지자들을 당혹케 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경원하던 많은 보수층들을 흐뭇케 해주었다.
운동권의 투사가 반드시 고난받는 민중을 우선시하는 지사일 필연성은 없다. 이념에 대한 수용은 논리적 수준에서 당위적으로 수행될 수도 있으며, 강성 독재와 투쟁하는 투사들은 맹목적 충성을 강요하여 강성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조직가들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6월 항쟁이래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항쟁세대는 내면적 성찰을 수행하고 인간존중과 상호신뢰의 사회윤리적 가치를 역사적 비전으로 수용할만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과거의 운동방식에 대한 철저한 자기비판을 요청한다.
전체주의에 물든 보수층의 사고방식과 느낌양식에 충격을 주고, 다양한 가치를 관용 속에 인정하고 개성과 차이를 공생적 화합에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준파쇼적 운동방식을 버릴 수밖에 없다. 이제는 목적과 수단이 합치하는 개혁을 추구해야 할 때다. 목적과 수단이 모순되어 자기모순에 빠지면 시민들이 설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국통일과 평화공존, 인류의 공생공영과 환경친화라는 새천년의 과업들은 바로 6월 항쟁세대의 정치적 책임에 맡겨져 있다. 그 과업은 앞으로 20년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문제들이 시숙하는 시간표에 따라 차례차례로 하나씩 등장할 것이다.
386세대이자 6월 항쟁세대인 한국의 청년들, 지식정보산업사회에서 벤처산업의 주역이자, 인터넷 제1세대, 통일을 전망하는 제1세대이자, 새로운 유형의 권력들이 집중되는 30대는 그들만의 특별한 역사적 과업을 갖고 있다.
그들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부터 젖줄을 공급받아 사회의식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들은 치열하고도 헌신적으로 투신해서 민주화를 달성해냈다. 그들이 과거 민주화를 성공시킨 혁명적 역량과 그 실존적 체험에 있어 자긍심을 가져도 마땅하다.
그러나 현대의 과업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영역에서의 시대적 도전은 과거 그 어느 세대의 도전보다도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는 개성과 다양성의 차이를 긍정하며 화합적 공생과 통합으로 이끌만한 새로운 유형의 지도력을 요청한다.
결국 이 세대에게 제시되는 도전의 핵심은 윤리적 가치관의 문제다. 사회윤리적 가치에 근거한 설득력만이 미래의 문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의사소통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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