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자보
386과 297의 만남-새천년 민주당 우상호 부대변인
장신기 정치부 기자(chungwolgusa@hanmail.net)
대자보에서는 소위 386이라 불리는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의 정계 입문에 대해 현재의 학생 운동권 후배들이 바라보는 시각과 사회 전반적인 시각을 조율해보기 위해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이고 현재 김상현 의원의 지역구인 서대문 갑에서 공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우상호(연대 국문과 81)씨와 대담을 기획했다.
우상호씨는 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6월 항쟁 당시 이한열 열사와 함께 학교를 다닌 바 있다. 대담에 참여한 패널은 연세대 인문학부 97학번 박용재씨, 대자보 편집부국장 장형석이고 사회자 겸 서기로 대자보 정치부 기자 장신기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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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그러면 대담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학생이신 박용제씨께서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386세대의 정치권 진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말씀해 주시지요.
박용제(이하 박) : 두 가지를 묻고 싶습니다. 우선 우상호 선배님이 80년대에 가졌던 생각들이 현재에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당시에 바라보던 사회와 지금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는지가 그 첫째입니다.또 하나는 386 세대의 정치참여 자체에 대한 문제인데, 저는 우선 386세대의 현재의 모습에 대해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보고자 합니다. 이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라기 보다는 저희 세대의 일반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으로는 건강한 생각과 능력을 가지신 분들이 정치에 진입하셔서 개혁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는 정치권을 개혁할 수 있다는 기대이고 부정적인 면으로는 과연 그와 같은 개혁의 의지가 기성 정치권에서 얼마나 실현될 수 있는지 하는 부분입니다. 과거에도 운동권 출신들이 정계에 진출하는 일이 많았고 그중 일부는 모범적인 의정활동을 통해 정치개혁에 일정정도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기성 정치권에 흡수된 사람들도 많았지 않습니까?
우상호(이하 우) : 첫 번째에 대해서 우선 말씀드리자면 제가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던 당시에는 이십대 초중반의 세상 경험이 적은 나이였습니다. 또한 당시의 사회 정세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고요. 그때의 생각과 비교하면 지금은 달라진 부분이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나라가 외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주적인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점과, 우리가 정권교체를 통해 어느 정도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사회 각 영역에는 비민주적 요소가 남아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민주화 운동을 해야 한다는 점과, 여전히 우리 조국이 분단된 상황이고 평화통일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는 이 세 가지 원칙만큼은 그대로입니다. 다만 그 실천 방향에 있어서는 제가 80년대에 가졌던 생각과는 분명 차이가 있죠.
두 번째 질문에 관해서 물론 저도 그런 견해에 대해서 자신 있게 저희 386세대는 다를 수 있다고 말씀드리지는 못합니다. 저희의 힘으로 정치권의 수많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의 가장 큰 과제는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개혁성과 능력을 가진 정치 세력의 형성입니다. 이는 인물 교체를 의미합니다. 정치는 구조적 문제도 중요하지만 이를 운영하는 인물도 중요합니다. 같은 인물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에서 시스템의 교체는 의미가 없죠.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저희 세대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과거에 정치판에 뛰어들었던 운동권 선배들과 저희와의 차별성이 문제가 되겠지요. 과거에는 개인적인 차원의 정치 입문이 많았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분들은 대부분 개인의 결단 차원으로 입문했던 분들이지요. 저희가 그 분들과 다른 것 은 저희는 전대협 동우회라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꾸준히 만나 정보와 의견을 교환했고 대학 졸업 이후 십여 년간 사회운동단체에 뛰어들어 사회운동을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내부적인 토론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정치 개혁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결론을 내리고 조직적으로 정계에 진출하게 된 것입니다. 개인적 차원의 결단과 조직적 차원의 진출은 분명히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장형석(이하 장) : 그 점에 대해서 제가 덧붙여 질문을 하자면 과거 평민당 시절에도 재야에서 조직적으로 진출해 김근태 의원을 중심으로 한 평민연을 조직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당명이 여러 번 바뀌는 과정에서 평민연은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
금 조직적으로 민주당에 입당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평민연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하실 수 있으신지요.
우 : 과거 평민당은 재야와 김대중 대통령이 연합체를 구성한 형태의 정당이었습니다. 따라서 재야 세력은 평민연이라는 조직을 구성해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확보했지요.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은 재야와 김대통령의 연합이 아니라 각각의 개인이 공동 발기인으로 창당한 형식이기 때문에 그러한 별개의 조직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저희 역시 언제든지 기성 정치권의 논리에 매몰되면서도 스스로의 모습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우리가 내부에서 만나 토론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저희와 함께 민주화운동을 같이 해 온 친구들 가운데 정계에 진출하지 않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모니터 팀을 만들었습니다. 만약 저희가 조금이라도 지금의 결심을 잊는다면 그들이 밖에서 우리를 체크해 줄 것입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외부의 모니터 시스템이 없었죠. 그 점이 선배들과 저희의 다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 그렇다면 지금 입당하는 선배님들은 인적청산이라는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장 당 내부의 중진들로부터의 반발이 있을 것 같은데요.
우: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적청산은 단지 저희가 주장하는 것이 아닌 시대와 국민의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번 선거의 최대 목표를 총선 승리를 통한 과반수 의석 확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구 정치인들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김대통령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시민연대의 발표에 대응하는 민주당의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이것을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고 그 근거로 낙천자 명단이 저희가 몸담고 있던 시민단체들에서 발표한 것이고 저희에게 유리한 발표를 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말도 안 되죠.(웃음) 김대통령은 물갈이의 필요성을 진작 느끼고 있었습니다. '젊은 피' 영입을 거론한 시점은 99년 초부터였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전면적인 물갈이를 예상한 것은 아니고 일부 중진 교체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너무나 엄청나자 당황해서 전략을 대폭 수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시민연대의 낙천운동이 이렇게 엄청난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는 저조차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김대통령의 당초 구상은 젊은 피 영입을 통한 일부 중진 교체 정도였지만 낙천운동이 큰 힘을 받자 궤도 수정에 들어간 상태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물론 중진들의 반발은 예상되지만 이제는 누구도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는 상황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장 : 우상호 선배님께서는 인적청산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씀하셨는데 민주당으로 입당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청산되어야 할 인물이 가장 많이 있는 자민련과의 연합정부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386 입당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대안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 : 사실은 그 부분이 저희로서도 가장 곤혹스러운 부분입니다. 자민련이 대단히 보수적인 정당이고 그 때문에 김대통령의 개혁이 어긋난 것은 사실입니다. 저희로서도 신당을 창당할 때 가급적이면 자민련을 배제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김종필 총재는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는데 많은 공헌을 한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때문에 자민련과는 앞으로도 일정정도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겠지요.
장 : 글쎄, 답변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곤혹스럽게 지내다 끝낼 생각입니까?
(일동 웃음)
우 : 그 점 때문에라도 이번에 민주당이 과반수 확보를 해야겠지요.
박 : 제가 이야기 듣기로는 상도동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인 집단이기 때문에 결속력이 약하지만 동교동계는 김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뭉쳤기 때문에 김대통령이 총선에 나가지 말라고 명령하면 나가지 않을 사람들이라 하던데,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민주당 내부의 인적 청산은 쉽다고 받아들여야 하나요?
우: (웃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언론에서 가십 거리로 만든 말이지 실제로는 다 같은 정치인이고 정치인들의 속성은 같습니다.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인정해야 할 부분은 인정해야 합니다. 지난 군사독재 시기에 그 분들은 아무 것도 생기지 않는 일을 하며 오로지 민주화 운동만을 해온 분들입니다. 우리가 가신 정치라 부르는 형태도 당시의 엄혹한 탄압 아래에서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렇게 보스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기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이고 87년 6월 항쟁의 경우에도 양김씨의 참여,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의 6.10 서명운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경제를 파탄냈고 양김 정치가 오늘날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의 과거 민주화운동 업적까지 부인한다는 것은 또 다른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과거의 기여에 대해서는 반드시 정당한 평가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시 민주화 운동에 전면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차분히 자신의 전문역량을 키워온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제는 그런 분들의 역량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하지만 그런 전문가 분들은 자신의 영역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지만 그것을 전체와 조망하는 능력은 조금 떨어집니다. 쉽게 말해 시야가 좁죠. 그에 비해 과거의 민주화 운동 세력들은 전문적 역량은 부족하지만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은 갖추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 둘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 : 민주노동당에 대한 견해는 어떻습니까?
우 : 저는 청년진보당이나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정당이 원내에 들어와 활동하는 것을 적극 지지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법 협상에서 1인 2표제 안이 기각된 것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의 올바른 정치 풍토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진보정당이 되도록 많이 원내에 진입해야 합니다.
사회 : 이제 입당에 관한 이야기는 어느 정도 마무리 된 것 같으니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돌려보죠.
박 : 앞에서 우상호 선배님은 인적 교체를 통한 정치개혁을 말씀하셨지만 학생 운동권 내부에서는 김대중 정권 3년째에 접어드는 지금에 있어서 그간의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김대중 정권은 미국의 하수인에 불과하고 여전히 반미의 문제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결론을 내린 상태입니다. 그 이유로는 김대중 정권이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장 대표적인 것이지요. 그가 집권한 이후로 예속은 더욱 심해지고 나라의 부는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이라고 저희는 판단했습니다.
장 : 그 점에 대해서는 저는 약간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97년 대선 직전 우연히 한총련 지도부에서 제작한 대선지침서를 본 적이 있는데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10 년 전인 87년 대선 때의 문건의 복사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때 나름대로 한총련 운동방식에
회의를 느꼈거든요. 그 동안 사회 정세는 엄청나게 변화했는데 어떻게 십년 전 지침서와 등장 인물의 이름만 바뀐 내용의 지침서를 발간할 수 있는지….
우 : 사실 그 문제는 제가 학생운동 때에도 제기되었던 문제입니다. 제가 처음에 이야기 할 때 저의 기본적인 인식은 십년 전과 비교해 변하지 않았지만 구체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변화가 있었다고 하는 부분이 바로 미국에 대한 부분입니다. 80년대에는 정통성 없는 군사정권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보장받기 위해 미국에 저자세로 다가갔고 따라서 정치가 예속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손으로 정권교체를 이룩한 현재의 한국 정치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이 8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작아졌다고 봅니다. 이 차이를 무시하고 십년 전과 같다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신자유주의 정책이 미국의 요구가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합니다만 집권 초기 김대통령이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 정책을 편 것은 어디까지나 그 당시가 IMF 사태 초기였다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IMF를 졸업하고 경제가 다시 회복되는 상태이기 때문에….
장 : 잠시만요. 저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는데….
우 : 저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일동 웃음) 물론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고 회복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경제 지표상의 수치이고 일반 국민이 그것을 느낄 때까지는 또 한참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실은 이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죠.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개혁이 성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정리해서 말씀 드리자면 집권 초기의 신자유주의적인 정책들은 IMF의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이제 어느 정도 경제가 회복되었다고 생각하고 경제 정책 노선을 생산적 복지 노선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제는 실업자 수도 감소하고 벤처 기업 육성을 통해 많은 수의 일자리를 창출해 냈습니다.
박 : 하지만 그 일자리가 어떤 것이냐 하는 것에 저는 이견이 있습니다. 비록 실업자 수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새로 구한 일자리가 어떤 것이냐가 사실은 더 큰 문제입니다. 그 대부분은 공공근로사업 같은 곳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다시 해고된 사람들을 채용
한다고 해도 이미 노동시장이 유연화 된 상황의 직장으로 복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정책 성공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우 : 그것은 경제 정책의 성격을 잘 따져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IMF 시기에 있어서 많은 수의 실업자가 발생했고 그 당시 경제 정책의 최대 과제는 일자리 창출이었습니다. 그것을 김 대통령은 벤처기업 육성을 통해 이룩하려 했고 어느 정도 궤도에 정착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새롬기술 같은 경우에는 순자산 규모가 국내 30대 재벌 가운데 몇몇을 제외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큽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거리로 내몰린 실업자들의 생활도 정부는 해결해야 합니다. 여기서 나온 생산적 복지 정책이라는 것은 새롬기술과 같은 벤처기업은 적극적으로 육성해주고 그 성과를 극빈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말하죠.
그래서 나온 것이 공공근로입니다. 사실 공공근로라는 것은 그냥 나와서 돈 타가기 뭐하니까 동네 한 바퀴 돌면서 휴지도 줍고 잔일도 하는 정도 수준입니다. 그렇게 한 달간 일하면 65만원에서 70만원 정도를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정책입니다. 이 정도면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지원은 되는 셈이죠.
제 생각에 진짜 신자유주의 지지자들은 한나라당과 재벌입니다. 그들은 기업인들의 세금이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용된다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계속해서 복지 정책을 줄이라고 주장합니다.
복지정책은 필연적으로 국가의 적자재정을 부릅니다. 오히려 군부독재 시절에는 재정적자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복지와 같은 비생산적인 부분에 예산을 투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서구 유럽의 복지국가의 경우 복지정책으로 인한 국가 부채가 전체 국가 예산의 60%에 달하는 실정이라 복지 삭감 등의 주장이 나오긴 하지만 우리 나라는 20%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충분히 복지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 : 일전에 그런 문제로 아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이견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현 정부의 개혁에 100% 만족하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는 긍정적인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대선 때 민주당이 또다시 집권한다는 보장은 없고 만약 차후의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됐을 때가 문제인데 저는 한나라당이 집권해 여러 개혁안을 거꾸로 되돌리려 해도 이미 개혁을 어느 정도 맛본 국민들의 반발로 전면적인 후퇴는 없을 것이다라는 주장이었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 선배님의 견해는 어떤지요?
우 : 저는 후자의 견해에 동감합니다. 왜냐하면 개혁은 국민들에게 지지 받기 힘들다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국민은 개혁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피해 받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국민연금과 같은 것인데 국민연금의 취지는 사실 매우 좋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누군가가 보살펴주어야 하는데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자식이라 하더라도 나이 드신 부모님을 신경 써서 보살펴주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노년층이 경제력이라도 있으면 다행인데 우리 나라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상황이라 자식이 지원을 끊으면 그대로 굶어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었을 때 일정액의 국민연금을 떼어 은퇴 후에 생활비를 대주는 것이 국민연금의 취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장 월급에서 때가니까 손해라고 생각하고 반대합니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정년퇴직을 기다립니다. 정년퇴직을 하면 연금으로 그 동안 못 가 본 해외 여행도 하고 새로운 취미생활도 시작하고 제 2의 인생을 설계하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어떻습니까? 아마 세상에서 우리 국민만큼 정년퇴직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적인 차원의 노후 대책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박 : 미국인들이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중산층 이상의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저는 어려서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미국 사회의 여러 모습을 보았는데 미국에서도 중산층 이하 사람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 못지 않게 살기가 힘듭니다.
우 : 물론 그렇죠. 미국이 이상적인 사회는 아니지만 배울 만한 정책은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 : 현재의 학생 운동권에 대한 선배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우 : 글쎄요. 학생운동을 떠난 지 너무 오래 되어서 뭐라 말할 수가 없네요. 하지만 한 가지만 당부하자면 학생운동은 대중을 떠나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제가 학생운동을 했을 당시 학생운동 지도자들은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바깥에서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집회를 했는데 학생들이 모이지 않으면 집회 방식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고 오히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쁘띠 부르죠아 계급이다. 쁘띠 부르죠아 계급은 혁명에 반대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주력군으로 내세울 수는 없다. 최선의 방법은 그들이 동요하지 않는 정도의 수준만 유지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노동운동에 뛰어드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학생운동이 안 되는 이유는 내가 못해서가 아니라 다른 학
생들이 쁘띠 부르죠아이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저는 2학년 때까지는 운동권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반 학생들이 어떤 정서를 가지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총학생회장이 된 이후에는 학생들의 지지를 받지 않는 일체의 집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용 아니냐는 비난까지 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방법이 성과를 거두었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대중에서 너무 앞서간 학생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 항상 대중을 중심으로 사고하라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장 : 끝으로 하나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조선일보에 관련된 것인데, 강준만 교수는 진보적 지식인, 정치인들이 조선일보의 행태에 대해서는 비판하면서도 조선일보에 칼럼을 기고하고 인터뷰에 응해줌으로써 조선일보가 현재의 지위를 유지한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 만약 공천을 받으시게 된다면 틀림없이 조선일보에서 인터뷰 요청이 올텐데 그 때 응해주시겠습니까 아니면 거절하시겠습니까?
우 : 그게…(웃음), 응해야죠. 어쨌든 선거를 위해서는 알려져야 하니까요. 저는 조선일보 같은 보수 언론도 개혁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완전히 없애자거나 하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거든요.
장 : 강준만 교수는 조선일보가 보수 언론이 아니고 극우 언론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조선일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제 몫을 찾아주자는 것이죠. 즉 그들의 판매부수를 몇 만 부 대로 떨어뜨리거나 아니면 지금처럼 수백만 부가 팔려도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스포츠 신문 정도로 만들자는 것이죠.
우 : 어쨌든 저는 정치인이라 조금이라도 더 알려져야 하기 때문에 응할 것 같습니다.
장 : 잘 알겠습니다. 오랜 시간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일동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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