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모도 못 붓고 뻐꾹새 울뻔했네’
양양(송천리) 이옥남 할머니 산골농사 일기책 펴내
20년간 고이 써온 일기 정리
올해 88세로 고령인 이 할머니(본보 841호 2008년 1월22일자 보도)는 지난달 ‘깨모도 못 붓고 뻐꾹새 울뻔했네’라는 산골농사 일기를 책으로 펴냈다.
이 할머니는 머리글에서 “내가 쓴 것도 없는데 무슨 책을 다 낸다고 하네. 벌써 나와 동갑은 간 사람도 몇 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오래 사는 건지 걱정이 된다”고 소회했다.
할머니의 산골농사 일기는 지난 20년간 1년 365일 생활 속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짧은 글로 수록한 것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인생 역정을 순수하게 담아내고 있다.
또 손자들에게 들려주던 재미난 옛날이야기와 농촌에 살면서 주변의 자연과 동물을 의인화해 때론 친구처럼, 때론 자식처럼 주고받는 이야기는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여유를 느끼게 한다.
이 할머니는 7월의 일기, ‘깨는 줄어들고 풀은 크고’에서 ‘깨밭매기를 하면서 한 달 동안 비가 와서 못 가 봤더니 깨는 줄어들고 풀은 크고, 얼마나 잡초가 무성했는지 깨가 안 뵈킨다’며 ‘땀에 옷이 젖고 짜게 됐지만 다 매고 나니 맘이 시원하고 깨가 좋아하는 게 완연하다’고 농사 일 뒤의 기쁨을 전했다.
평생을 농사를 짓고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들과 손자들을 돌봤던 이옥남 할머니의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지난해 1월부터 손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일기를 정리해 이야기책으로 펴낸 이 할머니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송천리 떡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연 속에서 살고 있다.
아직도 시집오면서 꽂았다는 은비녀를 머리에 곱게 꽂고 있는 이 할머니는 9살 때부터 화전 밭을 매기 위해 잡기 시작한 호미를 언제나 들고 들녘 깨밭의 김을 맨다. 이 할머니는 호미와 볼펜이 함께 늙어가는 평생 동무라며 주름진 웃음을 짓고 있다.
오빠의 어깨 너머로 배운 글자를 부엌 아궁이 앞에서 군불을 때며 탄 재에다 써보고 또 쓰면서 어렵게 글을 깨우친 이옥남 할머니는 20년간 간직한 이야기보따리를 이번에 책으로 내놓으며 자연과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인지를 일깨우고 있다.
김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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