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23

[자주시보] [최영식의 북녘생활] 나의 군생활 4



[자주시보] [최영식의 북녘생활] 나의 군생활 4

[최영식의 북녘생활] 나의 군생활 4
최영식

기사입력 2018-08-21





▲ 최고사령관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는 인민군대 ©자주시보, 자료사진





북녘에서는 군사복무가 공민의 신성한 의무이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나가지 않아도 법적으로 아무런 불이익은 없습니다.

군대가 아니라도 공장, 농장, 탄광, 청년돌격대 등 여러 분야에서도 고등학교 졸업생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 곳에서 열심히 일하다보면 군사복무한사람 못지않게 인정도 받고 당원도 되고 하지요.



다만 그 사회에서는 어딜 가도 제대군인인가 아닌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저처럼 생활 제대한 인간들은 차라리 군대안간 사람들보다 못하지요. 처녀들도 결혼상대가 제대군인인가 아닌가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학교졸업하고 바로 대학을 가는(대부분 이공계, 교원대, 사범대)청년들은 상관없습니다. 정세가 긴장해지면 이런 대학생들도 군 입대를 탄원하기도하고 실제로 입대한 대학생들도 적지 않습니다.









▲ 인민군대에 나가 영웅이 된 병사들의 경우 모교에서도 게시판에 사진을 걸어 놓고 기념하며 목숨을 바쳐 큰 일을 한 영웅은 동상까지 세워 기념한다. ©자주시보





그리고 북녘에서는 군대를 가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다 보내는 건 아닙니다. 학교 담임선생님, 소속된 청년조직의 보증과 추천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안경 쓸 정도로 시력이 안좋으면 군대 못갑니다. 북녘군대는 안경 쓴 병사, 하사관, 초급 지휘관들 없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를 나가는 청년들이 대부분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사회생활 1~3년 정도 하다가 입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후 각 시, 군마다 있는 고등물리학교(군사학교라고도 불림)에서 2년 공부하고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군사복무가 3년이 지난 병사, 하사관들 중 도덕과 품성이 바르고 자질이 뛰어난 군인들을 군관학교로 보냅니다. 고등물리학교 졸업하고 입대한 청년들은 2년 이상 병사생활을 모범적으로하면 대부분 군관학교를 보냅니다.



북녘군대는 영창이라는 게 없습니다.

60년대까지는 있었다는데 그때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제가 있을 때는 없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또한 북녘군대도 젊은 청춘들의 집단이라 주먹이 날아다니는 일들이 없을 수 없습니다.

특히 동기, 1년차끼리 주먹싸움이 있지만 극히 드문 일입니다.



그리고 북녘군대는 일방적이고, 치욕적이며 자존심에 상처 입히는 상관에 의한 하급자에 대한 일방적인 폭행, 구타가 일어날 수 없는 체계 입니다. 중대에는 당세포와 청년동맹조직이라는 정치적 조직이 존재합니다. 두 조직은 모든 군인들이 군사복무를 잘할 수 있도록 눈에 보이지 않게 이끌어주고 도움을 줍니다. 또한 중대의 모든 군인들을 친형제로, 중대는 한가정처럼 유지하기위해 많은 정성을 들입니다. 그렇다고 상관의 폭행사건이 완전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딜 가나 말썽꾼들은 꼭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제가군복무를 할 때에도 어떤 소대장이 소대 병사에게 주먹을 날렸는데 그 소대장은 저처럼 생활제대 되었습니다. 도저히 그런 건 용서가 안되는, 용납할 수 없는 집단이고 그런 인간들은 배겨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북녘군대에서는 자신보다 많이 늦게 입대한 군인이 먼저 분대장이 되는 일도, 먼저 더 직급이 높은 지휘관이 되는 일도 많습니다. 도덕적이고 올바른 품성을 소유한데다 뛰어난 지휘능력을 갖추면 누구든 인정하고 당 조직도 알아보기에 자신이 설자리에 서게 되는 건 당연한 거라 봅니다.

항일빨치산시절부터 뛰어난 지휘관들은 자신보다 훨씬 선배들도 부하로 거느렸고 그런 역사를 잘 알고 있는 북녘군인들로서는 이상할 것도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북녘군대에 뿌리내린 당조직, 청년조직들은 한주에 한 번씩 생활총화를 하고 분기, 연말마다 생활총화 및 사업총화보고를 합니다.

생활총화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동지들 앞에서 털어놓고 고쳐나가겠다는 결심을 이야기하는 것과 함께 다른 동지들의 잘못도 비판합니다.

사업총화보고는 조직책임자가 조직이 결정한 과업을 제대로 수행했는가 못했는가를 조직 앞에 보고를 하고 잘한 일, 잘못한 일들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앞으로의 방향과 과업을 제시하고 결정합니다. 또한 조직은 조직성원들의 능력에 따라 개별적으로 분공을 줍니다.

생활총화는 학생 때부터 했지만 군대 때는 심리적으로 많이 긴장되었습니다. 학생 때에는 같은 나이 또래였는데 군대에서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동지들과 하니 그래도 튀는 인간은 꼭 있기 마련이라 병사가 6~8년 이상 선배인 분대장에게 똑 부러지게 비판하는 것도 속 졸이며 지켜보았습니다.



자아비판도 잘하고 호상비판도 잘하는 사람, 이것도 저것도 잘 못하는 사람, 자아비판은 잘하지만 호상비판을 잘못하는 사람도 있고 자아비판은 못 알아들을 정도로 입안에서 웅얼거리다가 남을 비판할 때는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맵짜게 비판하여 입 딱 벌어지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독립중대가 아닌 대대지휘부와 함께 하는 중대에서 군복무를 하다 보니 두 달에 한번정도 분대가 식당근무를 하여 식당에서 음식도 만들고 하였습니다.

북녘군대는 군관과 병사식당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음식도 한가마에서 똑같이 만들어 낸 거라 지적받지 않으려고 솜씨를 발휘하던 분대장 생각도 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저는 군관식당과 병사식당이 따로 있고 먹는 것도 다른, 그런 나라들이 있다는 건 몰랐습니다. 군대라면 어느 나라나 똑같을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짧은 군대복무를 하면서 제일 짜증날 때는 남쪽에서 미군과의 합동군사 훈련이 있을 때입니다. 그런 때에는 밤에 신발 벗지도 못 하고 잠을 잤으며 하루에도 폭풍(비상소집)을 3번씩이나 한 적도 있었습니다. 비상소집하여 1차대피소까지 5분 안에 도착하여야 했으며 미군의1차 공격이 끝난 것으로 판단되면 바로 이동하여 10분 안에 소대갱도(벙커)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1차 대피호도 소대갱도도 핵 타격을 대비하여 산중턱의 암반을 뚫어 만들어 놓은 곳이라 그곳까지 무기장구류를 착용하고 정신없이 뛰어 올라가면 숨이 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걸 하루에 3번 그것도 밤에 자다가 두 번 할 때는 정말 열 받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럴 때에는 미국이 이가 갈릴 정도로 증오스럽고 미웠습니다. 이제는 미국이 훈련을 중단(훈련 중단하게 된 이유야 다들 알겠지만)하게 되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물론 올바르게 살지 못한 인생이지만 북녘의 형제자매들이 더더욱 강해지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행복해져가고 있으니 너무도 기쁘고 기쁩니다.



저는 저의 글을 읽어보는 모든 분들께 확실하게 이야기합니다.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곳을 지켜가고 있는 동족들이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는지, 얼마나 통일을 염원하는지, 얼마나 민족을 사랑하며 조상들이 물려준 그 강산을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