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가토 노리히로 (지은이) | 창비 | 1998-10-30
310쪽 | 148*210mm (A5) | 403g | ISBN : 978893648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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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을 바라보는 한 일본 지식인의 자기비판서. 저자는, 전후 일본에서 벌어진 보수-진보진영 간의 대립은 `일본이라는 자아`, `역사를 이어받는 주체`가 없는 상태에서 비롯된 인격분열의 양상이며, 되풀이되는 사죄발언과 망언 역시 이에 기초한다고 주장한다.
일본 전후세대 지식인이 패전 후 일본사회를 심층분석하고 진정한 사죄의 논리를 구축하고자 한 책. 전후 일본에서는 아시아의 2천만 전쟁희생자에 대한 사죄와 보상, 전쟁포기조항을 포함한 평화헌법의 수호를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과 대동아공영권의 정당성 인정과 일본 내 3백만 전쟁희생자에 대한 애도, 미군정하에서 강요된 평화헌법의 개헌을 주장하는 보수주의자의 논리가 팽팽히 맞서왔다.
저자는 이러한 대결구도의 근원적 결함을 지적한다. 진보주의자의 논리는 일본이라는 진정한 자아가 없는 상태에서 나타난 손쉬운 자기부정의 표현일 뿐이다. 2차대전의 종전이 일본에게 오욕임을 바로 보지 못한다면 아시아에 대한 사죄는 표면적인 사죄에 그치게 된다는 점을 비판한다.
마찬가지로 보수주의자들의 개헌 주장 역시 감정적 민족주의를 등에 업고 자국의 사망자를 애도하며 역사를 왜곡 미화하려는 억지 논리임을 꼬집고 있다. 전후 일본의 이 두 가지 모습은 `일본이라는 자아` `역사를 이어받는 주체`가 없는 상태에서 비롯된 인격분열의 양상이며,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사죄 발언과 망언 역시 여기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사죄와 망언의 근본원인을 성찰한 전후 일본 지식인의 발언. 2차대전의 전쟁책임과 전몰자 추도 공방을 둘러싼 일본 보수·혁신 세력간의 이율배반적 공생관계를 심층적으로 규명하여 그 사회적 의식의 뿌리를 드러낸다. 과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진정한 주체만이 타자와 대면하고 사죄할 수 있다는 저자의 전언에서 일본 지성계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일본이 보는 일본은 어떤 모습인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되풀이되는 사죄발언과 망언, 종군위안부 문제 등으로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관계는 끊임없는 갈등의 연속이다.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고 해결의 실마리는 무엇인가. 저자는 이 모든 갈등의 핵심에 있는 것은 일본의 자아 없음, 주체부재의 상황이라고 말한다. 일본이 없는데 일본이 한 행위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사죄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1. 패전후론
1) 전후의 기원
2) 버틀림과 은폐
3) 분열의 여러 양상
4) 오욕-오오오까 쇼오헤이를 다시 생각한다
2. 전후후론
1) 다자이 오사무와 전후
2) 문학이란 무엇인가
3) 전후이후
3. 말투의 문제
1) 한나 아렌트
2) 스케치-전후의 왜곡
4. 예루살렘의 하이히민
1) 공동성과 공공성-숄렘과 아렌드의 논쟁
2) '말투'란 무엇ㅇ니가
3) 사적 영역
4) 공동성을 깨는것
전후 일본 지성계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 중 하나인 이 문제를 자국의 전쟁 희생자에 대한 추모라는 주제로부터 제기한 것이 1부「패전후론」이다. 이 글이 발표된 후 일본 지식인들 간에는 격론이 벌어졌고, 이에 대한 응답으로서 `진정한 사죄란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을 이룰 것인가`를 한층 깊이있고 폭넓게 파악한 것이 2부 「전후후론(戰後後論)」이다.
유대인 학살의 전범 처리과정을 둘러싼 공방으로부터 민족과 민족주의, 국가라는 공동성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을 고찰한 3부 「말투의 문제」까지를 아울러 보면 전후 일본이라는 나라가 다다른 자리와 앞으로의 행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 가토 노리히로 (加藤 典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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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무라카미 하루키 1Q84 어떻게 읽을 것인가>,<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 총 46종 (모두보기)
소개 : 문예평론가. 와세다대학 명예교수. 고단샤 논픽션 상, 고바야시 히데오 상 선고위원. 1948년생으로 도쿄대학 문학부 불문과를 졸업했다. 1985년 데뷔작 〈아메리카의 그늘〉이라는 비평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1997년 신초 학예상을 받았고 1998년 이토세이 문학상 평론 부문에서 수상했으며 2004년 구와바라 다케오 학예상을 받았다. 현대문학, 사상사, 정치, 역사 인식에 대해 폭넓게 발언하고 있으며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1Q84 어떻게 읽을 것인가》(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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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6편
˝한국에 사죄? 자국민 추모 먼저˝ 일본의 비뚤어진 논리 광검 ㅣ 2018-07-12 ㅣ 공감(1) ㅣ 댓글 (0)
해방 50주년을 맞은 1995년, 한국사회의 화두는 일본의 식민지배 청산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당시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지시했다. 일본 식민지배의 상징인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함으로써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일본도 비슷한 시기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려 시도했다.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는 1993년 총리 취임 기자회견 당시 "과거의 전쟁은 침략전쟁이었고, 잘못된 전쟁이었다"며 현직 총리로는 처음 침략전쟁을 인정했다.
하지만 뒤이어 호소카와의 발언을 무색게 하는 망언이 터져 나왔다. 1993년 12월 나카니시 케이스케 방위청 장관이 헌법 재검토 발언으로 사임했고, 다음 해 5월 나가노 시게카도 법무상이 난징대학살은 날조라는 발언으로 사임했다. 같은 해 8월에는 발족 직후의 무라야마 내각에서 사쿠라이 신환경청장관이 태평양전쟁에 침략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가 사임했다.
어째서 총리의 사죄에도 불구하고 이를 역행하는 각료들의 망언이 이어지는가. 어떻게 하면 사죄와 망언의 지겨운 반복을 끊고, 진정으로 사죄할 수 있는가.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가토 노리히로 지음, 창작과비평사 펴냄)은 이 질문을 다룬 책이다.
"일본의 3백만 사망자를 먼저 추모해야 사죄할 수 있다."
일본의 문예평론가 가토 노리히로는 이 책에서 "일본이라는 사회가 인격적으로 둘로 분열되어 있다"(56쪽)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사회는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외적 자아(호헌파-혁신파)와 내적 자아(개헌파-보수파)로 분열되어 있다. 이는 두 개의 인격이 대립하는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의 병립 상태와는 다르다.
사죄와 망언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외적 자아(호헌파-혁신파)가 사죄하면 내적 자아(개헌파-보수파)가 그에 대한 반발로 망언을 내뱉는다. 사죄에도 '불구하고' 망언이 잇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죄 '때문에' 망언이 나온 셈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혁신파가 아무리 외부를 향해 전쟁범죄를 반성하고, 사죄해도 보수파의 망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가토 노리히로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격분열을 극복하고, 사죄할 '주체'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죽은 2천만 아시아의 죽은 자보다 3백 만이라는 자국의 사망자를 먼저 추모해야 한다고 말한다.
2천만 아시아인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에는 침략자인 자국 사망자들이 설 자리가 없다. 보수파들이 여기에 반발하면서 자국 사망자를 '정결한' 존재(영령)로 추모하는 게 야스쿠니 문제라는 주장이다.
가토 노리히로는 자국 사망자들의 죽음을 무의미한 대로 먼저 추모할 때 비로소 '사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시아에 대한 전쟁책임을 명언(明言)하고 아시아의 2천만 죽은 자들에게 사죄한다고 해도 지킬 박사의 명언, 사죄가 아니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 명언의 논리가 우리가 지금 여기 있기 위해 죽어간 자국의 사망자들에 대한 애도와 균형을 이루고, 그 사죄가 이들 사망자들에 대한 추모를 통하여 우리 것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은 하나의 인격으로서의 우리들의 명언이며 사죄인 것이다.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83쪽
가토 노리히로는 태평양전쟁에서 죽은 아시아인을 추모하는 호헌파에게도 '너무나 서둘러 일본을 부정함으로써 원래라면 져야 할 책임을 무의식중에 회피하는 결과가 된다'(8쪽)고 비판한다.
그는 "이른바 세계시민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도 우리는 일단 피침략 쪽의 규탄을 받아들이는 '전후 일본인으로서의 우리'가 될 필요가 있는 것"(15쪽)이라며 인격 분열을 극복하고, '사죄의 주체'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혁신파야말로 '전후 일본인으로서의 우리'
가토 노리히로의 주장은 태평양전쟁을 긍정한다거나 태평양전쟁에 대한 비판을 '자학사관'이라고 매도하는 기존의 극우 담론과는 분명 다르다.
일견 그럴듯한 면도 있다. '설령 일본의 태평양전쟁이 수많은 아시아인에게 비극이었다고 할지라도, 전장에서 죽어간 일본인을 우리 일본인만큼은 잊지 않고 기억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일본인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 법도 하다.
하지만 정말 그의 주장처럼 일본의 3백만 사망자를 애도하면 사죄로 나아갈 수 있는 걸까.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학 교수는 <일본의 전후책임을 묻는다>에서 가토 노리히로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우선 일본사회가 자국 사망자 3백만을 먼저 애도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부터 사실과 다르다.
무종교적인 치도리가부치묘원(일본 도쿄도 지요다 구 황궁 서쪽에 있는 공원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해외에서 사망한 병사와 민간인 유골을 안치하고 있다 - 기자 말)은, 1959년 야스쿠니신사의 대체물로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여전히 '자국의 사망자'만을 애도하는 시설입니다. 전사자 유족 원호도 1990년대 초까지 군인, 군속 등 유족 중심의 '자국의' 전쟁 희생자 원호비가 약 40조 엔이었는데, 대외 지불액은 개인 보상도 없이 약 1조 엔이나 되는 엄청난 불균형이 존재합니다. 일본인 특히 죽은 병사가 우선이고 이방인, 타국의 사망자는 그 다음이라는 가토 씨의 제안은 이미 옛날에 실현된 것이지요. <일본의 전후책임을 묻는다> 169쪽
그래서 문제는 자국 사망자를 먼저 애도한다고 풀리지 않는다. 망언은 일본의 침략책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활동에 참여했던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는 가토 노리히로의 논의를 자학적이라고 일축했다.
'너무나 서둘러 일본을 부정함으로써 원래라면 져야 할 책임을 무의식중에 회피하는 결과가 된다'는 호헌파에 대한 비판도 당혹스럽다. 일본의 침략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에 사죄한다고 보는 게 상식적인 해석 아닐까?
다카하시 데쓰야는 "저는 일본의 전쟁책임에 관해 일본인에게 '일본인으로서의 책임'이 없다는 논의에 편 들 수는 없다"며 "일본인은 일본 국가의 주권자로서 일본 국가의 정치적인 자세에 책임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일본의 전후책임을 묻는다> 70~72쪽).
그렇기 때문에 '침략을 저지른 건 선조들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라고 말하는 대신 끊임없이 기억하고, 사죄한다. 이런 이들이야말로 가토 노리히로가 말한 "피침략 쪽의 규탄을 받아들이는 '전후 일본인으로서의 우리'"다.
가토 노리히로의 주장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윤리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다카하시 데쓰야는 그의 주장이 품고 있는 윤리적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독일인이 "400만 자국의 죽은 병사를 먼저 내세우는 것이 600만 유대인 사망자로 이어진다, 600만 폴란드의 사망자(그 중 300만은 유대인)로 이어진다, 2천만 소련 사망자로 이어진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국을 위해 죽은' 독일군 병사에 대한 '깊은 애도'를 '먼저' 하지 않는다면, 유대인과 기타 유럽인 희생자에 대한 '애도'도, '사죄'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본의 전후책임을 묻는다> 250쪽
세련되지만, 퇴행적 담론
결국 가토 노리히로의 주장은 기존 극우파보다는 세련되지만, 여전히 가해자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 주장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가토 노리히로는 '사죄의 주체'를 세워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사죄의 주체'가 되려는 혁신파에게 '너무나 서둘러 일본을 부정함으로써 원래라면 져야 할 책임을 무의식중에 회피하는 결과가 된다'는 이해하기 힘든 비판을 한다.
반면 '사죄의 주체'가 되기를 거부하는 보수파의 태도는 아시아의 2천만 사망자만 애도하는 혁신파에 대한 반발이라고 이해해주면서 '자국 사망자 300만을 먼저 애도해야 아시아의 2천만 사망자를 애도할 수 있다'는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고, 비윤리적인 주장을 한다.
그래서 가토 노리히로의 주장은 퇴행적이다. 일본이 사죄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자국 사망자 300만을 애도하지 않는 호헌파의 태도가 아니라 전후 50년이 지나도록 가해자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고통을 앞세우는 그 같은 퇴행성 아닐까.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수양 ㅣ 2010-08-08 ㅣ 공감(7) ㅣ 댓글 (5)
이 책에서 가토는 전후책임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사죄’와 ‘망언’을 반복하는 일본의 인격 분열의 원인을 사죄할 주체가 제대로 구축되어있지 않는 데서 찾고 있다. 그는 사죄해야 할 타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라는 주체가 있어야 하며, 주체를 구축하는 것과 관련해서 “자국의 3백만의 무의미한 사망자들을 바로 그 무의미함 때문에 깊이 애도한다는 것이 그대로 타자인 2천만 아시아의 죽은 자들 앞에 우리를 세워놓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라 말한다. 즉, 전쟁으로 희생된 2천만 아시아인에게 사죄하기에 앞서 먼저 3백만의 자국 희생자들을 추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토의 이러한 주장은 90년대 일본에 때 아닌 역사주체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논쟁이 가열되면서 가토는 자유주의사관파와 혁신파 진영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혁신파 진영의 지식인들은 가토의 주장이 어디까지나 자국의 사망자만을 감싸는 내향적인 논리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논리는 피해자인 아시아인들의 존재를 은폐하고 망각하기 위한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통합된 주체를 구축하자는 가토의 논의는 특히 다카하시로부터 내셔널리즘적 책략이라는 이유로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책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논쟁의 포문을 연 가토가 애초에 꺼낸 논의의 취지는 결코 내셔널리즘의 복권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가토의 주장이 내셔널리즘적으로 해석될 요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셔널리즘이라는 혐의가 발화 자체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가토가 언급한 '주체'는 다카하시가 비난하는 류의 '내셔널리즘적 주체'보다도 다케우치 요시미가 말한 ‘근거지’에 해당하는 주체에 가깝게 느껴진다. 사실 다케우치 요시미에게 있어서도 내셔널리즘은 ‘회심’과 ‘근거지’를 위해 불가피한 요소였다.
근거지는 일정한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범주다. 그것은 절대로 빼앗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고정적이지 않으며 동적이다. 고수해야 할 것이 아니라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폐쇄적이지 않고 개방적이다. (...) 근거지란 불균형한, 패배로 이를지 모르는 조건에서 가치의 전환을 이루어내는 자기 개조를 뜻한다. 이것은 전향과 다르며, 차라리 반대이다. 전향이 바깥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자신을 버린 것이라면, ‘근거지이론’의 자기개조는 바깥의 불균형한 조건을 자기 몸으로 받아내 자기변화에 이른 것이다. 전향에서 바깥의 환경은 전향을 해봐도 그대로 남지만, 자기개조에서 바깥의 환경은 주체 갱신의 축을 따라 변화한다. -다케우치 요시미, <내재하는 중국> 中에서
사회적 상황의 모순에 대한 천착과 해부, 그리고 이를 통한 반성과 갱신. 이것이 애초의 가토의 발화에 담긴 취지가 아니었을까. 나는 가토의 글에서 자신의 언설이 비난 받을 것을 각오하면서도 끝내 사회의 모순점을 물고 늘어지는 사고의 핍진함을 읽는다. 그리고 거기서 다케우치가 강조하는 ‘회심’의 가능성을 본다. 물론 사상의 폭과 깊이가 루쉰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가토의 발화가 복잡한 현실의 토양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는 점 하나 만큼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반면, 가토를 비난하는 다카하시의 주장에는 모든 전후 상황을 굉장히 쉽고 당위적이고 명료하게 정리해버리는 ‘전향’의 태도만이 있을 뿐이라고 비판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통일된 주체를 세워야 한다는 가토의 주장 역시 '내셔널리즘의 복권'으로서의 의도를 갖는다기보다는 모순투성이의 자신을 인식하고 그것을 어떻게든 극복해보려는 의지로 읽힌다. 물론 그가 구상해낸, 자국의 삼백만을 먼저 추도하자는 그 구체적 방법이 다소 엉성하고 문제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불화하는 내부를 성찰하려는 시도 자체는 그 가치를 높이 사야 하지 않을까. 그런 시도를 가리켜 피해국과의 관계를 절연하고 과거 청산 문제를 교묘히 회피하려는 자기중심적인 수작이라고 힐난한다면, 그것은 가토에 대한 너무나 가혹한 평가일 뿐만 아니라, 가토의 발화의 핵심을 전혀 못 건드리고 있는 비난에 다름 아닐 것이다.
역사주체논쟁을 둘러싼 일본 내부의 논의는 피해자의 입장에 놓인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정희 정권 시절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 조약 체결 이후 전후보상문제에 대해서 한국 공론장에서는 일본의 경우만큼의 큰 논의가 별달리 불거진 적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때문에 전후 문제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한국과 일본이 보여주는 대조적인 모습은 자못 인상적이다.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자도 맞은 놈은 발 뻗고 잔다는 속담이 실감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맞은 놈이라는 게 마치 벼슬이라도 되는 양 행세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니, 맞았다는 사실이 과연 도덕적 우위를 증명해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애당초 우리가 정말 맞은 놈이긴 한 것인가? 전후세대인 우리 역시 전쟁에 대한 기억도 없고, ‘논 모랄’이고, 딱히 응어리진 것도 없는데, 사죄 받을 권리를 마치 상속 받은 재산 마냥 갖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리는 상속받은 그 재산이 정말로 불로소득에 해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모종의 책임이 대가로 따르는 재산인 것인지 한번쯤 재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섣불리 확실한 답안을 마련하기 어려워 잔뜩 의문만 쏟아내 놓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의 역사주체논쟁을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어떤 새로운 ‘고민의 연대’라는 것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하나의 사건인지 모른다. 이 글에서 나는 가토를 옹호했지만, ‘고민의 연대’라는 것이 결코 무작정 일본인의 입장이 되어 가토의 논의에 심정적으로 동조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일본에서 불거진 이 논쟁을 매개로 하여 우리가 처한 장소에서 가토의 고민에 값하는 새로운 고민꺼리들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고민의 연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무수한 의문들을 만들어보는 것으로 출발해도 나쁘지 않으리라 본다.
또 하나의 망언 파고세운닥나무 ㅣ 2008-10-23 ㅣ 공감(1) ㅣ 댓글 (0)
이 책은 전후 세대가 제 자리를 찾기 위한 발버둥침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 대해 난 동의할 수 없다.
가토가 말하는 제대로 된 국민과 국가가 난 개헌론파의 보통국민, 보통국가론으로 들린다.
물론 가토는 보수파에게도 환영받지 못하지만 말이다.
망언만이 계속될 시대가 온 것일까?
끔찍하다.
加藤典洋(1948-)
바람직한 전후 역사인식을 위하여 jungkwhy ㅣ 2007-04-26 ㅣ 공감(0) ㅣ 댓글 (0)
현재 일본의 자국에 대한 역사 인식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비단 중국과 우리나라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침략국인 일본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특히 패전 후 이는 그 당시에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이에 대한 시각은 매우 첨예하여 극단적인 호헌론자에서부터 극단적인 개헌론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카토 노리히로의 ‘사죄와 망언사이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논쟁의 한바탕에서 일본의 평화헌법과 자국, 타국의 전사자의 문제 나아가 민족주의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소위 ‘역사주체논쟁’을 불러일으킨 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패전 후의 일본이 혁신파와 보수파의 대립으로 인하여 인격 분열 상태에 있다고 진단하고 진정하게 일본이 역사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러한 외향적 내향적 분열상태를 극복하고 새로운 주체로서의 일본이 완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그의 주장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는 나아가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헌법 제 9조(전쟁과 군사력, 교전권의 포기)조항에 대한 각 호헌파와 개헌파의 주장이 모두 편협한 사고에 있다고 보고 다시 한번 일본인들의 재 선택에 이를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전의 대립은 그의 표현에 의하면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형상을 띄는 것으로 호헌파는 평화헌법이 강요에 의한 것임을 망각하고 있으며 전쟁을 자행한 패전 전의 일본의 정체성을 무조건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사죄를 해야 할 일본 주체의 성립을 막고 있으며 개헌파 역시 패전에 대한 반동으로 자주헌법을 지니는 보통국가를 지향하지만 ‘보통’이라는 보편이념은 존재하지 않으며 국제사회를 움직일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또한 어정쩡하고 굴절된 자세를 취함으로써 역사 주체의 확립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비틀림’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주장은 사실 그동안의 일본 내 지식인들의 소모적이고 끝없는 논쟁 상태를 명쾌하고 꼬집은 것으로서 날카로운 시각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자국과 타국의 사망자에 대한 애도의 우선성에 대해 생각하는데 이에 대한 인식은 사실상 일본의 역사인식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문제이다. 여기서 카토는 죄없는 아시아의 2000만 사망자보다 자국의 300만 사망자를 우선시 함으로써 자국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긍정하고 이를 재탄생시킴으로써 새일본의 건설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주장이 반드시 옳다고는 볼 수 없다. 카토는 보수파의 ‘역사 위조’ 등을 포함한 망언들을 앞서 언급했듯 혁신파의 아시아에 대한 사죄 논리의 반동으로 파악하고 ‘자국의 300만 사망자’들을 우선시하며 생각하면서 보수파와 혁신파를 아우르는 통합된 일본을 확립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대립자를 포함한 형태로 우리를 대표한다’는 논리로서 그 유효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한다. 더 나아가 이는 내셔널리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한다. 내셔널리즘이 항상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자체적인 일본’을 정의함으로서 민족성, 일체성 등을 강조하며 이는 타자에 대한 배제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칫 잘못 이해되면 전쟁전의 군국주의의 성격을 띨 위험성도 농후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진정한 민주주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내셔널리즘을 넘어서는 민주주의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의 ‘패전후론’에서 특히 잘 나타나는 카토 노리히로의 이러한 논의와 그에 대한 비판들은 현재 교과서 왜곡문제,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야스쿠니 문제 등을 둘러싸고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피침략국 국가들의 역사의식이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카토의 주장은 일본의 진보주의 사학자들에게 있어 소위 자유주의 사관과 함께 그 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진정한 일본의 사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한다는 점에서는 그 의도에 있어서 충분히 긍정적으로 평가될 면이 있다고 본다. 또한 그가 보여준 예리한 역사 진단 안목과 참신한 주장들은 이 책을 읽음에 있어 느낄 수 있는 큰 재미가 될 것이다.
사죄와 망언사이에서 보슬 ㅣ 2006-04-25 ㅣ 공감(0) ㅣ 댓글 (0)
이 책의 제목은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이다. 제목을 보고 한국 사람이 한국의 입장에서, 2차 대전 이후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본의 사죄와 망언에 대해 비판한 책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저자는 ‘카또오 노리히로’ 일본 사람이었다. 과연 ‘카또오 노리히로‘ 라는 일본 사람이 어떤 시각으로 일본의 사죄와 망언을 바라봤을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저자가 일본인이므로 어쩌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망언을 옹호하며 억지 논리가 난무하는 책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저자인 ‘카또오 노리히로’ 는 서문에서부터 ‘자기 비평’ 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언급했다. 그렇다. 이 책은 일본인인 저자가 사죄와 망언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후 일본의 태도에 대해 그 원인을 심층 분석하고, 이를 비평한 ‘자기 비평서’ 이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패전후론’, ‘전후후론’, ‘말투의 문제’ 로 나누어져 있다.
패전후론에서는 전쟁 희생자에 대한 추모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우선 전후에 대해서 정의하고 있다. 저자는 전후란 모든 것이 뒤죽박죽된 ‘거꾸로 된 세상’ 인데, 그것이 어느 누구의 눈에도 ‘거꾸로’ 라고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부터 그것을 ‘전후’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라는 비유를 통해 전후 일본 내의 분열 양상을 설명한다. 일본이 사죄와 애도의 대상으로 2천만 아시아인을 우선시 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자국의 3백만 사망자 역시 추모와 애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에 대한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명시하지 않아왔다는 것이다.
전후후론에서는 전후 일본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서술과 진정한 사죄의 가능성과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진다.
말투의 문제에서는 패전후론에서 언급한 인격분열의 극복에 대해서 공동적인 것으로서 존재하는 죽은 자들과의 관계를 공공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인격분열의 극복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또 세계 전쟁 이후 패전의 의미는 변하여 제 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은 거꾸로 죽은 자와 공동적이고자 하면 국민의 분열시키게 되는 계기가 된다고 말한다.
책의 내용이 어려워 이해하고 정리하는기에 매우 어려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통해 알고자 하였던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 듯하다. 그것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한국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사죄와 그에 이어지는 망언의 연속이었다. 전쟁 중 식민지 지배로 끼친 피해에 대해 일왕이나 수상이 우리 국민과 정부를 향해 사죄를 하지만, 곧이어 각료들과 중진 정치인들의 망언이 이어져왔다. 그로 인해 우리는 일본의 사죄보다는 그에 뒤이어 나오는 망언을 주목하게 되고, 그에 분노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일까?
저자는 그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로, 전후 일본에 피침략국인들의 규탄을 받아들일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은 전쟁 중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피해를 끼친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죄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제가 되어야하는 것이 자신들이 잘못을 인정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사죄에는 ‘인정’ 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일본 내 혁신파와 보수파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저자는 일본의 계속되는 혁신파의 사죄와 보수파의 망언의 관계를 설명할 때, 혁신파의 사죄 발언에도 불구하고 보수파의 망언이 나온 것이 아니라, 혁신파의 사죄 발언 때문에 보수파의 망언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을 통해 지금껏 일본에서의 사죄와 망언이 그토록 끊임없이 반복될 수 있던 배경을 이제야 알게 되었고, 그에 대한 일본인이 고찰한 해결방법에 대해서 알게 되어 새롭고 뜻 깊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뜻 깊었던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도 온전히 내용을 이해할 수 없음을 느끼며 나의 무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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