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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이 밝아졌다, 북한 전력 사정이 좋아진 4가지 이유
글 | 하주희 주간조선 기자
▲ 함경북도 단천에 짓고 있는 단천수력발전소 건설 현장. 북한 노동신문이 지난 5월 18일에 공개했다. photo 노동신문
“평양이 밝아졌다.” 올해 북한에 다녀온 인사들의 공통적인 증언이다. 7월 말에 평양에 다녀온 중국인은 이렇게 묘사했다. “광복거리에 있는 고층건물들마다 불이 환했다.” 최근 주평양 공관으로 발령이 나 평양으로 들어가는 외국 인사들 사이에서도 “전기 사정이 좋아져 가전제품들을 쓸 수 있어 좋다”는 말이 돈다고 한다. 평양시에 한해 하루 24시간 전기를 쓸 수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북한 전기 사정이 나아진 것 같다는 얘기는, 사실 지난해부터 조심스럽게 나왔다. 작년 8월에 북한에 다녀온 인사의 말이다. “더울까봐 걱정했는데 호텔에 에어컨이 잘 나와 다행이었다. 백두산 관광 시설도 전기 사정은 나쁘지 않았다. 온수가 제한적으로 나오고, 케이블카가 제한적으로 운행하긴 했다.” 북한 방문기에 단골로 등장했던 ‘식당에서 식사하는데 전깃불이 꺼진’ 경험담은 이제 들을 수 없다. 특히 전기 사정이 현저히 좋아진 것은 올 3월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의 달라진 전기 사정은 예전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과거에는 ‘전기 맘대로 쓰는 건 총살감’이라는 말이 당연한 듯이 돌았다. 식당이나 술집은 밤 10시만 되면 촛불을 켜고 영업했다. 조선노동당 중앙당 사무실도 저녁 때 불을 켜는 방, 끄는 방 구분했을 정도다. 야근자들은 불을 켜는 방에 모여 일했다.
북한 전역에서 필요한 전력량은 약 500만㎾로 추산된다. 2013년 기준 북한의 발전 추정량은 221만㎾였다. 필요량을 크게 밑도니 일반가정에까지 풍족하게 전기가 공급될 리가 없었다.
북한의 전기 사정이 좋아진 이유는 크게 4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발전소 확충이다. 북한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세워 경제 발전을 꾀하고 있다. 지난 3월 6일엔 2017년도 인민경제계획을 모범적으로 수행했다며 우수 기관을 뽑아 우승기와 표창장을 나눠줬다. 목록 첫줄에 연이어 등장하는 기관이 바로 발전소다. 정확히는 김정숙평양제사공장, 수풍발전소, 서두수발전소, 태천발전소, 허천강발전소, 순천화력발전소, 위원발전소, 함경남도송배전부, 대동강발전소, 원산청년발전소, 라선시송배전부 순이다. 북한에서 등장 순서는 매우 중요하다. 서열을 뜻하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이 전력 수급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엿볼 수 있다.
김정은 신년사에 전력 강조
북한은 수력발전의 비중이 높다. 전체 전력수급량의 60%가량이다. 주요 수력발전소로는 수풍발전소, 서두수발전소, 태천발전소, 허천강발전소 등이 있다. 수풍발전소는 압록강에 있다. 일제강점기에 아시아 최대 규모로 지어졌다. 원래는 생산된 전력을 중국과 북한이 나눠가졌다. 2011년부터는 전량 북한이 사용하고 있다.
사실 전력에 대한 강조는 김정은의 올해 신년사에 이미 등장했다. 해당 대목이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수행의 세 번째 해인 올해에 경제전선 전반에서 활성화의 돌파구를 열어제껴야 하겠습니다. 전력공업 부문에서는 자립적 동력기지들을 정비보강하고 새로운 동력자원 개발에 큰 힘을 넣어야 합니다. 화력에 의한 전력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이며 불비한 발전설비들을 정비보강하여 전력손실을 줄이고 최대한 증산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야 합니다. 도들에서 자기 지방의 특성에 맞는 전력생산 기지들을 일떠세우며 이미 건설된 중소형 수력발전소들에서 전력생산을 정상화하여 지방 공업 부문의 전력을 자체로 보장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복잡한 말이지만, 결국 전력생산을 늘려야 경제의 ‘자력갱생’을 이룰 수 있단 얘기다. 신년사 이후 노동신문은 전력에 대한 기사를 매일 쏟아냈다. ‘발전소’를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해 보면, 올 1월부터 7월 31일까지 336건이 나온다. 최근 기사를 보자. 7월 28일자는 발전소 준공 행사를 보도했다. 함경북도에 있는 어랑천5호발전소다. 총 5기의 발전소 건설을 목표로 1981년 건설을 시작한 발전소다. 김정은은 지난 7월 17일에 이곳으로 현지지도를 가기도 했다. 준공을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 함경북도 어랑천발전소를 시찰 중인 김정은. 지난 7월 17일에 공개된 사진이다. photo 조선중앙통신
여기에 북한의 최근 강수량 사정이 나쁘지 않다. 강수량은 수력발전소 전력생산과 연관이 있다. 가뭄엔 전력생산량이 떨어진다. 참고로 기상청의 장기 분석을 보면 북한 지역 강수량은 늘고 있다. 1973년에서 2000년까지, 즉 28년간 북한 지역 평균 연강수량은 901.4㎜였다. 1981년부터 2010년까지 30년간 평균 연강수량은 919.7㎜다. 18.3㎜ 늘었다.
유의해야 할 점은, 전력 사정이 좋아졌다 해도, 어디까지나 북한을 기준으로 하는 얘기란 점이다. 윤재영 한국전기연구원 전력망본부장의 얘기다. “2010년도 이후 북한의 발전량엔 큰 변화가 없다. 인공위성으로 화력발전소와 수력발전소가 돌아가는 걸 보면서 전력 상황을 분석한 결과다. 전력수급을 평가할 땐 공장 등 산업시설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 가정집에서 쓰는 전기는 우리나라를 봐도 15%를 넘지 않는다. 개발도상국일수록 더 낮으니 북한은 10%도 안 될 거다. 가정에서 풍족하게 전기를 쓴다고 해서 산업동력원이 확충됐다고 단정하긴 힘들다는 얘기다.”
북한에서는 가정집이라 해도 한국처럼 가전제품을 많이 갖추고 있지 않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수력발전소 몇 기만 추가로 건설하고 고장난 발전소 시설과 송전설비만 고쳐도 가정엔 변화가 크게 느껴질 수 있는 이유다.
신재생에너지 40년 계획
태양열과 풍력발전 등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량 증가도 전력 사정이 좋아진 요인이다. 북한에선 신재생에너지를 ‘자연에네르기’라 부른다. 한국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북한 정권은 환경보호에 관심이 꽤 많다. 2014년11월 북한 당국은 국가과학원 산하에 ‘자연에네르기연구소’를 세웠다. 자연에네르기연구소는 ‘30년계획’을 수립했다. 풍력, 지열, 태양열 등 다양한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2044년까진 연간 500만㎾의 발전능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노동신문 2월 27일자는 무슨 연유에선지 자연에네르기연구소에 대한 소개글을 실었다. 기사 일부다. ‘국가과학원 자연에네르기연구소는 풍력, 지열, 태양열, 생물질에네르기와 같은 자연에네르기의 개발, 리용에서 제기되는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을 기본사명으로 하고 있다. 감회도 새로운 주체103(2014)년 1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국가과학원에 현대적인 자연에네르기연구소를 내올데 대한 은정 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해 10월 새로 일떠선 국가과학원 자연에네르기연구소를 돌아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소가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였다. 그로부터 3년 남짓한 나날 소장 리명선 동무를 비롯한 연구소의 일군들과 과학자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말씀 관철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 많은 성과를 이룩하였다. 연구소에서는 국가과학원의 여러 단위 연구사들과 힘을 합쳐 100㎾, 250㎾ 풍력발전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능력의 풍력발전기를 자체의 힘과 기술로 연구개발하였다. 또한 지열리용기술에 대한 연구사업을 심화시켜 열뽐프를 리용한 지열난방체계를 여러 단위들에 도입하였다. 그리고 4℃의 지하수를 리용하는 지열난방체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였다. 고심 어린 노력 끝에 개발 도입한 이들의 연구성과는 현재 여러 단위들에서 큰 은을 내고 있다.’
2016년과 2017년엔 ‘물 자원과 폐기물 관리’를 주제로 평양에서 국제워크숍도 열렸다. 동력을 자력으로 해결하자며 공장이나 양식장, 심지어 체육관 옥상에도 태양열 집전판을 설치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댄 지역에는 가정집에도 태양열 집전판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노동신문에서 ‘태양열’로 기사 검색을 해봤다. 올 한 해 33건의 기사가 올라왔다. 6월 24일자 기사가 흥미롭다. ‘라오스의 어제와 오늘’이란 제목이다. 기사 일부다. ‘라오스 인민혁명당과 애국적 인민들은 오래고도 간고한 투쟁 끝에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고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창건하였다. 공화국 창건 후 라오스 인민은 비로소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되여 자기 운명을 자기 손에 틀어쥐고 자주적인 새 라오스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의 길에 들어서게 되였다. 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발전능력이 1만㎾에 달하는 첫 태양열발전소를 세운 라오스는 2025년까지 국내 전력수요의 30%를 자연에네르기로 보장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2020년에 가서 약 95%의 주민 세대가 전기의 덕을 볼 수 있도록 전국 각지에 수력발전소들을 건설하고 있다. 우리 인민은 사회적 진보와 번영을 이룩하기 위한 라오스 인민의 앞으로의 투쟁에서 보다 큰 성과가 있기를 바라고 있다.’
올해는 특히 북한에 중요한 해다. 70년 전인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식 출범했다. ‘공화국 창건 70돌’. 한 달여 남은 9월 9일을 전례 없이 화려한 행사로 준비할 게 분명하다. 해외 인사들에겐 벌써부터 초청장이 배포되고 있다. 특히 9월 9일엔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아리랑’ 공연, 10만명이 참여하는 전 세계 유일무이한 집단체조 공연이다. 2013년 9월 30일을 마지막으로 5년 가까이 중단됐다. 북한 여행을 취급하는 해외 여행사들은 벌써부터 아리랑 공연 티켓을 팔고 있다. 공연 제목은 ‘빛나는 조국’. 가장 저렴한 티켓이 80유로다. 우리돈으로 약 10만3000원이다. 5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공연은 일단 한 달간 이어진다고 한다. ‘아리랑’을 다시 시작하는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이번 공화국 창건일을 그만큼 중요하게 친다는 점도 있겠지만, 전력을 포함해 최근 한결 나아진 북한 내부 상황에 대한 자신감 때문일 수 있다. 물론 북한 정권 입장에선 훌륭한 외화벌이 수단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창건일 기념 100만인 시위 등 대규모 행사가 준비 중이다.
▲ 집단체조 공연 ‘아리랑’. photo 조선중앙통신
‘동북아 수퍼 그리드’ 구상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의 경우 전부터 상황에 따라 원유와 전력을 대북 협상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평양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지난 3월 1일 열린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20㎾ 상당의 중고 발전설비를 북한에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6월 평양화력발전소에 중국산 발전기 2기가 추가 설치됐다고 한다.
러시아의 경우는 좀 다르다. 2015년 12월 북한은 러시아와 협정을 맺었다. ‘전력 기술 교류, 전력 에너지 공급, 관련 기반시설 건설에서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이었다. 협정의 결과로 러시아는 함경북도 나선에 전기를 공급한다. 여기엔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러시아는 국토가 동서로 길다.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는 중서부 러시아와 극동 러시아는 사실상 다른 나라나 다름없다. 산업과 문화, 행정의 무게중심이 상당부분 서부로 쏠려 있다. 극동 지역엔 인구도 적지만 산업 기반시설도 열악하다. 러시아 정부는 극동 지역 개발을 정권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있다. 소비에트 시절에 세운 낡은 발전소들을 대체할 발전소를 추가로 짓는 이유다. 2020년에서 2025년까지 극동 지역에만 총 13개의 발전소를 추가 건설할 예정이다. 아무르주, 연해주, 사할린주 등에 들어설 신규 발전소는 수력·화력·풍력 발전소 등 종류가 다양하다.
사실 러시아 정부는 큰 그림을 보고 움직이고 있다. ‘동북아 수퍼 그리드(Super Grid)’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을 광역 전력망으로 묶는 프로젝트다. 극동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한국과 일본에 판다는 구상이다. 그러기 위해선 송전 케이블이 북한을 통과해야 한다. 동해 밑 해저 케이블로 보낼 수도 있지만, 비효율적이다. 2015년 북·러 협정은 기반작업이었던 셈이다. 북한으로서도 나쁠 게 없다.
전력 사정이 좋아진 배경을 두고 군수용 전기가 민간으로 나오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이는 ‘북한의 달라진 전력 사정은 비핵화가 진행 중이란 증거 아니냐’는 시각으로 이어진다. 물론 북한 내부를 잘 아는 이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일단 군수용 전력을 외부로 돌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북한은 비핵화를 언급했지, 무장을 해제한다고 하진 않았다. 비핵화와 상관없이 군수시설은 돌아가는 중이다. “예술가를 꽃방석 위에 앉혔다면 과학원은 금방석 위에 앉히겠다.” 김정일이 생전에 한 말이다. 북한이 군사무기 개발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다.
지금은 국방과학원으로 불리는 제2자연과학원은 북한 군사무기 개발의 총체다. 수십 개의 연구소로 이뤄져 있다. 제2경제위원회와 내각 산하의 공장이 생산하는 물자는 우선적으로 제2자연과학원 산하 연구소로 간다. ‘99호물자’, 즉 최고사령관 동지 예비물자라는 이름이 붙는 식이다. 제2자연과학원에서 일하는 과학사나 연구사들에겐 물자가 풍족히 공급된다. 이들과 이들의 가족을 위한 학교, 농장이 따로 있다. 북한 인민 중 서열상 가장 높은 급으로 대우받는다는 얘기다. 특히 핵무기를 연구하는 101핵물리화학연구소엔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행군’ 시기에도 변함없이 식량이 공급됐다. 장마당에서 일반인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북한의 역사를 안다면 군수용 전기가 민간으로 나오리라 분석하긴 힘들 터다.
출처 | 주간조선 25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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