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Namgok Lee
Namgok Lee
26 July at 04:34 ·
‘리(理)’가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 아마 ‘합리(合理)’가 아닐까 한다.
리(理)에 부합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막상 그 ‘리(理)’에 대해서 오해가 많다.
나는 유학(儒學)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지만, 주자 성리학의 폐해가 크다고 생각한다.
내가 논어를 통해 만나는 공자의 사상과는 너무 다르다.
공자는 형이상학적이며 편을 가르고 실제와 떠난 그런 ‘리(理)’와는 무관하고, 오히려 그런 함정을 벗어나는 것을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본 사람이다.
‘공호이단(攻乎異端) 사해야이(斯害也已)’는 공자가 한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이단(異端)을 행하면 해로울 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대표적인 왜곡이다.
이단을 정통에 대비되는 말로 사용하게 되면 이단 논쟁이 벌어지고 그것을 둘러싸고 편갈라 싸우게 된다. 단지 학문이나 정신세계가 아니라 그것이 권력과 이어지게 되면 피비린내가 진동하게 된다.
전체가 망(亡)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게 된다.
종교가 권력화하게 되면 종교에서도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공자에게는 그런 ‘이단(異端)’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공(攻)을 행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공자가 말하는 이단은 아마도 극단(極端)에 가까운 뜻일 것이라고 나는 해석이 되었다.
극단은 단정적인 생각이다.
공(攻)을 공격한다는 의미로 읽는 것이 공자의 뜻에 부합하는 것으로 나에게는 보인다. 그러면 이단은 정통에 대한 반대말로 쓰이는 것이 아니다.
‘자기와 다른 생각’을 공격하는 것은 해로울 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공자의 뜻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정통이라고 단정하거나 고정하지 않아야 ‘리(理)’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무적야 무막야 의지여비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의 세계다.
우리 공동체의 위대한 사상적 유산으로 ‘홍익인간’과 함께 ‘재세이화’ 또는 ‘이화세계’를 꼽는다.
나는 정말로 위대한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공자가 저 축의 시대에 등장하기 훨씬 오래 전에 나왔다.
공자는 이 ‘리(理)’를 보다 구체적으로 자기 사상의 바탕으로 전개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인지(仁智)의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축의 시대의 다른 성인(聖人)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사상은 현실 속에서 왜곡되기 시작했다.
그 왜곡이 우리 역사에도 심대한 악영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크릴의 공자에서 인용한 글이다.
“그들은 후세의 도덕적 표준을 예견하여 그 시대의 정신과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공평무사한 덕망과 박애 및 극기의 관념들을 널리 유포하며, 그 의무를 거듭 깨우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의 동기를 제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완전무결성에서 나오는 매력은 동시대인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게 된다. 열정에 불이 붙고 추종자들의 집단이 형성되며, 많은 사람들이 자기 시대의 도덕적 조건에서 해방된다. 그러나 이런 운동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최초의 열광은 사라지고 주변의 환경이 다시 우위를 찾게 된다.
순수한 신앙은 세속화되고, 본래의 성격과는 거리가 먼 관념의 외피가 형성되고 본래의 면모가 사라지거나 왜곡되어 최초의 면모는 완전히 사라진다.
시대에 맞지 않는 도덕의 가르침은 그것에 맞는 문명이 동틀 때까지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
비단 공자뿐만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공자의 원형질(原形質)이 빛을 발하는 문명이 21세기에는 가능할까?
나는 그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그런 문명을 만드는 것이 인류의 존속에 직결된다고 본다.
일찍이 위대한 사상이 나왔던 이 땅에서 그런 꿈을 꾸어보자는 것이다.
조선을 패망으로 이끈 ‘리(理)’에 대한 허상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 출발점으로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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