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ang Lee
3 August 2018
철학의 식민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21세기를 맞이하며 우리는 지난 백년을 철학적으로 반성해 본다.
우리는 어떤 삶의 문제에 부대꼈으며 그것을 풀려고 어떻게 버둥거렸는가? 문제해결을 위해 어떤 이론적인 대응책을 마련했는가? 그저 짐승처럼 생존만을 위해 임기응변식으로 반응하지 않았다면 우리들 나름의 철학적 대응이 있었지 않았겠는가?
어디서 우리는 그러한 우리들 나름의 <철학함>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가? 우리들 삶의 현장에서 부대낀 우리들의 아픔이 반영된 우리들의 시대정신은 무엇이었으며 우리는 그것을 철학적으로 어떤 개념으로 잡았는가? 우리가 주체적으로 우리의 삶의 세계를 반성하며 철학적으로 붙잡은 우리들의 “철학이야기”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우리말로 된 <철학사전>과 우리들의 철학적인 삶의 이야기를 기술한 <철학사>를 갖고 있는가?
우리는 지난 50년 수많은 철학사조들이 밀려왔다 밀려나간 것을 정신으로뿐 아니라 그야말로 몸으로 확인하며 살았다. 관념주의,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유물론적 역사주의, 실존주의, 개인주의, 실용주의, (논리)실증주의, 과학만능주의, 모택동주의, 주체주의(철학), 문화상대주의, 구조주의, 해체주의, 탈근대주의, 공동체주의 등등 대충 훑어만 보아도 얼마나 많은 사조들이 우리들의 삶의 현장을 뜨겁게 달구었는지 알 수 있다.
문제가 있는 곳에 철학이 있고, 큰 문제가 많은 곳에 위대한 사상가 또는 철학자가 태어난다고 하지 않는가? 지난 50년 우리는 그야말로 전 세계의 문제를 다 떠맡다시피 하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손꼽을 만한 위대한 세계적인 사상가나 철학자가 없다니 그것은 웬일인가?
지금이라도 우리는 왜 그런지 철학적 능력이라는 비판적 반성능력을 동원해서 알아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결여되었던 것은 <주체적인 사유자세>였다. 한마디로 철학함이 없이 유행되는 철학이론들만을 수입해서 앵무새처럼 되뇌이며 팔았을 뿐이다. 선진국민인 척 하기 위해, 세계인의 흉내를 내기 위해 선진국에서 유행하는 이론들을 떼어다가 마치 우리들의 문제이며 우리들의 철학인 냥 포장해서 팔았을 뿐이다.
철학에서도 식민지성을 면치 못하고 선진국의 대리전을 치렀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철학이론으로 무리하게 우리들의 생활세계를 해석하려고 억지 시도를 감행했던 것이다.
마치 그 수많은 교육정책들이 우리들의 현실적인 여건은 전혀 고려에 넣지 않은 채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좋은 정책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계속적으로 적용이 시도되었고 아직도 시도되고 있듯이 말이다. 이렇게 해서 이 땅에서의 앎과 삶, 학문과 일상, 철학과 생활의 괴리는 더욱 커져 갔다. 삶에 철학이 필요하기는 한데 그렇게 삶에 필요한 철학을 정작 전문철학인들은 제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평범한 일반 대중들은 그러한 필요를 거리의 <철학관>에서 충족시키고 있다.
거리에 철학관은 넘쳐나고 있지만 정작 <철학>은 없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20세기 철학의 최대 화두는 <언어>와 <시간>이었다. 이 두 개념을 우리의 시대정신을 파악한 철학의 근본개념으로 알아들을 경우 거기에서 던져지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이성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이성은 <언어>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언어는 인간처럼 삶과 죽음의 역사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시간> 속에서 전개되는 유한한 삶의 흔적이다. 시간 밖의 인간을 상상할 수 없듯이 절대와 영원 속의 언어를 생각할 수 없다. 진리는 시대의 옷인 언어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을 뿐이다. 절대 진리가 있다고 해도 유한한 시간적 존재인 인간은 그것을 자신의 상대적 세계 속에서 깨닫고 자신의 상대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보편 이성의 차원에서 절대 진리를 선포한다는 유럽중심의 제1세계 철학은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
20세기 철학의 최대 화두는 <언어>와 <시간>이었다. 이 두 개념을 우리의 시대정신을 파악한 철학의 근본개념으로 알아들을 경우 거기에서 던져지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이성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이성은 <언어>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언어는 인간처럼 삶과 죽음의 역사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시간> 속에서 전개되는 유한한 삶의 흔적이다. 시간 밖의 인간을 상상할 수 없듯이 절대와 영원 속의 언어를 생각할 수 없다. 진리는 시대의 옷인 언어를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을 뿐이다. 절대 진리가 있다고 해도 유한한 시간적 존재인 인간은 그것을 자신의 상대적 세계 속에서 깨닫고 자신의 상대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보편 이성의 차원에서 절대 진리를 선포한다는 유럽중심의 제1세계 철학은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
<탈근대>의 선포를 알리고 있는 새천년 인류의 과제는 유럽중심, 인간중심, (유럽적) 이성중심의 환원적 세계[자연/존재/진리] 해석이 가진 획일성과 일방성으로부터 해방되어, 지금까지 지구상의 모든 민족이 시대와 역사를 통해 보존해 온 인류의 문화적 유산을 최대한 살려 그 다양함의 꽃이 만발하도록 하는 일이다. 탈근대의 외침은 이것이다. “차이를 살리자. 차이 속에 차이를 즐기며 차이와 더불어!” 이제 우리 인류는 동일성의 철학에서 차이의 철학에로, 획일성의 시대에서 다양성의 시대에로 넘어가야 한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차이를 최대한 살려 천차만별의 꽃들이 만발하도록 해야 하는 <문화의 세기>에 한국인인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우리말로 주체적으로 사유하여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의 밭을 일구어내 우리만의 고유한 아름다운 꽃을 피워 세계에 내놓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될 사업은 우리말로 된 철학사전을 만들어 출간하는 일이다. 자기만의 독특한 철학줄기를 이루고 있는 독일어권, 프랑스어권, 영미어권 등의 민족문화권을 보면 그들이 제일 먼저 최대한의 노력을 들여 실행한 사업은 자신들의 언어로 된 철학 사전, 철학개념 사전, 철학 개념사 사전, 철학 대백과 사전 등을 편찬해낸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즐겨 선진국임을 표방하면서도 철학사전 편찬에 관한 한 아무런 노력도 들이지 않았다. 우리말로 주체적으로 사유하여 정리한 우리의 <철학함>이 담긴 우리말 철학사전이 출간된 적이 없다.
지금 잘 팔리고 있는 가장 큰 철학대사전이라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거기에서 부끄럽지만 바로 우리 철학계의 현주소를 읽는다. 그 책은 (서양철학에 관한 항목들은 모두) 동독 철학자들이 발간한 <마르크스 레닌 철학사전>과 <철학자 인명사전>을 번역하여 출간한 것이다. 독일이 통일된 지금 이 두 사전은 정작 독일에서는 일반시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박물관이나 도서관에나 가야 볼 수 있다. 우리는 독일에서는 폐기처분되어 아무도 보지 않는 철학사전을 우리들의 철학도들을 위해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식민지 상황이다.
2001년 5월 <우리말 철학사전을 펴내며>에 쓴 발간사다. 18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한국 학문계의 식민지 상황은 심각하다. 문제는 당사자들이 심각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말 철학사전의 필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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