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 나와라, 뚝딱!
김 조 년
(한남대 명예교수, 《씨의 소리》 발행인)
살다가 보면 가끔 우리는 아주 기쁘고 고마운 혜택을 받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김음강 님의 자서전 『신명 나와라 뚝딱』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와 같은 매우 고마운 일이요 혜택 중 하나였습니다. 나는 그 책을 낸 김음강 님을 축하할 수는 없습니다. 그 대신 그것을 읽는 사람들을 축하하고 싶은 맘은 있습니다. 그가 그런 책을 내는 것은 비난을 받을 일도, 칭송을 들을 일도 아닌 듯합니다. 그렇게 되면 마치 그의 그런 삶 그 자체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치열하게 산 사람의 발걸음을 따라서 나가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읽는 이에게는 축복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나 심한 장애로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는 아주 쉽습니다. 그분들의 삶이 간단하지가 않다는 것을 짐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아주 많은 여러 곳에서 그러한 장애인들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사람이 아닌 것처럼 취급되는 것이 얼마나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나 경우도 참으로 많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심지어는 바로 그런 상태에 있는 이들을 위한다고 나선 기관이나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몸에 밴 멸시와 푸대접의 몸짓과 맘 자세를 보이는 경우도 참 많이 보고 듣습니다. 저는 아주 자주 그냥 모른 척, 못 본 척하고 눈을 감거나 지나쳐버릴 때가 참 많았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한 개인이 그런 속성을 가져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전통과 문화가 그래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희망이라고 하지만, 어디까지가 희망다운 인간인지 궁금할 때가 참 많습니다. 사람이 악마 같다고 하지만, 얼마만큼 악마다운 것인가를 가늠할 수 없을 때도 참 많습니다. 그러면서 또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얼마만큼 해야 그런 소리를 들을지를 모를 만큼 끝없이 착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명 나와라 뚝딱』을 읽다보면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다 나타납니다. 도움의 탈을 쓰고, 동업의 껍데기를 쓰고, 친구요 우정이라는 옷을 입고, 동정과 은혜의 웃음을 띠면서 갈취와 착취와 멸시의 비수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음을 봅니다. 아름다운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고 하면서 ‘회칠한 무덤’처럼 온갖 위장전술로 가득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구역질이 나오게 합니다. 그것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아주 당연한 듯이 관행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문화의 풍조는 더욱 갑갑합니다. 그런데 여기 그런 토악질 속에서 들려오는 아리아와 같은 아름답고 웅장한 소리가 있습니다. 그 소리 하나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김음강 님 그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해 보았을까? 어떻게 그렇게 많은 곳을 돌아다녀 보았을까? 어떻게 그렇게 많이 분노하고 좌절하고 실망하고 배신을 당할 수가 있을까? 그런데도 어떻게 그렇게 자주 감동하고 희망을 품고 살 수가 있을까? 뜻 모르는 좌절의 맨 밑바닥에서 용수철같이 솟아나는 힘을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 그런 재주가 어디에서 나왔으며, 그런 힘과 용기와 도전하고자 하는 그 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가 하는 일마다 그렇게 다 잘된 것은 무슨 조화일까? 그러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많이 불행스런 일과 악마 같은 사람들이 그에게 그렇게 많이 다가왔을까? 그것도 한 번도 많은 것인데 마치 바닷가의 파도처럼 그렇게 연속하여 찾아오는 손님, 불행스럽게 보이는 것들은 왜 그를 비껴가지 않는 것일까?
그런데 저에게는 아주 놀라운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삶이 감동스러운 것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리막길을 내달리는 브레이크 터진 자동차가 무엇에 걸려 급하게 멈춰 서듯이 그는 마감의 순간에 어떤 힘에 의하여 이상하리만큼 딱 멈춰 섭니다. 죽으려는 순간에 한 어떤 까막거리는 기억이 마치 거대한 바윗덩이처럼 그 앞에 나타나 그는 그 자리에 우뚝 섭니다.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게 하는 아주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여 다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으로 무서운 폭력을 폭발하려는 찰나에 온 몸에 힘이 쫙 빠져버리듯 한 느낌의 무기력증에 빠집니다. 이 때 그에게 든 한 맘과 작고 낮은 소리, ‘이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그 한 소리가 그를 구원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멈춤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서 파멸의 길로 접어들거나 깊은 수렁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도 그럴 위기에 맞닥뜨릴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결정적 순간에 아주 잘 그것을 피해버립니다. 그는 제 성질대로 살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삶이 막가파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아주 어려운 상태지만 그냥 가만히 앉아서 편하게 살아가지 않고 어렵게 자신을 움직여 일을 해결합니다. 구차한 삶이 아니라 아주 당당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는 언제나 스스로 묻고 다짐하면서 사는 듯이 보입니다.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할 것인가? 힘든 가시밭길일망정 큰 꿈을 이룰 것인가?” 그가 꾼 큰 꿈이란 무엇이었을까? 모든 생명은 스스로 자신을 이끈다는 철학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듯이 보입니다. 그는 어느 날 자기보다 더 심한 중증장애인 아내에게 “독립해!”라고 말합니다. 깜짝 놀란 아내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습니다. 그가 아니면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아내에게 너무 냉정하고 혹시나 자기를 버리려는 생각에서 한 말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하는 말이겠지요. 그 때 김음강 님은 ‘만일 내가 사라지면 당신 혼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일은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신이 어떻게 되어 아내를 도울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어려운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거나 멸시를 받지 않고 혼자서 살 수 있는 길을 걸어 나가기 위한 훈련을 하라는 뜻이었겠지요. 그것은 바로 ‘생명은 스스로 하는 것’이란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 일 뒤 그의 아내 역시 스스로 사는 길을 찾으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남의 도움을 거저 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굉장히 많이 그리고 자주 다른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습니다. 장애인이라는 것 때문에 누명을 쓰고 감옥생활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항변하여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단순히 ‘장애인이란 것’ 때문이었습니다. 친구에게, 동창에게, 친척에게, 이웃에게 무수히 많이 당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결코 인간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 냄새가 풍길 때 외로움과 고독이 찾아와 마음을 나눈 사람이 필요하여” 채팅을 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보통 장애라고 하는 것을 장애로 느끼거나 보지 않은 듯이 보입니다. 장애를 하나의 생명현상으로 봅니다. 그래서 그냥 그 상태에서 장애 그 자체를 장점이요 강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찾습니다. “길은 항상 있다. 빨리 찾느냐 늦게 찾느냐의 문제이다. 설령 길을 찾지 못하더라도 많은 경험을 얻는다.” 이런 자세는 매우 깊고 높은 절대긍정의 삶의 자세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수모를 당하면서 비굴하게 사느니보다는 “한 번 창피는 영원한 승리를 안긴다”는 것을 생활로 증명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돈키호테와 비교하면서 “세상에는 도전해 볼만한 멋진 꿈이 널려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다시 또 어려운 길을 스스로 선택하여 나갑니다. 바로 ‘국제 빈민장애인 구호단체’를 결성하여 여기저기를 뛰어다닙니다. 그를 보면 흔히 사람들이 판단하여 말하는 강점과 약점, 장점과 단점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사회적 편견에서 오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엄밀히 따져서 생명에는 강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장단이 구별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우리는 김음강 님의 삶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를 보면 착하게 타고난 천성을 열악한 환경이 침범하여 악마의 노예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탁월한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것은 커다란 은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와 같은 삶을 산 그의 일생을 글로 읽을 수 있는 것 역시 우리에게 하나의 큰 은총입니다. 그와 읽는 우리에게 그 은총의 세계가 계속되기를 빕니다.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이란 편견이 우리 인간사회에서, 생명의 세계에서 사라지기를 빕니다. 개개인들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투쟁하여야 하는 것이겠지만, 우리 사회문화가 그런 방향으로 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김음강 님 고맙습니다.(2013.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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