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서평생활] 국가는 우리의 말을 ‘맞다 틀리다’ 할 권한이 없다
기자명 장슬기 기자
입력 2021.10.31
표준어와 바른말의 압박에서 해방되고 싶다면
…말끝이 당신이다/ 김진해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지난 7월21일, ‘국어정책과’란 곳에서 메일 한통이 왔다. 제목은 “쉬운 우리말 사용에 힘을 보태 주십시오.” 어디서 보낸 보도자료인가 싶어서 메일을 열었다. “기자님 안녕하세요?”라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주저리주저리 몇문장을 지나서 본론이 나왔다. “아래에 표시한 낱말은 국민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어 대신 쓸 말을 제안해드리니 다음에는 이 말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시길 바랍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내가 그 전날 쓴 정치해설 기사가 있는데 그 기사 제목에 “프레임 해체하나”란 표현을 가리켰다. ‘프레임’이라는 말을 ‘틀’이나 ‘구도’로 바꿔써 달라는 제안이었다. 과연 정치기사에 쓰는 ‘프레임’이란 말을 국민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까?
“윤석열 검찰 관련 고발사주 사건에 대해 야당은 ‘제보사주’ 프레임으로 전환하려 한다”, “유승민 후보가 홍준표 후보에게 진정한 배신자라며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려 했다”, “선거는 여야의 프레임 싸움이기도 하다” 등의 표현에서 ‘틀’이나 ‘구도’로 쓰는 게 더 혼란스럽지 않을까?
문체부 국어정책과는 메일로 “정부 공무원들도 공공언어 개선에 나서고 있고 더 마땅한 말이 있다 싶으면 제안해달라”며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문체부 또는 국립국어원으로 연락달라”고 했다. ‘이런 기계적인 국어정책이 있구나’하는 생각을 잠시 한 뒤 그냥 잊고 지냈다. 무슨 차별이나 혐오표현을 쓴 것도 아닌데 국민들이 잘 쓰지도 않고, 뉘앙스도 다른 표현으로 바꿔달라고 친히 메일까지 보내셨을까,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프레임’은 ‘프레임’이다. ‘패러다임’이나 ‘관점’이라는 말과도 다른 ‘프레임’만의 뉘앙스가 있다. ‘틀’은 ‘틀’에 박힌 사고를 하는 정치인을 비판할 때 쓰는 게 어울리고, ‘구도’는 여야의 1:1 ‘구도’가 팽팽해졌을 때 써야 제맛이다. ‘프레임 전쟁’을 ‘틀 전쟁’이나 ‘구도 전쟁’이라고 쓰면 과연 한눈에 들어올까. 독자들에게 더 욕먹을 것 같다.
▲ 말끝이 당신이다/ 김진해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최근 ‘말끝이 당신이다(김진해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를 읽고 국어정책과의 메일이 떠올랐다. 당시엔 ‘문체부가 이런 일도 하는구나’ 정도로 가볍게 넘겼지만 이는 국가가 언론을 향해 써야할 말과 쓰지 말아야 할 말을 지정하고 간섭한 사건이다. 국어정책과 공무원은 부드럽게 제안했지만 생각해보면 참 설득력도, 실효성도 없는 정책이다. 그리고 정부가 ‘공론장의 1인자’가 되려는 오만한 시도다.
저자(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는 국가가 인위적으로 표준어·맞춤법을 정해서 쭈꾸미가 아니라 주꾸미, 꼼장어가 아닌 곰장어, 오돌뼈 대신 오도독뼈를 쓰도록 하는 황당한 정책을 비판한다. “민주 사회에서 언어순화는 불가능하다. 말은 스스로 굴러가게 놔두는 게 상책이다.”(111쪽)라고 지적했다. 그렇다. 주꾸미는 국가에서만 사용할 뿐 전국의 ‘쭈꾸미’집에선 주꾸미 대신 ‘쭈꾸미’를 팔고 있다. ‘자장면’만 표준어일 때도 사람들은 모두 ‘짜장면’을 시켰다.
“국가는 개인의 말에 대해 ‘맞고 틀림’을 판정할 권한이 없다. 우리의 비극은 이 권한을 아직도 국가가 틀어쥐고 있다는 점에 있다”(113쪽)라며 “한국적 비극은 국가가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이 사전 시장을 시쳇말로 다 ‘먹어버렸다’는 사실”(87쪽)이라고 한탄한다. 일본만 해도 여러 사전이 있고, 사전마다 다양하게 단어를 정의한다. 한국에서 ‘말’은 자유경쟁시장이 아니라 국가 중심의 독점시장인 셈이다.
이 책은 저자가 쓴 말에 대한 여러 칼럼을 묶어 펴냈다. 말로 표현되는 권력관계에 대한 다른 이야기도 등장한다.
저자는 출석을 부를 때 학생들에게 반말로 대답하라고 강요한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수업에서 반말로 대답하는 걸 갈고 닦아 딴 강의에서 엉겁결에 ‘왜’라고 해 낭패를 당했다는 미담을 듣는 것입니다. 낄낄낄.”(179쪽) 이유는 존댓말과 반말이 “누구도 어길 수 없는 명령의 체계(말의 질서) 속에 던져져 있음을 무겁게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은 내용만 전달하지 않는다. 선생님에게 반말을 하지 못한다는 건 상하관계여서다. 말에는 관계가 중요하다. 특히 한국말은 더 그렇다. 이에 저자는 학생들에게 반말을 시켜보면서 말로 확인되는 체계와 질서를 상대화하고 의심해보는 훈련을 시킨 것이다. “말은 피할 수 없으니 더욱 의심해야 하는 질서”(180쪽)이니 말의 위계를 벗어나보는 것은 더 큰 상상력을 불러올지 모른다.
▲ 2019년 4월 SBS 스페셜 방송 갈무리
2019년 4월 SBS 스페셜에는 이윤승 선생님에게 반말로 대화하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솔직한 소통을 위해 학생들에게 반말을 권유했고, 처음엔 어색해하던 학생들은 불편한 소재나 속 얘기 등을 친구처럼 터놓았다. 한 학생은 SBS에 “다른 선생님한테는 불만사항을 편히 말 못하는데 ‘이윤승’한테는 편하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사와 고등학생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말’이 달라지면서 실질적인 관계가 변했다. 생각보다 말 그 자체의 힘이 크다는 증거다.
“‘짝퉁 시인’ 되기”라는 소제목의 글(21~22쪽)은 한국말과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명사와 동사를 다섯 개씩 써본다. 바람, 하늘, 망치, 구두, 숟가락. 두드리다, 먹다, 자르다, 깎다, 튀다. 이들을 마구 섞어서 문장을 만들어보는 거다. 그러다 보면 근사한 문장이 나타날 때를 포착한다. “저기 바람이 하늘을 두드리는 게 보이나요?” 꽤나 시적인 표현이 만들어졌다.
이처럼 책에는 말에 대해 꽤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져있다. 다만 이문재 시인은 ‘말 같지 않은 소리’를 절대 하지 않는 분, 사투리는 없애고 표준어를 써야 한다고 외치는 분, 언어를 순화 대상이라고 여기는 분, 청년들이 주고받는 신조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 등에겐 굳이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저자는 이후에도 칼럼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10월말 칼럼에선 “까놓고 말해 당신은 ‘단계적 일상 회복’과 ‘위드 코로나’ 중 어떤 말이 더 친숙한가”라고 묻는다. 모든 말은 현지화한다. 일각에서 ‘위드코로나’와 같은 이해하기 쉽지만 영어로 된 표현을 ‘콩글리시’라고 지적하지만 “‘남’이 뭐라 하든 우리는 우리식 영어를 쓴다”고 반박했다. 비표준어, 콩글리시 등으로 막연히 느꼈던 압박감에서 해방시켜주는 글이다.
지난 7월21일, ‘국어정책과’란 곳에서 메일 한통이 왔다. 제목은 “쉬운 우리말 사용에 힘을 보태 주십시오.” 어디서 보낸 보도자료인가 싶어서 메일을 열었다. “기자님 안녕하세요?”라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주저리주저리 몇문장을 지나서 본론이 나왔다. “아래에 표시한 낱말은 국민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어 대신 쓸 말을 제안해드리니 다음에는 이 말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주시길 바랍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에서 보낸 메일이었다. 내가 그 전날 쓴 정치해설 기사가 있는데 그 기사 제목에 “프레임 해체하나”란 표현을 가리켰다. ‘프레임’이라는 말을 ‘틀’이나 ‘구도’로 바꿔써 달라는 제안이었다. 과연 정치기사에 쓰는 ‘프레임’이란 말을 국민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까?
“윤석열 검찰 관련 고발사주 사건에 대해 야당은 ‘제보사주’ 프레임으로 전환하려 한다”, “유승민 후보가 홍준표 후보에게 진정한 배신자라며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려 했다”, “선거는 여야의 프레임 싸움이기도 하다” 등의 표현에서 ‘틀’이나 ‘구도’로 쓰는 게 더 혼란스럽지 않을까?
문체부 국어정책과는 메일로 “정부 공무원들도 공공언어 개선에 나서고 있고 더 마땅한 말이 있다 싶으면 제안해달라”며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문체부 또는 국립국어원으로 연락달라”고 했다. ‘이런 기계적인 국어정책이 있구나’하는 생각을 잠시 한 뒤 그냥 잊고 지냈다. 무슨 차별이나 혐오표현을 쓴 것도 아닌데 국민들이 잘 쓰지도 않고, 뉘앙스도 다른 표현으로 바꿔달라고 친히 메일까지 보내셨을까,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프레임’은 ‘프레임’이다. ‘패러다임’이나 ‘관점’이라는 말과도 다른 ‘프레임’만의 뉘앙스가 있다. ‘틀’은 ‘틀’에 박힌 사고를 하는 정치인을 비판할 때 쓰는 게 어울리고, ‘구도’는 여야의 1:1 ‘구도’가 팽팽해졌을 때 써야 제맛이다. ‘프레임 전쟁’을 ‘틀 전쟁’이나 ‘구도 전쟁’이라고 쓰면 과연 한눈에 들어올까. 독자들에게 더 욕먹을 것 같다.
▲ 말끝이 당신이다/ 김진해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최근 ‘말끝이 당신이다(김진해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를 읽고 국어정책과의 메일이 떠올랐다. 당시엔 ‘문체부가 이런 일도 하는구나’ 정도로 가볍게 넘겼지만 이는 국가가 언론을 향해 써야할 말과 쓰지 말아야 할 말을 지정하고 간섭한 사건이다. 국어정책과 공무원은 부드럽게 제안했지만 생각해보면 참 설득력도, 실효성도 없는 정책이다. 그리고 정부가 ‘공론장의 1인자’가 되려는 오만한 시도다.
저자(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는 국가가 인위적으로 표준어·맞춤법을 정해서 쭈꾸미가 아니라 주꾸미, 꼼장어가 아닌 곰장어, 오돌뼈 대신 오도독뼈를 쓰도록 하는 황당한 정책을 비판한다. “민주 사회에서 언어순화는 불가능하다. 말은 스스로 굴러가게 놔두는 게 상책이다.”(111쪽)라고 지적했다. 그렇다. 주꾸미는 국가에서만 사용할 뿐 전국의 ‘쭈꾸미’집에선 주꾸미 대신 ‘쭈꾸미’를 팔고 있다. ‘자장면’만 표준어일 때도 사람들은 모두 ‘짜장면’을 시켰다.
“국가는 개인의 말에 대해 ‘맞고 틀림’을 판정할 권한이 없다. 우리의 비극은 이 권한을 아직도 국가가 틀어쥐고 있다는 점에 있다”(113쪽)라며 “한국적 비극은 국가가 만든 ‘표준국어대사전’이 사전 시장을 시쳇말로 다 ‘먹어버렸다’는 사실”(87쪽)이라고 한탄한다. 일본만 해도 여러 사전이 있고, 사전마다 다양하게 단어를 정의한다. 한국에서 ‘말’은 자유경쟁시장이 아니라 국가 중심의 독점시장인 셈이다.
이 책은 저자가 쓴 말에 대한 여러 칼럼을 묶어 펴냈다. 말로 표현되는 권력관계에 대한 다른 이야기도 등장한다.
저자는 출석을 부를 때 학생들에게 반말로 대답하라고 강요한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수업에서 반말로 대답하는 걸 갈고 닦아 딴 강의에서 엉겁결에 ‘왜’라고 해 낭패를 당했다는 미담을 듣는 것입니다. 낄낄낄.”(179쪽) 이유는 존댓말과 반말이 “누구도 어길 수 없는 명령의 체계(말의 질서) 속에 던져져 있음을 무겁게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말은 내용만 전달하지 않는다. 선생님에게 반말을 하지 못한다는 건 상하관계여서다. 말에는 관계가 중요하다. 특히 한국말은 더 그렇다. 이에 저자는 학생들에게 반말을 시켜보면서 말로 확인되는 체계와 질서를 상대화하고 의심해보는 훈련을 시킨 것이다. “말은 피할 수 없으니 더욱 의심해야 하는 질서”(180쪽)이니 말의 위계를 벗어나보는 것은 더 큰 상상력을 불러올지 모른다.
▲ 2019년 4월 SBS 스페셜 방송 갈무리
2019년 4월 SBS 스페셜에는 이윤승 선생님에게 반말로 대화하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솔직한 소통을 위해 학생들에게 반말을 권유했고, 처음엔 어색해하던 학생들은 불편한 소재나 속 얘기 등을 친구처럼 터놓았다. 한 학생은 SBS에 “다른 선생님한테는 불만사항을 편히 말 못하는데 ‘이윤승’한테는 편하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사와 고등학생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말’이 달라지면서 실질적인 관계가 변했다. 생각보다 말 그 자체의 힘이 크다는 증거다.
“‘짝퉁 시인’ 되기”라는 소제목의 글(21~22쪽)은 한국말과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명사와 동사를 다섯 개씩 써본다. 바람, 하늘, 망치, 구두, 숟가락. 두드리다, 먹다, 자르다, 깎다, 튀다. 이들을 마구 섞어서 문장을 만들어보는 거다. 그러다 보면 근사한 문장이 나타날 때를 포착한다. “저기 바람이 하늘을 두드리는 게 보이나요?” 꽤나 시적인 표현이 만들어졌다.
이처럼 책에는 말에 대해 꽤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져있다. 다만 이문재 시인은 ‘말 같지 않은 소리’를 절대 하지 않는 분, 사투리는 없애고 표준어를 써야 한다고 외치는 분, 언어를 순화 대상이라고 여기는 분, 청년들이 주고받는 신조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 등에겐 굳이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저자는 이후에도 칼럼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10월말 칼럼에선 “까놓고 말해 당신은 ‘단계적 일상 회복’과 ‘위드 코로나’ 중 어떤 말이 더 친숙한가”라고 묻는다. 모든 말은 현지화한다. 일각에서 ‘위드코로나’와 같은 이해하기 쉽지만 영어로 된 표현을 ‘콩글리시’라고 지적하지만 “‘남’이 뭐라 하든 우리는 우리식 영어를 쓴다”고 반박했다. 비표준어, 콩글리시 등으로 막연히 느꼈던 압박감에서 해방시켜주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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