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규
f29 cDecesmobreer 79200152 ·
나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비판적이지만, 민족이나 국가가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는 실체가 없었을 수도 있으나, 오랜 역사적인 과정 속에서 실체로 형성되었고 현실적인 '힘'으로 작용했으므로. 계급이나 소수자 문제 등 민족이나 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대립 또는 민족이나 국가 차원을 넘어선 인권의 문제를 무시한 채 민족이나 국가로 '하나'가 되자는 식의 전체주의적 논리에 비판적일 뿐.
헌재의 기억할 만한 판결 중 하나였던 2011년 판결로 촉발된 한일간 위안부 배상청구권 문제가 어제 한일간에 외교적으로 최종타결되었다.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외교문서에는 극히 드문 표현이 사용되었다. 결국 이 문제가 인권에 대한 반인도적 국가범죄의 문제(나는 위안부 문제는 민족 문제 이전에 인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가 아니라, 얼마를 배상(인지 아닌지도 애매하지만)받고 끝낼 문제인가라는 차원으로 격하되어 버린 것이다.
광주민중항쟁도, 민주화운동 보상도 그랬다. 가까이는 세월호도 그랬고.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들에게 돈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에 대한 인정과 진심어린 사과이다. 그게 전제되지 않는 한 돈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그게 내가 민주화운동 보상 대상자였지만, 보상을 받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의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보상해주는 것보다, 지금 이 땅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탄압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고 제대로 된 사과이므로. 자신들이 포함된 과거의 민주화운동에는 보상하면서 현재의 노동자민중 생존권은 탄압하는 정부의 보상을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위안부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가 돈 10억엔 안 내놓아도 좋다. 평화헌법 개정시도나 재군국화 시도부터 중단하라. 그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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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제국의 위안부론'에 대한 반론
2015-12-27 18:05:21 ㅣ 2015-12-27 18:05:21
27일 산케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군위안부 문제의 타결 조건으로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철거와 함께 한일청구권협정(1965년)이 유효하다는 점을 문서로 확약할 것을 한국에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가 2가지 사항을 요구하는 이유는 첫째,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재산과 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둘째, 군위안부에 대해 사과와 지원을 약속하더라도 이것이 국가책임과 국가배상을 이행하는 차원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같은 일본 정부의 요구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포함하여 한국 정부와 시민은 어떻게 응답하는 것이 좋을까? 시민들이 이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다소 어렵기 때문에 참고서가 필요하다. 참고서로 박유하 교수가 쓴 <제국의 위안부>가 제격이다. 이 책은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서 식민지 지배 청산 등 쟁점사항을 쉽게 보여준다. 박 교수는 책에서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에는 성노동을 강요당한 어린 소녀의 이미지만 있고, 일본 제국을 위해서 전쟁에 승리하고자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에 있는 ‘제국의 위안부(매춘부)’의 모습은 없다고 비판한다.
한국인으로서 박 교수의 시각은 종전의 시각과 다른 학문적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 역시 학문의 영역이기에 진지한 반론이 필요하다. 첫째, 박 교수는 <제국주의 피해 성노예>가 아니라 <제국의 위안부>관점에 있으면서도 처음부터 ‘제국’과 ‘제국주의’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았고 자신은 둘 중 후자에 서있다고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참고로 ‘제국’(empire)은 긍정적인 국가 이미지다. 제국주의(imperialism)는 그 반대다. ‘제국’은 쉽게 말해서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보편적인 가치가 지켜지는 합법적인 황제의 나라다. ‘제국주의’는 반대로 불법적인 황제의 나라다.
둘째, 박 교수는 책속에서 ‘일본제국’이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일본 제국주의’란 표현을 쓰지 않고 있어,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식민지배 청산의 해법도 ‘제국의 시각’으로 소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즉 위안부 피해 문제를 ‘제국주의 일본정부의 구조적이며 미시적인 악행 그 자체’에서 다루지 않고, 예외적인 일탈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 이 문제는 결국 1910년 을사늑약을 제국 일본의 관점에서 강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국제법상 하자가 없는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조치로 보느냐 아니면 제국주의 일본의 관점에서 강제침탈에 의한 병탄으로 국제법상 불법적인 무효조치로 볼 것인가 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다. 전자라면 ‘제국일본’이 될 것이고, 후자라고 하면 ‘제국주의 일본’이 된다.
셋째, 박 교수는 1910년 사건을 전자의 시각에서 국제법상 합법적인 병합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 역시 제국주의의 불법침탈이 아니며 따라서 국가의 사죄와 배상이 불필요한 예외적인 도의적 문제로 보고 있다. 즉 1910년 식민지 지배가 합법적 조치였기 때문에, 국가와 정부차원이 아닌 정치인 개인 혹은 범국민적 차원에서 도의적 책임 차원에서 위로와 사과와 보상으로 처리하면 되는 문제로 본다. 하지만 후자의 관점이라면, 당연 국가의 불법성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며, 법적차원에서 정부의 사죄와 국가배상이 필요한 것은 상식적이다.
넷째, 박 교수는 위안부 피해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본 정부의 구조적 강제성과 함께 미시적 차원에서 강제 동원된 위안부의 존재 가능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박 교수는 정작 국가의 강제동원의 범위를 철학자 ‘푸코’가 말한 명제대로, ‘훈육에 따른 자발적 수용과 선택’(궁핍한 처지에서 강제매춘을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길들여진 몸)까지 폭넓게 확대하지 않고, 사기·약취유인·강간의 경우로만 매우 제한적으로, 예외적 사례로만 다루려는 모순된 태도를 취하는 문제점이 있다.
다섯째, 박 교수는 제국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가 저지르는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일은 없으며, 대부분의 경우는 예외적인 것으로 식민지 조선의 업자나 포주들이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박 교수는 자신의 시각과 반대되는 위안부 피해할머니와 ‘정대협’을 비판하지만 박교수가 정말 해야 할 일은 동지적 관계를 맺은 더 많은 사례수를 증명해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박 교수가 그들을 비판하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돕는 정대협은 박 교수의 시각대로 제국 일본을 위한 병사의 위안과 애국을 위한 동지로서의 위안부가 아닌 식민지 민중을 압살한 제국주의 일본 정부를 위해 강제 동원되어 성노예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즉, 피해 할머니와 정대협은 일본이 합법적인 ‘제국의 동원’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악행이라는 것을 반증하고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 할머니들은 제국주의 일본 정부에 의해 인권이 부서진 상처받고 벌거벗은 ‘호모 사케르’인 성노예자임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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