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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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어제 남편과 함께 추적추적 비오는 명동거리를 걸어 영화 <서울의봄>을 봤다.
12.12가 그저 몇명 죽은 윗대가리들 싸움으로만 생각했는데 간단치가 않았다.
반란군이 전방의 부대를 서울로 진격시키고 서울주변의 수경사, 해병대, 헌병부대, 특전사 공수부대가 명령권자에 따라 나뉘어 서울 육본과 수경사에 결집되어 일촉즉발의 내전상황으로까지 몰고간 대단한 사건이었다.
박정희정권시절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군부내에 이미 두개의 뚜렷한 흐름이 자리잡고 있었다.
전두환이 이끄는 <하나회>조직과 거기에 끼지 않은 일반 군인들. 육사출신으로 박정희의 비호아래 친위부대형식으로 창설된 사조직 인맥과 정상적 지휘계통에 따른 인맥이 그것이다.
전자는 정치권력 지향적이었고 후자는 군인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 전자는 끊임없이 자신들의 세를 늘리려고 조직적으로 노력해왔고 후자는 이와 무관했다.
아무리 소수라해도 조직적이고 비타협적이고 필사적이고 단호한 세력이 있다면 정당한 다수의 힘을 뒤엎어버릴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정변의 현실적 진행과정이 12일부터 13일로 넘어가는 하룻밤을 무대로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전자와 후자를 막론하고 이미 군부는 박정희정권시절에 모두 경상도지역출신 인맥으로 얼키고설켜 있었다는 것. 반란군도 진압군도 단 한사람(김진기헌병감)만 빼고 모두 경상도싸나이들만 등장해서 사태의 현장에는 흥분한 경상도 싸나이들이 득시글득시글한 경상도 사투리판이었을거라는 거.
그런데 전두환(황정민)과 노태우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데 진압군인 장태완사령관(정우성)은 경북 칠곡출신임에도 매꼬롬한 표준어를 쓴다는 게 좀 거슬렸다.
거기에 전두환의 야수같은 권력욕과 리더쉽을 표현한 황정민의 발군의 연기에 비해 정우성의 배역싱크로율은 너무나 표나게 뒤떨어지게 보이더라.
장태완장군이야말로 참 열혈 경상도싸나이로 생각하는데 영화에서는 갈 데없는 서울샌님으로 표현해놨다.
그 와중에 "갑종갑종" 소리가 들려 무슨말인가 찾아봤더니 6.25전쟁 당시에 부족한 지휘관을 보충할 목적으로 육군이 단기 장교양성시스템을 시행했는데 이것이 갑종장교라는 것. 이후 갑종장교는 엘리트의식이 충만하고 학맥으로 단결한 육사출신들에게 설움을 많이 받았다고. 이 영화에서도 하나회에서 소외당하는 갑종의 이야기가 자주 거론된다.
생각해보니 12.12의 주역들은 모두 돌아가신 우리아빠와 비슷한 연배의 군인들이었다.
6.25때 전라도 출신에 '갑종소위'로 군생활을 시작하여 5.16 직후에 예편한 우리 아빠는 12.12사태를 보고 어떤생각을 하셨을까. 살아계신다면 사위랑 딸이랑 소주 한잔 사드리면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밤이었다. 비는 오는데 영화를 보고 난 후 집으로 오는 길에 남편과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장태완 수방사사령관의 마지막 말은 구한말 마지막선비로서 경술년에 죽음을 택한 매천 황현의 유언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가히 죽어 의리를 지켜야할 까닭은 없으나 국가에서 선비를 키워온지 오백년에 나라가 망하는 날을 당하여 한 사람도 책임을 지고 죽는 사람이 없다하면 어찌 가슴 아프지 아니한가.
너희들은 내가 죽은 것을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라."
ㅡ1910. 9.10 매천 황현
모든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데 구한말선비의식으로 군사쿠데타에 저항한 장태완장군의 의식을 해명하는게 영 마음에 안들기도 하고. 지금 이 시점에 이 영화가 나와서 이토록 흥행한다는게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당할지 꺼림직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그 야수와 살육의 시간에 참인간이 되는 길을 보여주어서 감동스럽기도 하고.
남편도 영화보고 오는 길에 내내 생각이 많아졌다.
이미 승부가 기운 싸움에 지키려는 정의는 목숨을 내놓을만한 것이었을까. 나 혼자 죽으면 상관없는데 어린자식과 물정 모르는 마누라 생각에 나라면 어찌했을까, 자꾸 고민된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1979년 12월 12일 당시 목숨을 걸고 현장에 서있던 주역들은 모두 우리보다 어린 나이였더라.
거기에 오늘이 2023년 12월 12일, 전두환군사쿠데타 44주년이로구나.
전두환 1931년생 경남 합천 당시 48세
노태우 1932년생 경북 대구 당시 47세
정승화육군참모총장 1929년 경북 김천 당시 50세
장태완 수경사사령관 경북 칠곡 1931년생 당시 48세
김진기 헌병감 1932년 평북 후창 당시 47세
정병주 특전사령관1926년 경북 영주 당시 53세
김오랑 특전사령과 비서실장 1944년생 경남 김해 당시 35세
노재현 국방장관 1926년생 경남 마산 당시 5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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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희
장태완을 연기한 정우성 때문에 저는 영화에 몰입이 잘 안되더라구요.
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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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이군희 그죠.그죠! 전혀 매치가 안되는 미스캐스팅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장면의 철제바리케이트를 넘어가는 장면도 영 어색했고요!
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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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희
박정미 정우성은 이태신 역할이 인생의 캐릭터라고 했다더군요...ㅎ
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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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이군희 그저 제 몸에 맞지 않아도 이쁘기만 한 옷이면 된다는 패션모델 저리가라네요.ㅎ
2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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