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8

[비교 심리, 그리고 동구권의 몰락] Vladimir Tikho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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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Tikho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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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심리, 그리고 동구권의 몰락]

사회에 대한 한 가지 흔한 착각은, 가장 고통을 많이 받는 약자들이 가장 치열하게 체제와 싸우게 돼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는 꼭 틀리지 않지만, 부분적으로만 역사적 사실에 부합됩니다. 사회적 고통이 그 고통을 받게 되는 계층으로 하여금 체제에 대한 부정적 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만큼 경험적으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한데 투쟁에 나서려면 부정적 의식 공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어느 정도 결집력도 있어야 되고, 또 그 투쟁이 사회적 파급 효과가 크게 나오자면 투쟁의 장소 역시 체제의 "중심"에 있거나 그 "중심" 가까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투쟁에 나서는 계층 역시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가시성이 있다는 게 아주 유리합니다. 단적인 예로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고생하는 노동자라면 아마도 중남미 출신의 미등록 노동자들이고, 그 중에서도 서비스 부문이나 농업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야말로 노예처럼 일하고 박봉으로 살아가고 거기에다 이민청으로부터 계속 위협을 받고...한데 그들이 수십만개의 작은 업소, 직장, 농장으로 분산돼 있고 대개는 미국 사회의 그늘진 주변부에서 고생하는 만큼 크게 투쟁에 나설 만한 결집력이 부족하고, 설령 국지적 투쟁에 나선다 해도 그게 체제의 "중심"에서는 그다지 감지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어느 정도 조직돼 있는 소수자 (혹인 등)나 엘리트 대학생 (현재 컬럼비아대 등), 아니면 대공장 (자동차 공장 등) 노동자들의 시위, 파업 등 집단 행동은 정말 미국을 "뒤흔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죠. 대공장 노동자나 명문대 학생들이 꼭 "제일 약자" 계층에 속하지 않지만요.   

​1980년대 동구에서는 이런, 잠재적으로 체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계층은 과연 어느 쪽이었을까요? 가장 고생하는 쪽은 아마도 소련 집단 농장의 농민 같이 과중된 육체 노동에 시달리는 (집단 농장 농사에다 개인적 텃밭 농사도 지어야 하는 상황) 주변부적 계층이었을 겁니다. 한데 분산돼 있고 결집력 없는 농민들의 불만은, 동구를 흔든 적이 없었습니다. 정권으로서 정말 잠재적으로 위험한 계층이란 딱 두 개 정도이었습니다. 하나는 대도시 고학력 중산층이었고 또 하나 역시 대도시 대공장 노동자들이었죠. 엔지니어나 대학 교원 등 없이는 기술 집약적 생산, 특히 무기 생산이 불가능했으며, 대도시 대공장에서의 공업 생산은 고도로 산업화된 동구 사회에서 사회적 생산의 중심이었습니다. 한데 동구의 "경쟁 업체" 격은 바로 서구이었기 때문에 동구의 노동자나 엔지니어들은 늘 자신들과 서구인의 "처지"를 비교하곤 했습니다. 이건 아마도 인지상정에 속할 것입니다. 지금도 같은 업계의 종사자들끼리 서로 만나서 한 잔 하게 되면 보수부터 노동 조건 등까지 다 이야기하면서 서로 비교하는 일은 보통이 아닙니까? 유럽이 세계 공업의 하나의 중심이었던 "중국 등장 이전의 시대"에는 예컨대 1970년대만 해도 2만 명의 노동자들을 고용한 폴란드, 그단스크 (Gdańsk)의 그 유명한 "레닌 조선소"의 종사자로서는 "경쟁 업체"란 북부 독일의 조선소들이었습니다. 당연 그들과 자신들의 상황을 계속 비교하는 것은 동구 공업 지대 종사자들의 집단 의식을 형성하는 주된 요소이었습니다. 특히 체코슬로바키아나 헝가리 등 옛 합스부르그 제국의 후계 국가들 같아서는, 계속 옛 종주국 오스트리아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살았던 겁니다.  

​1960년대 중반까지는 그나마 비교해도 동유럽 성장의 속도가 높아서 당장에 못살아도 머지 않아 "잘 사는 세상"은 좀 가까울 것 같았습니다. 1960년대만 해도 폴란드의 연간 성장률은 6% 정도이었는데, 동유럽의 평균은 6,5% 정도이었습니다. 단, 단순 양적 생산 확산의 한계에 이미 부딪친, 기존에 이미 공업화된 고도의 산업 국가 체코슬로바키아는 이미 1960년대 중반에 성장률 둔화 경향을 보여, 이는 머지 않아 정치 위기와 개혁의 시도로 이어지고 결국 소련의 침공 상태를 초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보다 더 늦게 산업화된 폴란드는, 양적 성장의 한계에 부딪친 것은 1970년 전후이었습니다. 더이상 시골 출신의 유휴 공업 노동력이 없어 더 많은 공장을 지을 수 없게 되고, 기존의 공장에서 생산력을 높이려면 서방의 고급 기술과 직접 투자가 필요했는데, 그게 "동구권"인 이상 정치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유일하게 가능한 건 국가간의 차관 제공이었는데, 그렇게 해서 풀란드는 곧 채무 국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데 차관 형태의 외자를 통한 성장도 그 한계를 보이자 결국 폴란드에서는 1970년대 초중반부터 1인당 소비력의 성장은 완전히 멈추고 말았습니다. 늘 스스로와 독일, 즉 서독 노동자나 기술자들의 처지를 비교하는 폴란드의 노동자, 기술자 입장에서는, 그들이 독일인 만큼 일해도 독일인보다 3-4배 적은 보수를 받는 "후진 업체"의 종사자 격이 된 겁니다. 그래서 1970년대 중반 이후 폴란드에서는 정치적 위기가 지속적이었으며, 결국 1989년 총선에서 자유 경쟁이 가능했던 161개 의석 중에서는 여당 (폴란드 통일 노동자당)이 갖게 된 의석이란 하나도 없었습니다. "폭망"도 이런 폭망이 전례 없었던 거죠. 결국 정치적으로 주도적 입장에 있는 고학력층과 노동자층의 "완전한 민심 이탈"의 결과는 체제 전환이었습니다.  

​폴란드는 후발 공업 국가에다 자원이 많지 않은 나라이었습니다. 공업으로 주로 먹고 사는 사회이어서, 임금 차원에서 서구에 뒤지고, 생산성이나 경쟁력 차원에서 신흥 동아시아 (한국, 대만 등)에 밀리게 된 동유럽 공업계의 위기를 그대로 대변하는 나라이었죠. 폴란드와 달리 폴란드의 그 당시 후견 국가이었던 소련은 자원도 공업도 동시에 보유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자원 (석유, 가스 등)을 팔아서 그나마 대공장 노동자들의 불만을 "무마"할 수 있었습니다. 페트로그라드 (레닌그라드, 현 상트-페테르부르그) 대공장 (특시 금속 공장) 숙련공들의 힘으로 1917년에 집권한 소련 공산당은, 일단 그 집권을 가능케 했던 공장의 노동자들만큼 비교적 잘 챙겨주었습니다. 비교적 고임금에다 광활한 국토에 가능했던 무료 별장 제공 등 "사내 복지" 등을 최대화했죠. 그래서 그단스크의 "레닌 조선소"와 달리 레닌그라드의 발틱 조선소 등에서는 그 어떤 쟁의 등도 1970-80년대에 없었습니다. 한데 대도시 대공장 숙련공들을 그토록 잘 챙기는 소련 공산당은, 엔지니어 등 고학력자 집단까지 챙길 만한 여력이란 없었습니다. 1962년의 노보체르카스크처럼 과감한 집단 행동에 나서는 노동자들과 달리 엔지니어들이 집단 행동이 어려운, 즉 더 "만만한" 계층으로 분류됐습니다. 결국 1980년대 후반의 소련 대도시의 대학이나 연구소 등은 그야말로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천지이었습니다. 세계적 수준의 지식을 생산하는 학자나 구미권에 자주 불려 다니는 교향악단, 발레단 등의 예술가들은, 왜 그들의 보수가 서구보다 4-5배 적고 미국보다 6-7배 적어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 "불만 지식인"들이 소련 와해의 과정에서는 상당히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중국이나 러시아의 대공장 노동자나 고학력자 집단의 입장에서는 지역적 준거 집단과의 "비교"란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게 될까요? 지금 중국 상해의 경우 평균 임금은 인민폐 13.486, 즉 약 2백만 원 가까이 될 것입니다. 아직 서울보다 낮긴 하지만, 여태까지의 추격 속도로 봐서는 머지 않아 한국과 비슷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학력자의 경우 이미 한국과 대동소이한 보수를 받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물론 지방 도시라면, 또한 노동자라면 비교의 결과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 한데 노동자의 경우라 해도 30년 전에 30배에 달했던 미국과 중국의 제조업 노동자 임금의 차이는, 지금 3,5배에 불과합니다. 즉, 추격의 속도는 엄청 빨랐다는 것이죠. 중국만큼 빠르지 않지만, 중국 영향권의 다른 국가들도 "발전"의 도상에 있는 만큼 외국과 "비교"해도 그렇게까지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을 정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약 12만7천 루블 (약 1백80만원) 정도 되는 모스크바의 평균 소프트웨어 개발자 임금은, 서울보다는 분명 낮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무상 의료나 교육, 비교적 높은 주택 자가 보유율 (러시아 전국 89%) 등을 감안하면 아마도 그렇게 크게 "불만"을 유발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적어도 소련 말기에 4-5배이었던 서방과의 "갭"은, 이제 대도시 고학력자의 경우 상당히 줄어든 것입니다.  

​세계는 이제 점차 양극 체제, 즉 미-중 양극과 그 영향권으로 나누어지는 체제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등을 포함한 중국 영향권은, 이미 그 기술적 수준은 미국 영향권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즉, 생산성 향상에 의한 기술 집약적인 성장은, 중국 영향권에도 이제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 만큼 중국 영향권에 지속적 성장의 가능성이 크게, 그 만큼 중국 영향권 국가들의 대도시 고학력자나 노동자층의 불만이 있다 해도 국지적 차원에 국한돼 체제 자체를 겨냥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실질 임금의 인상을 포함한 "지속적 개발"의 여지가 남아 있는 체제라면 그 체제에 대한 불만을 가지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겁니다. 한데 그 어느 자본주의도 다 그렇듯이, 중-러 식의 국가 관료 자본주의 역시 기후 위기를 심화시키며, 각종의 격차, 과도 착취, 환경 파괴 등을 자행합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기후 위기 등 환경 재앙에 대한 자각과 수직적인 명령-복종 관료 체제, 계속 벌어지는 격차 등에 대한 불만 등이 겹쳐져서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투적 좌파를 다시 탄생시킬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단, 이 시기는 그렇게 빨리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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